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헬레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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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헬레나섬(영어: Saint Helena Island)는 앙골라 서쪽 해안으로부터 2,800km 떨어진 남대서양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425㎢이며 영국의 해외 영토인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제도에 속한다. 수도는 제임스타운이다. 나폴레옹이 이 섬으로 유배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름의 기독교의 성인인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로부터 유래되었다.[1]
목차
개요
세인트헬레나섬은 아프리카 대륙 서쪽 기슭에서 약 1,900km 떨어진 남대서양에 있는 영국의 섬이다. 남대서양에 있는 영국령의 3개 섬인 세인트헬레나섬, 어센션섬, 트리스탄다쿠냐섬 중 하나면서 3개 섬의 중심이자 대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세 섬을 관할하는 총독이 이 섬에 파견되고 다른 두 섬에는 행정 관리자가 보내진다. 수도 역할을 하는 제임스타운(Jamestown)도 이곳에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백일천하 이후 1815년 이곳으로 유배를 와 1821년 사망할 때까지 6년간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나폴레옹 매니아들에게는 성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영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에서도 세인트헬레나의 메인 관광지로 밀어줘서 섬 관광 홈페이지에도 이 점이 부각되어 있다. 당시 총독 관저이자 나폴레옹의 마지막 저택이기도 한 롱우드(Longwood) 하우스가 유명하다. 1858년 프랑스에 기증되었으며, 프랑스 영토로 간주되진 않지만 건물과 마당 전체가 프랑스 정부의 재산이므로 프랑스 정부가 채용한 관리인이 상주하며 문화재로써 관리하고 있다. 나폴레옹 관련 관광업 외에는 이런저런 작물들을 재배함으로써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특히 커피는 세계적으로도 최상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워낙 외딴 곳이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영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아시아 항로가 희망봉을 돌았던 시대에는 기항지, 보급항으로서 중요시되었으나,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그 가치를 상실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의 해군기지가 되었고 현재는 어센션섬과 함께 원거리통신의 중계지 구실을 하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는 영국군이 무기와 물자를 보관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여,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2][3]
세인트헬레나섬은 유럽인들이 처음 이주해 살 때만 해도 무인도였다. 이후 1810년 섬에 들어온 영국인들이 염소 몇 마리를 마구 풀어놓아 황무지가 될 뻔 한 적이 있어, 인간이 개입하여 자연을 파괴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섬 안에 딱히 천적이 될 만한 생물이 없어 염소가 너무나도 늘어났고, 나중에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먹은 염소들이 집단으로 농장을 공격하는 일이 빈발하자 대거 사살하는 한편 섬 외부에서 풀, 나무, 파리 등을 사 와서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겨우 원상복구시켰던 것. 그러나 이 섬에만 서식하던 식물들만 해도 33종에서 22종이 염소 때문에 영원히 멸종했고 벌레들도 마찬가지라서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나 세인트헬레나붉은잠자리를 비롯해 생물들 가운데 일부는 영영 멸종하고 말았다. 식물의 경우도 같아 세인트헬레나 올리브(Nestiota eliptica, 학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올리브가 아니다)는 전염병으로 야생은 진작에 멸종했고 큐 왕립식물원에서 키우던 거도 1990년대 전염병으로 죽어 멸종했다. 당연히 그 씨에서 나온 개체들도 다 죽었다. 다만 정말로 아주 멸종인지 모른다. 똑같은 섬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살고 관광지로 개발된 키프로스 쪽 관광지이던 바로샤도 여기 살던 동식물이나 벌레들이 멸종했는데 키프로스 전쟁 여파로 유령 도시가 된 후 30여 년쯤 지나 멸종되었다고 여기던 여기서만 살던 동식물이 다시 나타난 사례가 있다.
지리
세인트헬레나섬은 아프리카 대륙 서안에서 2,800km 떨어져 있다. 수에즈 운하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인도양으로 향하는 항로의 요충지였다. 세인트헬레나섬은 화산섬으로, 다이애나산(820m)이 최고봉이다. 섬의 주위에는 절벽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섬 대부분이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암좌와 바위섬이 해안가에 나타나기도 한다. 20여 개 이상의 암초와 작은 섬이 있으며 거의 해안에서 1km이내에 있다. 중심부에는 숲이 우거져 있으며 새천년 수풀가꾸기 프로젝트(Millennium Forest Project)로 조성된 것도 많다. 고지보다 2~3도 온도가 낮으며 이 지역에 타지역보다 비가 많이 온다. 본래 열대 기후이지만 전체 섬에 특이 동, 식물군이 분포한다. 해안 지방은 토양이 척박하고 중심부에 비하면 건조하고 따뜻한 편이다. 해안성 기후인건 보통 섬과 다름이 없으나, 비바람과 폭풍이 늘 몰아치는 고온다습한 기후이다.
역사
발견
세인트헬레나섬은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의 항해가 조안 다 노바가 발견하였다. 섬 이름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였던 기독교의 성녀 세인트 헬레나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처음 무인도일 때, 포르투갈인들은 항해에 필요한 풍부한 재목과 신선한 물을 구할 수 있었던 점에서 착안하여 섬에 생활 물품과 과일 및 야채를 반입하였다. 또한 예배당과 두 채의 가옥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들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세인트헬레나 섬은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는 선박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었다. 기록 상의 첫 정착자는 포르투갈인 페르난도 로페즈이다. 1584년 5월 27일에는 덴쇼 소년사절단이 일본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쉬어간 적이 있다. 세인트헬레나에 내항한 최초의 영국인은 토마스 카벤디쉬이다. 네덜란드는 1633년에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네덜란드가 섬을 점거하거나 요새를 지은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다. 1651년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주변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 무렵까지 섬은 버려진 상태였다.
영국 동인도회사령
1657년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이 섬의 행정권을 인정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결정하고 1659년에 초대 총독 존 다톤이 부임하였다. 이로써 세인트 헬레나는 버뮤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식민지가 되었다. 1660년 왕정 복고 이후 동인도회사는 국왕의 인정서를 얻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동인도회사에 의해 1658년 건설된 요새가 현재의 수도인 제임스 타운이 되는데, 이 이름은 당시의 요크 공, 후일 제임스 2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 주민의 절반은 아프리카 흑인노예였다. 1676년부터 에드먼드 핼리가 이 곳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천체 관측의 거점으로 삼았다. 1810년 이후에는 동인도 회사의 광동 무역 기항지로 쓰이게 된다.
나폴레옹과 세인트 헬레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섬을 탈출한 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빈 회의는 그의 신변 처리를 영국에 일임하였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망명 수용을 거부하고 보호를 명목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기로 하였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세인트헬레나에 도착, 1821년 5월에 사망할 때까지 섬 중앙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영국은 허드슨 로 총독에게 나폴레옹의 감시를 지시했다. 이를 유배라고 표현하나, 이는 재판이나 조약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 구금이었으며,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는 나폴레옹이 병으로 몸져눕자 나폴레옹의 주치의를 영국 본토에 강제로 내보냈다. 나폴레옹이 유폐된 시기에 이 섬은 동인도 회사령으나, 영국 정부의 개입이 커진 상황이었다. 나폴레옹을 경계하여 섬에 부대가 주둔하였고, 해군 함선이 섬의 주변을 경계하였다. 또한 근처의 섬이었던 어센션섬과 트리스탄다쿠냐 제도에도 영국군이 파견되었다. 1817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섬에는 821명의 백인 주민들이 있었고, 820명의 군인과 618명의 중국인 노동자, 500명의 흑인 자유민, 1540명의 노예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사후 수 천명의 체류자들은 섬을 떠났고, 동인도회사가 섬의 통치를 계속하였다. 나폴레옹이 유배 중에, 섬에서 나는 커피를 호평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파리에서는 세인트 헬레나산 커피의 명성이 높아졌다.
왕령 식민지
1833년에 공포된 ‘인도법’에 따라 세인트헬레나는 1834년 4월 22일 왕령 직할섬이 되었다. 1870년대 중반까지,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항해의 요충지로 번성하였으나 수에즈 운하(1869년)가 개통하면서 교통량이 격감하게 된다. 제2차 보어 전쟁 시기인 1899년과 1902년 사이에는 수천 명의 보어인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4]
생태
한때 전 세계에서 오직 이 섬에서만 서식하는 세인트헬레나 헤라클레스 집게벌레가 서식했다. 세인트헬레나 집게벌레는 세계 최대의 집게벌레로 몸길이는 대략 80mm 정도이다. 많은 생태학자들이 이 세인트헬레나 헤라클레스 집게벌레를 수집해서 보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1967년 이후로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된 개체는 없으며, 결국 세인트헬레나 집게벌레는 2014년 8월 22일 IUCN 적색 목록 3.1 버전에서 절멸(Extinct)로 간주되었다.
경제
대부분 농업에 의존하지만 일부 관광자원에도 의존하는 편이다. 특히 나폴레옹의 유배지라는 이유로 관광지로서 유명해져있다.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영국 정부의 지원에 의존한다. 나폴레옹이 말년에 유폐되었고 나폴레옹이 이 곳에서 사망했다는 이유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골프장이 잘 되어 있고 낚시 스포츠로도 이름이 나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세인트헬레나 파운드가 지역 화폐로 사용되며 파운드 스텔링과 등가라고 볼 수 있다. 정부에서 화폐와 동전을 개별적으로 발행한다. 최초의 동전은 1821년 동인도 회사에 의해 발행되었으며 여전히 몇몇 수집가들이 이 동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교통
세인트헬레나섬은 2018년 초까지만 해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월 2회 정도 출발하는 여객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다만 유사시에는 포클랜드 제도에 상주하고 있는 영국군이 파견될 수 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공항 건설이 추진되었고, 2016년 세인트헬레나 공항이 완공되었다. 애틀란틱 스타 항공에서 운항하는 계절전세편으로 루턴 공항(영국 런던), 컴에어에서 운항하는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 어센션섬에 취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항의 위치상 윈드시어가 워낙 거세서 한동안 연기되었다. 이후 2017년 11월부터 에어링크에서 요하네스버그 행 취항이 확정되었고, 기존 배편으로 5일씩 걸리던 운행시간이 비행기를 통해 6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정기 여객선은 2018년 2월을 끝으로 운항을 중단했고, 세인트헬레나섬과 어센션섬에 연 4회 기항하는 화물선으로 대체되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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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세인트헬레나〉, 《위키백과》
- 〈세인트헬레나〉, 《나무위키》
- 〈세인트헬레나〉, 《요다위키》
- 〈세인트헬레나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