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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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테섬(Leyte, Leyte Island)는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에 위치한 섬이다. 행정 단위로는 이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이테주와 남부 4분의 1을 차지하는 남레이테주가 속한다. 인구는 약 190만 명이며 남북으로 180km, 동서로 65km로 넓은 곳에서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섬이다. 면적은 7,214km²이다.[1]
개요[편집]
레이테섬은 북동부는 산후아니코해협을 사이에 끼고 사마르섬과 격리되어 있으며, 필리핀에서 8번째로 큰 섬이다. 섬의 중앙부를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큰 산맥이 뻗어 있고 이것과 병행하여 낮은 산악지가 북동부와 북서부에도 뻗어 전체적으로 섬의 골격을 이룬다. 대체로 산지가 많으나 토지가 비옥하여 각지로부터 이주해 오는 사람이 많다. 지명은 에스파냐인들이 처음으로 상륙한 지역의 이름을 붙였다. 쌀, 코코야자, 사탕수수,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며 망간, 유황, 석유 등이 산출된다. 중심 도시는 타클로반이다. 1521년 마젤란이 처음 도착했으며 이후 스페인 식민지배 아래에서 수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1901년 미국에 의한 민간정부가 구성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점령하자 유격전으로 맞섰고 1944년 레이테만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미군이 승리한 후 격렬한 육전(陸戰) 끝에 탈환하였다. 강우량은 중앙 산맥의 동쪽이 많고, 서쪽은 적으나, 양쪽 모두 현저한 건계(乾季)는 없다. 북쪽의 카리가라만(灣)에서 동쪽의 레이테만으로 연속되는 레이테 평야가 가장 규모가 크며, 충적지에서는 벼농사, 그 주변부에서는 옥수수 재배, 서안의 평야에서는 벼농사 외에 사탕수수를, 그 밖에 레이테만 연변에서는 마닐라삼을 재배한다. 중앙 산맥에서는 질이 좋은 목재를 생산하며, 동안(東岸)의 아부요그에는 제재소가 집중되어 있다. 어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2][3][4]
지리[편집]
레이테섬은 레이테만에 접한 일대가 농업에 적합한 평지이며 중앙은 산악 지대이고 열대성 기후와 더불어 밀림이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임업, 벼 농사, 평지에서 사탕수수와 산지에서 코코야자 등의 재배에 의한 농업, 수산업이 있다. 언어는 영어 외에, 북부와 동부에서는 사마르섬 등에서도 사용되는 필리핀의 주요 언어 중 하나인 와라이와라이어(와라이어)가, 서부와 남부 세부섬 등으로 사용되는 세부아노어를 사용하고 있다. 섬 내 최대의 도시는 레이테만에 접한 레이테주의 주도인 타클로반(Tacloban)이다. 목재 적출항으로서 또 이멜다 마르코스 전대통령 부인의 출신지로 유명하다. 섬 서쪽 해안에 오르모크만에 접한 지열발전소가 있는 오르모크(Ormoc) 거리와 남부 레이테주의 주도 마신(Maasin)이 있다.
레이테섬 동쪽은 사마르섬, 레이테섬, 디나가트섬에 둘러쌓인 레이테만이 필리핀해(태평양)로부터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동쪽에서 북쪽에 걸쳐 인접한 사말섬은 좁은 곳에서 폭 2km 정도의 산후아니코해협에서 갈라지고, 여기에 일본의 융자로 지어진 필리핀 최대의 다리인 산후아니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북쪽에는 칼리가라만에 푹 패인 빌리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빌리란섬(빌리란주)이 있다. 레이테섬 북쪽 해안의 사마르섬, 빌리란섬, 마스바테섬, 루손섬 등에 둘러싸인 해역은 사마르해이다. 남쪽 민다나오는 수리가오해협에서 갈라지고 있다. 서쪽에는 오르모크만이 있고 카모테스해를 사이에 두고 세부섬이 있고, 카니가오해협을 사이에 두고 보홀섬이 있다. 레이테섬에서 이 섬에 페리가 운행하고 있다.
역사[편집]
레이테섬 주변은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부터 말레이 계열의 민족, 비사야인이 살고 있었으며, 중국 및 동남아시아 등과의 교역을 통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영주(다투 또는 라자)를 받드는 많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16세기에 들어 많은 스페인 함대가 들어와 스페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레이테섬 남쪽 바다에 있는 리마사와섬은 1521년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 최초로 가톨릭 미사를 연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1543년에는 루이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가 사마르섬 등을 돌아 본 후 레이테섬에 와서 이 제도를 스페인 펠리페 왕세자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나스 제도’로 이름지었고, 이것이 ‘필리핀’의 이름 유래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편집]
레이테만과 그 주변 해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세계 해전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격전지가 된 ‘레이테만 전투’의 무대로 유명하다. 더글러스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 부대는 1944년 10월 20일 레이테만에 상륙, 여기에서 필리핀 탈환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23일 더글러스 맥아더가 세르히오 오스메냐와 함께 도착) 이후 필리핀의 결전, 레이테섬 전투가 섬 전체를 배경으로 벌어졌지만, 일본군은 물자 보급 수송선이 도중에 침몰되어 보급 중단으로 8만명 이상의 군인이 전사와 아사로 거의 전멸한 참패를 당했다. 살아남은 병사는 세부 등으로 개별적으로 탈출했지만, 생환율은 3% 정도였다. 또한 많은 섬 주민이 일본군과 게릴라전에 참가했으며, 전투로 인해 일반인도 많이 희생되었다. 섬 안에는 맥아더 장군의 필리핀 상륙을 기념하는 기념물이 착륙 지점인 해안에 있으며, 일본군 병사 위령비가 곳곳에 있다.[5]
비사야 제도[편집]
비사야제도(타갈로그어: Kabisayaan, Visayas)는 필리핀을 구성하는 세 지역 중 하나로, 루손섬과 민다나오섬 사이에 위치하며 파나이섬, 네그로스섬, 세부섬, 보홀섬, 레이테섬, 사마르섬 등 큰 섬 7개와 수백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도시로 세부가 있다. 하위 행정구역은 4개의 지방으로 나뉘고 이 지방은 16개 주로 나뉜다. 지방은 서쪽부터 동쪽 순으로, 5개 주가 속한 웨스턴비사야 지방, 2개 주가 속한 네그로스섬 지방, 3개 주가 속한 센트럴비사야 지방, 6개 주가 속한 이스턴비사야 지방의 4개 지방으로 구성된다. 웨스턴비사야 지방은 아클란주, 앤티크주, 카피스주, 기마라스주, 일로일로주로 구성된다. 네그로스섬 지방은 네그로스옥시덴탈주, 네그로스오리엔탈주, 센트럴비사야 지방은 보홀주, 세부주, 시키호르주, 이스턴비사야스 지방은 빌리란주, 레이테주, 서던레이테주, 이스턴사마르주, 노던사마르주, 사마르주로 나뉜다. 지역 최대 도시는 상업, 관광의 중심지이자 수도 마닐라에 이어 필리핀 제2위의 대도시권인 세부주의 세부 시이다. 그 외 네그로스옥시덴탈 주의 바콜로드, 일로일로주의 일로일로시 등의 주요 대도시가 있으며 행정상 총 38개의 도시가 소속된다. 1565년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세부를 필리핀의 첫 식민도시로 삼고 비사야 제도를 점령하였으며 스페인 식민기의 문화, 종교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주민은 말레이인의 후손인 비사야족이 다수 거주하고 비사야어에는 약 30여 개 언어가 속하는데 서부는 일롱고어, 중부는 세부아노어, 동부는 와라이와라이어를 주로 사용한다.[6]
비사야제도의 섬들이 토질도 좋고 상호간의 교통도 편리하여 역사적으로는 필리핀에서 가장 먼저 개척되었으며, 현재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제도 동쪽 섬들의 동쪽 연안부는 강수량이 많고 특히 12∼2월이 현저한 다우기인데 비하여 서쪽 섬들의 서쪽 연안부에서는 우기(5~11월)와 건기(12∼4월) 구분이 분명하다. 제도 중부의 섬들은 우량도 적고 또 현저한 건조기도 없는 중간 기후이다. 주민은 개화(開化) 말레이계에 속하는 비사야족(族)으로 필리핀의 각 종족 중 최대의 인구를 차지한다. 이들은 몇 가지 언어집단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동부의 와라이와라이, 중부의 세부아노, 서부의 힐리가이논이 큰 언어집단을 이루고 있다. 해안부와 충적평야에서 쌀, 사탕수수 등이 재배되며, 행정상으로는 16개주(州)로 구분되어 있다.[7]
타클로반[편집]
타클로반(영어: City of Tacloban, 와라이어: Siyudad han Tacloban, 타갈로그어: Lungsod ng Tacloban, 세부아노어: Dakbayan sa Tacloban)은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580km 떨어진 항구 도시로 동비사야 지방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며 레이테주의 주도이다. 1944년 10월 20일부터 1945년 2월 27일까지 일시적으로 필리핀 연방 정부의 소재지였다. 2013년 11월 8일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타클로반은 이 곳에 최초로 거주한 카바톡 부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칸카바톡이라 불렸다. 그들은 현재 산토 니뇨 교회(Sto. Niño Church) 근처에 정착했다. 그 후에 구모다(Gumoda), 하라징(Haraging), 그리고 후라우(Huraw) 부족이 근처에 그들의 정착지를 세웠는데, 후라우 족의 정착지는 지금의 시청 위치이다. 이들이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이곳은 칸카바톡이었다. 16세기 말, 칸카바톡은 스페인 지배하의 팔로 지역 정부에 속해있었고, 사마르 주 바세이 군의 일부였다. 1770년 아우구스티노회가 자리를 잡았지만, 그 후 1813년 프란치스코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사이 이름이 타클로반으로 바뀌었다. 타클로반은 어부들이 새우나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하는 대나무 낚시 장비 타클러브(Taklub)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어구를 사용하는 장소를 뜻하는 타라클루반(Tarakluban)이 타클로반으로 바뀐 것이다.[8]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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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레이테섬〉, 《위키백과》
- ↑ 〈레이테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레이테 섬(세계지명 유래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레이테<섬>(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레이테〉, 《요다위키》
- ↑ 〈비사야 제도〉, 《나무위키》
- ↑ 〈비사얀 제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타클로반〉,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 〈레이테섬〉, 《위키백과》
- 〈타클로반〉, 《위키백과》
- 〈비사야 제도〉, 《나무위키》
- 〈레이테〉, 《요다위키》
- 〈레이테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레이테 섬(세계지명 유래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레이테<섬>(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비사얀 제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