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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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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섬 위치
북마리아나제도에서 사이판섬 위치
사이판섬 관광도

사이판섬(영어: Saipan Island)은 서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해외 속령인 북마리아나제도의 가장 큰 이다. 남북길이 22km, 동서길이 3∼8km, 면적은 115.39㎢이고, 중앙에는 높이 480m의 타포차우산이 있어 가장 높은 지대를 이룬다. 2006년 기준 인구는 약 6만 5000명인데 이는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 총 인구의 85% 남짓한 인구이다.[1]

개요[편집]

사이판섬은 오세아니아에서 15개의 열대 섬이 하나로 이루어진 북마리아나제도의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이다. 북위 15.25°와 동경 145.75°에 위치하며, 괌섬의 북쪽으로부터 대략 200km 떨어졌으며 인기 있는 태평양 연안의 관광객 행선지이다. 일본령이었을 때의 이름은 사이판을 음역한 '사이판섬'(일본어: 彩帆島, さいぱんど 사이판도)이었다. 섬의 서쪽은 모래 해변과 큰 규모의 석호를 창출하는 앞바다에 산호초가 자리 잡고 있다. 동쪽 해안은 주로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절벽암초로 구성되어있다. 그곳의 가장 높은 지점은 474m 높이의 타포차우 이라 불리는 산을 덮는 석회암이다. 많은 사람들은 타포차우 산을 활동이 멈춘 화산이라 여기지만 사실 석회암 층이다. 타포차우산의 북쪽에 만세 절벽은 언덕 산등성이다. 북쪽 대략 3.2km에 위치한 아츄가오산은 에오세 중심지가 현재 정상의 북쪽에서 멀지 않은 계층화 된 혼성의 원추화산 (圓錐火山)의 잔여로 해석된다. 주민의 다수가 차모로족, 필리핀인, 캐롤리니아족이며 영어와 차모로어가 많이 사용된다. 2001년 섬의 주민들의 60%는 중국, 방글라데시, 필리핀, 타이,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사이판섬을 포함한 북마리아나제도의 통치자는 Governor(주지사)로 불리며 테노리오, 바바우타, 베니그노 레페키 피티알 이후 그의 전 부주지사였던 엘로이 이노스를 거쳐 현재는 비교적 젊은 편인 Ralph DLG Torres (랠프 델리온 게레로 토레스)이다.[2]

사이판섬은 1521년 에스파냐인에 의하여 발견되어 수 세기 동안(1565년~1899년) 에스파냐령으로 있다가, 1899년부터 1914년까지는 독일령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에 점령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7월에 미국의 통치령이 되었으며, 전쟁 후반부 미국의 주요 공군기지 역할을 하였다. 1962~1986년에는 태평양군도 내 미국이 통치하는 국제연합(UN) 신탁통치지역의 본부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다. 관광업이 경제의 주축이다. 예전부터 사탕수수, 커피, 목화 재배가 활발하였고 제당공업도 발전하여 마리아나제도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한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휴양지로 널리 찾고 있다. 특히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일본인이 관광객의 70%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미국인이나 한국인이 많다.

기후[편집]

사이판섬의 기후는 열대성으로 사이판의 연평균기온은 26∼28℃이고 강수량은 연간 2,000 ~ 2,500mm로서 세계 평균치인 973mm는 물론, 한국 연간 강수량인 1,270mm보다도 많다. 연중 평균 기온의 변화가 약 1-2℃ 정도, 월평균 최고 기온과 월평균 최저 기온과의 차이가 6℃ 정도로 기온 변화가 거의 없다. 월평균 기온은 26-28℃. 대신 대체로 습하다.[3]

역사[편집]

사이판섬과 이웃하는 괌섬, 로타섬, 루타섬, 티니언섬을 따라서 북쪽으로의 더 작은 크기의 소형의 섬들까지 기원전 20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요 이동수단은 카누였다. 15세기, 스페인인들이 항해 중에 괌에 처음으로 도착하여 차모로인과 마주쳤다. 그리고 스페인인들은 사이판을 합병했다. 1815년 경, 사타왈 출신의 많은 캐롤라이니언 족이 차모로족이 괌에 갇힌 시기 동안 사이판에 정착을 했으며, 차모로 종족의 땅과 권리의 상당한 손실을 초래했다. 1899년부터 베르사유 조약 발효 때까지는 독일이 사이판을 지배했으며, 1922년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신탁 통치하는 남양 군도의 일부가 되었다. 일본은 사이판섬에서 낚시 산업과 설탕 산업을 주로 개발했으며, 1930년대 이후로는 병참기지를 건설하면서 30,000명의 군인을 주둔시켰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1944년 6월 15일, 미국 해병대는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북마리아나제도 장악의 일환으로 3주일 동안의 전투를 벌여 사이판섬을 점령하고 비행장을 건설했다. 이 사이판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일본군들은 대부분 반자이 돌격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으며, 일본인들도 "반자이 절벽"이라 불리는 절벽에서 자살했다. 이 곳에는 만세 절벽(Banzai Cliff)과 자살 절벽(Suicide Cliff)이 있다. 1986년 11월 북마리아나제도가 미국에 가입하면서 미국령의 일부가 되었다. 미국은 북마리아나제도가 확실한 연방법으로부터 면제받기로 동의하면서, 어떤 관련된 산업 관계와 이민을 포함했다. 그 결과, 호텔과 관광이 증가하고, 상당히 많은 의류공장이 개업했다. 의복 제작은 사이판의 주요 경제력이 되었으며, 그 제품에 "made in the U.S.A"의 꼬리표를 붙임과 동시에 수천의 계약직 외국인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저가의 의류가 미국 수입 관세에서 면제됨과 함께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지속했다. 이 공장들에서 고용자들이 경험한 작업 조건과 대우는 논쟁과 비평의 주제가 되었다.

관광[편집]

사이판섬의 주요 수입원은 관광 산업이다. 주요 키워드는 바다와 정글이다. 사이판의 행정 중심지는 남쪽의 수수페이지만 관광의 중심지는 북쪽의 가라판 지역인데 이는 가라판 일대의 바다가 훨씬 아름답고 주변 산호초와 암초들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서 파도가 약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열대지방과 비교해도 물이 굉장히 맑은 편이다. 열대 해역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경우 보통은 ‘시야가 몇십미터 정도 나온다’고 표현하는데, 사이판은 유독 물이 맑기 때문에 ‘시력이 곧 시야’다라는 말을 쓴다. 사이판의 관광 산업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 무렵인데, 이는 당시 일본의 해외 투자 자본이 사이판으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곳에서 비교적 무난한 통치를 벌였기에 패전 이후에도 이곳을 '빼앗긴 땅'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일본이 30여 년간 지배를 했던 곳이다 보니 일본 관련 시설도 많이 남아있고, 일본어 구사자들도 남아있어서 투자자들의 접근이 쉬웠다. 또한 일부 일본인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눌러앉아 살아서 일본인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계속 살고있기도 하고, 심지어, 만세 절벽과 같이 일본이 패망하자 많은 사람이 절벽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투신 자살했다. 결국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1970년대부터 일본 투자자들이 이곳의 관광 산업에 투자하여 많은 호텔과 리조트, 상점들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휴양소가 되었다. 일본 국적기가 직항으로 취항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 국적기를 타고 사이판에 첫발을 디딘 관광객들은 일장기까지 휘날리며 잃어버린 땅에 다시 찾아온 것처럼 난리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3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고 해서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으며, 80~90년대 이후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먹고살 만해지면서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사이판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입국 심사할 때 심사관이 한국어를 하는 해프닝도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 후반 무렵에는 괌과 함께 사이판이 인기 휴양지였으며 특히 신혼 여행객들이 많이 찾았다. 현재는 한국 자본도 사이판 관광 산업에 투자하여 한국 자본 계열의 호텔, 리조트, 대형 마트 등이 좀 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한국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의 IMF 사태 때문에 관광객들이 주춤해지면서 2000년대 이후로는 관광객들이 줄어버렸다. 이후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다시 살아났지만 문제는 관광객들이 눈이 높아지고 유행이 바뀌면서 더 멀리 팔라우라든지 하와이같은 곳으로 주로 가게 되었고 신혼여행지로는 몰디브라는 막강한 상위 호환지가 떠버렸다.

사이판섬은 4시간 남짓 비행으로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으로 말이 통하는 곳이 제법 된다는 점 때문에 일본과 대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며 괌과 함께 태교 여행이나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운 아이나 고령자가 있는 가족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 섬 주변 바다가 멀리 나가도 수심이 얕고 산호나 열대어 등 수중 환경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사이판섬은 여전히 휴양지로서의 질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실 사이판이 특별히 휴양지로서 훌륭하다기 보다는 보통 사이판에 휴양을 올 만한 사람들이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휴양지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것이다. 근처에 있는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휴양지들은 부실한 안전 의식, 부패 공무원들의 뇌물 요구, 불안정한 치안, 관광객 대상 바가지, 성매매 산업 등으로 악명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주로 가는 국외 휴양지 중에서는 괌, 하와이와 더불어 사이판이 안전이나 트러블 면에서 괜찮은 편에 속한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편집]

도로 교통으로는 DFS 셔틀버스와 DFS 택시 등이 있으며, DFS 택시의 경우 각 리조트에서 DFS 갤러리아로 갈 때만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DFS 셔틀버스의 경우 DFS 갤러리아에서 숙소로 갈 때 이용하면 유용하며, 택시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다. 셔틀버스의 경우 DFS 갤러리아를 중심으로 북쪽행 노선과 남쪽행 노선으로 나뉜다.

항공 교통[편집]

각만 지역에 일제시대의 활주로 흔적이 있으며, 현재 사이판 국제공항은 I Fadang(이 파당) 지역에 있다. 이 공항을 이용하여 국제선으로는 괌, 한국, 일본, 중국으로 갈 수 있으며, 계절편으로는 홍콩으로 가는 항공편도 있다. 국내선으로는 로타와 티니안으로 이어진다. 이 공항은 여객터미널 내에 국제선과 국내선 건물이 따로 있다. 괌과 로타로 가는 항공기는 30인승 크기이며 티니안에는 6인승 소형비행기가 주로 운항된다.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이스타항공이 인천 - 사이판 노선을 운항 중이다. 계절편으로 부산 - 사이판 노선도 운항 중이다. 예전에 델타 항공 역시 부산 - 사이판 노선을 계절편으로 운행하기도 했지만, 김해국제공항에서 부산 - 도쿄 노선을 철수함과 동시에 사이판 노선 역시 운항을 중단하였다.

북마리아나제도[편집]

북마리아나제도 혹은 북마리아나 제도 연방(영어: Northern Mariana Islands, 공식적으로는 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lands (CNMI), 차모로어: Sankattan Siha Na Islas Mariånas, 캐롤라인어: Commonwealth Téél Falúw kka Efáng llól Marianas)는 오세아니아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제도에 있는 미국의 해외 속령이다. 수도는 사이판이며, 미크로네시아에 속하고 16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사이판섬, 티니언섬, 로타섬 단 3개뿐이며, 대부분의 섬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다. 면적은 약 464km² 정도이고 인구는 2021년 통계 5만 6,882명이다. 북마리아나 제도는 16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지역 근처의 해안선은 사이판과 마나가하섬을 포함하여 대부분 산호초로 되어 있다. 이 열도의 최고점은 아그리한섬의 965m이고, 마우그세섬은 침강하여 화구벽(火口壁)의 세 봉우리가 안에 석호(潟湖)를 에워싼 모양이 되었다. 전 지역에서 사탕수수, 코프라가 산출되며, 1960년대부터 티니언섬 등에서 젖소도 방목한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사이판섬〉, 《위키백과》
  2. 사이판〉, 《나무위키》
  3. 사이판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북마리아나 제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미크로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미크로네시아 국가와 섬 1
미크로네시아 국가와 섬 2
미크로네시아 국가와 섬 3
미크로네시아 도시
미크로네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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