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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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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선수는 골프 기량이 뛰어난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 또는 골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1]

개요[편집]

골프(Golf)는 공을 채(클럽, Club)로 쳐서 홀(구멍, Hole)에 넣으면 한 코스를 마치는데, 총 18개의 코스를 돌 때 소요된 타수로 승부를 겨루는 구기 스포츠이다. 즉, 공을 가장 적은 횟수로 쳐서 18홀을 마친 쪽이 이긴다.[2]

한국에서는 프로골퍼, 즉 돈을 목적으로 골프를 치는 골퍼를 4가지로 구분한다. 투어프로, 플레잉프로, 세미프로, 티칭프로가 그것인데 투어프로는 프로테스트를 통 과한 뒤 대회출전 자격까지 획득한 사람, 플레잉프로는 프로테스트를 통과했지만 대회출전권을 얻지 못한 사람, 세미프로는 프로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 티칭프로는 프로테스트에 아예 도전할 생각없이 레슨 자격만 획득한 사람이다.[3]

골프선수[편집]

하는 일

대회에 참가하여 상금을 타기 위해 시합을 한다. 대회는 여러 곳에서 일어나며 각기 대회의 명성과 상금도 제각각이지만 메이저 타이틀 대회는 우승했을떄의 명성과 상금이 아주 크다. 여러곳을 여행하며 골프 경기를 치루어야한다.

골프선수에게 필요한 적성과 능력

골프투어는 체력소모가 많다. 따라서 강인한 체력은 필수 조건이다. 코스를 분석 컴토하여 치밀한 작전을 세우기 위해 명석한 판단력과 분석력이 필요하다. 골프를 사랑하고 꾸준히 연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골프선수가 되는 과정

프로골퍼가 되기 위한 과정은 우선 매년 3, 8월에 열리는 semi protest를 통과한 이후 4, 9월에 열리는 tour protest 에 통과를 하여야만 자격요건이 주어진다. semi도 1년에 13개정도의 tour가있고 티칭프로도 1년에 1번 test가 있다. 자격요건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semi가 par72코스에서 75타를 쳐야만 가능하다. 단 미국에 프로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프로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요건은 18세 이상이면 된다.

한국 여자 골프선수[편집]

한국 여자 선수 32명이 세계 100위 이내에 들어 한국이 골프 최강국임을 재확인했다.

롤렉스 세계여자골프랭킹(WWGR)이 2023년 12월 26일 그 해 마지막으로 여자 골프선수들의 순위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선수는 3분의 1가량 들었다. 일본 선수가 21명, 미국은 14명이어서 큰 대조를 이뤘다. 주니어 육성에 열성적인 태국이 6명으로 꾸준히 우수 선수를 늘렸고 중국은 2명, 인도 1명으로 아시아 선수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최근 5년간의 100위 이내 선수 숫자 변화를 보면 한국은 팬데믹 이전만해도 40명까지 차지했으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30명 대로 다소 축소된 상태다. 일본은 9명에서 시작해 2배 이상 늘었고, 미국은 25명 대에서 대폭 줄어들었다. 반면 프랑스, 스위스, 남아공, 아일랜드, 인도에서 우수한 선수가 배출됐다. 한국 선수 중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고진영이 6위로 가장 높은 순위고, 김효주가 7위, 최종전 우승하면서 16위로 오른 양희영을 포함해 12명이 미국에서 활동한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소속은 15위인 신지애 한 명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선수는 32위인 박민지, 33위 이예원을 비롯해 19명이었다.

일본은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 6명이 100위에 들었는데 하타오카 나사가 17위로 가장 순위가 높았다. JLPGA에서는 올해 5승을 거둔 상금왕 야마시타 미유가 19위로 순위가 가장 높았다. 투어 집행부의 해외 투어 활동 장려 정책이 선수들의 랭킹 상승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 1위로 올라선 릴리아 부를 중심으로 5위 넬리 코다,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13위 알리슨 코푸즈 등이다. 부의 평균 포인트가 8.25로 2위 인뤄닝(중국)의 7.3포인트보다 높아 당분간 정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2023년 8월 처음 정상에 오른 부는 두 세 번 인뤄닝과의 자리다툼 끝에 16주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100위 이내 선수를 2명 이상 배출한 나라로는 린 그란트, 마자 스타크 등 4명을 보유한 전통의 유럽 골프 강국 스웨덴과 이민지, 한나 그린의 호주, 3명을 배출한 잉글랜드, 각각 2명씩 우수한 선수가 있는 프랑스, 스페인, 중국까지 10개국이다. 골프가 대중화한 남아공, 독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캐나다 등 10개국에서 한 명씩 밖에 없는 것은 의외다.

2024년에는 LPGA투어 33개가 열리는데 중단됐던 블루베이LPGA도 추가되면서 봄의 아시안스윙이 완전체로 돌아온다. 선수들의 LPGA투어 지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KLPGA투어 무대에서 검증받은 임진희, 이소미, 성유진 등이 퀄리파잉 테스트를 통과해 LPGA 무대를 뛴다.

평균 LPGA투어 대회 총상금이 353만2천 달러(46억원)로 기타 세계의 여자 투어보다 서너배 이상 높은 상금 체계와 차별화한 보상 시스템이 뛰어난 선수들을 자연스럽게 모이도록 한다. 우수 선수들끼리 경쟁하니 대회의 랭킹 포인트까지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4]

골프 레전드[편집]

한국 여자골프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4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고 세계무대를 장악하면서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여자골프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긴 전설들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전설이 된 개척자 구옥희

1978년, 한국프로골프협회 내 여자프로부가 설립됐다. 그리고 프로테스트를 통해 4명의 여자 프로골퍼가 탄생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는 이렇게 조촐하게 출범했다. 구옥희(1956 ~ 2013)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여자골프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구옥희는 골프장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를 배웠다. 남다른 실력을 보이면서 프로골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1978년 경기도 양주의 로열 골프장에서 열린 프로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새 인생을 걷게 됐다. 프로 무대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1979년 쾌남 오픈을 시작으로 1980년 한국프로골프선수권까지 5개 대회를 모조리 휩쓰는 등 발군의 실력을 펼쳐 국내 여자골프의 일인자로 우뚝 섰다.

한국에 안주하지 않았다. 1983년 일본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때부터 '선구자'이자 '개척자'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아피타 서클K 선크스 레이디스까지 25승을 거두면서 여자골프 역사에 차곡차곡 이름을 남겼다. 많은 골프팬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첫 우승자를 박세리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선수로 LPGA 투어에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 역시 구옥희다.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LPGA 투어 한국선수 1호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골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88서울올림픽과 겹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전설은 이제 진짜 전설이 됐다. 2013년 7월 일본에서 훈련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면서 골프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구옥희가 남긴 기록은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역사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프로 통산 44승(한국 20승, 일본 23승, 미국 1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구옥희의 골프역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

박세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맨발의 기적'이다. 1998년 7월. 뜨거웠던 여름밤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당시 국민들은 IMF 시름으로 고통받았다. 박세리는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태국의 제니 추아시리폰과 92홀(정규 72홀 연장 20홀)까지 이어진 혈투 끝에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심금을 극적인 명승부였고 IMF의 고통을 날리는 희망의 우승이었다.

특히 연장 18번 홀은 기적이었다. 티샷이 워터해저드 근처로 떨어져 위기를 맞았다. 이 홀에서 지면 우승은 물 건너가는 상황.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로 들어간 뒤 멋진 트러블샷 으로 공을 쳐 냈다. 세계가 놀란 감동 어린 명장이었고, 박세리는 이 하나의 샷으로 '맨발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극적으로 동타를 이룬 박세리는 재연장에 들어갔고, 서든데스 방식으로 치러진 2차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역전 드라마를 썼다.

그것은 '박세리 시대'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해에만 4승을 거머쥔 박세리는 1999년 4승, 2001년 5승, 2002년 5승을 따내면서 당당히 세계무대를 상대로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세리의 성공은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세리키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박세리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1988년 전후 세대가 바로 세리 키즈의 주역들이다.

2007년, 박세리는 마침내 '전설'이 됐다. LPGA 투어 입성 10년째를 맞은 박세리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LPGA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뒤 스코어카드르 접수하는 순간 명예의 전당 입회가 확정됐다. 이때까지 메이저 대회 5승 포함 23승(통산 25승), 2003년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를 수상한 박세리는 마지막 남아 있던 10년 이상의 경력을 채우면서 새로운 전설로 이름을 올렸다. 40년의 역사에서 명예의 전당 가입 영광을 누린 24번째이자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였다. 박세리는 골프의 불모지 한국을 세계 1등으로 만든 '영웅'이다. 그렇기에 골프팬들은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골퍼로 서슴없이 '박세리'를 떠올린다.

여제가 된 신지애 그리고 박인비

박세리의 뒤를 이은 '세리 키즈'는 세계 최강이 됐다. 그 맨 앞에는 신지애와 박인비, 최나연이 있다. 200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KLPGA 투어 SK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가 된 신지애는 단숨에 한국 여자골프를 평정했다. 역대 이렇게 대단한 선수는 없었다. 그는 모든 기록을 갈아 치웠다. KLPGA 한 시즌 최다우승(2007년 9승), 연간 최다 우승(2007년 10승), 시즌 메이저 최다 우승(2008년 3승), 통산 최다 우승(20승 • 구옥희와 타이), 최소 평균타수(69.72타) 등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들이 수두룩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0년 미국 LPGA투어로 무대를 옮긴 신지애는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상금왕이 됐고, 한국 첫 LPGA 상금왕으로 등극하는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신지애의 기록행진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돌연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신지애는 6월 19일 JLPGA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통산 45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설' 구옥희(44승)를 뛰어넘으며 한국 여자골퍼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다

신지애의 나이는 아직 28세 불과하다. 새 역사를 향한 신지애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2017녀 한 · 미 · 일 상금왕 등극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6월 9일. 한국 여자골프에는 또 한 명의 전설이 추가됐다. 박인비가 박세리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며 세계여자골프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박인비는 일찍부터 여자골프의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쥔 그는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며 독주했다. 속된 말로 "박인비가 나오면 대회에 나가나 마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이때부터 박인비의 목표는 미국을 향했다. 그리고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골프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도 박인비의 활약은 대단했다. 2002년 US걸스주니어 챔피언십우승, 2003년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 4강에 오르며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2008년 LPGA 투어로 데뷔한 박인비는 루키로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두각을 보였다. 당시 나이 19세11개월로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박인비는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골프를 포기하려고 마음먹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긴 고통을 참고 견뎌낸 박인비의 앞날엔 영광이 찾아왔다. 다시 우승하기까지는 4년1개월이 걸렸다. 2012년 에비앙마스터스 에서 투어 2승째를 따내며 '박인비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이후 박인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극강'의 골프여제가 됐다.

2013년은 최고의 해였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 뒤인 4월15일 마침내 세계랭킹 1위로 등극했다. 그리고 LPGA 챔피언십에 이어 US여자오픈까지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63년 만에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아쉽게 그랜드슬램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인 최초로 LPG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당당히 ‘골프여제’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15년에도 5승을 수확한 박인비는 그해 베어트로피를 수상하며 LPGA 명예의 전당 입회 기준인 27점을 모두 채웠다. 그리고 6월9일 PGA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투어 10년째 활동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며 박세리에 이어 9년 만에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한국여자골프의 전성기는 아직 시들지 않고 있다. '선구자' 구옥희, '개척자' 박세리의 뒤를 이어 신지애, 박인비가 바통을 이어받으며 전설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이 됐다.[5]

한국 남자 골프선수[편집]

PGA 코리안 6인방 상금만 '335억'

2532만311달러. 한화로 무려 335억원. 입이 떡 벌어지는 이 금액은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드를 보유한 한국 선수 6명이 벌어들인 상금이다.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을 앞두고 정규시즌 상금 집계는 마감됐다. 최종전은 상금이 아닌 '보너스' 형식으로 주기 때문에 공식 상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2023년 PGA 투어는 LIV골프와 경쟁하며 상금이 증액됐다. 덕분에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무려 상금 2101만4342달러(약 280억9000만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 시즌 2승을 합작한 '코리안 브러더스'의 상금 성적은 어떨까. 임성재는 올 시즌 우승은 없지만 톱10에 9차례나 들며 648만7421달러(약 87억원)를 상금으로 받았다. 상금 순위는 19위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다. '2년 차' 김주형은 시즌 중반 잠시 부진하기도 했지만 1승을 신고하며 상금으로 626만2918달러(약 84억원)를 챙겼다. 김주형은 상금뿐만 아니라 올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와 계약을 맺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임성재와 함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김시우도 올 시즌 우승을 맛보며 538만62달러를 상금으로 벌어들였다. 상금랭킹은 30위지만 한화로 무려 약 72억원이나 되는 거액이다.

아쉽게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넘버4' 안병훈이 323만1760달러(약 43억원)를 기록하며 상금순위 4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맏형' 이경훈은 242만6972달러(약 33억원)를 받아 내년 시드를 일찌감치 확정했다.

또 '막내' 김성현은 올 시즌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153만1178달러(약 20억원)를 기록했다. 그의 상금랭킹은 93위로 내년 시드 확보를 위해 남은 가을 시리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와 함께 풀시드는 없지만 PGA 투어 대회에 출전했던 노승렬은 45만5617달러, 강성훈은 27만4411달러를 손에 쥐었다.[6]

골프 레전드[편집]

1941년 일본오픈을 제패한 연덕춘부터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 무대를 밟은 한장상과 PGA 진출 1호 최경주, 최다승 기록 보유자 최상호, 아시아 골퍼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 양용은, 그리고 배상문, 노승열, 김시우에 이르기까지. 필드를 뜨겁게 만든 남자골퍼들의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1호 프로골퍼 연덕춘

연덕춘(1916 ~ 2004년)은 1934년 일본으로 골프유학을 떠나 프로 자격을 획득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프로골퍼였다. 그리고 1941년 열린 일본오픈골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해외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골퍼로 이름을 남겼다. 일본 호소가와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에서 4라운드 합계 290타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프로골퍼의 일본오픈 첫 제패였고, 전설의 시작이었다. 연덕춘의 프로골퍼 한국에 프로골퍼라는 직업이 없던 시절 혈혈단신으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골프가 어떤 스포츠인지도 모르던 시절, 그의 활약은 고국의 동포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작은 계기가 됐고, 프로골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도전과 성취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교두보가 됐다.

연덕춘의 영향으로 많은 프로골퍼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타도 나왔다. 한장상, 김학영 등이 일본의 프로골프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한국 남자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그 중 한장상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장상은 KPGA 제6대 회장(1984년 ~ 1987년)을 역임했고, 한국에서 통산 19승을 기록한 전설이다. 1938년생인 한장상은 성동고 재학시절 열일곱의 나이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서울골프장에서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골프를 배우게 됐다. 그는 프로골퍼 1호 연덕춘의 제자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지도를 받은 건 아니다. 그저 어깨 너머로 스윙을 배웠다. 거의 독학으로 골프를 배웠지만, 재능이 뛰어났다.

프로가 된 한장상의 활약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64년부터 '내셔널타이틀'한국오픈을 4연패했고, 1958년부터 2007년까지 50년 연속 KPGA 선수권에 출전, 1968년부터 1971년까지 4년 연속 우승 및 통산 7회 우승 등 한국 남자골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활약은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일본 무대에서 통산 3승을 수확했다. 특히 1972년 일본오픈 우승으로 연덕춘의 대를 이어 다시 한 번 일본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렸다. 당시 일본 골프의 1인자 '점보'오자키, 태국의 스코리온 샴과 최종일까지 불꽃 튀는 접전을 펼쳤다.

끈질긴 추격과 혼전 속에서 한장상은 1타 차로 오자키를 꺾으며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 우승으로 이듬해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에 참가하게 됐다. 선배들의 활약으로 더 많은 프로골퍼들이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1970년대 후반들어 잠시 뜸해졌지만, 임진한을 시작으로 김종덕, 최경주가 뒤를 이었다. 특히 김종덕은 화려한 플레이를 앞세워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1997년 기린오픈에서 일본의 쟁쟁한 스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일본은 넘어 아시아무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97년 ~ 1998년 아시안 투어 상금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3승, 대기록의 신화 최상호

최상호(61)는 경기 고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인근의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됐다. 22세이던 1977년 6전7기 끝에 프로골퍼가 된 최상호는, 1978년 데뷔해 여주오픈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한장상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숱한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남자골프의 전설이 됐다. 그리고 2005년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50세의 나이로 통산 43승을 올리며 한국 남자골프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그 밖에도 KPGA투어 상금왕 9회, 1978년부터 10년 연속 우승, 1981년부터 19년 연속 상금랭킹 10위내 진입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최상호가 오늘날 남자골프의 전설이 된 건 엄청난 연습 덕분이다. 최상호가 얼마나 지독한 연습벌레였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그는 170cm 밖에 되지 않는 단신이다. 그러나 신장에 비해 팔이 길다. 그 이유가 젊은 시절 하루 1300개 이상의 연습볼을 때려 팔이 늘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반듯한 모습, 성실한 플레이와 꾸준한 노력으로 후배들의 두둑한 신망을 얻고 있다. 피나는 노력이 최상호를 전설로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의 PGA 최경주

전남 완도 출신의 시골뜨기 촌놈은 골프가 뭔지도 몰랐다. 역도 선수를 하던 그는 우연히 동네에 들어선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그 뒤 최경주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한국남자프로골프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이 됐다. 1994년 프로가 된 최경주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골퍼가 됐다.

1995년 팬텀오픈에서 프로 첫 승을 달성하며 기대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1996년 한국오픈, 1997년 팬텀오픈, KPGA 선수권,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서 잇달아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한국 1인자가 됐다. 1999년부터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그해 한국에서 한국오픈과 PGA컵, 일본에서 기린오픈과 우베고산오픈을 제패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최경주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1999년 12월, 이름도 생소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문을 두드렸으며, 한국인 최초로 PGA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PGA 투어 데뷔 초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드 유지에 실패하면서 다시 퀄리파잉스쿨로 내려가는 수모를 감수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최경주의 꿈과 도전을 가로 막지 못했다. 마침내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남자골프의 위상을 드높였다. 최경주의 활약은 시작에 불과했다. 같은 해 템파베이클래식에서 두 번째 우승을 따냈고, 2005년과 2006년 크라이슬러클래식, 2007년 메모리얼토너먼트, AT&T내셔널, 2008년 소니오픈까지 통산 7승째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2009년 이후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 체중 조절 실패로 인해 예상보다 슬럼프가 길어졌고, 마흔을 앞둔 나이에 '퇴물'취급까지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최경주의 골프인생이 도전과 역경을 이겨낸 드라마였던 것처럼, 그는 다시 일어섰다. 2011년 5월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부활했다. 최경주의 도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PGA 통산 10승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우승행진이 4년째 멈춰 서있지만, 최경주이기에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전설을 잇는 믿음직스런 영건들

한국 남자골프의 미래는 밝다. 연덕춘, 한장상, 최상호, 최경주의 뒤를 이어 배상문, 노승열, 김시우(이상 PGA 투어), 안병훈, 이수민, 왕정훈(이상 유러피언투어), 김경태, 송영한(이상 일본 JGTO) 등 영건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전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영건의 맏형격인 배상문은 두둑한 배짱과 강인한 승부사 기질이 돋보인다. 현재 군복무 중으로 PGA 투어엔 내년 10월 복귀 예정이다. 2005년 프로로 데뷔한 배상문은 특유의 장타를 앞세워 한국 남자골프를 평정했다. 2006년 에머슨퍼시픽오픈에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07년 SK텔레콤오픈, 2008년 한중투어 KEB인비테이셔널 그리고 코오롱 한국오픈 정상을 차례로 밟으며 스타로 성장했다.

배상문이 진정한 한국 1인자로 평가받은 건 2009년이다. 매경오픈에서 오태근과 연장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코오롱 한국오픈에서는 당시 주목받은 일본의 골프스타 이시카와 료, 그리고 PGA 투어의 신성 로리 매킬로이를 따돌리고 대회 2연패를 차지하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코오롱 한국오픈 두 번의 우승으로 '한국오픈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국내를 평정한 배상문은 곧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0년부터 일본투어를 병행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첫해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곧 배상문의 성공시대가 펼쳐졌다. 2011년 바나H컵, 도카이클래식과 일본오픈에서 3승을 거둔 배상문은 상금왕에 오르며 골프인생의 꽃을 피웠다. 일본무대마저 평정한 배상문은 더 큰 도전을 결심했다. 미 PGA 투어 세 번째 도전 만에 출전권을 따내면서 빅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3년 바이런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최경주, 양용은 (2009년 혼다클래식, PGA챔피언십)에 이어 PGA 투어에서 우승한 세 번째 한국선수가 됐다. 2013년과 2014년 신한동해오픈을 연속으로 우승했고, 그해 10월 2014 ~ 2015시즌 PGA 투어 개막전 프라이스닷컴오픈에서 PGA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남자골프의 새로운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16년 새로운 에이스가 떴다. 21세의 김시우다. 2012년 PGA Q스쿨에서 17세5개월6일의 나이로 최연소 통과 기록을 세웠던 김시우는, 지난 8월 PGA 투어 윈덤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연소 PGA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최경주와 배상문의 뒤를 잇고 있다. 유럽에서도 영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안병훈이 유러피언투어의 메이저대회인 BMW PGA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올해는 이수민이 중국에서 열린 선전인터내셔널, 왕정훈은 핫산2세 트로피와 모리셔스오픈 정상에 오르며 유럽에서도 '코리아'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코리언 브라더스의 승전보는 새로운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이다.[7]

세계 골프선수 연봉 / 랭킹 순위[편집]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Forbes"에서 조사한 세계 골프 선수들의 지난 2023년 수입 랭킹에서 존 람"Jon Rahm" 선수가 2억 1800만 달러(약 3020억)로 1위로 나타났다. "존 람"선수는 지난해 PGA 상금은 약 1600만 달러였지만 최근 사우디 국부 펀드가 후원하는 LIV 골프로 이적하며 천문학 적인 금액을 벌어들였다.

한편 현재 남자 골프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Scottie Scheffler" 선수는 지난 1년 6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골프 선수 수입 랭킹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부터 세계 골프 선수 1년 수입(연봉 + 상금 + 기타 수입) 순위 Top 10과 현재 남자골프 세계 랭킹은 아래와 같다.

  • 1위: 존 람"Jon Rahm"
2억 1800만 달러(약 3020억) 1994년 11월 10일 스페인
  • 2위: 로리 맥길로이"Rory Mcilroy"
8300만 달러(약 1150억) 1989년 5월 4일 영국
  • 3위: 타이거 우즈"Tiger Woods"
6700만 달러(약 928억) 1975년 12월 30일 미국
  • 4위: 스코티 셰플러"Scottie Scheffler"
6100만 달러(약 845억) 1996년 6월 21일 미국
  • 5위: 캐머런 스미스"Cameron Smith"
4700만 달러(약 650억) 1993년 8월 18일 오스트레일리아
  • 6위: 브라이슨 디샘보"Bryson DeChambeau"
4400만 달러(약 610억)1993년 9월 16일 미국
  • 7위: 브룩스 켑카"Brooks Koepka"
4300만 달러(약 596억) 1990년 5월 3일 미국
  • 8위: 빅토르 호블란"Viktor Hovland"
4000만 달러(약 554억) 1997년 9월 18일 노르웨이
  • 9위: 필 미컬슨"Phil Mickelson"
3800만 달러(약 527억) 1970년 6월 16일 미국
  • 10위: 더스틴 존슨"Dustin Johnson"
3700만 달러(약 513억) 1984년 6월 22일 미국

현재 남자골프 세계랭킹은 1위부터 차례대로 "스코티 셰플러", "로리 맥길로이", "젠더 쇼플리", "루드비그 아버그", "윈덤 클라크" 선수가 Top 5이다. 또한 다음은 "콜린 모리카와", "빅토르 호블란", "패트릭 캔틀레이", "브라이슨 디샘보", "존 람", "사히스 티갈라", "토미 플릿우드", "브라이언 하먼" 선수 등의 순위이다.[8]

대한민국 골프선수[편집]

남자 골프선수
  • 강덕균
  • 강시후
  • 강재원(모델)
  • 김경태(1986)
  • 김민규(골프선수)
  • 김시우(골프선수)
  • 김주형
  • 김한별(골프선수)
  • 김홍기
  • 박상현(골프선수)
  • 박준석(골퍼)
  • 박효원
  • 방극천
  • 배상문
  • 백상윤
  • 소민수
  • 안병훈(골프선수)
  • 양용은
  • 염돈웅
  • 오석현(골프)
  • 이승만(골프선수)
  • 이승민(골프)
  • 이영돈(골프)
  • 이태섭(골프선수)
  • 임성재(골프선수)
  • 임진한
  • 장유빈(골프선수)
  • 장재근(골프선수)
  • 장준형
  • 조태운
  • 최경주
  • 최호성
  • 최홍림
  • 한재민(골프선수)
  • 홍창규
  • 황두현(골프선수)
여자 골프선수
  • 고나혜
  • 고지우
  • 고진영
  • 구옥희
  • 김가형
  • 김나영(골프선수)
  • 김동휘(골프선수)
  • 김미현
  • 김민별
  • 김세영(골프선수)
  • 김수지(골프)
  • 김시원(골프선수)
  • 김아림(골프선수)
  • 김영(골프선수)
  • 김자영
  • 김재희(골프선수)
  • 김지현(골프선수)
  • 김하늘(골프선수)
  • 김효은(골퍼)
  • 김효주(골프선수)
  • 노승희(골프선수)
  • 류혜인
  • 문정민(골프선수)
  • 박결
  • 박민서(야구선수)
  • 박민지(골프선수)
  • 박성현(골프선수)
  • 박세리
  • 박시현(골프선수)
  • 박인비
  • 박주영(골프선수)
  • 박지영(골프선수)
  • 박지은(골프선수)
  • 박진이
  • 박현경
  • 박혜준(골프선수)
  • 방신실
  • 배경은
  • 배소현
  • 백규정
  • 변현민(골프선수)
  • 서연정(골프선수)
  • 서지연(골프)
  • 서희경
  • 성유진(골프선수)
  • 손새은
  • 송가은
  • 신지애
  • 안나린
  • 안선주
  • 안소현(골프선수)
  • 안송이
  • 안신애
  • 양희영
  • 오지현
  • 유소연(골프선수)
  • 유해란
  • 유현조
  • 유현주(골프선수)
  • 윤이나(골프)
  • 이가영(골프선수)
  • 이다연
  • 이동은(골프선수)
  • 이미림
  • 이보미
  • 이새하
  • 이소미
  • 이소영(골프선수)
  • 이승현(골프선수)
  • 이예원(골프선수)
  • 이율린
  • 이정민(골프선수)
  • 이정은(골프선수)
  • 이지영(골프선수)
  • 이채은(골프선수)
  • 인주연
  • 임희정
  • 장정(골프선수)
  • 장하나(골프선수)
  • 장효준(골프)
  • 전예성
  • 전인지
  • 정윤지
  • 정지유
  • 정하민
  • 정현우(골프선수)
  • 조아란
  • 조아연
  • 지승은
  • 지은희(골프 선수)
  • 최나연(골프선수)
  • 최혜진
  • 한지민(골퍼)
  • 한진선
  • 한희원(골프)
  • 허다빈(골프선수)
  • 허미정
  • 허윤경
  • 허은지
  • 현세린(골프선수)

각주[편집]

  1. 골프선수〉, 《네이버국어사전》
  2. 골프〉, 《나무위키》
  3. 골프선수〉, dream4ever
  4. , 남화영〈한국 여자 32명 세계 100위 이내〉, JTBC-GOLF, 2023-12-28
  5. WAAC, 〈대한민국 골프 레전드 (여자 골프 편)〉, KOLON MALL, 2017-08-28
  6. 조효성 기자, 〈PGA 코리안 6인방 상금만 '335억'〉, 《매일경제》, 2023-08-23
  7. WAAC, 〈대한민국 골프 레전드 (남자 골프 편)〉, KOLON MALL, 2017-08-28
  8. plaything, 〈세계 골프선수 연봉 순위와 세계랭킹 순위 〉, 《네이버블로그》, 2024-07-19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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