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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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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名, Name)은 인간대상을 다른 것과 구별하고자 사람, 사물, 현상 등에 붙여 대개 한 단어대표하게 하는 말이다.

개념[편집]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즉,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이며 성과 이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성명(姓名) 또는 인명(人名), 본명(本名), 원명(原名)과 연결되며 성은 가계(家系)의 이름이고, 명은 개인의 이름이다. 수수께끼에서는 자기 것인데 남이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쓰임에 따라 평판이나 명예 또는 명성을 뜻하기도 한다. '이름'은 순우리말로 '이름을 짓다'라는 의미인 고어 '잃다'의 명사형에서 나왔다. 또 '잃다'는 같은 뜻의 현대어인 '일컫다'도 '잃-' + 'ᄀᆞᆮ다'의 어원이기도 하다. 특별히 사람의(넓은 의미에서) 이름은 성명(姓名)이라고 하고 법인의 이름은 명칭(名稱)이라고 하며(회사일 경우엔 상호(商號) 혹은 사명(社名)), 법률의 이름은 제명(題名)이라고 한다.

이름은 물건, 사람, 장소, 생각, 개념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이다. 이름은 물건/개념의 집합을 통틀어 나타내거나, 특정한 문맥 안에서 유일하거나 완전히 유일한 하나의 물건/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 1447년에 쓰여진 《용비어천가》에 '일훔'의 형태로 처음 등장한다. 사람이 아닌 생물체에는 보통 포괄적인 이름(예를 들어 개와 같은 종명)을 사용하지만, 애완동물과 같은 경우 아닐 수도 있다. 각각의 개체를 부르기 위해 서로 다른 휘파람을 사용하는 펭귄 같이 인간이 아닌 생물체 사이에 이름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적으로 사용되는 이름, 특히 정해진 기준에 따라 언제나 고유한 이름을 식별자라 한다.[1][2]

이름의 역사[편집]

흔히, 이 세상의 모든 단어들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비로소 단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존재가 이름을 뜻하는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한 사람으로 이름 없는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설령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름이 없는 한 누구도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은 인간생활은 물론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다음 항목들에서는 역사를 통해서 한국인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고 어떻게 발달해왔는가를 구체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 이름[편집]

개인의 출생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언어생활은 이름을 짓는 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우리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서(史書)인 『삼국사기』·『삼국유사』의 이야기가 이름을 풀이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혁거세(赫居世)나 알지(閼智), 그리고 수로(首露)의 전설은 한결같이 이름이 붙은 내력을 말해준다. 흔히 이들 이름에는 박혁거세나 김알지처럼 성씨(姓氏)가 함께 주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후대의 관념일 뿐이다. 박에서 났기 때문에 박(朴)을 성으로 삼았다든지, 금궤에서 났기 때문에 김(金)을 성으로 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성씨에 대한 관념이 정착된 후대의 해석일 뿐이다. 흔히 김알지의 자손으로 알려진 말구(末仇)·아도(阿道)·미사흠(未斯欽)·사다함(斯多含) 등을 그냥 이름만 부를 뿐, 김말구·김아도·김미사흠·김사다함 등으로 부른 예가 없는 것을 보면 고대에는 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씨족이름으로 세습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이름[편집]

이 시대에는 중국문화와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수많은 신라의 유학생들이 당나라에 드나들게 되고, 그들을 통하여 중국의 문물이 그대로 우리 나라에 유입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관명·지명과 함께 사람의 이름도 중국식으로 짓는 것이 점차 보편화되기에 이른다. 중국식의 인명이란 이름의 형태뿐 아니라 성씨를 함께 적는 것을 뜻하는데, 성씨 한자에 이름 두자를 적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문화의 교류가 아무리 활발하였다 하더라도 일부 지배층에 한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성은 없었고 이름 역시 고유어식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 지배계급 사람들의 이름이 전시대에 비하여 얼마나 달라졌는가는 다음의 인명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곧, 김춘추(金春秋)·김유신(金庾信)·김인문(金仁門)·김대성(金大城)·장궁복(張弓福)·최승우(崔承祐)·최치원(崔致遠)·김품석(金品釋) 등이 그 예인데, 오늘날의 인명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으로 역사에 널리 알려진 사람 가운데도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쓴 사람이 적지 않고, 그것도 순 우리말로 된 것도 있다.

고려시대의 이름[편집]

통일신라시대부터 일부 계층에서 중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적기 시작한 것이 고려시대에 오면 더욱 정착되기에 이른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공신들이나 투항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성을 내려주기에 이르고, 제4대 광종 때에 와서 중국식 과거를 보게 함에 따라 한문화는 한층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고려 초기부터는 귀족이나 관료 계급은 성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나, 중기인 1055년(문종 9)에 성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과거에 급제할 자격을 주지 아니하는 법령을 내린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지식층 가운데 성이 없거나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으로 미루어 일반백성들은 여전히 고유어식으로 이름을 짓고 대부분은 성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없는 상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이름[편집]

조선은 건국과 함께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정책을 씀에 따라 문물제도 전반을 중국식으로 확립하게 된다. 따라서, 성씨는 물론 이름을 짓는 방법도 한자식으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도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일이요, 대부분의 상민들의 이름이나, 특히 노비의 이름들은 철저하게 고유어식으로 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조선 초기의 노비문서나 불경 시주질(施主秩) 등에 나타난 이름들이 거의 모두가 고유어식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인명을 담고 있는 자료들은 수없이 많이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직후(1449)에 김수온(金守溫)이 엮은 내불당낙성기(內佛堂落成記)인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가 최초의 자료이다. 여기에는 총 47명의 인명이 한자로 된 성씨와 함께 쓰여져 있는데, 특히 고유어 인명을 훈민정음으로 적고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름들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일제시대 이후의 이름[편집]

국민들이 누구나 성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1910년 5월에 완성된 이른바 민적부(民籍簿) 작성 때만 하여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성씨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의 1.3배에 이르렀다고 하니,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우리의 성명 제도가 얼마나 소홀하였는지 알 수 있다. 성씨와 함께 한자식으로 된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신분을 보장해 줄 정도로 성씨와 관명은 소중하고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 노예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관명(冠名)이 없었기 때문에 민적정리를 하는 호적계원의 붓끝에서 즉흥적인 이름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시대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제적부(除籍簿)를 중심으로 고유어식 인명의 실상을 살펴보면, 약 1만 6000여 명의 인명 중에서 고유어식으로 된 것이 408명인데, 그 가운데서 남자의 이름이 67명이고 나머지 341명이 여자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남자의 경우는 거의 모두가 천민이지만, 여자 가운데는 노비나 천민이 아닌 경우에도 고유어식 아명을 그대로 적었기 때문에 수가 많게 된 것이다.[3]

이름의 구성[편집]

사람의 경우 좁게는 성씨와 이름을 떼어서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성씨를 포함한 이름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별명이나 가명 등 본래 이름 대신 쓰이는 명칭 또한 이름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브라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말레이인(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랍인들이나 미얀마처럼 성 없이 이름만 쓰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국가처럼 별의 별 성씨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성씨를 이름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며 그냥 성씨만 불러서 호칭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한국은 성과 이름을 붙여서 다 부르거나, 아니면 이름만 부르거나, 성씨+직함/직책으로 부른다. 김 과장, 이 부장, 박 교수, 최 교수, 채 선생, 박 회장 등으로 말이다. 대개 발음 체계와 언어 특성이 다른 탓에 사용하는 이름도 다르지만 가끔 같은(비슷한) 경우도 생긴다. 리나, 유리, 유진, 유미, 미나, 마리, 수지, 하나, 린 등등 대체로 2음절 이하로 짧고, 받침이 없거나 ㄴ 정도인 경우로 특정된다.

한국 등의 국가에서는 사람의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구분된다.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를 수도 있으며, 일본처럼 성의 종류가 다양한 국가에서는 성으로 사람을 부르기도 한다. 이름으로 사람을 부를 때에는 성을 제외하고 "~아(~야)"를 뒤에 붙여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친한 사람끼리는 "길동아"라고 부를 수 있다. "홍길동!"과 같이 성과 이름을 같이 말하여 사람을 부를 수도 있지만 이 때는 "아(야)"를 뒤에 붙이지 않는다. 또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높이어 휘자(諱字)라 하며(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이름 앞에 '고(故)'를 붙여 말한다. 예)고 홍길동, 이름을 글자로 쓸 때에는 붉은 색으로 쓰기도 한다.), 산 사람의 이름을 높이어 함자(銜字), 통칭 성함(姓銜)이라고 한다. 한국에선 성씨를 포함하여 총 7자까지 지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사람의 이름은 John Fitzgerald Kennedy처럼 대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이름(First name)은 세례명(Christian name), 주어진 이름(Given name)이라고도 한다.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은 이니셜(Initial)로만 표기할 때도 있다. 마지막 이름(Last name)은 가족 이름(Family name), 성(Surnam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름 체계는 오스트레일리아나 남아메리카 등 유럽의 식민지였던 지역에까지 전파되었고, 표기할 때에는 보통 First name과 Middle name을 줄여 J.F. Kennedy와 같이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성씨 한 글자+이름 두 글자, 총 세 글자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보통 한자 기반으로 이름을 만드는데, 요즘에는 출생신고서에서 관공서에다 이름에 대응되는 한자를 등록만 할 뿐이며, 실생활에서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서 사용, 혹은 공문서 작성 시 한자 표기를 요구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졌다. 한글로 적는 이름만 통용될 뿐이다. 그에 따라 1990년대 출생 이후부터는 아예 한자를 따로 등록하지 않고, 한글 이름으로만 작명하는 경우도 꽤 생기고 있다. 혹시라도 한자 이름으로 된 명함, 축의금/조의금 봉투를 받는다면 당사자 본인에게 직접 어떻게 읽는지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름에서 한자와 발음의 관계가 자유로워 한자만 보면 도통 발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명함에는 알파벳이 되었든 가나가 되었든 발음표기를 병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한자표기만 있을 경우엔 그 사람에게 직접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1][2]

관련 기사[편집]

  •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옥수수' 등 식품 이름에 마약과 같은 유해약물을 붙일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중독될 만큼 맛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수식어이지만, 최근 마약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 같은 표현이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대중들에게 자칫 마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은희 국민의 힘 의원은 2022년 8월 23일 식품 등의 명칭에 유해 약물이나 유해물건에 대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식품 등의 표시ㆍ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식품 이름에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음란한 표현을 사용해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마약 역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식품 이름에 마약과 같은 유해 약물을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권 의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마약 유통량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 양은 1295.7㎏로 2020년(320.9㎏)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2017년(154.6㎏)과 비교하면 8배에 달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용되던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마약 범죄는 2030 젊은 세대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20대와 30대 마약사범 비중은 2018년 40.6% 수준에서 2021년에는 56.8%로 늘었다. 2022년 8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SNS와 다크웹에서 대마를 유통·투약한 일당 178명을 검거했는데, 이 가운데 166명이 2030세대이기도 했다. 마약 범죄자 10명 중 9명이 청년들이었던 셈이다. 마약 판매자들은 특수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에 대마 판매 광고글을 게시해 구매자를 모집했다. 다크웹 운영자들은 판매책들로부터 일정액의 보증금을 받고 사이트에 판매 광고글을 올릴 수 있게끔 했다.[4]
  • 대한민국 남부 지방을 휩쓸고 2022년 9월 6일 오후 소멸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이름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이 태풍은 2023년 2월 중국에서 열릴 태풍위원회 총회를 통해 제명될 예정이다. 힌남노를 대체할 태풍명은 2024년에 공개된다. 2022년 9월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기상청은 최소 10명의 사망자와 1000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낸 힌남노에 대한 제명안을 태풍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태풍 이름은 태풍위원회를 통해 14개 회원국이 공동 결정한다. 태풍위원회는 유엔(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와 세계기상기구(WMO)가 공동 주관한다. 태풍 이름은 태풍 영향으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 국가의 신청을 받아 교체한다. 기상청은 2023년 2월 말 중국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인 태풍위원회 총회 준비 과정에서 힌남노 제명 안건을 검토해 총회 대표단에 상정할 방침이다. 태풍위원회 대표단은 기상청(기상분과)과 환경부 한강홍수통제소(수문분과)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연구원(방재분과)이 참여 중이다. 기상청이 분과 간 토의에 제명안을 올리면 태풍위 대표단은 주요 안건부터 총회에 상정하게 된다. 태풍위원회 총회에 안건이 상정되면 회원국의 투표 등을 통해 제명이 확정된다. 이후 이름 제출국은 다음 총회 때까지 새 이름을 준비해 제출해야 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그간 태풍 이름 제명안이 반려되거나 반대된 적은 없다. 힌남노를 대체할 이름은 2024년까지 라오스가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힌남노는 지난 2016년 필리핀을 휩쓴 녹텐을 대체해 2018년쯤 태풍으로 명명됐다. 그러나 올해 대한민국에 큰 피해를 남기면서 '제명 태풍'에 이름을 올리게 될 전망이다. 또한 한국을 휩쓴 태풍 중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가 제명된 뒤 각각 무지개, 누리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무지개는 2015년 다시 제명돼 수리개로 바뀌었다. 한편 1959년을 휩쓴 '최악의 태풍' 사라는 영구 제명 대상이 아니었다. 태풍 이름 제명 제도가 2001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출한 이름이 다른 나라의 요청으로 제명된 사례도 있다. 2003년 수달과 2005년 나비, 2020년 고니는 각각 미크로네시아, 일본, 필리핀에 피해를 준 뒤 각각 미리내, 독수리, 개나리로 이름을 바꿨다.[5]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이름〉, 《위키백과》
  2. 2.0 2.1 이름〉, 《나무위키》
  3. 이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맹진규 기자, 〈음식 이름에 버젓이…마약김밥·떡볶이 금지법 발의 입법 레이더〉, 《한경닷컴》, 2022-09-07
  5. 황덕현 기자, 〈최고 10명 목숨 앗아간 '힌남노' 이름 지운다…내년 2월 제명〉, 《뉴스1코리아》, 2022-09-0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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