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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

화타(중국어:华佗huá tuó)는 중국 한나라 말기의 의사로 명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개요[편집]

화타는 자(字)는 원화(元化)이고,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보저우시[亳州市]인 패국(沛國) 초현(譙縣) 출신이다. 화타(華佗/華陀)는 '선생'이라는 뜻의 존칭을 붙여 부르던 것이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며, 부(旉)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화타의 의술에 관한 저술로는 《화씨중장경(華氏中藏經)》으로도 불리는 《중장경》(1권)과 《화타신의비전(華佗神醫秘傳)》(22권) 등이 전해진다. 《중장경》은 《송서(宋書)》 '예문지(藝文志)'에 처음으로 언급되어 육조시대(六朝時代)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화타신의비전》은 7세기 당(唐) 나라 때에 약왕(藥王)으로 불린 손사막(孫思邈)이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수서(隋書)》의 '경적지(經籍志)'에는 중국의 위(魏)·진(普) 시대에 화타의 의술을 담은 《화타방(華佗方)》(10권), 《화타내사(華佗內事)》(5권), 《관형찰색병삼부맥경(觀形察色幷三部脈經)》(1권), 《침중구자경(枕中灸刺經)》(1권) 등의 책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

생애[편집]

화타(145년 ~ 208년)는 동시대의 동봉(董奉)과 "상한론(傷寒論)"의 저자인 장기(자가 중경(仲景)로 흔히 "장중경"으로 알려져 있음)과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라고 불린다. 워낙 유명한 명의다 보니 실제 역사와 관계없는 설화에서도 등장이 잦다. 패상(沛相) 진규(陳珪)가 효렴(孝廉)으로 천거했고, 또 태위(太尉) 황완(黃琬)이 벽소(辟召) 했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재야에 머물렀다.

화타가 명의로 이름을 떨치자, 같은 고향 출신인 조조(曹操)는 그를 불러 곁에 두고 자신이 앓고 있는 두통을 치료하게 했다. 화타는 조조가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침으로 치료해 주었다. 하지만 의사로서만 대우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화타는 귀향하기를 청해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가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들어 다시 조조의 부름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조조는 화타가 계속 미루자 분노하였고, 화타의 아내가 정말 병에 들었는지를 살펴보고 참이거든 휴가를 더 주되 거짓으로 판명되거든 압송하라고 하였다. 결국 화타는 압송되었다.

조조는 두통이 심하여 견딜 수 없게 되자 진맥한 화타가 이렇게 조조에게 수술을 권한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도 위험한 두 개술이었다. 조조는 암살의 공포로 평생을 떨었던 사람이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치료법으로 머리를 쪼갠다는 말을 들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화타를 옥에 가뒀고 측근들이 살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조조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나중에 아들 조충(曹沖)이 병들어 죽게 되자, 조조는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하였다. 죽게 된 화타는 옥졸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며 책을 주려 하였으나, 옥졸이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거절하니 화타도 강요하지 않고 불에 태워버렸다.

화타의 시대[편집]

후한 말기의 전설적인 의사로 알려진 화타는 원래 수리와 경전에 해박한 청류파를 추구하는 학자적 선비였다. 그는 의술에도 능통하였는데, 어지러운 난세에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데 활용하였다. 화타의 의술은 신기에 가까워서 내과와 침구뿐 아니라 외과와 부인과 소아과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화타가 살던 시대의 의술은 종교적인 것이 강하였다. 그런데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발명하여 외과 수술에 응용하였다. <후한서․화타전>에 질병이 인체 내에 발병했는데 침과 약으로 고치지 못하면 먼저 마비산을 술과 함께 복용케 해 마취시킨 후 배나 등을 갈라 덩어리를 꺼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창자나 위에 있으면 갈라 곪은 부위를 제거한 후 봉합하고 신기한 고약을 바르면 4, 5일이면 상처가 아물고 1개월 이내에 평소처럼 회복됐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조제와 침구 위주의 당시 위술에서 볼 때 혁명적인 치료법이었다. 화타가 신의로 추앙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화타가 개복 수술을 할 때 마비산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세계 의학사상 최초다. 이 기록은 서양보다 천육백 년이나 앞선다.

화타의 의술[편집]

화타는 동봉(董奉)·장기(張機)와 더불어 한나라 말기에 출현한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로 불리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중국 주(周) 나라 때의 전설적인 의사 편작(扁鵲)과 더불어 명의(名醫)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져 왔다. 약물 처방뿐 아니라 외과 수술에도 정통해 ‘최초의 외과의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어 사용했다고도 전해진다.

화타는 일찍이 서주(徐州)로 유학하여 여러 분야의 경서에 폭넓게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패국의 상(相) 진규(陳珪)가 효렴(孝廉)으로 천거하고, 태위(太尉)인 황완(黃琬)은 황궁의 시의(侍醫)로 천거하기도 했지만, 관직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향촌에 머무르며 의술을 행했다. 화타는 원래 사대부였으므로 의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늘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화타에 대한 기록은 《후한서(後漢書)》의 '방술열전(方術列傳)'과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의 '방기전(方技傳)' 등에 전해지며,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배송지(裴松之)가 주석에서 인용한 《화타별전(華佗別傳)》에는 화타가 환자를 치료한 사례들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들에 따르면, 화타는 약과 침, 뜸 등에 모두 정통했고, 침과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했는데, 창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창자를 잘라 씻어내고 봉합해 고약을 붙이면 4〜5일 만에 고통이 없어지고, 한 달이면 완쾌되었다고 한다. 병을 진단하고 환자의 상태를 예견하는 능력도 뛰어나, 환자의 얼굴색을 보거나 맥을 짚는 것만으로도 병의 정도와 예후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타는 체질에 따라 처방도 다르게 내렸다. 부(府)의 관리인 아심(兒尋)과 이연(李延)이 똑같은 증상으로 함께 진찰을 받았으나, 화타는 아심에게는 설사를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고, 이연에게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이들이 같은 병에 왜 치료방법이 다른지를 묻자 화타는 두 사람의 체질이 다르므로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한다며 다른 약을 주었다. 그리고 화타의 말대로 두 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화타는 양생술(養生術)에도 밝아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해진다. 또한 제자 오보(吳普)에게 호랑이·사슴·곰·원숭이·새의 모습을 본뜬 '오금희(五禽戱)'라는 양생술을 전했는데, 이를 시행한 오보는 90세가 되어서도 귀와 눈이 밝고 치아가 완전하며 견고했다고 한다.

화타는 일생을 의술활동에 바쳤는데, 외과에 능하고, 수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침구 등에도 정통했다. 그는 가급적 약과 침구를 적게 사용했지만, 그가 치료하면 신통하게 나았다. 침과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을 때에는 술에 그가 발명한 마비산(麻沸散, 대마로 만든 마취제)을 타서 마시게 하여 마취한 뒤 외과 수술을 하였고, 상처 부위는 봉합 후에 고약을 발랐다.

한편, 《삼국지연의》에는 화타가 주태(周泰)와 관우(關羽) 등을 치료해 준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치료할 때, 관우가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연히 마량(馬良)과 바둑을 두면서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화타에게는 번아(樊阿)라는 제자도 있었는데, 그에게는 옻나무 등을 이용한 칠엽청점산(漆葉靑黏散)의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번아는 그것을 오래 복용해 100살이 넘도록 장수했으며, 침술에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화타(華佗,?~208?)〉,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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