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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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섬(영어: Trinidad Island)은 카리브해의 소앤틸리스 제도를 이루는 섬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본섬으로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이 있다. 면적은 4768km², 인구는 126만 명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 면적의 90%와 인구의 95%가 이 섬에 집중되어 있다.[1]
개요
트리니다드섬은 카리브해 남동부 국가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요 섬이며 중심지이기도 하다. 길이가 80km 넓이가 60km로 직사각 모양을 이루며 면적은 4768km²이며 서인도 제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베네수엘라의 북동쪽 해안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남아메리카 대륙붕에 위치해 있다. 북쪽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지이거나 언덕이 많은 지형이다. 수도인 포트오브스페인은 북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이곳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요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다. 1498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고 1797년까지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다가 영국에 이양되었다. 1889년 토바고와 통합 되었으며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76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트리니다드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세워졌다. 아직도 인디언들의 전통이 깊숙이 베어있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다채롭고 화려한 카니발이 곳곳에서 열리고있다. 이 섬에는 수많은 해변과 습 지대와 열대 숲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이다. 산업으로는 정유와 액화 천연가스 그리고 화학이 주요 수출품을 이루고있다.[2]
지리 및 기후
트리니다드섬은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북동쪽에서 동쪽으로 약 1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트리니다드섬의 서해안은 위의 두 해협을 출입구로 하는 파리아만을 사이에 두고 베네수엘라와 마주하며, 동해안은 대서양에 면한다. 토바고섬은 트리니다드섬에서 북동쪽으로 34㎞ 떨어진 대서양상에 있으며, 그 북동쪽에는 부속섬인 소토바고섬이 있다. 트리니다드섬의 면적은 약 4,768㎢로 국토 면적의 약 93%를 차지하며 토바고섬은 약 300㎢로 국토 면적의 약 5.8%를 차지한다.
트리니다드섬의 북부 산맥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델 세로 델 아리포(El Cerro del Aripo, 940m)와 엘 투구체(El Tucuche, 936m)가 있다. 섬의 나머지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동부 지역은 만사니야(Manzanilla Beach) 해변을 포함한 해변이 유명하다. 한편 트리니다드섬에는 몇 개의 늪지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카로니 늪지대(Caroni Swamp)와 나리바 늪지대(Nariva Swamp)가 있다. 트리니다드의 주요 수역에는 홀리스 저수지(Hollis Reservoir), 나벳 저수지(Navet Reservoir), 카로니 저수지(Caroni Reservoir) 등이 있다. 또한 트리니다드섬 남부에는 아스팔트를 대량으로 매장하고 있는 피치호(湖), 남부와 파리아만에는 풍부한 유전지대가 있으며, 토바고섬은 풍부한 삼림자원으로 뒤덮여 있다. 토바고섬의 동쪽 지역에는 산이 많은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비둘기 봉우리(550m)이다. 토바고의 해안에는 여러 산호초가 있다. 나라 인구의 대다수는 트리니다드섬에 거주하기 때문에 도시와 큰 마을은 트리니다드섬에 주로 위치하고 있다. 트리니다드섬에는 수도 포트오브스페인, 산페르난도, 아리마, 차구아나스 등 4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기후는 해양성 열대기후로 연평균 기온 28℃이고 연강수량은 2,000㎜를 넘지만, 토바고섬은 서쪽으로부터의 해풍의 영향을 받아 주민 생활에 알맞다. 우기는 6~12월, 건기는 1~5월이다. 많은 카리브해 도서 국가들과 달리 주요 허리케인의 통로 밖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3년 9월 허리케인 플로라가 트리니다드를 강타한 적이 있다.[3]
역사
유럽의 식민화 이전 트리니다드와 토바고섬에는 남아메리카에서 이주 온 원주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트리니다드섬에는 약 7천 년 전부터 원주민이 정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에도 일련의 이주 물결이 이어졌다. 유럽인들이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발을 딛을 시기 트리니다드섬에 아라와크족과 카리브족이 정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트리니다드섬은 1498년 7월 31일 콜럼버스의 제3차 항해 때 발견되었으며, 이후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이루어졌다. 1542년 스페인은 트리니다드섬에 초대 총독을 임명하였다. 트리니다드섬은 17세기 내내 스페인 통치 하에 있었지만, 원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스페인의 통치에 항거했다. 스페인인과 원주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1689년 산 라파엘 엔코미엔다의 원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러 명의 사제를 죽이고 교회를 공격하였으며 스페인 총독 호세 데 레온 이 에탈레스(José de León y Echales)를 살해했다. 이후 스페인은 아레나 학살(Arena Massacre)로 알려진 사건에서 수백만 명의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가혹한 보복을 시행했다. 그 결과 원주민 인구는 18세기 말경 거의 전멸하기에 이르렀다. 트리니다드는 스페인 통치 기간 동안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에 속했다. 1757년 계속된 해적의 공격으로 트리니다드섬의 수도를 산호세 데 오루냐(San José de Oruña)에서 포트 오브 스페인(Port of Spain)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스페인 통치 기간 동안 트리니다드섬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화는 미약했기 때문에 섬 대부분의 지역은 여전히 숲으로 남아있었고, 소수의 노예와 수천 명의 원주민, 소수의 스페인인이 거주했다.
트리니다드섬에 1777년 이후 프랑스 정착민들이 유입되면서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트리니다드의 부족한 인구를 보완하기 위해 그레나다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을 1783년 스페인왕으로부터 거주권을 확보하여 트리니다드로 이주했다.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할 의향이 있는 로마 가톨릭 외국인 정착민들에게 10년 동안 무료로 토지를 제공하고 면세의 혜택을 주었다. 스페인은 이러한 거주권 관련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 새로운 총독을 트리니다드로 보냈다. 스페인이 주변 섬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거주권을 승인하면서 마르티니크, 세인트 루시아, 그레나다, 과들루프, 도미니카 등 이웃 섬에서 노예, 자유 유색인종 및 혼혈인들이 프랑스 농장주들과 함께 트리니다드로 이주하여 플랜테이션 농업을 성장시켰다. 이로 인해 1789년경 트리니다드의 인구는 1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으며, 1797년 포트 오브 스페인의 인구는 5년만에 3 천 명에서 10,422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1797년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영국군이 트리니다드섬을 점령하였으며, 1802년에는 트리니다드섬이 아미앵(Amiens) 조약에 의해 스페인으로부터 영국에 할양되었다. 1814년에는 토바고섬이 파리조약에 의해 프랑스로부터 영국에 할양되었다. 1838년에는 노예해방으로 부족해진 노동력 충족을 위해 인도인이 계약노동자로 유입되었는데, 그 수가 1917년까지 14만 3천여 명에 달하였다. 1911년 석유 수출 개시, 제1차 세계대전 말 계약노동제 폐지, A.시프리니아의 노동운동(후의 트리니다드 노동당) 전개 등이 섬의 정치·경제의 근대화를 촉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대영제국 전역에서 탈식민화 과정을 시작했다. 1945년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보통선거가 도입되었다. 또한, 정당들도 형성되었지만 이들 정당은 인종에 따라 크게 나뉘었다. 아프리카-트리니다드인과 토바고인들은 주로 에릭 윌리엄스가 1956년 결성한 인민민족운동을 지지했으며, 인도-트리니다드인과 토바고인은 대부분 1953년 결성된 인민민주당(이후 1957년 민주 노동당에 합병)을 지지했다. 1950년 독립을 위한 신헌법이 공포되었으며, 사회학자이기도 한 E.윌리엄스의 지도 하에 인민민족운동(PNM)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마침내 1956년 9월에 자치정부를 수립하였으며, 초대 수상으로 에릭 윌리엄스(Dr. Eric Williams)가 취임하였다. 영국의 카리브해 식민지는 독립을 위해 1958년 서인도제도 연맹을 결성했지만 자메이카가 탈퇴한 이후 연맹은 해산되었다. 결국 트리니다드와 토바고도 1962년 8월 31일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이름의 영국연방 자치국으로 완전 독립하였다. 이로써 서인도연방은 붕괴되었다. 독립 후 인민민족운동의 윌리엄스를 총리로 하는 정부가 발족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의 영향을 받아 블랙파워 운동이 부상했다. 시위와 파업 중에 1970년 4월 경찰이 시위자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을 계기로 시위는 일상화되었다. 법과 질서의 붕괴를 우려한 윌리엄스 총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많은 흑인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1968년 5월 1일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카리브해자유무역협회(CARITA)에 가입하여 역내에서 경제적 통합노력에 참여했다. 1973년 CARITA에 이은 카리브해 국가의 정치 및 경제 연합인 카리브 공동체(CARICOM)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1972년에서 1983년 사이에는 국제적인 유가 상승과 막대한 신규 석유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하였다. 1976년 8월 신헌법을 제정하고 9월에는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국가 원수를 종전 영국 여왕에서 대통령으로 변경하였으나, 영연방의 일원으로 계속 남기로 하였다.[4]
트리니다드 토바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영어: Trinidad and Tobago)의 정식 명칭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영어: Republic of Trinidad and Tobago)이다. 카리브해 남쪽에 있는 섬나라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11 km, 그레나다에서 남쪽으로 약 13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남아메리카에서 아주 가깝지만, 문화지리적 특징에 따라 북아메리카에 속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은 이 나라의 가장 주된 두 개의 섬이며, 그 밖에 21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높은 지역은 트리니다드섬에 있으며, 해발 940미터이다. 열대성 기후이며,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 있다. 영국은 1888년부터 두 섬을 통합하여 관리하였다. 1959년 서인도 연방에 편입되었지만, 1962년 연방에서 탈퇴해 영국 연방의 자치국으로 독립하였다. 독립 당시에는 영국 여왕이 국가 원수인 군주제 국가였으나, 1976년에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국이 되었다.
남동쪽으로는 소앤틸리스제도와 서인도제도에 마주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베네수엘라의 해안으로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전체 면적은 5,128km²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보르네오섬 최북단 정중앙에 위치한 브루나이의 면적과 같은 크기이다. 섬의 지세는 산과 평원의 혼합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은 북쪽 지역에 있는 엘 세로 델 아리포(El Cerro del Aripo)로서 940m이다. 절대 다수의 인구가 트리니다드에 사는데 대부분의 마을과 도시가 이곳에 분포한다. 포트오브스페인, 샌퍼넌도, 차과나스가 주요 도시이다. 트리니다드섬은 다양한 토양 형질로 되어 있는데 대개 고운 모래거나 점토이다. 북쪽 지역의 계곡 일대 토양이 비옥하다. 북쪽 지대는 쥐라기 대의 토양과 백악기 시대의 토질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 저지대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부드러운 토양으로 되어 있다. 남쪽으로 가면 중앙 지대가 있는데 백악기 시대와 시신세 대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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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트리니다드섬〉, 《위키백과》
- 〈트리니다드 토바고〉, 《위키백과》
- "Trinidad", Wikipedia
- 〈트리니다드〉, 《요다위키》
- 〈트리니다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카리브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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