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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7일 (토) 06:23 기준 최신판
함흥시(咸興市)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동해안에 있는 도시이자 함경남도청 소재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평양시, 남포시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관북지방 최대 도시이다. 북쪽은 함경산맥, 서쪽은 낭림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천강이 동조선만을 통해 동해로 유입되면서 성천강 유역에 함흥평야가 발달하였다. 함흥공업지구가 조성되어 화학 공업이 발달하였고, 흥남구역에는 1만 톤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흥남항이 있다. [1]
개요[편집]
함흥시 북쪽에 시의 진산(鎭山)인 반룡산(盤龍山:318m)이 동쪽으로 능선을 뻗어 형제봉(兄弟峰:373m)에 이어지고, 성천강(城川江)이 반룡산의 서쪽 산각(山脚)을 거쳐 남류하면서 시역을 동·서로 양분하나, 시가지의 태반이 동안의 반룡산 남쪽 기슭에 펼쳐진다. 시가지 남쪽을 호련천(瑚璉川)이 서쪽으로 흘러 성천강에 합류한다. 성천강은 망상(網狀)의 물길을 이루는 황천(荒川)으로 홍수 때에는 범람이 잦았으나 1921년의 하천개수 및 유역변경에 의한 장진강(長津江)·부전강(赴戰江)의 물을 받아들이게 된 후인 31년의 제방개수로 물길이 정비되고 범람도 멎게 되었다. 성천강에는 조선 태조에 의해 만세교(萬歲橋)라고 명명된 유서 깊은 다리가 있다. 원산∼회령 가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함흥시의 가장 중요한 가로에 연결되는데, 당초 목조로 건설되었을 때도 한국 유수의 다리였고, 30년 12월에 철근콘크리트로 개조한 때는 길이 500m로, 당시 한국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함흥평야는 관북지방 유수의 쌀 산지이고, 시가지 주변에는 과수원도 많아 양질의 사과를 산출한다. [2]
역사[편집]
함흥시는 1세기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8세기 이후에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성덕왕 20년에 사건을 기록한 《삼국사기》 제8권에 의하면, "하슬라주(오늘날의 강릉시) 이북에 군사 2천여 명을 선발하여, 하슬라주와 용흥강 일대를 지키도록 했다"고 하였다. 한편, 발해의 5경제도에 속해 있었던 남경 남해부가 함경남도 함흥시와 북청군, 락원군 일대에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고려 때 '함주'로 불렀지만, 1258년 조휘의 반란으로 철령 이북이 원나라 쌍성총관부 소관이 됨으로써, 함흥은 고려의 영토가 아니라 쌍성총관부에 속해 있었으나 고려 공민왕이 1356년에 원나라가 홍건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을 기회로 해서 영토를 넓혔고, 비로소 함흥이 고려의 영토로 환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초기 함흥 일대는 여진족과 외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의 지위에서 물러나서, 1403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함흥시는 함경남도에 소속되었고, 함경남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30년 함흥군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었다. 1941년 4월 1일 함주군 주서면 일부 등을 편입하였다. 함흥시는 한국전쟁 때 공공시설과 수많은 주택이 파괴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는데, 천리마운동 때 2차선도로를 구축하고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새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천리마운동 때 도시개발을 할 때에는 소련과 독일민주공화국의 지원이 있었다. 새 시가지는 대부분 중앙유럽의 공산주의 나라의 도시들처럼 바둑판형의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1960년에 함흥시가 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이와 함께 흥남시와 퇴조군(현 락원군) 등이 함흥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70년에 다시 함경남도가 관할하는 일반시로 변경되어 퇴조군이 다시 분리되었다. 1977년에 반룡구역(盤龍區域)이 동흥산구역으로 개칭하고, 1990년에 성천구역(城川區域)이 성천강구역으로, 룡성구역(龍城區域)이 해안구역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이 도시는 199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만든 예술영화인 〈도시 처녀 시집와요〉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주요 관광지로는 마전유원지와 함흥대극장, 경기장, 함흥본궁이 있으며 그중에서 대극장은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져 대극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크고 웅건하게 솟아 있다.
2001년 8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함흥시에서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 전부와 사포구역 일부를 관할로 흥남시를 설치하고 함흥시의 구역을 폐지하였고, 함흥시에서 건설한 목장이 있던 함주군 상창리와 평안남도 대흥군 흑수리의 일부를 관할로 래일로동자구를 설치해 함흥시에 편입시켰다. 2005년에 흥남시가 다시 함흥시로 편입되었고, 함흥시의 행정 구역을 7구역으로 회복시켰다.[1]
기후[편집]
함흥시는 겨울이 길고 혹독하게 추운 북한치고는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4.1℃로 위도상 더 남쪽인 강원도 춘천시, 경상북도 봉화군과 비슷하고 남한 강원도 북부 및 파주보다는 따뜻하며 비슷한 위도인 평안북도 구성시보다도 3℃ 정도 더 따뜻하며 서울보다는 약 2도정도 춥다. 함흥의 겨울철이 비교적 따뜻한 이유는 한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개마고원이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수심이 깊은 동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내에서도 겨울이 따뜻한 곳에 속한다. 최난월인 8월의 기온도 23.2℃로 서늘한 편이고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강하게 띄는 북한 내에서는 연교차가 27℃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이는 유라시아 동안에 한정해서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이다.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대륙 동안은 대륙 서안에 비해 추울 수 밖에 없다.
함흥의 위도는 북위 39°54'45"로 북위 39°28'인 스페인의 발렌시아와 비슷하다. 그러나 함흥과 발렌시아의 1월 평균 기온은 각각 -4.1℃와 11.6℃로 16도나 차이가 난다. 발렌시아의 1월 평균 기온은 오히려 북위 26도에 있는 푸젠 성과 비슷하다. 그리고 함경도 지방답게 연 강수량은 847mm로 매우 적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벼농사 대신에 감자 농사가 성행했다. 그 유명한 함흥냉면이 바로 감자 전분으로 만든 것인데 함흥 지방은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매우 큰 곳이라 감자를 기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함경도 지방에서 생산된 감자의 질은 남한의 강원도, 제주도에서 생산된 감자보다 그 품질이 월등히 더 높다고 한다. 다만, 북한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저장 기술이 매우 낙후되어 제철이 아니면 제대로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3]
산업[편집]
성천강 유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함흥평야가 발달하여 논농사 위주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경지면적이 넓지 못하여 생산량은 적지만 단위 면적당 쌀의 생산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류·잡곡·채소 등이 있다. 또한, 과수 재배가 활발하여 사과를 비롯한 배·포도·복숭아 등이 생산된다. 공업은 식품·피혁·제사·주물·유리·고무·양조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한편, 이 시는 예로부터 물자의 집산지로 번영하여 우리 나라 3대 정기시로 유명하였다. 상설 시장으로는 영동의 함흥동방어채시장, 본동의 함흥서방어채시장, 황금동시장, 유락동시장 등이 열리며, 정기 시장으로는 성천동의 가축 시장, 복부동의 신탄 시장, 일출동의 신탄 시장 등이 모두 2·7일에 개시된다. 특히, 신탄 시장은 함주군 상기천면 오로리와 덕산면 일대에서 집산되는 땔감으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4]
교통[편집]
철도 시설로는 함흥역, 흥남역, 창흥역등이 있다. 북한 철도망의 가운데에 함흥이 있고 북한 서부와 동부는 함흥을 거쳐야만 지나다닐 수 있는 형태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신흥선, 장진선, 서호선 등이 지난다. 참고로 이 기준은 두개 이상의 노선이 지나가는 기차역만 넣은 것이다. 원산과 라선을 잇는 1급 도로(대한민국 기준 7번 국도)가 지나고, 영광군을 통해 개마고원으로 가는 2급 도로도 지난다. 2018년 기준 장거리 택시의 함경도 북부와 평안도 사이의 중간 기점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 두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환승한다고 한다.[3]
통일후 전망[편집]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지면 함경남도의 주요 거점도시로서 평양, 청진과 함께 광역시 승격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옛 함흥, 함주, 흥남 지역을 다 엮으면 대충 100만 정도의 인구가 되고, 또 함경도에 대한 배려 차원도 고려한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통일 이후에는 인구 유동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야 인구 통제를 하지만,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경우 적어도 이북 5도간의 인구 유동을 막을 필요성도 명분도 없는지라, 이미 껍데기만 남은 함흥의 인구가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적다. 두 번째로 함경남도가 두 토막 나 버린다. 마지막으로 일제가 나눠놓기 이전의 함흥 지역을 다 합친다면 4,121.89㎢라는 거대하다 못해 무지막지한 행정구역이 탄생한다. 신흥군을 제외하면 2,900㎢ 정도로 많이 작아진다만, 서울이 605.18㎢, 그 넓은 평양이 1,260㎢, 남한 최대 면적 행정구역인 홍천이 1,819.6㎢인데 이 셋을 합친 것보다 더 넓다!(3,684.78㎢) 애초에 일본이 저래 쪼개 놓은 이유가 함흥이 너무 넓어서 라고 한다. 이런 건 수원-화성-오산 통합 같은 일종의 시나리오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행정구역 통합을 한다면 어디까지를 통합 함흥시의 범주로 삼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듯 하다.[3]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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