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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 맨체스터에서 머시(Mersey)의 바다 선착장으로 가는 경로가 열렸다. 영국 최초의 완전 인공 수로인 브릿지워터 운하가 1761년 개통돼 워슬리 광산에서 맨체스터 중심부로 석탄이 운반됐다.
 
1736년 맨체스터에서 머시(Mersey)의 바다 선착장으로 가는 경로가 열렸다. 영국 최초의 완전 인공 수로인 브릿지워터 운하가 1761년 개통돼 워슬리 광산에서 맨체스터 중심부로 석탄이 운반됐다.
 
===18~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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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산업혁명]]] 시대에 맨체스터는 섬유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때 면 가공의 최대 중심지였으며, 나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제품 거래 시장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손이 크게 부족했던 맨체스터에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및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9세기 초 놀라운 속도로 도시가 확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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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산업혁명]] 시대에 맨체스터는 섬유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때 면 가공의 최대 중심지였으며, 나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제품 거래 시장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손이 크게 부족했던 맨체스터에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및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9세기 초 놀라운 속도로 도시가 확장하기 시작했다.
  
 
중세 이후 직물업이 성했고 18세기 들어 방적 및 직조 기계 발명에 이어 랭카셔 지방의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상공업의 중심도시로 우뚝섰다. 풍부한 수력과 방적에 적당한 습윤한 기후가 면공업을 크게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중세 이후 직물업이 성했고 18세기 들어 방적 및 직조 기계 발명에 이어 랭카셔 지방의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상공업의 중심도시로 우뚝섰다. 풍부한 수력과 방적에 적당한 습윤한 기후가 면공업을 크게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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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는 상공업 뿐만 아니라 정치, 언론, 문화의 중심지로 영국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1821년 창간된 《가디언》은 《타임스》에 버금가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경제기사에 특색이 있는 신문을 만들었다.
 
맨체스터는 상공업 뿐만 아니라 정치, 언론, 문화의 중심지로 영국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1821년 창간된 《가디언》은 《타임스》에 버금가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경제기사에 특색이 있는 신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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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영국 도시들처럼 맨체스터도 2차 세계대전동안 광범위하게 동원됐다. 당연히 [[독일]]공군의 폭격 대상이 됐고, 1940년에는 비군사적 목표물도 공격을 받았다. 최악의 폭격은 1940년 12월 22일과 23일 밤, 24일 밤 '크리스마스 블리츠'에서 일어났다. 이 때 약 474톤의 폭발물과 37,000개가 넘는 방화 폭탄이 떨어졌다. 창고 165개, 사업장 200곳, 사무실 150곳을 포함해 역사를 간직한 도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다. 376명이 사망하고 집 3만 채가 피해를 입었다. 맨체스터 대성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물 중 하나였으며, 복원하는데 20년이 걸렸다.
 
다른 영국 도시들처럼 맨체스터도 2차 세계대전동안 광범위하게 동원됐다. 당연히 [[독일]]공군의 폭격 대상이 됐고, 1940년에는 비군사적 목표물도 공격을 받았다. 최악의 폭격은 1940년 12월 22일과 23일 밤, 24일 밤 '크리스마스 블리츠'에서 일어났다. 이 때 약 474톤의 폭발물과 37,000개가 넘는 방화 폭탄이 떨어졌다. 창고 165개, 사업장 200곳, 사무실 150곳을 포함해 역사를 간직한 도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다. 376명이 사망하고 집 3만 채가 피해를 입었다. 맨체스터 대성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물 중 하나였으며, 복원하는데 2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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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7일 (목) 21:53 기준 최신판

맨체스터
맨체스터 위치

맨체스터(영어: Manchester)는 영국도시이다. 리버풀 동북쪽 약 50km, 머지강의 지류인 어웰강과 아크강의 합류점에 위치해 있다. 런던, 버밍엄과 더불어 영국의 3대 도시로도 불린다. 근래에는 영국 제2위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1]

개요[편집]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랭커셔 지방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중심 도시이다. 맨체스터의 어원은 고대 로마가 잉글랜드 지역을 점령했을 때 지었던 성채이자 정착지인 마무시움(Mamucium) 또는 그 변형인 만쿠니오(Mancunio)이다.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도시로 성장하면서 철도, 운하의 개통으로 물류업과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세계적인 공업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맨체스터는 1853년에 도시의 지위를 얻었다. 1898년 맨체스터 항구에서 선박 운하가 개통돼 서쪽으로 58km 떨어진 아일랜드 해안의 도시들과 연결됐다. 20세기 이후에는 제조업 및 공업이 쇠퇴하고 도시인구의 감소와 실업률 증가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심정비사업과 함께 광범위한 투자를 통해 도시 재생에 집중하였고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과학과 금융 등 서비스 기반 산업 분야로의 전환을 꾀하여 영국 북부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996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폭격으로 도시가 파괴됐으나 이후 광범위한 투자를 통해 재생을 이끌었다. 폭탄테러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재개발을 이룬 뒤 맨체스터는 2002년 영연방 게임을 개최했다. 오늘날 맨체스터는 시내의 공장이 점차 외곽지대로 이전해 위건, 로치데일, 올덤 등 인구 20만∼30만 규모의 9개 공업도시가 생겨났다. 이 도시들과 함께 그레이터 맨체스터주를 형성했다. 영국에서 런던과 에든버러 다음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건축, 문화, 음악 수출, 미디어 링크, 과학 및 공학 생산, 스포츠클럽 및 교통 요충지로 유명하다. 맨체스터 리버풀로드역은 세계 최초의 도시간 여객철도역이었다. 맨체스터는 과학 발전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1800년대 초 존 달튼은 맨체스터에서 자신의 원자론을 공식화했다. 윌리엄스, 톰 킬번, 제프 토틸은 세계 최초로 저장 프로그램 컴퓨터를 개발 제작했고, 2004년 앙드레 게임과 콘스탄틴 노보슬로프는 처음으로 그래핀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도심을 중심으로 인도인과 중국인, 흑인의 증가가 눈에 띄고 있다. 백인이 아닌 인종의 비율이 20%에 육박하면서 다민족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지금은 공업보다는 금융, 보험 등 상업 도시의 성격이 강하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유명 박물관과 갤러리도 도시의 품격을 높여준다. 맨체스터는 영국 북서부의 대표 교육도시로 다수의 고등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설립되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맨체스터대학교이다. 맨체스터대학교는 1904년 설립된 빅토리아대학교(Victoria University of Manchester)와 1824년 설립되어 1956년 새롭게 발전한 맨체스터 공과대학(University of Mancheste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UMIST)이 2004년 합병하여 만들어졌다. 맨체스터대학교는 196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MBA 코스를 실시한 대학으로 세계적으로도 명망이 높다. 맨체스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인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맨체스터 시티 FC의 연고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맨체스터의 면적은 115.6㎢으로, 동쪽으로는 페나인산맥, 북서쪽에는 풍부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 서페나인 무어스(West Pennine Moors) 산맥이, 남동쪽으로는 남페나인(South Pennines) 산맥이 솟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맨체스터를 통과하는 주요 강은 머지강, 어웰강 그리고 테임강이 있다. 리버풀에서 북동쪽으로 56.3km, 셰필드에서 북서쪽으로 56.3km 떨어져 있어 둘 사이의 중간 지점이 된다. 시의 중심지는 어웰강 동쪽 둑에 있으며, 리버 메드록과 이르크강과 합류한 부근이다. 비교적 저지대여서 해발 35~42m다. 피크 디스트릭(Peak District) 국립공원 안에 블랙 추 헤드(Black Chew Head) 봉우리는 해발 542m로 그레이터맨체스터에서 가장 높다. 산맥 지역과 접해있는 지역을 뺀 도시의 남쪽 지역은 대체로 평지이다. 맨체스터에서 가장 큰 공원은 2.6k㎢ 규모의 히튼 공원(Heaton Park)이며, 맨체스터 남쪽 지역을 제외하면 전 방향으로 커다란 정착지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다. 맨체스터의 지리적 특징은 세계 최초의 공업도시로 발전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습윤한 기후, 리버풀 항구와의 근접성, 강을 이용한 수력발전, 주변의 풍부한 석탄 매장량이 최적의 공업도시 입지 조건이 됐다.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6~8월 여름철 최고기온은 평균 20°C, 1월~2월 겨울철 최저기온은 평균 1.7°C이다. 누적 연평균 강수량은 828mm로 영국의 다른 지역보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한 편이다. 이러한 습한 날씨로 인해 맨체스터에서는 미끄러운 도로로 인한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편이다. 도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눈은 많이 내리지 않지만 북서쪽의 서페나인 무어스(West Pennine Moors) 산맥과 남동쪽의 남페나인(South Pennines) 산맥, 그리고 동쪽의 피크 디스트릭(Peak District) 국립공원이 있는 고지대에는 강설량이 높아 도로가 폐쇄되기도 한다.

역사[편집]

1~17세기[편집]

AD79년에 건설된 로마의 군사기지에서 시작돼 14세기에 자치권을 얻어 시가 됐다. 로마의 쇠퇴와 앵글로 색슨 정복에 이어 노르만인이 들어온 1066년 이전 이르웰과 이르크 합류 지역으로 시가 옮겨졌다. 1282년에도 시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4세기 경 지역 섬유 산업이 번창함에 따라 맨체스터는 모직과 린넨 제조 및 교역의 중요 중심지가 됐다. 1540년 경 존 릴랜드의 말대로 '랭카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튼튼하며, 가장 빠르고,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됐다. 1600년 이후에는 많은 양의 면화가 사용돼 1750년 경까지 순수 면직물이 생산됐다. 당시 면화의 유통 규모가 양모를 추월했다.

1736년 맨체스터에서 머시(Mersey)의 바다 선착장으로 가는 경로가 열렸다. 영국 최초의 완전 인공 수로인 브릿지워터 운하가 1761년 개통돼 워슬리 광산에서 맨체스터 중심부로 석탄이 운반됐다.

18~19세기[편집]

18세기 중엽 산업혁명 시대에 맨체스터는 섬유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한때 면 가공의 최대 중심지였으며, 나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제품 거래 시장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손이 크게 부족했던 맨체스터에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9세기 초 놀라운 속도로 도시가 확장하기 시작했다.

중세 이후 직물업이 성했고 18세기 들어 방적 및 직조 기계 발명에 이어 랭카셔 지방의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상공업의 중심도시로 우뚝섰다. 풍부한 수력과 방적에 적당한 습윤한 기후가 면공업을 크게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1830년 철도 개통과 1893년 운하 개통으로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연결돼 상공업 발달을 더욱 촉진됐다. 세계 면공업의 중심지인 맨체스터는 이 외에도 식품, 기계, 화학, 전자 등 여러 산업이 발달했다. 현재 공업 도시보다는 금융, 보험 등의 상업 도시로도 런던에 버금가는 곳이 됐다.

맨체스터는 마르크스주의와 좌파 정치사에서 주목할 만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 곳을 작품 대상으로 삼았다. 맨체스터를 오가며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엥겔스는 칼 마르크스가 맨체스터를 방문했을 때 체텀 도서관에서 만났다. 지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난 창가 자리를 볼 수 있다. 마르크스가 읽었던 경제학 서적도 도서관에 있다. 맨체스터는 노동당과 참정권 운동의 중요한 요람이었다.

맨체스터는 상공업 뿐만 아니라 정치, 언론, 문화의 중심지로 영국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1821년 창간된 《가디언》은 《타임스》에 버금가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경제기사에 특색이 있는 신문을 만들었다.

20~21세기[편집]

다른 영국 도시들처럼 맨체스터도 2차 세계대전동안 광범위하게 동원됐다. 당연히 독일공군의 폭격 대상이 됐고, 1940년에는 비군사적 목표물도 공격을 받았다. 최악의 폭격은 1940년 12월 22일과 23일 밤, 24일 밤 '크리스마스 블리츠'에서 일어났다. 이 때 약 474톤의 폭발물과 37,000개가 넘는 방화 폭탄이 떨어졌다. 창고 165개, 사업장 200곳, 사무실 150곳을 포함해 역사를 간직한 도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다. 376명이 사망하고 집 3만 채가 피해를 입었다. 맨체스터 대성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물 중 하나였으며, 복원하는데 20년이 걸렸다.

맨체스터 항구는 1963년까지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였고 3,000명 넘게 고용했으나, 운하는 점점 커지는 컨테이너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통행량이 줄어들면서 항구는 1982년 폐쇄됐다. 지역 중공업은 1960년대부터 침체를 겪었고 1979년 이후 마가렛 대처 정부의 경제 정책 영향으로 크게 쇠퇴했다. 맨체스터는 1961년부터 1983년 사이 제조업 분야에서 15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메트로링크, 브릿지워터 콘서트 홀, 맨체스터 아레나, 팔포드 퀘이스로 항구에 대한 재생과 리브랜딩이 시작됐다. 올림픽 개최지 결정에 두 번 나선 것은 도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1996년 폭탄 테러 이후 대규모 투자와 영연방의 도움으로 도시 중심부가 광범위하게 변모했다. 인쇄소와 옥수수 거래소같은 옛시설 단지는 쇼핑, 먹거리, 오락 지역이 됐다. 맨체스터 아르데일은 영국에서 가장 큰 도심 쇼핑센터다. 1960년대 부터 유리와 철을 사용하는 건물들로 재개발, 현대화됐다. 낡은 제분소는 아파트로 개조됐다. 백만 파운드짜리 로프트하우스 아파트도 지어졌다. 2006년 47층, 169m 규모로 완공된 베담 타워는 런던을 제외한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주거 시설이었다.

2017년 5월 22일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 때 범인을 포함해 23명이 숨졌고 800명 넘게 부상을 당했다. 2005년 7월 7일 런던 폭탄테러 이후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테러였으며 첫 자살 폭탄 테러였다. 이 테러로 영국의 위협 수준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중요'로 변경됐다.

맨체스터는 최근들어 국제 언론과 영국민들에 의해 영국 제2의 도시로 여겨지고 있다. BBC는 최근 몇 년간의 재개발로 맨체스터가 영국 제2의 도시라는 주장이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맨체스터와 버밍엄은 제2의 도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옥스퍼드 로드(Oxford Road)는 중심가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이다.

1867년 맨체스터 순교, 1920년 방화, 1939년 연쇄 폭발, 1992년 두 차례 폭탄테러 등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들이 많았다. 특히 1996년 6월 15일 IRA는 한 백화점 옆에서 대형 폭탄테러를 감행했다.[3]

경제[편집]

맨체스터는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면직물 공업을 필두로 대대적인 산업화가 발달하면서 부유한 지역으로 성장했지만 1950년대 이후 제조업공업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맨체스터는 지식경제 중심의 산업, 금융, 법률 및 비즈니스 서비스, 생명 공학, 첨단 제조, 환경 기술, 관광,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미디어 및 부동산을 포함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베타 글로벌 도시’ 계획을 추진하면서 2002년부터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서 2012년 사이 경제가 비교적 활발하게 성장했는데, 당시 성장률은 전국 평균보다 2.3%p 높았다. 영국 경제가 2008~2010년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가운데 맨체스터도 호조를 보였다. 2012년에는 주요 도시들 가운데 최고의 기업 주식 성장률(5%)을 보여주었다.

회계와 경영 컨설팅으로 유명한 KPMG 보고서에 따르면 맨체스터는 유럽에서 생활비가 가장 적게 드는 도시다. 2012~13년 전체 실업률은 평균 11.9%로 전국 평균을 넘었지만 일부 대도시에 비해 낮았다. 그레이터맨체스터에는 많은 백만장자들이 살고 있다. 2013년 영국 12대 도시 비교 결과 맨체스터는 삶의 질 분야에서 6위를 차지했다. 여성들의 임금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다. 시간 당 성별 임금 격차는 영국 전체의 11.1%에 비해 낮은 3.3%였다. 근로 연령 인구의 37%가 학위를 가지고 있다.

2019년 부동산 투자 연구에 따르면 맨체스터는 '영국에서 부동산에 투자하기 가장 좋은 장소' 2위로 평가됐다. 이는 집값 상승과 인프라, 맨체스터 공항에 대한 투자 등이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4]

교통[편집]

맨체스터에는 200개가 넘는 트램과 기차역이 있으며, 영국 전역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철도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맨체스터의 철도 시스템은 과거 산업혁명 시절 도시의 발전과도 맞물려 있다. 2개의 주요 노선의 종착역인 피카딜리역(Piccadilly Station)과 빅토리아역(Victoria Station)을 중심으로 철도 시스템이 운영된다. 맨체스터의 지리적 특성상 대중교통이 철도에 의존하기 때문에 노선 간 병목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을 통해 북부 허브 사업(Northern Hub)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맨체스터공항은 런던의 히드로공항과 개트윅공항에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탑승객이 이용하는 공항이다. 1992년 맨체스터시(City of Manchester)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경전철인 맨체스터 메트로 링크(Manchester Metrolink)가 개통되면서 맨체스터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경전철을 보유한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2020년 기준 맨체스터 메트로 링크(Manchester Metrolink)는 영국에서 가장 큰 메트로 회사이기도 하다.

최근 도심에 증가하는 교통량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으로 인해 시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자전거 전용차선을 확대하고 있다.[5]

교육[편집]

맨체스터에는 세 개의 주요 대학이 있다. 1824년 설립된 맨체스터 대학교(The University of Manchester),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 그리고 로열 노던 음악 대학교(Royal Northern College of Music)이다

1824년 설립된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University of Mancheste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UMIST)과 1851년 오언스 대학(Owens College)으로 시작된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Victoria University of Manchester)를 전신으로 하는 맨체스터 대학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단일종합대학이며, 2004년 맨체스터 과학기술대학(University of Mancheste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UMIST)과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Victoria University of Manchester)가 합병 한 것이 현재의 맨체스터 대학교의 모습이다. 맨체스터 대학은 1918년 맨체스터 경영대학원 (Manchester Business School, MBS)을 설립하였으며, 이것은 1965년에 영국 최초의 MBA 과정을 제공하였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는 1970년대 3개의 전문대가 합병하여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으로 시작하였다. 1992년에 대학교의 지위를 얻게 되었으며, 같은 해 남부 체셔의 크루어 & 알사저 대학(Crewe and Alsager College of Higher Education)을 흡수하였다.

맨체스터 대학교와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와 로열 노던 음악 대학교는 시내 중심에서 남부쪽으로 옥스포드가 근처에 모여있다. 이 대학들은 유럽 최대 규모의 대학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대학생은 73,160명에 이르며 이들 중 6,000명 정도가 체셔의 크루어 & 알사저에 있는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맨체스터의 가장 유명한 중등학교 중의 하나는 맨체스터 그래머 스쿨이다. 1515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대성당 건물 옆에 있다가, 점점 늘어나는 학생수를 수용하기 위해 1931년에 맨체스터 남부 팔로우필드에 있는 오울드 홀 래인(Old Hall Lane)으로 이주를 하였다.

이 밖에 각종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원자물리연구소 등이 있으며, 특히 유럽에서 공공도서관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성 베드로 광장(St Peter’s Square)에 맨체스터에서 가장 큰 맨체스터 중앙도서관(Manchester Central Library)이 위치한다.

문화[편집]

스포츠[편집]

맨체스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인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시티 FC의 연고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은 4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은 영국 최대 규모인 76,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올드 트래퍼드이다. 이곳은 시의 영역 바깥인 스트레트퍼드에 있다. 이곳은 2003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치러진 영국 유일의 클럽 축구 그라운드이다.

음악[편집]

할레 오케스트라와 BBC 필하모닉이 본사를 맨체스터에 둔다. 19세기 산업혁명 절정기에 세워진 자유무역홀이 맨체스터 주요 공연장이며, 클래식 이외에도 락과 같은 콘서트 무대가 되어 왔다. 맨체스터는 1960년대 이후 팝 · 락 · 테크노 등 분야의 저명한 뮤지션과 밴드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록밴드 뉴 오더와 더 스미스, 더 스톤 로지스, 오아시스가 결성된 곳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팩토리 레코드를 중심으로 매드 체스터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맨체스터〉, 《위키백과》
  2. 맨체스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맨체스터〉, 《요다위키》
  4. 맨체스터(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맨체스터〉,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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