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군주(君主, Monarch, Sovereign)는 주권을 독점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순 한국어로는 임금과 같은 뜻이다.[1]
개요
군주의 권한이나 지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고대의 국가 형성기에는 씨족의 족장 중 강력한 자나 씨족의 제사를 지내는 족장이 군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이집트나 잉카제국 등에서는 군주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하여 태양신에 대한 제주(祭主)로서 그의 행동은 신비화되었다. 군주제에서는 혈통이 중시되고 세습제를 취하였으며, 선거군주제(選擧君主制)라 하더라도 혈통을 이어받은 자 가운데서 선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절대주의하의 군주는 봉건영주 중 강력한 자가 차례로 주위의 영주를 복종시켜 주권 있는 통일국가를 형성함으로써 출현하였다. 그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시민계급의 발언권이 커지고 시민혁명을 계기로 군주의 지배권을 부정(공화제)하거나 제한(입헌군주제)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군주제가 거의 없어지고, 영국·일본과 같은 극히 소수의 국가에서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명목적인 존재로서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2]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은 군주의 존재 의의와 임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군주론」[原君]으로 시작한다. 중국 전통사회의 유교정치체제는 군주를 핵심으로 한다. 군주는 정치권력의 근본원천이자 핵심일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본분인 도덕적 교화의 중심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중세사회의 정치체제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군주 전제 제도라고 평가된다. 그 체제 하에서는 황제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그 절대 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학자들은 군주를 정치권력의 중심이 아닌 도덕적 상징으로 위치 지우고, 군주에 대한 도덕적 교육[聖學]을 강화하는 한편, 재이론(災異論) 등의 갖가지 장치로 그 정치적 권한을 제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천지군친사(天地君親師)등의 관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군주의 존재 위상 내지 군주의 권력 자체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명대에 이르러 재상제를 폐지하는 등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환관들이 그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주구로 활용됨으로써 군주의 권력은 유학자가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명조가 멸망하고 청조가 들어서자 황종희는 명조의 멸망 원인을 해명하고 바람직한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봉건적 전제 군주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였다. 황종희는 우선 군주에 대한 발생론적인 접근을 통해 사회적 이익의 증진과 사회적 해악의 제거라는 공적인 문제의 해결을 군주의 임무로 파악해내고, 이에 기초하여 군주가 사리사욕을 추구하면서 천하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하여 공적인 문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사회적 해악을 조장하는 군주독재 체제를 맹렬하게 비판하였다.[3]
군주 없는 군주국
재위 중인 군주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사할 경우 보위가 일시적으로 공석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공위시대라 한다. 물론 운 좋으면 공위시대가 일시적으로 끝나겠지만 아예 왕실 자손의 대가 끊기거나 왕위 계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왕족들과 정치세력들 간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번지게 될 경우 이러한 공위시대가 수십년 이상 계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위시대. 사실 현대라면 이런 경우 그냥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으로 전환되겠지만 고대~중세에는 공화제라는 체제가 일반적이지 않았고 그냥 군주제가 기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왕실의 대가 잠시 끊기거나 옥좌가 공석이 되어도 왕 없는 왕국 또는 황제 없는 제국이 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특이한 경우로 국체는 군주제인데 정작 군주가 없는 상태에서 섭정이 국가를 통치하는 해괴한 일이 가끔 있다. 대개 이런경우는 권력자가 혈통 등 왕위를 승계할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스스로 직접 왕위에 오르기는 불가능하지만 옛 왕실의 권위는 이용하고 싶을때 쓰는 꼼수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붕괴 이후 등장한 헝가리 왕국인데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이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정작 헝가리 왕위를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전 황제인 카를 1세를 추방해버려 함대 없는 제독이 왕 없는 왕국을 통치하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지배하의 스페인인데 프랑코는 스페인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자신의 살아 생전에는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이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것과 기타 등등이 겹친 결과였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옹립되면서 스페인은 진정한 의미의 왕정복고를 맞이한다.
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장군 치하의 그리스 역시 왕 없는 왕국이었다. 1967년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당시 그리스의 국왕이었던 콘스탄티노스 2세는 파파도풀로스를 축출하기 위해 역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실패하여 망명한다. 이후 파파도풀로스는 그리스 왕국의 섭정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왕 없는 왕국의 섭정놀이를 하다가 1973년에는 아예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 시위로 인해 곧 퇴진했고 그의 뒤를 이은 페지키스 장군도 키프로스 전쟁에서 터키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974년 왕정복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라서 왕정복고는 무산된다. 콘스탄티노스 2세가 한때 군사정권을 지지해 민심을 잃었던 탓이 컸다.
창작물에서는 이런 현실의 사례보다 한발 더 나가서 반지의 제왕의 곤도르 왕국은 왕위를 계승할 자손이 없고 가까운 친족들도 없어서 왕가의 대가 끊긴 상태에서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가 실종되자 왕이 없는 상태에서 후린 가문이 섭정으로서 대리통치를 하는 기묘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후린 가문은 대를 이어 섭정직을 세습하면서 곤도르를 통치하는 등 사실상 왕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진 못해서 옥좌에 앉거나 왕관과 왕홀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섭정의 권력을 나타내는 흰 봉을 사용한다.
태국의 경우 2016년 10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사망 후 돌아가신 선왕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연기하고 2016년 12월 왕세자가 정식으로 즉위하기 전까지 2개월간 왕위가 공석인 상태에서 추밀원장이 섭정으로 국왕 역할을 대신하여 왕세자는 있는데 왕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던 적이 있다. 푸미폰 국왕이 태국에서 워낙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던 데다가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사생활 문제 등으로 선왕보다 이미지가 좋지 못해서 부왕이 사망하자마자 장례도 치르지 않고 아들인 왕세자가 곧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은 무례하다고 보는 분위기 때문에 벌어진 일.
캐나다와 호주가 속해 있는 영연방 왕국에서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동군연합으로 군주로 재위하고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정기적으로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소속 국가들에 방문하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영국에 거주하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 국가들은 군주국이긴 하지만 상주하고 있는 군주가 없고 대신 영국 국왕이 보낸 총독이 군주의 역할을 대리하고 있다. 사실 총독을 영국 국왕이 보낸다는 것도 형식적인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현지인 중에서 그 나라 총리가 총독으로 추천한 인물을 명목상으로 영국 국왕이 임명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1]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