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조지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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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조지아섬(South Georgia Island)은 남대서양에 위치한 섬으로 영국의 해외 영토인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South Georgia and the South Sandwich Islands)의 일부이다. 사우스조지아섬의 동서 방향 길이는 167.4km, 너비는 35km, 면적은 3,528km²이다. 주요 정착지이자 수도는 영국 남극 조사 연구소인 그리트비켄(Grytviken) 근처의 킹 에드워드 포인트(King Edward Point)로 인구는 약 20명이다.[1]
개요
사우스조지아섬은 영국령인 포클랜드제도 에서 동쪽으로 약 1,400km 떨어져 있다. 사우스조지아섬에서 남동쪽으로 700km 떨어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영어: South Sandwich Islands)와 함께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를 이룬다. 섬은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빙하와 만년설로 덮여 있는 황량한 산악 지형으로, 앨라디스(Allardyce)와 샐브젠(Salvesen) 두 개의 산맥을 따라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가 11개나 있다. 중심 능선이 파게트산(Mount Paget)에서 2,935m까지 올라간다. 북쪽 해안은 수많은 만과 피오르드(협만)가 발달하여 있어 좋은 항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1675년 유럽인들에 의해 발견된 사우스조지아는 혹독한 기후와 고립성으로 인해 토착인구가 없었다. 영국의 선박 HMS 레절루션(Resolution)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은 이 섬에 대한 최초의 착륙, 조사, 지도를 작성하였고 1775년 1월 17일 그는 이 섬을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3세(George III)의 이름을 따서 조지아 섬(Isle of Georgia)이라고 명명하면서 영국 소유라고 주장했다. 역사를 통해 여러 포경 기지에 간헐적으로 인구가 흩어져 포경 및 물개 사냥 기지 역할을 했는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비켄(Grytviken)이었다. 이 섬의 유일한 취락으로 고래잡이 전성기에는 1,000명이 넘던 상주인구가 있었다. 섬은 연중 강한 서풍이 부는 극 기후로 여름인 1월의 기온이 0~19℃ 정도이다. 대부분의 강수는 눈의 형태로 내리며,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선박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육상에서는 일부 지역에서만 툰드라 식생을 비롯한 극히 소수의 식생이 자라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펭귄과 바다표범, 그리고 1900년대 옮겨온 순록이 서식하고 있다.[2][3]
역사
사우스조지아섬은 아마도 1675년 런던의 상인 안토니 데 라 로체(Anthony de la Roché)에 의해 발견되었을 것이며, 초기 지도에 로체 섬(Roche Island)으로 명명 되었다. 섬은 1756년 6월 28일 또는 29일 생말로(Saint-Malo)에서 운항하는 레온(León)이라는 상업용 스페인 선박에 의해 목격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1756년 6월 29일 성 베드로의 날(St Peter's Day)에 탐험되었고 따라서 스페인 이름 성 베드로섬(Isla San Pedro)이라고 명명하였다. HMS 레절루션(Resolution)의 선장 제임스 쿡(James Cook)은 사우스 조지아의 첫 착륙, 조사, 지도를 작성했다. 해군에 의해 위임된 대로 1775년 1월 17일 그는 영국을 위해 섬을 점령했고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3세(George III)의 이름을 따서 조지아 섬(Isle of Georgia)이라고 명명했다. 이 섬은 탐험가 던컨 카르세(Duncan Carse)에 의해 조사되었다. 그는 1951-1957년 사우스조지아 서베이(South Georgia Survey)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섬 내부의 상당 부분을 조사했다. 카르스산(Mount Carse)과 카르스 포인트(Carse Point)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61년 그는 사우스 조지아의 외딴 지역에 은둔자로 살았다. 카르세는 섬의 남쪽 해안에 있는 두클로즈 헤드(Ducloz Head)에 집을 지어 겨울을 지내려고 했다. 그러나 실험 3개월 만인 5월 파도가 밀려와 그의 캠프가 파괴됐다. 그는 116일 후 선박과 접촉할 때까지 겨우 겨울을 날 수 있는 충분한 장비를 인양했다. 그의 지식과 매핑은 포클랜드 분쟁 동안 영국인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인들이 레이트 하버(Leith Harbour) 항구에 도착하여 아르헨티나 국기를 섬에 게양했다. 포클랜드 전쟁(Falklands War) 이틀째인 4월 3일 아르헨티나 해군이 섬을 점령했다. 사우스조지아는 4월 25일 파라케트 작전(Operation Paraquet) 중 영국군에 의해 탈환되었다.[4][5]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영어: South Georgia and the South Sandwich Islands)는 대서양 남쪽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이다. 가장 큰 섬인 사우스조지아섬과 그보다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들은 남대서양 본바다와 스코샤해의 경계가 되고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남쪽은 웨델해가 된다. 1775년 영국인 제임스 쿡이 처음으로 발견하였으며, 1908년 정식으로 영국의 영토가 되었다. 사우스조지아의 그리트비켄을 중심으로 20세기 초까지 포경업의 전진 기지로 활발하게 이용되었지만, 1965년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현재는 영국 남극자연환경연구소의 과학 기지 2곳만 운영되고 있다. 현재 상주하는 주민은 없으며, 일반인의 이주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제도와 함께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1982년 포클랜드 전쟁 기간 동안에 아르헨티나가 사우스조지아 섬을 일시적으로 점유하기도 하였다. 행정사무소는 포클랜드 제도의 스탠리에 있으며,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는 킹에드워드포인트의 과학 기지에 행정관이 체류하면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포클랜드 제도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분쟁 지역으로 간주된다. 극도로 차가운 해류가 섬 주변을 찬공기로 만들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무쌍하고 독한 편이다. 겨울의 경우 가장 높은 기온이 0도 정도이고 여름인 1월이 돼서야 10도 정도로 올라간다. 겨울의 최저 기온은 영하 5도 정도이고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균 강수량은 1,500mm로 다소 많은 편이며 1년 내내 대부분의 경우 눈이나 진눈깨비, 기타 종류의 강우가 내린다. 편서풍이 일 년내내 불며 기후에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동쪽 지방이 좀 더 따뜻한 편이다. 주변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탓에 배로 사우스조지아 제도에 가기란 상당히 어렵다. 제도 주위의 바다는 남극 해류에 의해 항상 차갑다. 이 때문에 겨울에는 유빙이 자주 출몰하기도 하며 남쪽 지방일수록 이 기간이 더 길어서 보통 5월에서 11월 후반까지 이 현상을 볼 수 있다.[6]
역사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는 1775년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무인도였던 사우스조지아와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를 발견하고 영국의 영토로 선언하면서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1904년 노르웨이의 포경업자들이 그리트비켄(Grytviken)에 최초의 정착지를 건설한 이후 계절에 따라 포경과 과학 탐사 기지로 이용되었다. 영국은 1908년 공식적으로 사우스조지아와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를 합병하여 가장 가까운 해외 영토인 포클랜드 제도의 속령으로 편입시켰다. 1916년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이 자신이 이끌던 남극 도보횡단탐험대가 고립되면서 구조 요청을 위해 처음으로 사우스조지아 섬을 횡단하였을 뿐, 사우스조지아의 내부는 미지의 세계로 계속 남아 있었다. 영국은 1945년 킹에드워드포인트(King Edward Point)에 과학 기지를 건설하였지만, 패짓 산(Mount Paget)의 최초 등반을 포함한 섬 내부 지역의 탐사는 이보다 한참 뒤인 1964~1965년에서야 이루어졌다. 아르헨티나는 1927년부터 포클랜드 제도와 마찬가지로 사우스조지아와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1976년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남쪽 끝에 있는 서던툴레(Southern Thule) 지역에 최초로 주둔하였으며,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사우스조지아 섬을 점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영국군의 주둔지가 만들어져 2001년까지 유지되었다.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는 1985년까지 포클랜드 제도에 속해 있었으나, 이후 별도로 영국의 해외 영토(overseas territory)가 되었다. 1993년에는 어업전관수역(exclusive fishing zone)을 12해리에서 200해리로 확대하였다.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분쟁 지역으로 간주된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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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사우스조지아섬〉, 《위키백과》
- ↑ 〈사우스조지아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위치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 〈사우스 조지아 주〉, 《요다위키》
- ↑ "South Georgia", Wikipedia
-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위키백과》
-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사우스조지아섬〉, 《위키백과》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위키백과》
- 〈사우스 조지아 주〉, 《요다위키》
- "South Georgia", Wikipedia
- 〈사우스조지아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위치와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