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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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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바젤 위치

바젤(독일어: Basel, 프랑스어: Bâle, 이탈리아어: Basilea)은 스위스프랑스, 독일의 접경지대에 놓여 있으며 취리히, 제네바를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바젤슈타트주에 속한다. 바젤대학교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1]

개요[편집]

바젤은 스위스 바젤슈타트주의 주도이며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접한 국경도시로 교통의 요충지다. 서쪽으로 흘러온 라인강이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스위스 라인란트의 입구에 위치하며 상업, 교통의 중심이다. 바젤이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374년이었으며 7세기에 주교청(主敎廳) 소재지가 되었고, 1501년에 스위스 연방에 가맹하였다. 1529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오버라인 지방의 인문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젤 지역은 독일의 바덴과 프랑스의 알자스와 문화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주민의 2/3는 프로테스탄트이며, 대부분이 독일어를 사용한다. 내륙국 스위스를 바다와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으며, 1924년에 신설된 라인항은 공업원료, 연료를 수입하고 제품을 수출한다. 본래 섬유공업이 활발했던 곳으로 특히 염색업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가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공업지역, 왼쪽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나누어져 있다. 1460년 창립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바젤 대학교와 18개의 박물관, 국제결제은행, 성서협회와 프로테스탄트 전도협회, 고딕식 대성당 등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상업 중심지로 번성하였으며, 글로벌 화학 및 제약 거대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다. 1917년 이래 해마다 4월에는 스위스산업박람회가 열리고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과 세계적인 시계 보석박람회인 ‘바젤 월드’가 매년 개최된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바젤은 스위스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의 수도로 간주된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가깝고, 바젤에도 프랑스와 독일 교외 지역이 있다. 바젤의 면적은 2009년 기준으로 23.91k㎡이다. 이 지역 중 0.95km 2 (4.0%)가 농업 목적으로 사용되는 반면 0.88k㎡ (3.7%)는 삼림으로 사용된다. 나머지 토지 중 20.67k㎡ (86.4%)가 정착(건물 또는 도로), 1.45k㎡ (6.1%)가 강 또는 호수이다. 건축면적 중 공업용 건물이 전체 면적의 10.2%, 주택과 건물이 40.7%, 교통 기반 시설이 24.0%를 차지했다. 전력 및 수자원 기반 시설 및 기타 특별 개발 지역이 면적의 2.7%를 구성하고 공원, 녹지대 및 스포츠 경기장이 8.9%를 구성했다. 삼림 지대를 제외한 모든 산림 지역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농경지 중 2.5%는 작물 재배에 사용되고 1.3%는 목초지이다. 시정촌의 모든 물은 흐르는 물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바젤은 해양성 기후 (쾨펜: Cfb)를 특징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륙에 위치하여 시원하고 춥고 겨울은 흐리고, 여름은 따뜻하고 덥고, 습하기 때문에 대륙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도시는 연간 평균 118.2일의 비나 눈이 내리며 평균 강수량은 842mm이다. 가장 습한 달은 5월로 이 기간 동안 바젤의 평균 강수량은 98mm이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은 5월로 평균 11.7일이다. 연중 가장 건조한 달은 2월로 8.4일 동안 평균 강수량이 45mm이다.

역사[편집]

바젤의 정착 역사는 기원전 2세기 구시가지 북서쪽 바젤-가스파브릭 터에 라우리치 마을이 설립된 흔적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1세기 로울링 라우리치는 로마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현재의 바젤 대성당 위치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44년 로마는 바젤 동쪽 20km 떨어진 곳에 로마 정착촌 아우구스타 라우리카를 만들었다. 이후 로마군은 카스트라라는 병영을 설치해 바젤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원 후 83년 바젤은 로마의 게르마니아 슈페리어 지방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로마의 통제는 3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약화되기 시작했다. 4세기에 알레마니족의 게르만 연합은 여러 차례 라인 강을 건너려고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실패한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가 솔리키니움 전투(368년)였다.

서기 406년 알레마니족은 마침내 라인강을 건너 오늘날 알자스와 스위스 고원의 많은 부분을 정복했다. 그때부터 바젤은 알레마니의 정착지였다. 알레마니 영지는 6세기에 프랑크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7세기 이후 하이토 주교 주도로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고, 이 성당은 1019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젤 대성당으로 재건축되었다. 카롤링거 제국이 분할되면서 바젤은 처음에는 서프랑크령이었으나, 870년 메르센조약과 함께 동프랑크로 넘어갔다.

917년 마자르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바젤은 부르고뉴 왕국의 일부가 되면서 1032년 신성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바젤의 실질적 권한은 중세시대 영주 주교인 프린스 비숍에게 있었다.

999년 브르고뉴의 루돌프 3세가 모든 권한을 주교에게 넘김으로써 이후 종교개혁 때까지 바젤은 영주 주교에 의해 통치되었다. 영주 주교의 통치는 14세기 초 정점에 달했다.

13세기에 주교령으로 약 15개의 길드가 설립되었다. 길드는 1349년 1월 흑사병을 퍼트렸다며 유대인을 학살했다. 바젤 학살 당시 600여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다.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은 기독교로 강제 개종되었다.

1459년 교황 피우스 2세의 승인으로 바젤대학이 설립되어 이듬해 개교했다. 바젤은 1499년 슈바벤 전쟁(Swabian War) 이후 맺은 바젤 조약에 힘입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501년 6월 9일 바젤은 11번째로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다. 바젤은 전략적 위치 등의 이유로 동참을 요청받은 유일한 칸톤(스위스의 주를 부르는 말)이었다. 바젤은 스위스연방으로부터 다른 주들 간의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받았다.

1529년 바젤은 종교개혁가 요하네스 오콜람파디우스의 주도하에 개신교가 되었고, 영주 주교의 지배를 끝냈다. 그 후 수세기 동안 '다이그'라고 불리는 소수의 귀족세력이 도시 운영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897년 바젤은 세계 시오니즘 의회 장소로 선택되어 이후 50년간 10차례 의회를 개최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상업의 중심지였던 바젤은 20세기에는 화학 및 제약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국제결제은행 본부도 바젤에 있다.[3]

문화[편집]

바젤 대성당은 1019년 라인강이 보이는 언덕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1356년의 대지진으로 첨탑 등이 심하게 훼손되어 1365년 고딕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성당 안에는 에라스무스 기념비가 있으며, 붉은 사암벽이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 성당 북쪽에는 게오르그탑, 남쪽에는 마르틴탑 등 두 개의 유명한 탑이 있다.

매년 17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동물원은 바젤에서 가장 인기 많은 관광 명소다. 1874년에 설립된 바젤 동물원은 세계 최초의 인도 코뿔소 탄생 및 홍학 부화 등 쉽지 않은 동물 번식에 여러 차례 성공했다. 포브스 여행사는 2008년 바젤 동물원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동물원 중 하나로 선정했다. 바젤 주민들은 동물원을 "졸리"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바젤에서 매년 6월 열리는 국제 미술박람회인 ‘아트 바젤’은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의 300여 개 유명 갤러리에서 출품한 수준 높은 현대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1970년에 처음 개최한 이후 해마다 4일 동안 열리며 그림, 조각, 설치, 사진, 판화, 비디오, 멀티미디어 예술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피카소, 미로, 클레, 앤디워홀, 제프 쿤스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부터 동시대미술까지 관람할 수 있다. 약 5만 명의 예술가, 미술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다.

바젤에는 미술관이 많은데 이 중 1661년 세워진 스위스에서 가장 큰 미술관인 쿤스트뮤지엄과 스위스 예술가 장 팅겔리의 작품이 소장된 팅겔리 미술관이 유명하다. 팅겔리 미술관 건물은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것으로,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바젤 민족학박물관, 근현대 미술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바이엘러재단 미술관, 가구디자인 미술관인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이 40여 개 있다. 바젤이 문화의 도시이자 예술의 메카로 불리는 이유이다.

1933년 설립된 바젤 스콜라 칸토룸합주단은 중세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바젤 심포니오케스트라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오케스트라이며, 바젤 소년합창단이 주최하는 유럽 청소년 합창대회(EJCF)도 1992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박람회 중 하나인 시계 보석 박람회인 ‘바젤 월드’가 매년 개최돼 전 세계 시계 제조사들과 수많은 시계 애호가들이 참가한다. 각국의 명품 시계 제조사들이 이 박람회에서 신제품을 선보인다.

매년 열리는 ‘파스나흐트’ 카니발은 바젤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축제다. 현지인들이 ‘최고의 3일’이라고 부르는 이 행사는 사순절 다음 월요일 새벽 4시에 시작해 3일 동안 정확히 72시간 내내 쉬지 않고 계속된다. 이 축제는 바젤의 개신교 역사를 기념한다. 중세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등불을 들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한다.

경제[편집]

바젤은 취리히에 이어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중심지로, 주크와 제네바를 앞질러 1인당 GDP가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바젤의 주력 산업은 화학과 제약업으로 노바티스, 클라리안트, 호프만-라 로체, 바실레아, 액텔리온 등 거대 기업들이 바젤에 본사를 두고 있다.

바젤의 수출액 중 94% 이상이 화학 및 제약업종 제품에서 나온다. 바젤은 스위스 수출의 20%를 차지하며 국내 생산물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은행업도 바젤의 주요 산업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 은행은 11개 국가의 중앙은행 직원들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관리된다. 1930년 5월에 설립된 BIS는 세계 상업은행 시스템의 표준이 되는 권고안을 제정할 뿐만 아니라 형사 및 행정적 관할권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누린다.

바젤은 BIS와 구별되는 바젤 은행감독위원회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바젤협약을 책임지는 이 조직은 업계 내 리스크 관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교통[편집]

바젤의 공항은 항공 화물로 설정된다. 무거운 화물은 라인강을 따라 배를 타고 북해에서 도시와 유럽 대륙의 심장부에 도달한다. 바젤에서 화물의 고속도로 및 철도 운송을 위한 주요 유럽 노선. 뛰어난 위치는 바젤에서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물류 기업에 이점이 있다. 무역 회사는 전통적으로 바젤 지역에서 잘 대표된다.

항만[편집]

바젤에는 스위스 유일의 화물 항구가 있으며, 이 항구를 통해 상품은 라인강의 항해가 가능한 지역을 통과하고, 로테르담 항구에서 외항선과 연결된다.

공항[편집]

유로 에어포트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두 나라에서 공동으로 운영하지만, 공항은 완전히 프랑스 땅에 있다. 공항 자체는 건축학적으로 두 개의 독립적인 구역으로 나뉜다. 절반은 프랑스 측에, 나머지 절반은 스위스 측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솅겐 이전에는 공항 중앙에 출입국 심사대가 있어 사람들이 공항 반대편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철도[편집]

바젤은 오랫동안 철도 허브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세 개의 기차역(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트워크)은 도시 내에 있다. 스위스의 바젤 SBB역은 실제로 세관과 출입국 관리 시설로 분리된 동일한 복합 단지에 있다. 바젤 바디셔역은 도시 반대편에 있다. 바젤의 지역 철도 서비스는 바젤 레기오날 S-반에서 제공한다. 나라에서 가장 큰 화물 철도 단지는 무텐츠 및 프라텔른 지자체에 걸쳐 도시 바로 외곽에 있다. 칼스루헤에서 바젤까지의 새로운 고속 ICE 철도 노선은 TGV 라인-론의 1단계가 2008년에 완공되었다. 2011년 12월에 개통된 이 노선은 바젤에서 파리까지의 이동 시간을 약 3시간으로 단축했다.

페리[편집]

다소 시대착오적이지만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반응 페리 보트 시스템이 두 해안을 연결한다. 4개의 페리가 있으며, 각 페리는 두 다리 사이의 대략 중간에 위치해 있다. 각각은 20~30m 높이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다른 케이블을 따라 타는 블록에 케이블로 연결된다.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사공은 조류가 강을 건너 보트를 밀어내도록 조류에서 약 45° 방향으로 배를 기울인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운송은 외부 에너지원이 필요 없이 완전히 수력으로 구동된다.

대중교통[편집]

바젤은 도시를 운행하고 대형 트램망을 포함하여 주변 교외 지역으로 연결되는 광범위한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녹색 지역 트램과 버스는 BVB(Basler Verkehrs-Betriebe)에서 운영한다. 노란색 버스와 트램은 BLT(바젤란트 트랜스포트)에서 운영하며, 바젤란트 반주 인근 지역을 바젤 중심부로 연결한다. BVB는 또한 이웃 프랑스의 알자스 지역과 독일의 바덴 지역의 대중교통 당국과 협력하여 통근버스 노선을 공유한다. 바젤 레기오날 S-반은 도시 주변 교외를 연결하는 통근 철도망으로, SBB, SNCF 및 DB에서 공동 운영한다.

국경 횡단[편집]

바젤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스위스 국경에 자리 잡고 있고, 쥐라산맥 너머에 있기 때문에 스위스 군대 많은 인사들이 이 도시가 전시에 방어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와 다른 두 나라 사이에 수많은 도로와 철도 건널목이 있다. 2008년 12월 12일 스위스가 솅겐 조약 지역에 합류하면서 더 이상 교차점에서 출입국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위스는 유럽 연합 관세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EU 단일 시장에는 가입했지만) 세관 검사는 여전히 교차점 또는 그 근처에서 수행된다.[4]

교육[편집]

바젤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바젤대학을 146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에라스무스가 이곳에서 가르쳤으며, 이후 종교 개혁가 츠빙글리, 정신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바젤대학을 졸업했다. 바젤대학은 현재 전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바젤은 수학으로도 유명하다. ‘오일러의 수’를 만든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와 ‘베르누이 정리’를 확립한 다니엘 베르누이가 바젤대학에서 연구하고 교편을 잡았다. 1910년에 스위스 수학협회가 바젤에 설립되었고, 20세기 중반에는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산더 오스트로우스키가 바젤대학에서 가르쳤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바젤〉, 《위키백과》
  2. 바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바젤〉, 《요다위키》
  4. 바젤〉, 《나무위키》
  5. 바젤(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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