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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니아(이탈리아어: Catania)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주에 있는 도시로 카타니아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182.90km², 인구는 약 31만 명으로 시칠리아에서 팔레르모 다음으로 면적과 인구 면에서 두 번째이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섬 동남부, 에트나산 기슭에 위치하며 이오니아해에 면하는 유서깊은 항구도시이다. 카타니아의 구시가지는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1]
개요[편집]
카타니아는 시칠리아섬 카타니아만 연안 에트나산 기슭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시가지는 에트나산 남쪽 기슭에 조성되어 있는데, 기원전 8세기에 낙소스 출신 그리스인이 정착한 것이 시초였다. 중세 시대에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1434년 설립된 카타니아 대학교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지진과 화산 분출의 피해를 입었으나 계속 재건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순교한 성녀 아가타는 이곳 출신이다. 아가타는 카타니아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18세기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 많으며, 당시 건립된 대성당에는 성 아가타의 유물이 있다. 이 곳의 바로크 양식 건축물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가 시칠리아섬을 점령하면서 카타니아는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됐다. 1904년엔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1924년엔 이탈리아 남부에서 가장 큰 공항인 카타니아-폰타나로사 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Vincenzo Bellini di Catania-Fontanarossa)이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정부의 남부 개발 정책으로 시(市) 북부에 공업단지가 이루어져 공업도시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면직, 견직물, 통조림 공업이 활발하다. 시칠리아섬 남부의 중심지이며 주에서 팔레르모 다음으로 큰 도시로 지하철도 건설되어 있다. 주위 농업지대의 중심지로 오렌지, 레몬, 올리브, 포도 등 농산물과 황산 등 광산물의 집산지이며 휴양지로서 관광객이 많다. 남부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대학과 화산학연구소가 있으며 문화재로서는 로마 극장 유적, 11세기 노르만 시대의 양식을 간직한 성(聖)아가타 대성당, 1232년 프리드리히 2세가 건설한 우르시노성(城) 등이 있다. 축구팀 칼초 카타니아의 연고지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섬 동쪽 해안 에트나산의 기슭에 위치한다. 아메나노(Amenano)강과 로그니나(Lognina)강 등 두 개의 강이 도시 아래로 흐른다. 카타니아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엔 무덥고 겨울엔 온화하다. 이 도시의 여름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덥다고 알려졌다. 강수량은 10월부터 3월까지 집중돼 늦은 봄과 여름철에는 건조하다. 평균 고도는 해발 24m, 연평균 기온은 17.8℃, 연평균 강수량은 567mm이다.[3]
역사[편집]
카타니아는 기원전 8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칼키스인들에 의해 건설됐고, 기원전 263년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 후 바바리아족과 비잔틴족, 아랍인들에게 차례로 정복당했다. 1072년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문화,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1434년에 시칠리아 최초의 대학이 이 도시에 설립됐다. 14세기와 르네상스 시대까지 카타니아는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문화, 예술, 정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카타니아는 1669년의 에트나(Etna)산 화산 폭발과 1693년의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700년대에 들어 대규모 도시 재건이 진행되면서 바로크 도시로서 새로운 면모를 갖췄다.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가 시칠리아섬을 점령하면서 카타니아는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됐다.[4]
교통[편집]
카타니아 중앙역(Catania Centrale)을 통해 시라쿠사와 메시나 등 시칠리아의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다. 다만 시칠리아의 최대 도시인 팔레르모와는 직통 노선이 없으니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 역에서는 이탈리아 본토로 가는 IC/ICN 노선도 운행하는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 사이에 다리가 없기 때문에 기차를 배에 실어서 운행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인구가 30만 명에 불과함에도 무려 지하철이 있다. 주거 지역과 중앙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주요 관광지에선 벗어나 있지만, 관심이 있다면 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항공교통은 카타니아 국제공항(CTA)에서 담당한다. 휴양지로 유명한 시칠리아답게 유럽 노선이 매우 촘촘하며, 덕분에 2021년 기준 이탈리아에서 이용객이 5번째로 많은 공항이 되었다.[5]
명소[편집]
카타니아를 대표하는 기념물로는 1736년 제작된 두오모 광장의 코끼리 분수(Fontana dell'Elefante)를 들 수 있다. 오래된 용암으로 만든 코끼리 조각상 위에 시에네(현재의 아스완)에서 가져온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카타니아 역사에서 코끼리의 존재는 동물고고학이나 대중적 신조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카타니아는 역사적으로 17차례나 용암으로 뒤덮였으며, 현재의 도시 아래 고대 로마 시대 도시와 그 이전의 그리스 도시가 묻혀 있다. 로마 시대의 많은 유적들이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많이 파괴됐다. 도시 중심부의 고고학 공원(Parco Archeologico Greco-Romano di Catania)에서 다양한 고대 유적을 관람할 수 있다.
카타니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gata)은 카타니아의 두오모(Duomo di Catania)로도 불리며, 1078~1093년 처음 건설된 뒤 지진과 에트나산의 화산 폭발로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됐다. 1693년 대지진으로 거의 완전히 파괴된 후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13세기에 시칠리아 왕국의 왕성으로 지어진 우르시노성(Castello Ursino)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현재 미술관으로 쓰인다. 1,200석 규모의 벨리니 극장(Teatro Massimo Bellini)은 카타니아 태생의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으며, 1890년 5월 31일 벨리니의 걸작 오페라 ‘노르마(Norma)’가 이곳에서 초연됐다. 또 1434년 설립된 카타니아대학(Università degli Studi di Catania)은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카타니아대학교[편집]
카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tania)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1434년에 설립된 이 대학교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이탈리아 전체에서는 13번째, 세계에서는 29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이다. 학술조직은 1개 학부와 17개 학과, 3개의 독립적인 특수교육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1847년부터 조성된 식물원과 함께 1890년에 세워진 카타니아 천체물리관측소가 유명하다. 이 대학교는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801-1,000위권에 들었다. 2023년 타임스고등교육의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세계 401-500위권으로 평가됐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는 세계 461위, 유럽 대학 중 187위, 이탈리아 대학 가운데 13위를 기록했다.
카타니아대학교는 아라곤의 알폰소 5세(시칠리아의 알폰소 1세) 왕이 1434년 설립했다. 왕실 의원인 아다모 아스문도와 바티스타 플라타모네가 카타니아에 ‘스투디움 제네랄(Studium Generale, ‘일반 학교’)’의 창립을 승인하도록 왕을 설득한 뒤 헌장을 수여받았다. 이 대학은 1444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로부터 인가받을 수 있었다. 알폰소 5세는 이런 조치를 취함으로써 시칠리아 수도를 카타니아에서 팔레르모로 옮긴 것에 대해 그 도시에 보상하고 싶어 했다. 1445년에 교수 6명과 학생 10명으로 학업활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의학과 철학, 교회법 · 민법, 신학의 네 가지 학부로 시작했다. 수업은 초기에 성아가다 성당 옆 두오모 광장에 있는 한 건물에서 열렸다. 1690년대 후반에 대학 건물(Palazzo dell'Università)로 옮겨갔다. 이 건물은 오늘날까지 대학의 소재지로 남아 있다.
최초의 학위는 1449년 시러큐스 출신의 안토니오 만텔로에게 수여되었다. 16세기에 매년 대략 20~25명에게 학위가 수여되었다. 1934년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시절에 500주년을 기념했고, 1984년 550주년을 맞이했다. 이 대학은 설립된 뒤 초기 수 세기 동안에는 카타니아 시당국의 관리와 카타니아 주교의 감독 아래에서 운영되면서 왕권으로부터는 보호를 받았다. 1679년 총독이 시행한 개혁에 따라 주교(총장이었던)가 강사와 신입생, 학생의 교육과정을 통제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민간 당국과 종교 당국 간에 다양한 갈등이 야기되었다. 1818년부터 총장은 주교 대신 법원장이 맡게 되었다.
카타니아대학교의 학술조직은 1개 학부와 17개 학과, 3개의 독립적인 특수교육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학술부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학과는 농업식품환경학과와 경제경영학과, 법학과, 토목건축학과,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수학컴퓨터과학과, 물리천문학과, 화학과, 생물학 · 지질학 · 환경과학과, 인문학과, 정치사회학과, 약학과, 교육학과 등 13개 일반학과와 의학학부 내에 수술응용의학과와 일반외과, 생의학생명공학과, 임상실험의학과 등 4개 의학전공학과로 이루어졌다. 특수교육기관은 시라큐스의 건축교육원과 라구사의 외국어문학교육원, 카타니아우등학교(Scuola Superiore di Catania) 등이다. 카타니아대학교는 연구부문에서 35개의 연구센터를 운영한다.[6]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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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카타니아〉, 《위키백과》
- ↑ 〈카타니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카타니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카타니아〉, 《요다위키》
- ↑ 〈카타니아〉, 《나무위키》
- ↑ 〈카타니아대학교(세계의 대학)〉,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카타니아〉, 《위키백과》
- 〈카타니아〉, 《나무위키》
- 〈카타니아〉, 《요다위키》
- 〈카타니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카타니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카타니아대학교(세계의 대학)〉,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