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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파니올라섬(영어: Hispaniola, 프랑스어: Hispaniola, 스페인어: La Española, 아이티어: Ispayola)은 서인도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쿠바섬 동쪽에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있었던 1차 항해, 1493년에 있었던 2차 항해에서 들러 스페인의 첫 식민지를 건설한 곳이기도 하다. 섬의 서쪽 1/3은 아이티의 영토이고, 동쪽 2/3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이다.[1]
개요[편집]
히스파니올라섬은 카리브해 대앤틸리스제도에 있는 섬으로 카리브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세계에서 22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76,480km²로 남한보다 조금 좁고 인구는 2,100만 명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과밀한 지역 중 하나로 과거에는 섬 서부가 비옥하여 인구 부양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부속 섬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섬이다. 히스파니올라 다음은 쿠바섬, 미국의 롱아일랜드섬 순이다. 히스파니올라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스페인(히스파니아)의 섬이라는 의미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서쪽으로 떠났을 때 제일 먼저 도착한 땅이 바로 이곳이다. 과거에는 원주민인 이른바 타이노인들이 거주하였으나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과 노예 노동으로 외부인과 혼혈되어 질병 내성 유전을 물려받은 일부를 제외하면 전멸했다. 섬 서부에서는 과거 프랑스령 생도맹그 식민지로 노예 노동에 의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운영으로 프랑스 국부의 4분의 1 정도가 이 지역에서 조성되었다. 사탕수수 외에도 벼농사가 활발히 지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의 주식은 쌀이다.[2]
히스파니올라섬은 지금 서쪽 1/3은 아이티 영토, 동쪽 2/3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이다. 헌데 같은 섬이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국경을 두고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의 격차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개발도상국이지만 섬 환경이 잘 관리되는데 반해, 아이티는 일인당 GDP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1/12 수준인 데다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정도의 헬게이트이기 때문이다. 섬 동부는 과거에는 비교적 척박하고 인구 밀도가 희박했던 지역으로 스페인 식민지로 유지되었으며 주로 목축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섬 서부에서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섬 동부에서는 스페인어가 사용된다. 인구 구성도 다른데 섬 서부에서는 아이티 혁명 당시 유혈 사태의 영향으로 인구 절대다수가 흑인이지만, 동부는 인구 대부분이 흑백혼혈이다.[3]
지리[편집]
히스파니올라섬에는 5개의 주요 산맥이 있는데 가장 높은 산맥은 중앙산맥이다. 도미니카 남부 해안부터 북서쪽의 아이티까지 걸쳐 있는 산맥의 주봉은 피코 듀어트(Pico Duarte)로 높이가 해발 3,087m다. 서쪽으로 더 나아가면 고나비스 만 (Gulf of Gonaives)으로부터 뻗은 집게 발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산이 있으며 커피, 코코아 사탕수수 담배 등이 재배된다. 이 섬의 큰 도시는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투프랑스 (Port-au-Prince)와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 도밍고다. 바다와 해변이 아름다운 이 섬에서는 패러세일링, 스노클링, 패들 보트, 시카약, 바나나보트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아이티에 있는 라바디가 서부 카리브해 크루즈의 대표 기항지 중 하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역사[편집]
히스파니올라섬에는 6천 ~7천 년전에 원주민인 타이노족이 있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중 발견해 ‘에스파뇰라’ 라고 명명하였으며 이식민지화는 콜럼버스가 1493년 11월 영구 정착지를 건설할 목적으로 1300명의 병력을 히스파니올라로 데려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섬의 이름은 지배세력이 바뀜에 따라 키스케야, 세인트 도밍구, 산토 도밍구, 아이티등으로 명명되었다. 키스케야는 고유 이름으로 아직도 두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고 또 다른 고유이름인 아이티(Ayiti)는 아이티 독립국가에서 사용하였는데 이 뜻은 ‘섬 전체’라는 뜻으로 지금의 서쪽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콜럼버스가 도착한 후 귀금속은 섬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이 이스파니올라 섬을 정복한 이후,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전염병이 퍼지고 탄압받으면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500~800만 인구가 수십년만에 2만 6천여 명만 남은 상태로 전락했으며, 1535년에 혼혈 외에는 거의 전멸한 상태가 되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18세기 후반의 폭력적인 노예 저항뿐만 아니라 열대열 때문에 종종 일찍 죽었다. 1791년 프랑스 혁명 중에 생도맹그에서 대규모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 1794년 2월 4일 프랑스 공화국이 식민지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했으며 그것은 유럽 최초이다. 전 노예군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유럽 이웃 국가들과의 전쟁을 벌였다. 18세기말에 생도맹그에선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8세기말에 아이티에서 아이티 혁명이 일어났고 생도맹그는 흑인 노예, 농장주, 프랑스군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생도맹그의 격렬한 내전끝에 아이티는 아이티 제국으로 독립했다. 스페인령 산토도밍고는 1795년 이후에 잠시 프랑스령이 됐다. 그러다가 스페인과 영국이 협력해 1809년에서 1821년까지 스페인령이었다가 독립했지만, 아이티가 스페인령 산토도밍고을 침략하여 1822년부터 1844년까지 지배했다.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억압하고 탄압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900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오류로 인하여 아이티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표시한 지도우표가 발행됐다. 아이티에서는 우표를 당장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당연히 무시. 결국 아이티에서 전쟁을 선포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우표를 새로 만들겠다고 협상하면 끝날 것을 선전포고를 받아들여 전쟁을 무려 29년간 질질 끌었다. 전쟁 중에 아이티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그은 우표를 발행했다. 이 무익한 전쟁을 끝낸 이는 다름아닌 미국. 미국이 왜 이런 일로 싸우냐며 제대로 된 우표를 새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여 29년간의 전쟁이 끝났다.[4]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관계[편집]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는 같은 이스파니올라 섬에 위치해 있지만, 양국은 국경을 두고 언어, 문화, 민족, 자연환경, 소득 수준 등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동부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천국이라면, 서부의 아이티는 지옥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딱히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티보다는 경제력과 생활 수준이 열 배 이상으로 높은데다 아이티가 모든 지표에서 최악을 달리는 최빈국 신세이다보니, 개발도상국 정도는 되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비교적 좋게 비춰지는 것. 이런 격차도 있고, 한 때 도미니카가 아이티의 침공을 받았던 역사적 앙금이 더해져 도미니카 공화국은 정부와 국민을 막론하고 아이티와 아이티인을 굉장히 하찮게 여기며 차별 대우한다. 미국이 바로 아래의 멕시코를 우습게 여기는 것의 몇 배로 그 강도가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 과거 아이티는 프랑스의 부유한 식민지이자 카리브 최초의 독립국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곳이었던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 식민지 중에선 딱히 가치가 높지 않은 농업 지역에 불과했다. 그리고 먼저 독립한 아이티는 잠시나마 도미니카 공화국을 식민 지배하기도 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있었다. 70년대, 80년대 아이티는 독재정권하의 부실한 산림 관리 정책으로 그나마 있던 산림마저 모두 베어버려 암반이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토양 유실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식량생산도 급감하여 1991년부터 2002년 사이엔 무려 30% 이상이 감소했다. 이러다 보니 안 그래도 아이티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기후상 강수량이 적었는데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부실정책으로 인해 달리 숲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어 기본적인 땔감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경제적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에 비해 12배 정도 부유하며 아이티는 카리브해의 최빈국으로 남아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내에도 아이티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차별과 학대를 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도 안 주고 배째라하는 기업도 많이 있고, 아예 아이티의 흑인 남자들은 죽도록 착취 폭행당하고 여자들은 성폭행 당해 혼혈아를 임신 출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도 미국인들이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싫어하듯 아이티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티가 거의 다 흑인인 것과 다르게 도미니카 공화국 인구 상당수가 물라토라서 차별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국경선에서도 도미니카 공화국이 상전 나라인 양 군다. 더욱이 도미니카 공화국은 공교육이 어느 정도 돌아가는 나라인 반면 아이티는 현재도 문맹률이 높고 컴퓨터 관련 활용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차별 대우를 부채질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아이티나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한 나라이다 보니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인들을 어떤 방법으로 부려먹어도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도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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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히스파니올라섬〉, 《위키백과》
- ↑ 〈히스파니올라〉, 《나무위키》
- ↑ 〈히스파니올라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히스파니올라〉, 《요다위키》
- ↑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관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히스파니올라섬〉, 《위키백과》
- 〈히스파니올라〉, 《나무위키》
-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관계〉, 《나무위키》
- 〈히스파니올라〉, 《요다위키》
- 〈히스파니올라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