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룡
익룡(翼龍, 영어: Pterosaur, 그리스어: πτερόσαυρος, pterosauros, 프테로사우로스에서 온 말로 '날개달린 도마뱀'이라는 의미)은 '익룡' 분지군, 혹은 익룡목에 해당하는 하늘을 나는 파충류이다. 익룡은 대중매체와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 흔히 하늘을 나는 공룡으로 지칭되곤 하지만 지배파충류에 속하는 하늘을 나는 공룡이 아닌 동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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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익룡은 날개가 있는 용이라는 뜻으로,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부터 백악기까지 공룡과 함께 살았던 지배파충류로서 지구 역사상 최초의 동력비행 척추동물이자 지구 역사상 비행이 가능한 가장 거대한 동물을 진화시킨 무리이다. 지배파충류, 단궁류, 어룡, 장경룡, 바다도마뱀류, 메트리오링쿠스류 및 해양 파충류 등의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파충류형들과 같이 엄밀히 말해서는 공룡이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공룡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많다. 새처럼 날아다니는 생물이고 부리와 긴 목, 날개 등이 어느 정도 닮았으며 당시 새와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한 지질시대의 고생물이다보니 간혹 시조새, 박쥐나 그 조상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는 공룡(조류)과 근연 관계이긴 하지만 직계 선조나 후손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평행진화한 수렴 진화의 사례이다. 몸길이 약 60cm로서 큰 눈 뒤에 측두창(側頭窓)이 2개 달렸으며 전안와창(前眼窩窓)은 1개이다. 입에 길쭉하고 뾰족한 이가 나 있다. 목이 긴 대신 등은 짧고 튼튼하며 긴 꼬리 끝에 키 비슷한 모양의 막(膜)이 붙어 있다. 앞다리의 네 번째 발가락이 길게 늘어나 익막(翼膜)의 지주 구실을 하며 다섯번째 발가락은 없어졌고 그 밖의 발가락은 작은 갈고리 모양으로 퇴화되었다. 백악기의 프테라노돈(Pteranodon)은 최대의 익룡으로, 날개너비가 약 8m에 이르며 이가 없고 턱뼈가 부리모양으로 늘어났다. 머리뼈 뒤쪽은 볏 모양이고 뒤쪽으로 늘어났으며 꼬리와 치열은 퇴화되었다.[2]
특징[편집]
익룡은 해부학적으로 볼 때 비행을 위해 조상인 파충류로부터 매우 큰 변화를 겪었다. 익룡의 골격은 새의 뼈와 마찬가지로 속이 비었고 공기로 차 있다. 가슴뼈에는 비행을 위한 근육이 부착될 수 있도록 용골돌기가 발달해 있으며 커다란 뇌는 비행과 관련하여 특화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의 익룡에서는 어깨 위의 척추뼈가 합쳐져 '노타리움'(notarium)이라고 불리는 뼈가 되어 비행 중에 몸통을 단단하게 해주고 견갑골을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날개[편집]
익룡의 날개는 피부와 기타 조직들로 이루어진 비막으로 되어 있다. 비막은 각 팔에서 가장 긴 네번째 손가락에서부터 몸의 양옆을 따라 발목까지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익룡의 날개는 피부로 이루어진 가죽같은 구조로 매우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으나 연구에 의해 비막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조로 능동적인 형태의 비행에 적합한 것임이 밝혀졌다. 바깥쪽 날개(날개의 끝부분에서 팔꿈치까지)는 '액티노피브릴'이라고 불리는 섬유가 촘촘히 자리잡아 날개를 강화해 준다. 액티노피브릴 자체는 세 개의 뚜렷히 구분되는 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쳐져 있어 십자모양 패턴을 형성한다. 액티노피브릴의 실제 기능은 물론 이것이 정확히 어떤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한 구성 (케라틴, 근육, 탄력성 구조 등등) 에 따라 날개의 바깥쪽 부분을 단단하게, 혹은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비막은 또 얇은 근육층과 섬유질 조직, 그리고 고리를 이루는 핏줄로 된 독특하고 복잡한 순환계를 가지고 있다.
대형 익룡의 날개뼈에서 보이는 속이 비어 있는 구조와 최소한 한 개의 표본에 보존된 연질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익룡은 호흡에 사용되는 기낭 (아래의 고생물학 부분을 볼 것) 시스템을 비막에까지 확장시켰다.
익룡의 날개 구성요소[편집]
익룡의 비막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날개의 가장 앞부분인 전비막(propatagium)으로 손목과 어깨 사이에 위치하며 비행 시에 전연(leading edge)을 이룬다. 이 부분은 어떤 표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첫 세 손가락을 포함할 수도 있다. 팔비막(brachiopatagium)은 날개의 주된 구성요소로 길게 늘어난 네번째 손가락과 뒷다리(뒷다리의 정확히 어느 부분까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종에 따라 달랐을 수 있다.) 사이를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최소한 일부 익룡 그룹들은 다리 사이, 어쩌면 꼬리까지 연결하는 꼬리비막(uropatagium)을 가지고 있었다. 꼬리비막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소르데스에 대한 연구에서는 다리 사이를 연결하지만 꼬리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이 경우 다리비막(cruropatagium)이라고 할 수 있음) 보았다 프테로닥틸루스류가 아닌 익룡은 넓은 꼬리/다리비막을 가지고 있었으나 프테로닥틸루스류는 다리 사이에만 비막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 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프테라노돈은 특히 꼬리의 형태로 볼 때 꼬리비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익형골(pteroid)로 알려진 뼈는 익룡에게만 있는 것으로 손목에 연결되어 손목과 어깨 사이에서 전비막을 받쳐준다. 익룡의 첫 세개 손가락 사이에 막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전비막이 예전의 복원도에서 흔히 그려졌던 것처럼 익형골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익형골의 위치 자체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었다. 매튜 윌킨슨과 같은 과학자들은 익형골이 앞쪽으로 뻗어 있어 전비막을 길게 늘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관점은 크리스 베넷의 2007년 논문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크리스 베넷은 익형골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다른 뼈와 연결되지 않으며 앞으로 뻗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였고, 전통적으로 생각되어왔던 것처럼 몸 쪽을 향했다는 것을 보였다.
형태학적, 발생학적, 그리고 조직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익형골은 골질화된 연골이 아니라 진짜 뼈였다. 익형골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손목뼈가 변형된 것일 수도 있고, 손바닥뼈, 혹은 새로 만들어진 뼈일 수도 있다.
익룡의 손목은 익형골을 제외하면 두 개의 몸쪽 손목뼈와 네 개의 바깥쪽 손목뼈로 이루어져 있다. 성체 표본에서는 몸쪽 손목뼈가 하나로 합쳐져 신카팔(syncarpal)을 이루며 바깥쪽 손목뼈 중 세 개가 합쳐져 바깥쪽 신카팔을 이룬다. 하나 남은 바깥쪽 손목뼈는 중앙손목뼈 (medial carpal)로 불리며 바깥쪽 신카팔의 앞쪽 표면에 위치한 긴 융기부와 연결된다. 중앙손목뼈에는 움푹 들어간 부분이 앞쪽, 아래쪽, 그리고 몸 중앙 쪽에 있는 데 이곳에 익형골이 연결된다.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익룡의 주 비막인 팔비막이 다리에 연결되는지, 연결된다면 어느 부분에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어 왔다. 람포린쿠스류인 소르데스, 아누로그나티드인 제홀옵테루스, 그리고 산타나 층에서 발견된 프테로닥틸루스류를 보면 최소한 일부 종에서는 비막이 다리까지 연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생 박쥐와 날다람쥐를 보면 비막의 범위는 상당한 변이가 있기 때문에 이들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익룡들이 서로 다른 날개 모양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실제로 익룡 팔다리의 비율을 보면 상당한 변이가 있으며 이것은 날개의 구조가 다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전부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많은 종류의 익룡은 발에 물갈퀴를 가지고 있었다.
두개골, 이빨 그리고 볏[편집]
거의 대부분의 익룡 두개골은 긴 턱과 바늘같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화석화된 케라틴질 부리가 보존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빨을 가진 익룡의 경우 부리는 턱의 끝부분에 작게 위치하고 있으며 이빨은 부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부리를 가진 형태 중 발전된 종류는 프테라노돈과와 아즈다르코류과의 경우처럼 이빨이 없으며 더 크고 새와 유사한 부리를 가지고 있다.
두개골의 눈 앞쪽에 여러 개의 구멍을 가진 거의 대부분의 지배파충류와는 달리 프테로닥틸루스류 익룡은 전안와창과 콧구멍이 하나의 커다란 구멍으로 합쳐저 전안와비창(nasoantorbital fenestra) 이라고 불린다. 하늘을 날아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두개골을 만들기 위해 이런 특징이 진화했을 수 있다.
익룡은 화려한 볏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제일 처음, 그리고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예는 프테라노돈 종들의 뒤로 뻗어나온 볏이지만, 몇몇 타페하리드과 익룡과 닉토사우루스 등 몇몇 종류는 뼈로 만들어진 볏의 기저부에 더해 케라틴이나 다른 연질부로 만들어진 굉장히 커다란 볏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새로 발견된 익룡은 물론 오래된 표본들을 더 자세히 조사하면서 볏이 익룡들 사이에서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진 특징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많은 경우 볏이 케라틴으로 연장되어 있거나, 때로는 케라틴만으로만 이루어진 볏이 있어서 화석화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프테로린쿠스(Pterorhynchus)나 프테로닥틸루스(Pterodactylus)의 경우와 같이 볏이 실제로 어느 정도 크기였는지는 자외선 사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프테로린쿠스와 아우스트리아닥틸루스(Austriadactylus)는 모두 볏을 가진 람포린쿠스류로, 원시적인 익룡조차도 볏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발견의 역사[편집]
최초의 익룡 화석은 1784년 이탈리아인 박물학자인 코시모 콜리니에 의해 기재되었다. 콜리니는 익룡 표본을 바다에 살던 동물로 긴 앞다리를 노처럼 사용했던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몇몇 과학자들은 1830년에 독일 동물학자 요한 게오르그 바글러가 프테로닥틸루스의 날개가 물갈퀴처럼 이용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할 때까지 이 해석을 지지했다. 1801년에 조르쥬 퀴비에가 처음으로 익룡이 하늘을 날던 동물이라고 제안했으며 1809년에는 독일에서 발견된 표본에 '프테로-닥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학명이 표준화되면서 이 속의 이름은 프테로닥틸루스(Pterodactylus)가 되었지만 '프테로닥틸'이라는 이름은 대중적으로 계속 쓰였고 익룡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부정확하게 쓰이고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프테로닥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익룡(pterosaur)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프테로닥틸'이라는 용어는 '프테로닥틸루스' 속에 속하는 익룡들, 혹은 좀 더 넓은 의미로 프테로닥틸루스아목의 익룡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다.
비행[편집]
일본인 과학자인 사토 가쓰후미(佐藤克文)는 현생 조류를 이용하여 계산을 해 보고 익룡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익룡의 자세, 이동, 그리고 고생태'라는 책에서는 익룡이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것이 산소농도가 높고 더 밀도가 높았던 백악기 후기의 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가쓰후미 및 '익룡의 자세, 이동, 그리고 고생태'의 저자들은 익룡에 대한 오래된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오래된 이론에 따르면 익룡은 바다새와 유사하며 크기 일부 제한은 아즈다르코류과 및 타페하리드과 등 육상생활을 하는 익룡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서 대런 네이쉬는 현재와 중생대의 대기 조성 차이가 익룡의 거대한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또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점은 이들이 어떻게 이륙을 했는가이다. 초기의 이론은 익룡은 대개 냉혈성으로 칼로리를 태워 열을 얻는 대신 현생 도마뱀처럼 주위환경으로부터 온기를 얻으며 활공을 하는 동물로 보았다. 거대한 익룡이 비효율적인 냉혈성 신진대사를 하면서 뒷다리만 사용해 공중으로 뜰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 새와 유사한 이륙 동작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익룡은 온혈성이었으며 강력한 비행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비행근육을 이용해 네 다리로 걸었다고 한다. 포츠머스 대학의 마크 위튼과 존스 홉킨스 대학의 마이크 하빕은 익룡이 도약하는 방식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라고 한다. 날개가 있는 앞다리는 매우 강력해서 이륙을 쉽게 해주었을 것이다. 일단 공중에 뜨면 익룡은 최고 시속 120km에 달하는 속도로 수천 킬로미터씩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5년에 스미소니언 협회는 항공공학자인 폴 맥크리디에게 절반 크기의 퀘찰코아틀루스 노르트롭아이 모형을 만들어 작동시키게 했다. 이 모형은 땅에서 윈치를 이용해 이륙했다. 1986년에 이 모형을 여러 차례 날렸고 영상은 스미소니언의 아이맥스 영화인 '온 더 윙 (On the Wing)'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형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으며 익룡들에게는 없었던 수직 및 수평 안정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또 꼬리가 실제보다 길어 무게 분포를 바꿔놓았다.
멸종[편집]
예전에는 초기 조류 종들과의 경쟁이 많은 익룡의 멸종을 가져왔다고 많이들 생각했다. 백악기 말에 익룡은 큰 몸집을 가진 종류만 알려져 있다. 작은 종들은 멸종했고, 이들의 생태적 지위는 새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익룡과 조류는 생태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익룡의 쇠퇴는 (만일 쇠퇴가 있었다면 말이지만) 조류의 다양성과는 별 상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악기가 끝날 무렵, 백악기-제3기 대량절멸이 비조류 공룡들과 절대다수의 조류 및 많은 동물들을 멸종시켰는데 이 때 익룡도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가능성으로는 일부 익룡들은 바다에 사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백악기-팔레오세 멸종 사건이 익룡의 먹이가 되는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에 영향을 끼쳐 익룡이 멸종하게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즈다르코과 그리고 이스티오닥틸루스과는 해양성이 아니었다.
최근에 픽시와 오르니토케이루스 등의 오르니토케이루스과 익룡, 프테라노돈과 및 닉토사우루스과, 그리고 타페하라과로 보이는 여러 익룡들이 캄파니아절/마스트리히트절 연대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을 보면 백악기 후기의 익룡 동물군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음을 알 수 있으며, 어쩌면 그 다양성이 백악기 전기에 비해 크게 후퇴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프테로닥틸루스류는 백악기 전기의 초기 방산 이후에는 그리 크게 번성하지 않아 그 다양성이 추락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익룡의 다양성은 전문화되어서 작은 멸종 사건에도 취약하게 되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즈다르코과는 백악기 말기까지 다양성이 증가하여 독특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종의 수가 늘었으며 쇠퇴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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