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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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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순자(중국어:荀子xún zǐ)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후기의 철학자이다.

개요[편집]

순자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예(禮)를 강조하여 유학 사상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순자의 사상은 전한(前漢) 말기에 <손경신서(孫卿新書)> 32편으로 정리되었고, 당(唐)의 양량(楊倞)은 여기에 주(註)를 붙이고 20권 32편으로 다시 정리했으며 명칭을 <손경자(孫卿子)>라 하였다. 오늘날 <손경신서(孫卿新書)>는 망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며, 양량(楊倞)의 주석본이 간략히 <순자(荀子)>라고 불리며 전해지고 있다. 순자의 저술은 당시 이미 성문(成文) 부분이 있었으나, 현존의 《순자》 20권 32편은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당시 있었던 322편을 편집하여 《손경신서(孫卿新書)》 32편으로 편찬한 것을, 당(唐)나라의 양량(楊倞)이 편(編)의 순서를 바꾸고 주(註)를 붙여 《손경자(孫卿子)》라 하였고, 후에 간단히 《순자》라 불리게 된 것이다. 《순자》에는 부(賦) 10편의 저작이 있으며 지금은 2편으로 줄여서 수록되어 있다.[1]

순자는 천인분이(天人分二)의 입장을 제시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방치하면 갈등과 투쟁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으므로 화성기위(化性起僞)를 강조하였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예(禮)를 도덕 규범의 근거나 통치의 표준으로 삼는 예치(禮治)를 강조하였다.

《순자》[편집]

《순자》는 중국 주(周)나라 때의 유학자 순자의 사상(思想)을 집록한 책이다. 처음에는 《손경신서(孫卿新書)》라고 하였다. 문헌학적(文獻學的)으로는 편(篇)의 순서에 따라 수신파 전승(修身派傳承)이 6편, 치국파(治國派) 9편, 이론파(理論派) 6편, 나머지는 순자 문인들의 잡록(雜錄)으로 유별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권학(勸學) ·예론(禮論) ·성악론(性惡論)이 중심을 이룬다.

공자(孔子) 이후 맹자(孟子)에 의하여 정비된 유교는 내면적 ·주관적인 입장만이 강화되었으므로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예(禮)의 사상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하였다.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천(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늘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천공(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하늘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으로서는 귀중한 뜻을 지녔으나 유교의 전체적 역사에서 볼 때는 이단적(異端的)이었다.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예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예는 순자의 경우 성인(聖人)이 정한 사회규범(社會規範)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하였다.

《순자》는 인간의 수양(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선(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며 예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즉, '인성(人性)은 악(惡)'이며 '날 때부터 이(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爭奪)과 살육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교정(矯正)하는 '사법(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위(僞:人爲)에 의해서만 치세(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 하여, 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는 성악설(性惡說)이 태어났다. 송대(宋代) 이후 이 성악설과 천(天) ·인(人) 분리설로 인하여 이단시되어 왔으나 그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한대(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순자의 관점과 사상[편집]

순자의 사상은 공자(孔子)·자궁(子弓)을 스승으로 하고 유가(儒家)의 실천 도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들보다 한층 합리적이며, 더욱이 전국사상(戰國思想)의 여러 유형을 지양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의 사상사적(思想史的) 위치는 서양철학사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교된다.

순자는 인간을 공동체 '군(羣)' 안에서의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 궁극의 실천목적을 묵가(墨家)의 사상을 취하여 그 공동체, 즉 윤리적 질서체(秩序體)의 이념에 둔다. 그 질서는 법가적(法家的)으로, 개인의 '분수'를 타율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나, 다시 그것을 초월하여 유기적·합목적적 격률(合目的的 格律) '성왕(聖王)의 제(制)와 예의'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리하여 객관적 규범에 의한 실천적 합리론(合理論)이 형성된다.

전통적인 종교 관념 '하늘[天]'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고 현실적이며,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명가사상(名家思想)에 대하여서 역시 비판적이다. 그리하여 실념론적(實念論的) 입장에서 개념 종속관계와 범주론(範疇論)을 거론하는 진보된 논리적 사고를 나타내며, 오직 명사(名辭)의 타당성은 합목적 사회관습(合目的社會慣習) '왕제(王制)'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노장(老莊)의 변증적(辨證的) 사변(思辨)의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상과는 가장 대조적이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欲)과 지(知)가 있는 자주적 목적체(自主的目的體)로 보는 유가(儒家) 부동(不動)의 바탕에 선다. 동시에 원존재(原存在)와 의의활동(意義活動)을 구별하고, 특히 후자의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합리적 인위(人爲)인 '위(僞)' 주의를 주장하였다. 종래 한동안 순자는 '성(性)은 악(惡)이고, 선(善)한 것은 위(僞)'라는 성악론자(性惡論者)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맹자처럼 인간성의 직접 확충(擴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생득적(生得的)인 의욕을 악한 것이라 부정함으로써 선한 의의활동이 있다. 즉 인간의 정신은 주관적으로는 다면(多面)으로 작용하나 그것을 부정하여 객관적 규범에 귀일(歸一)함으로써 후자의 목적으로 전환하고, 더구나 자주적인 자율과 타율, 개인과 공동체와의 일치된 합리적 실천이 완수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순자의 정치사상은 강력한 예치주의(禮治主義)를 취한다. 순자의 사상은 하나의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완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크다. 송대(宋代) 학자들의 비난은 순자의 맹자 비판과 성악설(性惡說)의 오해에 의한 것일 뿐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또 순자의 유가경전(儒家經典)을 전한 공적이 인정된다.

순자의 사상의 획일성과 현실적 요구에서 진(秦)·한(漢)의 제국주의가 편승하기 쉬운 점이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진·한 초(初)에 그의 학파가 활동한 것을 보아도 오히려 전제주의에 대한 비판이 되는 것이었다. 한갓 순자의 사상은 전국시대의 주관적 실천설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가 미숙하기는 하나 계승을 나타내고 있듯이 합리적 윤리사상으로의 전환의 거보(巨步)를 내딛고 있는 것인데, 아직 전통에의 의존과 실천합목적관(實踐合目的觀)의 제한에 불철저함이 있었던 것이다.

성악설[편집]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생(生)의 충동이 일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이러한 측면이 성장하여 서로 쟁탈하는 싸움이 일어나고 사회적 혼란이 생긴다. 여기서 도덕 질서가 파괴되는 것이라고 보았으므로 이를 가리켜 인성이 악하다고 규정지은 것이다. 순자가 말하는 인성은 욕망을 의미하고 선악은 사회적 치란(治亂)을 의미한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선한 방향으로 그것을 교정(矯正)할 수가 있다고 보았다.

순자는 교육의 수단으로 이상적 지도자 선왕(先王)이 제정한 예의(禮義)와 사법(師法)을 들고 있다. 예의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표준이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하고 맹자는 인과 의(義)를 강조하였다. 이는 모두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발하는 요소이고 천명(天命)에 통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순자의 예와 의는 외재적(外在的)인 규정이다. 사회적 집단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강제된 것이었다.

순자는 도가의 자연관을 받아들여 유가의 천도관(天道觀)을 극복, 변질시켰다. 천(天)이 바로 자연이라고 이해하고 초자연적 존재인 천명을 부정하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고 도가가 주장하는 무위자연을 역시 거부하였다. 여기에서 순자는 천의 역할과 인(人)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자연을 자연으로 파악하고 그 자연을 인간에게 봉사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자연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간의 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 인간의 자각적(自覺的)인 능력을 크게 자부(自負)하였다.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자연개조의 욕구를 개인에게 적용시킨 논리가 바로 성악설이다. 성악설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악의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고 선왕이 제정한 예의를 가지고 이를 교정하자는 의욕의 표현이었다.

순자의 공의와 공동체주의[편집]

순자의 양생은 학문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조화에서 읽을 수 있다. 인간은 혼자서 스스로 설 수 없음을 논파하고 있다. 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예가 필요하고 예를 바르게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홀로 당당히 서있는 맹자의 대장부와는 다른 관계지향적인 인간상이다. 자신이 바르게 서기 위해서 예라고 하는 학문적 근거와 스승이라고 하는 실천적 근거가 따라야 하는 전인격적인 인간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각각의 인격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절대 원칙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대화와 합의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순자는 개인의 의견보다는 스승이라는 더 나은 인격체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결론을 얻고자 했다. 이해하자면 스승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이 존재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나은 기술,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스승으로 삼아서 더불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순자는 정의(正義)가 아닌 공의(公義)를 주장한다. 공의는 반드시 공익(公益)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남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론이다. 내 주장을 관철하기보다는 나를 낮추고 남의 생각을 귀 기울이는 겸손함을 통해 생각을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순자는 노인과 가난한 부류 같은 약자를 배려해야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남이 모르도록 베푸는 선행과 선행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동기를 통한 실천을 강조한다. 이렇듯 공익의 실천을 통해 사욕(私欲)을 억제하고 공의가 실현되어 최종적으로 공동체주의의 완성을 기대하고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순자(Xunzi,荀子,BC 298?~BC 238?)〉,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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