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란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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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틀란드섬(스웨덴어: Gotland)은 스웨덴의 섬으로 발트해에 있는 섬 중 가장 크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고틀란드주에 속한다. 빙하기에 이루어진 대지성(臺地性)의 지형으로 지질시대의 고틀란드기(紀)라는 이름이 이 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면적은 3,140km²로 스웨덴의 전체 지역의 10% 이하를 구성한다.[1]
개요
고틀란드섬은 발트해(海) 중앙부에 있는 섬으로 주도(主都)는 비스뷔이다. 면적 3,140km², 인구 약 5만 6천, 부근의 프오뢰섬, 고트스카산덴섬, 스토라카를르쇠섬, 릴라섬 등과 함께 고틀란드주(州)를 이룬다. 주민은 주요 도시 비스뷔에 살고 있는 22,600명과 주변 도서를 포함하면 57,317명 (2006)이다. 연안은 해식애로 싸여 있어 굴곡이 심하다. 기후는 위도(56°54'∼57°56'N)에 비하여 따뜻하며, 토지도 비교적 비옥하다. 따라서 쌀, 보리, 귀리, 사탕무 등의 재배와 목양(牧羊)이 활발하나 재원(財源)은 석회암, 대리석의 석재와 석회암을 원료로 한 시멘트가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어업도 활발하다. 섬 안에서는 석기시대 이후의 많은 유적을 볼 수 있으며, 특이한 풍속이 남아 있고, 해안풍경이 아름다워 관광사업도 주요 수입원이다.[2]
고틀란드는 발트해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이 상업이 발달했으며, 비스뷔는 한자동맹 소속 도시로 부흥했다. 하지만 14세기 말 발트해에 창궐한 해적들은 비스뷔를 점령하기에 이르렀고, 해적들이 소탕된 이후로도 비스뷔의 상업은 경쟁력을 잃어 다시 부흥하지 못했다. 비스뷔에는 13세기~15세기에 걸쳐 건설 및 증축된 중세 성벽과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한자동맹시절의 시내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1984년부터 매년 8월 1주일동안 중세테마의 축제가 비스뷔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중세시대의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장관을 보여주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섬에 수입의 주요 근원은 관광, 농업과 지역에서 채집된 석회암으로 콘크리트 생산이다.[3]
역사
유적에 의해서 이미 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 발견된 로마 은화 약 7,000개 중 5,000개가 이곳에서 발굴되었고, 지금도 가끔 발굴되고 있다. 바이킹 시대에는 비잔틴 ·이슬람 제국과의 통상으로 번영하였으며, 러시아의 노브고로트에 통상관(通商館)을 경영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12세기에는 독일인이 정착하여, 비스뷔는 한자(Hansa)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1280년에는 스웨덴왕 마구누스 1세가 정복하였고 1362년에는 덴마크가 정복하였으며, 1370년에 한자동맹에게 다시 반환되는 등 여러 번의 변천을 거쳐, 1645년 또다시 스웨덴이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행정
전통적인 스웨덴의 지방은 행정적이거나 정치적인 단위가 아니라, 역사적이자 문화적 단위이다. 그러나 고틀란드는 섬이어서, 스웨덴의 주(län), 스웨덴의 지방 자치체(kommun)와 동일한 지방이다. 게다가, 비스뷔 교구 구역도 이 지방과 일치한다.
군사
고틀란드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섬이다. 스톡홀름 남쪽 무스쾨 섬에 위치한 지하 해군기지 그리고 수상함대가 집중된 칼스크로나 해군기지와 함께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의 활동을 막아서는 최전방이다. 냉전 시절 이래로 비스뷔에는 고틀란드 기보여단과 FH77 155mm 견인곡사포로 무장한 고틀란드 포병연대를 중심으로 한 육군 병력이 상주했다. 한편 중서부의 토프타 지역 모래톱에는 거대한 포격훈련장이 존재한다. 포뢰순 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북부에는 스웨덴 해군 소속의 작은 해군 전진 기지와 스웨덴 해병대의 기지가 있다. 냉전 후 2005년에 군이 잠시 철수했으나, 최근 러시아의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스웨덴군이 다시 돌아왔다. 제18 전투그룹으로 불리는 해당 부대는 Strv 122 전차 11대로 무장한 전차 중대와 기보 중대, 본부중대와 지원 중대로 구성된다. 그러나 주민들은 군이 너무 약하다며 섬을 방위하지 못하리라 여겨 불안해한다고. 섬은 제주도보다 큰데 병력은 도합 500명이 안된다.
비스뷔
비스뷔(Visby)는 스웨덴 고틀란드주의 주도이다. 이곳은 잘 보존된 중세도시이며 세계유산으로 지명된 상태이다. 가장 유명한 역사적인 유물은 링무렌(스웨덴어:Ringmuren 영어:The Ring Wall)이라 불리는 3.4 km 길이의 돌벽이며, 도시와 오래된 교회 옛터를 에워싼다. 그 이름 "비스뷔 (Visby)"는 희생적인 장소를 뜻하는 (Vi의 속격 단수) 고대 노르드어 Vis와 "도시"를 뜻하는 by로부터 왔다. 도시의 인구는 22,236명(2005년 기준)이며, 고틀란드주의 주지사 소재지이다. 스웨덴에 있는 다른 마을들과 도시들처럼, 비스뷔는 정치적이거나 행정적인 실체가 아니다. 고틀란드 자치제의 없어서는 안될 부분을 형성하며, 자치제의 소재지이다.[4]
비스뷔의 가장 초기 역사는 불확실하지만 서기 900년경 상품의 중심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선한 물과 천연 항구에 접근 때문에, 일찍히 석기시대에 거주를 한 상태였다. 12세기에 성모 마리아에 봉납하는 비스뷔 대성당이 건설되었다. 1361년,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4세가 덴마크군을 이끌고 침공하면서 비스뷔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많은 시민들이 덴마크군에게 학살당했다. 1398년, 튜튼 기사단에게 정복당했으나 기사단장 울리히 폰 융잉엔(Ulrich von Jungingen 1360~1410)이 마르그레테 1세에게 팔면서 덴마크 영토가 되었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발트해의 사략 해적들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1470년에는 한자동맹으로부터 한자도시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크리스티안 3세가 즉위한 후 덴마크에서 종교개혁이 시행되면서 완전히 몰락했다. 1645년 고틀란드는 덴마크의 300년 지배 이후, 스웨덴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 18세기 중엽 삶의 기준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몇가지 시도가 스웨덴 정부 관리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약간만이 성취되었다. 19세기 초기가 돼서야 비로소 비스뷔는 다시 한번 상업과 항만 산업이 부흥되었다. 동시대인 1808년 고틀란드는 러시아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평화스럽게 2달 뒤에 스웨덴에 반환되었다.[5]
발트해
발트해(영어: Baltic Sea, 독일어: Baltisches Meer, 러시아어: Балтийское море)는 북유럽의 바다로,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카테가트 해협과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해 북해,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다. 백해-발트해 운하를 통해 백해와, 킬운하를 통해 북해와 바로 연결된다. 발트해는 육지에 둘러싸인 염수이다. 입구가 윌란 반도로 막혀 있어 거의 내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석 간만의 차가 거의 없다. 하천으로부터의 풍부한 하천수의 유입과 냉량한 기후로 인한 증발량이 적어 0.6~0.3%의 낮은 염분 함유량을 나타낸다. 발트해는 길이 1600km, 폭 193km, 평균 수심 55m이다. 가장 깊은 곳은 459m(1506 ft)이다. 면적은 약 377,000km², 체적은 약 21,000km³, 둘레는 약 8000km이다. 발트해는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동안 많은 지역이 얼어붙는다. 보트니아 만과 핀란드 만, 리가 만을 포함한 최대 45%의 지역이 겨울에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 북부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1월이 되면 보트니아 만 전체로 퍼진다. 1월 말이 되면 핀란드 만과 리가만도 얼게 된다. 겨울철에 형성된 해빙은 2월 - 3월 까지도 존재한다. 보트니아 만 북부의 경우 얼음의 두께가 70cm이상이 된다. 얼음이 어는 정도는 겨울철 기온에 따라 다르다. 1703년 겨울에는 덴마크 해협까지 얼어붙은 적이 있는가 하면 1708년 겨울에는 보트니아 만과 리가 만 정도만 얼어붙고 다른 지역은 얼지 않기도 하였다. 2007년 겨울에는 3월이 되기 전에 모든 지역의 얼음이 녹았다. 일반적으로 핀란드 만의 경우 4월 말에 얼음이 녹으며 보트니아 만의 경우 늦어도 6월 초에는 얼음이 사라진다.[6]
스웨덴
스웨덴(스웨덴어: Sverige)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반부를 차지하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A.D.10세기에 최초의 통일 왕국이 성립된 이후 1397년부터 126년 간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칼마르(Kalmar) 동맹국을 결성, 주도권 다툼에 나서기도 했고 1849년부터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스웨덴은 북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역사적으로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등 전통적으로 북유럽을 주도하는 국가다. 북유럽과 관련된 분석도 일반적으로 스웨덴을 가장 자세히 하는 편이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바이킹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 유럽에서는 스위스,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와 같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행운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정식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영), Konungariket Sverige(스)]이다. 서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국경선으로 하여 노르웨이와, 북동쪽으로는 보트니아만으로 흘러드는 토르네(Torne) 강을 경계로 핀란드와 접한다. 동쪽으로 보트니아만(灣) 및 발트해(海)를 너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마주하며, 남쪽은 카테가트(Kattegat) 해협과 외레순(Øresund)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한다.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생활·문화 수준이 매우 높으며, 세계의 모범이 되어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행정구역은 21개 주(lan)로 이루어져 있다. 스웨덴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중 기온이 온화하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동일 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여 남부와 중부 지방은 여름에 종종 25 ~ 30°C에 이른다. 북부 지방은 북극 기후의 영향으로 6개월간 영하의 온도가 계속된다.[7]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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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고틀란드섬〉, 《위키백과》
- 〈비스뷔〉, 《위키백과》
- 〈발트해〉, 《위키백과》
- 〈스웨덴〉, 《위키백과》
- 〈고틀란드〉, 《나무위키》
- 〈비스뷔〉, 《나무위키》
- 〈고틀란드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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