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식물)
피는 볏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잎은 가늘고 긴데 잎 면이 칼집 모양으로 줄기를 싸고 있다. 여름에 연한 녹색 또는 자갈색의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피고 열매는 영과(潁果)를 맺는다. 열매는 식용하거나 사료로 쓴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밭이나 습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1]
개요
피는 아시아 원산으로 예로부터 한국 · 인도 · 중국 · 일본 · 유럽 등지에서 재배되었으며, 현재는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재배된다. 옛날에는 구황작물로서 많이 재배하여 왔다. 환경적응성이 커서 산지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디며 냉수답 또는 밭에서는 냉수가 솟는 저습지에 재배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에는 거의 재배되지 않고 있다. 벼와 비슷하다.
잎은 길이 30 ∼ 50cm, 나비 2 ∼ 3cm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밑부분이 긴 잎집으로 되고 잎혀가 없다. 꽃은 8 ∼ 9월에 피고 원추꽃차례에는 가지가 많다. 작은이삭은 1개의 꽃이 되고 길이 3.5 ∼ 4mm로 까끄라기가 있거나 없다. 첫째 포영과 둘째 포영에 5맥이 있고 호영과 더불어 겉에 털이 있다. 수술은 3개, 암술은 1개이다. 7 ∼ 10개의 분얼이 생기며 여름에 이삭이 나온다. 종자는 노란색 또는 어두운 갈색으로 익는다.
성질은 강건하고 생육기간이 짧아서 100 ∼ 120일이다. 논 · 밭에서 모두 재배되며 파종기는 추운 지방에서는 4월 중순부터 5월 하순, 따뜻한 지방에서는 병충해를 피하기 위하여 좀더 늦어진다. 피는 보통 가볍게 쪄서 절구로 정백한다. 단백질 · 지방이 많으며, 영양분은 쌀 · 보리에 떨어지지 않으나 소화율이 나쁘다.
밥에 섞어 먹거나 제분해서 떡 · 엿을 만들며 밀가루와 섞어서 빵을 만들기도 한다. 또 된장의 원료로도 쓰고 소주의 양조에도 이용한다. 피짚은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아서 겨울에 가축사료로 중요하다. 특히 석회분이 많아서 말의 사료로 쓰면 연골증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말의 사료용으로 재배한다.[2]
역사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실로 조, 수수, 콩과 함께 신석기 시대 때 제사장, 족장 같은 높은 사람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주로 재배하던 작물이었다고 한다. 피는 환경적응성이 매우 뛰어나 척박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피농사는 벼농사보다 쉬웠기에 먼저 재배되었고, 벼농사는 많은 인력이 관개수로(灌漑水路) 작업에 투입될 수 있던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김제 벽골제는 관련 대표적 유적이다. 신라시대 함안군 성산산성에서도 다른 지역에서 수확한 피를 운송시키면서 꼬리표로 사용했던 목간이 나오는 등 식량으로서 유통되던 물품이었다. 조선시대에도 한때 오곡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널리 재배했다.
맛이 별로이기 때문에 오늘날 수경문화권에서 피를 주식으로 재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한국도 조선시대쯤 되면 이미 '피'는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나 먹는 구황작물로나 취급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기운이 없고 비실비실한 사람에게 '피죽도 못 얻어먹었냐?'고 하는 것이 그 예시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널리 재배했지만, 식량증산정책의 일환으로 벼 재배를 정부 차원에서 권장하고 보조하면서 식용작물로서의 피 재배는 한국 내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3]
벼농사 최대의 장애물
현재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악질 잡초 취급을 받는다. 원래 일본 에도 시대의 농서에서부터 아예 "저 잡초는 가장 해로운 잡초다!"라고 했을 정도. 이것을 뽑거나 제거하는 것을 가리키는 '피사리'라는 말까지 존재할 정도이다. 건조한 환경을 선호하는 한반도의 잡초들 대부분은 일부 습지식물이나 반수생식물 외에는 논에 발을 붙이지 못하나, 피만큼은 그 엄청난 적응력으로 논에서도 번성한다. 심지어 염분이 있는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니 말 다한 셈이다. 정기적으로 피사리를 하지 않은 논에서는 오히려 벼를 압도하며 절대적 우점종으로 자리잡는데, 옥수수 비슷하게 C4 식물이라 광합성 효율이 더 뛰어나면서 고정 질소의 80%를 선점할 수있을 정도로 지력 강탈도 심하고, 생육기간이 3개월이라 벼보다 씨를 맺는 것이 훨씬 빠른데다 죽을 때 씨를 다뿌리고 죽기 때문에 그야말로 논 몇 마지기를 몇 달만에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극강의 똥땅제조기가 따로 없다. 그렇게 번식력이 뛰어나니 주식으로 쓰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정작 맛은 더럽게 없다는 데서 정말 밉상인 식물이다.
더구나 벼, 보리, 밀 등과 같은 화본과(禾本科, 벼과)고, 특히 벼와 매우 유사하여 초보자는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다. 물피는 일정 시기 이후부터는 옆으로 퍼져 자라기에 구분이 쉽지만, 강피는 이삭이 나기 전까진 벼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이앙법을 하는 이유도 역시 이 때문이며, 모양으로는 구분할 수 없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를 심고 그것을 벗어나 자라는 것은 무엇이든 모조리 피로 간주하여 제거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생리적으로도 유사하기 때문에, 벼에겐 비교적 안전하고 피만 말려 죽이는 제초제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잡초로서는 만렙이 따로 없는 셈이다. 그나마 가라지(독보리)같은 독성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다.
즉, 그냥 수시로 직접 논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손으로 뽑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논농사에 제대로 손이 많이 가게하는 주범이다.
2009년에는 서산 간척지, 김제 등 논에 제초제를 다량 처리하는 지역에서 제초제에 저항성이 있는 피가 등장하여 방제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피는 여러 잡초 중에서도 유달리 제초제 및 가뭄, 염분 등 스트레스 환경에 저항성을 빨리 발전시키는, 말하자면 적응성이 뛰어난 식물이다. 따라서 유전형질과 그에 따른 표현형질도 매우 다양한 편이다.
심지어 종류도 재배종을 제외하면 4종이나 되어 논농사꾼을 괴롭힌다.[3]
식용피
'피'라고 하면 논에서 골치 아픈 잡초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잡초피와 비슷하면서도 피와는 달리 낱알이 크면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식물, '식용피'는 조선시대 오곡의 하나였으며 1930년까지도 재배면적이 10만ha가 넘는 중요한 곡식이었다. 수리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비가 오지 않아 논에서 이앙시기 를 놓쳐버린 후에도 논에 심었을 때 수확 이 가능하여 가을날 굶주림을 면하게 해줬던 고마운 작물 식용피는 산업화와 쌀 자급정책의 확대 속에서 재배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히 생산과 소비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식용피에는 소립곡식으로서 영양적 가치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종실은 가소화성 단백질의 함량이 높고 특히 필수아미노산은 쌀과 보리에 비해 1.5 ~ 3배에 해당한다. 또한 조, 기장 등 다른 소립잡곡과 마찬가지로 칼슘과 같은 미네랄과 비타민 함량도 높다. 식용피의 건강기능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신품종 '보라직'을 이용하여 생리활성 효과를 연구한 결과, 대표적인 생활습관질환의 하나인 당뇨, 콜레스테롤 및 염증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용피 추출물이 당뇨와 관계있는 α-amylase와 α-glucosidase 효소를 저해하는 활성을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2형 당뇨를 일으킨 마우스에 식용피 추출물(600 mg/kg)을 투여하였을 때 투여하지 않은 마우스에 비하여 혈액 중 혈당 및 콜레스테롤 함량이 30% 감소되었다. 또한, LPS를 주사하여 염증을 일으켜 붓도록 만든 마우스에 식용피 추출물 600 mg/kg 투여시 22%, 1,200 mg/kg 투여 시 94%의 붓기 감소가 일어나 항염증에도 강한 활성이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용피는 다른 잡곡에 비해 지방함량이 높은 편(5 ~ 6%)으로 음식으로 만들었을 때, 고소한 풍미를 가지고 있고, 배유특성이 메성으로 찰기가 없어 가공적성이 우수하여 혼반용, 국수용, 죽용 등 다양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예로부터 기력이 달려 보이는 이에게 '사흘 동안 피죽 한 그릇 못 먹었느냐'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 피죽 한 그릇은 우리가 알지 못하던 건강과 맛이 담긴 훌륭한 식품이었다.
- 논, 밭을 가리지 않는 식용피
식용피와 다른 잡곡과 재배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식용피는 논과 밭 모두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것이다. 최근 연속된 대풍으로 쌀 재고량이 증가함에 따라 농민과 정부 모두 대풍에 한숨을 쉬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식용피의 작물학적 특징은 다시 번 식용피의 가치를 고려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이러한 식용피의 재배적 가치와 건강기능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식용피 품종을 개발하였다. 2014년 개발된 식용피 품종 '소담직'은 보통기 (5월 15일) 파종시 재배기간이 85일, 이모작기 (6월 15일) 파종시 70일로 매우 짧은 단기성 품종이고, 2015년 개발된 '보라직'은 보통기 파종시 재배기간 95일, 이모작기 파종시 재배기간 80일에 해당되는 중생종 품종이다. '소담직'에 비하여 재배기간이 더 긴 대신 '보라직'은 '소담직'에 비해 수량이 50% 이상 증가하는 다수성 품종이다.
식용피 '소담직'과 '보라직'은 과거 재래종 피와 달리 모두 직립형 초형으로 쓰러짐에 강하여 기계화 재배에 유리하다. 즉, 논에 이앙기로 기계 이앙하고, 콤바인으로 수확이 가능함으로써 논에서 벼 대체 작물로 이용하기 쉽고, 재배기간이 짧아 다양한 작부체계에도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작물이다. 건강기능성이 우수하고, 논에서도 잘 자라는 식용 피, 새로운 기능성 웰빙 곡식으로서 앞으로 농산업발전에 한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4]
성분 및 효능
피쌀의 일반성분과 무기성분은 현미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다. 비타민 B1은 0.61 ~ 0.78mg(현미는0.49 ~ 0.55mg), 비타민 B2는 0.15 ~ 0.18mg(현미는 0.06 ~ 0.10mg)으로 약 2배나 많고, 칼슘과 인은 백미의 2배, 철분은 3배, 식이섬유는 4배나 많다. 피쌀에 들어있는 아미노산은 모두 17종류이고, 그 총량은 69 ~ 106mg으로 밀이나 현미와 비슷하며, 피쌀 기름에는 테르페노이드인 사바밀레틴이 들어있다.
피쌀은 원기를 돋궈주고 소화기를 보강하며 몸의 열을 식혀서 일사병을 치료한다. 그래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피를 시원하게 해주고 소화불량에 사용한다. 또한 피의 뿌리와 잎은 외상출혈에 사용한다.[5]
연구에 따르면, 잡곡 식용피가 당뇨 억제와 염증 완화에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농촌진흥청과 경북대학교의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식용피 추출물이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약 30% 낮추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한, 식용피 추출물이 염증 유발을 억제하는 효과도 입증되었으며, 염증 부위의 부종을 감소시켰다. 식용피는 조선시대부터 재배되어 온 중요한 곡식으로, 루테오린, 트리신, 캠페롤 등의 성분이 미백과 항산화에 우수한 기능을 한다. 최근 개발된 '보라직' 품종은 높은 수량성과 짧은 재배 기간을 특징으로, 다양한 작부체계에 적합하다. 식용피는 잡곡밥, 국수, 죽 등으로 활용 가능하며, 기능성 소재로서 큰 잠재력을 지닌 식물로 주목받고 있다.
재배
피는 원체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주로 사는 곳을 보면 논에 주로 나는 물피, 강피와 들이나 밭에 주로 나는 돌피, 습지에 잘 자라는 쇠돌피, 바닷가 습지의 양지에 잘 자라는 갯쇠돌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재배종은 이보다 개량되었다.
생육기간이 빠르며 환경적응성이 강한데다가 영양분이 풍부하므로 상품작물로 재배하는 곳은 생각 외로 꽤 있는 편이다.
대한민국에서도 2011년에 시험적으로 식용 피가 재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연구에 따르면 미백효과가 높으며 항 당뇨, 항산화 효과가 있어서 약용식품으로서의 효과도 있으며 영양분도 풍부하므로 상품작물로서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맛이 일반적인 벼쌀로 지은 밥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같은 피라도 여러 가지 아종이 있으며, 식용작물로 재배되는 피는 '수래첨' 이라는 품종이다. 원래 한국의 재배종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피 재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8년이 되어서야 농촌진흥청에서 수래첨을 포함해 한국 원산 토종유전자원 1500여 점을 일본에서 반환받으면서 시험 재배하던 실정이었다. 2016년에는 보라직이라는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어 2024년 현재에도 팔리고 있다.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로 취급당하는 피에 비해 생산량이 많다. 물론 잡초로 취급당하는 기타 품종의 피도 먹을 수는 있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맛이 나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농사지을 만한 작물로서는 상품가치가 미달될 수밖에 없다.[3]
각주
참고자료
- 〈피〉, 《네이버 국어사전》
- 〈피〉, 《두산백과》
- 〈피(식물)〉, 《나무위키》
- 곳간지기, 〈새로운 웰빙곡물 식용피〉, 《네이버 블로그》, 2017-02-14
- 체질박사, 〈피쌀, 피 효능과 부작용, 주의사항〉, 《네이버 블로그》, 2014-10-2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