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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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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노동자(精神勞動者)는 주로 두뇌를 써서 노동하는 사람을 뜻한다.[1] 화이트컬러(white color)라고도 부른다. 지식노동자는 정신노동자에 속한다. 정신노동자의 반대말은 육체노동자이다.

개요[편집]

정신노동자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조작하는 과학기술자 또는 거대한 생산조직을 관리하는 경영관리자를 뜻한다. 원래 인간의 노동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통일로써 성립된다. 그러나 생산력의 발달로 인해 생산조직이 확대됨에 따라 이 두 가지 기능이 차츰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자본주의 경제가 고도화하면서 분업이 극도로 진전되자 정신노동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그리하여 현대산업사회에서는 고급기술자 · 관리직 · 전문직 등 정신노동자가 대량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고급인력 확보 여하가 한 나라의 경제발전의 장래를 좌우할 만큼 그 중요성이 커졌다.[2]

정신노동과 육체노동[편집]

두뇌노동과 근육노동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노동의 차별이며, 또한 역사적으로 이 차별의 소멸은 약속되어 있다. 정신노동(학자, 예술가, 승려, 교사, 의사, 변호사, 그 외에 여러가지 기술에 관계하는 기술자 등이 이에 속한다.)은 육체노동에서 분리되었으며 반면에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직접생산자는 지배계급의 착취대상이 된다(단, 자본주의의 발전은 정신노동자도 착취대상으로 변화시켜 간다.). 이러한 분리는 노예제 사회의 초기에 발생한 분업의 결과이다.

분업의 발생 당시 육체노동으로부터 정신노동의 분리는 일정한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과학이나 기타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적대적인 계급사회에서 이 분리는 계급적 적대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신노동은 지배계급의 특권이 되는 한편, 육체노동은 피착취계급의 운명이 된다. 자본주의의 대두는 자본가 자신도 처음에는 봉건제 사회 하에서 피착취계급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은 직접생산자를 착취하는 입장에 있으며 그리고 이 계급을 봉건적 피지배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정신노동에의 종사자들을 창출해 냈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대립의 격화는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내부로부터도 피착취 · 피지배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보이며, 이 사람들과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정신적 소산, 과학적, 예술적 등등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그것에 의해서 소멸된 것은 아니다. 계급사회로부터 벗어나는 제1보인 사회주의에서도 아직 양 노동의 차별은 남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고 다만 일의 분야의 차이로 된다.

그리고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게 되며, 또한 육체노동으로 수행했던 직접생산도 기술의 진보에 따라 점차로 높은 문화적 · 기술적 수준이 요청되어 이 방면에서도 양 노동의 실제적 접근이 진행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육체노동의 대부분이 자동기계화되어 인간의 노동시간 단축은 육체적 및 정신적 다방면에의 활동을 발전시킬 기회를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게 되며, 낡은 분업의 협애한 전문화에 매몰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따라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가 해소된다.[3]

특징[편집]

정신노동과 피로

육체노동이 몸의 근육을 쓰는 것이라면 정신노동은 뇌의 뉴런을 쓰는 것만 다를 뿐 역시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 피로감을 느끼고 수행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신노동의 피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집중해서 뭔가를 할 때나 멍때리고 있을 때 뇌의 전반적인 활동도는 비슷하고 따라서 소모하는 에너지도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신노동을 하지 않을 때도 뇌의 몇몇 영역은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이를 디폴트모드네트워크라고 부른다. 바둑대국처럼 뇌가 어떤 일을 하면 해당 영역이 활발해지는 대신 디폴트모드네트워크는 꺼져 전체적인 에너지 소모량은 별 차이가 없다. 뇌가 에너지를 덜 쓰려면 잠을 자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더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정신노동을 지속했을 때 피로를 느끼고 실수도 잦아지는 걸까. 이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또는 자원) 소모 이론은 힘을 잃었지만 또 다른 가설인 독소 축적 이론이 아직 남아있다. 정신노동으로 뇌가 혹사하면서 축적된 노폐물의 독성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해 피로를 느끼고 뇌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인지 피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노폐물을 청소할 때까지 더 만들지는 않게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 인지능력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인 '측면 전전두피질(lPFC)'의 활성은 정신노동이 지속될수록 감소한다. 한마디로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가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축적을 막으려고 하는 독성물질은 무엇일까.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는 이 질문에 답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파리뇌연구소가 주축이 된 프랑스 공동 연구자들은 정신노동을 할 때 뇌의 물질 농도 변화를 분석한 결과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유력한 후보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정신노동의 강도를 달리한 실험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화면에서 알파벳을 연속해 보여주며 강도가 약한 쪽은 지금 보는 게 '바로 앞의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묻고 강도가 강한 쪽은 '세 번째 앞선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묻는 식이다. 후자의 경우 정답을 말하려면 실험 내내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써야 한다.

정신노동의 강도에 따라 인지 피로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는 행동심리학 방법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선택' 실험이다. 인지 피로가 심해질수록 판단력이 흐려져 충동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40유로를 받는 조건과 한 달 뒤 50유로를 받는 조건 가운데 선택할 때 정신노동이 길어질수록 인지 피로로 전자를 택하는 비율이 늘어난다. 실제 이번 실험 결과도 강한 정신노동을 한 그룹이 약한 정신노동을 한 그룹에 비해 충동적 선택을 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연구자들은 자기공명분광법(MRS)으로 정신노동을 지속할 때 일어나는 뇌의 측면 전전두피질에서 대사물질의 농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MRS가 확인할 수 있는 대사물질 가운데 글루타메이트만이 실험군(강한 정신노동)과 대조군(약한 정신노동)에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전자가 후자에 비해 농도가 높았다. 정신노동을 지속하면 글루타메이트 농도가 올라가고 어느 선을 넘으면 인지 피로가 나타나 더이상 축적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각피질(V1)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깨어있을 때 의도적으로 눈을 감지 않는 이상 시각피질의 뉴런은 늘 활동하기 마련이지만 오후나 저녁이 돼도 시각의 오류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즉 시각 피질에서는 지각 피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 실험군과 대조군의 시각피질에서 글루타메이트의 농도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측면 전전두피질의 활동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번 실험 결과만으로는 명쾌한 답을 할 수 없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답이 될 수 있는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측면 전전두피질은 정신노동뿐 아니라 인지능력이 필요한 의도적 활동에서도 동원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측면 전전두피질이 계속 가동된다는 건 우리가 의도적인 특정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이고 별 성과 없이 몸만 축나거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뇌는 이런 활동을 그치게 하려고 피로를 느끼고 측면 전전두피질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게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4]

각주[편집]

  1. 정신노동자〉, 《네이버 국어사전》
  2. 정신적 노동〉, 《두산백과》
  3.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철학사전》
  4.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정신노동만 해도 피로한 이유〉, 《동아사이언스》, 2022-08-23

참고자료[편집]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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