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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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시(元山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북) 동해안 영흥만에 있는 시이자 강원도 인민위원회의 소재지이다. 본래 함경남도에 속했으나, 1946년 9월 강원도로 편입되었다. 원산은 1880년 개항하여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1883년 한반도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원산학사가 설립되었다. 이후 원산항을 중심으로 한항구도시로 발전하였고,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어 교통·운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원산은 무역도시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현재는 군항(軍港)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원산항은 국제무역항으로서 1만 톤급 선박 3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하고, 1일 하역능력은 2만 톤에 달한다. 일본 니가타시를 오가는 만경봉호도 원산항에서 출항하였다. 현재의 원산시는 1945년 광복 당시의 원산시를 중심으로 문천군 덕원면과 안변군 서곡면 북부를 합친 지역이다.[1][2]
개요[편집]
- 행정 단위: 북한 강원도 도시
- 면적: 314.4 km²
- 인구: 363,127명 (2008년)
- 지역어: 강원도 방언
남동부는 안변군, 남서부는 법동군, 북서부는 문천시와 접해 있고, 북동부는 동해의 원산만과 면해 있다.
1924년 당시 조사에 따르면 원산 토박이는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외지 출신으로는 함경남도 외에 평안남도, 강원도, 경기도 출신자들이 많았다. 추가령 구조곡이라는 골짜기가 서울과 원산 사이에 있으며, 서울과의 직선거리가 강릉보다 약간 멀고 삼척보다 가까운 정도라 분단 전에는 서울과의 교통이 강릉 이상으로 편리한 곳이었다. 고유 사투리도 다른 동해안권과 달리 성조 억양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광복 당시 종교 상황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강원도 내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개신교 신자도 상대적으로 많았고, 천주교 신자도 많았다. 특히 천주교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베네딕토회 수도원이었던 덕원수도원과 부설 덕원신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학교가 있었는데, 화강암으로 지어진 건물이나 교정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강원도 (북) 도시들과 다르게 원산은 제일 먼저 철도가 뚫리는 등 다른 강원도(북한) 도시들보다 교통의 혜택을 먼저 얻었다. 강릉시 같은 도시는 해안선이 단조로워서 항구가 발달하기 힘들고 험준한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해서 서울로 이동하는 교통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지만, 원산은 항구가 발달하기에 알맞은 지형이었고 서울 방면, 평양 방면 어느쪽으로도 산맥이 끊어져있는 추가령 구조곡을 통과하면 됐기 때문에 강원도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한반도 중심지를 통한 교통이 발달할 수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항구를 이용해 원산항에 물류를 운반하면 평양과 서울에 공급이 가능해 현재의 북한, 미래의 통일 한반도에도 중요한 물류기지로 사용할 항구도시이자 교통의 핵심지역이다.
1990년대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원산은 다른 도시와 달리 6.25 전쟁 이후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기 때문에 일본산 중고 가전제품, 자전거, 자동차 등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이 시기 원산의 영화는 고작 중국산 식료품과 잡화류, 잘 해봐야 중국산 자전거나 자동차를 수입하는 정도인 신의주시나 다른 국경 연선 도시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에 일본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보복으로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을 불허하면서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개인 사업차 원산을 자주 방문했던 한 탈북자는 당시 원산을 '유령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김정은 집권 이래 원산은 '김정은 (계획)도시'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이 원산을 제2의 평양으로 개발하라고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송도원에는 2013년 기준 김정은의 7성급 별장이 있으며, 송도원 청년야외극장과 1960년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있어 체제선전에 사용되고 있다. 특권계급을 위한 곳이다. 데니스 로드먼이 놀러간 그 휘황찬란한 별장이 여기로 추정되었다. 외국인 호스텔 구역을 지었다. 이처럼 김정은이 원산을 적극 밀어주는 이유는 대체로 김정은 혹은 생모인 고용희가 원산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어 일종의 우상화 작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한때 미사일발사 시험을 하곤 했던 깃대령 미사일 기지가 원산 인근 안변군에 위치한다. 깃대령은 대포동 미사일 쏘던 시절 이야기이고. 2016-2017년 북한 미사일 도발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원산이 애용되고 있다. 원산 인근의 호도반도도 애용되는 장소. 그 외에도 원산갈마국제비행장은 화성-10(무수단 미사일) 발사 시험지였다. 이 외에도 북한 공군의 사열식이나 공군 비행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의 향산1초대소에 김정은이 머무르면서 미사일 발사를 지도한 것으로 보인다.[3]
자연환경[편집]
원산시는 남서부가 높고 여기서 북동쪽으로 가면서 급격히 낮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쪽경계로는 백두대산줄기의 마식령산줄기(馬息嶺山-)가 뻗어 있으며 여기에 백암산(白巖山, 1,228m)을 비롯하여 해발 1,000m 이상의 산들이 솟아 있다.
산골짜기와 강하천들은 대체로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다. 마식령산줄기에서 여러 개의 지맥들이 뻗어 내리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심포천(深浦川), 장림천(長林川), 적천천(赤川川), 갈마천(葛麻川)이 흘러 골지형을 이룬다.
원산시는 해발 200m 이하의 벌과 구릉지대가 총 면적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해발 200~400m 되는 지역이 14%, 400~800m 되는 지역이 17%, 800m 이상인 지역이 6%를 차지한다.
경사도가 5°이하 되는 경사지가 원산시 전체면적의 29%, 5~15°되는 지역이 37%, 15~25°되는 지역이 3%, 25°이상 지역이 31%를 차지한다.
해안선은 굴곡이 복잡하지 않으며, 동쪽에는 갈마반도(葛麻半島)가 있다. 바닷가에는 높이 1.5~2m의 사취가 넓게 전개되어 있다. 원산만(元山灣)은 바다 깊이가 얕고 물결이 잔잔하다. 구성암석은 시생대 낭림층군의 흑운모편마암 · 혼성암, 상부원생대의 흑운모편암 · 석회암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관입암은 시생대 연화산암군과 중생대 단천암군의 화강암이 분포되어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금, 은, 철, 석회석, 화강석, 대리석, 이탄 등이 묻혀 있다.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에 속한다.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겨울철과 여름철의 기온차가 심하지 않고 심한 추위와 더위현상이 적고 따뜻하다. 연평균일조시간은 2,421.9시간이고 연평균일조율은 56%이다. 연평균기온은 10.4℃, 1월 평균기온은 -3.6℃, 8월 평균기온은 23.2℃, 10℃이상 적산온도는 3,591℃, 연평균강수량은 1,406.3mm이다. 첫서리는 10월 말에, 마감서리는 4월 중순에 내린다. 연평균상대습도는 67%이다. 바람은 남서풍이 우세하며 연평균풍속은 2.2m/s이다.
강 하천은 서쪽의 마식령산줄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독립수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하천들은 길이가 짧고 유역면적이 작으며 상류부에서 유속이 빠르다. 주요 하천으로는 적천천, 갈마천을 비롯하여 길이 5km 이상의 하천이 6개가 유입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길이가 20km 이상인 하천이 4개, 10km 이하의 하천이 2개이고 유역면적이 100㎢ 이상인 하천이 1개, 50~100㎢ 하천이 2개, 50km2 이하의 하천이 3개이다. 저수지는 신성저수지(新城貯水池)와 용대저수지(龍垈貯水池) 등이 있다.
산림은 원산시 전체면적의 65%를 차지하는데, 해발 300m 이하의 지역에는 소나무림과 혼성림이, 300~600m 되는 지역에는 혼성림이, 600m 이상 되는 지역에는 참나무림이 분포되어 있다.
기본 수종으로는 소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피나무, 층층나무, 서어나무, 두릅나무, 물푸레나무, 가래나무, 박달나무, 잣나무, 메타세쿼이아, 아까시나무, 산초나무, 진달래, 고광나무, 철쭉, 싸리나무, 개암나무, 생강나무 등이 있다.
산림 속에는 머루, 다래, 돌배, 도토리, 밤, 당귀, 오미자, 삽주, 함박꽃, 고비, 고사리, 참나물, 더덕, 두릅, 도라지 등 산중부원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동물로는 노루, 산토끼, 다람쥐, 청서, 족제비, 여우, 오소리, 너구리를 비롯한 짐승들과 청색딱따구리, 종다리를 비롯한 조류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근해에는 농어, 명태, 숭어, 문어, 오징어, 해삼, 성게, 털게, 자게, 방게, 참굴, 대합, 뿔럭지삿갓조개, 큰섭조개 등 수산물자원이 풍부하다. 하천에는 붕어, 메기, 미꾸라지, 송사리, 종개 등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토양은 갈색산림토양과 충적토가 분포되어 있으며 이 밖에 진펄토양이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원산시 지역의 중평리 등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사실은 이 시기부터 원산시 지역에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천정군(泉井郡) 또는 어을매(於乙買)라고 불렀다. 후에 신라의 판도로 되어 정천군(井泉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왕시기에 고려의 영토로 되어 용주(湧州)로 고쳐 부르다가, 고려 성종시기에 이르러서는 의주(宜州)라 불렀다. 1018년에 진명현(鎭溟縣) 또는 수강(水江)이라고도 하였다. 후에 오랫동안 외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가, 공민왕시기에 다시 수복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의천군(宜川郡)으로 개칭되었고 그 후 1437년 덕원군(德源郡)으로 되었으며 1445년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함흥부(咸興府) 덕원군으로 개편되었고 그 이듬해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덕원군으로 되었다.
1912년에 덕원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를 신설하였는데, 이때 관하에 부내면(府內面), 북면(北面), 천북면(川北面), 용성면(龍城面), 적전면(赤田面), 현면(縣面)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원산부의 대부분 지역이 덕원군에 편입되었고 그 일부와 옛날 일본거류지들, 청나라거류지들이었던 현면의 하신흥동 · 상신흥동 · 상동 · 산제동 · 광석동 · 남촌 · 명석동 · 장촌 · 석우동(石隅洞) · 관교동(館橋洞) · 남산동(南山洞) · 용동(龍洞) · 교하동(橋下洞) · 적전면 와우동 등 지역을 통합하여 새로운 원산부를 이루었다.
1939년에 덕원군 적전면의 와우리(臥牛里), 송흥리(松興里), 송하리(松下里), 현면의 두방리(豆方里)와 두산리(斗山里)가 편입되었다.
1943년에 덕원군이 폐지되면서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45년에 원산시로 개편되었다.
1946년에 강원도 원산시로 되면서 문천군 적전면과 현면을 흡수하였다. 이때 문천군 적전면의 송상리 일부와 송중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송천동(松川洞)으로, 문천군 적전면의 송상리 · 용주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장덕리(長德里)로, 문천군 현면의 웅도리와 여도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여도리(麗島里)로, 원산부의 두방리와 두산리 · 현면 내원산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내원산리(內元山里)로, 원산부의 남산동과 용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용교동(龍橋洞)으로, 원산부의 교하동과 용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용하동(龍下洞)으로, 원산부 남촌동과 신흥동을 병합하여 원산시 신흥리(新興里)로 각각 개편하고 명석동을 명석리로, 광석동을 광석리로, 상동을 상동리로, 석우동을 석우리로, 산제동을 산제리로, 해안동을 해안리로 각각 고쳤으며 명사리(明砂里), 철산리(鐵山里), 봉수리(烽燧里), 중앙리(中央里), 평화리(平和里), 남북리(南北里), 상남리(上南里) 등을 신설하였다. 또한 양지리를 복귀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중청리가 중청일리(中淸一里), 중청이리(中淸二里)로 분리되었고, 해안리 일부가 여도리에 편입되었다.
1950년에 성라리 일부를 분리하여 신성리(新城里)를, 내원산리 일부를 분리하여 갈마리(葛麻里)를 각각 신설하고 용교동, 장촌동, 용하동, 송천동, 포하동을 각각 리로 고쳐 갈마리, 두남리(斗南里), 신성리, 용평리(龍坪里), 내원산리, 성북리(城北里), 세동리(細洞里), 장흥리(長興里), 방하산리(訪霞山里), 송천리(松川里), 송하리, 송흥리, 춘성리(春城里), 중앙리, 봉수리, 철산리, 양지리, 신풍리(新豊里), 와우리, 평화리, 석우리, 명석리, 상동리, 장덕리, 용주리(湧珠里), 관풍리(館豊里), 신동리(新洞里), 중평리(仲坪里), 당하리(堂下里), 당중리(堂中里), 용교리(龍橋里), 당상리(堂上里), 낙수리(洛水里), 견산리(見山里), 산제리, 해안리, 남북리, 신흥리, 상남리, 용계리(龍溪里), 중청일리, 중청이리, 중리(中里), 장촌리, 포하리(浦下里), 용하리(龍下里), 명사리, 무라리(武羅里), 여도리, 성라리(星羅里), 춘산리(春山里), 춘악리(春岳里), 현동리(峴洞里), 광석리, 삼태리(三台里) 등 리를 관할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원산시 중평리 · 용주리 · 신동리를 병합하여 중평리로, 원산시 현동리 · 견산리를 병합하여 현동리로, 원산시 낙수리 · 무라리를 병합하여 낙수리로, 원산시 춘산리 · 춘악리를 병합하여 춘산리로, 원산시 장흥리 · 세동리를 병합하여 장흥리로 각각 개편하였고, 원산시 성라리 · 두남리 · 용평리를 병합하여 용천리(龍川里)를, 원산시 당상리 · 당중리 · 당하리 · 용계리를 병합하여 적천리(赤川里)를 각각 신설하였으며, 원산시 중청일리 · 중청이리를 병합하여 중청리(中淸里)를 다시 복귀하였다.
또한 지경리(地境里)가 안변군 배양리(培養里)에, 사둔리(沙屯里), 포평리(浦坪里)가 안변군 사평리(沙坪里)에 각각 편입되었다.
1955년에 중청리가 중청일동과 중청이동으로 분리되고 장덕리, 관풍리, 신풍리, 와우리, 평화리, 양지리, 송흥리, 철산리, 봉수리, 석우리, 명석리, 상동리, 광석리, 산제리, 신홍리, 해안리, 용교리, 장촌리, 방하산리, 용하리, 갈마리, 내원산리, 장흥리, 신성리, 여도리, 남북리, 중앙리, 성북리, 명사리, 포하리, 송하리 등 31개 리를 동으로 고쳤다.
1957년에 신풍동 일부로 고능동(高陵洞)을 신설하였고, 남북동이 해안동에, 중앙동이 봉수동에, 성북동이 용천리에, 상남리가 중리에, 명사동이 내원산동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중청일동을 중청동(中淸洞)으로, 중청이동을 원남동(元南洞)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61년에 문천군의 부운리(浮雲里) · 덕원리(德源里) · 석현리(石峴里) · 장림리(長林里)가 편입되었고, 와우동 일부와 신풍동 일부를 병합하여 율동(栗洞)을, 평화동 일부와 와우동 일부를 병합하여 덕성동(德城洞)을, 철산동 일부를 분리하여 해방동(解放洞)을, 춘성리 일부 · 봉수동 일부 · 철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봉춘동(烽春洞)을, 석우동 일부 · 해안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석동(元石洞)을, 중청동 일부를 분리하여 삼봉동(三峯洞)을, 용교동 일부를 분리하여 남산동(南山洞)을, 갈마동 일부를 분리하여 복막동(洑幕洞)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송하리가 송흥동에, 중리가 해안동에, 용교동 나머지는 신흥동 · 장촌동에, 포하동이 장촌동 · 내원산동에, 중평리 일부와 신풍동 일부가 관풍동에, 신풍동 일부가 와우동에, 와우동 일부가 양지동에, 양지동 일부가 평화동에, 평화동 일부가 철산동 · 석우동에, 봉수동 일부가 철산동 · 평화동에, 석우동 일부가 철산동 · 명석동 · 상동에, 상동 일부가 명석동에, 송천리 일부가 장덕동에, 용하동 일부가 갈마동에, 명석동 일부가 상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1967년에 해방동이 해방일동(解放一洞) · 해방이동(解放二洞)으로, 철산동이 철산일동(鐵山一洞) · 철산이동(鐵山二洞)으로 분리되었고, 장덕동이 양지동에, 춘성리가 송흥동에, 부운리가 송천리에, 율동 일부 · 와우동 일부가 덕성동에, 덕성동 일부가 석우동에, 신풍동 일부가 와우동에, 방하산동 일부가 용하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2년에 철산이동이 승리동(勝利洞)으로 개칭되었고, 문천군이 폐지되면서 문천군의 문천읍(文川邑), 문평노동자구(文坪勞動者區), 옥평노동자구(玉坪勞動者區), 가은노동자구(佳銀勞動者區), 영삼리(永三里), 신성리(新城里), 죽산리(竹山里), 가평리(柯坪里), 남창리(南昌里), 교성리(橋城里), 부방리(富方里), 용탄리(龍灘里), 고암리(庫巖里), 신안리(新安里), 삼일리(三一里), 답촌리(畓村里), 용정리(龍井里), 삼동리(參洞里)가 원산시에 편입되었다. 이때 문천읍을 문천노동자구(文川勞動者區)와 성문노동자구(城門勞動者區)로, 가평리를 가평노동자구(柯坪勞動者區)로, 고암리를 고암노동자구(庫巖勞動者區)로 각각 개편하였다.
1974년에 천내군의 석전리(石田里), 덕흥리(德興里)가 이관되었고, 문천노동자구, 성문노동자구, 문평노동지구, 가은노동자구, 가평노동자구, 옥평노동자구, 고암노동자구를 각각 문천동, 성문동, 문평동, 가은동, 가평동, 옥평동, 고암동으로 개편하였다.
1976년에 철산일동을 개선동(凱旋洞)으로 개칭하고, 적천리를 적천동으로, 송천리를 송천동으로, 덕원리를 덕원동으로 고쳤으며 문천동, 성문동, 문평동, 가은동, 가평동, 옥평동, 고암동, 남창리, 교성리, 부방리, 용정리, 용탄리, 신안리, 삼동리, 삼일리, 답촌리, 덕흥리, 석전리를 다시 설치되는 문천군에 편입하였다.
1977년에 고능동이 탑동(塔洞)으로, 장흥동이 장산동(長山洞)으로, 덕원동이 세길동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984년에 안변군의 남천리(南川里) · 칠봉리(七峯里) · 수상리(水上里) · 상자리(上自里)가 편입되었고, 1986년에 덕성동 일부 · 명석동 일부 · 석우동 일부로 복망산동(北邙山洞)을 신설하였으며, 양지동 일부로 장덕동을 복귀하였다.
1987년에 복망산동을 동명산동(東明山洞)으로 개칭하였고, 1991년에 산제동을 전진동(前進洞)으로 개칭하여 1992년에 이르러 산하에 개선동, 해방일동, 해방이동, 승리동, 봉춘동, 평화동, 관풍동, 탑동, 신풍동, 율동, 석우동, 와우동, 덕성동, 양지동, 봉수동, 원석동, 명석동, 상동, 광석동, 전진동, 송흥동, 송천동, 중청동, 삼봉동, 원남동, 신흥동, 해안동, 남산동, 장촌동, 용하동, 갈마동, 내원산동, 방하산동, 장산동, 복막동, 신성동, 적천동, 세길동, 동명산동, 장덕동, 여도동, 용천리, 현동리, 춘산리, 낙수리, 삼태리, 중평리, 석현리, 장림리, 영삼리, 신성리, 죽산리, 남천리, 수상리, 상자리, 칠봉리 등 41동 15리를 두고 관할하였다.
1993년에 내원산동 일부를 분리하여 명사십리동(明砂十里洞)을, 원남동을 분리하여 원남일동(元南一洞)과 원남이동(元南二洞)을 각각 신설하였고, 장촌동 일부를 분리하여 포하동을 복귀하였으며, 현동리 일부를 복막동에, 광석동 일부를 전진동에, 장촌동 일부를 내원산동에 각각 편입하였다. 1995년에 석현리가 석현동으로 되었다.
2003년 행정구역은 45동(갈마동, 개선동, 관풍동, 광석동, 남산동, 내원산동, 덕성동, 동명산동, 여도동, 용하동, 율동, 명사십리동, 명석동, 방하산동, 복막동, 봉수동, 봉춘동, 삼봉동, 상동, 석우동, 석현동, 세길동, 송천동, 송흥동, 승리동, 신성동, 신풍동, 신흥동, 양지동, 와우동, 원남일동, 원남이동, 원석동, 장덕동, 장산동, 장촌동, 적천동, 전진동, 중청동, 탑동, 평화동, 포하동, 해방일동, 해방이동, 해안동), 14리(남천리, 낙수리, 용천리, 삼태리, 상자리, 수상리, 신성리, 영삼리, 장림리, 죽산리, 중평리, 춘산리, 칠봉리, 현동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이후, 김정은의 제2의 고향이라고 선전되며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5]
산업[편집]
원산시의 경제는 중앙공업과 지방공업, 수산업, 농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업은 기계공업, 화학공업, 일용품공업, 방직 및 피복공업, 식료품공업, 건재공업, 수산업 등 부문이 발족되어 있다.
기계공업에서는 운수기계생산이 기본을 이룬다. 6월4일차량종합기업소(六月四日車輛綜合企業所)는 북한에서 제일 크고 현대화된 차량전문생산기지로서 철도수송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는 60톤급, 100톤급 화차를 비롯하여 냉동차, 유조차, 객차, 골재운반차 등이 생산된다.
원산조선소와 원산선박수리공장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여기에서는 현대적인 대형선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배들을 만드는 한편 선박을 수리 보수한다.
이밖에도 트랙터와 부속품, 자동차부속품, 기계부속품이 생산된다. 화학공업도 원산시의 공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지방공업에서는 간장, 된장을 비롯한 기초식품과 화장품, 일용품, 의약품, 가구제품 등 제품들이 생산된다.
원산시는 북한의 주요 수산기지의 하나로서 현대적인 어로수단을 이용하여 주로 명태, 정어리, 가자미, 청어, 홍어, 송어, 멸치, 낙지 등 수산물을 어획하고 있다.
이 밖에 원산만의 얕은 바다에서는 다시마, 파래 등을 양식하고 있으며 호수, 저수지, 양어장 등을 이용하여 기념어(백련), 화련어, 붕어, 잉어 등 민물고기들을 양식하고 있다. 지역경제에서 농업생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농경지는 시 전체면적의 18% 되는데, 그 가운데서 논이 28%, 밭이 39%, 과수밭이 12%, 호두밭이 17%, 나무모밭이 2%를 차지한다. 주요 곡물로는 벼, 옥수수, 콩 등이 있다.
채소업에서는 주로 배추, 무, 양배추, 가지, 시금치, 오이 등이 재배된다. 이 밖에 감자, 고구마도 재배하고 있다. 축산업이 발달되어 있는데, 주로 소, 돼지, 닭, 토끼, 오리, 양, 염소 등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과수업에서는 배, 감, 복숭아, 사과, 자두, 살구 등이 산출되고 있다. 특히 호두나무밭이 많이 조성되어 있어 호두산출량이 많다.[6]
교통[편집]
교통은 강원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덕원역, 원산역, 갈마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교통은 평양~원산 간 관광도로, 평양~원산, 원산~우암 간 도로와 원산~김화, 원산~금강산 간 관광도로, 원산~동포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원산항(元山港)을 통하여 수상통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북한화물뿐 아니라 대외수송이 진행되고 있다. 원산~문천~답촌, 원산~통천~고성, 원산~흥남, 원산~신포, 원산~청진, 원산~니이가다(일본) 간 정기항로가 운행되고 있다. 원산~법동, 원산~문천, 원산~고성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평양까지는 147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원산시〉, 《위키백과》
- 〈원산시〉,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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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산시〉, 《위키백과》
- ↑ 〈원산시〉,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강원도 원산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