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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구 === | ||
+ | 이스라엘의 총인구는 9,396,820명(2021)으로, 유대인 6,894,000명(74%), 아랍인 1,966,000명(21%), 그리고 '기타'로 분류되는 467,000명(5%)으로 구성된다. 전 세계 유대인 810만여 명 중 47%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유대계 이스라엘은 58%가 세속파, 18%가 시온주의 정통유대교, 12%가 하레디(Haredi Judaism, 초정통파 유대교), 7%가 개혁유대교, 6%가 보수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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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의 인구성장률은 OECD 평균인 0.6%보다 세 배 이상 빠른 2%(2015)이다. 그 배경으로는 건국 이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 유대인의 이민과 적극적인 출산 장려정책에 따른 높은 출산율을 들 수 있다. 2020년 기준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3.01%로 OECD 평균인 1.6%보다 3배 이상 높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출산율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유대계의 출산율 증가는 초정통파 유대인의 다산 문화에서 비롯된다. 초정통파 유대인의 가족당 평균 자녀 수는 7명으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이 12%이다. 2020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82세, 여성 84.9세로, 평균 83.5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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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93%가 도시 거주자이다. 도시화 비율은 연간 1.64%(2015-2020 추정)로 높은 편에 속한다. 2019년 기준 주요 도시 인구는 예루살렘 94만 명, 텔아비브 46만 명, 하이파 29만 명, 리숀레지온 25만 명 정도이다. 2017년 기준 평균 인구밀도는 ㎢당 387.4명이며, 텔아비브 지역(Tel Aviv District)이 8,167.8명으로 가장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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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종족 === | ||
+ | 이스라엘의 인구는 [[유대인]], [[아랍인]], [[드루즈인]], [[베두인족]]으로 구성된다. 건국 후 이스라엘 영토에 남은 약 15만 명의 아랍인이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는 나라다. 주류 집단인 유대인은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으로 셈족 계통에 속한다.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존속했던 유다왕국의 히브리인(Hebrews)에서 기원한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사마리아인과 구별된다. 기원전 8세기부터 디아스포라로 존재해 온 유대인은 독일과 네덜란드에 정착한 뒤 동유럽으로 이주한 아슈케나짐(Ashkenazim), 스페인과 포루투갈에 살다 16세기에 이베리아반도로 추방된 스파라딤(Sparadim),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한 미즈라힘(Mizrahim)으로 구분된다. 이민 국가의 특성상 유대인 사이에서도 출신지와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혼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1990년대에는 러시아와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의 유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인구구성이 더욱 다양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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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민과 귀화 === | ||
+ |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해외 유대인의 이민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대인은 유대혈통인 모의 자녀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로 규정되며 귀환법(Law of Return 1950)에 따라 모든 유대인은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1970년 개정법은 유대인의 자녀와 손자녀, 그 배우자로 국적취득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귀화의 경우를 제외하고 다중국적 보유가 인정되나, 아랍계 국적자는 해외에 7년간 거주 시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 정부는 이민통합부를 설치하여 유대인 이민을 촉진하고 통합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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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언어 === | ||
+ | [[파일:히브리 문자.png|썸네일|300픽셀|히브리 문자]] | ||
+ | 공용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이다. 미국의 이주민들과 영국의 신탁통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 외국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주민 대부분은 영어로 어느 정도 이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구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계 이스라엘인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계 유대인의 경우 영어 구사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다. 그리고 정통파 유대인을 중심으로 이디시어도 많이 사용한다. 각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에 따라 아랍어, 이란어, 루마니아어, 부하라어 포르투갈어가 쓰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국립학교는 지역에 따라 히브리어 학교 또는 아랍어 학교로 나뉘어지며 히브리어 학교는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아랍어 학교는 히브리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서 가르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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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어는 4세기가 되면 아람어 등에 밀려 이미 죽어버린 언어여서 예배에서나 쓰일 뿐이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이 의사소통하자니 그나마 예배 언어였던 히브리어밖에 마땅한 게 없었다. 그래서 사어였던 히브리어를 부활시켜 공용어로 지정했다. 19세기부터 다시 시온주의자들의 일상 언어로 쓰이기 시작한 히브리어는 한때 죽어버린 언어가 다시 되살아나 한 나라의 공용어가 되고 수백만 명의 모어가 된 유일한 언어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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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유대인 비율은 74%이지만 막상 히브리어를 모어로 하는 이스라엘인 비율은 60%밖에 안 된다. 20세 이상으로 한정하면 50%도 안 된다. 나머지 유대인들도 히브리어를 할 줄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제2언어로 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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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에는 아직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고 이들 중에서는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아랍어도 히브리어와 함께 이스라엘의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히브리어 연구소와 함께 아랍어 연구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7일에 이스라엘 정부가 히브리어만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고 아랍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하는 유대민족국가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반발이 심해졌다. 그러다가 2018년 7월 19일에 유대민족법이 통과되면서 아랍어는 특수지위의 언어로 격하되었다. 2018년 8월 8일 아랍계 의원이 아랍어로 사퇴서를 쓰자 의회에서 거부당하고 히브리어로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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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종교 === | ||
+ | [[파일:바위 돔과 통곡의 벽, 예루살렘..jpg|썸네일|300픽셀|바위 돔과 통곡의 벽, 예루살렘.]] | ||
+ | 이스라엘은 1948년 《이스라엘건국선언문》을 바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스라엘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로마가톨릭교회, 루터교,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다. 각각의 종교 공동체는 안식일, 신앙생활, 내부 문제 운영에 있어 자유롭다. 종교법원은 결혼, 이혼 같은 개인의 신상 문제에 국한해 관할권을 가진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 전까지인 안식일에 종교 의례를 행하며, 개신교와 가톨릭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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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에서는 안식일과 유대교 명절에 랍비와 선창자(cantor)의 주도로 의례가 치러진다. 라비는 히브리어로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을 의미하며, 토라를 바탕으로 유대교 율법을 가르칠 뿐 아니라 각종 의례의 주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기도는 성인 남자 10명이 모이는 '미냔(minyan)'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며 매일 세 번의 기도를 드린다. 기도할 때 남성은 어깨를 덮는 쇼울인 '탈릿(tallit)'과 성구함인 테필린(Tefillin)을 두르고 키파를 쓴다. 보통, 시나고그 안에서는 성별이 분리되는데, 예루살렘 성전 '서안 벽(Western Wall)'과 같은 성소에서 남성은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하며, 성별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종아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성소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종이 키파와 파란 천이 준비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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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의식적인 세정식이 거행되며 성별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이슬람교 회당인 모스크에서 예배인들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리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금요일은 전통적으로 무슬림의 안식일로 대중설교가 있다. 설교와 종교 의례는 이맘이 주도한다.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로는 예루살렘 바위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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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예배의 형식과 횟수는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신부나 목사에 의해 거행되고 남녀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 신자는 주로 아랍인이나 외국인이며, 극소수의 유대인 신자가 있다. 아랍인은 주로 나사렛과 하이파같은 도시에 거주하며, 그리스 가톨릭,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에 속한다. 기독교 성지로는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나사렛 수태고지교회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하이파에는 19세기 중반 이란에서 창시된 독립종교인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 | ||
+ | [[파일: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마운트 스코푸스 캠퍼스.jpg|썸네일|300픽셀|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마운트 스코푸스 캠퍼스]] | ||
+ | === 사회복지 === | ||
+ | 이스라엘의 사회복지제도는 1954년에 설립된 국가보험청(National Insurance Institute)을 통해 국가연금보험법, 장애보험법, 산재법, 소득지원법 등 보편주의적 사회보험 정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점차 자산 조사에 기초한 선별적 복지와 범주적 급여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노령연금, 장애연금, 장애인 돌봄수당, 장애아동수당, 이동수당, 상이군인 장애수당 외에도 실업보험과 소득부조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아동수당, 한부모가족지원 등 가족 지원 프로그램과 더불어 출산 장려를 목적으로 출산급여와 모성 수당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수혜 범주를 확대하여 이민 장려와 이민자 통합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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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육 === | ||
+ | 이스라엘의 교육체계는 초등학교 6년(1~6학년), 중학교 3년(7~9학년), 고등학교 3년(10~12학년)으로 구성되며, 의무교육법(1949)과 교육법(1953)에 따라 5세부터 18세까지 무상 의무교육 대상이다. 2-4세 유아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다닐 수 있다. 대부분 일반 국공립학교에서 수학하지만, 국립종교학교, 사립학교, 정통유대계 학교, 아랍계 학교, 드루즈계 학교 등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학시험인 사이코메트리(ha-Psikhometri, Psychometric Entrance Test)를 치룬다. 이스라엘에는 9개의 종합대학과 52개의 단과대학이 있으며, 종합대학은 대부분 세계대학 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대표적으로 [[테크니온-이스라엘 공과대학]](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1912), [[예루살렘 히브루대학교]](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1918), [[바르일란 대학교]](1955), [[텔아비브 대학교]](1956), [[하이파대학교]](1963), [[네게브 벤구리온대학교]](1969) 등이 있으며, 자연과학 석박사 프로그램인 [[와이즈만 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1934)가 있다. | ||
== 문화 == | == 문화 == |
2023년 2월 23일 (목) 15:32 판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 이스라일, 영어: Israel)은 서아시아의 공화국이자, 지중해 및 홍해의 연안국이다. 정식 명칭은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이다.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유대교와 사마리아교 및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시온주의 이념을 추종한 유대인들에 의해 건국됐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토이기도 하다. 접경국으로는 육지를 통해서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바다를 통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키프로스가 있다.
개요
이스라엘은 중동·서아시아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에 하나뿐인 유대 공화국이자 서아시아에서 유일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다. 자국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국제법상 인정되는 수도는 텔아비브이다. 주요 국가 기관과 기업, 대부분의 해외공관이 텔아비브에 위치한다. 이스라엘은 총 6개의 행정 구역(mehozot)으로 구성되며, 주요 도시로는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리숀레지온, 아슈도드, 베르셰바 등이 있다. 2021년 현재 인구는 940만 명이며, 유대인(74.2%), 아랍인(21%), 기타(4.8%)로 구성된다. 언어는 히브리어가 공용어, 아랍어가 특수 지위 언어이며, 영어와 러시아어가 상용된다. 주요 종교는 유대교(74.2%)와 이슬람교(17.8%)이다. 대한민국과 1962년 4월 10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국가 상징
국호
정식 국호는 이스라엘국이다. 히브리어로는 '메디나트 이스라엘(מְדִינַת יִשְׂרָאֵל / Medinát Yisra'él)', 아랍어로는 '다울라트 이스라일(دَوْلَة إِسْرَائِيل / Dawlat ʾIsrāʾīl)'이라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료공개로 제공하는 시청각 자료들(한국어, 히브리어, 영어, 프랑스어) 및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이 공들여 출판한 베스트셀러들은 '이스라엘국'이라고 일부러 표시했는데, 고대 이스라엘(이스라엘 왕국)과 전혀 다른 '현대 국가'로 구분하면서 인민주권의 자유국을 상징한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에서 거주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호칭, 유대인 자연인의 흔하디흔한 성명, 옛날의 유대인 왕국들, 현대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토 등등을 가리키는 낱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라고만 하면 가리키는 대상이 불분명하기에 정식 국호는 '이스라엘국'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각종 문서에서 이스라엘을 서술하는 데 곤란한 점이 생긴다. 간단한 원칙은 일반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고 쓰되 법적 책임이 있을 만한 부분에는 '이스라엘국' 또는 'the State of Israel'이라고 적는 것. 이스라엘 외무부 홈페이지에서 조차 이렇게 자국을 지칭한다. 가령 이스라엘 외무부 홈페이지에서 국가상징물 항목을 보면 국기를 'Israel Flag'라고 적어 놓고 설명에는 'The flag of the State of Israel...' 이라고 정식 국호를 명시해 놓았다. 이는 한국 외교부의 공식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가정보 설명에는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적어놓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체결한 조약문에서는 정식국호인 '이스라엘국'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주 이스라엘 대사관 역시 정식 명칭을 '주이스라엘국대한민국대사관'이라고 적는 등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널리 사용하되 법률적 책임이 따르거나 엄밀하게 현대 이스라엘 국가체제를 지칭해야 하는 맥락에서는 '이스라엘국'으로 적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의 기도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같지만,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국가 이스라엘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민족적으로 완전한 남남이라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참여한 사람, 즉 모든 그리스도인을 이스라엘이라 하며 이 항목의 이스라엘과 구분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 항목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을 떠올린다.
국기
이스라엘의 국기는 파랑과 하얀색 2가지 줄이 있고 가운데에 6각형 별이 있는데, 이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부른다. 파랑과 햐얀색은 유대교 기도자들의 어깨걸이 빛깔이었는데 당시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이 두 색깔로 된 수녀복을 입은 적이 있었다. 1897년 시온주의자 회의에서 승인되었고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 일부에서는 '유대인의 기' 라고도 불린다.
이스라엘의 주변국을 비롯한 아랍 국가에서는 반아랍 및 시오니즘 찬양과 이슬람의 신성함을 모독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불쾌한 기피 대상이자 사용이 금지된 국기로 알려져 있으며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면 성조기와 함께 아랍인들 손에 불태워지는 수난을 자주 겪는다. 아예 소각 전용 이스라엘 국기를 파는 기업도 있다.
아랍 쪽에 많이 퍼져있는 음모론으로 이스라엘 국기 위아래에 그려진 두 개의 파란 줄이 실은 나일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뜻하며 이 두 강 사이의 영토는 신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이니 모두 정복하겠다는 시온주의적인 메세지가 숨겨져 있다는 설이 있다. 이런 영토 확장 야욕을 보이는 일부 시오니즘 극단주의자들이 있긴 하지만(서울대 인남식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구 20-30% 가량이 이 의견에 동조한다고 한다.) 적어도 국기의 파란 줄은 상술했 듯이 기도용 어깨걸이를 본딴 것으로 영토 확장 야욕과는 무관하다.
국장
이스라엘의 국장은 1949년 2월 10일에 제정되었다.
파란색 방패 안에는 일곱 개의 촛대를 가진 유대인의 전통적인 촛대인 하얀색 메노라가 그려져 있으며, 메노라 양쪽에는 하얀색 올리브 가지가 감싸고 있다. 메노라 아래에는 "이스라엘"("ישראל")이라는 국명이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다. 메노라는 3000년 동안 유대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고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되었다. 올리브 가지는 평화를 의미한다.
국가
이스라엘의 국가는 하티크바(התקווה, HaTiq'vah[1])로도 불리며 희망이라는 의미이다.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단조로 된 국가이다.
시인인 나프탈리 헤르츠 임베르(נפתלי הרץ אימבר)가 작사하였고, 슈무엘 코헨(שמואל כהן)이 작곡하였으며,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시오니스트 회의에서 국기와 함께 찬가로 제정되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의 국가로 정해졌다. 멜로디가 매우 구슬프게 느껴지는데 과거 유럽과 나치 독일, 러시아 등으로부터 온갖 억압과 수난을 당해온 유대인들의 비극을 연상케 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는 망국기에 만들어진 대한제국 애국가도 마찬가지.
하티크바는 아랍에서는 시오니즘 찬양 등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느낄 수 있는 노래 구절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블타바(몰다우)와 비슷한데, 두 곡 모두 이탈리아 르네상스 음악인 라 만토바나의 곡조를 따온 것이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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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면적은 28,789㎢로 작은 편이며 영남권 전체 넓이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스라엘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레바논과의 국경부터 가자 지구까지 지중해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 평야(מישור החוף / Mishor Hakhof)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형으로 토질이 비옥하여 텔아비브와 하이파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몰려산다. 해안 평야에서 동쪽 내륙으로 가면 북부 갈릴리 지역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등 산지와 구릉으로 구성된 고지대가 존재한다. 평균 고도 600m 정도의 고지대 사이사이마다 비옥한 계곡 지형이 존재하며 수도 예루살렘 역시 이곳에 존재한다. 다시 고지대에서 동쪽 요르단과의 국경쪽으로 가면 갈릴리 호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인 요르단 강을 따라 이어진 요르단 강 계곡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쪽의 네게브 사막(מדבר הנגב / Midbar Hanegev)은 극히 건조한 지형으로 내륙의 베르셰바나 이스라엘의 유일한 홍해안 항구도시인 에일라트 등을 제외하면 거주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네게브 사막 지역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넘겨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훨씬 더 비옥한 골란 고원을 빼앗자마자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곳에 몰려갔다. 현재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돌려달라는 시리아 측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미 이 일대에 100,000명이 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주,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부터 골란고원에 살아온 시리아 국민들도 20,000여 명이나 그대로 살고 있다.
지중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 홍해와도 약간 접하는데 이스라엘의 홍해 해안선은 고작 11km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약간 걸친 수준. 홍해의 유일한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라트가 있다. 바로 옆에 요르단의 도시 아카바가 있는데, 여기도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다. 그래도 가상의 적 아랍 국가들에 포위되어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좁은 이스라엘에게는 이 작은 홍해 연안이 엄청나게 중요한 요충지로, 제3차 중동전쟁 때도 해상 봉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위치상으로 요충지에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의 전통적인 육로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를 거쳐 시리아로 빠져나간 다음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로 향하며, 인구 분포 역시도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양상이다. 여기서 가나안의 '좁은 통로'에 이스라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포인트.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물질적 의미에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생태
이스라엘하면 사막 국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에 맞지 않게 스키장도 있다. 이스라엘 북부 헤르몬 산에 있는데 이곳은 정상이 사시사철 눈에 뒤덮여 있다. 그런데 눈이 있음에도 기온은 좀 덥다고 한다. 눈이 내리지 않지만 2015년 12월에 60년 만의 대폭설이 내려 눈 치우는 데 몇 달이나 걸렸다.
다만 국토의 70%가 사막이라 척박한 땅이며 기본적인 물조차도 구하기 쉽지 않다. 성경 시대에는 중동 전역에 비옥한 삼림이나 초원이 있었고 농사도 활발히 지었다. 과거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라 하여 중동 지방의 문명과 생산력을 담당한 꿀땅이었다. 다만 몇천 년간 이어진 농사로 지력이 고갈되다 못해 물을 찾으려고 바닥을 파고들어 가 모조리 사막화가 진행되었을 뿐이지. 현대에 들어가서 사우디든 리비아든 이집트든 이스라엘이든 간에 재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사막화가 워낙 심각해서, 시리아고 요르단이고 이라크고 이란이고 죄다 농경지에 삼림이 펼쳐진 시절이 있었음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특히 남부의 사막 지대는 너무나 척박하고 물이 없다 보니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되어 인구가 굉장히 적다. 그래도 오스만 제국 시절보다 눈과 비가 훨씬 더 많이 내리는 편인데,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절부터 산림조경 관변단체 유대 민족 기금(Keren Kayemet LeYisrael)이 2020년대까지 약 3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녹화사업이 증발→상승→냉각→응결→구름→강우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살고 있는 야생동물은 주로 사막에 사는 동물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다양한 편이다. 북부도시에서는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는 사자 및 아라비아오릭스 등 덩치 큰 포유류나 토종 개구리도 있었지만, 지금은 죄다 멸종된 상태다.
포유류로는 가젤이나 아이벡스 등 유제류가 있으며, 맹수로는 표범이나 자칼도 서식한다. 그 밖에도 쥐나 다른 포유류도 존재하며, 황량한 곳에는 전갈이나 뱀 등도 있다. 곤충류도 나비나 딱정벌레 등도 많은 편이다. 사해 등 호수 지역에는 황새나 사다새 등이 찾는 편이다. 지중해와 맞닿은 곳에서는 돌고래들도 많으며, 연안에는 산호들도 다양하게 자생한 편이라 많은 물고기도 모이는 편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유명한 물고기 중 하나인 향어도 이스라엘이 원산지다.
기후
이스라엘의 기후는 작은 면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이스라엘의 기후 분포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여러 지역간의 지형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로 뚜렷하게 교체되는 계절현상을 보여준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계속되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하고 다습하다. 이스라엘은 일년이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기후는 계절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특성으로 인해 더위, 추위, 이슬, 서리, 바람, 눈, 얼음 등의 다양한 기후 현상을 보인다. 해안은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 ~ 37°C까지 올라간다. 한편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여서 여름에도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내리는 비 사이에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한다. 남부 네겝 지방은 사막 기후이기에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대체로 겨울에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도 비와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의 바람으로 견디기 힘든 여름철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건조하고도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더욱 낮게 만든다. 유다 광야와 사해 주변 지역은 사막기후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이스라엘의 기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스라엘 각 지역의 지형적 차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 9개월 동안의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된다. 바다에 가까운 해안 평야나 중앙 산지의 서편 곧 바다 쪽에 연한 기슭에는 농경에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여름철에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 가까울수록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물부족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굉장히 적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 부족 국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텔아비브 수영장이나 여러 가지 시설로 물을 많이 쓴다. 게다가 사해 물도 해마다 1m씩 수위가 낮아지는데 이스라엘이 막대한 산업용수로 써서 문제라고 한다. 시리아나 요르단도 책임이 있지만 그 사용량에서 이스라엘이 워낙 엄청나므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또 물이 많이 필요한 농작물이나 과일, 꽃 재배에 매달리고 있다.
매우 당연하게도 자국 내 물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로 요르단과 튀르키예를 통한 물 수입이 엄청나다. 하지만 최근에 요르단과 튀르키예도 덩달아 물 부족에 시달리면서 수출을 중단해서 더 이상 물 수입을 못 하게 되었다. 비단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많은 물을 수입해 오는데, 이 비용은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군비만큼 크다. 이스라엘도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에 해수를 담수화시키는 기술에 있어서도 많은 성과를 내놓고 있으며 이것으로도 부족한 물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중동 걸프만에서도 해수를 담수화시키기는 하지만. 해수 담수화 외에도 폐수의 70%를 정수하여 다시 재사용하고 있으며 나중엔 90%를 정수할 계획이다. 중동의 물이 석회질이 많은 만큼 여기도 석회질이 많아 정수기 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스라엘은 관개 시설을 발전시켜 갈릴리 호수와 사해, 요르단강에서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고 있다. 나무 하나하나에 호스를 연결시켜 수분을 공급해서 2000년 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지역을 지상 낙원으로 만들었다. 그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도 이곳에 농사를 지으려 수없이 노력했지만 돈과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이집트 쪽은 완전 사막이지만 이스라엘 쪽은 그냥 다 녹색이다. 당장 구글 어스로 경계를 살펴봐도 비슷한 광경이다. 이건 아랍인들이 유달리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어서 그런 거다. 미국 내 기업으로부터 지원받기 수월했던 것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이스라엘의 사례가 조금의 왜곡이 섞여서 홍보되는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 이집트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막을 개간해서 농사를 짓고 있고 호주나 미국에서도 황무지를 지하수를 이용해 농경지로 개간한 사례가 있다. 그중 잘 알려진 리비아 대수로 공사 사업이 바로 수로 부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벌인 사업이고 사우디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오일머니를 투자해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집트에서도 사람 살 땅이 워낙 좁다 보니 사막 개간 사업이 활발하다. 이라크도 1970년대 당시에는 재개간 산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기도 했다. 이들 나라의 면적이 이스라엘보다 넘사벽급으로 넓다보니 구글 어스로 보면 여전히 사막이 대다수이고 녹지는 드문드문 보이는 수준이지만. 그러나 이렇게 하는데도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로 하다 보니 수자원의 소모가 심각했고 이는 나중에 수자원 부족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물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여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1979년부터 수자원이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물값도 세계에서 비싼 편에 속한다. 게다가 가뜩이나 많지 않은 수자원을 이스라엘이 독점하고 물값을 이스라엘인보다 비싸게 받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증오가 굉장하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오슬로 협정 이래로 우물 파기가 금지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자주 도는 돌림병이 오염된 물을 마셔서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사해와 갈릴리 호수의 수위가 갈수록 낮아지는데 갈릴리 호수의 경우엔 바닥을 드러낸다고 할 정도로 낮아지고 있다. 강수량도 갈수록 감소하다 보니 가뭄 또한 심해져 비까지 내리지 않는 때가 많아져 팔레스타인만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스라엘에서 물을 얼마나 중요히 여기는지, 모든 수자원을 일원화하여 관리하고 상수도 매설 지도를 국가 기밀로 여겨 절대 공개하지 않을 정도다. 이스라엘인들도 비가 내리면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서로 물을 받으려고 애쓴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처럼 비가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수자원청은 이를 우려하여 사해와 갈릴리 호수의 취수 규정을 제한하라고 지시해 사실상 물 공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수자원청의 취수 제한은 농림부 및 농민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지만 수자원청은 이대로 간다면 이스라엘의 물은 씨가 마른다며 취수 규정을 못 바꾼다고 고집하고 있다. 게다가 수자원청은 물을 많이 쓰면 누진세를 부과하는 법안까지 의회와 정부에 계속 내고 있다. 의회와 정부는 그렇게 하면 국민의 반발이 심해져 골치 아프다며 수자원청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수자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국가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해수 담수화로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특히 이스라엘의 해수 담수화는 현재 이스라엘 전체 물 사용량의 70%를 충당할 정도다.
이렇게 해수 담수화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이스라엘 내에서도 우려가 굉장히 크다. 이스라엘인들은 담수화된 물보다 지하수와 호숫물 같은 천연수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담수화로 저렴한 물을 공급해 주어도 비싼 돈 주고 천연수 사 마시려 한다. 하지만 문제가 해수 담수화 사업은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고비용 사업이다. 여기에 비중이 커지면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 + 정치적 부담을 준다. 특히 담수화 사업을 한다고 쓴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에 물값은 천연수보다 훨씬 더 비싸다.
무엇보다 중동의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스라엘도 높은 인구 증가율과 도시화 때문에 물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다 보니 이스라엘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의 경우 사막화로 갈수록 넓어지고 있어 이제는 이스라엘 국토의 70%에 달하여 이스라엘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사막화로 인한 수자원 고갈로 이스라엘 땅이 언젠가는 사람 살 곳이 못 될 것이라는 암울한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다른 중동권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레바논에서 수자원을 빼앗아 오던 이스라엘이지만 레바논도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어 갈수록 사정이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여기도 물 부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에서는 미래에 자국 위기가 다름 아닌 물 부족이라고 우려하고 여러모로 머리를 쓰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수자원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중동권 나라 문제로 이미 중동은 대표적 물부족 지역이라고 알려진 상태. 이스라엘과 늘 싸우는 원수인 이란 역시 오랜 개발과 인구증가로 인해 자연도 변해가며 수자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란은 이스라엘보다 더 내륙국가이고 강수량도 더 작은데다가 인구는 이스라엘의 11배에 가까우니 그만큼 물 수요가 많은데다가 기후 온난화로 더 심해지고 있다. 이란은 지하수마져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물부족이 심각해 이란에서 물이 별로 없는 곳은 이슬람 성직자들도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할 정도다. 따라서 이란은 농촌 실업이 심각한데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물을 탈취할 정도이며 부잣집에도 수영장을 보기 힘들다. 이래서 미국은 이란을 제제할 때는 식량, 물로 이란의 목을 조이는데 이란 내부에선 서방이 증오스럽지만 이대로 가다간 굶어죽겠다며 협상하자는 여론이 높아져 할 수 없이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간 것이었다.
재해 및 환경문제
이스라엘은 고대부터 인간의 많은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환경문제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사막화로 인한 모래폭풍, 사막 지역 특유의 강우 집중과 홍수, 사막화와 토양침식 문제는 과거부터 이스라엘에 살던 주민들을 괴롭히는 문제였다. 최근의 환경문제는 물의 공급 문제이며 이와 결합된 사막화와 토양염류화 문제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스라엘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지진과 화산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에는 큰 지진이 없었으나, 역사시대의 수차례 지진 피해 기록이 있으며 앞으로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화산분출은 이스라엘의 지질에서 여러 부분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의 페레스 산(Mount Peres, 929m)이 대표적인 화산이다. 이스라엘과 그 근방에서 최근에는 분출한 적이 없지만 지체구조상 가능성이 없다고 하긴 어렵다.
역사
유대민족의 역사는 기원전 17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중 2천 년의 역사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스라엘 땅(Eretz Israel)으로 돌아와 야훼 신앙을 확립했다. 기원전 11세기에 건국된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각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차례대로 멸망하면서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영국위임통치기에 서서히 유대인의 유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된 직후 전 세계에 이산되어 있던 상당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고대 및 중세
이스라엘에는 기원전 10만 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어 최소한 10만 년 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야훼 신앙을 확립한 것은 기원전 13세기 경이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기원전 11세기에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졌으며 기원전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하여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기원전 930년 솔로몬 왕 사망 후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왕국로 분열되었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둔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해 유대인들이 추방당했으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둔 유다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 점령당해 바빌론 유수, 즉 유대인의 이산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제국을 정복한 페르시아와 키루스의 칙령에 따라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 후 4세기 동안 페르시아(기원전 538~333),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32~142), 하몬스 왕조(기원전 142~63)의 지배를 받았으며, 비교적 정치적 통합 하에 유대인의 생활은 풍요로운 편이었다.
로마의 지배와 아랍의 통치
로마 지배기인 기원전 63에서 313년 사이에는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마지막 요새였던 마사다가 함락됨으로써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다. 4세기 말 비잔틴 제국 창건으로 이스라엘 땅은 기독교화가 되었다가(313~636),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었으나 비잔틴 군대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여 유대인은 다시 추방되었다.
636년에서 1099년 사이에 4세기 동안은 아랍이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에 '바위 사원'을 세웠다. 이스라엘 땅은 12-13세기에 아랍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그 뒤 이집트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다가 1840년부터 1917년 사이에 다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근현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11월 2일 영국이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을 발표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했으며, 1918년에 팔레스타인을 점령, 1920년에 위임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유럽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독특한 공동체 조합 형태의 농촌 거주집단인 키부츠와 모샤브를 세우고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을 다졌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는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시온주의 운동이 급속히 전개되면서 유대인의 이주가 급증했고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1947년 국제연합(UN)이 제안한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아랍 측이 거부했으나,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독립 선포 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의 침공으로 제1차 중동전쟁인 '이스라엘독립전쟁'이 발발했다. 15개월간 지속된 전투 끝에 이스라엘이 승리했고 UN의 중재로 이라크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과 협상을 거쳐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유다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 해안평야와 갈릴리, 네게브 지역,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관할하기로 했다. 전쟁이 끝나고 유권자의 85%가 참가한 1949년 1월 25일 총선에서 의회가 처음 구성되어, 초대 총리에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대통령에 하임 와이즈만(Haim Weissman)이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11일 UN의 5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휴전 후에도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공격을 받아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다. 1951년 9월에 채택된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반해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통과를 금지하고, 티란 해협(Straits of Tiran) 통제를 강화했다. 1952년 이집트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 공군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시나이반도를 공격하면서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쟁인 ‘시나이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점령했다가 유엔 결의로 철수했으며, 티란 해협이 다시 개방되었다.
1967년 5월 이집트는 티란 해협을 다시 봉쇄하고 요르단과 군사동맹을 체결해 군대를 시나이반도로 이동시켰다. 이에 이스라엘은 6월 5일 남부 이집트를 시작으로 요르단과 골란고원에 선제공격을 가해 유다, 사마리아, 가자,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요르단 관할 하에 있던 동예루살렘까지 확보했다.
이스라엘-이집트 휴전협정이 이루어진지 3년 만인 1973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공격으로 유대력에서 가장 신성한 날인 욤 키푸르(Yom Kippour, 속죄의 날)에 전쟁이 일어났다. 3주간 이어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은 10월 25일 이스라엘이 성공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를 격퇴하면서 끝났지만 약 20일 동안 총 10,000명에서 35,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에서 2,500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했다. 내부 조사는 전쟁전과 전쟁 중 실패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면제했지만 대중의 분노로 인해 골다 메이어(Golda Meir) 총리는 사임했다.
1976년 7월,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향하던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게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이스라엘 인질 106명 중 102명을 성공적으로 구출하는 작전을 펼쳤다 .
분쟁과 평화프로세스
1977년 크네셋 선거는 메나헴 베긴의 리쿠드당이 노동당을 장악하면서 이스라엘 정치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해 말 안와르 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크네셋 앞에서 아랍 국가 원수가 이스라엘을 인정한 첫 사례로 연설을 했다. 이후 2년 동안 사다트와 베긴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1978년)과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1979년)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1978년 3월 11일, 레바논에서 발발한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게릴라 습격은 해안도로 대학살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리타니 강 남쪽의 PLO 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 침공을 감행했다. 대부분의 PLO 전투기는 철수했지만, 이스라엘은 유엔군과 레바논군이 점령할 때까지 레바논 남부를 지킬 수 있었다. PLO는 곧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정책을 재개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PLO는 남쪽으로 침투하여 국경을 넘어 산발적인 포격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공중과 지상에서 수많은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베긴 정부는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이스라엘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장려금을 제공하면서, 그 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과 마찰을 증가시켰다. 1980년에 통과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1967년 이스라엘의 정부 법령에 의해 예루살렘을 합병한 것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일부 사람들이 믿었고 도시의 지위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이스라엘 법률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규정하지 않았으며 동예루살렘을 구체적으로 포함하는 법률도 없었다. 1981년 이스라엘은 사실상 골란고원을 합병했지만 국제적으로 합병이 인정되지는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예루살렘법과 골란고원법 둘 다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러한 움직임을 대부분 거부했다. 이스라엘의 인구 다양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확대되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물결이 1980년대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반면, 1990년에서 1994년 사이, 구소련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은 이스라엘의 인구를 12퍼센트 증가시켰다.
1981년 6월 7일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스라엘 공군은 이라크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방해하기 위해 바그다드 외곽에 건설 중인 유일한 원자로를 파괴했다. 1982년 일련의 PLO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그 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가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고 미사일을 발사한 기지를 파괴하였다. 전투 첫 6일 동안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있는 PLO의 군대를 파괴하고 시리아인군을 결정적으로 물리쳤다. 이스라엘 정부의 조사인 카한 위원회는 이후 베긴과 몇몇 이스라엘 장군들을 사브라와 샤틸라 대학살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을 묻고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을 대학살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샤론은 국방부 장관직에서 사임해야 했다.
1985년 이스라엘은 키프로스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테러 공격에 튀니지에 있는 PLO 본부를 폭격함으로써 대응했다. 이스라엘은 1986년 레바논 대부분에서 철수했지만 2000년까지 레바논 남부 국경 완충지대를 유지했으며, 이곳에서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와 충돌했다. 이스라엘의 통치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폭동인 제1차 인티파다는 1987년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비협조적인 시위와 폭력사태의 물결이 일면서 발발했다. 이후 6년 동안, 인티파다는 더욱 조직화되었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방해하기 위한 경제적, 문화적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그 폭력 사태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PLO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지원했다. 대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격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1992년, 이츠하크 라빈은 그의 당이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들과의 타협을 촉구한 선거에 이어 총리가 되었다. 이듬해 이스라엘 대표 시몬 페레스와 PLO 대표 마흐무드 압바스는 오슬로 협정에 서명하여 팔레스타인 국가 당국이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일부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PLO는 또한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테러리즘 종식을 약속했다.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어 요르단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두 번째 아랍 국가가 되었다. 이스라엘 정착촌과 검문소의 지속과 경제 상황의 악화로 이 협정에 대한 아랍인들의 지지는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살 공격으로 인해 협정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중의 지지는 시들해졌다.19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은 협정에 반대했던 극우 유대인 이갈 아미르에 의해 평화 집회를 떠났다가 암살당했다.
1990년대 말 베냐민 네타냐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헤브론에서 철수하고 와이강 각서에 서명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1999년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바라크는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레바논 남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새 천년을 시작했다. 정상회담에서 바라크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계획을 제시했다. 제안된 국가는 가자 지구 전체와 예루살렘을 공유 수도로 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90% 이상을 포함했다. 양측은 회담의 실패에 대해 서로를 비난했다. 리쿠드 지도자인 아리엘 샤론이 템플 마운트를 방문한 후,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되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평화 회담의 결렬로 인해 아라파트가 봉기를 사전에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샤론은 2001년 특별선거에서 총리가 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샤론은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계획을 실행했고 이스라엘 서안 장벽 건설에도 앞장섰으며 인티파다를 종식시켰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스라엘인 1,063명, 팔레스타인인 5,517명, 외국인 64명이 사망했다.
2006년 7월에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역에 대한 포격 공격과 두 명의 이스라엘 군인에 대한 국경 간 납치로 한 달 동안 지속된 제2차 레바논전쟁이 발발했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의 원자로를 파괴했다.2008년 말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이 결렬되면서 이스라엘은 또 다른 분쟁에 돌입했다. 2008-2009년 가자 전쟁은 3주 동안 지속되었고 이스라엘이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한 후 끝났다. 하마스는 완전한 철수와 국경 통과 개방을 조건으로 자체 휴전을 선언했다. 로켓 발사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휴전은 유지되었다.
2012년 11월 14일, 하마스 최고 군사령관(야전사령관) 아흐마드 자바리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암살된 것을 계기로 가자 지구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과 하마스의 까삼 로켓 보복공격(반격)이 맞섰다. 이스라엘은 2014년 7월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고조된 이후 가자 지구에서 또 다른 작전을 시작했다. 2021년 5월에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에서 11일간 전투가 벌어졌다.
2010년 9월, 이스라엘은 OECD에 가입하도록 초청받았다. 이스라엘은 유럽연합, 미국, 유럽자유무역연합, 터키, 멕시코, 캐나다, 요르단, 이집트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2007년에는 라틴계 이외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메르코수르 무역블록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2010년대까지 이스라엘과 아랍연맹 국가들 간의 지역 협력이 강화되어 평화협정(요르단, 이집트)과 비공식 관계(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튀니지)가 체결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안보 상황은 전통적인 아랍-이스라엘 주최국에서 전환되었다. 이란-이스라엘 대리 분쟁은 1979년 혁명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혁명 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적대감에서 점차 나타나 남레바논 분쟁(1985~2000년) 동안 헤즈볼라에 대한 이란의 은밀한 지원으로 이어졌고 2005년부터는 근본적으로 대리 지역 분쟁으로 발전했다. 2011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대한 이란의 개입이 증가하면서 분쟁은 2018년 초까지 대리전에서 직접 대결로 전환되었다.
정치
이스라엘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이루어진 의회민주주의 국가다. 기관으로는 대통령, 크네셋(Knesset, 의회), 정부(내각), 사법부가 있다. 권력 분산의 원칙을 바탕으로, 행정부는 입법부의 신임을 받아야 하며 사법부의 독립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성문헌법은 없으나, 분야별 기본법이 사실상 헌법 기능을 수행한다. 최고 권력기관은 의회인 크네셋(Knesset)이다. 대통령은 의전상 상징적 국가원수로 의회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7년이다. 대체로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임무를 담당한다. 행정의 실질적 권한은 의회 다수파의 지도자인 총리가 가진다. 현재 대통령은 2021년 7월에 취임한 아이삭 헤르조그(Issac Herzog), 총리는 2021년 6월에 취임한 나프탈리 베넷(Naftali Bennett)이다.
행정부
이스라엘 행정 당국은 정부(내각)이며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내외 여러 업무를 관장한다. 정부는 법적으로 다른 기관에 위임되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사안에 정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의원은 총선 국민 투표에 따라 선출되며, 대통령이 정당 대표들과 협의하여 연정 구성 가능성이 있는 당수에게 총리 후보로서 연정 구성권을 부여한다. 연정 구성권을 부여받은 총리 후보는 28일 이내에 연정을 구성해야 하며, 14일의 추가 연장 기간 내에 구성하지 못하면 다른 정당 대표에게 정부 구성권을 넘겨줘야 한다. 연정 구성에 성공할 경우 국회의 승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후 공식 업무를 개시하게 된다.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 탄핵, 서거, 사임 등의 이유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각료 중 1인을 총리대행으로 임명하여 의회 해산을 제외한 모든 총리의 권한을 부여한다.
입법부
크네셋은 단원제 의회로 이스라엘의 입법기관이다. 의원 정수는 120명, 임기는 4년이다. 선거는 전국이 단일 선거권으로 정당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여 다수 정당의 연립내각이 구성된다. 크네셋의 구성 주기는 보통 4년이지만 임기 중이라도 자체 해산하거나 총리에 의해 해산될 수 있다. 선거 후 새 의회가 공식적으로 구성될 때까지는 퇴임하는 의회가 모든 권한을 지닌다. 크네셋은 본회의에서 15개 상임 위원회를 통해 임무를 수행한다. 건국 당시 크네셋은 제헌의회로 설립되었으나 헌법제정을 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국가입법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규 공공 법안이 법률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크네셋에서 3차에 걸친 독회를 통과해야 한다.
사법부
사법부의 독립은 법으로 보장된다. 법관은 대법원 판사, 법조계 인사, 장관, 의회 의원 등의 공직자로 구성된 특별 지명위원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정년은 70세이다. 이스라엘 법원은 대법원, 지방법원, 특별법원, 종교법원, 치안판사재판소로 분리되어 있다. 이스라엘 법체계는 기본적으로 1948년 이후 제정된 법과 판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의회에서 제정된 법과 독립 선언에 구현된 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 건국 이전에 존재한 법도 유효하다. 이스라엘에는 성문법이 없다. 기본법은 대통령, 의회, 행정부, 사법부, 이스라엘 방위군, 감사원, 직업선택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교
이스라엘은 자국 안보와 경제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제연합(UN) 등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전략협력협정, SDI 연구개발계획 참여, 방위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애로우 대탄도 미사일 공동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 미사일 방어 전략협력협정 등에 의거, 미국과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 인도 등의 지지를 얻어 국제기구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경제, 통상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서유럽 국가들과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EU와는 1995년 자유무역협정체결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 왔다. 특히 독일과는 홀로코스트 보상 차원에서 재정지원과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동유럽과도 소련 붕괴 이후 외교 관계가 재개되어 관광 및 과학기술교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와는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단교한 뒤, 1986년부터 관계가 증진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러시아 유대인의 이스라엘 대량 이민을 계기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스라엘은 중남미 33개 국가 중 쿠바를 제외한 32개 국가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27개국과 수교 또는 복교하여 현재 41개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영토분쟁 문제로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 지역을 점령한 이래,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포격전이 계속되었으며 2006년에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시리아와는 1967년 전쟁 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의 반환문제를 중심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 하지만 요르단, 이집트, 튀르키예와는 비교적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1994년 평화협정 체결 이후 10여 개의 조약 체결을 통해 양국관계의 확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집트와도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경제, 관광 분야에서 교류가 유지되고 있으나 이집트 내 반이스라엘 정서와 유대인 관광객 대상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 예루살렘 문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루살렘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한 198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78호에 따라 이스라엘 본토의 외국 대사관들은 대부분 텔아비브에 상주하고 있지만, 1970년대에는 약 30개국의 대사관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이후 국제사회의 주권국가들 가운데 약 50개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정식 수도로 인정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몇몇 친이스라엘 우방국들은 이스라엘 본토의 자국 대사관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 동맹국
1950년대에는 영국과 프랑스 제4공화국과 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이 이스라엘의 동맹국이었고, 1960년대에는 에티오피아 제국만 유일한 동맹국이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과 이란 제국이 유이한 동맹국이었고, 1980년대에는 미국만 유일한 동맹국이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 미국, 체코, 에티오피아, 싱가포르가 동맹국이었고, 2020년대에 이르러 헝가리나 아제르바이잔도 이스라엘의 동맹국으로 합류했다.
- 정보기관 모사드
해외 정보 기관 모사드는 놀라운 정보 수집 능력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작 능력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국내 정보기관 신 베트도 있으나 외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대한관계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1962년 4월 9일 처음으로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한국이 원유수급 확보와 건설 시장 참여로 중동 지역에 진출하게 되면서 1978년 2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폐쇄되었다가 양국관계가 정상화되어 1992년에 주한 이스라엘 공관, 1993년에 주이스라엘 한국 공관이 차례로 설치되었다. 이스라엘은 남한과 단독수교를 맺었다.
한국 기업들은 아랍권의 대이스라엘 보이콧 정책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피해왔으나, 1990년 1차 걸프전쟁과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평화협정을 기점으로 보이콧 정책이 약화함에 따라 자동차, 휴대폰, 가전제품, 화학 원료, 섬유류, 전자/통신 부품과 같은 상품 수출을 본격화했다. 1995년 이스라엘의 세계무역기구(WTO) 정식 가입 이후 2016년 5월에 한-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가 합의되었으며 2018년까지 여섯 차례 공식 협상을 거쳐 2019년 8월에 협상 타결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강점인 하이테크 원천기술 및 소프트웨어 분야와 한국의 기술 상용화 역량 및 제조업 기반 등을 결합하기 위한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비준 등을 거쳐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이스라엘이 FTA를 맺는 아시아 최초의 국가가 된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가전·전기제품, 합성수지, 건설중장비이다. 1995년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코트라(KOTRA)가 설치된 이후 포스코대우(1999), LG전자(2007), 삼성전자(2008), 글로벌테크(2008) 등 한국 기업이 이스라엘에 진출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휴대폰 사업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폰과 생활가전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자동차 부문에서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판매량이 현지 시장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대기업들의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술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주요 수입품으로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항공기 부품, 과일 등이 있다. 한국에 진출한 이스라엘 유명 기업으로는 아하바(Ahava), 사봉(Sabon), 모로칸오일(Moroccan oil) 같은 화장품 및 바디제품 브랜드, 제약회사 테바(Teva Pharmaceuticals), 탄산수제조기업 소다스트림(SodaStream), 글로벌 관수솔루션 기업 네타핌(Netafim), 방산기업 라파엘(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3D 프린터 제조업체 스트라타시스(Stratasys)가 있다.
2008년 9월에는 대한항공 인천-텔아비브 직항 노선이 신설되어 양국의 인적, 물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2013년 11월 13일에는 양국 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협정이 체결되어 2016년 2월에 발효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18세에서 30세 사이의 양국 청년들이 상대 국가에서 최장 1년까지 체류하면서 관광취업을 할 수 있는 제도로 참가인원은 연간 200여 명이다. 이 외에도 1996년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이스라엘 공연을 시작으로 문화, 예술, 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체류 한국 교민은 상당수가 유학생과 그 가족이다. 이 외에도 대사관 및 지상사 직원들과 그 가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키부츠와 연수 목적의 단기 체류자 등의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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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지방행정은 3단계로 나뉘는데, 광역자치단체인 6개 관구(예루살렘, 중부, 텔아비브, 남부, 하이파, 북부)와 1개 특구(유대아 사마리아)가 있고, 행정시격인 15개 군(郡)이 있으며, 기초자치단체인 시(市)와 읍(邑)과 면(面)이 있다.
오늘날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예전에는 텔아비브가 임시수도(1948년~1977년)였다. 1947년에 유엔 총회에서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 철폐와 함께 가나안의 분리독립을 논의하면서 예루살렘 지역을 유엔이 관리하는 중립지대로 재구성한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전쟁이 발발하여 무의미하게 됐고 1948년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예루살렘 시내를 동서분할로 다스리는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로 대체했다. 1967년의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시를 동서통일해 예루살렘구를 창설했으며,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도시계획을 수립하여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의사당과 정부종합청사와 대법원 및 공안부와 경찰청과[46] 문화복지부처들, 이스라엘은행(이스라엘국의 중앙은행)을 차례로 이전했다. 1977년에 이르러 예루살렘은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탈바꿈했으며, 1980년에 이스라엘 국회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국의 정식 수도임을 성문화한 예루살렘 기본법을 입법했다.
오늘날의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 중앙정부의 수많은 정부부처들이 예루살렘 시내의 으리으리한 정부청사에서 집무하고 있다. 근미래의 총력전에 대비해 경제산업부처, 방위기관(국방부와 참모본부, 육해공군청과 국군사령부들), 국유기업, 증권거래소는 여전히 텔아비브 시내에 있다.
이스라엘 점령지
1967년, 6일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가자 지구, 골란 고원을 포함한 서안 지구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도 점령했지만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의 일환으로 이집트에 반환했다. 1982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의 일부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레바논을 제외한 각 지역에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사시설이 건설됐다.
골란고원과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법에 따라 이스라엘에 완전히 편입됐지만 국제법에 의거하지는 않았다.이스라엘은 두 지역에 모두 민법을 적용하고 거주민에게 영주권과 시민권 신청권을 부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골란 고원과 동예루살렘의 합병을 "무효"로 선언했으며, 그 영토들은 점령된 것으로 계속 보고 있다.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수도의 일부이자 주권 영토로 보고 있기 때문에 미래 평화 정착에서 동예루살렘의 지위는 때때로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대표들 사이의 협상에서 어려운 문제가 되어왔다.
동예루살렘을 제외한 서안지구는 이스라엘 법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간주하고,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약 400,000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은 이스라엘 인구의 일부로 간주되며 크네셋 대표가 있으며 이스라엘 민법 및 형법의 상당 부분이 그들에게 적용되며 그들의 생산량은 이스라엘 경제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대한 법적 권리를 포기하거나 이 지역과의 국경을 정하지 않고 이 지역을 합병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 자체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소유의 차량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 사이에는 국경이 없다. 이스라엘의 합병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스라엘에 편입시키는 "인구학적 위협"에 기인한다. 이스라엘 정착촌 이외에는 요르단강 서안지구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군사통치 하에 있으며,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시민이 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군사 점령 기간 중 가장 오래 지배한 근대사로 보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에 두 개의 주를 만들기로 한 유엔의 결정을 아랍이 거부한 후 1950년에 요르단에 의해 점령되고 합병되었다. 오직 영국만이 이 합병을 인정했고 요르단은 그 이후 PLO에 영토에 대한 권리를 양도했다. 인구의 대부분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난민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1967년 점령 이후 1993년까지 이들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군사정권에 있었다. 이스라엘-PLO 승인서 이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주민과 도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내부 관할 하에 있으며, 이스라엘은 소요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군대를 재배치하고 완전한 군사행정을 재개했다. 제2차 인티파다 기간 동안 증가하는 공격에 대응하여,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서안 지구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외국 영토"로 간주되지만,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함께 가자지구에 대한 육상, 공중, 해상 봉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점령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가자 지구는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이집트에 의해 점령되었고 1967년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되었다. 2005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철수 계획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정착민들과 군대를 영토에서 철수시켰지만, 영공과 해역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수많은 국제 인도주의 단체와 유엔의 다양한 기구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가자지구가 점령된 채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2007년 가자 전투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 이스라엘은 해상과 공군은 물론 국경을 따라 있는 가자 횡단보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인도주의적이라고 간주되는 고립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드나드는 것을 막았다.가자는 이집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유럽연합, PA 간의 협정은 국경 통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통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에 대한 민주주의 적용과 이스라엘이 장악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의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선별적 적용은 비판을 받아왔다.
국방
1948년에 창설된 이스라엘방위군(IDF: Israel Defense Forces)은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며, 국방장관 직권 하에 있는 중장 계급의 참모 총장이 이끄는 합동 사령부의 지휘를 따른다. 각 군은 사예레트 마트칼(Sayeret Matkal), 샤예테트 13(Shayetet13), 샬다그(Shaldag), 669부대 같은 특수정예부대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상응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첩보부대인 '8200부대'는 1952년 설립되어 암호해독과 첩보 신호 수집을 담당하고 있다. 탈피옷(Talpiot)은 1979년에 개시된 이스라엘 엘리트 부대로 강도 높은 테스트를 통해 선발된 요원들이 대학에서 3년간 위탁 교육을 받은 뒤 모사드, 신베트, 군 정보국 등 특수부대로 배속되어 6년간 의무복무한다.
이스라엘은 1949년에 세계 최초로 양성 의무복무제를 도입했으며, 만18세가 된 모든 국민과 영주권자는 남성 3년, 여성 2년간 병역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했거나 출산한 여성, 하레디파(Haredi Judaism)는 병역 대상에서 면제되거나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전역 후 남성은 55세, 여성은 50세까지 예비군으로 훈련과 복무를 위해 정기적으로 소집되며, 전쟁이나 위기 시에 긴급 동원된다. 현재 상비병은 약 18만 명, 예비군은 약 45만 명이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요 전략 방위 무기로는 애로우 대탄도 미사일을 비롯하여 단거리 정밀 미사일, 아이언돔(Iron Dome), 데이비드 슬링, 전투기, 전술 공격 잠수함, 초계함(哨戒艦) 등이 있다. 특히 가자지구로부터 빈번하게 발사되는 로켓과 박격포탄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전천후이동식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이 2011년부터 배치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군비 지출은 국내 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으며 1975년에는 GDP의 30.3%를 국방비로 지출했다. GDP 대비 국방비는 5.2%로 6위이다. 1974년 이래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원조의 특히 주목할만한 기여자였다. 2016년에 체결된 양해 각서 에 따라 미국은 2018년부터 2028년까지 이스라엘 국방 예산의 약 20%인 연간 38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은 2021년 무기 수출 세계 8위를 기록했다. 이스라엘 무기 수출의 대부분은 보안상의 이유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2022년 평화도에서 163개국 중 134위를 기록하며 세계 평화 지수 에서 지속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
영토가 매우 척박하고 땅도 비좁고 인구도 적지만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 IT 분야와 스타트업을 통해 경제가 발전했다. 대부분 군사 기술에 기반해 성장한 굵직한 기업들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기업이 여럿 있는데 삼성전자가 2019년 첫 M&A로 1,700억에 인수해 화제가 되었던 모바일용 광학줌 카메라 모듈 제조 스타트업이었던 "코어포토닉스"가 이스라엘 기업이었으며, 작곡 업계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운드 플러그인인 "Mercury Bundle"을 개발한 업체 "웨이브스 오디오(Waves)"도 대표적인 이스라엘 기업이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의 유대인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방세계, 미국 등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지원이다. 또한 독일로 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배상금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된다. 석유 및 가스 자원도 매장되어 있지만 주변 나라와 관계를 보면 가스 자원 수출을 위한 파이프 건설은 힘들다. 그리고 매장량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자원은 대부분 수입으로 의존한다. 경제체제는 19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했지만 1980년대부터 크게 변모하였다. 사실 이렇게 변모하게 된것도 제4차 중동전쟁 이후로 유가가 폭등하고 외교적으로도 우호국가가 크게 줄면서 이스라엘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고 물가상승률도 최대 445%까지 치솟았기 때문인데, 덕택에 구조개편이 불가피했다.
1인당 명목 GDP는 G7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의 수준과 맞먹으며, 사실상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국가로 경제 활동이 원활하다.
중동권에서 유일하게 OECD 회원국이며 선진국이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은 페르시아만 유역의 상위권 산유국들보다 다소 떨어진다. 이는 PPP를 기반으로 계산한 국민총소득으로도 나타나는데, 2020년 1인당 명목 GNI는 42,600$로 32,960$인 한국보다 높지만 PPP로 물가를 보정했을 때 한국 45,620$, 이스라엘 39,080$로 오히려 밀린다.
산유국들의 경우 물가와 공공요금을 국가에서 통제해서 물가가 싼 편이고 집 걱정도 할 필요가 없으며 교육 등 복지혜택이 괜찮아서 시민권이 있으면 그런대로 잘 사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서 이스라엘은 집값과 집세, 물가가 비싸 삶의 질이 지표 대비 그리 좋지가 않다.
출산율이 2020년 2.9명으로 OECD 국가중 1위로 놀라운 수준을 자랑한다. 선진국들이 대부분 2명 이하로 인구가 줄고 노인들의 나라가 될 걱정이 많은데 반해 이스라엘은 미래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산업, 경제 혁신을 이룬다면 성장 잠재력이 높은 나라이다.
2022년 이스라엘의 1인당 명목 GDP는 55000달러 가량, PPP는 51000달러 가량으로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첨단산업 및 스타트업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4.5%, 국민 1인당 벤처투자액 170달러, 국민 1만명당 연구개발 인력 140명으로 모두 세계 1위다. 한 해에 창업하는 벤처 기업 수가 유럽 전체의 벤처 기업 수를 능가한다. 이스라엘의 '실리콘와디'(와디는 계곡을 의미)로 불리는 헤르첼리아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 연구개발센터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겐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중요한 하이테크센터로 꼽힌다. 인텔 R&D 연구소(코어 아키텍처와 하스웰 개발. 지금도 주력 연구소 중 하나), 인텔 생산 공장, 모빌아이(자율주행 업체, 인텔이 인수 되었고 BMW와 자율주행 협력 중) 등 컴퓨터 반도체 산업에 손을 뻗히고 있다.
항공우주 및 방산업
항공우주, 무기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 분야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IAI, IMI, 라파엘 등의 방산업체들이 이스라엘 기업들이다. 한국군에게도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첨단기술력으로 인정받은 이스라엘제 무기가 많이 도입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은 이스라엘 경제 산업의 핵심 동력 중 하나로, 해외 수출이 약 75%를 차지한다. 2016년도에만 이스라엘 제조업 생산 금액의 10.5%, 고용인력의 14.3%를 차지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 당시 프랑스가 무기금수조치를 시행한 사건을 계기로, 국가 생존 전략 차원에서 첨단 무기체계를 개발·생산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공격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형·전술적 방어 전력체계와 고도의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군사기술의 민간파급 사례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1980년대에 개발된 라비(Lavi) 전투기이다. 이스라엘에서 제조된 최초의 민간 항공기 아라바와 웨스트윈드 비즈니스 제트기71, 인공위성 등이 생산되었으며,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미사일 시스템, 항공기 및 항공기 시스템, 레이다 및 통신시스템, 재래식 무기, 무인기 등이 있다.
국방부는 《국방 입찰의무법, Tender Obligation Law》(1992)에 공개 입찰과 업체 간 자율 경쟁을 보장하며, 그 역할은 기본적인 방산연구개발 정책, 수출전략, 수출통제, 수입 등의 정책 결정에 제한되어 있다. 2010년 이스라엘은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1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2024년까지 총 50대의 F-35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의 주요 방산기업으로는 IAI(Israel Aircraft Industry), Elbit(Elbit Systems), 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IMI(IMI Systems)가 있다.
농축산업
이스라엘은 자원과 노동력 부족, 척박한 토지라는 조건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혁신적인 농업기술을 발전시키고 정부 주도하에 수출산업화를 이룬 대표적인 국가이다. 농업 분야는 농민과 연구자 간 협력을 통한 연구 개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업 연구 개발은 주로 농업부의 농업연구기구(ARO)가 수행하고 있다. 2019년 이스라엘 농림부와 혁신청은 농업기술발전을 목적으로 농업기술분야 스타트업에 R&D 지출의 최대 60%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하우스재배, 화훼, 종자, 비료 및 농약 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하이테크 농업기술 및 개량 농작물을 개발하여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또한,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은 생활하수 80%를 재활용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체 농가의 75%가 스마트 관개시스템을 활용한다. 물 절약 기술 관련 연구는 물의 흐름을 식물의 뿌리 쪽으로 곧장 향하게 하는 점적식 기법과 같은 컴퓨터 제어형 관개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등 동물 보건, 작물 수확량 개선 연구에서 높은 성과를 얻었다. 이런 기술은 나아가 유전자 조작 종자와 바이오 살충제부터 광분해성 플라스틱, 전산화된 관개/시비 시스템에 이르는 시장성 높은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었다.
이스라엘 축산업은 소, 가금, 양, 염소 사육에 집중되어 있으며 낙농업이 전체 축산 생산의 16.5%를 차지한다. 낙농 중에서는 우유가 11.6%, 육류가 4.9%로 생산이 높은 편이다. 이스라엘은 젖소의 품종 개량과 과학적 급여로 세계 최고의 비유량을 구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포도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성서 시대부터 재배되어 로마제국 시기에는 로마로 수출되기도 했다. 포도는 골란고원이 위치한 갈릴리, 샤론 평야, 유대평야, 삼손, 네게브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각 지역 와이너리에서 예약을 통해 시음 행사를 열고 있다.
무역
2017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27.89%), 영국(8.45%), 홍콩(6.9%), 중국(5.41%)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미국(11.7%), 중국(9.44%), 스위스(7.96%), 독일(6.83%), 영국(6.23%)로 주요 수출입 상대 국가는 근방국인 아랍국가에 대비하여 제1세계의 비중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61,150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69,11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가공 다이아몬드(12,294백만 달러, 약 구성품(3,841백만 달러), 의약품(3,091백만 달러), 모놀리식 회로, 디지털 제품(2,711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2,39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4,490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3,447백만 달러), 가공 다이아몬드(3,289백만 달러), 석유(1,933백만 달러), 사진 장비(1,863백만 달러)이다.
서비스업
서비스업의 비중이 GDP의 67%를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높아 관광업이 국가의 중요한 산업이다. 성지여행 수요에 힘입어 관광업도 상당한 국가적 수익인 나라이다. 그러나 이 관광업도 갈수록 증가하는 테러로 인해 전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 관광을 기피하면서 관광객이 끊기다 보니 파탄 지경에 와 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관광업을 살리기 위해 치안도 열심히 유지하고 있으며 관광할 나라라고 홍보를 열심히 하지만,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진 않는다.
교통
이스라엘 육상도로는 6번 국도가 하이파 동부에서 베르셰바 외곽을 연결하며,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잇는 1번 국도와 텔아비브와 하이파를 잇는 2번 국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이스라엘에는 장·단거리 버스, 철도 노선이 발달해 있는데 특히 버스가 주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전국 각 지역에서 직행으로 연결되는텔아비브 중앙 버스터미널(Tel Aviv Central Bus Station)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터미널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버스회사로는 에게드(Egged), 단(Dan), 카빔(Kavim), 메트로폴린(Metropoline) 등이 있다. 버스와 기차는 교통카드인 라브카브(Lav Kav)로 지불한다. 안식일에 버스와 기차는 운행이 중단되지만, 민간 회사가 운영하는 합승택시인 '쉐루트(Sherut)'가 운행된다. 택시는 '겟(Gett)'이라는 앱을 통해 호출이 가능하다.
이스라엘 철도는 건국 전 오토만 통치기와 대영제국 위임통치기에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사이에 처음으로 구축되었지만 1990년대부터 철도 확장 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노선이 확장되었다. 2011년 예루살렘에 13km 길이의 경전철이 신설되었으며, 텔아비브에서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경전철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이파와 나사렛을 연결하는 경전철 역시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지하철인 하이파의 카르멜릿(Carmelit)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지하철 노선으로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국제공항은 이스라엘의 관문 공항으로 북미, 유럽, 아프리카, 동아시아, 주변 국가에서 직항 노선으로 연결된다. 국내선은 벤구리온공항에서 하이파, 로시피나, 골란고원, 에일랏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기타
세계 1위 제네릭 의약품 제약사 테바와 해운회사 ZIM등의 유명 기업들이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인문사회
인구
이스라엘의 총인구는 9,396,820명(2021)으로, 유대인 6,894,000명(74%), 아랍인 1,966,000명(21%), 그리고 '기타'로 분류되는 467,000명(5%)으로 구성된다. 전 세계 유대인 810만여 명 중 47%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유대계 이스라엘은 58%가 세속파, 18%가 시온주의 정통유대교, 12%가 하레디(Haredi Judaism, 초정통파 유대교), 7%가 개혁유대교, 6%가 보수파이다.
이스라엘의 인구성장률은 OECD 평균인 0.6%보다 세 배 이상 빠른 2%(2015)이다. 그 배경으로는 건국 이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 유대인의 이민과 적극적인 출산 장려정책에 따른 높은 출산율을 들 수 있다. 2020년 기준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3.01%로 OECD 평균인 1.6%보다 3배 이상 높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출산율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유대계의 출산율 증가는 초정통파 유대인의 다산 문화에서 비롯된다. 초정통파 유대인의 가족당 평균 자녀 수는 7명으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이 12%이다. 2020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82세, 여성 84.9세로, 평균 83.5세이다.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93%가 도시 거주자이다. 도시화 비율은 연간 1.64%(2015-2020 추정)로 높은 편에 속한다. 2019년 기준 주요 도시 인구는 예루살렘 94만 명, 텔아비브 46만 명, 하이파 29만 명, 리숀레지온 25만 명 정도이다. 2017년 기준 평균 인구밀도는 ㎢당 387.4명이며, 텔아비브 지역(Tel Aviv District)이 8,167.8명으로 가장 높다.
종족
이스라엘의 인구는 유대인, 아랍인, 드루즈인, 베두인족으로 구성된다. 건국 후 이스라엘 영토에 남은 약 15만 명의 아랍인이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는 나라다. 주류 집단인 유대인은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으로 셈족 계통에 속한다.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존속했던 유다왕국의 히브리인(Hebrews)에서 기원한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사마리아인과 구별된다. 기원전 8세기부터 디아스포라로 존재해 온 유대인은 독일과 네덜란드에 정착한 뒤 동유럽으로 이주한 아슈케나짐(Ashkenazim), 스페인과 포루투갈에 살다 16세기에 이베리아반도로 추방된 스파라딤(Sparadim),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한 미즈라힘(Mizrahim)으로 구분된다. 이민 국가의 특성상 유대인 사이에서도 출신지와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혼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1990년대에는 러시아와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의 유입이 대규모로 이루어져 인구구성이 더욱 다양해졌다.
이민과 귀화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해외 유대인의 이민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대인은 유대혈통인 모의 자녀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로 규정되며 귀환법(Law of Return 1950)에 따라 모든 유대인은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1970년 개정법은 유대인의 자녀와 손자녀, 그 배우자로 국적취득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귀화의 경우를 제외하고 다중국적 보유가 인정되나, 아랍계 국적자는 해외에 7년간 거주 시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 정부는 이민통합부를 설치하여 유대인 이민을 촉진하고 통합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어
공용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이다. 미국의 이주민들과 영국의 신탁통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 외국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주민 대부분은 영어로 어느 정도 이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구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계 이스라엘인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계 유대인의 경우 영어 구사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다. 그리고 정통파 유대인을 중심으로 이디시어도 많이 사용한다. 각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에 따라 아랍어, 이란어, 루마니아어, 부하라어 포르투갈어가 쓰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국립학교는 지역에 따라 히브리어 학교 또는 아랍어 학교로 나뉘어지며 히브리어 학교는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아랍어 학교는 히브리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서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어는 4세기가 되면 아람어 등에 밀려 이미 죽어버린 언어여서 예배에서나 쓰일 뿐이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이 의사소통하자니 그나마 예배 언어였던 히브리어밖에 마땅한 게 없었다. 그래서 사어였던 히브리어를 부활시켜 공용어로 지정했다. 19세기부터 다시 시온주의자들의 일상 언어로 쓰이기 시작한 히브리어는 한때 죽어버린 언어가 다시 되살아나 한 나라의 공용어가 되고 수백만 명의 모어가 된 유일한 언어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유대인 비율은 74%이지만 막상 히브리어를 모어로 하는 이스라엘인 비율은 60%밖에 안 된다. 20세 이상으로 한정하면 50%도 안 된다. 나머지 유대인들도 히브리어를 할 줄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제2언어로 쓴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많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고 이들 중에서는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아랍어도 히브리어와 함께 이스라엘의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히브리어 연구소와 함께 아랍어 연구소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5월 7일에 이스라엘 정부가 히브리어만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고 아랍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하는 유대민족국가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반발이 심해졌다. 그러다가 2018년 7월 19일에 유대민족법이 통과되면서 아랍어는 특수지위의 언어로 격하되었다. 2018년 8월 8일 아랍계 의원이 아랍어로 사퇴서를 쓰자 의회에서 거부당하고 히브리어로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종교
이스라엘은 1948년 《이스라엘건국선언문》을 바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스라엘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로마가톨릭교회, 루터교,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다. 각각의 종교 공동체는 안식일, 신앙생활, 내부 문제 운영에 있어 자유롭다. 종교법원은 결혼, 이혼 같은 개인의 신상 문제에 국한해 관할권을 가진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 전까지인 안식일에 종교 의례를 행하며, 개신교와 가톨릭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린다.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에서는 안식일과 유대교 명절에 랍비와 선창자(cantor)의 주도로 의례가 치러진다. 라비는 히브리어로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을 의미하며, 토라를 바탕으로 유대교 율법을 가르칠 뿐 아니라 각종 의례의 주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기도는 성인 남자 10명이 모이는 '미냔(minyan)'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며 매일 세 번의 기도를 드린다. 기도할 때 남성은 어깨를 덮는 쇼울인 '탈릿(tallit)'과 성구함인 테필린(Tefillin)을 두르고 키파를 쓴다. 보통, 시나고그 안에서는 성별이 분리되는데, 예루살렘 성전 '서안 벽(Western Wall)'과 같은 성소에서 남성은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하며, 성별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종아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성소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종이 키파와 파란 천이 준비되어 있다.
이스라엘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의식적인 세정식이 거행되며 성별이 철저하게 분리된다. 이슬람교 회당인 모스크에서 예배인들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리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금요일은 전통적으로 무슬림의 안식일로 대중설교가 있다. 설교와 종교 의례는 이맘이 주도한다.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로는 예루살렘 바위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기독교 예배의 형식과 횟수는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신부나 목사에 의해 거행되고 남녀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 신자는 주로 아랍인이나 외국인이며, 극소수의 유대인 신자가 있다. 아랍인은 주로 나사렛과 하이파같은 도시에 거주하며, 그리스 가톨릭,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에 속한다. 기독교 성지로는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나사렛 수태고지교회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하이파에는 19세기 중반 이란에서 창시된 독립종교인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
사회복지
이스라엘의 사회복지제도는 1954년에 설립된 국가보험청(National Insurance Institute)을 통해 국가연금보험법, 장애보험법, 산재법, 소득지원법 등 보편주의적 사회보험 정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점차 자산 조사에 기초한 선별적 복지와 범주적 급여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노령연금, 장애연금, 장애인 돌봄수당, 장애아동수당, 이동수당, 상이군인 장애수당 외에도 실업보험과 소득부조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아동수당, 한부모가족지원 등 가족 지원 프로그램과 더불어 출산 장려를 목적으로 출산급여와 모성 수당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수혜 범주를 확대하여 이민 장려와 이민자 통합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
이스라엘의 교육체계는 초등학교 6년(1~6학년), 중학교 3년(7~9학년), 고등학교 3년(10~12학년)으로 구성되며, 의무교육법(1949)과 교육법(1953)에 따라 5세부터 18세까지 무상 의무교육 대상이다. 2-4세 유아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다닐 수 있다. 대부분 일반 국공립학교에서 수학하지만, 국립종교학교, 사립학교, 정통유대계 학교, 아랍계 학교, 드루즈계 학교 등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학시험인 사이코메트리(ha-Psikhometri, Psychometric Entrance Test)를 치룬다. 이스라엘에는 9개의 종합대학과 52개의 단과대학이 있으며, 종합대학은 대부분 세계대학 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대표적으로 테크니온-이스라엘 공과대학(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1912), 예루살렘 히브루대학교(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1918), 바르일란 대학교(1955), 텔아비브 대학교(1956), 하이파대학교(1963), 네게브 벤구리온대학교(1969) 등이 있으며, 자연과학 석박사 프로그램인 와이즈만 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1934)가 있다.
문화
참고자료
- 〈이스라엘〉, 《나무위키》
- 〈하티크바〉, 《나무위키》
- 〈이스라엘/경제〉, 《나무위키》
- 〈이스라엘〉, 《두산백과》
- 〈이스라엘〉, 《위키백과》
- 〈이스라엘의 국장〉, 《위키백과》
- "Israel", Wikipedia
- 〈이스라엘 기후 및 재해〉, 《두산백과》
- 〈이스라엘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고대 및 중세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근현대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Israel〉, 《요다위키》
- 〈이스라엘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고대 및 중세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근현대 역사〉, 《두산백과》
- 〈이스라엘 정치〉, 《두산백과》
- 〈이스라엘 국방〉, 《두산백과》
- 〈이스라엘 대한관계〉, 《두산백과》
- 〈이스라엘 산업구조〉, 《두산백과》
- 〈이스라엘 방위산업〉, 《두산백과》
- 〈이스라엘 교통〉, 《두산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