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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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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중국에서는 서자(시쯔, 西子)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춘추 시대 말기)의 사람이다. 현재의 저장성 사오싱 주지 시 출신이다. 왕소군, [[양귀비]], 우희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또한 이들 중 가장 으뜸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의 화신(化身)이자 대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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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중국에서는 서자(시쯔, 西子)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춘추 시대 말기)의 사람이다. 현재의 [[저장성]] 사오싱 주지 시 출신이다. 서시는 [[왕소군]], [[양귀비]], [[우희]]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또한 이들 중 가장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서시는 미의 화신(化身)이자 대명사이다.
  
서시는 당시 월나라의 서울이었던 저장 성(浙江省) 중부 샤오싱(昭興) 시내 서남쪽 주지(諸暨)시의 저라산(苧蘿山)이라는 야트막한 산 아래 저라촌에서 나무꾼 아버지와 삯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저라촌은 동쪽과 서쪽 2곳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녀는 서쪽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서쪽 마을 사람들의 성은 거의가 다 시(施)씨였다. 그녀를 서시(西施)라고 부르는 것은 서쪽 마을의 시씨(施氏)라는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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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당시 [[월나라]]의 수도였던 [[저장성]](浙江省) 중부 샤오싱(昭興) 시내 서남쪽 주지(諸暨)시의 저라산(苧蘿山)이라는 야트막한 산 아래 저라촌에서 [[나무꾼]] 아버지와 삯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저라촌은 동쪽과 서쪽 2곳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녀는 서쪽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서쪽 마을 사람들의 성은 거의가 다 시(施)씨였다. 그녀를 서시(西施)라고 부르는 것은 서쪽 마을의 시씨(施氏)라는 의미에서이다.
  
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나라 구천의 참모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의 처리에 대한 공물로 오나라 부차의 여인이 된다. 서시가 부차에게 총애를 받자 부차의 후궁 위희부인이 서시를 질투하여 서시를 비밀리에 제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나라 경계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국력을 키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된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의 서시는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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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나라 구천의 참모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의 처리에 대한 공물로 [[오나라]] [[부차]]의 여인이 되었다. 서시가 부차에게 총애를 받자 부차의 후궁 위희부인이 서시를 질투하여 서시를 비밀리에 제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나라 경계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국력을 키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되었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의 서시는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 당했다.
  
중국의 사가들은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의 일생에 대하여 많은 설들을 만들었다. 그중 서시는 범려의 연인으로 오나라가 망한 후 그가 월나라를 떠날 때 비밀리에 데리고 갔다는 설이 사가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았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B%9C_(%EC%82%AC%EB%9E%8C)  서시 (사람)]〉,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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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가들은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의 일생에 대하여 많은 설들을 만들었다. 그중 서시는 [[범려]]의 연인으로 [[오나라]]가 망한 후 그가 [[월나라]]를 떠날 때 비밀리에 데리고 갔다는 설이 사가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았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B%9C_(%EC%82%AC%EB%9E%8C)  서시 (사람)]〉, 《위키백과》</ref>
  
 
== 서시의 죽음 ==
 
== 서시의 죽음 ==

2024년 12월 25일 (수) 01:51 기준 최신판

서시

서시(중국어:西施xī shī)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미인이다. 서시는 중국 4대 미인 중 하나로서, 오나라를 멸망시킨 경국지색이다. 심장병이 있어서 병약미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개요[편집]

서시는 중국 춘추시대 월국(越國)의 미녀이다.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부차에게 접근하여 오나라가 멸망하게 하였다. 평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지만 뛰어난 미모를 타고났기에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다고 전한다. 그녀가 살았던 마을에서 절세의 미녀로 소문이 나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고 지병으로 앓던 심장병의 통증으로 찡그리는 서시의 얼굴까지 흉내를 냈다고 한다. 눈살을 찌푸린다는 의미의 서시효빈(西施效嚬), 서시빈목(西施嚬目) 서시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의미의 서시봉심(西施奉心)이라는 말도 이러한 정황에서 유래되었다. 모두 본질을 망각하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한다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吳)나라에 패망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인 범려(范蠡)가 서시를 데려다가, 호색가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오나라가 멸망하고 부차에 대한 죄책감으로 강에 빠져 자살했다고도 하며 자신을 요부로 훈련시킨 범려와 함께 제나라로 가 그곳에서 장사를 통해 큰 재물을 모았다고도 전해진다.[1]

생애[편집]

서시는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중국에서는 서자(시쯔, 西子)라고도 한다. 기원전 5세기(춘추 시대 말기)의 사람이다. 현재의 저장성 사오싱 주지 시 출신이다. 서시는 왕소군, 양귀비, 우희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또한 이들 중 가장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서시는 미의 화신(化身)이자 대명사이다.

서시는 당시 월나라의 수도였던 현 저장성(浙江省) 중부 샤오싱(昭興) 시내 서남쪽 주지(諸暨)시의 저라산(苧蘿山)이라는 야트막한 산 아래 저라촌에서 나무꾼 아버지와 삯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저라촌은 동쪽과 서쪽 2곳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녀는 서쪽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서쪽 마을 사람들의 성은 거의가 다 시(施)씨였다. 그녀를 서시(西施)라고 부르는 것은 서쪽 마을의 시씨(施氏)라는 의미에서이다.

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월나라 왕 구천의 참모 범려의 전략에 따라 패전의 처리에 대한 공물로 오나라 부차의 여인이 되었다. 서시가 부차에게 총애를 받자 부차의 후궁 위희부인이 서시를 질투하여 서시를 비밀리에 제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월나라를 끝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월나라 경계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국력을 키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되었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의 서시는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 당했다.

중국의 사가들은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의 일생에 대하여 많은 설들을 만들었다. 그중 서시는 범려의 연인으로 오나라가 망한 후 그가 월나라를 떠날 때 비밀리에 데리고 갔다는 설이 사가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았다.[2]

서시의 죽음[편집]

서시(西施)는 중국역사상 가장 예쁜 여인중 하나이다. 역시 민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여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녀는 춘추전국시기 월(越)나라 절강(浙江) 제기(諸暨) 저라촌(苧蘿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서시가 아니다. 다만,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고, 서촌(西村)에서 태어났으므로, 인근에서는 그녀를 '서시'라고 부른 것이다. 이 경국경성의 여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투쟁의 희생양으로 운명이 결정되어진다. 그녀가 15살이 되던 해에 오(吳)나라의 국왕 부차(夫差)는 부친을 죽인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월나라를 공격하여 점령한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포로로 잡혀 오나라의 노예가 된다.

월왕 구천의 극진한 노력으로 3년 후, 부차는 마침내 구천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귀국한 후, 구천이 한 첫 번째 일은 바로 월나라의 미인들을 선발하여 오나라로 보내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부차를 마비시킨다. 이런 상황하에서, 서시는 미모로 범려(范蠡)의 눈에 든다. 범려의 제안에 따라, 구천은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친다. 부차에게 바쳐진 후, 서시는 구천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경국경성의 미모와 뛰어난 금기가무(琴棋歌舞)로 신속히 오왕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 된다. 그녀의 미혹하에 부차는 월나라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느슨해진다. 이리하여 월나라는 재기의 외부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십년 후, 그녀가 내부에서 호응하면서, 월나라는 병력을 일으켜 오나라를 점령한다. 부차는 결국 검을 뽑아 자결한다.

서시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정상적이라면, 그녀처럼 국가를 위하여 이처럼 큰 희생을 하고 공헌을 한 사람이 귀국하면, 당연히 군왕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최후는 그녀의 공헌과 비례하지 않았다. 서시의 최후에 대하여 사학계이건 민간전설이건 모두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견해에 따르면 서시는 귀국 후에 범려와 오호(五湖)에 은거했다고 한다. 일찍이 구천이 범려에게 보낼 전국의 미인을 선발할 때, 범려와 서시는 이미 서로를 알고 애인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단지 나라가 어려우므로 그들은 잠시 자신들의 애정을 포기한 것이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범려는 일찌감치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는 구천이 환난을 같이 할 수는 있어도 부귀를 같이할 수는 없는 군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시가 귀국한 후, 그녀와 함께 도망쳐서 강호에 은거하고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구천은 확실히 환난은 함께 해도 부귀는 같이 누릴 수 없는 군왕이다. 범려의 총명함을 보면, 구천과 십여 년을 함께 일했으니, 구천의 이런 어두운 면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래서 성공한 후에 은퇴한 범려는 자신의 애인과 은거를 선택하는 것도 정리에 맞다고 할 수 있다. 민간전설에 따르면, 범려가 배를 타고 오호에 은거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점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견해에 따르면 부차의 부인이 서시를 밀어서 물에 빠뜨려 익사시켰다는 것이다. 풍몽룡(馮夢龍)의 <동주열국지>와 백양(柏楊) 선생의 <황후의 죽음>에 따르면 서시가 귀국한 그날 밤에 월왕 구천은 그녀에게 시침하도록 한다. 그가 보기에 서시가 오왕과 동침했으면, 당연히 그와도 동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부차의 이런 행동은 그와 환난을 함께한 부인을 격노하게 한다. 그래서 그녀는 부차가 보지 않을 때, 서시를 물에 밀어 익사시킨다. 일대미인이 이렇게 호수에 빠져 죽은 것이다.

당시 서시는 구천에 의하여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 다만 그녀의 경국경성의 미모는 여전히 구천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서시에게 시침하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구천이 부차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의 부인이 서시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것도 정리에 들어맞는다. 또 어떤 사람은 서시가 물에 빠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구천의 본부인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애인인 범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의 신뢰도는 비교적 낮다. 범려는 무정무의(無情無義)한 사람이 아니다. 월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그가 자신의 연인에게 이렇게 독수를 썼을 리가 없다. 또 다른 견해로 서시는 다른 사람이 물에 밀어 넣어서 익사한 것이 아니라, 부주의하여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평가[편집]

서시(西施)는 중국 4대 미인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인물로,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더불어, 그 당시 월나라와 오나라 간의 역사적 사건과 깊이 얽혀 전해지는 전설적 인물이다. 서시의 본명은 정확히 전해지지 않으며, 서시(西施)는 그녀가 춘추시대 서촌(西村) 출신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침어(沈鱼)의 전설로 유명하다. 이는 서시가 물가에 서면 물고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헤엄치는 것을 멈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서시는 월나라 왕 구천(勾践)이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복수하기 위해 보낸 미인으로 전해진다. 월나라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복수를 계획하며 서시를 부차에게 보냈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매료되어 국정을 소홀히 하고 사치를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이 틈을 타 월나라는 군사력을 키우고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서시는 단순히 외모로만 평가받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정치적 도구로 쓰이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인물로, 전통 문화에서 지혜와 미모의 조화를 상징한다.

후세에 서시는 시, 그림,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다뤄졌다. 특히 그녀의 미모와 관련된 침어의 이야기는 많은 시와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출생지로 알려진 저장성 주기 지역에는 서시의 이름을 딴 기념비와 유적지가 있다. 서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전설 속의 인물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중국 역사와 문화에서 아름다움, 지혜, 그리고 나라를 구한 영웅적 여성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침어낙안(沈魚落雁)[편집]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를 멸하니 월왕 구천(溝踐)은 망국의 치욕을 씻기 위해 한편으로는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노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세의 미녀를 골라 오왕을 뜻을 흐려 놓으려고 결심했다. 월나라의 서시(西施)는 매일 강가에서 천을 씻군 했다. 그녀의 미모에 물속의 물고기들이 부끄러워 물 위로 올라올 생각을 못 하고 강바닥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후에 범려(范蠡)가 서시를 찾아내서 오왕에게 바치니 오왕은 서시의 미색에 푹 빠져 나라 대사는 뒷전으로 미루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월왕 구천은 나라를 재정비하게 되었고 끝내는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한원제(韓元帝) 때 궁에서 천하의 미녀들을 궁녀로 물색했다. 미인 왕소군이 1등으로 뽑혔건만 간신인 모연수(毛延壽)가 소군이 뇌물을 주지 않는다고 일부러 왕소군의 화상을 추하게 그려 황제에게 바쳤다. 하여 왕소군은 황제의 부름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깊은 밤 소군이 울적한 마음을 비파로 달래는 것을 마침 원제가 듣고 만나보니 하늘이 내려준 여인이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원제가 소군을 명비(明妃)로 책봉하고 소군을 능멸한 모연수를 참형에 처하라 명했다. 이를 알게 된 모연수가 흉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도망을 가서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왕소군의 화상을 바쳤다. 화상을 본 선우는 사신을 여러 번 보내 소군에게 청혼했다. 원제가 크게 노해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으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왕소군은 원제를 설득해 화친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소군이 궁을 떠나는 날 원제가 친히 패릉교(覇陵橋)까지 배웅을 하는데 이때 마침 기러기떼가 다리 위를 날아 지났다. 그런데 기러기들이 절세의 미녀인 왕소군을 보고는 수림 속에 숨어 버렸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장자가 기록한 이야기와 전설을 정리해 “침어낙안”이라는 성어를 만들게 되었다.

서시빈목(西施顰目)[편집]

중국 월나라의 절세미녀인 서시는 가슴앓이병이 있어 언제나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다. 그랬더니 그 마을의 추녀가 이것을 보고 그 어여쁨에 감탄해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미간을 찡그리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그 마을 부자들은 대문을 굳게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처자를 이끌고 마을에서 도망쳤다. 이 추녀는 미간을 찡그린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만 마음에 두었을 뿐, 찡그림이 아름다운 까닭은 알지 못했다. 즉, 서시는 본래 아름다우므로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고사다.

여기에서 유래한 서시빈목(西施目)은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빗대는 말로 쓰인다. 효빈(效), 서시봉심(西施捧心)도 같은 뜻이다. 장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도나 도덕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춘추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의 이상정치를 그대로 노나라와 위나라에 재현하려 하는 것은 마치 추녀가 서시를 무작정 흉내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꼬았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서시(西施)〉, 《두산백과》
  2. 서시 (사람)〉,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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