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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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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난초(蘭草)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60cm 정도이고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고 잔뿌리가 나와 자라며, 은 떨기로 나고 긴 칼 모양이다. 초여름에 푸른빛이 도는 짙은 자주색 이 꽃줄기 끝에 2 ~ 3개씩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민간에서는 뿌리줄기를 피부병에 쓰고 관상용으로 널리 재배한다. 산록의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만주, 동부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1]

개요[편집]

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이다.

난초는 외떡잎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된 식물군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 피는 종이 다양한 주요 관엽식물로 애호가가 많다. 세계에 약 700속 2만 5000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 자생종은 39속 84종이다. 양극지방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에 자라며 특히 열대지방의 운무림(雲霧林)에서 많이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원예상에서는 동양란과 양란(서양란)으로 구별하고 있다. 동양란은 한국 · 일본 · 중국에 자생하는 것이며 보춘화 ·한란 등의 심비디움속(Cymbidium)과 석곡(石斛) · 풍란(風蘭)을 포함한다. 그 중에서도 보춘화는 동양란의 주종으로 삼고 있는데, 북송 때의 《수죽기(脩竹記)》에 일경일화(一莖一花)인 것을 난(蘭)이라 하고 일경구화(一莖九華)인 것을 혜(蕙)라 하였다.

동양란의 재배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어, 남송(南宋) 때의 《난보오법(蘭譜奧法)》(1233) 《왕씨난보(王氏蘭譜)》(1247)에 종류 · 재배법이 상세히 기록된 것으로 보아 10세기경부터 재배 · 감상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난초를 넣고 빚은 술을 대접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부터 난초는 문인화의 소재로 등장해 매화 ·대나무 · 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난초를 소재로 하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조선 초기 강세황(姜世晃)의 《필란도(筆蘭圖)》를 들 수 있다.

양란은 열대 원산으로 주로 유럽에서 재배되고 육종되어 왔다. 양란의 원산지는 인도 ·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쳐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열대아시아지역, 멕시코 · 플로리다 · 우루과이 · 파라과이 · 브라질 등의 열대아메리카지역, 남아프리카 · 마다가스카르 섬 등이다. 양란의 큰 특색은 품종개량에 의한 다양한 종의 육성이다. 1852년 영국의 J. 도미니가 교배종을 개화(開花)시킨 이래 속간교배(屬間交配)도 시도하여 성공하고 있다.[2]

상세[편집]

일반적으로는 난이라고 한다. 단자엽식물에 속하는 난초과는 국화과 · 콩과 다음으로 큰 과로 땅에서 자라는 것, 나무나 바위표면에 붙어서 자라는 것, 다른 식물에 기생하는 것 등 다양하다. 세계적으로는 약 450속 1만5천 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한국에는 39속 84종이 자라고 있다. 난초는 동양란과 서양란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산지와는 관계없이 편의상 부르는 것으로, 서양에서 육종되어 수입된 난은 서양란이라 하고, 한국 · 중국 · 일본에서 야생하는 온대성 심비디움(cymbidium)과 석곡 · 풍란의 원종은 동양란이라 한다.

동양란은 좁게는 온대성 심비디움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1963년에 대만일본의 난애호가들이 만났을 때, 공통의 명칭으로 통용하자는 제의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 식물학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형태는 잎은 단엽이고 꽃은 양성인데 간혹 단성도 있다. 화피(花被)는 6개가 내외로 배열되어 있는데 모두 꽃잎같이 생겨서 아름답다. 순판(脣瓣)은 본디 원대를 향하였으나, 자방이 180°로 돌기 때문에 밖을 향한다.

본디 6개였던 수술은 3개로 퇴화하였고, 1개의 암술은 암술머리가 2 ∼ 3개로 갈라져 있다. 꽃가루는 덩어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수술과 암술대는 합쳐져서 예주를 형성한다.

난 재배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어 3천년의 난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난문화는 난이라는 공통적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식물이 군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역사를 이어왔다.

현재 우리가 난이라고 하는 온대성 심비디움의 재배는 10세기경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국화과 식물인 향등골나물을 난이라고 하였다.

중국 고대의 난, 즉 향등골나물은 서기전 8세기까지는 한(蕑)이라고 불렸는데 그 잎모양이 마란(馬蘭)과 비슷하다는 데서 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0세기 이후에는 온대성 심비디움에게 그 이름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 식물은 도량향(都梁香) · 수향(水香) · 향수란(香水蘭) · 여란(女蘭) · 향초(香草) · 연미향(燕尾香) · 대택란(大澤蘭) · 성두초(省頭草) · 해아국(孩兒菊) · 천금초(千金草)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향등골나물은 잎과 꽃에서 강한 향기를 풍기는 향초로서 충독을 막거나 액을 쫓는 데 쓰였으며, 꽃을 꺾어서 구애의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또한 더운 물에 넣어서 목욕을 하기도 하고, 가공하여 음식물에 첨가하거나 향합에 넣어서 옷에 차기도 하였다.

이 식물이 군자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덕이 청결한 군자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향초를 패용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그 일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로 만든 술을 대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중기의 김부식(金富軾)의 「임진유감(臨津有感)」, 김극기(金克己)의 「유감(有感)」을 비롯하여 이규보(李奎報)의 난에 관한 많은 시구(詩句)들과, 한말에 김정희(金正喜)가 발견하고자 찾아 헤매다가 "우리 나라에는 진란이 없다. 다만 그와 비슷한 것이 있을 뿐이다."라고 토로한 진란도 바로 이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매화 · 국화 ·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문인화의 소재가 된 온대성 심비디움은 10세기경에 재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도곡(陶穀)이 지은 『청이록(淸異錄)』에 "난은 비록 꽃 한송이가 피기는 하나 그 향기는 실내에 가득차서 사람을 감싸고 열흘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남 사람들은 난을 향조(香祖)로 삼는다."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것은 분명히 한줄기에 꽃 한송이가 피는 춘란류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송의 황정견(黃庭堅)이 『수죽기(脩竹記)』에서 "한줄기에 꽃 한송이가 피고 향기가 많은 것은 난이고, 한 줄기에 예닐곱송이가 피면서 향기가 적은 것은 혜(蕙)이다."라고 한 것도 오늘날의 분류와 같다.

이 식물을 한국 사람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고려 중기의 난에 관한 시구들은 향등골나물과 난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다.

『역옹패설』에 "일찍이 여항(餘杭)에 객으로 머물러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난을 분에 심어서 선물로 주었다. 이것을 서안 위에 놓아두었는데, 한참 손님을 접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그 난이 향기로운 줄을 몰랐다가 밤이 깊어 고요히 앉았노라니 달은 창 앞에 휘영청 밝고 그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 하여 맑고 그윽한 향기를 사랑할 만하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음을 느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난분을 깨뜨린 태몽을 꾸고 낳았기에 정몽주(鄭夢周)의 초명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는 기록 등에 등장하는 난은 오늘날의 난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 한국의 사신이 원나라를 빈번히 다녀오고, 원나라에 가서 벼슬도 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 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온대성 심비디움을 재배하였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고려 말의 이거인(李居仁)은 난을 재배한 것으로 유명하고, 조선 초의 강희안(姜希顔)은 한국 자생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강희안은 안사형(安士亨)과 더불어 화목에 대한 안목이 탁월하였던 사람으로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난을 심자(深紫) · 담자(淡紫) · 진홍 · 담홍 · 황란 · 백란 · 벽란 · 녹란 · 어타(魚鮀) · 금전(金錢) 등으로 분류하고 중국의 옛 기록을 소개하면서 재배법을 논하였다.

그리고 "한국에는 난 · 혜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분에 옮긴 뒤에 잎이 점점 짧아지고 향기도 좋지 않아 국향(國香)의 뜻을 아주 잃고 있다.

그러므로 꽃을 보는 사람들이 심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호남 연해의 모든 산에서 나는 것은 품종이 아름답다."라고 하여 자생란에 대한 관심을 표하였다.

『임원경제지』에서는 난을 자류 17종, 백류 24종, 잡류 14종 등 모두 55종으로 분류한 외에 우리 나라 자생란에 대한 것과, 대마도를 통하여 중국 · 일본의 난이 수입되는 경로 등을 밝혔다.

한국 사람으로 난의 육종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영친왕으로서 창경(昌慶)과 창방(昌房)의 두 품종개발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에서도 조직배양이 가능해져서 좋은 품종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신품종도 육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에서 애호되는 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보춘화속: 아열대 · 열대산인 대형종과 소형종인 온대성 심비디움이 있는데 특히 온대성 심비디움은 향기가 맑고 잎의 모양이 다양하여 일찍부터 국화 · 매화 ·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한국의 춘란과 한란이 이에 속한다. 아열대 · 열대산은 꽃이 크고 화려하나 향기가 있는 품종이 드물다.
  • 석란속: 옥수숫대 모양의 줄기 마디마디에 꽃이 피는 노빌계와 원통형 줄기의 끝, 또는 위로부터 2, 3마디 아래의 잎 사이에서 나온 꽃대에 10 ∼ 30송이의 꽃이 피는 덴팔계가 있다.

한국의 남해안과 남부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석곡은 노빌계에 속하는 품종으로 흰색 또는 분홍색의 꽃이 5, 6월경에 피며 미향이 있다.

  • 대엽풍란속: 한국의 제주도 · 홍도 등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나도풍란이 이에 속한다. 나도풍란은 한국 착생란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습윤하고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대의 나무줄기 또는 바위에 붙어 산다. 잎의 길이는 3 ∼ 15㎝, 너비는 1.5 ∼ 2.5㎝ 정도이고 백록색의 꽃이 4, 5월 사이에 4 ∼ 10송이 정도 피는데 향기가 좋다.
  • 소엽풍란속: 전라남도 거문도, 경상남도 비진도 등 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풍란이 이에 속한다. 풍란은 환경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잎의 길이는 5 ∼ 10㎝, 너비는 6 ∼ 8㎜로 3, 4층으로 나며 4 ∼ 8㎝의 가는 꽃대에서 순백색의 꽃이 피는데 향기가 좋다.

외국에서 육종되어 도입된 종류로는 캐틀레아속 · 파피오페딜룸속 · 온시디움속 등이 있는데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이 밖에 한국에서 야생하는 새우난초 · 개불알꽃 · 사철란 · 타래난초 등에 대한 애호도도 높아가고 있다.

난초는 사군자의 하나로 예로부터 시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인화로서 묵란화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한국에서 난이 재배되기 시작한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조선 초 강세황(姜世晃)의 「필란도(筆蘭圖)」가 있다.

이 밖에 김정희 · 이하응(李昰應) · 김응원(金應元) · 민영익(閔泳翊) 등은 묵란화의 대가들이다. 난시를 남긴 이로는 김부식 · 김극기 · 이규보 · 정몽주 ·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 이숭인(李崇仁) · 최경창(崔慶昌) · 신위(申緯) 등이 있다.

난초는 또한 자손의 번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경기도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충청북도지방에는 꿈에 난초가 대나무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난초와 관련되는 속담으로는 '난초 불 붙으니 혜초 탄식한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동류의 괴로움과 슬픔을 같이한다는 뜻이다.[3]

구분[편집]

난초는 크게 착생란과 지생란으로 나뉘는데, 착생란(epiphytic orchid)은 나무나 바위 등의 표면에 붙어서 사는 형태의 난초이고, 지생란은 일반적인 식물과 같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형태의 난초이다. 난초의 뿌리는 잔뿌리가 없으며 다른 식물에 비해 두꺼운데, 벨라멘이라는 스폰지 형태의 두꺼운 층이 덮고 있어서 이나 양분 등을 흡수하여 저장하거나, 외부 환경에서 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착생란의 경우 이 뿌리의 벨라멘층이 난초가 붙어있는 표면의 틈새에 밀착해서 단단하게 고정시켜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한 생장 형태에 따라서 단경성(monopodial)과 복경성(sympodial)의 두가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단경성 난초는 한 줄기가 계속 성장하면서 잎을 계속해서 내놓는 형태의 성장 방식이고, 복경성 난초는 줄기가 일정한 크기까지 성장하면 더 이상 자라는 것을 멈추고 뿌리 쪽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와서 다시 성장을 반복하는 형식의 난초이다. 풍란이나 호접란, 반다와 같은 난초가 단경성 난초이며, 춘란, 보세란, 석곡, 카틀레야와 같은 난초가 복경성 난초이다. 물론 단경성 난초인 풍란이나 반다 등도 상황에 따라서 뿌리쪽에서 새로운 줄기를 낸다. 차이점은 모주가 계속 성장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복경성 난초의 경우 줄기가 비대해져서 물과 양분을 저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구근 식물의 구근과 같은 기능을 하는 줄기라 하여 가구경(pseudobulb)라고 부른다. (단순히 벌브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온시디움과 심비디움 같은 난초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또한 석곡 역시 이런 가구경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줄기에 양분과 물을 저장하기 때문에 이파리가 다 떨어진 오래된 줄기도 꽃을 피우거나, 새로운 을 틔워내는게 가능하다. 난초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착생란의 경우, 건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서이다.

이외에도 난초의 다양성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바닐라와 콩짜개란처럼 덩굴성으로 자라는 난초가 있는가 하면 거미란처럼 잎이 없고 녹색으로 착색된 뿌리로 광합성을 하는 난초도 있고, 바닐라처럼 다육식물인 것도 있고, 해오라비난초 같은 반수생도 있으며 균사에 기생하는 난초도 존재한다. 으름난초나 천마가 대표적인 부생란이다. 외떡잎식물 가운데 가장 성공한 과(科)로 약 28000종이 존재하며 쌍떡잎식물의 국화과(32000종)와 쌍두마차이다. 여기에 변이가 다양해서 장소에 따라 아종이나 변종으로 갈리며, 잡종도 아주 쉽게 되다 보니 실제 원예에서는 품종이 수십만 종이나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난초 원예시장에서는 난초에 라벨을 꼭 달아두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가치가 0이 된다.

동양란, 서양란

학술적으로는 동양란과 서양란의 구별은 옳지 않다. 동양란이지만 서양에 멀쩡히 살기도 하고 그 반대도 역시 많다. 난초과 밑에는 5개의 아과가 있으며 세계적으로 원예용으로 많이 재배되는 난초는 덴드로비움속과 팔레놉시스 속이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사군자 그림에 나오는 난초처럼 생긴 난은 그냥 동양란, 그 이외는 그냥 서양란으로 인식되며 난초과가 아니어도 비슷하게만 생겼으면 난초라며 팔기도 한다.

원예적으로는 크게 동양란과 서양란으로 나누고 여기서 다시 세부적으로 난을 나눈다. 이렇게 나누어지는건 품종에 따르지만 그 품종에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종의 가격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가격은 비싼 편으로 평균적인 난초만 해도 몇 만원 대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난초 조직배양 기술개발된 이후에야 배양이 가능한 일부 난초의 가격이 떨어졌는데, 1970 ~ 80년대 수십만원을 호가했던 풍란의 경우 당시에는 가격 탓에 자생지 남획이 심했지만 조직배양에 성공한 이후 2017년 양재 화훼단지 기준 촉당 소매가 2천원 선으로 한국에서 가장 저렴한 난초중 하나로 등극했다. 덕분에 남획도 사라졌다.

동양란과 서양란의 구분은 엄밀히 말해 근대 개방 이후 수입된 난초인가, 아닌가로 생각하면 편하다. 춘란, 한란, 풍란, 석곡 등 동북아시아에서 오래도록 키워온 전통적인 난초들과 광릉요강꽃, 새우난초, 해오라기난초 등의 자생난초들을 동양란이라 부르고, 그 외에 근대 이후 수입된 난초들은 모두 퉁쳐서 서양란이라 부른다. 실제로 서양란 중에는 동남아에서 자라는 난초부터, 남미에서 자라는 난초까지 다양하게 있다. 다만 난을 주로 기르는 사람들은 이 둘을 종종 구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동북아에서 오래도록 길러온 난초들은 대체로 수수하고(달리 말하면 일반인 눈에는 볼품없어보이는 품종들도 꽤 있다) 담백한 외형과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고 있다면, 서양란은 대체로 화려한 꽃이 위주로(향기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 기르기 때문이다.[4]

종류[편집]

  • 바닐라: 사실 사람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난초다. 꽃이나 원형은 몰라도 아이스크림에서 툭하면 기본 맛 중 하나로 쓰이기에 맛과 향은 알 수 있는 그것이다. 이 바닐라 역시 난초의 일종이다. 돈두르마에 특유의 점성을 내기 위해 쓰이는 살렙(Sahlep)도 난초의 일종이다.
  • 보세란
  • 석곡
  • 천마
  • 풍란(식물): 역시 난과에 속한다. 다만 풍란은 좀 고급형 버전이다. 보통 꽃과 그 향을 높게 치는 식물이지만 꽃보다는 잎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 길다란 잎만 쭉 뻗어있는게 보통이다 보니까 보통 사람이 보면 그게 그걸로 보인다. 다만 고급형이라는 것은 거의 옛말. 요즘은 춘란은 애호가나 선물 외에 잘 찾지 않고, 풍란이 대중화된 편인데 양식에 성공하면서 가격이 떡락했다. 보통 일반적인 풍란과 나도풍란은 이제 1000원에도 구입이 가능하다. 물론 특별한 품종이 있는 경우에는 몇만원은 커녕, 몇십, 몇백도 금방 치고 올라간다.
  • 호접란: 난초과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속 중 하나. 서양란이라고 불리는 난초 중 가장 접하기 쉽고 흔한 종류다. 특이한 가죽같은 질감 때문에 조화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고 조화처럼 관리가 쉽기 때문에 개업화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꽃향기가 좋은 종류나 꽃대가 큰 종류, 색이 특이한 종류 등 개량이 많이 되었으며 원종 중에서도 특이한 것이 많아서 키워볼만한 속이다.
  • 콩짜개란속: 난초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속 중 하나. 수천 종의 난초가 하나의 속에 묶여있고 이 난초들은 대부분 교잡이 가능하며 형태가 극단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난초 애호가라면 하나쯤은 들여볼만한 속이다. 물론 이 속에 향이 고약한 난초가 다수 섞여있기 때문에 예쁘다고 막 들이면 꽃이 폈을 때 극심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는 콩짜개란이 자생하고 있다.
  • 카틀레야: 역시 난초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속 중 하나이다. 꽃향기가 좋고 꽃이 크기 때문에 절화로 대량생산되기도 했으며 현재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난초 종류다. 품종마다 향이 다르지만 대개 고급진 향수 향으로 표현되는 부드러운 향을 가지고 있다.
  • 파피오페딜룸속: 숙녀의 슬리퍼 난초라고 불리는 다양한 난초가 속해있는 속이다. 대표적으로 파피오페딜룸 인시그네나 파피오페딜룸 델레나티가 속해 있다. 꽃이 아름답고 잎이 특이하며 크기도 적당해서 원예용으로 인기가 많고 매니아도 많은 덕분에 남획으로 가장 많이 고통받은 속 중 하나다. 덕분에 현재는 속의 종 대부분이 사이테스 1급으로 규제를 받고 있다.[4]

발아[편집]

난초의 이 수정된 뒤 열리는 열매에는 1mm보다 작은 크기의 (보통 0.2 ~ 0.5mm 정도의 먼지만한 크기다) 매우 작은 씨앗이 수만개에서 수십만개가 들어있는데, 다른 식물의 씨앗과는 달리 그 어떠한 영양분도 들어있지 않고, 떡잎조차 존재하지 않은 그저 세포 덩어리 몇개만 딸랑 들어있는 형태의 극도로 단순한 형태를 이룬다. 씨앗이라기보다는 포자에 가까우며, 아무런 양분도 없기 때문에 그 스스로는 절대로 발아를 할 수 없으며, 흙이나 나무껍질 등에서 생활하는 곰팡이들 가운데 특정 공생균의 균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발아가 된다. 이러한 난초의 씨앗과 공생하는 곰팡이들을 난균이라고 칭하는데, 어떤 종의 난초는 다 성장하고도 난균의 도움을 받아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천마처럼 아예 잎을 만들 생각을 포기하고 평생을 난균이 먹여주는 영양분에 의지하는 난초조차 존재한다.

발아가 되더라도 바로 잎과 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몇달간은 캘러스 형태의 동그란 덩어리를 만들고 (이를 전괴체(protocorm)이라고 부른다) 그 다음에 비로소 뿌리와 잎을 내어서 식물다운 구색을 갖추는데, 마치 유대류가 미성숙한 태아를 출산한 뒤에 체외에서 성장시키는 것을 연상케 한다. (여기선 키워주는게 곰팡이라는게 차이지만) 그리고 이 어린 개체가 꽃을 피울 정도까지 자라려면 보통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일부 난초는 극도로 성장이 느려서 발아에서 꽃이 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개중에는 10년이나 걸리는 난초도 존재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난초 종자가 공생균 없이는 자연발아가 힘든데다가, 꽃 모양은 한두 종류의 곤충(주로 나비)의 입 모양이나 습성에 특화되어 있어서 서식지가 조금만 파괴되어도 개체수가 급감하기 쉽다. 이런 점은 난초를 기르기 매우 힘든 식물로 만드는 주 요인이며 서식지에서의 남획에 매우 취약하다. 이건 난초가 식물 중에서도 공짜와 도박을 좋아하는 식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꽃에서 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다른 꽃을 흉내내거나, 고기 냄새를 풍겨 파리를 끌어모으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곤충의 성적 본능을 흉내내 공짜로 가루받이를 하는 쪽이 많다. 하도 사기를 많이 당하다 보니 곤충들이 난초를 피해다닌다. 어떤 연구에선 15년간 추적한 결과 1000포기 중에 단 23포기만 성공했다고. 난초 종자가 극히 작은 것도 엄청난 숫자를 만들어 성공률을 높이는 것도 있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며 높은 곳에 부착하기 위함이다.

현대에는 난균이 난초의 씨앗에게 제공하는 영양 성분들을 분석해서 인공적으로 양분을 제공하여 발아를 유도하는 무균배양법이 개발되어 많은 종류의 교배종 난초들이 개발된다. 다만 광릉요강꽃과 같은 일부 난초는 여전히 무균배양법으로 안정적인 발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기도 한다.[4]

생육[편집]

한국에서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식물이다. 원예가 취미인 사람들은 기르기 힘든 점을 잘 알아서 애초에 기를 생각도 않는 일이 많은데 되려 문외한인 사람들이 난초를 선물하거나 선물받고 죽이게 된다.

난초를 기를 때 힘든 점은 대체로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다른 식물에 비해 습도에 민감하다는 점으로 자주 분무해줘야 하기 때문에 난 관리를 귀찮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반면에 뿌리산소 농도에 민감해서 과습할 경우 바로 물러 버리고 반대로 을 흠뻑 주지 않아 산소 교환이 안 되어도 무르게 된다. 애란가들은 이 때문에 집에 아예 난실을 따로 만들어서 바닥에 물을 항시 뿌리는 등으로 해결한다. 특히 착생란인 경우 원래부터 고습도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저습도인 집에 들어오면 물이 빠르게 마르며 물이 많이 마르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말라버리기 때문에 식재가 마를때마다 잽싸게 물을 줘야 한다.

둘째는 주변 생물과의 의존성이 높다는 점인데, 특히 공생균과의 의존이 심하다. 사람들이 보통 키우는 화분에는 당연히 이런 것이 생기기 힘들게 마련인데 따라서 영양분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비료 관리를 대단히 섬세하게 해야 한다. 이런 관리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면 후술할 방치법(...)이 도움이 된다.

잘 키우고 싶다면 약간 그늘진 곳에 그냥 방치하면 된다. 그리고 그냥 까먹고 있다가 비오는 날에 밖에 두어 비를 흠뻑 맞히고나서 다시 실내로 들이면 된다. 가뭄이 심한 때는 별도로 물을 약간씩 주어서 관리하되 다른 건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키우다보면 일년에 2, 3번은 꽃을 피워줄 것이다. 너무 영양제 주고 물 주고 해서는 안된다. 식물치곤 까다로운 놈이라, 물 자주 주고 돌봐주면 오히려 빨리 죽는다. 오죽했으면 '장식품처럼 집안 가구 위에 가만히 올려두면 알아서 산다'란 말이 있을까. 물론 이렇게 키울 때도 가끔은 들여다봐야지, 잊고 있다가 몇 주 만에 드라이플라워로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풍란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난초들의 경우 꽃눈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동면을 필수로 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서양란들은 일교차를 비롯해 꽃눈이 생성되는 난초들만의 환경이 필요하다. 때문에 선술했듯이 2 ~ 3년에 한 번씩 꽃을 틔워주는건, 일반적으로 난초를 기르는 이들을 제외하면 운에 가깝다. 난초를 몇 년을 길러도 꽃을 안 올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봄 ~ 가을에는 겉부터 깊이 1cm까지 말랐을 때 흠뻑, 겨울에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따뜻한 날 오전 중에 조금 주면 된다. 수태에 키우는 경우 수태가 과습을 좀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포슬포슬 말랐을 때 흠뻑 준다. 바크 역시 마찬가지. 옮길 수 있는 부작인 경우 수태가 마를때마다 물에 담궈두는 것이 좋다. 습기를 좋아하지만, 과습보단 건조가 낫기 때문에 초보라면 차라리 조금은 건조한듯 기르는 것을 추천한다. 잎이 조금 쪼글쪼글해지면 물주는 횟수를 늘려주면 되니까. 반대로 물을 자주 줘서 과습으로 뿌리나 줄기가 무르기 시작하면 살려내는게 더 힘들다. 특히 뿌리는 무른 뿌리만 잘라내고 긴급조치를 해줄 수 있지만, 줄기가 무르면 그냥 끝났다고 보면 된다.

난초 관리 중에서 특이한 게 잎 관리인데, 넓은 난초 잎에 먼지가 끼이지 않도록 난초잎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난초 잎을 닦아주면서 난과 교감을 나누는 것도 운치의 일종이긴 한데,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덕분에 관리를 안해주면 잎에 먼지가 뿌여게 쌓여서 보기가 싫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보통 나이 지긋한 사람이나 은퇴자가 난초를 관리하면서 여유적적한 삶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이런 은퇴자의 취미가 이런 난이나 화원관리 쪽이기도 하고, 다만 이 경우 주로 춘란이나 한란의 경우. 일반적으로 난초에게 물을 줄 때 잎 위로 물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풍란이나 호접난처럼 착생란의 경우 자주 만지면 뿌리가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걸려 난초가 몸살을 앓거나, 성장이 더뎌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석곡이나 풍란 중 조금 고가의 예민한 품종들은 분갈이 후 아예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철사로 몸통을 감아 고정시켜주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에는 춘란이나 한란 등도 잎을 닦는 일은 굳이 하지 않는다. 차라리 먼지털이개로 조심스럽게 훑어주면 모를까. 식물을 자꾸 만지는 것은 식물에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

의외로 연약해서 잎이 마르면 쉽게 갈라진다. 집에 어린애가 있거나 어린애가 놀러왔는데 심심하면 끝이 조금 갈라진 잎을 세로로 쭈욱 찢다가 재밌어서 멀쩡한 것까지 죄다 반쪼가리로 찢어버리기도 한다. 이걸 또 빨리 찾아서 잎 전체가 갈라지지 않게 잘라주는 것도 필요하다. 닦아주랴, 잘라주랴 신경쓸 게 많다 보니까 버려지는 난들도 많다. 아예 이렇게 버려지는 난만 모아서 키우는 사람도 있다. 버려지는 난은 대개의 경우 상태가 안 좋은데 계속 애정을 가지고 관리를 해주다보면 잎도 다시 나고 꽃도 예쁘게 피워준다.

난초를 흙에다 심는 것이, 난초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건 난초의 종마다 다르다. 애초에 춘란을 필두로 하는 생각외로 많은 난초들은 착생란이 아니라 지생란이다. 착생란은 나무나 바위 등에 착생해 자라는 난초, 지생란은 흙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난초다. 보통 지생란을 난석이나 다른 식재에 심는 것은 그저 통풍을 좋게 하고,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 게다가 착생란을 흙에 심어 성공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유튜브 등지에 호접란 등의 착생란을 흙에 심어 몇 년째 기르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해마리아(보석란)처럼 그냥 흙에 심어 유통되는 난초도 많다. 물론 그렇다고 멀쩡히 바크나 수태에 잘 심겨진 호접란, 카틀레야, 풍란 등의 착생란을 흙에 심어 실험하는 걸 권하진 않는다.[4]

남획[편집]

난초는 원예용으로 각광받은 종류인만큼 남획으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은 식물이다. 석곡, 파피오페딜룸, 카틀레야 등등 수많은 속의 수많은 종이 야생 개체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자생지에서 통채로 떼어져서 현지 밀렵꾼들에 의해 유통된다. 당연히 야생 개체를 유통하는 데는 다양한 규제가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밀렵+밀수 콤보를 통해 규제를 피해서 유통하기도 하며 야생 개체를 잠깐 농장에서 키우고 농장 개체로 둔갑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물론 난초가 흔한 식물이었다면 이렇게 밀렵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난초는 자연에서 발아가 심히 어렵고 성장이 느려 한 번 자생지가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난초를 야생에서 채집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게다가 난초 시장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 채집을 시작하면 자생지를 심각하게 파괴할 만큼 채집하기 때문에 야생 채집은 곧 난초의 멸종을 앞당기는 것이다.

물론 재배에 도입되기 전의 난초를 수요에 맞춰 재배에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다. 애초에 모든 난초 재배종은 전부 원종 혹은 원종의 교배종에서 나왔으므로 그 원류를 야생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연구 목적으로 채집하고 그것을 번식시켜 시장에 내보내는 것과 밀렵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야생 개체를 긁어가는 것은 차이가 극심하다. 난초를 재배에 도입해서 시장에 푸는 역할은 식물원이나 연구소에서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 멸종위기종이나 멸종 가능성이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난초 남획은 외국 뿐만 아니라 한국도 극심하다. 자생 석곡을 야생에서 캐온 그대로 판매하는 업체도 있으며, 난초꾼들이 산을 돌아다니면서 헤집어놓고 남의 산에도 몰래 들어가서 난초를 훔쳐간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당연히 자신의 산이 아니면 사유지 침입 및 절도죄가 적용될 수 있으며, 국유림인 경우 임산물 채취가 불법이므로 에서 난초를 캐고 싶다면 자신의 산에서 보호종이 아닌 종을 캐야 한다.[4]

전설[편집]

인도의 신 "부랴마"에게는 "비시누"라는 아들이 있었다. "부랴마" 신은 "비시누"에게 땅에 내려가서 착한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땅에 내려온 비시누는 늙은 모습으로 변해서 인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기가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시누는 수수밭 속에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소녀를 발견하였다. 시름에 겨운 소녀는 이슬에 젖은 꽃잎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다. "나는 길을 가는 늙은 나그네로 이름은 비시누요. 아가씨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나쟈나 공주입니다. 아버지께서 신분이 다르다고 성의 문지기인 그이와의 결혼을 승낙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딱한 일이군요." 비시누는 곧 젊은 문지기를 찾아갔다. "저 강을 건너 산 속에 제일 큰 느티나무가 있을 것이오. 그 아래 피어 있는 꽃을 따다 임금님에게 바치시오." 젊은 문지기는 그 꽃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떠났다. 그가 목숨을 걸고 꽃을 찾는 동안 나쟈나 공주는 이유 없이 무서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혀서 명의란 명의는 모조리 동원되었지만 나쟈나 공주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될 뿐이었다. 임금의 사랑하는 딸의 목숨은 시간을 다투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공주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겐 어떠한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햇빛이 찬란한 어느 아침, 젊은 문지기가 한 송이 꽃을 들고 나타나 오랫동안 감겨져 있던 공주의 눈을 뜨게 했다. 젊은이의 소원은 나쟈나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임금님은 약속을 지켰다. 그들을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준 꽃이 바로 "난초"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 하나를 더 소개한다. 난초의 전설로는 호아난이라는 예쁜 처녀가 한 마을에 살았는데, 이 마을에 사는 총각들이 이 처녀를 사랑하여 고백을 해도 받아주지를 않아서 상사병으로 죽거나 자살을 하게 되었다. 이를 안 사랑의 신은 호아난이 한 남자에게 빠지도록 주술을 걸어 호아난이 이 남자에게 빠지도록 만들었는데, 호아난이 이 남자에게 아무리 사랑을 고백해도 이 남자가 들어주지를 않자 마녀에게 부탁을 하여 바나나 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고슴도치 바늘로 호아난의 가슴을 찔러 이 바늘로 바나나 잎에 주술을 써넣어 땅속에 묻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사랑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호아난은 그 남자에게 달려가 보니 다리에서부터 검은 흑단나무로 서서히 변해가는 남자를 보고 마녀에게 속은 것을 알고 울면서 그 흑단나무에게 매달려 꽃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난초"라고 한다.[5]

각주[편집]

  1. 난초〉, 《네이버 국어사전》
  2. 난초〉, 《두산백과》
  3. 난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4.0 4.1 4.2 4.3 4.4 난초〉, 《나무위키》
  5. 은난초 시리즈 (은빛으로 꽃이 피는 난초, 은난초)〉, 《이명호의 야생화》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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