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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6일 (토) 19:5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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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운하(Kiel Canal)의 원래 이름은 독일 북동해 운하(독일어: Nord-Ostsee-Kanal)이며 1948년까지는 빌헬름 황제 운하(독일어: Kaiser Wilhelm Kanal)로 알려졌다. 운하는 총 길이 98km (61마일)의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자리한 운하로 북해 연안의 브룬스뷔텔(독일어: Brunsbüttel)에서 발트해 연안의 킬(독일어: Kiel)까지 연결되어 있다. 킬운하는 윌란반도(유틀란트반도)를 지나는 것보다 평균 519km(280해리) 정도를 단축시켜주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1]
개요
킬운하는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를 가로질러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이다. 카이저-빌헬름운하로도 불렸다. 독일의 브룬스뷔텔(Brunsbüttel)에서 렌츠부르크(Rendsburg)를 지나 킬(Kiel)을 연결하는 운하이며 1895년 개통되었다. 다른 이름은 독일 북동해 운하(Nord-Ostsee-Kanal)이다. 말그대로 북해와 동해(Ostsee, 발트해의 독일어 명칭)를 연결하는 운하라는 의미이다. 서쪽 출입구는 엘베강(江) 어귀의 브룬스뷔텔코크이고, 동쪽 출입구는 킬만(灣)에 면한 킬이다. 북해와 발트해의 수위가 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출입구에는 각각 갑문(閘門)이 설치되어 있다. 1887~1895년에 건설하였고 1907~1914년에 개수(改修)하였다. 길이 98.7km, 깊이 11m, 너비 104m에 높이 43m의 다리가 7개 놓여 있다. 본래 모든 나라의 선박통항(通航)을 허용해 오다가 1936년 나치스 독일에 의해 외국 선박의 통항이 금지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개방되었다. 1961년 렌츠부르크 부근에서 운하의 밑을 지나는 도로 터널이 완성되었다. 이 운하는 운송 시간만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바다 폭풍도 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킬운하는 연간 평균 3만2000척(일 90척)의 선박으로 약 1억t의 화물을 수송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인공 수로이다. [2][3][4]
역사
북해와 발트해를 처음 연결한 운하는 아이더운하(Eider Kanal)로 아이더강(Eider River)을 늘려서 건설한 운하였다. 이 운하는 1748년에 완공되었으며, 킬에서부터 서쪽 해안 퇴니히(독일어: Tönning) 근처 아이더 강어귀까지 총 길이 175km (109 마일) 수로 중 48km (27 마일)였다. 이 운하는 폭은 29m(95 피트)였고, 깊이는 3m(10 피트)에 불과하여,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배는 배수량 300톤 미만으로 제한되었다. 북해와 발트해의 해군 기지를 덴마크를 빙 돌아가지 않고 연결하려는 독일 제국 해군의 관심과 상업계의 요구가 새로운 운하 건설을 고무했다. 1887년 6월, 새 운하 토목 공사가 킬 근처 홀테나우에서 시작되어 9,000명의 노동자가 8년간 공사에 매달린 끝에 1895년 6월 21일, 빌헬름 2세 황제에 의해 브룬스뷜테에서 홀테나우까지 횡단하는 운하가 공식적으로 개통되었다. 운하 개통식은 홀테나우에서 열렸으며, 빌헬름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운하를 빌헬름 황제 운하(독일어: Kaiser-Wilhelm-Kanal)라 이름지었고 마지막 돌을 쌓았다. 운하 개통식은 영국 감독 버트 애크리스(Birt Acres)가 찍었으며, 아직 남아 있는 필름은 영국 런던의 과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점점 증가하는 통행량 및 해군의 요구에 발맞추어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운하 폭을 넓히는 공사를 했다. 확장 공사 덕분에 독일 제국 해군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덴마크를 돌지 않고도 북해와 발트해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확장 계획은 브룬스뷔텔과 홀테나우에 2개의 더 큰 갑문을 설치하면서 완료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은 킬 운하를 국제관리 체계하에 두었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1936년에 국제 관리 체계를 거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운하는 다시 모든 종류의 운송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북해
북해(北海, North Sea)는 유럽 대륙 북쪽, 서유럽과 북유럽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유럽 대륙, 영국, 노르웨이에 둘러싸인 대서양 동북부의 연해이며 발트해와 닿아 있다. 북해의 면적은 약 575,000km², 평균 수심은 94m이고 북위 55도 부근에 수심 18~36m의 도거뱅크(淺堆)가 있다. 유럽 대륙붕에 있는 부속해이다. 북해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영국, 베네룩스, 덴마크 사이의 대륙붕 위에 있는 유럽 대륙의 부속해다. 대서양, 노르웨이해를 접하고 있고,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스케야락(Skagerrak) 해협과 덴마크, 스웨덴 사이의 케테겟(Kattegat) 해협을 통해 발트해와 연결된다. 라인강은 네덜란드를 거쳐 이 바다로 빠져 나온다. 북해 연안에는 북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하고 접해 있다. 북해의 중앙에는 도거 뱅크라는 얕은 모래톱 여울 지형이 존재한다. 이곳은 도거랜드라고 하는 상당한 크기의 섬이었으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해수면 상승으로 침몰한 곳이다. 북해 유전과 좋은 어장인 도거뱅크가 유명하며, 북해 남단은 영국해협과 함께 배들의 운항 밀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북해는 각종 미생물이 풍부하여 청어, 대구, 가자미, 넙치 등의 어류가 다양하게 있어서 세계 4대 어장의 하나가 되었다.[5][6]
발트해
발트해(독일어: Baltisches Meer, 라트비아어: Baltijas jūra)는 북유럽의 바다로,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카테가트 해협과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해 북해,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다. 백해-발트해 운하를 통해 백해와, 킬 운하를 통해 북해와 바로 연결된다. 발트해는 육지에 둘러싸인 염수이다. 입구가 윌란 반도로 막혀 있어 거의 내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석 간만의 차가 거의 없다. 하천으로부터의 풍부한 하천수의 유입과 냉량한 기후로 인한 증발량이 적어 0.6~0.3%의 낮은 염분 함유량을 나타낸다. 발트해는 길이 1600km, 폭 193km, 평균 수심 55m이다. 가장 깊은 곳은 459m(1506 ft)이다. 면적은 약 377,000km², 체적은 약 21,000km³이다. 둘레는 약 8000km이다. 발트해는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동안 많은 지역이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과 핀란드만, 리가 만을 포함한 최대 45%의 지역이 겨울에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 북부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1월이 되면 보트니아 만 전체로 퍼진다. 1월 말이 되면 핀란드 만과 리가만도 얼게 된다. 겨울철에 형성된 해빙은 2월 - 3월 까지도 존재한다. 보트니아 만 북부의 경우 얼음의 두께가 70cm이상이 된다. 발트해는 하나의 거대한 만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어, 수질 오염에 취약하다. 1970년 룬트홀름은 발트해의 심층부에서 산소가 급격하게 줄고 인이 늘어나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1968년 환경 조사에서는 황화수소마저 검출되었다.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발트해 어젠다 21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발트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발트해의 수질, 대기 등에 대한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에 의한 영향도 나타나, 지난 200년간 연평균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하였고 해수면 역시 20 cm 정도 상승하였다. 또한 매년 얼음이 어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7]
킬
킬(독일어: Kiel)은 독일 북부에 위치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주도로서 연방주 내의 최대 도시이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독일 해군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해왔다. 킬은 발트해(海) 킬만(灣)의 안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킬운하(運河)의 동쪽 입구에 해당한다. 1284년 한자동맹(同盟)에 가맹했으며, 1871∼1918년에는 중요한 군항(軍港)이었다. 1665년에 창립된 종합대학에는 유명한 국제경제학연구소가 있다. 조선(造船), 기계제조, 제분, 수산가공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특히 킬만 동쪽 연안 깊숙이 위치한 킬호발트조선소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조선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복구되어 현재 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발전하고 있다. 옛 시가에는 후기 고딕 양식의 니콜라이교회(19세기에 개축,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가 있고, 소(小)킬이라고 부르는 못(지난날의 항구의 일부)가에 있는 새 시청사(市廳舍)의 탑(102m)에서는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한편 매년 6월에 열리는 ‘킬러보헤(Kieler Woche)’는 1895년부터 실시되어 온 전통적인 행사로 요트 경기 문화축제가 베풀어지는데 전 세계에서 선수, 관광객이 모여든다.[8][9]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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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킬 운하〉, 《위키백과》
- 〈북해〉, 《위키백과》
- 〈발트해〉, 《위키백과》
- 〈킬(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위키백과》
- 〈킬 운하〉, 《나무위키》
- 〈북해〉, 《나무위키》
- 〈키엘 운하〉, 《요다위키》
- 〈북해발트해운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