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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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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의 텅빈 공터

공터(空 터)는 이나 따위가 없는 비어 있는 을 말한다. 흔히 빈터 또는 공지라고도 한다.[1]

개요[편집]

공터는 말 그대로 텅 비어있는 터, 땅을 말한다. 공터에는 집이나 밭 따위가 없는 땅이다. 공터를 영어로 찾아보면 많은 단어가 있다. vacant lot(빈 공간), open space(열린 공간), clearing(빈터), plat(구획된 땅), empty land(공한지), village green(마을의 녹지, 광장), the lungs of a city(도시의 폐, 영국 관용구), informal playground(비공식 놀이터) 등. 어떤 상황에서 공터라는 단어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작은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

특히 공터는 아이들로 늘 북적였다. 변변한 놀이기구 하나 없었지만 아이들은 큰 공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집어구나 길모퉁이와 같은 작은 공간에서 놀음을 놀고, 친구를 사귀고, 미래를 꿈꿨다. 이러한 공터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오롯이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그래서 더 즐겁고 신나게 아이들만의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갈수록 공터 구경하기가 힘들다. 어디 잠시 노는 땅이라도 있으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건물이 올라가거나 주차장이 들어서거나 하다못해 공원이라도 들어서야 한다. 공원과 공터의 차이. 목적이 분명한 공원과 달리 공터의 세계는 어느 용도로도 규정되지 않고 다만 쓰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준비되는 시간은 되도록 길지 않다.

여유는 그다음에 찾아온다. 공터를 물리치고 버젓이 들어선 스포츠센터에서 땀 좀 빼고 있을 때나 아니면 잘 조성된 공원을 한가로이 거닐 때 비로소 우리는 여유라는 것을 생각한다. 나머지는 모두 부지런하고 바지런한 시간을 위해 바쳐진다. 여유조차도 아껴서 써야 하는 틈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공터나 빈터라는 말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려면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래, 옛날에나 어울리는 말이 공터였다.

그 시절 아이들의 놀이터는 공터 하나면 족했던 것 같다. 놀이 기구라고 해봐야 고무공이나 장난감 총 몇 개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마저도 없으면 공터를 뒹구는 돌멩이가 우리들의 놀이 기구였다. 공간만 있으면 아이들은 잘 논다. 시간만 있으면 온 데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공터만 한 천국이 따로 있을까. 아파트 단지 사이 놀이터가 지금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쉬운 구석이 있다. 놀이터는 이미 만들어진 곳이며 공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 무엇이라서? 글쎄다. 놀이터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공터를 감싸고도는 주변 환경이 확실히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갑갑함의 차이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이른바 웰빙형 아파트 단지를 보면 예전의 아파트와 달리 잘 조성된 분수도 보이고 제법 널찍한 광장도 있으며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곳도 적지 않다. 거기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면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 뒤편으로 슬그머니 갑갑한 기운이 치민다. 선심을 쓰듯 배려해놓은 분수며 광장이며 시냇물들이 더는 모자랄 것이 없는 것처럼 들어선 그곳에서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모자란 구석이다.

여유 공간조차 잘 짜인 계획에서 비롯되어야 안심이 되는 곳이 우리가 사는 도시이며, 교외에 늘어선 휴양 시설도 이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세워진다. 잘 정리된 곳이어야 비로소 편안한 휴식이 깃든다.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곳은 야생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야생을 두려워하거나 못내 불편해한다.

야생 멧돼지를 몰아내듯 공터를 밀어내고 들어선 자리에 우리들의 아파트가 있고 회사가 있으며 또 쇼핑몰이 있다. 덕분에 우리들의 생활은 자주 허공에서 만난다. 지금 신문을 읽고 있는 그대는 지상에서 몇 층 높이에 몸을 두고 있는가. 혹은 지하에 있지 않은가. 공터를 점령하고도 모자라는 땅은 이제 공중에 있거나 지하에 있다. 수평을 다 잡아먹고 나면 남는 것은 수직이므로 층층이 쌓아올린 곳으로 우리는 우리들의 생활을 자꾸 옮겨간다.

공터를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 고도제한 때문에 더 올라갈 높이도 없는데 노는 땅을 생각한다는 게 어디 어울릴 법한 말인가. 공터를 발견하는 게 공원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힘든 요즘, 느닷없이 생긴 집 근처의 공터 하나를 신기한 으로 바라본다. 어림잡아 몇 만 평은 되어 보이는 그 넓은 공간은 사이사이 닦인 도로와 옮겨 심어놓은 가로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잡초로 뒤덮여서 거의 별천지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곳에서 모처럼 하늘이란 것을 본다. 거기서는 밤하늘의 도, 해지는 노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개만 잠시 들어주면 된다. 땅에서 빈자리가 생길 때 비로소 하늘이 보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발걸음은 자꾸 그쪽을 향한다. 내내 공중을 맴돌던 생활이 모처럼 땅에 내려앉아 하늘 아래 텅 빈 장소에서 이상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시간은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드물게 찾아오는 그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드물게 만나는 이 공간과 시간도 언젠가는 또 허물어질 것이다. 공터를 허물고 들어선 그 자리를 아무 일없이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공터를 버리면서 또 공터를 찾아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마치 식량을 찾아 움직여 가는 거대한 매머드 떼처럼 말이다.[2][3]

공터의 활용에 대한 상상과 제안[편집]

공터에 걸린 현수막
공터에 심은 야채

신도시에는 공사 진행에 따라 공사 예정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공터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한다. 말 그대로 가만히 두면 공터, 비어있는 땅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또한 조금만 걸어가면 그런 공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준비가 되면 공터에는 예정된 공사가 진행되겠지만 말이다.

주민 주도의 운영[편집]

일반적으로 공사 예정인 공터에는 '농작물 경작 쓰레기 투과를 금지'와 같은 현수막을 걸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현명하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어차피 공터인데, 놀려서 뭐 하겠냐는 주민들은 나름 판단을 했을 것이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공터에 걸린 현수막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마른 땅의 을 고르고, 저장할 수 있는 땅을 파기도 하며, 집에서 안 쓰는 의자, 그리고 잠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원두막까지 만들어갔다. 공터를 밭으로 만들고, 서로가 필요한 만큼의 땅을 나누고, 각자의 생활패턴에 맞춰 관리를 해나갔다.

중년 이상의 어른들에게는 아파트 생활에서의 갑갑함을 풀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밭을 갈며 이웃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재배한 수확물을 나눠먹기도 하고, 때론 이웃에게 전해주기고 하며, 두런두런 관계를 만들어갔다. 고층인 집에서 공터를 볼 때도 나름 관리된 공터의 모습은 새로운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수확이 끝나고도 전혀 방치하지 않았다. 때만 되면 공터에 나가 다음 해 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한 꼬물거림을 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편집]

공터에 가꾼 꽃밭

주민자치, 주민 주도란 말을 행정에서는 늘 쉽게 말한다. 하지만 정작 주민을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는다. 단기간의 성과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의 일을, 행정의 성과를 대신할 주체(직능단체)와는 어떻게든 유지를 한다만 아이디어가 있는 주민들의 의견과 참여는 말 그대로 쉽지 않다.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함께 하려는 태도는 늘 아쉽다. '주민들의 관심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 말을 하지만 과연 그동안 '주민들이 동네일에 관심 가질 꺼리는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려 하지 않는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공터를 대신 가꾸어준다. 가을축제라는 명목으로 공터를 일괄적으로 갈고, 코스모스 씨를 온 사방에 뿌려댄다. 그리고 코스모스 밭이 어떻게든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 주민과 주민자치위원회의 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결정만 했고, 위탁받은 업체가 대신 씨를 뿌리고 조성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객이 되어 잠깐 둘러보고 간다. 눈요기는 충분해 보인다.

꽃밭을 가꾸는 과정은 없고, 꽃이 핀 결과만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코스모스 밭에서 축제를 한다고 한다. 물론 일회성이죠. 동네의 이야기는 전혀 없는 일방적인 축제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전히 주민은 객이다. 업체의 진행자가 아주 능수능란하게 선물로 주민을 현혹시킨다. 선물만 받으면 된다. 그 이후의 코스모스 밭에 대해선 별 관심 없다.

가을이 지나고 그 공터는 아주 황망해졌다. 쓰레기가 눈에 띄게 많이 늘었고, 그저 방치된 수준이다. 말 그대로 주민의 대표하는 주민자치위원회 주도이다.

공터 활용에 대한 제안[편집]

공사가 당장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 공터를 주민과 함께 가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밭이라도 좋고, 일시적인 무엇인가를 위한 것도. 행정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사전 가능한 확인과 주민 주도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어떨까? 밭을 경작하는 주민들이 불법을 행하지 않도록 말이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동네의 모든 구성원들과 이 공터를 임시적이라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터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밭으로만 조성된다 하더라도, 그 수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동네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수확물로 무엇을 할지? 그것 또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꺼리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촘촘한 과정 뒤 가을에 조촐한 동네잔치로 이어진다면. 그저 상상이지만 여러 가능한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안된다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동네 모든 구성원이 되게 한다면 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기다림, 탄탄한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성과,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공터〉, 《네이버 국어사전》
  2. 공터, 〈공터, 영어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의 공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7-07-28
  3. 디지털콘텐츠팀, 〈젊은 시선 세상 들춰보기, 공터를 찾아서〉, 《국제신문》, 2006-06-29
  4. 똑간장, 〈공터 활용의 두 가지 다른 방법〉, 《똑똑도서관》, 2016-02-04

참고 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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