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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일라섬(Tutuila Island)은 남태평양 미국령 사모아의 가장 큰 섬이며 사모아제도의 일부이다. 면적은 142.3km²로 사모아제도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56,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미국령 사모아 인구의 95%가 살고 있다.[1]
개요[편집]
투투일라섬은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우폴루섬에서 동쪽에 위치해 있다. 섬에는 파고파고 국제공항이 있으며 미국령 사모아의 총 토지 면적의 약 68%를 차지한다. 투투일라섬은 산악지대가 있고 그 중 가장 높은 지점은 마타파오(Matafao)이며 해발은 653m이다. 섬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은 험준하고 구불구불하며 북쪽에는 가파른 절벽과 특이한 해안선이 있만 섬의 남쪽은 평탄한 지형이다. 습한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6개의 육상 생태계와 3개의 해양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1899년 영국, 독일과 함께 사모아 제도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 뒤 미국령이 되었다. 식량은 자급자족이 어려우며 참치 통조림, 코프라 등에 기초한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투투일라섬은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 하이킹 등 스포츠 활동에 적합할 뿐 아니라 해변, 산호초, 제2차 세계대전 유적으로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이다.[2]
역사[편집]
폴리네시아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에 사모아에 처음 도착했다. 기원전 600년까지 그들은 투투일라섬의 툴라(Tula)에 정착지를 세웠다. 수세기에 걸쳐 투투일라의 사모아인들은 서폴리네시아, 통가, 피지의 이웃 섬 주민들과 접촉을 유지했다. 투투일라는 우폴루의 많은 지역을 황폐화 시킨 전쟁에서 패배한 전사들과 추장들의 망명지 역할을 했다. 또한 우폴루 통치자들이 정적들을 추방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1722년 제이콥 로게빈(Jacob Roggeveen)은 사모아제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마누아제도를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1768년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건빌(Louis Antoine de Bougainville)은 참치를 잡기 위해 카누를 타고 인근 바다를 항해하는 주민들의 관행을 따라 사모아 섬을 방문해 내비게이터 제도(Navigator Islands)라고 불렀다. 유럽의 포경선과 개신교 선교사들은 19세기 초, 특히 1830년대에 사모아제도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눈에 띄는 두 명은 런던 선교 협회의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프랑스 탐험가 루이 드 프레이시넷(Louis de Freycinet)이다. 1872년, 미국 해군은 투투일라섬의 파고파고 항구가 새로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드니까지의 새로운 증기선 서비스를 위한 급유소로 이상적인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항구를 허용하는 조약을 주민들과 협상하였다. 6년 후인 1878년 미국 의회는 마침내 이 조약을 비준했고 이 조약은 시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투투일라와 사모아제도에 관심을 가진 외국 정부는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영국과 독일은 1860년대부터 관심을 보여왔다. 1879년 사모아인들이 세 나라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미국, 영국, 독일은 함께 이 섬들에 대해 삼자 정부를 구성했다.
1889년, 세 외국 정부는 베를린에서 회의를 열어 이 섬의 정치적 미래를 논의하고 이 주제에 대한 서로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인들은 그 섬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 두 나라의 계속되는 이견으로 인해 1899년 사모아 섬의 다른 부분, 투투일라와 아우누를 포함한 동부 섬들이 미국령 사모아를 형성하고 서부 섬들이 유럽의 지배하에 있는 서부 사모아를 형성하도록 그들의 지배권을 배분하자는 제안이 제기되었다. 사모아인들은 1900년에 이 제안을 승인했고 4월 17일 투투일라에 미국 국기가 게양되었다. 하지만 아메리칸 사모아라는 이름은 1911년까지 동부의 섬들에 공식적으로 부여되지 않았고 1929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투투일라는 미 해병대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군사 기지를 세우고 섬 연안에 콘크리트 벙커를 세웠다. 이 섬의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42년 1월 11일 일본 잠수함의 공격을 제외하고 전쟁에서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51년 이후 투투일라와 아메리칸 사모아의 다른 섬들의 행정은 미국 내무부의 관할로 되었다.
1956년 피터 탈리 콜먼(Peter Tali Coleman)은 사모아 태생의 첫 미국령 사모아 주지사가 되었다. 1960년 그의 재임기간 동안 토지 몰수와 문화적 관습의 손실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포함하여 섬 주민들을 위한 보호 조치가 승인되었다. 1960년 이후 미국령 사모아의 국기가 이 나라의 공식 국기가 되었다. 1961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는 투투일라 개발을 위한 미국의 막대한 자금 지출을 승인했다. 이 자금은 1960년대 내내 국제공항, 항구 시설 건설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도로, 학교, 주택, 병원, 참치 통조림 공장, 현대식 호텔이 들어서고 곳곳에 전기가 설치되었다. 1962년 서사모아는 뉴질랜드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이 아메리칸 사모아를 계속해서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960년대 미국의 대대적인 개발 노력은 투투일라와 미국령 사모아의 나머지 지역을 미국의 속국으로 유지하는 데 대한 지원을 효과적으로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령 사모아는 크게 두 개의 정치 선거구, 즉 동부 선거구와 서부 선거구로 나눈다.[3][4]
사모아제도[편집]
사모아제도(영어: Samoan Islands)는 남태평양 중부 폴리네시아 서부에 있는 제도이다. 사모아제도는 사바이섬, 우폴루섬 두 섬을 주도(主島)로 하는 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 3,039㎢, 정치적으로 1962년 독립한 사모아와 동부의 미국령 사모아로 나뉜다. 사모아제도는 태평양권의 대표적인 화산섬으로, 자연적인 면에서는 하와이와 비슷하다. 피지에서 약 800km, 통가에서 530km, 뉴질랜드에서 2,900km, 미국 하와이에서 4,000km 떨어져 있다. 남위 13도에서 14도, 서경 169도에서 173도 사이에 있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480km(의 지역에 걸쳐 있다. 사모아제도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바이섬의 최고점은 실리실리봉(1,857m)이며, 이 섬의 마타바누산은 오늘날에도 분화를 되풀이했다. 우폴루섬에서는 화산활동은 이미 정지되었고, 토지가 비옥하여 사모아 전인구의 3/4이 이 섬에 몰려 있다. 그러나 두 섬이 다같이 오지가 밀림으로 뒤덮여 있어, 거주지는 해안에 한정되어 있으며 가장 가까운 지점은 64km의 바다로 분리되어 있다. 기후는 습하고 더우며 강수량은 아피아에서 연간 3,000mm에 이른다. 19세기말 사모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미국, 영국, 독일의 세 나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끝에, 영국은 통가제도를 보호령으로 하고, 미국과 독일이 서경 171°를 경계로 하여 동쪽은 미국, 서쪽은 독일이 각각 영유하였다. 그러나 사모아는 1920년 이후 뉴질랜드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1947년 이후는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 서쪽의 사모아만 1962년 1월 1일부로 서사모아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Western Samoa)이라는 명칭으로 독립했지만, 동쪽의 사모아(American Samoa)는 미국의 지금도 미편입 영토(unincorporated territory)로 남아 있다. 사모아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족으로 순수한 폴리네시아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옛날부터 원주민의 말리에토아 왕조가 군림하고 있었으나, 19세기 말 유럽 각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유럽과의 접촉 이래 코프라, 바나나, 카카오, 코코야자의 생산이 증대하여 섬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으며, 이 3가지의 수출이 전체의 95%를 차지한다. 원주민은 자급용으로 타로, 감자, 빵나무 등을 재배한다. 파고파고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파고파고만(灣)은 만으로서의 조건이 좋아 상항(商港) 및 어항으로 이용되며 해안에 미국의 거대한 참치 통조림공장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한국의 참치잡이 원양 어업기지가 설치되어 있다.[5][6]
미국령 사모아[편집]
미국령 사모아(영어: Territory of American Samoa, 사모아어: Teritori o Amerika Sāmoa)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 사모아제도에 있는 미국의 해외 영토이다. 수도는 팡오팡오이고 최대 도시는 타푸나이다. 독립 국가인 사모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미국령 사모아 또는 동사모아(영어: East Samoa)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령 사모아는 사모아와 달리 미국령 섬나라로서 5개의 섬과 2개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8세기에 유럽 탐험가들이 발견한 이래 열강들이 점령을 꾀하다가 1899년 독일, 미국, 영국의 3국 조약에 의해 1900년 동사모아가 미국령에 편입되었다. 투투일라(Tutuila)섬이 육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국토 대부분이 가파른 화산섬이고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다. 경제는 주로 어자원과 관광 수입에 의존한다. 미국의 해외영토로 미국령 사모아는 투투일라섬(Tutuila), 아누우섬(Anu’u), 오푸섬(Ofu), 올로세가섬(Olosega) 그리고 타우섬(Ta’u) 등 5개의 화산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모아와는 달리 미국령 사모아는 하와이섬, 쿡제도처럼 높은 산이 많은 편이다. 가장 높은 산은 3,170피트의 라타산(Lata)으로 타우섬에 위치하며, 미국령 사모아의 가장 중심이 되는 투투일라섬의 가장 높은 산은 2,142피트 높이인 마타파오산(Matafao)이다. 국토 대부분이 가파른 화산섬으로 수심이 깊어 항만이 잘 발달했다. 투투일라섬에 있는 팡오팡오(Fago Fago) 항구는 남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항구로, 깎아내린 듯한 절벽의 알라바산(Alava)과 마타파오산, 레인메이커산(Rainmaker)으로 둘러싸여 있다.[7]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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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투투일라섬〉, 《위키백과》
- 〈사모아 제도〉, 《위키백과》
- 〈투투일라〉, 《요다위키》
- 〈사모아 제도〉, 《요다위키》
- "Tutuila", Wikipedia</ref>
- 〈투투일라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아메리칸사모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폴리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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