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소닉"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연혁) |
(→주요 제품) |
||
142번째 줄: | 142번째 줄: | ||
===전기차 배터리=== | ===전기차 배터리=== | ||
[[파일:리튬이온배터리.png|300픽셀|오른쪽|썸네일|파나소닉 리튬-이온 배터리]] | [[파일:리튬이온배터리.png|300픽셀|오른쪽|썸네일|파나소닉 리튬-이온 배터리]] | ||
− | 2010년대 초반, 파나소닉은 TV 및 가전 분야에서 LG와 삼성에게 완전히 뒤처졌다. 2011년 7월에는 자회사 산요의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 [[하이얼]](Haier)에 매각하고, 친환경 산업에 집중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 파나소닉은 가전 분야에서 자리를 내줬지만, 전기차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쌓았다. 이제 전기차 부품사로 발전을 준비한다. 2009년 7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배터리 계약을 체결한 후 2011년 10월 테슬라와 향후 4년간 8만 대 분의 배터리 셀의 공급계약 맺었다. 2014년 2월 테슬라가 기가팩토리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고<ref name="연표">레이어드, 〈[https://blog.naver.com/wjsmug/222003541193^테슬라, 파나소닉과 배터리 계약 연장의 의미와 애증의 역사 총정리]〉, 《네이버 블로그》, 2020-06-17</ref> | + | 2010년대 초반, 파나소닉은 TV 및 가전 분야에서 LG와 삼성에게 완전히 뒤처졌다. 2011년 7월에는 자회사 산요의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 [[하이얼]](Haier)에 매각하고, 친환경 산업에 집중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 파나소닉은 가전 분야에서 자리를 내줬지만, 전기차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쌓았다. 이제 전기차 부품사로 발전을 준비한다. 2009년 7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배터리 계약을 체결한 후 2011년 10월 테슬라와 향후 4년간 8만 대 분의 배터리 셀의 공급계약 맺었다. 2014년 2월 테슬라가 기가팩토리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고, 2016년 6월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모델3]]에 들어가는 배터리에 관련해서는 파나소닉과만 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f name="연표">레이어드, 〈[https://blog.naver.com/wjsmug/222003541193^테슬라, 파나소닉과 배터리 계약 연장의 의미와 애증의 역사 총정리]〉, 《네이버 블로그》, 2020-06-17</ref><ref name="모델3">김인경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3560518 테슬라 “모델 3 배터리, 파나소닉과만 협업”]〉, 《이데일리》, 2016-06-08</ref> 2016년 8월 네바다주의 기가팩토리가 착공되었다. 2016년 미국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의 1위를 기록했다. 파나소닉 출하량은 2016년 한 해 약 4.6GWh를 기록했으며, 2015년 2.6GWh보다 약 70.5% 성장한 기록이다. 출하량의 70.7%의 점유율을 기록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이끌었다.<ref name="미국1위">조재환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92&aid=0002109905 파나소닉, 美 전기차 배터리 독주 ‘성장률 70.5%’]〉, 《지디넷 코리아》, 2017-01-16</ref> 이렇게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로 자리를 잡았다. 배터리 대량 공급을 목표로 기가 팩토리 건설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테슬라만 바라보기에는 생산 지체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2017년 12월에 파나소닉은 [[도요타]]와 전기 자동차의 핵심기술인 배터리 사업 제휴를 맺었다. 원통형 배터리와는 다른 각(角)형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ref name="각주이름">정미하 기자,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4/2017121485034.html 도요타·파나소닉, 전기차 배터리 손잡았다]〉, 《아이티조선》, 2017-12-14</ref> 파나소닉은 2022년까지 2017년 대비 두 배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목표치가 높다. 이에 대해 파나소닉은 “자동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매우 큰 데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승용차 외에도 상용차, 모터사이클 등 다양한 수요가 있다.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6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최근 네바다주 기가팩토리에서 배터리 제조와 공급에 관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테슬라와 파나소닉은 새로운 배터리 개발에도 함께 나설 것으로 보인다.<ref name="머니투데이">김동진 기자,〈[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8/2020061801180.html 테슬라·파나소닉, 3년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 《머니투데이》, 2020-06-18</ref> 덧붙여 2020년 8월 파나소닉이 전기차 판매 1순위인 테슬라 모델3에 탑재하기 위한 테슬라 전기차 배터리 미국 공장 증설의 위해 100억 엔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파나소닉의 기가팩토리 증설 투자는 처음이다. 파나소닉은 2018년 배터리 셀 공장 증설 투자를 검토했지만, 모델3 양산이 지연되면서 보류했다.<ref name="전자신문">김지웅 기자, 〈[https://m.etnews.com/20200820000176?obj=Tzo4OiJzdGRDbGFzcyI6Mjp7czo3OiJyZWZlcmVyIjtOO3M6NzoiZm9yd2FyZCI7czoxMzoid2ViIHRvIG1vYmlsZSI7fQ%3D%3D^파나소닉, 테슬라 美 배터리 공장 증설에 100억엔 투입]〉, 《전자신문》, 2020-08-20</ref> 마이니치는 파나소닉이 배터리 생산라인 증설에 나선 것은 협력사인 테슬라가 올해 전 세계 판매량을 지난해보다 36%나 늘어난 50만대로 늘려 잡은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배터리 사업 때문에 기가팩토리1을 합작으로 만든 파나소닉과 테슬라의 관계는 테슬라가 배터리를 독자 생산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때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였으나 양사가 향후 3년간 배터리를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지난 6월 새로 체결하면서 양사 협력체제가 복원됐음을 과시했다.<ref name="글이">이혜영 기자, 〈[https://news.g-enews.com/view.php?ud=2020082111171110509a1f309431_1&ssk=newmain_0_2&md=20200823125024_R 파나소닉, 내년부터 '테슬라 배터리' 10% 증산]〉, 《글로벌이코노믹》, 2020-08-23</ref> |
이번 증설 투자 말고도 파나소닉은 현재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용량을 5% 끌어올려 9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사실상 파나소닉이 배터리를 독점 공급했지만 이후 테슬라가 공급망 다각화 차원에서 LG화학이나 CATL 등과 거래하며 상대적으로 파나소닉 점유율이 낮아졌다.<ref name="머투">김성은 기자,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82015123150999 파나소닉의 대반격…전세계 배터리 업체 "증설만이 살 길"]〉, 《머니투데이》, 2020-08-20</ref><ref name="파나배터리">파나소닉 제품 페이지 - https://na.industrial.panasonic.com/products/batteries/rechargeable-batteries/lineup/lithium-ion</ref> | 이번 증설 투자 말고도 파나소닉은 현재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용량을 5% 끌어올려 9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사실상 파나소닉이 배터리를 독점 공급했지만 이후 테슬라가 공급망 다각화 차원에서 LG화학이나 CATL 등과 거래하며 상대적으로 파나소닉 점유율이 낮아졌다.<ref name="머투">김성은 기자,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82015123150999 파나소닉의 대반격…전세계 배터리 업체 "증설만이 살 길"]〉, 《머니투데이》, 2020-08-20</ref><ref name="파나배터리">파나소닉 제품 페이지 - https://na.industrial.panasonic.com/products/batteries/rechargeable-batteries/lineup/lithium-ion</ref> | ||
2020년 9월 18일 (금) 17:30 판
파나소닉(PANASONIC)은 일본의 대기업으로 종합 가전제품 생산회사이다. 본사는 오사카부 가도마시에 있으며 창업자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이다. 한국에 ㈜파나소닉코리아를 두고 있다. 국내 전기업계에서는 히타치, 소니에 이어 3위의 매출액을 자랑한다.
개요
등기상의 본점은 오사카부 카도마시이지만, 본사 사무소는 카도마시 옆의 오사카부 모리구치시에 소재한다. 38개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다. 사내 컴퍼니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어플라이언스사·라이프솔루션즈사·커넥티드솔루션즈사·오토모티브사, 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사, 중국·북동아시아사, US사 등 7개 컴퍼니로 구성되어 있다. 연결 대상 회사 수는 592 사이다. 관련 회사도 포함해 가전제품 외에도 산업기기·통신기기·주택 설비·환경 관련 기기 등의 전기 기기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용 제품·서비스에 특히 주력했지만 2013년부터 기업용 제품·서비스(BTOB)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현재는 매상 전체를 차지하는 가전의 비율은 24%이다. 마쓰시타 전기 공업의 합병 및 산요전기를 완전자회사 라인에 넣은 후에는, 차재 설비·주택 설비·에너지 관리 기기 등을 기반으로 한 성장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분야나 제품으로 국내외 기업과 경합 하면서도, 소니·토시바·히타치 제작소·올림퍼스(Olympus)·후지 필름 등과 제휴·합작·사업 이관도 하고 있다. 글로벌 전개도 하고 있어, 수많은 업계(항공 전자 기기, 카 내비게이션 등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n-Vehicle Infotainment/IVI) 시스템, 리튬 이온 전지, 환풍기, 무선 전화, 업무용 냉장고)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이 중, 항공 전자 기기는 세계 시장 점유율의 80%가 파나소닉으로 과점 상태이다.[1] 일본에서는 유일한 종합 가전 메이커가 되었기 때문에, 가전 업계의 많은 부문에서 톱 쉐어를 가져, 가전 이외의 업계(전지, 주택용 태양광 발전, 조명기구, 전설 자재, 홈 엘리베이터, 전동 자전거등)에서도 국내 1위에 빛나고 있다. 슬로건인 'A Better Life, A Better World'는 보다 좋은 삶을 만들어 전 세계인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 그리고 지구의 미래에 공헌함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
연혁
- 1917년 : 마쓰시타 코노스케가 오사카부 히가시나리군 쓰루하시초 다이지 이노카이노(현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타마즈2초메)의 셋집에서 전구용 소켓 제조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코노스케의 아내인 무메노와 처남인 이우에 토시오(나중의 산요 전기의 창업자) 3명이 영업을 시작한다.
- 1918년 03월 : 오사카시 키타구 니시노다 오비라키쵸(현 오사카시 후쿠시마구 오비라키니쵸메)로 이전하여 마쓰시타 전기 기구 제작소를 창립한다.
- 1922년 : 오사카시 키타구 니시노다 오비라키쵸에 신공장(제1차 본점·공장)을 건설하여 이전한다.
- 1927년 : 자전거용 각형 램프를 판매했다. 이 상품부터 '내셔널(NATIONAL)' 상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1929년 : 오사카시 키타구 니시노다 오비라키쵸(현·오사카시 후쿠시마구 오비라키 1가)에 신공장(제2차 본점·공장)을 준공했다. 현재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1931년 : 라디오의 생산을 개시했다.
- 1932년 : 라디오의 중요부의 특허를 매수해, 같은 업계의 회사들에 무상으로 공개했다. 전쟁 전의 엘렉트로닉스 업계의 발전에 기여했다.
- 1933년 : 오사카부 기타가와치군 카도마무라 대자 카도마(현·카도마시 다이자 카도마)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해 이전했다. 사업부제를 도입했다.
- 1935년 07월 : 국민 소켓을 발매했다. 마쓰시타 전기 무역, 마츠와 전기 상사(1943년 본사로 편입)를 설립했다.
- 1935년 12월 : 마쓰시타 전기 산업 주식회사로 개편하고, 마쓰시타전기(후의 마쓰시타항공공업, 파나소닉전공), 마쓰시타무선, 마쓰시타건전지, 마쓰시타전열, 마쓰시타금속, 마쓰시타전기직매 등 9개의 분사를 설립했다.
- 1936년 : 분사로서 내셔널 전구, 아사히 건전지를 추가했다.
- 1936년 10월 : 백열전구의 제조를 개시했다.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던 백열사(현재의 토시바)와 같은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다.[3]
- 1937년 : '내셔널'로고의 서체 '나쇼 문자'를 제정했다.(1987년에 사용 중지).
- 1938년 06월 : 내셔널 축전지를 설립했다.
- 1938년 10월 : 마쓰시타 전동기를 설립했다. 1944년까지 합계 32사가 설립되었다. 이 해, 분사인 마쓰시타 전기가 직접 병기류의 부품 수주를 받는 등, 군수품 중심의 생산체제로 이행한다.
- 1938년 09월 : 만주 마쓰시타 전기가 설립된다. (1942년에는 만주 무선공업 설립).
- 1943년 08월 : 분사의 마쓰시타전기가 마쓰시타 항공공업으로 개편되고 군수산업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군부 명령에 의한 2 분사, 마쓰시타 조선(12월의 제일호선 진수식 이래, 목조선 42척, 예인선 9척 건조)과 마쓰시타 비행기(목조 비행기 4대 제조)를 설립했다.
- 1944년 : 마쓰시타 무선, 마쓰시타 건전지, 마쓰시타 전기공업(마쓰시타 전열, 마쓰시타 전동기가 이미 편입), 마쓰시타 축전지 제조의 4개 제조 분사를 본사에 흡수 합병 등 그룹을 재편했다.
- 1945년 08월 15일 : 일본의 패전으로 전쟁 전 잃었던 재외 자산인 만주 마쓰시타 전기, 조선 마쓰시타전기의 여러 공장과 영업소, 대만 마쓰시타 전기, 자바의 전지공장, 마닐라의 진공관 공장을 포함하여 상하이의 마쓰시타전업 본사 및 공장 등 총 20개의 해외 사업장을 거의 모두 잃었다.
- 1946년 :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에 의해 제한회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방위산업으로 간주한 것과 대자본 때문에 통폐합 제한이 있었던 마쓰시타 전기 공업(당시 마쓰시타항공공업) 이외의 분사를 재통합해 사업부제로 되돌리고 세탁기 등의 제조를 시작했다.
- 1947년 : 제한회사로 지정받아서 전무이사인 이우에 토시오가 공직에서 추방된다. 이우에 토시오는 효고현 카니시시(구·카사이군 호죠마치)의 마쓰시타 항공공업 호조 공장과 자전거용 발전 램프의 제조권, 직원들 일부를 데리고 산요 전기로 독립했다.
- 1951년 09월 : 신 일본 방송(현재의 마이니치 방송=MBS 라디오)의 라디오 프로그램 '시가 없는가요'의 후원사였다. 이후 오늘까지 65년 넘게 전국 AM라디오(JRN)를 통해 파나소닉 제품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
- 1952년 12월 :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제휴해, 마쓰시타 전자공업을 설립했다. 이후 각 공장의 신설, 확충이 잇따랐다.
- 1954년 : 전쟁으로 거의 괴멸 상태에 있던 일본 빅터와 자본 제휴했다. 이때 빅터를 흡수하지 않고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관계를 취했다. 그 이념은 사장이 바뀐 후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2007년 가을에 자본 관계를 해소하는 것에 합의하여 같은 해 8월에 총액 350억엔의 제3자 할당 증자를 켄우드 및 스파크스·그룹에 실시했다. 마쓰시타의 보유 비율은 36.90%로 연결 자회사에서 제외되어 지분법 적용 관련 회사가 되었다. 그 후 2011년 1월에는 제삼자 할당 증자에 의해 20% 이하가 되어, 지분법 적용 회사에서도 제외되었다. 게다가 같은 해 10월에 지주회사가 켄우드와 함께 흡수 합병되어 현재는 JVC 켄우드가 되었다.
- 1955년 : 'Pana Sonic' 브랜드를 단체 더블 콘 풀 레인지 스피커 유닛 8P-W1(통칭 "겐코츠". 후에 일본국내용은 EAS-20PW09로 품번 변경)의 수출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 1957년 : 전국의'거리의 전기 가게'가 가맹하는 일본 최초의 계열점 네트워크 '내셔널 가게회 (후의 내셔널 숍 제도)'를 발족했다. 고도 성장기의 막강한 판매망으로서 기능하며, 피크 시에는 전국에서 약 5만 점포에까지 증가했지만, 후계자 부족이나 양판점과의 경쟁 격화에 의해 현재는 약 1만 8,000개 점포에까지 감소하고 있다.
- 1961년 01월 : 마쓰시타 마사하루 부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 1964년 : 아타미 회담에서 계열점에의 치열한 판매 할당량이나, 텔레비전의 불량품 등이 문제점으로 떠올라, 3일에 걸쳐 분쟁했다. 코노스케가 회장 겸 영업본부장 대행으로서 톱 세일즈에 복귀하는 계기가 된다. 다이에·마쓰시타 전쟁 시작되고 마쓰시타 전기는 다이에 상품 출하를 전면적으로 정지한다.
- 1965년 : '테크닉스(Technics)' 브랜드가 '테크닉스 1'에 처음 사용되었다. 완전 주휴 2일제 실시하며, 신판매 제도(유통경로의 단축 주체)로 고도성장의 노선을 탄다.
- 1966년 : 영자 표기의 '내셔널' 로고를 국내용 제품에, '파나소닉' 로고를 해외용 제품, 및 국내용 트랜지스터라디오에 사용해 판매했다. 내셔널이 미국에서 상표등록이 되어 있어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동기인데 파나소닉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964년 5월 내셔널 파나소닉(NATIONAL PANASONIC)으로 미국 수출을 인정받았고 이후 카드맥스(KADOMAX) → 마쓰시타 → 마츠를 거쳐 파나소닉이 되었다.
- 1967년 07월 : 다이에 등 저가매장에 대한 출하정지 등에 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쓰시타 전기공업을 현장 검사하고 독점금지법 제19조에 저촉되는 불공정한 거래 방법으로 배제 권고를 받지만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를 거부한다.
- 1969년 : 도쿄 전기화학공업(현·TDK)과 제휴했다.
- 1970년 : 세계 최초의 다이렉트 드라이브식 턴테이블 SP-10을 발매했다. 일본 만국박람회에 마쓰시타 관을 출전했다. 당시의 문화 자료를 담아 5000년 후 개봉을 목표로 한 타임캡슐을 전시했다.
- 1971년 : 'PANASONIC' 로고를 'Panasonic'으로 변경했다.
- 1973년 : 'NATIONAL' 로고를 'National'로 변경했다. 파나파콤 주식회사(현 주식회사 PFU)를 설립하고, 한국의 아남그룹과 합작하여 아남내셔널(현 아남전자)을 설립하고 '아남 내셔널(Anam National)'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아마추어 무선용 트랜시버 'RJX-601' 제조, 출시했다.
- 1975년 : 최고급 아마추어 무선용 트랜시버 'RJX-1011' 제조, 발매 개시했다.
- 1977년 02월 : 야마시타 토시히코 이사가 사장으로 취임한다. 비디오 홈 시스템(Video Home System/VHS) 방식의 비디오테이프 레코더(맥로드)와 형광등 '파룩' 출시했다.
- 1982년 02월 01일 : 업계 최초의 컬러 오더 냉장고를 발매했다.
- 1986년 02월 : 야이 아키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파나소닉'브랜드를 국내에서도 단독으로 사용 개시했고 처음 사용한 제품은 MSX2 PC FS-A1이다. 이때부터 마쓰시타전기의 독자제정 서체도 사용되지 않아 일반적인 서체로 변경된다.
- 1987년 : 후지쯔 FM-R의 OEM 사양의 데스크탑 PC '파나콤(Panacom)M500/700'을 발매했다.
- 1987년 09월 : 중국에 처음으로 합작회사인 마쓰시타 채색 현상관 유한공사(컬러브라운관제조)를 설립했다.
- 1987년 10월 : 파나소닉 최초의 거치형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Digital Audio Tape/DAT) 데크 'SV-D1000'을 발매했다.
- 1988년 10월 : TV·비디오 데크·CD 라디오 카세트·미니콤포 등의 AV(오디오비주얼) 가전 부문이 순차적으로 "내셔널" 브랜드에서 "파나소닉" 브랜드로 이동한다.
- 1989년 : 새로운 스타일의 내셔널 숍 체인 '패낙'을 시작했다.
- 1989년 04월 27일 : 창업자 마쓰시타 코노스케가 향년 94세로 사망한다.
- 1989년 08월 01일 : 본사 기술 부문의 대규모 개혁이 있었다.
- 1990년 : MCA사(현·유니버설·스튜디오)를 자회사화했다.
- 1991년 06월 01일 : 창구가 각 부문에 흩어져 있던 사회 사무실을 문화 지원실로 본사에 신설해 창구를 단일화했다.
- 1992년 08월 : AM 스테레오 방송 대응 제1호기가 되는 휴대 라디오 'RF-U09'를 발매했다.
- 1992년 10월 : 파나소닉 최초로 일본 최초의 거치형 디지털 컴팩트 카세트(digital compact cassette/dcc) 데크 'RS-DC10'을 발매했다.
- 1993년 02월 : 모리시타 요이치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 1993년 04월 : 필립스와의 합작을 해지하고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cross-licensing agreement)으로 이행했다.
- 1994년 : 다이에 마쓰시타 전쟁 종결한다. 다이에그룹 점포에의 마쓰시타 전기상품의 판매 공급을 재개한다.
- 1994년 03월 : 20, 3DO REAL (FZ-1)를 발매했다.
- 1994년 12월 : 파나소닉제 AM스테레오 대응 수신기 전체에서 28번째인 최종 모델 'ST-GT70'을 발매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다음 1995년 이후는 AM스테레오 대응 수신기의 신규 생산을 하지 않았다.
- 1995년 : MCA사에의 출자분 80%를 씨그램사에 매각했다.
- 1995년 04월 : 광디스크 PD를 개발했다.
- 1997년 04월 : 사내 분사제를 도입하고 관련하는 사업부를 통합했다.
- 1997년 05월 : 동사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쿨 샷(COOLSHOT) II'를 발매, 및 '쿨 샷'브랜드 사용의 시작이 된다.
- 1998년 : 한국에서 '아남 내셔널' 브랜드를 폐지하면서 로고가 영문자 '아남'으로 변경되었다.
- 2000년 06월 : 나카무라 쿠니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모리시타 사장은 회장으로, 마쓰시타 마사하루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마쓰시타 마사유키 부사장은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미래의 사장후보로 꼽혔던 창업자 고노스케의 직손인 마쓰시타 마사유키가 부회장으로 취임함으로써 마쓰시타 가의 사장 세습이 끊어졌다.
- 2001년 04월 : 마쓰시타 전자공업을 흡수 합병해, 사내 분사로 '반도체사',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사', '조명사'로 분사화 시켰다.
- 2001년 08월 : 파나소닉의 산하에 있는 미야타 공업(자전거나 소화기 등의 메이커, 현재의 모리타 미야타 공업)의 보유주식의 반을 모리타에 양도했다.
- 2001년 10월 27일 : '루믹스(LUMIX)' 브랜드 최초가 되는 디지털카메라 'DMC-LC5' 'DMC-F7'을 발매했다. 이 모델 이전에 사용되고 있던 '쿨 샷'브랜드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 2001년 12월 14일 : 닌텐도와 공동 개발 상품인 DVD/게임 플레이어Q를 출시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계속해 온 태양전지의 연구 개발을 취소하고 가정용 연료전지 사업을 특화하는 것으로 결단했다. 경영 위기 중의 어쩔 수 없는 판단이긴 했지만, 이것이 큰 오산이 되어, 후에 산요 전기를 매수하는 계기가 된다.
- 2002년 : 실적 악화로 인해 2001년도 말까지 13,000명을 조기 퇴직시키고 기업연금을 줄이는 사업의 재구축을 추진했다.
- 2002년 10월 01일 : 주식 교환으로 마쓰시타 통신공업, 큐슈 마쓰시타 전기, 마쓰시타 정밀공업, 마쓰시타 고토부키 전자공업, 마쓰시타 전송 시스템을 완전 자회사화했다.
- 2003년 : 글로벌 브랜드를 '파나소닉'으로 통일하고, 글로벌 브랜드 슬로건인 'Panasonic ideas for life'를 도입했다.
- 2004년 : 알칼리 건전지 이래의 40년 만의 신형 건전지인 '옥시라이드 건전지'를 개발한다.
- 2004년 04월 01일 : 전후 오랫동안 독립 노선이었던 마쓰시타 전기 공업을 다시 자회사화시켰다.
- 2004년 07월 31일 : 동사 최초의 블루레이 디스크(Blu-ray Disc) 방식의 레코더를 출시했다.
- 2005년 : 소프트웨어 특허 침해를 주장해 저스트 시스템을 고소한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 당했고 마쓰시타 제품 불매운동 등도 벌어졌다. 2심에서 역전 패소로 끝을 맺는다. 파나소닉의 산하에 있는 마쓰시타 흥산 주식을 야마토 하우스 공업에 양도하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없던 일이 되고 결국 금융기관의 채무면제를 거쳐 미국의 투자펀드, 엣스·재팬으로 양도했다. 마쓰시타흥산은 그 후 채산사업인 부동산사업은 신설한 MID 도시개발(현 관전부동산개발)에 양도하고, 비 채산 사업만 남기고 도요히데흥산으로 사명이 변경된 후 해산했다. 1985년부터 1992년제의 FF식 석유 온풍기에 의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사망자가 나온 것이 발각되었다. 무상 수리가 발표되었지만, 발표 후에도 사고가 발생했다.
- 2005년 01월 : 올림퍼스와 일안 디지털카메라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의 개발에 관해서 히타치 제작소와 제휴해, 동사와 합작으로 특허 관리 회사를 설립하는 것 외에도 원재료의 조달이나 전자 부품의 개발 등을 공동으로 실시했다.
- 2005년 03월 : 석유 난방기, 석유 팬히터, 석유스토브, 석유 급탕기의 생산과 판매가 종료되고 내셔널 샵에는 코로나제 석유 팬히터가 공급되었다.
- 2005년 12월 : 리콜이 끝난 석유 온풍기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마쓰시타그룹은 이달 마쓰시타 전기공업, 파나소닉브랜드 할당을 포함해 전상품의 광고를 중지하고 사죄의 광고를 열흘간 방영했다. 방영 시간은 약 80시간이나 됐다.
- 2005년 12월 07일 : 한국의 삼성SDI는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관련 특허 9건을 침해당했다고 해서 마쓰시타전기를 상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한 것을 계기로 두 회사 동시 쌍방 제소하여, 2008년 1월에 화해한다.
- 2006년 06월 : 오츠보 후미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하고, 나카무라 쿠니오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 2006년 07월 22일 : 올림퍼스 주식회사와의 공동 개발한 파나소닉 최초의 외눈 카메라 'DMC-L1'을 발매했다.
- 2006년 10월 : 2007년 3월까지 가정용 가스 기구의 생산과 판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가정용 연료전지의 에네팜(당시 상품명은 라이프엘) 및 TES 단말인 욕실 난방건조기의 생산은 계속하며, 판매한 제품의 애프터서비스 및 부품 공급은 지금까지와 같이 실시한다고 알렸다. 가스기구 매출은 130억 엔이었다. 린나이·노리츠·팔로마에 비해 규모가 작고, 수익이 오를 전망이 없다고 판단해, 가스 기구의 철수를 결정했다. 가스 기구 철수에 따라 '내셔널 가스 기구' 간판을 판매점에서 내리게 되었고, 내셔널 숍에는 2007년 3월부터 린나이 제품이 공급되고 있다. 덧붙여 2008년에 가스 팬 히터의 생산 판매를 노리츠로 이행했다.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의 변경으로 파나소닉에서 제조하고 있는 텔레비전·녹화 기기 가운데, 지상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 비대응 모델의 생산은 모두 종료했다.
- 2006년 11월 : AM 스테레오 방송 대응 라디오의 생산을 완전히 종료했다. 최종 생산 모델은 RX-FT53, 디지털 선국장식 휴대용 타입의 생산은 RF-HS90/HS70를 마지막으로 2001년에 종료하고, 거치 단체 콤포 타입의 생산도 테크닉스 브랜드도 ST-GT550을 마지막으로 2004년에 종료했다.
- 2007년 02월 : 비디오 홈 시스템 단체기 생산 종료했다.
- 2007년 03월 : 휴대용 MD 플레이어 및 휴대용 MD 레코더의 생산을 종료했다. 최종 기종은 SJ-MJ500/MJ99/MJ100/MR270/MR240/MR50이다.
- 2007년 04월 : 지상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 비대응 DVD 레코더의 생산을 종료했다. 최종 기종은 DMR-EH75V다.
- 2007년 07월 01일 : 마쓰시타 제공 라디오 프로그램 '파나소닉 멜로디어스 라이브러리 (Panasonic Melodious Library)' 방송을 개시했다.(도쿄 FM 제작 매주 일요일 10:00~10:30).
- 2007년 08월 : 브라운관 TV 일본국내용이 최종 기종 TH-21/25FA8로 생산을 종료하며 지상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 비대응 제품의 생산을 모두 종료했다.
- 2007년 10월 : 포터블 CD플레이어와 헤드폰 스테레오의 생산을 종료했다. CD플레이어의 최종기종은 SL-CT520/SX482/PH660이며 헤드폰의 최종 기종은 RQ-CW02다.
- 2008년 04월 24일 : 파이어니어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판넬(Plasma Display Panel/PDP)의 패널·모듈 개발과 전략적 생산 공급에 포괄 제휴한다고 기본 합의했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판넬의 자체 생산에서 손을 뗀 파이어니어에 마쓰시타가 패널을 공급했다. 개발 및 생산의 효율 향상과 비용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5월을 목표로 정식 제휴를 했다.
- 2008년 05월 15일 : 내셔널 브랜드 마지막 신제품인 세로형 세탁 건조기 'NA-FR80S1/FR70S1'를 발매했다.
- 2008년 10월 01일 : 파나소닉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고 기업 그룹명도 파나소닉 그룹이 되었다. 동시에 백색가전을 중심으로 일부 제품에서 철수했다.(냉동고 단체기, 와인셀러 등) SD 오디오 플레이어(D-snap)의 생산을 종료하고 (최종 기종: SV-SD870N) 이상으로 테이프 레코더를 제외한 모든 포터블 오디오 플레이어의 생산을 종료했다. 휴대용 오디오 시장에서 거의 철수했다.
- 2008년 10월 31일 : 세계 최초로 미러리스 구조의 외눈 카메라 'DMC-G1'를 발매했다.
- 2009년 12월 21일 : 산요 전기를 연결 자회사화했다.
- 2010년 03월 31일 : 구 내셔널 숍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파나소닉 숍의 마스코트 캐릭터 '파나방'의 공식 사용을 완전 종료하고 파나소닉 숍 가게 전체의 간판·카탈로그·전단지류에서 파나방 그림을 삭제했다.
- 2010년 12월 : SL-1200MK6 생산이 종료되고 테크닉스 브랜드가 종식된다.
- 2011년 04월 01일 : 파나소닉 전기공업, 산요 전기를 완전 자회사화하고 산요 계열점 '스마일 No.1 숍'일부 점포에 파나소닉 간판을 개시했다.
- 2011년 06월 10일 : '산요' 브랜드로 발매하고 있던 포터블 카 내비게이션 '고릴라(Gorilla)'를 '파나소닉'브랜드로 발매를 개시했다. 4기종을 시작으로, 8월 상순까지 9기종을 차례차례 발매하고 발매원도 당사의 오토모디브 시스템사에 이관했다.
- 2011년 07월 28일 : 자회사화한 산요 전기의 백색 가전 사업을 중국의 가전 대기업 하이얼에 약 100억 엔으로 매각한다고 밝혔다. 모회사인 파나소닉과 중복되는 산요 사업의 정리해고를 가속했다.
- 2011년 09월 30일 : 산요 계열점 '스마일 No.1 숍'검색 사이트를 이날 마지막으로 폐쇄하고 동시에 '산요'제품은 이 날까지 거의 생산을 종료해 모회사 '파나소닉'제품으로 통합되었다. 통합 후에도 생산을 계속하는 산요 제품은 브랜드를 '산요'에서 '파나소닉'으로 전환하여 생산하였다.
- 2011년 10월 18일 : 산요의 백색 가전 사업 중 냉장고·세탁기 부문을 중국의 가전 대기업 '하이얼'에 약 100억엔으로 매각하고 산요 그룹의 세탁기·냉장고 생산 부문 사원을 하이얼에 이적시켰다.
- 2011년 10월 25일 : '산요'브랜드로 발매되고 있던 사이클론식 청소기 '에어시스(airsis)'를 '파나소닉' 브랜드로 발매 개시했다(모델은 MC-SXD410). 발매원은 당사의 세탁소·클리너 비즈니스 유닛으로 이관했다. '산요'브랜드에서 발매되고 있던 가변압력 IH저밥솥을 "파나소닉"브랜드로 발매했다. (모델은 SR-PX101/PX181/PB181/PA101/PA181의 6개 기종). 발매원은 당사의 키친어플라이언스 비즈니스 유닛으로 이관. 또한, 앞서 설명한 6개 기종이 자사의 첫 압력 IH저밥솥이 되었다.
- 2011년 12월 01일 : 구 '스마일 No.1 숍'에서 탈바꿈한 파나소닉 숍의 일부를 '슈퍼 파나소닉 숍'으로 변경하고 슈퍼 파나소닉 숍 검색 사이트 개시했다. 산요 브랜드로 출시됐던 라이스브레드 쿠커 고팬(GOPAN)을 파나소닉 브랜드로 출시했다(모델은 SD-RBM1000). 발매원은 압력 IH저 밥솥과 같이, 당사의 키친 어플라이언스 비즈니스 유닛이다. 오사카부 모리구치시에 있는 산요 전기 본사 사옥에서 '산요'로고 간판을 철거하고 2일 후인 12월 25일에 '파나소닉' 간판 부착했다.
- 2012년 01월 01일 : 파나소닉 전기공업을 흡수 합병함과 동시에 파나소닉 전자 회사는 대부분이 파나소닉 산하가 되었다. 이날부터 산요 그룹의 공장·영업 거점 간판을 '파나소닉'으로 바꿔 걸었다.
- 2012년 02월 10일 : 비디오 홈 시스템 방식의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레코더의 일본 국내용 생산, 판매 종료를 발표했다.
- 2012년 03월 31일 : 이날로 산요의 산요 상표를 폐지하고 산요 계열점 '스마일 No.1 숍'의 파나소닉 숍에의 흡수 합병을 완료한다. 산요 제품은 이 날 이후 상표를 '파나소닉'에 완전히 통일해 출하되었다.
- 2012년 06월 27일 : 츠가 카즈히로 전무가 사장으로, 오오츠보 후미오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 2012년 10월 31일 : 1936년부터 계속하고 있던 일반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을 종료한다.
- 2013년 03월 31일 : 이날로 글로벌 브랜드 슬로건 "Panasonic ideas for life" 및 "ecoideas"을 사용 중지했다.
- 2013년 04월 26일 : '산요' 브랜드로 발매되고 있던 니켈·수소 충전지 '에네루프(eneloop)'를 '파나소닉' 브랜드로 발매 개시했다. 이로써 당사의 니켈·수소 충전지는 이전부터 발매되고 있던 '충전식 에볼타'와의 듀얼 브랜드가 된다.
- 2013년 06월 26일 : 오츠보 후미오 회장이 특별 고문으로 취임하고, 나가에 슈사쿠 부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첫 여성 이사로 오오타 히로코가 취임했다.[4] 9월 4일,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으로서 'A Better Life, A Better World'를 제정했다.[5]
- 2014년 02월 04일 : 결산 발표에서 호조인 실적 회복을 나타냈다. 주가가 급성장하고 일시 전일대비 22% 상승했다. 블룸버그·데이터에 의하면 1974년 9월 이래 약 40년 만의 일중 상승률을 기록했다.
- 2014년 08월 31일 : 유기EL 사업에 대해서, 산업 혁신 기구 주도로 재팬 디스플레이와 파나소닉의 사업과 통합해 JOLED를 설립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회사의 지분 5%를 보유한다.
- 2014년 12월 01일 : 브랜드 통합으로 2010년으로 나오지 않던 고급 오디오 전용의 '테크닉스' 브랜드가 부활했다.[6][7]
- 2015년 08월 01일 : 파나소닉 인포메이션 시스템즈 주식회사를 주식교환으로 완전 자회사화했다.
- 2016년 04월 01일 : 미국의 업무용 냉장고 톱인 하스먼을 매수했다. 10월 26일, 지멘스와 업무 제휴에 의해 'iLNB'를 개발하고 수주 개시했다. 1대의 PC로 실장 라인 전체의 가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일괄 제어가 가능해졌다.
- 2016년 11월 01일 : '파나소닉 플라즈마 디스플레이'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회사의 해산에 따른 특별 청산 개시를 제기했다.
- 2017년 03월 27일 : 파나소닉 디바이스 SUNX를 주식 교환으로 완전 자회사화하고 파나홈 (현 파나소닉 홈즈)를 주식병합으로 완전 자회사화했다.
- 2018년 03월 : 창업 100주년을 맞이했다. 100주년 기념의 특별 커머셜이 TV, 동영상 사이트, YouTube의 파나소닉 공식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하지만 종업원에게 위법한 장시간 노동을 시켰다고 해서, 노동 기준법 위반의 죄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 2019년 02월 : 완전 자회사인 파나소닉산기시스템즈의 인사과장이 내정자의 남학생에게 파워해러스먼트 행위를 실시해, 남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8][9]
- 2019년 05월 09일 : 2020년 1월 7일에 도요타자동차와 합작회사 프라임 라이프 테크놀로지스 주식회사를 설립해, 양 회사의 일부 자회사를 합작회사에 이관하는 마을 조성 사업 통합에 합의했다.[2][10]
회사명 변경
회사명 변경의 경위
전 세계적으로 '마쓰시타(Matsushita)' '내셔널(National)' '파나소닉(Panasonic)'의 명칭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단점이 해마다 늘어나 브랜드 이미지의 통일이 필요했다.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장기적으로 회사명 변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고, 1975년~1984년에 '글로벌 경영에는 마쓰시타라는 사명과 내셔널이라는 브랜드를 알기 어렵지 않은가'라고 질문받았을 때, '어차피 그런 때가 되어 필요하다면, 사명을 바꾸는 것은 개의치 않겠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1989년 1월에 들어서자마자 '파나(PANA)'로 사명 변경이 검토되었으나 마쓰시타 마사하루가 크게 화를 내면서 보류되었다. 그 상황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지만, 마쓰시타 전기는 일본 국외에 자사의 브랜드명 '파나소닉'으로 더 알려진 것을 고려해, 2008년 10월 1일부로 회사명을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에서 '파나소닉 주식회사(영칭 Panasonic Corporation)'로 변경했다. 백색 가전에 사용되어 온 '내셔널(National)'브랜드도 2009년도까지 폐지하고 '파나소닉(Panasonic Corporation)'으로 일원화할 의향을, 같은 해 1월 10일의 기자 회견에서 발표했다.[11] 6월 26일의 2008년도 정례주주총회에서 채결이 이루어졌으며, 회사명 변경은 만장일치로 정식결정되었다. 회사명의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에서 '파나소닉 주식회사'에의 변경과 그룹 회사 명칭의 '파나소닉'에의 통일(일부 예외 있음)이 승인되었다. 사명 변경의 첫 단계로서 지금까지 일본 국내용의 마쓰시타제 백색 가전에 사용되어 온 '내셔널'브랜드는 2008년 6월 30일 제조·출하·발매분에 한해서 공식 사용을 완전 종료하고 다음 7월 1일 발매의 신제품부터 '파나소닉' 브랜드로 통합되었다. 이후 제조·출하·발매된 마쓰시타제 백색가전(마쓰시타 전기공업 제품 포함)은(이전의 '내셔널'이 아닌) 모두 '파나소닉'로고로 변경된(일부의 '내셔널'브랜드 제품은 품번은 변경하지 않고 '파나소닉' 로고에만 변경된 것이 있다. 1호는 전구형 형광등 파룩볼 프리미어Q(퀵) 시리즈와 세환형 형광등 슬림 파룩 프리미어 시리즈). 2008년 8월 25일에 이전의 '내셔널'제품 재고를 9월 30일까지 완전히 없앨 계획을 발표했다. 내셔널 제품은 현재 모두 재고 및 전시품 한도가 되었으며 내셔널 제품은 매진되는 대로 매장에서 완전 소멸할 예정이었다. 그 후, 9월 16일에 회사명 변경일과 같은 날에 발매되는 백색 가전을 일제히 공식 발표했다.
또한 마쓰시타제 백색가전 각 제품 카탈로그는 2008년 8월 발행분까지 표지로고는 '내셔널' 그대로였으나 일부 제품(에코큐트·IH 쿠킹 히터)은 (2008년 7월 발행분부터) 색인란에 '브랜드' 항목이 신설되어 '파나소닉'도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다. 덧붙여 2008년 9월 발행분부터 마쓰시타제 백색 가전 카탈로그의 표지로고는 모두 'Panasonicideas for life'로 변경되었다. 내셔널의 브랜드로 발매되고 있던 것을 단지 파나소닉의 브랜드로 변경했을 뿐인 상품은 품번의 말미에 P를 붙이고 있다. 파나소닉 전기공업에서 만드는 미용건강 제품도 마찬가지지만 이 회사의 다른 제품들은 품번 변경 없이 브랜드를 바꾸고 있다. 덧붙여 계열점 '내셔널 숍'에 대해서는(2008년도 정례 주주 총회에서) 파나소닉㈜에의 회사명 변경이 정식 결정한 2008년 6월 26일 이후, 간판·셔터로부터 '내셔널'의 문자를 제외해, 명칭을 '파나소닉 숍'으로 변경하는 것과 동시에 '파나소닉' 로고만을 표기한 신 디자인에의 변경 작업을 차례차례 개시했다. 2009년도까지는 폐허를 제외한 전 점포의 간판·셔터가 신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후의 2009년 3월에 파나소닉 숍 캐릭터 '파나방'(1994년 제정)의 공식 사용을 2010년 3월 31일로서 완전한 종료를 결정했다. '파나소닉'의 브랜드 통일로 '파나방'의 작가인 고미타로와의 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이다. 파나소닉 숍 각 점에 배포된 2009년 4월 발행된 파나소닉 각 제품 카탈로그에 그러한 취지의 문서를 동봉했다.
또, 2008년 9월 27일, 오사카부 카도마시의 본사 옥상의 '마쓰시타 전기'의 오려낸 문자를 완전히 철거했다. 회사명 변경은, 예정대로 2008년 10월 1일에 실시, '마쓰시타'나 '내셔널'을 붙인 자회사도, 마쓰시타 전기 본체의 사명 변경과 동시에 사명을 일제히 변경('마쓰시타 전기공업'→'파나소닉 전기공업' 등)해, 기업 그룹도 마쓰시타 그룹에서 파나소닉 그룹으로 변경했다. 게다가 파나소닉 제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회사명 변경에 수반해, 2008년 10월 개편시에, '내셔널'을 붙인 프로그램 명칭이, '파나소닉'을 붙인 것으로 변경되었다('내셔널 극장'에서 '파나소닉' 드라마 시어터로). 파나소닉은 또 자사가 운영하는 재단법인(마쓰시타 정치경제원, 마쓰시타 교육연구재단 등)이나 마쓰시타 기념병원 등 관련 계열 단체의 명칭은 유지하고 그룹 각사의 사명이 바뀐 뒤에도 이들 관련 계열 단체의 명칭은 변경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11] 하지만 마쓰시타교육연구재단을 파나소닉교육재단으로 하는 등 일부 단체는 명칭을 변경했다. 또 도쿄 다이토 센소지 카미나리몬의 명판은 마쓰시타전기에서 바뀌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계속해, 일본계 기업의 일사로서 '마쓰시타 전기'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2]
사업영역
파나소닉은 미국의 자동차나 경트럭의 라디오, 오디오 제품의 OEM 생산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파나소닉 전문 체인점인 '숍@파나소닉(Shop@Panasonic)'을 운영하고 있다. '북미 파나소닉사(PNA-Panasonic Corporation of North America)'는 '파나소닉 아비오닉스사(Panasonic Avionics Corporation)'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기내 엔터테인먼트(IFE-inflight entertainment)와 통신 시스템의 제조, 공급사로 세계에 약 70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이크 포레스트(Lake Forest)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파나소닉 아비오닉스사는 보잉(boeing), 에어버스(Airbus), 에미레이트(emirates), 싱가포르 에어라인(Singapore Airlines) 등의 항공사에 기내 디지털 음악, 영화, 게임, 위성 TV, 온라인 쇼핑, 이메일, 인터넷 등의 IFE를 제공하고 있다. 파나소닉의 제품으로는 오디오, 카 오디오 등의 음향 기기와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의 영상기기, 다리미, 냉장고, 에어컨, 비데 등의 가전제품, 발 마사지기, 안마의자, 혈압계 등의 건강용품, 프로젝터, CCTV, 스캐너 등의 방송, 시스템 기기 등이 있다.
주요 제품
전기차 배터리
2010년대 초반, 파나소닉은 TV 및 가전 분야에서 LG와 삼성에게 완전히 뒤처졌다. 2011년 7월에는 자회사 산요의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 하이얼(Haier)에 매각하고, 친환경 산업에 집중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 파나소닉은 가전 분야에서 자리를 내줬지만, 전기차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쌓았다. 이제 전기차 부품사로 발전을 준비한다. 2009년 7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배터리 계약을 체결한 후 2011년 10월 테슬라와 향후 4년간 8만 대 분의 배터리 셀의 공급계약 맺었다. 2014년 2월 테슬라가 기가팩토리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고, 2016년 6월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모델3에 들어가는 배터리에 관련해서는 파나소닉과만 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2][13] 2016년 8월 네바다주의 기가팩토리가 착공되었다. 2016년 미국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의 1위를 기록했다. 파나소닉 출하량은 2016년 한 해 약 4.6GWh를 기록했으며, 2015년 2.6GWh보다 약 70.5% 성장한 기록이다. 출하량의 70.7%의 점유율을 기록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이끌었다.[14] 이렇게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로 자리를 잡았다. 배터리 대량 공급을 목표로 기가 팩토리 건설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테슬라만 바라보기에는 생산 지체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2017년 12월에 파나소닉은 도요타와 전기 자동차의 핵심기술인 배터리 사업 제휴를 맺었다. 원통형 배터리와는 다른 각(角)형 배터리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15] 파나소닉은 2022년까지 2017년 대비 두 배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목표치가 높다. 이에 대해 파나소닉은 “자동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매우 큰 데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승용차 외에도 상용차, 모터사이클 등 다양한 수요가 있다.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6월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최근 네바다주 기가팩토리에서 배터리 제조와 공급에 관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테슬라와 파나소닉은 새로운 배터리 개발에도 함께 나설 것으로 보인다.[16] 덧붙여 2020년 8월 파나소닉이 전기차 판매 1순위인 테슬라 모델3에 탑재하기 위한 테슬라 전기차 배터리 미국 공장 증설의 위해 100억 엔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파나소닉의 기가팩토리 증설 투자는 처음이다. 파나소닉은 2018년 배터리 셀 공장 증설 투자를 검토했지만, 모델3 양산이 지연되면서 보류했다.[17] 마이니치는 파나소닉이 배터리 생산라인 증설에 나선 것은 협력사인 테슬라가 올해 전 세계 판매량을 지난해보다 36%나 늘어난 50만대로 늘려 잡은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배터리 사업 때문에 기가팩토리1을 합작으로 만든 파나소닉과 테슬라의 관계는 테슬라가 배터리를 독자 생산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때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였으나 양사가 향후 3년간 배터리를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지난 6월 새로 체결하면서 양사 협력체제가 복원됐음을 과시했다.[18] 이번 증설 투자 말고도 파나소닉은 현재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용량을 5% 끌어올려 9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사실상 파나소닉이 배터리를 독점 공급했지만 이후 테슬라가 공급망 다각화 차원에서 LG화학이나 CATL 등과 거래하며 상대적으로 파나소닉 점유율이 낮아졌다.[19][20]
자회사
마쓰시타 전기
2004년에 마쓰시타 전기 산업은 마쓰시타 전기공업에 대한 주식공개매수를 실시해 자회사화했다. 브랜드전략과 경영전략, 연구개발까지 통일적으로 전개하기로 했으며 서로 중복사업 재편과 가전 영업 부문 통합을 이뤄냈다. 그 결과 두 회사의 공동경영회사인 파나홈도 마쓰시타 전기산업 직할의 자회사가 돼 마쓰시타전공과 함께 마쓰시타 전기산업의 주택전기설비인 세그먼트(전기공업 파나홈)로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2]
산요 전기
2008년 11월 7일, 경영재건중의 산요 전기 매수 교섭을 개시한다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파나소닉의 산요 인수의 목적은, 산요가 가지는 세계 쉐어 톱의 리튬 이온 배터리와 세계 7위의 태양전지 사업에 있다.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산요 전기의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 미츠이 스미토모 은행이 파나소닉에 구제를 의뢰해도, 교섭이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미츠이 스미토모의 타진에 오츠보 사장 스스로가 움직였다. 오츠보는 회견에서 '세계 경제의 어려움은 증가해, 새로운 성장의 엔진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같은 해 4월 28일 일부 보도를 통해 마쓰시타와 산요전기가 자본제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당시에는 부인하고 있었다. 이후 11월 1일에도 다시 보도됐다. 2009년 6월, 경영 재건 중의 산요 전기를, 같은해 9월 1일부터 파나소닉 그룹의 산하에 넣는 방침이 명확화되었다. 2009년 11월 4일 산요 전기 주식의 공개매수가 시작되고, 산요 전기도 동참하여 그해 12월 28일까지 산요가 파나소닉 그룹에 들어오는 것이 확정되었다. 파나소닉은(매출액은 히타치 제작소를 능가하는)세계 유수의 거대 전기 회사와 되게 되었다. 12월 21일에 주식 공개매수가 종료되고, 산요의 50.27%의 의결권을 취득했다. 산요는 파나소닉의 연결 대상 자회사가 되어, 동사의 태양전지나 축전지 기술을 살린,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매니지먼트를 실현하는 상품개발에 힘을 쓰는 체제가 갖추어졌다.[2]
각주
- ↑ 〈パナソニック、いつの間に'航空会社'に!? 旅客機向けAV機器を強化 シェア8割を確保〉, 《산케이 웨스트》, 2014-03-14
- ↑ 2.0 2.1 2.2 2.3 2.4 パナソニック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1%E3%83%8A%E3%82%BD%E3%83%8B%E3%83%83%E3%82%AF
- ↑ 正藤 慶一, 〈ついに白熱電球の生産が終了、パナソニックの白熱電球76年の歴史を振り返る〉, 《가전 워치》, 2012-12-27
- ↑ 〈大田弘子元経財相を社外取締役に パナソニック〉, 《일본 경제 신문》, 2013-02-27
- ↑ 〈新ブランドスローガンとして 'A Better Life, A Better World'を制定〉,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3-09-04
- ↑ 〈テクニクス新製品の発売について〉,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4-09-29
- ↑ 〈オーディオ専用ブランド'Technics'を復活〉,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4-09-04
- ↑ 〈内定者自殺は'人事課長が交流サイトでパワハラ' 遺族側、パナソニック子会社に謝罪要求へ〉, 《마이니치 신문》, 2020-04-09
- ↑ 岡林佐和、吉田貴司, 〈内定者にSNSで'辞退して。邪魔です' 入社前に自殺〉, 《아사히 신문》, 2020-04-09
- ↑ 〈“パナソニック株式会社とトヨタ自動車株式会社、街づくり事業に関する合弁会社の設立に合意”〉, 《파나소닉 주식회사, 토요타 주식회사》, 2019-05-10
- ↑ 11.0 11.1 〈グループ全活動をグローバルブランドの価値向上に結集〜松下電器産業株式会社が「パナソニック株式会社」に社名を変更〉,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08-01-10
- ↑ 레이어드, 〈파나소닉과 배터리 계약 연장의 의미와 애증의 역사 총정리〉, 《네이버 블로그》, 2020-06-17
- ↑ 김인경 기자, 〈테슬라 “모델 3 배터리, 파나소닉과만 협업”〉, 《이데일리》, 2016-06-08
- ↑ 조재환 기자, 〈파나소닉, 美 전기차 배터리 독주 ‘성장률 70.5%’〉, 《지디넷 코리아》, 2017-01-16
- ↑ 정미하 기자, 〈도요타·파나소닉, 전기차 배터리 손잡았다〉, 《아이티조선》, 2017-12-14
- ↑ 김동진 기자,〈테슬라·파나소닉, 3년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 《머니투데이》, 2020-06-18
- ↑ 김지웅 기자, 〈테슬라 美 배터리 공장 증설에 100억엔 투입〉, 《전자신문》, 2020-08-20
- ↑ 이혜영 기자, 〈파나소닉, 내년부터 '테슬라 배터리' 10% 증산〉, 《글로벌이코노믹》, 2020-08-23
- ↑ 김성은 기자, 〈파나소닉의 대반격…전세계 배터리 업체 "증설만이 살 길"〉, 《머니투데이》, 2020-08-20
- ↑ 파나소닉 제품 페이지 - https://na.industrial.panasonic.com/products/batteries/rechargeable-batteries/lineup/lithium-ion
참고자료
- 파나소닉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panasonic.com/jp/top.html
- 〈파나소닉〉, 《위키백과》
- 〈파나소닉〉, 《네이버 지식백과》
- 〈파나소닉, IBM재팬과 손잡고 반도체 제조 공정 개선 공조〉, 《블록체인 밸리》, 2019-10-17
- 〈パナソニック、いつの間に'航空会社'に!? 旅客機向けAV機器を強化 シェア8割を確保〉, 《산케이 웨스트》, 2014-03-14
- パナソニック 위키백과 - https://ja.wikipedia.org/wiki/%E3%83%91%E3%83%8A%E3%82%BD%E3%83%8B%E3%83%83%E3%82%AF
- 正藤 慶一, 〈ついに白熱電球の生産が終了、パナソニックの白熱電球76年の歴史を振り返る〉, 《가전 워치》, 2012-12-27
- 〈大田弘子元経財相を社外取締役に パナソニック〉, 《일본 경제 신문》, 2013-02-27
- 〈新ブランドスローガンとして 'A Better Life, A Better World'を制定〉,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3-09-04
- 〈テクニクス新製品の発売について〉,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4-09-29
- 〈オーディオ専用ブランド'Technics'を復活〉,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14-09-04
- 〈内定者自殺は'人事課長が交流サイトでパワハラ' 遺族側、パナソニック子会社に謝罪要求へ〉, 《마이니치 신문》, 2020-04-09
- 岡林佐和、吉田貴司, 〈内定者にSNSで'辞退して。邪魔です' 入社前に自殺〉, 《아사히 신문》, 2020-04-09
- 〈“パナソニック株式会社とトヨタ自動車株式会社、街づくり事業に関する合弁会社の設立に合意”〉, 《파나소닉 주식회사, 토요타 주식회사》, 2019-05-10
- 〈グループ全活動をグローバルブランドの価値向上に結集〜松下電器産業株式会社が「パナソニック株式会社」に社名を変更〉, 《파나소닉 공식 뉴스》, 2008-01-10
- 레이어드, 〈파나소닉과 배터리 계약 연장의 의미와 애증의 역사 총정리〉, 《네이버 블로그》, 2020-06-17
- 김인경 기자, 〈테슬라 “모델 3 배터리, 파나소닉과만 협업”〉, 《이데일리》, 2016-06-08
- 조재환 기자, 〈파나소닉, 美 전기차 배터리 독주 ‘성장률 70.5%’〉, 《지디넷 코리아》, 2017-01-16
- 정미하 기자, 〈도요타·파나소닉, 전기차 배터리 손잡았다〉, 《아이티조선》, 2017-12-14
- 김동진 기자, 〈테슬라·파나소닉, 3년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 《머니투데이》, 2020-06-18
- 김지웅 기자, 〈테슬라 美 배터리 공장 증설에 100억엔 투입〉, 《전자신문》, 2020-08-20
- 이혜영 기자, 〈파나소닉, 내년부터 '테슬라 배터리' 10% 증산〉, 《글로벌이코노믹》, 2020-08-23
- 김성은 기자, 〈파나소닉의 대반격…전세계 배터리 업체 "증설만이 살 길"〉, 《머니투데이》, 2020-08-20
- 파나소닉 제품 페이지 - https://na.industrial.panasonic.com/products/batteries/rechargeable-batteries/lineup/lithium-ion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