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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 네덜란드어: Caroline-eilanden)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제도로 북쪽으로는 [[북마리아나제도]], 동쪽으로는 [[마셜제도]], 서쪽으로는 [[팔라우]], 그리고 남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가 존재한다. 서에서 동쪽으로 길게 팔라우, 야프, 트루크, 폰페이의 4개 지역으로 나누며 서태평양에 퍼져있으며 총 6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캐롤라인제도의 총 면적은 매우 작지만 [[태평양]]의 2,600,000km² 이상을 점유하여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배타적 경제 수역(EEZ)를 보유하고 있다. 캐롤라인제도는 [[미크로네시아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캐롤라인제도는 서쪽은 팔라우로부터 동쪽은 [[코스라에섬]]까지 약 3540km의 거리에 길게 늘어졌다. 캐롤라인제도는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양쪽 모두 해발 150m 이상이며 야프, 폰페이, 트루크, 코스라에(쿠사이), 바벨투아프, 울리시섬 등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스페인]] 동인도 제도의 일부였고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통치되었다. 1686년 에스파냐가 뉴필리핀이라 하여 영유하던 것을, 1899년 독일이 사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일본에 점령되어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 지역이 해제되었지만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원주민은 미크로네시아인이지만, 카핑가마랑기와 누쿠오로섬에는 폴리네시아인이 살고 있다. 재배 작물은 코코야자, 사탕수수, 타로감자 등이다. 광산 자원으로는 인광석과 보크사이트 등이 있다. 월평균기온이 26~28 °C인 열대기후이며, 고지대 섬들의 강수량은 4,570mm를 넘는다. 1년에 평균 20번 이상 태풍이 도서군의 중심이나 주변부에서 발생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B%A1%A4%EB%9D%BC%EC%9D%B8_%EC%A0%9C%EB%8F%84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ref>
 
[[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 네덜란드어: Caroline-eilanden)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제도로 북쪽으로는 [[북마리아나제도]], 동쪽으로는 [[마셜제도]], 서쪽으로는 [[팔라우]], 그리고 남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가 존재한다. 서에서 동쪽으로 길게 팔라우, 야프, 트루크, 폰페이의 4개 지역으로 나누며 서태평양에 퍼져있으며 총 6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캐롤라인제도의 총 면적은 매우 작지만 [[태평양]]의 2,600,000km² 이상을 점유하여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배타적 경제 수역(EEZ)를 보유하고 있다. 캐롤라인제도는 [[미크로네시아연방]]과 [[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캐롤라인제도는 서쪽은 팔라우로부터 동쪽은 [[코스라에섬]]까지 약 3540km의 거리에 길게 늘어졌다. 캐롤라인제도는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양쪽 모두 해발 150m 이상이며 야프, 폰페이, 트루크, 코스라에(쿠사이), 바벨투아프, 울리시섬 등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스페인]] 동인도 제도의 일부였고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통치되었다. 1686년 에스파냐가 뉴필리핀이라 하여 영유하던 것을, 1899년 독일이 사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일본에 점령되어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 지역이 해제되었지만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원주민은 미크로네시아인이지만, 카핑가마랑기와 누쿠오로섬에는 폴리네시아인이 살고 있다. 재배 작물은 코코야자, 사탕수수, 타로감자 등이다. 광산 자원으로는 인광석과 보크사이트 등이 있다. 월평균기온이 26~28 °C인 열대기후이며, 고지대 섬들의 강수량은 4,570mm를 넘는다. 1년에 평균 20번 이상 태풍이 도서군의 중심이나 주변부에서 발생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B%A1%A4%EB%9D%BC%EC%9D%B8_%EC%A0%9C%EB%8F%84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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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6일 (월) 12:03 판

폰페이섬 기
폰페이섬 위치
폰페이섬 지도

폰페이섬(Pohnpei)은 미크로네시아연방으로, 캐롤라인제도에 속한다. 면적은 345km², 인구는 약 34,000명, 섬의 최고점은 780m이며 미크로네시아 연방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인구가 가장 많은 섬이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수도인 팔리키르(Palikir)가 위치하며 행정 구역상으로는 폰페이주에 속한다. 과거에는 포나페섬(Ponape)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섬 이름은 현지어로 "돌로 만든 제단(pehi) 위(pohn)"를 뜻한다.[1]

개요

폰페이섬은 서태평양의 캐롤라인제도 동부에 있으며 미크로네시아연방의 한 주(州)를 구성하고 있으며 괌섬 남동쪽 방향으로 1500km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섬은 중앙 고지와 주위의 낮은 지대로 이루어지고 바깥쪽은 보초(堡礁)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으며 미크로네시아연방에 소속된 섬 중에서 가장 크다. 2개의 큰 강이 있어 수량(水量)도 풍부하다. 최고봉은 토톨름산(791m)이며, 중앙의 고지는 밀림에 덮여 있고 주위의 낮은 지대의 토양은 기름지다. 16세기경 유럽인들이 처음 이곳을 탐험하였고 1828년 러시아 군함 세냐빈호가 폰페이섬에 정박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14~1945년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86년까지 국제연합(UN)의 신탁통치령이었다. 코프라, 가다랭이포, 보크사이트광(鑛), 철광석 등이 난다. 폰페이섬에는 난마돌이라는 500년부터 1500년까지 약 1000년동안 건설된 고대유적지가 남아있다. 폰페이섬에 산재한 현무암과 석회암으로 만든 왕궁, 묘지, 방벽(防壁) 등의 거석 건조물 유적이 인공섬을 이루면서 세워져 있다. 섬의 특정 산악 지역에서 매년 7,600mm를 넘는 강수량을 기록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습한 곳 중 하나이다.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폴리네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조류가 많이 서식하는데 그 중에서도 폰페이섬 특유의 4종류의 조류폰페이 잉꼬새, 폰페이 공작, 폰페이 딱새, 폰페이 동박새가 서식한다. 한때 폰페이 찌르레기도 서식했지만 현재는 멸종된 상태이다. 섬에는 폰페이 국제공항이 있다.[2]

역사

폰페이섬의 첫 유럽 방문자는 스페인 항해사 알바로 데 사베드라(Álvaro de Saavedra)이다. 그는 죽기 직전인 1529년 9월 14일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색하던 중 섬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섬을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é)로 표기했고 원주민들이 문신을 했기 때문에 이 섬과 그 주변의 섬들을 로스 핀타도스(Los Pintados)라고 불렀다. 이후 스페인 선박 산 제로니모(San Jeronimo)를 지휘하는 항해사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케이로스(Pedro Fernandes de Keiros)가 이곳을 방문했다. 1595년 12월 23일, 그의 설명은 간단하고 착륙을 시도하지 않았다. 1825년 9월 10일 호주 선원 존 헨리 로우(John Henry Rowe)는 섬에 대한 좋은 문서를 기록했다. 섬과 섬의 주민에 대한 첫 번째 긴 설명은 러시아 탐험가 표도르 리트케(Fyodor Litke)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그는 폰페이, 안트, 파킨섬 그룹에 이름을 붙였다. 1828년 1월 14일부터 19일까지 그의 배는 상륙을 시도했지만 섬 주민들의 적대감 때문에 착륙할 수 없었다. 탐험대는 섬에 대한 최초의 실제 묘사를 하였다. 1832년 1월 3일 페루의 J.H. 이글스턴 선장이 섬을 발견했을 때 이미 그의 지도에 '어센션 섬'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누가 이 섬을 처음 어센션섬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이름은 스페인 시대까지 불렀다. 이때부터 포경선과 무역선이 점점 증가하였다. 스웨덴 호위함 유지니(Eugenie)의 일지에 따르면, 해변 조종사, 탈주범, 그리고 배의 탈영병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식민지가 해안에 세워졌다고 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선교사는 로마 가톨릭 신부인 루이 데지레 ​​메그레(Louis Désiré Maigret) 신부였다. 그는 스쿠너선 노틀담 드 팍스(Notre Dame de Paix)를 타고 호놀룰루에서 항해하여 1837년 12월에 노력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1838년 7월 29일 발파라이소로 출발했다. 10년 후 메그레는 호놀룰루의 주교로 하와이 왕국으로 돌아왔다. 뉴잉글랜드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1852년 폰페이에 영구 정착했다. 그들의 편지와 일기는 섬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하버드대학에 보존되었다. 1854년 이후 천연두의 유행으로 급격한 인구 감소가 일어났다. 미국 남북 전쟁 동안, 미국의 항구 봉쇄에 대항하기 위해, 남부 연합 해군 함정은 상선을 사냥했다. 1865년 4월 1일 어센션섬에서 네 억의 미국 포경선을 기습하여 파괴했다. 그 지역의 왕 나나니에리키(Nananierikie)는 이 행동으로 많은 전리품을 받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1886년까지 스페인인들은 마닐라에 기반을 둔 스페인 동인도 제도의 일부였던 캐롤라인제도를 차지했고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날 콜로니아에 산티아고 데 라 아센시온(Santiago de la Ascensión)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스페인인들은 여러 개의 정부 건물, 요새, 교회와 학교를 지었다. 스페인 카푸친 수도사들도 마닐라에서 폰페이로 보내져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독일 제국은 1899년 마리아나제도(괌 제외)와 함께 스페인으로부터 캐롤라인제도를 사들였고 4년 후 마셜제도도 1700만 골드마르크에 사들였다. 독일 정부가 통치하는 동안 폰페이와 캐롤라인 전역에서 토지 소유권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시행되었다. 1907년부터 모든 토지를 봉토에 두는 봉건제도는 점차 개인 증서의 발행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추장의 경제적 이익은 줄어들었다. 토지 보유로 인해 세금이 부과되었고 지불 대신 새 소유자는 부두 건설, 도로 건설 등과 같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연간 15일 일해야 했다. 도로 건설 중 불복종 사건으로 시작되어 9명 살해되고 이후 소케 반군 36명에 대한 체포 및 재판했고 반군 15명 처형하고 다른 사람들을 독일 팔라우 제도의 바벨투압으로 추방하는 사건으로 확대 되었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의 독일 인구 조사에 따르면 폰페이인은 3,190명, 중앙 캐롤라이나인 585명, 멜라네시아인 279명이 있다. 1947년 말에 실시된 특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총 5,628명의 인구가 있으며 그 중 4,451명은 폰페이인이고 1,177명이 다른 태평양 섬 출신이었다. 1963년까지 인구는 거의 10,000명으로 증가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일본은 적도 이북의 모든 독일 식민지에 대한 통제권을 위임받았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1947년부터 태평양 군도의 신탁 영토의 일부로 유엔의 후원으로 미국이 통치한 후 1986년에 독립했다.[3]

캐롤라인제도

캐롤라인제도(영어: Caroline Islands, 네덜란드어: Caroline-eilanden)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제도로 북쪽으로는 북마리아나제도, 동쪽으로는 마셜제도, 서쪽으로는 팔라우, 그리고 남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가 존재한다. 서에서 동쪽으로 길게 팔라우, 야프, 트루크, 폰페이의 4개 지역으로 나누며 서태평양에 퍼져있으며 총 6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캐롤라인제도의 총 면적은 매우 작지만 태평양의 2,600,000km² 이상을 점유하여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배타적 경제 수역(EEZ)를 보유하고 있다. 캐롤라인제도는 미크로네시아연방팔라우 공화국을 이루는 태평양 서부의 제도이다. 캐롤라인제도는 서쪽은 팔라우로부터 동쪽은 코스라에섬까지 약 3540km의 거리에 길게 늘어졌다. 캐롤라인제도는 2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정상부분이 산호층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화산군과 습곡작용과 압력을 받아 대양 표면으로 솟아오는 지각층에 해당하는 동쪽의 섬들로 나누어진다. 양쪽 모두 해발 150m 이상이며 야프, 폰페이, 트루크, 코스라에(쿠사이), 바벨투아프, 울리시섬 등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스페인 동인도 제도의 일부였고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통치되었다. 1686년 에스파냐가 뉴필리핀이라 하여 영유하던 것을, 1899년 독일이 사들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일본에 점령되어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86년 신탁통치 지역이 해제되었지만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원주민은 미크로네시아인이지만, 카핑가마랑기와 누쿠오로섬에는 폴리네시아인이 살고 있다. 재배 작물은 코코야자, 사탕수수, 타로감자 등이다. 광산 자원으로는 인광석과 보크사이트 등이 있다. 월평균기온이 26~28 °C인 열대기후이며, 고지대 섬들의 강수량은 4,570mm를 넘는다. 1년에 평균 20번 이상 태풍이 도서군의 중심이나 주변부에서 발생한다.[4]

지도

동영상

각주

  1. 폰페이섬〉, 《위키백과》
  2. 폰페이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폰페이〉, 《요다위키》
  4. 캐롤라인 제도〉,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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