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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30일 (목) 09: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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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독일어: Potsdam, 소르브어: Podstupim)은 독일 동부 하펠강가에 있는 도시로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이다.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하펠강(Havel River) 연변에 위치해 있다.
독일의 1918까지 프로이센왕의 거주 지역이었으며, 19세기부터 독일 학문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오늘날에는 세 개의 공립대학을 비롯해 3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칠리엔 궁전(Schloss Cecilienhof)에서 포츠담회담이 개최되었으며, 통독 이후, 새롭게 조성된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가 되면서, 도시의 초기 외관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였다.
개요
- 행정 단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주도
- 면적: 187.28km²
- 인구: 185,750명(2022년)
- 지역어: 독일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potsdam.de/de
역사
포츠담 주변지역은 청동기시대부터 거주 흔적을 보여주며 타키투스(Tacitus )가 설명한 대로 마그나 게르마니아(Magna Germania)의 일부였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슬라브족이 들어와 포츠담은 성을 중심으로 한 헤벨리족의 정착지로 7세기 이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993년에 문서에서 포즈투피미(Poztupimi)로 처음 언급되었는데, 오토 3세가 그 영토를 쿠에들린부르크 수도원에 기증한 후 그의 숙모 마틸다가 이끌었습니다. 1317년의 문서에는 작은 마을로 언급되었으며 1345년에 도시로 인정되었다. 1573년에 2,000명이 거주하였지만 30년의 전쟁을 거치면서 700명밖이 남지 않았다.
근대 초기
포츠담은 30년 전쟁 (1618~1648)으로 인해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1415년부터 호엔 촐레른의 소유였던 포츠담은 1660년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사냥터로 되면서 유명해졌고 나중에 프로이센 왕국의 중요한 병영으로 되었다. 도시에는 많은 군사 수공업자들이 거주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되었다.
1685년 포츠담 칙령이후 포츠담은 유럽인 이민의 중심지가 되었다. 종교의 자유는 프랑스(위그노), 러시아, 네덜란드, 보헤미아 출신의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 칙령은 인구 증가와 경제 회복을 가속화했다.
나중에 이 도시는 프로이센 왕가의 완전한 거주지가 되었다. 왕실 거주지의 건물은 주로 프리드리히왕의 통치 기간에 지어졌다. 1815년, 브란덴부르크주가 형성되면서 포츠담은 베를린이 지방 수도였던 1827년부터 1843년 사이의 기간을 제외하고 1918년까지 지방 수도가 되었다(1918년 이후 다시 한번 베를린이 됨).
20세기
베를린이 프로이센왕국과 독일 제국의 수도였지만, 궁전은 여전히 포츠담에 남아 있었고, 그곳에는 많은 정부 관리들이 정착했다. 1914년, 빌헬름 2세 황제는 신궁전 (Neues Palais)에서 전쟁선언문에 서명했다. 1918년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공화국이 되면서 이 도시는 "제2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후, 1933년 3월 21일, 포츠담의 군인 교회에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대통령 과 새 총리 아돌프 히틀러 사이에 "포츠담의 날"로 알려진 악수 의식이 있었다. 이는 군대(Reichswehr)와 나치즘의 연합을 상징했다. 포츠담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세칠리엔호프(Cecilienhof)궁전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곳으로, 여기서 승리한 연합군 지도자 해리 S. 트루먼, 윈스턴 처칠, 조셉 스탈린은 독일과 전후 유럽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만났다. 회의는 포츠담 협정과 포츠담 선언으로 끝났다.
동독정부(공식 명칭은 독일민주공화국 (독일어: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 DDR))는 "프로이센 군국주의 "의 상징을 제거하려고 했으며 많은 역사적인 건물이 철거되었으며 그 중 일부는 전쟁으로 인해 심하게 손상되었다.
1946년, 오데르-나이세선 서쪽 브란덴부르크주의 나머지 지역이 브란덴부르크주로 편성되었을때 포츠담이 수도가 되었다. 1952년 동독은 주를 해체하고 베지르케(Bezirke)라고 알려진 더 작은 규모의 새로운 동독 행정구역으로 대체했다. 포츠담은 1990년까지 새로운 베지르크 포츠담의 수도가 되었다.
베를린 남서쪽에 위치한 포츠담은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후 서베를린 바로 외곽에 있었다. 서베를린의 장벽으로 인해 포츠담은 서베를린에서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베를린으로 통근하는 시간도 두 배로 늘어났다. 하벨(Havel)을 가로지르는 글리니케 다리(Glienicke Bridge)는 도시와 서베를린을 연결했으며 냉전 시대 의 스파이 교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
독일 통일 이후 포츠담은 새로 재건된 브란덴부르크주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포츠담 시궁전, 군인 교회등 도시의 원래 모습을 재건하려는 많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있었다.
지리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하펠강(Havel River) 연변에 위치해 있다. 면적의 25%만이 도시 지역으로 녹지대가 대부분이며, 하펠 강을 포함해 20개의 호수와 강이 있는 작은 도시이다.
행정구역은 7개의 역사적인 도시지구(Stadtteile)와 2003년에 새롭게 편입된 9개의 교외지구(Ortsteile)로 구성되며, 다시 32개의 구역(boroughs)으로 세분화된다. 2019년 행정개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일부 구역이 폐기되거나 통합되었다. 북쪽과 중앙 지구는 주로 역사적인 건물들이, 남쪽 지구는 새롭게 건립된 큰 건물들이 있다.
공식적으로 기후는 해양성기후이다. 그러나 1961~1990년 도시는 습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났다. 거의 모든 겨울동안 평균이 영하로 낮아 눈이 자주 내리고 겨울은 춥지만 내륙 지역만큼 심하지 않았다. 여름은 기온이 23~24°C로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평균 겨울 최고 기온은 3.5°C(38.3°F)이며 최저 기온은 −1.7°C(28.9°F)이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봄과 가을은 짧다. 여름은 온난하며 최고 기온은 23.6°C(74.5°F), 최저 기온은 12.7°C(54.9°F)이다.
경제
독일의 여타 도시와 달리 전통적 제조업 대신 관광, 영화, 미디어 및 기술기반의 서비스 산업이 도시경제의 중추를 형성한다. 여러 궁전과 넓은 공원과 녹지로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어 과거 동독지역 도시 중 가장 인기가 있다.
1927년 세계 최초의 SF 영화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가 촬영된 독일 영화의 본고장으로 통일 이후 영화와 미디어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도시 동쪽으로 4km 떨어진 바벨스베르그(Babelsberg)에는 16개의 스튜디오로 구성된 미디어 시티 바벨스(Media City Babelsberg)가 위치해 TV와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해 120여개의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활동한다. 1936년 세계 최초로 범용 컴퓨터가 제작된 곳으로 소프트웨어 및 IT 기업의 매출이 제조업을 능가한다. 근래 들어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도 활발하다.
문화
전통적으로 프로에센왕들의 거주지로 18세기초부터 20세기초까지 많은 궁전이 지어져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왕실 도시로 손꼽힌다. 1990년에 14개에 달하는 궁전, 공원과 역사적 건축물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독일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이 등재된 도시이다.
도시 남서쪽 30km 지점에는 프로이센의 베르사유(Prussian Versailles)로 불리기도 하는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이 있다. 1747년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상수시 궁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Frederick the Great)이 여름궁전으로 사용키 위해 건설하였다. 상수시 공원(Sanssouci Park)에 있는 1851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오랑제리 궁전(Orangery Palace)도 유서 깊은 곳이다. 포츠담 회담이 개최된 역사적 장소인 세칠리엔 궁전은 비교적 근래인 1913~17년사이에 영국 튜더양식으로 지어졌고, 2004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고 2007년에는 G8 외무장관회담이 개최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신시장광장((Neuer Markt Square)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로크 양식의 광장이다. 네덜란드 구역(Dutch Quarter)은 18세기 포츠담시 건설을 위해 들어온 네덜란드 근로자를 위해 지어진 곳으로 현재는 이국적 건물들로 고급상점과 카페가 들어선 시의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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