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 이스라일, 영어: Israel)은 서아시아의 공화국이자, 지중해 및 홍해의 연안국이다. 정식 명칭은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이다.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유대교와 사마리아교 및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시온주의 이념을 추종한 유대인들에 의해 건국됐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토이기도 하다. 접경국으로는 육지를 통해서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바다를 통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키프로스가 있다.
목차
개요
이스라엘은 중동·서아시아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에 하나뿐인 유대 공화국이자 서아시아에서 유일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다. 자국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국제법상 인정되는 수도는 텔아비브이다. 주요 국가 기관과 기업, 대부분의 해외공관이 텔아비브에 위치한다. 이스라엘은 총 6개의 행정 구역(mehozot)으로 구성되며, 주요 도시로는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리숀레지온, 아슈도드, 베르셰바 등이 있다. 2021년 현재 인구는 940만 명이며, 유대인(74.2%), 아랍인(21%), 기타(4.8%)로 구성된다. 언어는 히브리어가 공용어, 아랍어가 특수 지위 언어이며, 영어와 러시아어가 상용된다. 주요 종교는 유대교(74.2%)와 이슬람교(17.8%)이다. 대한민국과 1962년 4월 10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국가 상징
국호
정식 국호는 이스라엘국이다. 히브리어로는 '메디나트 이스라엘(מְדִינַת יִשְׂרָאֵל / Medinát Yisra'él)', 아랍어로는 '다울라트 이스라일(دَوْلَة إِسْرَائِيل / Dawlat ʾIsrāʾīl)'이라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료공개로 제공하는 시청각 자료들(한국어, 히브리어, 영어, 프랑스어) 및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이 공들여 출판한 베스트셀러들은 '이스라엘국'이라고 일부러 표시했는데, 고대 이스라엘(이스라엘 왕국)과 전혀 다른 '현대 국가'로 구분하면서 인민주권의 자유국을 상징한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에서 거주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호칭, 유대인 자연인의 흔하디흔한 성명, 옛날의 유대인 왕국들, 현대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토 등등을 가리키는 낱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라고만 하면 가리키는 대상이 불분명하기에 정식 국호는 '이스라엘국'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각종 문서에서 이스라엘을 서술하는 데 곤란한 점이 생긴다. 간단한 원칙은 일반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고 쓰되 법적 책임이 있을 만한 부분에는 '이스라엘국' 또는 'the State of Israel'이라고 적는 것. 이스라엘 외무부 홈페이지에서 조차 이렇게 자국을 지칭한다. 가령 이스라엘 외무부 홈페이지에서 국가상징물 항목을 보면 국기를 'Israel Flag'라고 적어 놓고 설명에는 'The flag of the State of Israel...' 이라고 정식 국호를 명시해 놓았다. 이는 한국 외교부의 공식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가정보 설명에는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적어놓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체결한 조약문에서는 정식국호인 '이스라엘국'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주 이스라엘 대사관 역시 정식 명칭을 '주이스라엘국대한민국대사관'이라고 적는 등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널리 사용하되 법률적 책임이 따르거나 엄밀하게 현대 이스라엘 국가체제를 지칭해야 하는 맥락에서는 '이스라엘국'으로 적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의 기도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같지만,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국가 이스라엘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민족적으로 완전한 남남이라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참여한 사람, 즉 모든 그리스도인을 이스라엘이라 하며 이 항목의 이스라엘과 구분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 항목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을 떠올린다.
국기
이스라엘의 국기는 파랑과 하얀색 2가지 줄이 있고 가운데에 6각형 별이 있는데, 이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부른다. 파랑과 햐얀색은 유대교 기도자들의 어깨걸이 빛깔이었는데 당시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이 두 색깔로 된 수녀복을 입은 적이 있었다. 1897년 시온주의자 회의에서 승인되었고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 일부에서는 '유대인의 기' 라고도 불린다.
이스라엘의 주변국을 비롯한 아랍 국가에서는 반아랍 및 시오니즘 찬양과 이슬람의 신성함을 모독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불쾌한 기피 대상이자 사용이 금지된 국기로 알려져 있으며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면 성조기와 함께 아랍인들 손에 불태워지는 수난을 자주 겪는다. 아예 소각 전용 이스라엘 국기를 파는 기업도 있다.
아랍 쪽에 많이 퍼져있는 음모론으로 이스라엘 국기 위아래에 그려진 두 개의 파란 줄이 실은 나일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뜻하며 이 두 강 사이의 영토는 신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이니 모두 정복하겠다는 시온주의적인 메세지가 숨겨져 있다는 설이 있다. 이런 영토 확장 야욕을 보이는 일부 시오니즘 극단주의자들이 있긴 하지만(서울대 인남식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구 20-30% 가량이 이 의견에 동조한다고 한다.) 적어도 국기의 파란 줄은 상술했 듯이 기도용 어깨걸이를 본딴 것으로 영토 확장 야욕과는 무관하다.
국장
이스라엘의 국장은 1949년 2월 10일에 제정되었다.
파란색 방패 안에는 일곱 개의 촛대를 가진 유대인의 전통적인 촛대인 하얀색 메노라가 그려져 있으며, 메노라 양쪽에는 하얀색 올리브 가지가 감싸고 있다. 메노라 아래에는 "이스라엘"("ישראל")이라는 국명이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다. 메노라는 3000년 동안 유대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고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되었다. 올리브 가지는 평화를 의미한다.
국가
이스라엘의 국가는 하티크바(התקווה, HaTiq'vah[1])로도 불리며 희망이라는 의미이다.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단조로 된 국가이다.
시인인 나프탈리 헤르츠 임베르(נפתלי הרץ אימבר)가 작사하였고, 슈무엘 코헨(שמואל כהן)이 작곡하였으며,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시오니스트 회의에서 국기와 함께 찬가로 제정되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의 국가로 정해졌다. 멜로디가 매우 구슬프게 느껴지는데 과거 유럽과 나치 독일, 러시아 등으로부터 온갖 억압과 수난을 당해온 유대인들의 비극을 연상케 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는 망국기에 만들어진 대한제국 애국가도 마찬가지.
하티크바는 아랍에서는 시오니즘 찬양 등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느낄 수 있는 노래 구절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블타바(몰다우)와 비슷한데, 두 곡 모두 이탈리아 르네상스 음악인 라 만토바나의 곡조를 따온 것이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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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면적은 28,789㎢로 작은 편이며 영남권 전체 넓이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스라엘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레바논과의 국경부터 가자 지구까지 지중해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 평야(מישור החוף / Mishor Hakhof)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형으로 토질이 비옥하여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몰려산다. 해안 평야에서 동쪽 내륙으로 가면 북부 갈릴리 지역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등 산지와 구릉으로 구성된 고지대가 존재한다. 평균 고도 600m 정도의 고지대 사이사이마다 비옥한 계곡 지형이 존재하며 수도 예루살렘 역시 이곳에 존재한다. 다시 고지대에서 동쪽 요르단과의 국경쪽으로 가면 갈릴리 호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인 요르단 강을 따라 이어진 요르단 강 계곡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쪽의 네게브 사막(מדבר הנגב / Midbar Hanegev)은 극히 건조한 지형으로 내륙의 베르셰바나 이스라엘의 유일한 홍해안 항구도시인 에일라트 등을 제외하면 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네게브 사막 지역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넘겨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훨씬 더 비옥한 골란 고원을 빼앗자마자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곳에 몰려갔다. 현재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돌려달라는 시리아 측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미 이 일대에 100,000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주,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부터 골란고원에 살아온 시리아 국민들도 20,000여 명이나 그대로 살고 있다.
지중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 홍해와도 약간 접하는데 이스라엘의 홍해 해안선은 고작 11km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약간 걸친 수준. 홍해의 유일한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라트가 있다. 바로 옆에 요르단의 도시 아카바가 있는데, 여기도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다. 그래도 가상의 적 아랍 국가들에 포위되어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좁은 이스라엘에게는 이 작은 홍해 연안이 엄청나게 중요한 요충지로, 제3차 중동전쟁 때도 해상 봉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위치상으로 요충지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의 전통적인 육로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를 거쳐 시리아로 빠져나간 다음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로 향하며, 인구 분포 역시도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양상이다. 여기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에 이스라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포인트.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물질적 의미에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생태
이스라엘하면 사막 국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에 맞지 않게 스키장도 있다. 이스라엘 북부 헤르몬 산에 있는데 이곳은 정상이 사시사철 눈에 뒤덮여 있다. 그런데 눈이 있음에도 기온은 좀 덥다고 한다. 눈이 내리지 않지만 2015년 12월에 60년 만의 대폭설이 내려 눈 치우는 데 몇 달이나 걸렸다.
다만 국토의 70%가 사막이라 척박한 땅이며 기본적인 물조차도 구하기 쉽지 않다. 성경 시대에는 중동 전역에 비옥한 삼림이나 초원이 있었고 농사도 활발히 지었다. 과거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라 하여 중동 지방의 문명과 생산력을 담당한 꿀땅이었다. 다만 몇천 년간 이어진 농사로 지력이 고갈되다 못해 물을 찾으려고 바닥을 파고들어 가 모조리 사막화가 진행되었을 뿐이지. 현대에 들어가서 사우디든 리비아든 이집트든 이스라엘이든 간에 재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사막화가 워낙 심각해서, 시리아고 요르단이고 이라크고 이란이고 죄다 농경지에 삼림이 펼쳐진 시절이 있었음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특히 남부의 사막 지대는 너무나 척박하고 물이 없다 보니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되어 인구가 굉장히 적다. 그래도 오스만 제국 시절보다 눈과 비가 훨씬 더 많이 내리는 편인데,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절부터 산림조경 관변단체 유대 민족 기금(Keren Kayemet LeYisrael)이 2020년대까지 약 3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녹화사업이 증발→상승→냉각→응결→구름→강우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살고 있는 야생동물은 주로 사막에 사는 동물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다양한 편이다. 북부도시에서는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는 사자 및 아라비아오릭스 등 덩치 큰 포유류나 토종 개구리도 있었지만, 지금은 죄다 멸종된 상태다.
포유류로는 가젤이나 아이벡스 등 유제류가 있으며, 맹수로는 표범이나 자칼도 서식한다. 그 밖에도 쥐나 다른 포유류도 존재하며, 황량한 곳에는 전갈이나 뱀 등도 있다. 곤충류도 나비나 딱정벌레 등도 많은 편이다. 사해 등 호수 지역에는 황새나 사다새 등이 찾는 편이다. 지중해와 맞닿은 곳에서는 돌고래들도 많으며, 연안에는 산호들도 다양하게 자생한 편이라 많은 물고기도 모이는 편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유명한 물고기 중 하나인 향어도 이스라엘이 원산지다.
기후
이스라엘의 기후는 작은 면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이스라엘의 기후 분포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여러 지역간의 지형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로 뚜렷하게 교체되는 계절현상을 보여준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계속되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하고 다습하다. 이스라엘은 일년이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기후는 계절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특성으로 인해 더위, 추위, 이슬, 서리, 바람, 눈, 얼음 등의 다양한 기후 현상을 보인다. 해안은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 ~ 37°C까지 올라간다. 한편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여서 여름에도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내리는 비 사이에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한다. 남부 네겝 지방은 사막 기후이기에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대체로 겨울에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도 비와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의 바람으로 견디기 힘든 여름철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건조하고도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더욱 낮게 만든다. 유다 광야와 사해 주변 지역은 사막기후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이스라엘의 기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스라엘 각 지역의 지형적 차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 9개월 동안의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된다. 바다에 가까운 해안 평야나 중앙 산지의 서편 곧 바다 쪽에 연한 기슭에는 농경에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여름철에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 가까울수록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물부족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굉장히 적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 부족 국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텔아비브 수영장이나 여러 가지 시설로 물을 많이 쓴다. 게다가 사해 물도 해마다 1m씩 수위가 낮아지는데 이스라엘이 막대한 산업용수로 써서 문제라고 한다. 시리아나 요르단도 책임이 있지만 그 사용량에서 이스라엘이 워낙 엄청나므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또 물이 많이 필요한 농작물이나 과일, 꽃 재배에 매달리고 있다.
매우 당연하게도 자국 내 물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로 요르단과 튀르키예를 통한 물 수입이 엄청나다. 하지만 최근에 요르단과 튀르키예도 덩달아 물 부족에 시달리면서 수출을 중단해서 더 이상 물 수입을 못 하게 되었다. 비단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많은 물을 수입해 오는데, 이 비용은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군비만큼 크다. 이스라엘도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에 해수를 담수화시키는 기술에 있어서도 많은 성과를 내놓고 있으며 이것으로도 부족한 물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중동 걸프만에서도 해수를 담수화시키기는 하지만. 해수 담수화 외에도 폐수의 70%를 정수하여 다시 재사용하고 있으며 나중엔 90%를 정수할 계획이다. 중동의 물이 석회질이 많은 만큼 여기도 석회질이 많아 정수기 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스라엘은 관개 시설을 발전시켜 갈릴리 호수와 사해, 요르단강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고 있다. 나무 하나하나에 호스를 연결시켜 수분을 공급해서 2000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지역을 지상 낙원으로 만들었다. 그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도 이곳에 농사를 지으려 수없이 노력했지만 돈과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이집트 쪽은 완전 사막이지만 이스라엘 쪽은 그냥 다 녹색이다. 당장 구글 어스로 경계를 살펴봐도 비슷한 광경이다. 이건 아랍인들이 유달리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어서 그런 거다. 미국 내 기업으로부터 지원받기 수월했던 것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이스라엘의 사례가 조금의 왜곡이 섞여서 홍보되는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 이집트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막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고 있고 호주나 미국에서도 황무지를 지하수를 이용해 농경지로 개간한 사례가 있다. 그중 잘 알려진 리비아 대수로 공사 사업이 바로 수로 부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벌인 사업이고 사우디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오일머니를 투자해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집트에서도 사람 살 땅이 워낙 좁다 보니 사막 개간 사업이 활발하다. 이라크도 1970년대 당시에는 재개간 산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기도 했다. 이들 나라의 면적이 이스라엘보다 넘사벽급으로 넓다보니 구글 어스로 보면 여전히 사막이 대다수이고 녹지는 드문드문 보이는 수준이지만. 그러나 이렇게 하는데도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로 하다 보니 수자원의 소모가 심각했고 이는 나중에 수자원 부족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물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여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1979년부터 수자원이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물값도 세계에서 비싼 편에 속한다. 게다가 가뜩이나 많지 않은 수자원을 이스라엘이 독점하고 물값을 이스라엘인보다 비싸게 받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증오가 굉장하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오슬로 협정 이래로 우물 파기가 금지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자주 도는 돌림병이 오염된 물을 마셔서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사해와 갈릴리 호수의 수위가 갈수록 낮아지는데 갈릴리 호수의 경우엔 바닥을 드러낸다고 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다. 강수량도 갈수록 감소하다 보니 가뭄 또한 심해져 비까지 내리지 않는 때가 많아져 팔레스타인만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에서 물을 얼마나 중요히 여기는지, 모든 수자원을 일원화하여 관리하고 상수도 매설 지도를 국가 기밀로 여겨 절대 공개하지 않을 정도다. 이스라엘인들도 비가 내리면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서로 물을 받으려고 애쓴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처럼 비가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수자원청은 이를 우려하여 사해와 갈릴리 호수의 취수 규정을 제한하라고 지시해 사실상 물 공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수자원청의 취수 제한은 농림부 및 농민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지만 수자원청은 이대로 간다면 이스라엘의 물은 씨가 마른다며 취수 규정을 못 바꾼다고 고집하고 있다. 게다가 수자원청은 물을 많이 쓰면 누진세를 부과하는 법안까지 의회와 정부에 계속 내고 있다. 의회와 정부는 그렇게 하면 국민의 반발이 심해져 골치 아프다며 수자원청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수자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국가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해수 담수화로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특히 이스라엘의 해수 담수화는 현재 이스라엘 전체 물 사용량의 70%를 충당할 정도다.
이렇게 해수 담수화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이스라엘 내에서도 우려가 굉장히 크다. 이스라엘인들은 담수화된 물보다 지하수와 호숫물 같은 천연수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담수화로 저렴한 물을 공급해 주어도 비싼 돈 주고 천연수 사 마시려 한다. 하지만 문제가 해수 담수화 사업은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고비용 사업이다. 여기에 비중이 커지면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 + 정치적 부담을 준다. 특히 담수화 사업을 한다고 쓴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에 물값은 천연수보다 훨씬 더 비싸다.
무엇보다 중동의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스라엘도 높은 인구 증가율과 도시화 때문에 물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다 보니 이스라엘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의 경우 사막화로 갈수록 넓어지고 있어 이제는 이스라엘 국토의 70%에 달하여 이스라엘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사막화로 인한 수자원 고갈로 이스라엘 땅이 언젠가는 사람 살 곳이 못 될 것이라는 암울한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다른 중동권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레바논에서 수자원을 빼앗아 오던 이스라엘이지만 레바논도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어 갈수록 사정이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여기도 물 부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에서는 미래에 자국 위기가 다름 아닌 물 부족이라고 우려하고 여러모로 머리를 쓰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수자원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중동권 나라 문제로 이미 중동은 대표적 물부족 지역이라고 알려진 상태. 이스라엘과 늘 싸우는 원수인 이란 역시 오랜 개발과 인구증가로 인해 자연도 변해가며 수자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란은 이스라엘보다 더 내륙국가이고 강수량도 더 작은데다가 인구는 이스라엘의 11배에 가까우니 그만큼 물 수요가 많은데다가 기후 온난화로 더 심해지고 있다. 이란은 지하수마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물부족이 심각해 이란에서 물이 별로 없는 곳은 이슬람 성직자들도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할 정도다. 따라서 이란은 농촌 실업이 심각한데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물을 탈취할 정도이며 부잣집에도 수영장을 보기 힘들다. 이래서 미국은 이란을 제제할 때는 식량, 물로 이란의 목을 조이는데 이란 내부에선 서방이 증오스럽지만 이대로 가다간 굶어죽겠다며 협상하자는 여론이 높아져 할 수 없이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간 것이었다.
재해 및 환경문제
이스라엘은 고대부터 인간의 많은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환경문제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사막화로 인한 모래폭풍, 사막 지역 특유의 강우 집중과 홍수, 사막화와 토양침식 문제는 과거부터 이스라엘에 살던 주민들을 괴롭히는 문제였다. 최근의 환경문제는 물의 공급 문제이며 이와 결합된 사막화와 토양염류화 문제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스라엘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지진과 화산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에는 큰 지진이 없었으나, 역사시대의 수차례 지진 피해 기록이 있으며 앞으로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화산분출은 이스라엘의 지질에서 여러 부분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의 페레스 산(Mount Peres, 929m)이 대표적인 화산이다. 이스라엘과 그 근방에서 최근에는 분출한 적이 없지만 지체구조상 가능성이 없다고 하긴 어렵다.
역사
유대민족의 역사는 기원전 17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중 2천 년의 역사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스라엘 땅(Eretz Israel)으로 돌아와 야훼 신앙을 확립했다. 기원전 11세기에 건국된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각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차례대로 멸망하면서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영국위임통치기에 서서히 유대인의 유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된 직후 전 세계에 이산되어 있던 상당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고대 및 중세
이스라엘에는 기원전 10만 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어 최소한 10만 년 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야훼 신앙을 확립한 것은 기원전 13세기 경이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기원전 11세기에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졌으며 기원전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하여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기원전 930년 솔로몬 왕 사망 후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왕국로 분열되었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둔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해 유대인들이 추방당했으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둔 유다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 점령당해 바빌론 유수, 즉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제국을 정복한 페르시아와 키루스의 칙령에 따라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 후 4세기 동안 페르시아(기원전 538~333),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32~142), 하몬스 왕조(기원전 142~63)의 지배를 받았으며, 비교적 정치적 통합 하에 유대인의 생활은 풍요로운 편이었다.
로마의 지배와 아랍의 통치
로마 지배기인 기원전 63에서 313년 사이에는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마지막 요새였던 마사다가 함락됨으로써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다. 4세기 말 비잔틴 제국 창건으로 이스라엘 땅은 기독교화가 되었다가(313~636),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었으나 비잔틴 군대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여 유대인은 다시 추방되었다.
636년에서 1099년 사이에 4세기 동안은 아랍이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에 '바위 사원'을 세웠다. 이스라엘 땅은 12-13세기에 아랍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그 뒤 이집트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다가 1840년부터 1917년 사이에 다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근현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11월 2일 영국이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을 발표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했으며, 1918년에 팔레스타인을 점령, 1920년에 위임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유럽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독특한 공동체 조합 형태의 농촌 거주집단인 키부츠와 모샤브를 세우고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을 다졌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는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시온주의 운동이 급속히 전개되면서 유대인의 이주가 급증했고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1947년 국제연합(UN)이 제안한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아랍 측이 거부했으나,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독립 선포 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의 침공으로 제1차 중동전쟁인 '이스라엘독립전쟁'이 발발했다. 15개월간 지속된 전투 끝에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UN의 중재로 이라크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 협상을 거쳐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유다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 해안평야와 갈릴리, 네게브 지역,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관할하기로 했다. 전쟁이 끝나고 유권자의 85%가 참가한 1949년 1월 25일 총선에서 의회가 처음 구성되어, 초대 총리에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대통령에 하임 와이즈만(Haim Weissman)이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11일 UN의 5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휴전 후에도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공격을 받아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다. 1951년 9월에 채택된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반해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통과를 금지하고, 티란 해협(Straits of Tiran) 통제를 강화했다. 1952년 이집트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 공군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시나이반도를 공격하면서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쟁인 ‘시나이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점령했다가 유엔 결의로 철수했으며, 티란 해협이 다시 개방되었다.
1967년 5월 이집트는 티란 해협을 다시 봉쇄하고 요르단과 군사동맹을 체결해 군대를 시나이반도로 이동시켰다. 이에 이스라엘은 6월 5일 남부 이집트를 시작으로 요르단과 골란고원에 선제공격을 가해 유다, 사마리아, 가자,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요르단 관할 하에 있던 동예루살렘까지 확보했다.
이스라엘-이집트 휴전협정이 이루어진지 3년 만인 1973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으로 유대력에서 가장 신성한 날인 욤 키푸르(Yom Kippour, 속죄의 날)에 전쟁이 일어났다. 3주간 이어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은 10월 25일 이스라엘이 성공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를 격퇴하면서 끝났지만 약 20일 동안 총 10,000명에서 3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에서 2,500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했다. 내부 조사는 전쟁전과 전쟁 중 실패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면제했지만 대중의 분노로 인해 골다 메이어(Golda Meir) 총리는 사임했다.
1976년 7월,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향하던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게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이스라엘 인질 106명 중 102명을 성공적으로 구출하는 작전을 펼쳤다 .
분쟁과 평화프로세스
1977년 크네셋 선거는 메나헴 베긴의 리쿠드당이 노동당을 장악하면서 이스라엘 정치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해 말 안와르 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크네셋 앞에서 아랍 국가 원수가 이스라엘을 인정한 첫 사례로 연설을 했다. 이후 2년 동안 사다트와 베긴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1978년)과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1979년)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1978년 3월 11일, 레바논에서 발발한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게릴라 습격은 해안도로 대학살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리타니 강 남쪽의 PLO 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 침공을 감행했다. 대부분의 PLO 전투기는 철수했지만, 이스라엘은 유엔군과 레바논군이 점령할 때까지 레바논 남부를 지킬 수 있었다. PLO는 곧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정책을 재개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PLO는 남쪽으로 침투하여 국경을 넘어 산발적인 포격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공중과 지상에서 수많은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베긴 정부는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이스라엘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장려금을 제공하면서, 그 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과 마찰을 증가시켰다. 1980년에 통과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1967년 이스라엘의 정부 법령에 의해 예루살렘을 합병한 것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일부 사람들이 믿었고 도시의 지위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이스라엘 법률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규정하지 않았으며 동예루살렘을 구체적으로 포함하는 법률도 없었다. 1981년 이스라엘은 사실상 골란고원을 합병했지만 국제적으로 합병이 인정되지는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예루살렘법과 골란고원법 둘 다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러한 움직임을 대부분 거부했다. 이스라엘의 인구 다양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확대되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물결이 1980년대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반면, 1990년에서 1994년 사이, 구소련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은 이스라엘의 인구를 12퍼센트 증가시켰다.
1981년 6월 7일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스라엘 공군은 이라크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방해하기 위해 바그다드 외곽에 건설 중인 유일한 원자로를 파괴했다. 1982년 일련의 PLO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그 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가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고 미사일을 발사한 기지를 파괴하였다. 전투 첫 6일 동안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있는 PLO의 군대를 파괴하고 시리아인군을 결정적으로 물리쳤다. 이스라엘 정부의 조사인 카한 위원회는 이후 베긴과 몇몇 이스라엘 장군들을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을 묻고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을 대학살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샤론은 국방부 장관직에서 사임해야 했다.
1985년 이스라엘은 키프로스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테러 공격에 튀니지에 있는 PLO 본부를 폭격함으로써 대응했다. 이스라엘은 1986년 레바논 대부분에서 철수했지만 2000년까지 레바논 남부 국경 완충지대를 유지했으며, 이곳에서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와 충돌했다. 이스라엘의 통치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폭동인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비협조적인 시위와 폭력사태의 물결이 일면서 발발했다. 이후 6년 동안, 인티파다는 더욱 조직화되었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방해하기 위한 경제적, 문화적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그 폭력 사태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PLO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지원했다. 대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격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1992년, 이츠하크 라빈은 그의 당이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들과의 타협을 촉구한 선거에 이어 총리가 되었다. 이듬해 이스라엘 대표 시몬 페레스와 PLO 대표 마흐무드 압바스는 오슬로 협정에 서명하여 팔레스타인 국가 당국이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일부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PLO는 또한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테러리즘 종식을 약속했다.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어 요르단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두 번째 아랍 국가가 되었다. 이스라엘 정착촌과 검문소의 지속과 경제 상황의 악화로 이 협정에 대한 아랍인들의 지지는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살 공격으로 인해 협정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중의 지지는 시들해졌다.19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은 협정에 반대했던 극우 유대인 이갈 아미르에 의해 평화 집회를 떠났다가 암살당했다.
1990년대 말 베냐민 네타냐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헤브론에서 철수하고 와이강 각서에 서명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1999년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바라크는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레바논 남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새 천년을 시작했다. 정상회담에서 바라크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계획을 제시했다. 제안된 국가는 가자 지구 전체와 예루살렘을 공유 수도로 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90% 이상을 포함했다. 양측은 회담의 실패에 대해 서로를 비난했다. 리쿠드 지도자인 아리엘 샤론이 템플 마운트를 방문한 후,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되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평화 회담의 결렬로 인해 아라파트가 봉기를 사전에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샤론은 2001년 특별선거에서 총리가 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샤론은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계획을 실행했고 이스라엘 서안 장벽 건설에도 앞장섰으며 인티파다를 종식시켰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스라엘인 1,063명, 팔레스타인인 5,517명, 외국인 64명이 사망했다.
2006년 7월에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역에 대한 포격 공격과 두 명의 이스라엘 군인에 대한 국경 간 납치로 한 달 동안 지속된 제2차 레바논전쟁이 발발했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의 원자로를 파괴했다.2008년 말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이 결렬되면서 이스라엘은 또 다른 분쟁에 돌입했다. 2008-2009년 가자 전쟁은 3주 동안 지속되었고 이스라엘이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한 후 끝났다. 하마스는 완전한 철수와 국경 통과 개방을 조건으로 자체 휴전을 선언했다. 로켓 발사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휴전은 유지되었다.
2012년 11월 14일, 하마스 최고 군사령관(야전사령관) 아흐마드 자바리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암살된 것을 계기로 가자 지구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하마스의 까삼 로켓 보복공격(반격)이 맞섰다. 이스라엘은 2014년 7월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고조된 이후 가자 지구에서 또 다른 작전을 시작했다. 2021년 5월에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에서 11일간 전투가 벌어졌다.
2010년 9월, 이스라엘은 OECD에 가입하도록 초청받았다. 이스라엘은 유럽연합, 미국, 유럽자유무역연합, 터키, 멕시코, 캐나다, 요르단, 이집트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2007년에는 라틴계 이외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메르코수르 무역블록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2010년대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연맹 국가들 간의 지역 협력이 강화되어 평화협정(요르단, 이집트)과 비공식 관계(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튀니지)가 체결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안보 상황은 전통적인 아랍-이스라엘 주최국에서 전환되었다. 이란-이스라엘 대리 분쟁은 1979년 혁명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혁명 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적대감에서 점차 나타나 남레바논 분쟁(1985~2000년) 동안 헤즈볼라에 대한 이란의 은밀한 지원으로 이어졌고 2005년부터는 근본적으로 대리 지역 분쟁으로 발전했다.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대한 이란의 개입이 증가하면서 분쟁은 2018년 초까지 대리전에서 직접 대결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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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문사회
문화
참고자료
- 〈이스라엘〉, 《나무위키》
- 〈하티크바〉, 《나무위키》
- 〈이스라엘/경제〉, 《나무위키》
- 〈이스라엘〉, 《두산백과》
- 〈이스라엘〉, 《위키백과》
- 〈이스라엘의 국장〉, 《위키백과》
- "Israel", Wikipedia
- 〈이스라엘 기후 및 재해〉, 《두산백과》
- 〈이스라엘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고대 및 중세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근현대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Israel〉, 《요다위키》
- 〈[url 제목]〉, 《사이트명》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