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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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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野球選手, baseball player)는 야구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 또는 야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1]

개요[편집]

야구는 10명으로 이루어진 두 팀이 9회씩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며 승패를 겨루는 구기 종목이다.

공격하는 쪽의 타자는 상대편 투수가 던진 공을 방망이로 치고 경기장 내의 특정 지점인 1, 2,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아오면 1점을 얻는다. 타자나 주자가 세 번 아웃당하면 공격과 수비를 교대하여 9회까지 완료되면 경기가 끝나고, 최종적으로 점수를 더 많이 얻은 팀이 이긴다. 만일 9회까지도 승부가 안 나면 한국일본리그는 12회까지 연장승부를 하다가 승부가 안 나면 무승부로 결정하며(다만 포스트시즌은 연장 15회 승부를 한다.), 미국의 경우엔 무승부 없이 승패가 결정날 때까지 하는 끝장승부다.

축구나 농구만큼 범세계적인 대중성이 있진 않으나, 종주국인 미국을 비롯한 북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카리브 해 일대), 동아시아(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다.[2]

야구선수 되는 법[편집]

  • 초등 야구부 입단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최대한 어린 나이에 시작하여 육체가 성장하는 시기이기에 그 시기에 맞는 훈련과정에서 기초체력과 신체를 강화하며 야구에 대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 시기를 통하여 중 · 고등학교 진학에 있어 야구로 방향을 잡거나 빠르게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 중 ·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 및 입단테스트
초등시절 저학년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고학년이나 혹은 청소년기에 야구의 꿈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다. 사실상 재능과 노력, 체력, 감각을 요구하는 스포츠인 만큼 이미 격차가 많이 벌어져 늦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인이 야구를 좋아하여 꾸준히 노력을 해왔거나 신체, 근력 등의 재능이 있고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신과 노력이 있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 경우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찾아가 감동에게 입단 테스트를 요청하여 평가받고 합격을 한다면 전학을 통해 입단하여 훈련을 받으며 진로를 향해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나이로 인해 입단 테스트조차 봐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야구학원 등록
야구 학원으로 문의하여 등록하고 훈련과 교육을 통해 성장하며 미래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받는 방법이다. 학원의 경우 선수, 취미, 사회인 야구 등의 다양한 반이 있으며 비교적 늦은 나이라도 재능이 크게 눈에 띈다면 추천을 통해 입단 테스트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금액적인 부담이 큰 편이다.
  • 야구센터
야구 센터에서 선수 출신이 아닌 분들을 훈련하여 독립야구단 같은 곳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경기를 참여하다 프로를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어렵고 희박한 방법이다.
  • 야구선수가 가져야할 능력
박찬호, 류현진, 추신수 등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입하여 좋은 성적을 내었고 현재도 활동 중인 선수들이 많다. 야구로는 최정상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엄청난 선수를 속에서 계속하여 재계약이 가능한 이유는 기복이 적은 경기력으로 인한 좋은 성적과 계속하여 성장하는 경기력이다. 스포츠가 뛰어난 재능을 요구하기는 하나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실력만이 아닌 체력과 경기 중 행동들이 습관화되는 꾸준한 노력과 근성이 필요하다. 스포츠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다양한 부상을 겪게 된다. 큰 부상으로 인해 오랜 기간 복귀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류현진 선수도 부상으로 인한 복귀가 늦어 구속이 많이 떨어져 고생을 하고 있으나 계속하여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정상급의 선수도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스포츠 이다. 그러니 진로를 야구로 결정하였다면 끈기와 근성으로 끝까지 노력하고 도전하여야 한다. 어떤 종목이는 정상에 오른 선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훈련시간을 견뎌내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3]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편집]

대한민국 출신 야구선수들 가운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 한 경기 이상 뛰었던 선수들은 지금까지 모두 26명이며, 이 중에 현재 메이저 리그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최지만, 김하성, 박효준, 배지환 4명이다. 1994년, 투수 박찬호가 대한민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박찬호의 메이저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바라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많은 '박찬호 키드'들이 생겨났고, 이 때부터 대한민국 출신 선수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 리그 선수 26명 가운데, 투수가 15명, 타자가 11명이다. 26명 중에 11명은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및 대학교 선수 시절에 아마추어 선수 계약을 통해서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류현진과 강정호, 박병호, 김광현,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KBO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이상훈, 구대성, 박찬호, 임창용, 이대호, 오승환은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최상위 프로 야구 리그를 모두 경험했는데, 박찬호는 MLB, NPB, KBO 순으로, 나머지 네 명은 그 역순으로 경력을 밟았다. 광주광역시의 광주제일고등학교는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강정호, 이 네 명의 메이저 리그 선수를 배출했다.

박찬호는 1990년대 후반 IMF 위기로 침체되어 있던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코리안 리거(Korean Leaguer)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선수는 추신수 정도이며, 그 이외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뛰지 못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KBO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생겨났고, 이 선수들의 활약 이후 더 많은 KBO 선수들의 메이저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고교, 대학 아마추어 선수들의 진로 추세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한국 리그를 거친 뒤에 메이저 진출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4]

역사[편집]

1968년, 중앙고등학교 출신으로 일본 프로 야구 팀 도쿄 오리온스에서 뛰었던 바 있는 투수 이원국이 대한민국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 팀과 계약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이너 리그 팀에서 뛰었다. 1980년, 연세대학교 투수 박철순이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해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뛰었다. 1981년, 투수 최동원이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으나, 병역 문제와 한국 프로 리그 창설 등과 맞물려 공식적인 메이저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1994년 4월 8일, 한양대학교를 중퇴하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투수 박찬호가 대한민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메이저 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는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인 선수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그의 성공 이후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중 일부는 메이저 리그에서도 뛰었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일원이었던 투수 김병현은 아시아인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해 우승을 경험했다. 2002년, 시카고 컵스 1루수 최희섭은 대한민국 출신 최초의 메이저 리그 야수로 데뷔했으며, 2003년 시즌 뉴욕 메츠 투수 서재응은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었다. 외야수 추신수는 아시아인 선수로는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쳐냈다. 그러나 박찬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던 대한민국 선수들은 대부분 마이너 리그를 전전하거나, 잠시 메이저에 올라가 뛰더라도 오랫동안 자리잡지 못했다.

한편 유망주 유출로 인한 KBO 리그의 위기를 우려한 KBO는 1999년부터 해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한국 복귀를 원할 경우에 2년간 한국 구단과 계약을 제한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 또한 사전 동의 없이 재학 중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에 대해 자격 정지 등의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 미국으로 건너갔던 많은 수의 선수들이 메이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2년 유예 제도가 발목을 잡았고, KBO는 2007년 일시적으로 규정을 철폐해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회의를 통해 몇몇 선수들의 한국 복귀를 도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부 KBO 리그 선수들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입을 노렸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응찰 금액으로 인해 진출 시도를 포기했다. 2012년 시즌 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 류현진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KBO 출신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직행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14년 시즌 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유격수 강정호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하며 KBO에서 메이저 리그로 진출한 최초의 야수가 되었다.

2020년 김광현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 성공해 메이저리그로 넘어갔다.[4]

선수[편집]

선수 위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박찬호 투수 1994년 4월 8일 2010년 10월 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4 ~ 2001, 2008)

텍사스 레인저스 (2002 ~ 200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5~2006)

뉴욕 메츠 (200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9)

뉴욕 양키스 (2010)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0)

조진호 투수 1998년 7월 4일 1998년 7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 (1998 ~ 1999)
김병현 투수 1999년 5월 29일 2007년 9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999 ~ 2003, 2007)

보스턴 레드삭스 (2003 ~ 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 ~ 2007)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2007)

이상훈 투수 2000년 6월 29일 2000년 10월 1일 보스턴 레드삭스 (2000)
김선우 투수 2001년 6월 15일 2006년 9월 17일 보스턴 레드삭스 (2001 ~ 2002)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2 ~ 2004)

워싱턴 내셔널스 (2005)

콜로라도 로키스 (2005 ~ 2006)

신시내티 레즈 (2006)

봉중근 투수 2002년 4월 23일 2004년 6월 20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2002 ~ 2003)

신시내티 레즈 (2004)

서재응 투수 2002년 7월 21일 2007년 5월 29일 뉴욕 메츠 (2002 ~ 200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

탬파베이 데빌레이스 (2006 ~ 2007)

최희섭 내야수 2002년 9월 3일 2005년 10월 2일 시카고 컵스 (2002 ~ 2003)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 ~ 2005)

백차승 투수 2004년 8월 8일 2008년 9월 28일 시애틀 매리너스 (2004, 2006 ~ 200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8)

구대성 투수 2005년 4월 4일 2005년 8월 20일 뉴욕 메츠 (2005)
추신수 외야수 2005년 4월 21일 2020년 9월 27일 시애틀 매리너스 (2005 ~ 200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6 ~ 2012)

신시내티 레즈 (2013)

텍사스 레인저스 (2014 ~ 2020)

류제국 투수 2006년 5월 14일 2008년 4월 9일 시카고 컵스 (2006)

탬파베이 레이스 (2007 ~ 2008)

류현진 투수 2013년 4월 2일 2023년 9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3 ~ 2019)

토론토 블루제이스 (2020 ~ 2023)

임창용 투수 2013년 9월 7일 2013년 9월 27일 시카고 컵스 (2013)
강정호 내야수 2015년 4월 8일 2019년 7월 29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5 ~ 2019)
박병호 내야수 2016년 4월 4일 2016년 6월 28일 미네소타 트윈스 (2016)
이대호 내야수 2016년 4월 4일 2016년 10월 2일 시애틀 매리너스 (2016)
오승환 투수 2016년 4월 3일 2019년 5월 30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6 ~ 2017)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8)

콜로라도 로키스 (2018 ~ 2019)

최지만 내야수 2016년 4월 5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16)

뉴욕 양키스 (2017)

탬파베이 레이스 (2018 ~)

김현수 외야수 2016년 4월 10일 2017년 9월 3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6 ~ 201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7)

황재균 내야수 2017년 6월 28일 2017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7)
김광현 투수 2020년 7월 24일 2021년 10월 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20 ~ 2021)
김하성 내야수 2021년 4월 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21~)
양현종 투수 2021년 4월 26일 2021년 9월 13일 텍사스 레인저스 (2021)
박효준 내야수 2021년 7월 17일 뉴욕 양키스 (2021)

피츠버그 파이리츠 (2021 ~ 2022)

보스턴 레드삭스 (2023~)

배지환 내야수 2022년 9월 24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2022~)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선수[편집]

사람들은 야구가 인생과 닮았다고 말한다. 야구도, 인생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구가 자신의 인생인 야구선수들은 그 불확실성과 매일 매일 사투를 벌이며 의미있는 기록을 내기 위해 땀을 흘린다.

야구에서의 포지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투수, 아니면 야수다. 같은 야구 선수라고 해도 투수와 야수는 훈련방식부터 마인트 컨트롤하는 방법까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투수의 삶을 살던 선수가 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중에서 대성공을 거둔 선수들이 있다. 그야말로 9회 역전 만루 홈런을 치는 것과 같은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확 바꿔 놓은 야구 선수들. 오늘은 그들을 탐구해봤다.

대한민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추신수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난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는 부산고 시절 채태인, 이대호와 함께 '부산 빅3'로 불리며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았다. 추신수는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대회에서 이대호와 함께 우승에 기여했는데 당시 그는 이 대회에서 투수로 출전해 18이닝을 던져 32탈삼진 5실점의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 MVP에 선정됐다. 추신수는 이 대회의 결승전이 끝난 후 2000년 8월 14일 계약금 135만 달러에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투수로 계약한 줄 알았지만 시애틀에서는 추신수의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사 타자로 전향시켰다.

이후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를 거쳐 현재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아시아 최초 3할 - 20홈런 - 20도루 달성, 동양인 최초 MLB 사이클링 히트 달성 등 굵직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추신수는 외야에서 수비를 할 때 투수 출신답게 강한 어깨로 빨랫줄 송구를 과시하며 홈으로 파고드는 주자들을 여러 차례 잡아내기도 했다.

특히 추신수는 올 시즌에 기량이 완전히 꽃을 피워 51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고 또 야구 인생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도 안았다.

"만화야구는 계속 된다"-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는 완전히 타자로 전향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타니가 타자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고 또 투수 못지 않게 타석에서도 홈런 등 의미있는 기록들을 생산하고 있어 살펴보기로 했다.

오타니는 1994년 7월 5일 일본 이와테현 미즈사와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고 5학년 때 이미 구속 110km/h를 찍으며 일본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2013년 니혼햄 파이터스의 유니폼을 입고 일본 프로야구에 데뷔한 오타니는 2014 시즌부터 투타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 시즌 상반기때 오타니는 투수로서 15경기에 등판, 97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 2.23(리그 2위), 탈삼진 117(리그 2위), 볼넷 26개를 기록하며 9승(리그 2위) 1패의 성적을 거뒀고 타자로도 52경기에 출전해 3할이 넘는 타율과 5개의 홈런을 기록해 이도류로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타니는 일본 무대를 평정한 이후 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도 투타 겸업을 선언했다. 그가 미국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 등 이른바 '빅마켓'이라고 불리는 구단들이 오타니에게 눈독을 들였지만 오타니의 행선지는 의외로 LA에인절스였다.

그가 LA에인절스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타자 오타니'로서의 기회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타니는 이번 시즌 투수로 9경기에 등판해 4승 1패, 평균자책 3.10의 성적을 내고 있으며 타자로는 45경기에서 타율 0.283에 7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영원한 국민 타자'- 이승엽

이승엽(삼성 라이온스 · 은퇴)은 학창시절부터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승엽은 경북고등학교 졸업에 맞춰 연고 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로 입단했다. 이승엽은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었다.

결국 이승엽은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로부터 1년 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기량을 선보이자 구단은 그를 1루수로 완전히 전향시켰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을 끝낸 이승엽은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여 주다가 점차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했고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1982년 6월 21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영초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전학 온 추신수에 의해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야구 명문인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해 투수로 맹활약했다. 또한 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2000년 19세 때 캐나다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투수로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에이스급 우완 투수로 입단했지만 입단 후 첫 전지 훈련에서 어깨 부상을 입게 됐다. 하지만 이대호의 유연한 타격폼과 남다른 비거리를 알아본 당시 유용득 2군 감독의 제안으로 내야수로 전향했다.

성공적으로 타자 전향을 하며 한국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1루수로 자리 잡았고 2010년에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미국, 일본리그에도 진출해 한 · 미 · 일 모두에서 뛴 최초의 한국인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2018 KBO 프로야구 신인상은 따논 당상?'- 강백호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 '투타겸업' 선수로 유명했다. 그는 고교 시절 잘 알려진대로 파이어볼러였고 '이도류'에 대한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진욱 kt 위즈 감독은 "투수로서 재능이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겠다. 연장전에 가서 투수가 없거나 시즌 막판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등판 정도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그의 이도류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강백호 자신도 김진욱 감독의 말을 뒷받침했다. 강백호는 "감독님이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안 하겠다. 감독님 결정에 따르겠다. 올스타전이 끝난 지 며칠 지났지만 아직도 팔이 뭉쳤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갑자기 준비해서 그런지 힘들기는 하다. 내 몸이 기계는 아닌 것 같다"고 고백해 타자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국의 오타니'를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교시절에도 평균 150km의 강속구를 뿌린 그의 투수 재능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0년대 삼성 왕조 멤버'- 채태인

채태인(롯데 자이언츠)이 투수 출신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채태인은 부산상고 시절 평균 140km대를 던지는 탈 고교급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뛰어난 좌완 투수로 해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가 지난 2001년 신인 지명에서 두산 베어스의 2차 10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입단을 거절, 계약금 80만 달러의 조건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당시 보스턴은 채태인은 투수 재목으로 보고 계약했다. 하지만 2001년 6월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게 되면서 투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2002년 9월 보스턴 레드삭스는 채태인을 임의 방출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부상에서 회복한 채태인은 타자로 완전히 전향했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2000년 삼성 왕조 시대를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KBO 최고의 1루 수비 능력을 갖춘 선수로도 인정받았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호준

지금은 야구팬들에게 몸관리를 잘해 선수생활을 오래한 홈런 타자로 기억되고 있는 이호준(NC 다이노스 · 은퇴)은 사실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망한 투수였다. 그는 1994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해태 타이거스에 지명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투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1994년 1군 8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1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자 타자로의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했고 1996년 외야수로 전향해 1군에 복귀했다.

이호준은 해태 타이거즈- SK와이번스- NC다이노스를 거쳐 KBO 리그 최장 23시즌을 현역 선수로 활약한 KBO의 산 증인으로 활약하다가 2017년에 은퇴해 현재는 일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 중이다.

중요할 때마다 한방 터트리는 '나스타'- 나성범

나성범은 대학 시절 150km대 강속구를 뿌리는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연세대 출신인 그는 4년간 연고전에서 4경기에 나와 평균 자책점 2.34에 2승 1패를 기록하며 연세대 최고의 '에이스'로 불렸지만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점차 구위가 저하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나성범은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전체 10순위) 지명을 받아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나성범은 입단하면서 투수로 지명을 받았지만 김경문 감독의 권유로 2011년 가을 마무리 캠프를 통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타자 전향 첫 해인 2012년에는 NC 다이노스의 퓨처스 남부 리그 94경기에 나와 타율 0.303, 16홈런, 67타점, 29도루, 33사구를 기록했고 시즌 중에는 4할 타율을 넘기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2012년 남부리그 최다 홈런, 최다 타점을 기록했고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였다.

나성범은 타자 전향 이후 2014년 · 2015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 2016년에는 3년 연속 100타점 달성, 2017년에는 커리어 첫 OPS.1.00을 달성하는 등 호타준족의 거포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나성범은 NC다이노스의 중심타자로 차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도 평가받고 있다. 마산구장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나성범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위해 심심치 않게 방문해 그의 해외 진출 가능성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5]

연봉[편집]

2024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연봉은 1억5495만원이다. 역대 최다 금액이다. 투타 최고 연봉자는 류현진(한화 이글스)과 박동원(LG 트윈스)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이 2024년 3월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KBO리그 선수(신인 · 외국인 제외) 513명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1억4648만원)보다 5.8% 올랐다. 리그 역대 최다 평균 연봉으로, 종전 최다였던 2022시즌(1억5259만원)보다 1.5% 증가했다.

8년 170억원 계약으로 한화로 복귀한 류현진과 엘지 포수 박동원이 25억원으로 연봉이 제일 많다. 류현진은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은퇴)가 2019시즌 기록한 19년 차 최고 연봉과 타이를 이뤘다. 투수 부문에서는 고영표(KT 위즈)와 박세웅(롯데)이 각각 20억원, 13억5000만원을 받아 연봉 2, 3위에 올랐고, 야수 부문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20억원), 두산 베어스 김재환(15억원)이 박동원의 뒤를 이었다.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키움 히어로즈 주장 김혜성은 8년 차 최고 연봉자(6억5000만원)가 됐다.

2023년 연봉이 3억원이었던 박동원의 연봉 상승률은 733.3%에 이른다. 이 기록은 2022시즌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한유섬의 1233.3% 인상률에 이은 KBO리그 역대 2위 기록이다. 또한 박동원은 2020시즌 케이티(KT) 박병호(당시 키움)의 16년 차 최고 연봉(20억)도 넘어섰다. 박동원은 2022시즌이 끝난 뒤 기아(KIA) 타이거즈에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고, 4년 총액 65억원(계약금 20억원 · 연봉 총액 45억원)에 엘지로 팀을 옮겼다. 팀 샐러리캡 등의 영향으로 연봉이 해마다 다르게 책정돼 있다.

팀별로 보면, 2023년,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이룬 엘지의 평균 연봉이 1억9009만원으로 제일 많다. 총액은 87억4400만원으로 롯데(89억8400만원), 케이티(88억6000만원), 에스에스지(88억2900만원), 한화(88억2100만원)에 이어 5위지만 소속 선수 숫자 차이로 인해 평균 연봉은 가장 높다. 엘지는 인상률 또한 약 30.1%(1억4616만원→1억9009만원)로 가장 많이 평균 연봉이 오른 팀이 됐다.

10개 구단 중 평균 나이(25.6살)가 가장 적은 키움은 연봉 총액 57억5500만원, 평균연봉 1억2245만원으로 두 부문 모두 10위를 기록했다. 두산은 평균 연봉이 2023시즌 1억6215만원에서 1억3988만원으로 13.7% 감소하면서 감소 폭이 가장 큰 구단이었다. 두산과 함께 삼성(-8.7%), 엔씨(NC) 다이노스(-6.1%), 에스에스지(-3.3%), 키움(-1.3%)은 평균 연봉이 2023년보다 줄었다.

한편, 올 시즌 리그 평균 나이는 27.2살로 2023년(27.9살)보다 다소 젊어졌다. 리그 최고령 선수는 41살6개월19일의 에스에스지 추신수다. 최연소 선수는 18살1개월10일의 기아(KIA) 이상준이다. 삼성은 2024시즌 최장신, 최단신 선수를 모두 보유한 팀이 됐다. 새 외국인 투수 데니 레예스가 198㎝로 최장신 선수로 등록됐고, 최단신 선수는 163㎝로 등록된 김지찬, 김성윤이다. 리그 평균 신장은 182.2㎝다.[6]

각주[편집]

  1. 야구선수〉, 《네이버국어사전》
  2. 야구〉, 《나무위키》
  3. 야구선수 되는법 연봉 전망 야구선수의 모든것〉, 《직업탐험대》, 2023-09-25
  4. 4.0 4.1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목록〉, 《위키백과》
  5. 강경주 기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후 대성공 한 야구선수 TOP 8 대탐구〉, 《한국경제》, 2018-07-22
  6. 김양희 기자, 〈KBO리그 선수 올해 평균 연봉은 1억5495만원〉, 《한겨례》, 2024-03-1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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