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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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프랑스어: Lyon, 오크어: Lion)은 프랑스의 도시로 론주와 론알프 지방의 중심도시이며, 과거 앙시앵 레짐의 프로방스 리요네의 중심지였다. 리옹의 인구는 약 52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3번째 크기이고, 근교와 위성 도시를 합한 리옹 광역시의 인구는 약 228만 명으로 파리, 마르세유 다음으로 3번째로 크다.[1]
개요[편집]
리옹은 프랑스 남동부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의 중심 도시이며 상위 행정구역인 리옹 광역시의 중심 도시이다. 론강과 손강(Saône)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으며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470km,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320km, 생테티엔에서 북동쪽으로 56km 떨어져 있다. 리옹은 고대부터 프랑스 지역의 중요한 도시로 통하였다. 고대 로마 시절에는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속주의 주도로서 칼리굴라부터 갈리에누스대 까지 황제 관할 하에 금화와 은화를 발행하는 루그두눔 조폐국이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들 중 하나였으며 현재의 프랑스 수도 파리보다도 대도시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프랑스 지역에 프랑스 왕국이 완전히 분리되자 리옹은 프랑스 왕국의 여러 지역 세력들이 지배했다. 이후에도 리옹은 프랑스 왕국의 도시로 성장했지만 프랑스 왕국에서 내분을 일으킨 세력들이 잉글랜드와 합세해 공격을 받아 점령된 지역에 속해 있었다. 리옹은 화학, 제약, 생명공학 산업뿐만 아니라 금융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서는 최근 소프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리옹에는 인터폴 국제본부, 국제암연구기구, 유로뉴스가 자리 잡고 있다. 관광은 리옹 경제의 중요한 부분인데 약 60%의 관광객들이 사업을 위해 방문하고, 나머지는 여가를 위해 방문한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매년 여름 ‘빛의 축제(Féte des lumières)’, ‘푸르비에르의 밤(Nuits de Fourvière)’ 행사를 열고 현대예술 비엔날레와 ‘소리의 밤’ 축제도 매년 개최한다.[2][3]
지리[편집]
리옹은 론강과 손강이 도심의 남쪽에서 합류해 서북쪽으로 두 개의 큰 언덕과 동쪽으로 큰 평야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반도를 형성한다. 두 강 사이의 반도에 위치한 벨르쿠르 광장(Place Bellecour)은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공공 광장이다. 보행자 전용의 라 레퓌블리크 대로(Rue de la République)가 벨르쿠르 광장에서 북쪽으로 이어진다. 북쪽 언덕의 라 크루아루스 구역에는 전통적인 견직 산업의 소규모 작업장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 언덕의 푸르비에르 구역은 노트르담드푸르비에르(Notre-Dame de Fourvièer) 성당과 여러 곳의 수도원, 대주교 관사가 있어 ‘기도의 언덕’으로 알려져 있다. 구(舊)리옹(Vieux Lyon)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또한 에펠탑과 비슷한 모양의 TV 송신탑(Tour métallique)과 케이블카가 있다. 푸르비에르와 라크루아루스 구역은 많은 유적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도지역에서 론강 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평원에는 리옹의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도시 인구의 대부분이 이곳에 살고 있다. 이 지역에 위치한 라파르디외는 도시의 중심지로 가장 큰 철도역인 가르드리옹-파르-디외 뿐만 아니라 파르디외 탑과 스위스라이프 타워 등 랜드마크가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의 북쪽은 제6구역으로 유럽의 가장 큰 도시공원 중 하나인 파르크 드 라 테트 도르(Parc de la Tête d’or)와 리세 뒤 파르크(Lycée du Parc), 그리고 인터폴의 세계 본부가 위치해 있다.
역사[편집]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에 따르면 기원전 43년에 로마 원로원은 알로브로게와 함께 로마의 전쟁 난민들을 위한 정착지 조성을 명령했다. 이 난민들은 비엔에서 추방되어 현재 사운강과 론강의 합류 지점인 푸르비에르 언덕에 터를 잡았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콜로니아 코피아 펠릭스 뮈나티아'라고 불렸는데, 이는 번영과 신의 축복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루그두눔'(Lugdunum)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켈트족의 신 루거스(Lugus:빛)와 성채-언덕을 뜻하는 '두논'(dúnon)을 합친 '루그두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편다.
항해가 가능한 두 강이 합쳐지는 곳에 있는 루그두눔의 전략적 위치를 인식한 로마인들이 자연스레 이곳을 교류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 도시는 지역에서 로마 주요 도로의 출발점이 되었고, 곧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 클라우디우스(Claudius)와 카라칼라(Caracalla) 등 두 명의 로마 황제가 태어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등 여러 로마 황제 치하에서 많은 리옹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서기 2세기에 리옹의 위대한 기독교 주교는 동방교회의 이레네이우스(Irenaeus)였다. 오늘날까지 리옹의 대주교는 여전히 프리마 드 골(Primat des Gaules)이라고 불린다.
437년 흉노에 의한 야만적인 파괴를 피해 도망친 부르고뉴인들이 루그두눔에 다시 정착했다. 443년 로마인들이 부르고뉴 왕국을 세웠으며, 461년 루그두눔이 수도가 되었다. 843년 베르덩조약에 의해 리옹은 신성 로마 황제 로테르 1세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나중에 아를(Arles)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리옹은 14세기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상인들은 리옹을 프랑스의 '회계사무소'라고 불렀다. 1749년에 만들어진 증권 거래소는 장외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닮았다. 국제 은행이 제노바에 이어 암스테르담으로 갔을 때, 리옹은 여전히 프랑스의 중심은행 역할을 유지했다. 르네상스 기간에 리옹은 비단무역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와의 연대를 강화시켰다. 이탈리아의 영향은 아직도 리오의 역사적인 건축물에서 볼 수 있다. 1400년대 후반~1500년대에 리옹은 문학과 출판의 주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리옹은 모리스 세브, 앙투안 에로, 루이즈 라베와 같은 프랑스 작가와 루이지 알라만니, 잔 조르조 트리시노와 같은 망명 이탈리아인 작가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1572년 리옹에서는 성 바르톨로뮤 제의날 가톨릭신도들이 개신교 위그노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세기 뒤 프랑스 혁명 때 리옹은 지롱드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헌법에 반대해 일어난 봉기로 인해 다시 폭력으로 뒤흔들렸다. 리옹은 혁명군에 의해 2개월 동안 포위된 끝에 1793년 10월 무릎을 꿇었다. 특히 벨르쿠르 광장 주변을 포함해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형에 처해졌다. 국민의회는 시의 이름을 ‘해방시(Liberated City)’로 바꿀 것과 ‘리옹은 자유에 맞서 전쟁을 벌였다; 리옹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판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10년 후 나폴레옹은 이 기간 동안 허물어진 모든 건물들을 재건토록 명령했다.
1789~99년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의회가 리옹 내의 유일한 표적은 아니었다. 국민의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집정부(the French Directory)가 등장했고 1797년 9월 4일 집정부의 커미셔너가 리옹에서 암살되었다. 리옹은 19세기 동안 중요한 산업 도시가 되었다. 1831년과 1834년에 리옹의 카누트(실크 노동자)는 더 나은 근로 조건과 임금을 위해 두 가지 주요한 봉기를 벌였다. 1862년, 리옹의 광역 철도 중 첫 번째가 운행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리옹은 악명 높은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를 포함한 나치 점령군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이 도시는 또한 프랑스 저항군인 레지스탕스의 거점이기도 했다. ‘트라불르(traboules)’로 알려진 좁은 비밀 통로로 많은 사람들이 게슈타포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44년 9월 3일, 리옹은 제1 자유프랑스 사단과 레지스탕스 (Forces Françaises de l'Intérieur) 부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리옹에는 레지스탕스 박물관이 있다. 2020년 8월 28일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리옹 현금수송차 강도 사건이 발생하였다.[4]
기후[편집]
리옹은 습한 아열대 기후이며, 평균 기온이 약 22℃로 높아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 온도는 3.2°C, 가장 따뜻한 달인 7월 평균 기온은 22℃이다. 강수량은 연중 평균 830mm로 적당하지만 겨울철에는 매우 건조하다. 기록된 최고 기온은 2003년 8월 13일의 40.5℃였고, 가장 낮은 기록 온도는 1938년 12월 22일의 영하 24.6℃이다.
교통[편집]
리옹 지하철, 트램, 버스가 운행하는데 그중 지하철이 관광객들에게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버스는 관광객이 이용하기 번거로운 교통수단이고, 리옹의 트램은 생각보다 정말 느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하철 모든 노선과 시내권을 지나는 버스, 트램의 대부분 노선은 평일 배차간격이 5~6분으로, 눈앞에서 차를 놓쳐도 다음 차를 기다릴 만하다. 그러나 일요일은 모든 교통수단의 배차간격이 최소 10분, 시외 버스노선은 1시간에 한두 대가 지나갈 정도로 늘어난다. 지하철의 경우 그렇게 길지 않은 A~D호선을 운행하는데 A호선과 B호선이 주요 노선이고, C호선은 깔뤼르 방향으로 나있는 지선, D호선은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동서연결노선이며 유일하게 영어 안내가 나온다. D호선 비유리옹역에선 푸르비에르 방면이나 생 쥐스트 방면으로 가는 퓌니큘레(F호선)로 갈아탈 수 있다. 더욱이 리옹의 지하철은 대부분의 환승역이 개념환승이고, 역사 자체가 상당히 깨끗하며, 어지간하면 혼잡하지 않아 쾌적한게 장점이다. 중앙역은 신시가지에 있는 파르디외(Part-Dieu)역이며, 구 시가지 남쪽에 페라슈(Perrache)역이 보조역으로 자리하였다. 지역공항은 리옹 생텍쥐페리 국제공항(Aéroport de Lyon-Saint-Exupéry)이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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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리옹〉, 《위키백과》
- 〈리옹〉, 《나무위키》
- 〈리옹〉, 《요다위키》
- 〈리옹(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리옹(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