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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월) 10:08 판

누쿠히바섬 위치
마르키즈제도 지도

누쿠히바섬(Nuku Hiva)은 남태평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있는 마르키즈제도(영어: Marquesas Islands)에서 가장 큰 이며 인구는 3120명이다. 마르키즈제도의 수도는 누쿠히바섬에 있는 타이오해(Taiohae)이다.[1]

개요

누쿠히바섬은 화산섬으로 타히티섬 북서쪽, 멕시코 서쪽 4800km 태평양에 위치해 있다. 누쿠히바섬 서쪽은 가파르지만 상당히 규칙적인 해안선을 특징으로 하며 때때로 작은 만으로 움푹 패여 깊은 계곡으로 이어져 내륙으로 이어진다. 서쪽에는 마을이 없고 섬의 동쪽 해안선은 바다를 통해 육지로 갈 곳이 거의 없다. 북쪽은 깊은 만으로 움푹 패여 있고 그중 가장 큰 만은 아나호만(Anahō)과 하티우만(Hatihe'u)이고 세 번째 만인 아아카파만(A'akapa)는 더 작고 같은 이름의 마을 옆에 있다. 남쪽은 만이 적다. 섬의 중심부는 토비(To'ovi'i)라고 불리는 높은 고원으로 주로 키 큰 풀이 우거진 초원 으로 덮여 있으며 이곳에서 처음으로 가축 사육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토비의 서쪽 끝에는 1224m의 고도에 이르는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테카오(Tekao)가 솟아 있다. 토비의 서쪽과 북쪽 끝은 산등성이로 많은 비를 받아 섬에 공급한다. 섬의 북서쪽 경사면은 섬의 다른 곳보다 훨씬 건조하며 종종 프랑스어로 테 헤누아 아 타하(Te Henua a Taha) 또는 테레 데세르테(Terre Déserte)라고 불리는 사막으로 묘사된다. 인구는 주로 폴리네시아인이며 유럽인의 비율은 적으며, 대부분 메트로폴리탄 프랑스 출신이다. 섬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유명한 감옥이 있으며 개방된 감옥 제도를 사용하며 죄수들은 최소한의 감독 하에 자유롭게 구내를 이용할 수 있다. 1980년 12월 14일 섬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단일 활주로 공항이 건설되었다.

역사

고대

누쿠히바섬는 고대에 두개 지방이 있었는데 테이이(Te I'i)가 섬의 서쪽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타이피(Tai Pī)가 동쪽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약 2000년 전 서부 폴리네시아에서 왔고 나중에는 타히티섬, 하와이, 쿡 제도,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삼았다. 선사시대에 식인 풍습이 행해졌던 정도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곳에 한때 의식적인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신화라고 주장한다. 식인 풍습에 대한 이야기는 2011년 누쿠히바에서 발견된 독일 관광객의 불에 탄 유해가 희생자가 부분적으로 먹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유럽의 탐험

1595년 7월 21일, 알바로 데 멘다냐 데 네이라(Álvaro de Mendaña de Neira)는 파투 이바에 정착하여 페루 총독의 부인의 이름을 따서 로스 마르케사스라(Los Marquesas)고 불렀다. 1774년 제임스 쿡(James Cook)도 마찬가지로 남쪽을 방문했고 1791년에는 솔리드 탐험대가 섬을 방문했다. 이러한 방문이 질병의 유입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데 폴리네시아인 10명 중 9명을 죽인 전염병을 가져온 것은 백단향을 싣고 가는 상업 선박과 포경선이었던것으로 보인다. 1813년 10월 25일 데이이와 타이피 사이의 전쟁 동안, 미국 선장 데이비드 포터(David Porter)는 그의 10개의 다른 무장 함대의 기함인 호위함이 도착했다. 해안에 일행이 상륙했고 그들은 섬을 미국을 위해 영유권을 주장했고 매디슨빌(Madisonville)이라는 작은 마을을 건설했다. 포트 매디슨(Fort Madison)이라는 요새와 부두도 건설되었는데 포트 매디슨은 에식스호(Essex)에 맞게 개조되었다. 포터는 부족 분쟁에 연류되었다. 첫 번째 정글 탐험대는 존 다운스(John Downes) 중위가 이끌었다. 그와 40명의 다른 사람들은 수백 명의 테이이들의 도움으로 3,000~4,000명의 합파 전사들이 보유한 요새를 점령했다.그 승리로 인해 합파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미국인 및 테이이족과 동맹을 맺었다. 포터 본인은 두 번째 탐험대를 이끌고 티이피가 보유한 해안선을 향해 수륙 양용 공격을 감행했다. 5천 명의 테이이와 합파인들이 최소 200대의 군용 카누를 타고 함대와 동행했다. 수천 명의 원주민들은 바위와 창으로 무장했지만 무시무시한 산악 요새에 위치하여 공격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승리는 잠시였고 포터 선장은 미국인들이 이름 붙인 대로 타이피 계곡에 있는 타이피 마을 회관을 위협하기 위해 육로를 통해 육로를 통해 그의 상륙을 계속했다. 부대는 1813년 11월 30일에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번째 발포는 타이피가 부대를 매복하려 한 후에 발생하였고, 공격은 격퇴되었다. 포터는 타이피가 저항을 멈추지 않으면 마을을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잠시 기다린 후 적들은 요구를 무시하자 탐험대를 전진시켰으며 마을이 불타면서 교전이 이어졌다. 결국, 미국과 그들의 동맹국인 테이이와 합파는 적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승리했고, 적들은 곧 평화를 요구했고 1814년 5월까지 평화로웠다. 1812년 미국과 영국 간의 전쟁은 3년째였고 1813년 12월, 포터는 영국 포경선들을 계속 습격하기 위해 누쿠 히바를 떠났다. 그는 19명의 해군 선원과 2명의 사관후보생과 미 해병대 중위 존 M. 갬블을 남겨두고 6명의 죄수만 남겼다. 1814년 5월 7일 한 무리의 영국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6명의 죄수를 석방하고 요새를 공격했다. 갬블은 발에 부상을 입고 포경선 세린가파탐호에 남은 부하들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 1814년 8월 28일 포터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국 해군 함대가 누쿠히바 앞바다에 정박했다. 그들은 포터가 섬에 매디슨 요새, 누쿠히바 그리고 빌라를 지었고, 그의 배가 떠난 후 원주민들이 그것을 파괴했다. 포터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국 의회 앞으로 가서 자신이 워싱턴 제도를 미국 영토라고 주장했다고 자랑스럽게 의회에 말했다. 의회는 미국 선원들이 섬 주민들과 동거할 것이라는 사실에 경악했고 이로 인해 의회는 포터의 주장을 거절하게 되었다. 의회는 미국 선원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수치를 원하지 않았다. 몇 년 후 포터는 멕시코 해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1842년 프랑스는 그 그룹 전체를 장악했고 1859년 정착촌을 세웠다.

현대

페루에서 온 배가 우아푸에서 사람들을 생포해 노예로 데려갔지만 가톨릭 교회가 그때까지 섬을 기독교로 개종하자 항의가 있었고 아직 살아있던 포로들은 돌려보냈다. 그들은 질병을 가져와 1820년 10만 명이 넘는 인구는 1872년 6천 명, 1911년 3천 명, 1927년 2200명의 저점으로 떨어졌다. 마르키족이 생존할 방법은 없어 보였지만, 두 명의 프랑스 의사가 백신 접종과 치료를 하면서 섬을 둘러보고 많은 사망자를 막았다. 2002년 5월 당시 누쿠히바 시장이었던 루시엔 키미테테(Lucien Kimitete)와 아루에(Arue) 시장 등 2명의 정치인을 태운 항공기가 실종됐다. 키미테테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마르키즈제도의 분리를 추진했고 실종은 분리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많은 현지인들은 이번 추락 사고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키미테테 사망 이후 마르케스의 정치 지도자들은 타히티의 프랑스 폴리네시아 정치 지도자들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할 경우를 대비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부터 분리하여 프랑스 공화국 내에 남겠다고 거듭 선언했다. 2011년경 독일인 스테판 라민(40)과 그의 여자친구 아이케 도르쉬(37)가 여행을 다니던 중에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누쿠히바섬에서 원주민 가이드 아리하노 아이티에게 공격당한 사건. 라민은 살해당했고 도르쉬는 성폭행을 당했다. 2014년 5월에 범인이 28년형을 선고 받고, 범죄 사실을 시인하고 항소하지 않음으로써 해당 사건은 막을 내렸다.[2][3]

지도

동영상

각주

  1. 히바누쿠〉, 《요다위키》
  2. "Nuku Hiva", Wikipedia
  3. 누쿠히바섬 식인종 사건〉,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폴리네시아 같이 보기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1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2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3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폴리네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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