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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섬(포르투갈어: Ilha do Sal→소금섬)은 카보베르데 바를라벤투 제도에 위치한 섬으로 길이는 29.7km, 넓이는 11.8km, 면적은 219.84km², 인구는 약 4만 명이다. 살(Sal)은 스페인어로 소금(salt)을 의미한다.[1]
개요[편집]
살섬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640Km 서쪽 북대서양에 위치하는 카보베르데령의 바를라벤투 제도 동북부에 위치한 섬으로 카보베르데 섬에서 가장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섬에는 해발 405m의 몬트그란드산(Monte Grande)이 있고 해발 92m의 세라 네그라(Serra Negra)라는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섬은 전반적으로 평평하고 섬의 중심은 달 표면과 비슷한 모양을 한 불모지로 되어 있다. 섬은 카보베르데(Cape Verde)에서 가장 오래된 섬으로 약 5천 만년 전에 화산활동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섬은 1460년 소금을 수집하던 라나(Llana)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다. 살섬의 주요 도시는 빌라 도스 에스파르고스(Vila dos Espargos)로 약 8천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아밀카르 카브랄 국제공항(Amilcar Cabral International Airport)이 있다. 그 밖에 가장 오래되고 최초로 소금을 생산하였던 페드라 데 루메(Pedra de Lume)과 어촌인 팔메이라(Palmeira), 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장이 있는 테라 보아(Terra Boa), 관광 리조트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주택 구입이 증가하면서 최근에 성장한 무르데이라(Murdeira), 관광업의 중심지인 산타 마리아(Santa Maria) 등의 도시가 있다. 섬은 과거 소금 생산이 활발하던 시기에 급격히 성장하였고 후에 어업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관광업이 경제의 중심이다. 산타 마리아(Santa Maria)에 있는 해변 리조트가 관광업의 중심으로 주변의 섬을 포함하여 관광업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섬은 일년 내내 맑은 날씨를 보이고 북서풍이 부는 지역으로 다양한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독특한 자연 환경이 관광업에 있어 잠재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카보 베르데(Cape Verde) 정부가 이 섬을 관광의 메카로 육성하고 있다.[2]
지리[편집]
카보베르데 동부에 위치한 3개 섬 가운데 하나이며 평지가 많고 모래로 뒤덮여 있는 섬 가운데 하나이다. 하얀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1년 중 350일 정도는 맑은 날씨를 띠고 있고 주로 북동풍이 분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몬트그란드산(Monte Grande)으로서 높이는 406m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살시에 속하며 섬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이스파르구스이다.
평탄한 지형을 가진 이점 덕분에 카보보르데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공항이자 여러 국제선이 운행하는 아밀카르 카브랄 국제공항이 섬 중앙에 위치한 최대 도시인 이스파르구스 인근에 위치해 있다.[3]
역사[편집]
살섬은 1460년 12월 3일 유럽인들에게 발견되었고 라나(Llana, 평평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름은 두 개의 큰 소금 연못이 발견되었을 때 현재의 살(Sal)로 바뀌었다. 발견 후 처음 3세기 동안 이 섬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1720년에는 현재의 팔메이라(Palmeira) 근처에 작은 어촌이 있었다. 이것은 18세기 말에 페드라 드 루메(Pedra de Lume)를 시작으로 소금 산업이 발달하면서 바뀌었다. 산타 마리아(Santa Maria)는 1830년 마누엘 안토니우 마르틴스(Manuel António Martins)에 의해 섬의 남쪽에 세워졌다. 이 기간 동안 소금 산업은 번성하여 초기에 3만 톤의 소금이 수출되었다. 소금의 대부분은 1887년 국유화되기 전까지 브라질로 수출되었고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소금 투자자들은 1984년까지 소금 생산을 재개했다.
1939년 이탈리아는 유럽과 남미에서 오는 항공편을 받기 위해 공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건설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중단되었다가 중단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이탈리아인들로부터 공항을 사들여 1949년에 완공했다. 공항 북동쪽의 상니콜라우섬에서 온 근로자들은 현재 에스파르고스(Espargos)의 일부인 프레귀사라는 이름의 마을에 정착했다. 2015년 늦여름 허리케인 프레드가 살섬을 강타해 가옥과 관광시설, 선박이 파손됐다.[4]
바를라벤투제도[편집]
바를라벤투제도(영어: Barlavento Islands, 포르투갈어: Barlavento)는 아프리카 서쪽 섬나라 카보베르데 북쪽에 위치한 군도이다. 바를라벤투제도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서 640Km 거리의 북대서양에 있는 카보베르데령의 제도이다. 제도의 섬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서쪽에 있는 산투안탕섬(Santo Antão), 상비센트섬(São Vicente), 상니콜라우섬São Nicolau), 산타루지아섬(Santa Luzia), 브랑쿠섬(Branco), 하주섬(Raso)은 바위가 많고 화산 활동이 활발하며 농업이 발달했다. 동쪽에 있는 살섬(Sal)과 보아비스타섬(Boa Vista)은 평지가 많고 사막 기후를 띠고 있다. 그 밖에 살헤이섬(Sal-Rei), 발루아르트섬(Baluarte), 파사루스섬(Pássaros), 하부드중쿠섬(Rabo de Junco)과 같은 작은 섬들이 있다. 과거에는 소금 생산이 이 지역 경제의 기반이었지만 현재는 관광업 중심으로 전환하였다.[5]
아밀카르 카브랄 국제공항[편집]
아밀카르 카브랄 국제공항(Amílcar Cabral International Airport)은 카보베르데 살섬의 중부 에스파르고스(Espargos)에 위치한다. 살 국제공항(Sal International Airport)으로도 불린다. 카보베르데에서 가장 수송량이 많은 공항이며 카보베르데의 공항 중 최장 길이의 활주로를 갖추고 있다. 명칭은 카보베르데의 정치가·작가·농업기술자인 아밀카르 로페스 카브랄(Amílcar Lopes Cabral, 1924-1973)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1939년 이탈리아 로마와 남미 대륙을 잇는 항공편의 연료 공급지로 개항했으며, 공항 코드는 SID(IATA), GVAC(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3,272m×45m, 1,500m×45m 크기로 총 2개소를 운영한다. 전세기 항공사인 카보베르데익스프레스(Cabo Verde Express)와 TACV카보베르데항공(TACV Cabo Verde Airlines)이 허브 공항으로 삼고 있으며 네오스항공(Neos)·탑포르투갈(TAP Portugal)·빈터카나리아(Binter Canarias)·모로코항공(Royal Air Maroc)·부엘링항공(Vueling Airlines) 등 총 20여개의 취항 항공사가 있다.[6]
카보베르데[편집]
카보베르데(포르투갈어: Cabo Verde, 영어: Cape Verde)는 아프리카 대륙 서안의 베르데곶(串)에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는 국가이다. 정식 국명은 카보베르데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de Cabo Verde, 영어: Republic of Cape Verde)이다. 상티아구섬(Santiago)·산투안탕섬(Santo Antao Island) 등 1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를라벤투제도(Barlaventos)와 소타벤투제도(Sotaventos)로 불리는 두 군도(群島)로 나누어진다. 그 중 5개 섬은 무인도이다. 몇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침식에 의하여 생성된 섬으로 암석산지이고, 포구섬의 피코화산은 해발고도 2,829m로 최고봉을 이룬다. 대부분의 섬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 기후가 고온건조하며, 5∼10월의 여름철 우기(雨期)를 제외하면 비가 적다. 겨울에는 무역풍이 장기간 분다. 연평균강수량은 해안에서 200mm 내외, 산지에서 1,000mm 정도이다. 한발에 기인하는 물 부족상태가 잦으며, 10개의 섬 중에서 4개 섬만 농업이 가능하다. 연평균기온은 24℃인데다가 화산재가 표층(表層)을 덮고 있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북대서양에 있는 카보베르데는 제도로 구성된 섬나라이다.
15세기에 포르투갈이 발견하기 전까지 무인도였다. 1456년 포르투갈인(人) 항해사에 의하여 발견된 카보베르데는 1495년까지 포르투갈 국왕의 개인 소유지였고, 그 후 식민지화되었다. 당시 노예무역의 중간기지이자 대서양 횡단 포경선 및 화물선 중간 기착 역할을 하였다. 1963년 포르투갈의 해외령이 된 후 주민을 대표하는 PAIGC(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74년 12월 포르투갈과 PAIGC로 구성된 잠정정권이 생겼다. 기니비사우와 카보베르데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독립을 달성한 주력은 모두 PAIGC였기 때문에 PAIGC는 양국 상호 대표를 두어 경제·문화·경찰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양국 활동의 조정을 도모하였다. 또 양국은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평의회를 설치하여 양국의 통합문제를 검토하였지만 인종, 종교면에서의 차이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또한 양국이 각각 국제연합(UN)에 가맹한 사정도 있어 카보베르데 측은 정세의 추이를 두고 관망하였다. 한편, 기니비사우 측에서는 카브랄 국가위원회 의장이 독립한 후 카보베르데와의 국가통합문제를 추진해 왔으나 두 나라 사이의 인종·종교 등이 서로 상이하여 통합문제는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위원회는 1980년 11월 카보베르데와의 국가 통합을 추진하는 요지의 조항을 내건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이 통합에 반대하는 군부(軍部)는 쿠데타를 일으켜 비에이라가 정권을 장악, 혁명평의회를 구성하였다. 카보베르데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고, 초대 대통령은 아리스티 데 페레이라가 되었다. 1981년 카보베르데는 PAIGC에서 탈퇴하고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PAICV)을 결성했다. 같은 해 헌법에 따라 기니비사우와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전체 주민 구성은 크레올 71%, 아프리카인 28%, 유럽인 1%이다. 사실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카보베르데인 중 1/3만이 카보베르데에 살고 있으며, 50만명의 카보베르데인이 미국, 주로 뉴잉글랜드 지방에 살고 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탈리아, 세네갈에도 큰 규모의 카보베르데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대부분의 카보베르데인들은 크리오울로(Crioulo)를 사용한다. 크리오울로(Crioulo)는 아프리카어와 다른 유럽의 언어와의 접촉을 통하여 변형된 고풍스러운 포르투갈어를 말한다. 카보베르데는 크레올로 문학과 음악에서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7][8]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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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살섬〉, 《위키백과》
- 〈바를라벤투 제도〉, 《위키백과》
- 〈카보베르데〉, 《위키백과》
- 〈카보베르데〉, 《나무위키》
- "Sal, Cape Verde", Wikipedia
- 〈살, 카보베르데〉, 《요다위키》
- 〈아밀카르 카브랄 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살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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