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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1일 (일) 23:54 판

홋카이도섬

홋카이도섬(北海道島)은 일본의 홋카이도 지방에 위치한 도(道)이자,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 주요 섬(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중 하나로서 일본 북단에 위치한 큰 섬이다. 도청소재지는 삿포로시이다. 동쪽과 북동쪽에는 러시아가 관할하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있다. 47개 도도부현 중 유일한 도(道)이며 브랜드종합연구소에 의하면 도도부현 매력도 순위에서 2019년 기준 11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관광산업, 상품구매 의욕도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거주 의욕도에서는 3위를 차지해 각 의욕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1]

개요

홋카이도라는 이름은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사용된 오래된 행정구역인 오기칠도(五畿七道)를 따라 1869년에 홋카이도(북해도)라고 이름지었다. 일본에서는 혼슈 다음으로 두번째 큰 섬이며 세계적으로는 21번째로 큰 섬이다. 북동쪽에는 오호츠크해에 접해있고 동쪽에는 태평양이 있고 서쪽에는 동해가 있다. 본토 일본인들과 다른 아이누 민족이 거주하였으며, 그 외에도 소수민족으로 오로크족, 니브흐족, 에벤크족, 오로치족이 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이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홋카이도 지역은 과거 일본인들에게는 에조 민족이 산다하여 에조치로 알려져 있었다. 홋카이도라는 이름은 8세기 후반에 성립된 고키시치도의 사이카이도(西海道), 난카이도(南海道), 도카이도(東海道) 등의 도 이름을 모방한 것으로, 명명자는 에도 막부 말기에 에조치를 탐험한 마쓰우라 다케시로로 알려져 있다. 마쓰우라는 아호를 홋카이도진(北海道人)이라고 지을 정도로 에조치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1889년 그는 에조치를 대체할 명칭으로 홋카이(北加伊), 가이호쿠(海北), 가이토(海島), 도호쿠(東北), 지시마(千島), 히다카미(日高見)의 6가지 후보를 제안했다. 마쓰우라는 의견서에서 가이(加伊)는 선주민인 아이누인들이 이 섬을 부르는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가이를 같은 발음의 가이(海)로 바꾸어, 고키시치도의 명칭을 모방해 홋카이도(北海道)로 정했다.[2]

역사

초기 역사

조몬 시대에는 수렵 채집 문화가 번성했으며 그 흔적을 약 1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혼슈섬과 달리 홋카이도는 이 시기에 분쟁이 없었다. 자연 영혼에 대한 조몬 시대의 신앙이 아이누 영성 개념의 기원이라는 가설이 있다. 기원후 3세기경 일본 열도의 남부에서는 야요이 인들이 들어와 대규모 수전(水田) 농사를 전개하며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었나 홋카이도는 기원후 7세기경까지 조몬 시대와 유사한 생활방식을 유지하였으며, 이 시기를 일본 학계에서는 속조몬 시대라고 부른다. 7세기 후반부터는 혼슈의 토기의 영향을 받은 사쓰몬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혼슈의 야요이 인들과 교류한 흔적이 보인다. 이들은 수렵채집과 함께 어업과 식용 식물 재배도 병행했다고 생각된다. 12세기경에는 야요이 인으로부터 들어온 철기 무기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어업과 수렵채집을 행하는 아무르강 유역 유래의 오호츠크 문화가 북방으로부터 사할린섬을 거쳐 5세기경 홋카이도에 도래했는데, 한때 북부와 동부에서 번성했으나 사쓰몬 문화를 계승한 아이누 문화의 세력에 밀려 서서히 사라졌다. 이렇게 사쓰몬 문화를 바탕으로 야요이인과 오호츠크인의 영향을 받아 13세기경 성립한 아이누 문화는 이후 야요이인들이 본격적으로 홋카이도로 입식하기 시작할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서기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가 역사상 홋카이도에 대한 첫 번째 기록으로 여겨진다. 본문에 따르면 아베노 히라후는 658년부터 660년까지 대규모의 해군과 군대를 이끌고 북부로 가서 미시하세, 에미시와 접촉하였다. 히라후가 간 곳 중 하나는 와타리시마로, 종종 오늘날의 홋카이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에 관하여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아, 와타리시마의 위치나 와타리시마의 에미시족이 현재의 아이누족의 조상인지 여부를 포함하여 이 사건의 상세에 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존재한다.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710년 ~ 1185년)부터 이미 홋카이도 사람들은 일본 중앙 정부의 전초기지였던 데와 국과 무역을 했다. 중세 시대부터 홋카이도 사람들은 에조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후 홋카이도는 에조치 또는 에조가시마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조는 주로 수렵과 어업에 의존했고,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쌀과 철도 얻었다.

봉건 시대

무로마치 시대(1336년 ~ 1573년)에 일본인들은 오시마 반도의 남쪽에 시노리다테와 같은 일련의 요새화된 거주지를 건설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정착지로 이주해오면서 일본인과 아이누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이는 결국 전쟁으로 발전했다. 다케다 노부히로는 1457년 아이누의 지도자 코사마인을 죽이고 반대파를 물리쳤다. 노부히로의 후손들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1568년 ~ 1868년)에 아이누족과 독점적인 무역권을 부여받은 마쓰마에 번의 통치자가 되었다. 마쓰마에 가문의 경제는 아이누족과의 무역에 의존했다. 그들은 에도 시대 말까지 에조치의 남쪽을 지배했다

아이누에 대한 마쓰마에 씨족의 통치는 일본 봉건국가의 확대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혼슈 북부의 중세 군사 지도자 (ex. 후지와라 북부는 후지와라 막부 및 그 대리인 가마쿠라 막부, 아시카가 막부와는 정치적, 문화적 유대관계가 희박했다. 봉건적 강자들은 때때로 중세 제도적 질서에 자신들을 위치시켜 막부 직함을 취하기도 하고, 다른 때에는 외국인 정체성을 주는 직함을 취하기도 했다. 실제로 봉건 강자들의 상당수는 일본 사회에 동화된 에미시 군사 지도자들의 후손이었다. 마쓰마에 씨족은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야마토 씨족이었고, 혼슈 북부의 에미시 씨족은 아이누족과 구별되는 종족이었다. 에미시족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의 국가로 정복되고 통합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소수 민족이 되면서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민족성을 잃기 시작했다. 마쓰마에 가문이 아이누를 지배할 무렵, 대부분의 에미시 가문은 아이누 가문에 비해 일본인과 인종적으로 혼혈되어 있었다. 이로부터 "변신" 이론은 조몬족이 야호쿠 지방으로 유입되면서 조몬족이 점차 변해갔다고 가정하고, 조몬족이 야호쿠 지방으로 대체되었다고 가정하는 "대체" 이론과 대조된다.

봉건 통치에 대한 아이누인들의 수많은 반란이 있었다. 마지막 대규모 저항은 1669년-1672년 샤쿠샤인의 반란이었다. 1789년, 메나시-쿠나시르 반란이 진압되었다. 그 반란 이후, "일본인"과 "아이누인"이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집단을 의미했고, 마쓰마에족은 분명히 일본인 측이었다. 존 A에 따르면. 1868년 이전에 일본은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 열도를 영유권 주장으로 근접성을 사용했지만, 일본은 그 지역을 실제로 탐험하거나 지배하거나 착취한 적이 없었고, 러시아의 북동 태평양 지역으로의 이동과 캄차카, 사갈리엔, 그리고 쿠릴 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정착에 의해 이러한 주장은 무효화되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여 북부 방어의 필요성을 깨닫고 에조치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많은 일본 정착민들은 아이누인들을 "비인간적이고 개의 열등한 후손"으로 여기며 차별대우했다. 막부는 또한 아이누족에게 다양한 동화 정책을 시행하여 이들의 정체성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메이지 유신

홋카이도는 메이지 유신 때까지 에조치로 알려져 있었다. 1868년 보신 전쟁 직후,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이끄는 도쿠가와 가문의 충신들이 일시적으로 섬을 점령하고 에조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1869년 5월에 반란은 진압되었다. 에조치는 식민지를 통해 일본 영토에 병합되었고 홋카이도(北海道)로 개칭되었다. 이후 에조치는 하코다테 현 하코다테후(河館田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개발 위원회를 설립하고 새로운 이름을 도입하였다. 1869년 이후 일본 북부는 홋카이도(北海道)로 알려졌고, 오시마, 시리베시, 이부리, 이시카리, 데시오, 기타미, 히다카, 도카치, 구시로, 네무로, 지시마 국이 설치되었다.

개발위원회의 주된 목적은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넘어 극동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장하기 전에 홋카이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원주민들의 저항으로 섬의 내륙 저지대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저항군은 결국 파괴되었고, 저지대는 위원회의 통제하에 놓였다. 일본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농가 인구를 늘리고 이민과 정착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현대 농업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고 원시적인 광업과 벌채 방법만 가지고 있었다. 쿠로다 키요타카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첫 걸음은 미국으로 가서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의 농업 담당 위원인 호레이스 캐프론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1871년부터 1873년까지 카프론은 서양의 농업과 광업을 탐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결과는 엇갈렸다. 그의 노력에 대한 장애물에 좌절된 카프론은 1875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876년, 윌리엄 S. 클라크는 삿포로에 농업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도착했다.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클라크는 일본인들에게 기독교뿐만 아니라 농업에 대한 그의 가르침으로 영감을 주면서 홋카이도에 지속적인 인상을 남겼다.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그의 이별의 말은 오늘날까지 홋카이도의 공공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명한 명언이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그 10년 동안 58,000명에서 240,000명으로 급증했다.

1882년, 개발 위원회는 폐지되었다. 현은 하코다테현(하코다테현), 삿포로현(삿포로현), 네무로현(네무로현)으로 나뉘어져 현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고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1886년 3개 현이 강등되고 홋카이도는 홋카이도청(홋카이도초)에 속하게 되었다. 홋카이도의 각 개발 지청들은 2차대전 이전보다 훨씬 자치권이 축소되었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정구역으로서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1945년 7월 중순, 홋카이도의 여러 항구와 도시, 군사 시설이 미국 해군 기동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7월 14일부터 15일까지 홋카이도 남부 해안과 혼슈 북부의 항구들에서 기동부대의 항공모함들이 침몰하여 많은 선박들이 파손되었다. 또한 7월 15일에는 3척의 전함과 2척의 경순양함이 무로란 시를 폭격했다. 일본의 항복이 공식화되기 전 소련은 홋카이도 침공을 준비했으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1943년 카이로 선언에 따라 일본 "본토"의 모든 항복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수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전후 홋카이도는 1947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다른 현들과 동등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1949년 홋카이도 총리실의 기관으로 홋카이도 개발청(홋카이도 가이하쓰초)을 설치하였다. 이 기관은 2001년에 국토교통부에 흡수되었다. 홋카이도 지방 개발국(홋카이도 지방 개발국)과 홋카이도 지방 개발국(홋카이도 가이하쓰쿄쿠)은 여전히 홋카이도의 공공 건설 사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리

지형

홋카이도 본섬은 면적이 83,423.84 km2으로 일본 열도에선 혼슈 다음으로 2번째, 세계에선 21번째로 큰 섬이다. 아이슬란드섬(102,775)보다는 작은 반면, 사할린섬(72,492)보다는 넓으며, 남한 면적(100,410)의 약 80% 넓이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여행지 삿포로-하코다테만 458.4km(무로란 본선 : 423.1km · 사와라 지선 : 35.3km)나 떨어져 있는데다, 역의 갯수만 해도 97개(본선 : 88 · 지선 : 11, 신호장을 제외함), 기차로 편도 4시간(왕복 8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당일치기로 여행을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남쪽의 혼슈(아오모리현)와는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으나 세이칸 터널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북쪽은 소야 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의 사할린섬하고 접해 있으며, 동쪽은 쿠릴 열도와 마주해 있다. 서쪽은 동해, 남동쪽은 태평양, 북동쪽은 오호츠크해에 접해 있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평평한 산지는 표고 300m 이하의 평지, 그리고 현저히 발달한 해안단구는 홋카이도 지형의 큰 특색이다. 삿포로시와 도마코마이시를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주부와 남서부로 크게 나뉘며, 남북으로 달리는 중앙산지와 동북방에서 이와 교차되는 산지가 주부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산지를 경계로 주부는 동부와 서부로 나뉘며, 동부에서는 다이세쓰(大雪)·도카치(十勝) 화산군과 시레토코(知床)·구차로(屈斜路)·메아칸(雌阿寒)의 화산군이 동부화산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부에서는 중앙산지와 데시오(天塩)·유바리(夕張) 산지 사이에 돈베쓰 평야(頓別平野)·나요로 분지(名奇盆地)·가와카미 분지(川上盆地) 등이 연속하여 중앙저지대를 형성하고, 이시카리 강(石狩川)은 이시카리 산지에서 가와카미 분지·이시카리 산지를 흐르고 데시오 강(天塩川)은 기타미 산지(北見山地)에서 나요로 분지·데시오 평야를 흘러 각기 동해로 들어간다. 한편 오쿠리시 섬(奥尻島)·오시마 섬(大島)·고지마 섬(小島)은 북방의 리시리 섬·레분 섬·데우리 섬과 더불어서 동해의 도열(島列)을 형성하고 있다.

홋카이도는 크게 동체부에 해당하는 마름모꼴 부분과 남서쪽의 반도부(도시마 반도를 포함)로 이루어진다. 동체부는 남북으로 에조산계로 불리는 산지군이 관통해 홋카이도의 척량을 이루고 있다. 에조 산계는 남쪽의 히다카 산맥에서 시작해 동쪽의 이시카리 산지·기타미 산지와 서쪽의 유바리 산지·데시오 산지로 분기하고 있으며, 이 두 줄 사이에는 후라노 분지·카미카와 분지·나요로 분지 등의 분지열이 형성되고 있다.돈베쓰 평야로부터 이 분지열을 지나, 무카와의 카와타니로 빠지는 저지대를 홋카이도 중앙 오목지대라고 부른다. 홋카이도 동부는 지토코의 연장인 시레토코 반도·네무로 반도나 아칸의 산들이, 각각 북동-남서의 산열을 이루면서 전체적으로는 동서로 뻗어 있다.이 북쪽으로는 기타미 산지에서 완만한 경사가 해안 근처까지 이어져 평야는 적지만 남쪽으로는 도카치 평야, 곤센 대지 등의 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체부와 반도부 사이의 지역은 이시카리만에서 이시카리평야, 유후쓰평야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지는 이시카리 저지대이다. 이곳에는 인구 약 200만을 가진 삿포로시나, 지토세시, 도마코마이시등이 홋카이도에서 가장 인구가 집중되는 지역이 되고 있다. 반도부에는 이시카리 저지대의 서쪽에 위치하는 남서부 산지와 그 남서쪽으로 뻗은 와타시마 반도가 있고, 사이에 태평양 측으로부터 우치우라만(분화만)이 들어온다. 오시마반도는 동북일본호 내대의 연장부에 해당해 오시마 산지가 있다. 와타리시마 산지와 남서부 산지의 사이에는, 일본해측의 슷토정으로부터 우치우라만에 걸친 저지가 있어, 구로마츠나이 저지대라고 한다. 홋카이도의 주요 고봉은 에조산계와 쿠릴호가 만나는 중앙부의 이시카리산지(다이세쓰산 연봉, 도카치다케 연봉 등)와 그 남쪽으로 이어진 히다카산맥에 집중돼 있다. 최고봉은 다이세쓰 산인 아사히다케로 해발고도 2,291m이다. 남서부 산지에는 에조후지로 불리는 요테이산 등의 산이 있다.

기후

북위 41도~45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서안 해양성 기후(Cfb)를 볼 수 있는 도난 지방의 일부 연안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전역이 냉대 습윤 기후(Dfa, Dfb, Dfc)와 같이 매우 한랭한 기후가 나타며, 특히 설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여름하고 겨울의 온도차가 큰 탓에 겨울에 눈이 내리면 굳어져서 잘 녹지 않는다. 워낙 고위도 지역에 위치해 있는 탓에 10월달부터 겨울이 시작되며 겨울 동안에 한 번 내려서 쌓인 눈은 이듬해 4월 달이나 되어야 녹기 시작한다. 도내 전역이 폭설 지대이고 일부 지역은 특별 폭설 지대로 지정되어 있다. 도호쿠, 도토는 추위가 매우 심하고 연안부를 제외한 거의 전역이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이 영하 8도 이하이고 영하 2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일이 많다. 가끔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최북단인 벤텐섬에서는 툰드라 기후가 나타난다.

경제

제1차 산업

홋카이도는 식량기지를 자칭할 정도로 농업이 번성하고 있으며 전국의 약 12%에 해당하는 1조579억엔이 농업은 2003년에 산출되었다. 보리, 고구마 등의 밭농사도 전국 평균에 비해 비율이 높고, 천채, 감자, 밀 등 생산량이 일본 제일인 품목이 많다. 그 중에서도 도내 농업산출액의 약 37%를 차지하는 것은 젖소이며, 생우유 생산량은 전국의 약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히다카 진흥국을 중심으로 서러브레드 등의 경종마 생산도 활발하다.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은 16.9헥타르(2002년)로, 다른 도도부현에 비하면 13배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땅이 넓기도 하지만 홋카이도의 각 지방의 기후조건에 맞는 농업이 발달하면서 개척 당시부터 대규모화된 점, 농촌부에서 겸업 기회가 적기 때문에 전업농이 많아 이농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 농가가 이농지를 흡수 합병해 규모를 확대해 온 것도 그 요인으로 꼽힌다. 2007년 4월, 일본과 호주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골자로 하는 경제연합회휴협정(일호 EPA/FTA)에 관한 교섭이 양국 간에 개시되었다.동 협정이 체결되어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되었을 경우, 호주산 농산물의 수입증가로 홋카이도 농업은 큰 타격을 받아 새로운 재원을 전혀 확보할 수 없다고 하면 홋카이도 경제 전체에서 약 1조3700억엔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여 약 8만 8000명이 실직할 것으로 홋카이도는 추산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농업·낙농 뿐만 아니라 도내 소비와 타산업까지, 홋카이도 척식은행의 파탄을 훨씬 넘는 영향이 미친다고 여겨져 도 재정의 파탄·재정 재건 단체 전락의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소야 종합진흥국·구시로 종합진흥국·네무로 진흥국은, 기후가 경작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아한대 습윤 기후를 이용한 낙농이 번성하다.구시로 종합진흥국, 네무로 진흥국에서는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은 60.3헥타르(2003년)에 달해 무네타니 종합진흥국은 99%가 목초지이다.대규모 경영으로 인해 농가의 소득수준은 높고, 홋카이도의 농가 1호당 농업소득은 약 580만엔이다. 이 지역은 그 밖에 육우 생산도 하고 있다. 벼농사는 주로 소라치 종합진흥국·카미카와 종합진흥국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종목은 유키히카리, 키라라397, 호시노유메, 나나쓰보시, 후쿠린코, 아련히쓰키, 유메비리카. 특히 가미카와 중부(아사히카와시 주변)의 쌀은 쌀 1등미 비율이 높고 품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타리시마 종합 진흥국은 비교적 축산이 번성하고, 고시 종합 진흥국은, 요이치정·니키정을 중심으로 과수의 생산이 번성하였고, 양제산 자락은 감자의 산지이다. 소라치 종합 진흥국은 벼농사외, 북부에서 메밀, 남부에서 양파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메밀 수확량은 호로카나이쵸가 전국 1위, 후카가와시가 제2위, 오토이넷푸촌이 제3위, 아사히카와시가 제4위이다. 가미카와 종합 진흥국은, 벼농사외 야채의 생산이 번성하였고. 양파, 감자, 당근, 옥수수,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무, 버섯 등의 생산량이 많다. 또 콩·보리·소바·팥·천사이 등도 생산되고 있다. 나요로시는 아스파라거스의 생산량, 와칸쵸는 호박이 제일이며 쌀 생산량도 많다. 오호츠크 종합진흥국에서는 양파 감자 옥수수 천채의 생산량이 많으며, 기타미시는 양파의 산지로서 유명하고 낙농도 매우 활발하다.

수산업

도카치 종합 진흥국은 밭농사가 번성하고 있으며 밀·천채·팥 등 콩류·옥수수 등의 생산이 많다. 최근에는 당근, 참마, 무 등의 채소류 재배도 활발하고, 오토후케 마을은 당근 생산량 일본 제일이다.낙농도 활발하다. 메이지 시대까지는 일본해 연안에서 청어잡이가 번창하였다. 그 후 캄차카반도바다, 베링해바다에서의 북양어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태평양 연안에서 수산업이 발달했다.또 동시에 발전한 수산업은 홋카이도 공업의 기반이 되었다. 연어와 가리비가 도내 생산액의 각각 23%, 19%를 차지한다. 연어는 전국 생산량의 70%, 황태, 다시마는 80% 이상, 임연어는 97%를 차지한다. 1977년의 배타적 경제 수역(200해리 수역) 설정으로 원양 중심의 홋카이도의 어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여전히 홋카이도의 어획량은 전국의 약 4분의 1을 기록하는 등 수산업은 홋카이도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이다.또 가리비나 게, 성게 등 수산물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자도 있는 등, 관광 산업에도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의 어획량은 네무로시가 도내에서는 구시로가 1990년까지 13년 연속 일본 1위의 어획량이었지만 최근들어 감소하고 있다.

제2차 산업

광산업

메이지 시대부터 고도 성장기(1960년대까지)에 걸쳐 이시카리 탄전(미카사시·우타시나이시·유바리시 등)과 구시로 탄전(구시로시·시라누카정·구시로정·아츠기시정 등)을 중심으로 석탄 산업이 번성했지만 차례로 폐산되었다. 현재는 일본 국내에서 유일한 갱내 채탄 사업이 구시로 탄전에서 실시되었으며, 해외 탄의 급등 영향으로 노천굴 채탄 사업이 이시카리 탄전 등에서 재개되었다. 쇼와에 들어서면서 고노마이 광산(몬베츠시)의 금의 산출량이 증가하여 전성기에는 「동양 제일의 금산」이라고 불리지만, 자원 고갈등을 이유로 1973년에 폐산하였고 또 도요바 광산(삿포로시 미나미구)도 일찌기 은·동·납·아연으로 일본 최대급의 산출량을 세어 희귀금속인 인듐의 산출량도 세계 제일이었지만, 2006년 광량 고갈로 인해 폐산되었다. 이토무카 광산(구 루베시베정, 현 기타미시)에서는 일찌기 양질의 수은을 산출해, 제2차 대전 중에 최전성기를 맞이했지만 1974년에 폐산되었다. 2011년 기준으로는 수은 함유 폐기물의 재활용을 실시하고 있다.

제조업

제조업은 식료품 생산의 비율이 높고, 제조품 출하액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 외 석유·석탄 제품, 철강 제품, 펄프·종이 제품이 많다. 도내 6개 권역안에서는 도오권이 출하액의 6할, 사업소수·종업원수의 5할을 차지한다. 시정촌별로는 도오권의 무로란시와 도마코마이시의 2시에서 합계 35%를 차지하고 이어서 삿포로시가 제3위(7.9%)를 차지한다. 4위인 구시로 시(4.1%)는 삿포로 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홋카이도의 공업은 메이지 시대에 삿포로에서 1876년에 개척사 맥주 양조장, 하코다테에서 1896년 하코다테 선거 주식회사 조선, 구시로에서 1901년 마에다 제지, 무로란에서 1909년엔 제철소가 개업한 것이 시초이다. 현재 홋카이도의 식품 가공업은 삿포로시를 비롯해 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제지·펄프는 시로시, 도마코마이시에서 발달했다. 제철은 무로란시에, 또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도마코마이시, 무로란시에 있다. 사료비료 콤비나트가 구시로 시에 있다. 임공 공업도시로서 치토세시를 들 수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도 토마코마이시에서 발달하고 있다.

건설업

메이지 이후의 홋카이도는 국책에 의한 개척과 개발이 적극적으로 행해져 건설업은 공공 사업에 크게 의존해 발전을 이루었다.현재도 홋카이도는 공공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홋카이도의 기간산업 중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공사업의 대폭적인 감소로 인해 건설업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3차 산업

관광 관련 산업

해외로부터의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 것부터, 2011년도 이후, 방일 외국인 여행자의 수입 환경 정비와 관련되는 전략 거점·지방 거점이 관광청에 의해서 선정되고 있다. 홋카이도 내의 전략 거점은 삿포로, 하코다테, 노보리베츠 등 3곳, 지방 거점은 구시로 데시카가 1곳이다.

1972년 삿포로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홋카이도 개발청을 중심으로 신치토세 공항과 철도의 정비가 진행되어 관광 산업이 크게 꽃을 피웠다. 여름에는 피서나 아웃도어 레저, 드라이브, 오토바이를 이용한 투어링, 겨울에는 스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스노우보드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일본 농업기지로서의 홋카이도라는 측면에서 명산 식품도 있고, 온천의 많고 다양함 때문에 매년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또, 관광객등을 대상으로 소매업이나 운수업이 발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여행이 저렴하고 간편해지면서 홋카이도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홋카이도척식은행 파산 이후 연쇄도산도 잇따르는 등 관광산업 경영상황이 썩 좋지 않다.

삿포로시는 바둑판 모양의 도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중심부에 도시공원과 TV탑을 갖춘다는 점에서 정령지정도시 중에서는 아이치현 나고야시와 도시계획으로서의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도외로부터의 관광객수는 1997년부터 2011년에 걸쳐, 연간 600만명 전후로 거의 보합 추이하고 있지만, 이 사이에 외국인 관광객은 12만명(1997년)에서 29만명(2003년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대만, 홍콩, 한국 등 3개 지역에서 단체손님 수가 크게 늘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대만과 홍콩 사람들에게 홋카이도는 가까우면서도 웅대한 자연과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장소여서 매력으로 느껴지고 있다. 또, 굿찬쵸에 있는 니세코 마운틴 리조트 그란히라프에는, 2002년무렵부터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의 스키·스노보드객이 급증하고 있다. 삿포로시, 아사히카와시, 구시로시 등 3개 시가 국토교통성의 국제회의 관광도시로 지정되어 몇 차례의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있다.2008년에는 홋카이도 도야호 서미트가 열렸다.

정보관련 산업

홋카이도에서는 과거에 대부분의 시정촌에 서점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2013년 시점에서 상설 서점이 존재하지 않는 홋카이도의 「무서점 자치체」는 전도 자치체의 약 3분의 1에 상당하는 60시정촌이 되었다. 홋카이도청은 「무서점 자치체」의 확대에 효과적인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고, 다카하시 하루미 미치마사의 아래에서 폐업 서점은 계속 증가해 2015년 11월의 시점에서 기모베쓰정, 모세우시정, 니시코베촌 등 도내 179시정촌 중 약 3할에 해당되는 47 시정촌으로 확대했다. 이 때문에 47개 지자체 주민은 잡지나 신간책 등을 구하러 인근 지자체의 서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며 서점이 존재하지 않는 자치체는 전국에서 322시정촌으로,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이 없는 현상이 되고 있어 홋카이도의 무서점 자치체는 전국의 무서점 자치체의 5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 그 중 많은 부분이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꼽힌다. 최근 콜센터의 입지에 삿포로시, 구시로시에 적극적인 제도 정비를 도모해 대규모 콜센터가 입지하고 있다. 한랭지라는 점에서 데이터센터의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이시카리시는 적극적인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사쿠라 인터넷은 2010년에 이시카리 시에 이시카리 데이터 센터 설치를 발표했다. 삿포로에는 대학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컴퓨터 관련 벤처기업이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1976년에 홋카이도 대학 공학부의 아오키 요시나오 교수가 설립한 홋카이도 마이크로컴퓨터 연구회가 뿌리로 여겨진다. 이것에 관련한 기업은 주로 삿포로 역 북쪽 출구 주변에 집적되어 있다. 2000년 무렵에는 '삿포로 밸리'라고도 불리며 지역산업 육성의 성공사례로서 연구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아쓰베쓰구 삿포로테크노파크에는 비유지 DMG모리정기 같은 삿포로발 기업뿐 아니라 후지쓰, 일본 아이비엠, 일본 유니시스 등 대기업 지점 등의 거점도 있다. 또 과거 허드슨, 넷드래곤웹소프트 등 게임회사도 창립됐다.

음식

홋카이도 특산 과자라면 한국의 쿠크다스와 비슷한 맛의 시로이코이비토나 감자를 프렌치 프라이처럼 튀긴 쟈가포클이 유명하다. 주로 홋카이도 내에서 팔지만, 최근엔 대도시의 홋카이도 토산물 판매점이나 공항에서도 팔고 있다. 쟈가포클의 경우 2011년 기준으로 8봉지에 850엔 가량이고, 시로이 코이비토는 20봉지에 3천엔 가량으로 한국 과자 한봉지의 가격과 비슷하다. 한국인들의 면세쇼핑 인기품목 중 하나인 로이즈 초콜릿 역시 이 지역의 특산품이다. 그 외에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회사인 삿포로 맥주에서는 '삿포로 클래식'이라는 맥주를 홋카이도내 판매점에서 유통하고 있는데, 최초 제작되었던 삿포로 맥주의 맛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맥주로 목넘김이 좋고 뒷맛이 깔끔한 맥주이다. 홋카이도내에서만 볼수 있는 일종의 지역 특산품. 홋카이도의 명물 요리 중 하나인 미소라멘과의 궁합도 좋은 편. 그 맥주맛을 못 잊어서 또다시 홋카이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옥수수 또한 유명한데, 그냥 쪄먹는 정도를 넘어 생으로도 씹어먹는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복숭아 같이 달다고 한다. 단, 항상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한여름에만 가능하다. 또한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수확한 지 얼마 안된 옥수수뿐이다. 옥수수는 수확한 직후부터 당도가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수확한 지 오래된 옥수수는 맛이 없다. 늦여름부터 가을 옥수수도 생으로 못 먹을 것은 없지만, 웬만하면 쪄서 먹자. 이 밖에도, 양고기 구이 요리인 징기스칸, 해산물 덮밥인 가이센동, 묽은 카레 국물[63]에 다양한 재료를 넣은 수프카레, 홋카이도식 닭튀김 요리인 '잔기(ザンギ)', 오비히로의 돼지고기 덮밥인 부타동(豚丼)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양고기의 경우 홋카이도산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라 고기는 호주산이거나 아이슬란드산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홋카이도는 '청정지역에서 자란 좋은 먹거리가 풍부한 곳'의 이미지가 강하며, 마트나 백화점에서 홋카이도산 식품 특별전 같은 행사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일반적인 다른 곳의 식재료보다 홋카이도산이라고 하면 좀더 질 좋고 맛있는 먹거리라는 이미지. 그래서 홋카이도의 음식은 일본의 타 지역에 비하면 맛은 엄청 좋으면서도 오히려 저렴하다. 애초에 한국 물가가 일본을 다 따라잡아버린 상황이라 한국인 입장에서도 상당히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 특히 회처럼 비싼 해산물의 경우 가성비 압살 수준이다. 북태평양과 오호츠크 해, 동해산 해산물 요리는 일본에서도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 머위가 엄청나게 많다. 그냥 지나가다가 보면 널린 것이 머위. 특히 아쇼로쵸 라완 강가에서 자라는 라완 머위는 그야말로 초거대종으로 높이가 최대 4m에 이른다. 괜히 '코로보쿠루' 전설이 있는 게 아니다. 샤먼킹의 호로호로의 지령인 코로로의 모티브도 이것이다.

또한, 잘 발달된 낙농 환경 탓인지 유제품의 맛이 월등히 좋다. 우유를 기초로 하는 식품 공방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기도 하다. 우유도 꽤나 각별한 맛을 자랑하며, 이러한 각 공방 혹은 목장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제조하여 판매하는 요구르트, 케이크, 빵 등은 그야말로 고품질의 별미이다. 홋카이도에서만 파는 '소프트 카츠겐'이라는 진한 요구르트 음료가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홋카이도산이라는 표식이 붙은 가공품들은 가격이 조금 더 비싼 경향이 있다. 또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간간히 나오는 "한국 빵은 왜 가격대가 높으며 한국과 똑같이 원자재들을 수입해오는 일본이 훨씬 더 싼가?" 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홋카이도에서 생산되는 대량의 자국산 유제품의 유무가 한일 양국의 빵 값 차이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홋카이도 농협 경제사업부(호쿠렌)에서 설탕사업부가 따로 있을 정도로 설탕 제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사탕무 생산이 잘 이뤄지기 때문. 대부분 황설탕으로 나온다. 이런 점으로 인해 일본 내 설탕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핫도그에도 설탕을 뿌려 먹는다.[3]

교통

철도

세이칸 터널(홋카이도 신칸센 포함)을 통해 혼슈의 아오모리와 연결된다. 도내 철도 교통은 JR 홋카이도가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제설비용과, 철도를 깔아둬도 공기수송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폐선을 미친듯이 하고도 지금까지 적자로 허덕이는 중이다. 덕분에 현재 건재한 노선과 역들도 하나둘씩 지자체와 합의해서 폐선이나 폐역할 궁리를 하는 중이다. 홋카이도 지역 전철은 삿포로 근처 전철화된 곳만 5분에 한대 정도로 자주 다니지만 다른 데는 비전철화 구간이 비일비재하고 하루 2~10편에 동차 1량에다 1인 승무로 운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동차도 신형차량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키하 40계 동차나 키하 54계 동차같은 국철시대부터 있던 열차들이다... 다행히도 키하 40계의 머릿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삿포로에서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도 흔하게 보인다. 신칸센과는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다가 홋카이도 신칸센이 2016년에 개통했다. 그러나 아직은 도호쿠 지방에서 하코다테까지만 개통한 상태. 중심부인 삿포로 개통은 2031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도로

홋카이도는 광활하고 인구밀도가 낮아 대중교통의 발전이 더딘 편이고, 따라서 자가용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홋카이도 내에서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갖춰졌다는 삿포로조차 승용차의 교통분담률이 55%로 일본의 대도시 치고는 높은 편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탓에 일본의 다른 지방에 비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례로 홋카이도는 일본 내 다른 지방에 비해 고속도로 정비가 늦어 고속도로는 그리 많지 않다. 있는 고속도로들도 태반이 왕복 2차로 고속도로이다. 홋카이도는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겨울에 운전이 어렵다. 렌터카 업체도 홋카이도의 기후에 맞춘 사륜구동 및 스노타이어 장착 등으로 차를 준비한다. 갑자기 마른 하늘에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눈폭탄이 내려서 차 앞 창문으로 눈이 내리꽂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으며, 눈이 심하게 올 때는 50cm 앞도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밖에도 눈에 반사된 빛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홋카이도를 운전하면서 여행할 때는 피부 자외선 문제도 있어서 선글라스를 반드시 소지할 것을 권한다. 이 때문에 NEXCO 동일본의 홋카이도 쪽 고속도로에서는 겨울이면 차선 일부를 잠시 통제하고 제설차량으로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항공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공항으로 삿포로 근교 치토세에 신치토세 공항이 있으며, 홋카이도로 가는 거의 대부분의 국제선은 신치토세 공항을 기종착지로 한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홋카이도 외부에서 홋카이도를 갈 때 대다수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한다. 도쿄 국제공항 - 삿포로 신치토세 사이 항공편은 국제적으로 봐도 매우 많은 일일 편수를 자랑한다. 보잉 767, 보잉 777, 보잉 787 등 광동체를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는 항공편인 김포국제공항-제주국제공항 노선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승객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홋카이도 각지에 중소규모 공항이 있다. 홋카이도가 면적은 넓은데 도로교통과 철도교통이 그리 좋지 않기에 신치토세 공항 및 삿포로 비행장에서 홋카이도 각지의 중소공항을 잇는 항공편도 꽤 있다.

지도

일본 지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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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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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홋카이도섬〉, 《위키백과》
  2. 훗가이도〉, 《네이버 지식백과》
  3. 홋카이도〉,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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