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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더블린'''(아일랜드어: Baile Átha Cliath, 발려 아허 클리어; Duibhlinn, 영어: Dublin, 문화어: 더불린)은 [[아일랜드]]의 [[수도 (도시)|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어의 뜻은 '단단히 다진 땅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어의 Dublin은 '검고 낮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Dubh linn'에서 왔다고 한다. 2003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더블린은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수도로 뽑혔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8D%94%EB%B8%94%EB%A6%B0 더블린]〉, 《위키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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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개요== |
− | + | 더블린은 [[유럽]]의 북서쪽 [[브리튼 제도]]의 [[아일랜드섬]] 동부, 리피강 하구에 위치해 있으며 린스터(Leinster) 지방의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아일랜드해]](Irish Sea)의 더블린 만(Dubh Linn Bay) 상부에 자리잡은 더블린은 국가의 주요 [[항구]]이자 금융 및 상업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이다. 아일랜드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있다. 인구는 59만 명 정도이며 광역권까지 합하면 190만 명 정도다. 더블린은 988년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돼 1998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선 17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며 한때 대영제국 도시들 가운데 둘째로 큰 도시가 됐다. 아일랜드가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정식 수도가 되었다. 수륙교통의 요지로 역국 내륙부와는 철도와 로열 운하(Royal Canal), 그랜드 운하(Grand Canal)로 연결된다. 아일랜드 거주자의 약 4분의 1이 그레이터더블린(Greater Dublin) 도시 지역에 살고 있다. 더블린 시내는 리피강에 의해 북부와 남부로 나뉘는데 북부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이며 주로 18세기 이후에 건축된 신시가지이다. 남부 지역에는 주요 정부 기관, 문화 시설, 고급 백화점, 중상류층의 거주 구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유서 깊은 구시가지는 주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구시가지에는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은데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총독부로 사용되던 더블린 성이나 시청, 아일랜드 성공회의 주교좌인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성 패트릭 대성당, 아일랜드 은행, 세관, 고등 재판소, 국회의사당,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등이 들어서 있다. 더블린 시내에는 아일랜드의 애국자들이나 아일랜드가 배출한 위인들의 동상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애국자 오 코넬이나, 작가 골드스미스 등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고 서쪽 교외에는 피닉스 파크라는 큰 [[공원]]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삼림공원과 [[동물원]], 아일랜드 대통령 관저가 위치해 있다. 교육기관으로 더블린 시티 대학교(Dublin City University), 유니버시티 칼리지 대학교 (University College of Dublin),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of Dublin) 등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81974&cid=40942&categoryId=34108 더블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ref> | |
− | + | ==지리 및 기후== | |
+ | 더블린은 리피강 어귀에 자리하고 있으며 면적은 115km²로 [[서울]]의 5분의 1이 약간 넘는다. 남쪽 시 경계선엔 더블린 [[산맥]]과 위클로 산맥이 달리고 있고 북쪽과 동쪽으론 널찍한 [[평원]]이 펼쳐진다. 더블린을 둘로 가르는 리피강은 북동쪽에서 흘러들어와 레익스리프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이 지점을 중심으로 도시 개발이 진행됐다. 또 톨카강은 남북으로 달리며 더블린만으로 향한다. 도더강은 북동 방향으로 흘러 도더강은 리피강 어귀로 빠져나간다. 이밖에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바다로 이어지고 있다. 남쪽에는 대운하가, 북쪽에는 로얄 운하가 더블린의 수상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리피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노동자와 중산층이, 남쪽은 중산층과 중상류층이 각각 모여 살고 있다. 또 도시 동쪽 해안과 서쪽의 신규 개발지역 사이에도 사회적 계층 구분이 이루어진다. 관광과 부동산 마케팅 측면에서도 여러 구역으로 나뉜다. 중세 구역, 조지 구역, 도크랜드 구역, 문화구역, 창조구역 등이다. | ||
− | + | 더블린은 북서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름이 선선하고, 겨울이 온화하며 일교차도 심하지 않은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8.8˚C 이며 7월 평균 최고 온도는 20.2˚C이다. 평균적으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달은 5월과 6월이다. 또 가장 습한 달은 10월로 강수량이 76mm이며 가장 건조한 달은 2월이며 46mm아다. 강수량은 일 년 내내 고르게 분포한다. 동쪽으로 치우진 지리적 영향으로 더블린은 강수량이 서해안의 절반에 불과한 아일랜드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 도시 남쪽의 링센드는 아일랜드에서 비가 가장 적게 오는 곳이다. 그러나 11월에서 3월 사이에는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우박은 눈보다 흔하다. 가을엔 강한 [[대서양]] 바람이 불어온다. | |
− | == | + | ==역사== |
− | 더블린은 | + | 더블린은 1988년 공식적으로 도시 탄생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이는 988년이 더블린의 도시 건설이 시작된 원년이라는 의미다. 바이킹족이 이주한 841년 이전엔 아일랜드 원주민인 게일족이 살았고 '검은 웅덩이'란 뜻의 두블린으로 불렸다. |
− | + | 9세기와 10세기부터 두 개의 정착촌이 생겨났으며 이들이 지금의 더블린이 됐다. 바이킹족은 지금의 우드 부둣가가 있는 포들 강가에 모여 살았다. 두블린은 포들강 계류장 근처 현재 가든 성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 | |
− | + | 더블린은 노르만족이 침공한 1169년까지 바이킹의 지배 아래 있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설립 초기 더블린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무역 덕분이었다. 노예무역은 9세기와 10세기에 걸쳐 절정에 달했다. 노예무역의 수혜자는 [[아일랜드]] 해적과 바이킹이었고 희생자는 [[웨일즈]], 잉글랜드, [[노르망디]] 사람들이었다. | |
− | 더블린은 | ||
− | + | 레인스터 왕은 웨일즈 펨브록성의 백작인 스트롱보우의 도움으로 더블린을 정복했다. 레인스터 왕의 사후 스트롱보우는 도시를 장악한 후 스스로 레인스터 왕이라고 칭했다. [[영국]]의 헨리 2세는 1171년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해 더블린에 대한 궁극적인 지배권을 확보한 후 자신을 아일랜드의 영주로 선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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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일랜드의 노르만 권력의 중심이 된 더블린성은 1204년 잉글랜드 존 왕의 명령에 따라 주요 방어 거점의 하나로 설립됐다. 1229년 첫 더블린 시장이 선임된 후 도시는 성장을 계속해 13세기 말 인구가 8,000명에 달했다. 1348년에 흑사병이 창궐해 10년 동안 수천 명이 죽었다. | |
− | == | + | 16세기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서면서 더불린은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는다. 1592년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더불린을 개신교 도시로 만들기로 하고 트리니티대학을 설립하는 한편 성 패트릭 가톨릭 성당과 예수회 교회를 개신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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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9년부터 1651년 전염병이 나돌아 더블린 주민 절반이 사망했지만 잉글랜드와 양모 · 아마 무역이 활기를 띤 덕분에 다시 성장 가도를 달렸다. 1700년 인구가 5만 명을 돌파했다. 18세기 동안 더블린은 인구 13만 명으로 대영제국에서 둘째, [[유럽]]을 통틀어 다섯째로 큰 도시가 됐다. 더블린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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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플바 지역과 그라스톤 거리는 조지 왕조의 재건사업을 피해 중세의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다. 이 시기에 더블린의 면모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메리온 광장, 국회의사당, 시청사가 이때 건축됐다. 1759년에 기네스 양조장이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으로 발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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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블린은 19세기에 정치, 경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다. 1800년 연합법에 따라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에 합병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정부 부처들은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이전했다. [[제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에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가 더블린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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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년의 부활절 무장봉기,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그 이후의 내전을 거치면서 더불린 시내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는 도심을 재건하고 의사당도 새로 지었다. 더블린은 30년간 지속된 북아일랜드 분쟁의 희생양이 됐다. 영국을 지지하는 얼스터 의용군은 34명이 죽은 더블린-모너핸 폭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더블린을 폭격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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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이래 더블린의 풍경은 바뀌어왔다. 더블린은 아일랜드 경제가 급성장한 '켈트의 호랑이'시기의 최전선에 있었다. 당시 민간 부문은 물론이고 건설, 교통 등의 공공개발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됐다.<ref>〈[https://yoda.wiki/wiki/Dublin 더블린]〉, 《요다위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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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 ||
+ | 더블린 지역은 [[아일랜드]]의 경제 중심지이며 켈트의 호랑이 시기에 경제 성장의 최전선에 있었다. 2009년 더블린은 세계에서 넷째로 부유한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개인소득으로는 10위에 올랐다. 2011년 전 세계 생활비 조사에 따르면 더블린은 [[유럽연합]](EU)에서 13번째, 세계에선 58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다. 금융, ICT, 전문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약 60%가 더블린 지역에 살고 있다. 1759년 이후 기네스 맥주가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에서 제조돼 왔다. 그러나 식품 가공, 섬유 제조, 양조 및 증류와 같은 더블린의 전통적인 산업은 점차 퇴조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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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글로벌 제약과 정보통신 회사가 더블린과 그 수도권 일대로 몰려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 [[야후]], [[페이스북]], [[트위터]], 악센츄어, 파이저 등은 더블린에 유럽 본부나 운용조직을 두고 있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 덕에 더블린은 '유럽의 기술 수도'로 불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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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국제금융서비스센터가 설립되면서 금융도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다. 세계 50대 은행 절반과 세계 20대 보험사 절반이 입주해 있다. 더블린엔 증권거래소(ISEX), 인터넷망중개소(INEX), 아일랜드기업거래소(IEX)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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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
+ | 더블린은 길고 깊은 문학사를 자랑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버틀러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등의 작가를 배출했다.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브람 스토커 등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포함해 여러 작품을 이곳에서 썼다. 다른 유명 작가들로는 싱, 숀 오케이시, 브렌던 비언, 존 브랜빌, 로디 도일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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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 최대의 [[도서관]], 문학[[박물관]], 국립 [[미술관]] 등도 더블린에 있다. 국립 박물관엔 켈트족의 미술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2010년 7월 더블린은 에든버러, 멜버른, 아이오와와 함께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선정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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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블린은 수많은 뮤지션을 배출하기도 했다. U2, 밥 겔도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에덴이 그들이다. 시내엔 아일랜드 특유의 선술집인 펍이 즐비하다. 더블린 중심지 템플바는 오랫동안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재개발 사업이 진행돼 젊은이들의 명소로 거듭났다. 남부 구시가지에 있는 트리니티대학은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대학이며, 영어권 대학 가운데서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이 대학의 도서관엔 켈트 고서 사본 둥 희귀본이 소장돼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38524&cid=66751&categoryId=66886 더블린(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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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 | ||
+ | 더블린의 하늘 관문은 더블린 [[공항]]이 담당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앵글로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미주, [[아랍에미리트]]를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 쪽으로는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런던]] 등지에서 환승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캐세이퍼시픽항공으로 홍콩 국제공항과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간 다음 다시 영국항공을 이용해 들어간다. 하지만 2018년 6월 2일부터 캐세이퍼시픽이 홍콩에서 더블린 노선을 주 4회 A350-900을 투입하여 신규 취항하였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더블린에 취항하는 첫 논스톱 노선이다. 후에 하이난항공이 베이징발로 취항하면서 두 번째 동아시아 노선이 탄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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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블린 항에서는 영국으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웨일스의 홀리해드까지는 고속선으로 채 3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 외에 리버풀이나 맨섬 여객선도 연결되어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상호 통행 협정으로 두 나라를 오고 갈 땐 원칙적으론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박의 경우 신분증을 요구할 때도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도착 항구에서 거의 100% 여권 검사를 한다. 한국 국적자의 경우 영국을 통해 페리로 아일랜드로 입국하게 되면 더블린 항구에서 여권을 보여주면 도장을 찍어주고 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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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의 경우 더블린 코널리 역과 휴스턴 역이 주요 역이다. 코널리 역에선 벨파스트행이나 로슬레어행 열차를 탈 수 있으며, 그 외 서부 지역이나 로슬레어 행이 아닌 남부는 휴스턴 역을 이용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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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내 교통은 거의 [[버스]]가 담당하고 있다. Luas라 불리는 트램이 있고 노선망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휴스턴역과 더블린 코널리 역을 연결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도시철도 계획은 2001년 11월에 최초로 입안되었다. 무인 [[경전철]]로 운영될 예정이며, 비용 문제로 계속 미뤄지다가 2021년에 착공하여 2027년에 개통된다고 한다.<ref>〈[https://namu.wiki/w/%EB%8D%94%EB%B8%94%EB%A6%B0 더블린]〉, 《나무위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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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w/%EB%8D%94%EB%B8%94%EB%A6%B0 더블린]〉, 《나무위키》 | * 〈[https://namu.wiki/w/%EB%8D%94%EB%B8%94%EB%A6%B0 더블린]〉, 《나무위키》 | ||
− | * 〈[https:// | + | * 〈[https://yoda.wiki/wiki/Dublin 더블린]〉, 《요다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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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 20:2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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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아일랜드어: Baile Átha Cliath, 발려 아허 클리어; Duibhlinn, 영어: Dublin, 문화어: 더불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어의 뜻은 '단단히 다진 땅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어의 Dublin은 '검고 낮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Dubh linn'에서 왔다고 한다. 2003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더블린은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수도로 뽑혔다.[1]
개요[편집]
더블린은 유럽의 북서쪽 브리튼 제도의 아일랜드섬 동부, 리피강 하구에 위치해 있으며 린스터(Leinster) 지방의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아일랜드해(Irish Sea)의 더블린 만(Dubh Linn Bay) 상부에 자리잡은 더블린은 국가의 주요 항구이자 금융 및 상업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이다. 아일랜드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있다. 인구는 59만 명 정도이며 광역권까지 합하면 190만 명 정도다. 더블린은 988년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돼 1998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았다.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선 17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며 한때 대영제국 도시들 가운데 둘째로 큰 도시가 됐다. 아일랜드가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정식 수도가 되었다. 수륙교통의 요지로 역국 내륙부와는 철도와 로열 운하(Royal Canal), 그랜드 운하(Grand Canal)로 연결된다. 아일랜드 거주자의 약 4분의 1이 그레이터더블린(Greater Dublin) 도시 지역에 살고 있다. 더블린 시내는 리피강에 의해 북부와 남부로 나뉘는데 북부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이며 주로 18세기 이후에 건축된 신시가지이다. 남부 지역에는 주요 정부 기관, 문화 시설, 고급 백화점, 중상류층의 거주 구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유서 깊은 구시가지는 주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구시가지에는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은데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총독부로 사용되던 더블린 성이나 시청, 아일랜드 성공회의 주교좌인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성 패트릭 대성당, 아일랜드 은행, 세관, 고등 재판소, 국회의사당,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등이 들어서 있다. 더블린 시내에는 아일랜드의 애국자들이나 아일랜드가 배출한 위인들의 동상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애국자 오 코넬이나, 작가 골드스미스 등의 동상들이 세워져 있고 서쪽 교외에는 피닉스 파크라는 큰 공원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삼림공원과 동물원, 아일랜드 대통령 관저가 위치해 있다. 교육기관으로 더블린 시티 대학교(Dublin City University), 유니버시티 칼리지 대학교 (University College of Dublin),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of Dublin) 등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더블린은 리피강 어귀에 자리하고 있으며 면적은 115km²로 서울의 5분의 1이 약간 넘는다. 남쪽 시 경계선엔 더블린 산맥과 위클로 산맥이 달리고 있고 북쪽과 동쪽으론 널찍한 평원이 펼쳐진다. 더블린을 둘로 가르는 리피강은 북동쪽에서 흘러들어와 레익스리프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이 지점을 중심으로 도시 개발이 진행됐다. 또 톨카강은 남북으로 달리며 더블린만으로 향한다. 도더강은 북동 방향으로 흘러 도더강은 리피강 어귀로 빠져나간다. 이밖에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바다로 이어지고 있다. 남쪽에는 대운하가, 북쪽에는 로얄 운하가 더블린의 수상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리피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노동자와 중산층이, 남쪽은 중산층과 중상류층이 각각 모여 살고 있다. 또 도시 동쪽 해안과 서쪽의 신규 개발지역 사이에도 사회적 계층 구분이 이루어진다. 관광과 부동산 마케팅 측면에서도 여러 구역으로 나뉜다. 중세 구역, 조지 구역, 도크랜드 구역, 문화구역, 창조구역 등이다.
더블린은 북서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름이 선선하고, 겨울이 온화하며 일교차도 심하지 않은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8.8˚C 이며 7월 평균 최고 온도는 20.2˚C이다. 평균적으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달은 5월과 6월이다. 또 가장 습한 달은 10월로 강수량이 76mm이며 가장 건조한 달은 2월이며 46mm아다. 강수량은 일 년 내내 고르게 분포한다. 동쪽으로 치우진 지리적 영향으로 더블린은 강수량이 서해안의 절반에 불과한 아일랜드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이다. 도시 남쪽의 링센드는 아일랜드에서 비가 가장 적게 오는 곳이다. 그러나 11월에서 3월 사이에는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우박은 눈보다 흔하다. 가을엔 강한 대서양 바람이 불어온다.
역사[편집]
더블린은 1988년 공식적으로 도시 탄생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이는 988년이 더블린의 도시 건설이 시작된 원년이라는 의미다. 바이킹족이 이주한 841년 이전엔 아일랜드 원주민인 게일족이 살았고 '검은 웅덩이'란 뜻의 두블린으로 불렸다.
9세기와 10세기부터 두 개의 정착촌이 생겨났으며 이들이 지금의 더블린이 됐다. 바이킹족은 지금의 우드 부둣가가 있는 포들 강가에 모여 살았다. 두블린은 포들강 계류장 근처 현재 가든 성이 위치한 곳에 있었다.
더블린은 노르만족이 침공한 1169년까지 바이킹의 지배 아래 있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설립 초기 더블린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무역 덕분이었다. 노예무역은 9세기와 10세기에 걸쳐 절정에 달했다. 노예무역의 수혜자는 아일랜드 해적과 바이킹이었고 희생자는 웨일즈, 잉글랜드, 노르망디 사람들이었다.
레인스터 왕은 웨일즈 펨브록성의 백작인 스트롱보우의 도움으로 더블린을 정복했다. 레인스터 왕의 사후 스트롱보우는 도시를 장악한 후 스스로 레인스터 왕이라고 칭했다. 영국의 헨리 2세는 1171년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해 더블린에 대한 궁극적인 지배권을 확보한 후 자신을 아일랜드의 영주로 선언했다.
아일랜드의 노르만 권력의 중심이 된 더블린성은 1204년 잉글랜드 존 왕의 명령에 따라 주요 방어 거점의 하나로 설립됐다. 1229년 첫 더블린 시장이 선임된 후 도시는 성장을 계속해 13세기 말 인구가 8,000명에 달했다. 1348년에 흑사병이 창궐해 10년 동안 수천 명이 죽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튜더 왕국이 들어서면서 더불린은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는다. 1592년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더불린을 개신교 도시로 만들기로 하고 트리니티대학을 설립하는 한편 성 패트릭 가톨릭 성당과 예수회 교회를 개신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했다.
1649년부터 1651년 전염병이 나돌아 더블린 주민 절반이 사망했지만 잉글랜드와 양모 · 아마 무역이 활기를 띤 덕분에 다시 성장 가도를 달렸다. 1700년 인구가 5만 명을 돌파했다. 18세기 동안 더블린은 인구 13만 명으로 대영제국에서 둘째, 유럽을 통틀어 다섯째로 큰 도시가 됐다. 더블린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졌다.
템플바 지역과 그라스톤 거리는 조지 왕조의 재건사업을 피해 중세의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다. 이 시기에 더블린의 면모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메리온 광장, 국회의사당, 시청사가 이때 건축됐다. 1759년에 기네스 양조장이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으로 발전했다.
더블린은 19세기에 정치, 경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다. 1800년 연합법에 따라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에 합병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정부 부처들은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이전했다. 제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에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가 더블린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다.
1916년의 부활절 무장봉기,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그 이후의 내전을 거치면서 더불린 시내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는 도심을 재건하고 의사당도 새로 지었다. 더블린은 30년간 지속된 북아일랜드 분쟁의 희생양이 됐다. 영국을 지지하는 얼스터 의용군은 34명이 죽은 더블린-모너핸 폭격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더블린을 폭격하기도 했다.
1977년 이래 더블린의 풍경은 바뀌어왔다. 더블린은 아일랜드 경제가 급성장한 '켈트의 호랑이'시기의 최전선에 있었다. 당시 민간 부문은 물론이고 건설, 교통 등의 공공개발 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됐다.[3]
경제[편집]
더블린 지역은 아일랜드의 경제 중심지이며 켈트의 호랑이 시기에 경제 성장의 최전선에 있었다. 2009년 더블린은 세계에서 넷째로 부유한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개인소득으로는 10위에 올랐다. 2011년 전 세계 생활비 조사에 따르면 더블린은 유럽연합(EU)에서 13번째, 세계에선 58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다. 금융, ICT, 전문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약 60%가 더블린 지역에 살고 있다. 1759년 이후 기네스 맥주가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에서 제조돼 왔다. 그러나 식품 가공, 섬유 제조, 양조 및 증류와 같은 더블린의 전통적인 산업은 점차 퇴조하고 있다.
199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글로벌 제약과 정보통신 회사가 더블린과 그 수도권 일대로 몰려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 야후, 페이스북, 트위터, 악센츄어, 파이저 등은 더블린에 유럽 본부나 운용조직을 두고 있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 덕에 더블린은 '유럽의 기술 수도'로 불렸다.
1987년 국제금융서비스센터가 설립되면서 금융도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다. 세계 50대 은행 절반과 세계 20대 보험사 절반이 입주해 있다. 더블린엔 증권거래소(ISEX), 인터넷망중개소(INEX), 아일랜드기업거래소(IEX) 등이 있다.
문화[편집]
더블린은 길고 깊은 문학사를 자랑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버틀러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등의 작가를 배출했다.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브람 스토커 등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포함해 여러 작품을 이곳에서 썼다. 다른 유명 작가들로는 싱, 숀 오케이시, 브렌던 비언, 존 브랜빌, 로디 도일 등이 있다.
아일랜드 최대의 도서관, 문학박물관, 국립 미술관 등도 더블린에 있다. 국립 박물관엔 켈트족의 미술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2010년 7월 더블린은 에든버러, 멜버른, 아이오와와 함께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선정됐다.
더블린은 수많은 뮤지션을 배출하기도 했다. U2, 밥 겔도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에덴이 그들이다. 시내엔 아일랜드 특유의 선술집인 펍이 즐비하다. 더블린 중심지 템플바는 오랫동안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재개발 사업이 진행돼 젊은이들의 명소로 거듭났다. 남부 구시가지에 있는 트리니티대학은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대학이며, 영어권 대학 가운데서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이 대학의 도서관엔 켈트 고서 사본 둥 희귀본이 소장돼 있다.[4]
교통[편집]
더블린의 하늘 관문은 더블린 공항이 담당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앵글로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미주, 아랍에미리트를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 쪽으로는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런던 등지에서 환승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캐세이퍼시픽항공으로 홍콩 국제공항과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간 다음 다시 영국항공을 이용해 들어간다. 하지만 2018년 6월 2일부터 캐세이퍼시픽이 홍콩에서 더블린 노선을 주 4회 A350-900을 투입하여 신규 취항하였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더블린에 취항하는 첫 논스톱 노선이다. 후에 하이난항공이 베이징발로 취항하면서 두 번째 동아시아 노선이 탄생하였다.
더블린 항에서는 영국으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웨일스의 홀리해드까지는 고속선으로 채 3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 외에 리버풀이나 맨섬 여객선도 연결되어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상호 통행 협정으로 두 나라를 오고 갈 땐 원칙적으론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박의 경우 신분증을 요구할 때도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도착 항구에서 거의 100% 여권 검사를 한다. 한국 국적자의 경우 영국을 통해 페리로 아일랜드로 입국하게 되면 더블린 항구에서 여권을 보여주면 도장을 찍어주고 끝이다.
철도의 경우 더블린 코널리 역과 휴스턴 역이 주요 역이다. 코널리 역에선 벨파스트행이나 로슬레어행 열차를 탈 수 있으며, 그 외 서부 지역이나 로슬레어 행이 아닌 남부는 휴스턴 역을 이용해야 한다.
시내 교통은 거의 버스가 담당하고 있다. Luas라 불리는 트램이 있고 노선망이 대단한건 아니지만, 휴스턴역과 더블린 코널리 역을 연결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도시철도 계획은 2001년 11월에 최초로 입안되었다. 무인 경전철로 운영될 예정이며, 비용 문제로 계속 미뤄지다가 2021년에 착공하여 2027년에 개통된다고 한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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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더블린〉, 《위키백과》
- 〈더블린〉, 《나무위키》
- 〈더블린〉, 《요다위키》
- 〈더블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더블린(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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