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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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이탈리아어: Torino, 피에몬테어: Turin, 라틴어: Taurinum, 프랑스어: Turin, 문화어: 또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산업도시로 피에몬테주의 주도이자 토리노 광역시의 시청 소재지이다. 인구는 약 84만 명이고 대도시권 인구는 170만 명이다. 투린(Turin)이라고도 부르며 2006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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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행정 단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도시
- 면적: 130.17 km²
- 지역어: 이탈리아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www.comune.torino.it/
토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산맥 남쪽 기슭 포강 서쪽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교통의 요지이다. 1563년부터 사보이 공작령으로 당시 사보이 왕가가 통치하던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였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통일 이탈리아의 첫 수도이기도 했다. 피아트, 란치아, 알파로메오 등 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로 밀라노와 로마에 이어서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지역으로 ‘이탈리아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며,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발상지로서 ‘이탈리아 자유의 요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계획도시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포강을 따라 직사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가 도로는 반듯하고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북쪽의 토리노 왕궁(Palazzo Reale di Torino)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9월 20일가(Via XX Settembre)를 따라 중앙역까지 이르는 지역에 대부분의 관광지가 위치하고 있다. 토리노에는 2개의 지하철이 있지만 역사지구 외곽에 있어 관광 목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따른다.[2]
지리 및 기후[편집]
토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다. 서쪽과 북쪽 전선은 알프스산맥, 동쪽 전선은 몬페라토 언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높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4개의 주요 강이 도시를 통과한다. 포강과 그 지류 중 3개, 도라 리파리아강, 스투라디란초강(Stura di Lanzo)과 산고네강(Sangone)이 있다. 토리노의 행정구역은 치르코츠리치오니라고 불리는 10개의 자치구로 나뉘어 있다.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산맥 기슭에 위치한 토리노는 중위도, 사계절이 습한 아열대 기후(쾨펜: Cfa)가 특징이며, 토리노의 평균 연간 강우량은 낮지만, 프랑스 알프스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겨울은 적당히 춥고, 건조하며, 여름은 언덕에는 온화하지만, 평야는 매우 덥다. 비는 주로 봄과 가을에 내린다. 가장 더운 달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가 자주 오지는 않지만, 더 강하게 내려 뇌우가 자주 발생한다. 겨울과 가을에 때때로 매우 짙은 안개 둑이 평야에 형성되지만, 수사 계곡의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눈이 많이 쌓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겨울 동안 눈이 내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알프스의 동쪽에 위치하여 푄 바람 효과로 인해 서쪽보다 날씨가 더 건조하다. 지금까지 기록된 최고 온도는 37.1°C이고, 최저 온도는 -21.8°C이다.
역사[편집]
선주민은 켈트-리구리아족 일파인 타우로족(Taurini)이다. 이들은 유목민으로 2300년 전 포강 상류에 타우리시아(Taurisia)라고 하는 정착촌을 형성해 주변 인스브리아인(Insbri)들과 경쟁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타우로족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소를 의미하는 타우루스(Taur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토리노의 상징 동물이 소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토리노는 BC 218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침입하기 위한 노선에 있었다. 따라서 타우리시아는 한니발과 인수브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다. BC 28년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정복되어 도시는 격자 형태의 전형적인 군사도시로서 건설되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동고트족의 지배를 받다가 잠시 동로마제국에 의해 수복되었으나, 이후 다시 랑고바르도족에 의해 정복되어 랑고바르드왕국에 편입되었다. 이후 773년 랑고바르드왕국을 무너뜨린 샤를마뉴에 의해 프랑크 왕국 영토로 속하였다. 774년 샤를마뉴에 의해 건설된 이탈리아왕국(Regno d’Italia) 내에서 토리노는 940년 행정구역상 변경백(march of Turin)으로 분봉되어 행정적, 군사적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토리노 변경백은 이후 혼인을 통해서 프랑스 부르군트왕국의 계파인 사보이가와 합병되게 되었다. 11세기 초 토리노 변경백이었던 아르두이닉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아델라이데 공주가 사보이 백작 가문의 훔버트 비안코마노의 아들인 오토네와 결혼하면서 사보이 가문이 자연스럽게 피에몬테 지역, 즉 토리노를 계승하였다. 141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그문트는 아델라이데와 오토네의 후손인 피에몬테의 아마데오 8세 백작에게 공작 작위를 수여하였다. 1500년 초에 프랑스에 복속 당했다가 1563년에 다시 사보이 공작령의 중심지가 되어 사보이가가 통치하던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세기 초에는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참가해 승리하였고 사보이 공작은 1713년 왕의 칭호를 획득하였다.
1802년 사르데냐 왕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국에 병합되었다가 1814년 왕정이 복고되었다. 이후 왕국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남긴 자유와 민족주의 열풍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르데냐 왕국은 오스트리아와 맞서 싸우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의 세력관계를 이용해 1861년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1865년까지 수도를 토리노에 두었다. 이후 피렌체로 한차례 수도를 옮겼다가 로마를 수복한 이후 로마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는 노동자 파업으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파시스트 정권은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를 투옥하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수산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연합군의 극심한 폭격을 받았다가 전후 재건하였다. 전후 빠르게 재건되었으며 아넬리 가문의 피아트를 필두로 한 자동차 산업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탈리아 경제 기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 이탈리아 남부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었으며 당시 사람들은 '나폴리와 팔레르모의 뒤를 잇는 이탈리아 제3의 남부 도시이다.'라고 농담삼아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1960년대에 토리노 인구는 100만 명에 달하였고 놀라운 성장으로 인하여 '이탈리아 자동차의 수도'와 '이탈리아의 디트로이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1970년대와 80년대에 발생한 석유파동과 자동차 산업의 위기로 치명타를 맞았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30년 만에 전체 인구의 1/4를 잃었다. 2001년 최저점을 찍은 이후 인구는 다시 증가세에 있다.[3]
경제[편집]
이탈리아의 주요 산업 중심지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밀라노 다음가는 경제 중심지이다. 토리노는 서비스 기반 경제에서 산업 기반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20세기 초 포드주의 도시로 발전했다. 많은 포드주의 경제의 맥락에서 토리노의 경제는 자동차와 항공우주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1973년 석유 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이 전반적으로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여전히 자동차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자동차 산업은 도시에서 가장 큰 고용주였으며, 토리노의 거의 모든 수출품은 공산품이다. 이 도시는 피아트의 본부 역할을 한다. 피아트는 그 이후 모회사인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현재 스텔란티스)에 흡수되어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인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다. 토리노에는 여전히 상당한 규모의 피아트 공장이 있다.
1980년대부터 토리노는 경제를 다각화하고 서비스 경제로 다시 전환하고 있다. 기술 및 혁신 산업은 정보 기술 부문의 혁신적인 신생기업과 기업 수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모든 도시의 유럽 특허청에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한 토리노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08년에 이 도시는 680억 달러의 GDP를 창출했으며, PricewaterhouseCoopers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에서 78번째로 부유한 도시, 유럽에서 16위를 차지했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GDP의 8%를 차지한다. 2010년 세계화 및 세계 도시 연구 네트워크에 의해 감마 수준의 도시로 선정되었다.
토리노에서 운영되는 다른 회사는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이베코,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스파르코, 이탈디자인 주지아로, 뉴홀랜드, 코마우, 마그네티 마렐리, 다나 그라차노, 기아(Ghia), 피오라반티(자동차), Rai (국내 방송사)이다. Intermobiliare, 인테사 산파올로, Reale Mutua(금융), Invicta, 카파, 수페르가(패션), 페레로, 라바짜, 마르티니&로시 (식음료), 알피투어(환대 및 관광업), TILab (ex- CSELT) 등의 회사가 있다.
이 도시는 또한 항공우주 산업인 알레니아 아에로나우티카,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및 아비오(Avio)로 잘 알려져 있다. 국제 우주 정거장 모듈인 하모니, 콜럼버스, 트란퀼리티, 쿠폴라 및 모든 MPLM은 토리노에서 생산되었다. 아리안 5 이후의 미래 유럽 발사기 프로젝트는 EADS의 자회사(70%)와 레오나르도의 항공기 부문 (30%)인 새로운 NGL 회사가 토리노에서 관리할 것이다.
교통[편집]
주요 철도역으로는 토리노 포르타 누오바(Torino Porta Nuova)와 토리노 포르타 수사(Torino Porta Susa)가 있다. 포르타 누오바역은 터미널식이고, 밀라노 방향에서 말 그대로 U자 모양으로 선로가 들어오기 때문에 선로 배치를 바꾸어 장기적으로 포르타 수사를 중추역으로 바꿀 예정이다.
토리노는 자체 공항(Aeroporto di Torino)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국내및 유럽 각국을 향하는 항공노선을 이용할수 있다. 시내와 연결되는 도시철도 노선이 있으므로 접근성도 좋다.
지하철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과 함께 만들어졌는데 쾌적하다는 반응이 많다. 트램, 버스, 지하철 티켓은 지하철 역 자동판매기나 'Tabacchi'라 불리는 매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2010년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ToBike가 운영되었다. 중앙 지역에는 트램이 운행되며, 3,4,9호선은 경전철이다.[4]
관광[편집]
토리노에서는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아르누보 등 여러 양식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약 415년경부터 주교단이 주재했고 1510년부터는 대주교의 관할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관련된 건축물이 많고, 수세기동안 공작 가문과 왕실의 거처로 사용된 궁전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산조반니세례당과 콘솔라타 지성소(Santuario della Consolata) 등 가톨릭 예배당이 많이 남아 있는데, 콘솔라타 지성소에서는 예수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사보이가의 저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어진 토리노 왕궁(Palazzo Reale)은 17세기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마리 왕비를 위해 건설된 것이었다. 1680년 건설된 카리냐노궁은 1820년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며, 한때 사르데냐 하원의회와 이탈리아 초대 의회의 회합장소로 쓰이다가, 지금은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통일운동) 국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카리냐노 왕립궁전에 있는 무기고에는 왕실 갑옷 등 유럽 최고 수준의 무기들이 소장되어 있다.
토리노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건축물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높이 167.5m로 당시 유럽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었다. 십자가나 성모마리아 등의 기독교적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건축물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각종 세계대회의 로고로 사용됐으며, 현재 국립 영화박물관이 있고 전망대로도 유명하다. 또한 토리노에는 니체가 지내던 하숙집 건물도 보존되어 있는데, 시에서는 니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석을 새겨두었다.
산조반니 대성당[편집]
15세기에 건축된 토리노의 대표적인 성당으로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성의(聖衣)가 보관되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가로 4.41m, 세로 1.13m 크기의 이 천에는 숨진 예수의 모습과 혈흔이 남아있다고 알려진다. 1354년 기사 조프루아 드 샤르네이에 의해 이 수의가 처음 발견되었으며, 처음에는 샹베리의 사보이 왕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1532년의 화재로 인해 손상되었다. 그 후 1578년 사보이 왕가의 새로운 수도인 토리노로 옮겨져 산조반니세례당 왕실 예배당에서 보관하였다. 성의는 처음에는 1세기에 한두 번밖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점점 더 자주 공개되고 있으며 성의의 진위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몰레 안토넬리아나[편집]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토리노를 상징하는 높이 167.5미터의 건축물이다. 돔 위로 송곳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높이 솟아 있다. 몰레는 ‘웅장한 건축물’이라는 뜻이며, 안토넬리아나는 설계자 알레산드로 안토넬리(Alessandro Antonelli)의 이름에서 따왔다. 1861년 토리노가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후인 1863년 유대교의 회당을 목적으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알레산드로 안토넬리와 유대교인들과의 의견 충돌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1877년 토리노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정된 뒤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1888년 안토넬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인 코스탄초(Costanzo)가 이어서 완공하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건축물과 달리 십자가나 성모마리아, 성인들의 석상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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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토리노〉, 《위키백과》
- 〈토리노〉, 《나무위키》
- 〈토리노〉, 《요다위키》
- 〈토리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토리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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