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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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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공(熟鍊工)은 기술이 능숙한 기술자노동자를 말한다.[1]

매뉴팩처에서 숙련공과 미숙련공의 분리[편집]

매뉴팩처로 인해 발생하는 또 다른 현상은 숙련공과 미숙련공이 구분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매뉴팩처는 그것이 장악하는 모든 업종에서 이른바 미숙련 노동자라는 하나의 부류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수공업은 그 성질상 이러한 부류를 엄격히 배제한다. 매뉴팩처가 인간의 전반적인 노동 능력의 희생 위에서 일면화된 전문성을 완벽한 경지로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미숙련 노동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발전의 결여를 하나의 전문성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등급제의 등급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련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생산 방식에서는 한 사람이 작업 과정 전체를 전담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숙련된 노동이 요구되었다. 그렇지만 매뉴팩처의 집단적 노동에서는 작업의 세분화로 인해서 단순한 작업과 복잡한 작업, 저급의 작업과 고급의 작업이 구분된다. 전자는 교육이나 훈련을 적게 필요로 하며, 후자는 교육이나 훈련을 많이 필요로 한다. 여기서 전자는 '미숙련공'의 작업이 되고, 후자는 '숙련공'의 작업이 된다. 미숙련공의 경우에는 교육비나 훈련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노동력의 가치가 낮으며, 따라서 필요 노동 시간의 감소로 인해 상대적 잉여가치는 증가하게 된다.[2]

숙련공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편집]

그 많던 숙련공은 어디로...조선업 세계 1위, 숙련공 없어 '흔들'

세계 1위 탈환. 최근 한국 조선업이 기나긴 불황을 끝내고 수주량 1위의 자리를 탈환했다. 축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곳곳에서 한숨이 뒤섞여 나왔다. 일감은 많지만 일할 숙련공이 부족하다는 것. 2010년대 초, 20만 명이 넘던 조선소 종사자들은 2022년 기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9만 5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그 많던 숙련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왜 사라졌을까?

"지금 이 시점에 조선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없고 이전에 배웠던 사람들은 다 떠났고...

저희들이 영업을 해오더라도 (일감을) 다시 내뱉고, 못 한다고... 내뱉어야 하는 그런 실정입니다"

채부기 조선 기자재 업체 대표

"이어갈 세대가 없다"는 조선업... 소통 어려운 외국인들로 빈자리 채워질까

오토바이 수십 대의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이어졌다. 이들이 향하는 건 경상남도 거제시의 한 대형 조선소. 그곳에서 2년째 도장 작업을 하고 있는 청년공은 "숙련자들은 이제 50 ~ 60대가 됐다"면서 "초보자들은 많이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도장 작업은 선박의 부식을 막기 위해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한 도장 업체 대표는 선박의 수명이 달린 일인 만큼 숙련공들이 해야 한다면서 숙련공 소멸 위기를 우려했다. 예전엔 100명의 인원이 있었지만, 현재는 채용 등 인력 수급을 위해 노력해도 60명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숙련공이 절실한 지금의 조선업 현장. 그 현장에는 숙련공 대신, 일손을 채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에 위치한 한 조선소, 해당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 10명 중 6명이 외국인 노동자다. 13년 차 숙련공인 김형덕 씨는 매일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이런 언어의 장벽 탓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련 기간이 한국인에 비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조선소 떠나온 평택 숙련공, "7년 전 떠난 때랑 같은 임금...조선소, 안 돌아가죠"

한 조선업 종사자는 평택을 '블랙홀'이라 일컬었다. 절반 넘게 사라진 숙련공들 대다수가 평택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으로 갔다는 것이다. 조선소에서 취부사로 일하던 배현식(가명) 씨는 7년 전, 조선소를 떠나 평택으로 왔다. 배 씨는 평택에 와서도 조선소에서 쓰던 작업복과 두건을 아직 사용한다며 보여주며 웃었다. 하지만 조선소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묻자, 곧장 단호히 고개를 내젓는 배 씨. 배 씨는 이전에 조선소에서 돌아오란 연락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배 씨에게 제시된 단가는 7년 전 그곳을 떠날 때와 똑같은 14만 원이었던 탓이다.

배 씨가 조선소를 떠난 그즈음은 조선업에 한파가 닥쳤을 때다. 2015년 한 해에만 조선 3사의 적자가 8조 원에 달할 정도였다. 소위 '잘 나가던' 조선소들은 한순간 고꾸라지자 그동안의 영광을 함께한 사람들을 쳐내고 비용을 줄였다.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실직과 수많은 협력업체가 줄도산하는 등 풍파가 일었다. 세월이 흘러 불황이 가셔도 숙련공들에겐 그 여파가 아직인 모양새다.

대한민국 현장엔 대한민국 숙련공이 없다

숙련공이 사라지는 현장은 조선소만이 아니다. 건설, 제조대한민국 곳곳의 현장에서 숙련공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건설 현장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로 적힌 안전 수칙들이 필수다. 한글 아래 적힌 중국어와 베트남어. 31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철근 작업을 했다는 박철민 씨는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꼽았다. 건설 현장에서도 젊은 인력들이 부족해 대가 끊길 위기다.

제조업의 대를 이을 숙련공도 부족한 상황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전통 산업단지. 과거 제조업으로 북적이던 곳이지만 현재는 공장 곳곳이 비어 있거나 노동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커다란 공장 안이 큰 기계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앞에 선 숙련공들은 한두 명. 공장들은 인건비 부담 탓에 대부분 혼자 일하거나 형제, 부부 등 가족끼리 업체를 운영한다. 친동생과 함께 임가공업체를 운영 중인 강영주 씨는 40대인 본인을 "제조업에서 젊은 편"이라 소개했다.

"제조업에서 제가 젊은 편입니다.

지금 저희 밑 세대에는 거의 없습니다.

다 외국인이지…"

진주 상평산단 내 공장 운영하는 강영주 씨 -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아직까지 쇳소리가 나는 곳이 있다. 문래동. 서울의 마지막 뿌리산업 중심지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시제품, 부품제작을 위해 문래동을 찾는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많은 물건은 숙련공들의 손끝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렇다 보니 문래동에서 만난 숙련공들은 뿌리산업의 대가 끊기는 건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60살 저 양반이 막내"라며 웃는 최대기 씨의 입가엔 잔주름이 패고, 손끝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굳은살과 함께 45년 동안 쌓아 올린 건 최 씨의 숙련도. 최 씨의 굳은살을, 기술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숙련공〉, 《네이버국어사전》
  2. 매뉴팩처에서 숙련공과 미숙련공의 분리〉, 《네이버지식백과》
  3. 숙련공 소멸, 제조업이 무너진다〉, "MyloveKBS", 2023-11-10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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