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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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르카섬(스페인어: Mallorca, 카탈루냐어: Mallorca)은 지중해 발레아레스 제도에 있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은 3,640.11km²이고,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91만 2,171명이다. 중심 도시인 팔마데마요르카는 발레아레스 제도 자치 지역의 중심지이다.섬의 이름은 '큰 섬'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insula maior'에서 유래했다.[1]
개요
마요르카섬은 서유럽에 위치한 스페인 본토 연안 동쪽, 지중해 서부에 있다. 마요르카섬은 중앙부의 저지를 사이에 두고 두 줄의 산맥이 북동,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최고점은 푸이그마요르(1,445m)이다.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8∼13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온화한 해양성기후와 풍차로 길어 올린 관개수로 오렌지, 올리브, 포도 등이 재배된다. 도시에서는 이들 농산물의 가공과 유리, 신발, 도자기 등의 수공업이 이루어지며, 대리석도 산출된다. 중심도시 팔마는 항구도시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알리칸테와 연결되며 바르셀로나와 파리 사이에는 정기항공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중해 교역의 중요한 중계지였지만 관광, 피한지로도 알려졌다. 1952년 5월 영국과 독일에서 최초로 마요르카 여행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 이곳은 유럽의 주요 관광지로 발돋움하여 1960년대에 유럽에서 마요르카섬은 관광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했다. 팔마 국제공항은 스페인에서 가장 분주한 공항 중 하나로 2017년에 2,8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였다.[2][3]
역사
마요르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기원전 6000–4000년)의 주거지 유적 및 무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에는 매우 먼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섬은 기원전 123년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리아리쿠스가 이끄는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로마제국의 통치 시기에 폴렌시아(Pollentia, 현재의 알쿠디아) 및 팔마리아(Palmaria, 현재의 팔마)와 같은 섬의 주요 도시가 세워졌다. 당시 섬의 산업은 올리브 및 포도 재배, 소금 생산이 중심이었다. 마요르카의 군인들은 특유의 투석기 사용 기술로 로마군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426년 반달족의 침입을 받은 마요르카섬은 465년부터 반달족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534년에는 동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당하였으며 사르데냐 왕국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동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 문화가 번창하였으며 유명한 성당들이 이때 지어졌다. 707년 이후로 섬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계 침략자들로부터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902년 코르도바 칼리파테가 섬 일대를 장악하면서 다시 번영 시기를 맞게 되었으며 무어인의 이주와 함께 관개를 비롯한 농업 및 지역 산업이 발달하였다. 칼리파테가 1015년 분할되면서 마요르카는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114년 8개월에 걸친 카탈루니아인들의 공격에 의해 도시는 다시 정복당했고, 한동안 침략자들이 머물다가 북아프리카의 알모르다비 왕조가 다시 통치권을 쥔다. 연이은 사회 불안으로 아라곤 왕국의 제임스 1세가 1만 5천 명의 남자와 1천 5백 마리의 말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아라곤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제임스 1세가 1276년 죽자 왕국이 아들들의 싸움으로 분열되었다가 제임스 2세가 마요르카섬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1344년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5세(Pedro IV)가 침략하여 다시 섬을 왕국으로 통합한다. 1479년 이래로 아라곤 왕국은 카스티야 왕국과의 연합을 이루었다. 18세기 초에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이후 스페인에서는 단독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716년 통합 왕국령으로 마요르카섬이 발레아레스 제도의 부도서로 편입되었다.[4]
20세기 이후
마요르카섬은 1950년대 이후 관광지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팔마시와 섬 전체에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증가하였고 스페인 본토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이주하였다. 이는 마요르카섬의 전통적 산업구조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팔마시를 방문한 관광객의 숫자는 1960년 약 5백만 명이었고 1997년에는 6,739,700명을 기록하였다. 2001년에는 거의 2천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섬을 방문하였다. 최근에는 남아메리카로부터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한편, 2005년 11월 14일 지역 언론인 디아리오 데 마요르카는 미국의 CIA가 마요르카섬의 팔마 기지를 통해 동유럽 등지의 비밀수용소로 테러 용의자를 이송한 사실을 폭로하였다.
관광
마요르카는 스페인 반도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쯤 걸리는 곳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다. 마요르카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의 상업교역 중계지였고, 좋은 기후조건과 비옥한 토지로 인해 농업과 목축업이 성행하던 곳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 온화한 기후, 풍부한 역사, 문화 유적으로 인해 19세기부터는 유럽의 유명한 휴양지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특히 팔마는 편리한 교통, 낮은 범죄율, 쾌적하고 따뜻한 날씨 등으로 2004년 투자전문지인 배런스(Barron’s)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7대 도시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오랜 시간 동안 스페인 왕족들의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명인사들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술적 자원도 마요르카의 관광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Frederic Chopin)과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George Sand)가 요양을 위해 파리를 떠나 1838년 이 섬에 머문 적이 있어 쇼팽이 사랑한 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1946년 마요르카에 정착해 마요르카 교향악단(Orchesta Sinfonica de Mallorca)을 창설하고 1948년에 교향시 마요르카(Poema Synfonic Mallorca)를 작곡하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이 섬에서 꽃피웠다. 1950년대 초부터 서유럽 국가들과의 국교회복 정책과 스페인의 UN 가입은 마요르카 관광 산업의 활황기를 가져다 주었다. 1950년 10만 명이었던 관광객이 ‘Honeymoon Mallorca’라는 캠페인과 관광코스 개발 등의 노력으로 1951년에는 두 배로 성장하게 되었다. 1959년, 스페인 정부가 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마요르카는 값이 싼 새로운 관광, 휴가 메카로 자리 잡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1960년 국제공항 완공으로 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이래, 2017년에 2,800만 명의 관광객이 마요르카를 방문하고 있다.
관광정책
대부분의 휴양지가 그렇듯 대량 관광이 자연 및 시골 환경에 가하는 파괴적인 영향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마요르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195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관광객으로 인해 무계획적인 건설과 인프라 확충은 해안선을 파괴시키고 토지를 황폐화시켰다. 1980년대 국내총생산(GDP)의 약 80%가 관광에서 나올 정도로 마요르카 경제에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이 시기에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 등 콘크리트 건물이 대량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에 1983년 발레아레스제도의 정치행정 자치구로의 전환은 이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은 마요르카섬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감소시키면서 관광객들은 마요르카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값이 싼 관광상품을 즐기러 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마요르카 정부는 자연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여행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려는 노력들이 시작된다. 먼저 마요르카의 우수한 기후여건을 활용하여 4계절 관광객 유치를 위한 ‘Passion for Palma de Mallorca’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한 휴양에서 벗어나 스포츠, 골프, 문화, 크루즈, 비즈니스, 음식, 웰니스, 인조이 등과 연계된 브랜드 개발과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과거 주말에 한정되어 방문했던 관광객들을 주중에도 끌어들이고 겨울 비수기를 극복하는 등 장기 체류할 수 있는 환경으로 유도하고 있다. 웰니스 관광으로는 로마 시대 목욕탕 및 마사지 등을 활용하고 있고,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 5개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미식 관광도 추진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 관광 루트 780마일(1,255km)과, 마요르카 북부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지구 내에 있는 Trekking Serra de Tramuntana를 포함하여 105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마요르카를 방문하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즐기는 라이더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마요르카는 온화한 날씨 때문에 북유럽 스포츠인들의 전지훈련 장소로 선호 되고 있다. 마요르카 전체에 23개 골프장이 있으며, 팔마에 10개의 국제요트 레이싱 대회가 열리고 있어 마요르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활용한 스포츠 대회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5]
마요르카섬 출신 유명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요르카 출신 인물로는 작가이자 철학자인 라몬 이유이, 19세기 시기에 육군 참모를 지냈던 호아킨 호베야르 이 솔레르, 두 번의 스페인 총리직을 맡았던 안토니오 마우라 몬타네르 등이 있다. 최근에는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라파엘 나달, 카를로스 모야 등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의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미겔 앙헬 나달도 마요르카 출신으로, 라파엘 나달의 삼촌이기도 하다. 2006·2007년 세계 모터사이클 250cc 랭킹 1위였던 조르헤 로렌소 또한 이 섬 출신이다. 한편, 외부로부터 마요르카로 건너와 살았던 유명인들도 매우 많았다.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과 프랑스의 작가 조르주 상드가 사랑에 빠져 한때 두 사람이 머물렀던 수도원이 이 섬에 자리 잡고 있다. 안익태는 1946년 결혼 후 마요르카로 이주하여 20년동안 이 섬에서 살았다. 스페인의 위대한 화가였던 호안 미로 또한 여생을 이곳에서 살다가 1983년 12월 25일 숨을 거두었다. 최근의 유명인들 중에는 캐서린 지타존스와 마이클 더글러스가 1990년대 이후 섬의 북쪽 해안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거의 일 년의 반을 여기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하엘 슈마허, 클라우디아 시퍼, 영국의 유명 가수인 애니 레녹스, 줄리언 레넌, 전 테니스 선수인 보리스 베커, 전 스페인 수상 펠리페 곤살레스, 영국의 축구선수인 스티브 맥매너먼 또한 이곳에 집을 갖고 있다. 한편 스페인 왕족들은 전통적으로 마요르카의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낸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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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마요르카섬〉, 《위키백과》
- ↑ 〈마요르카 섬〉, 《나무위키》
- ↑ 〈마요르카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마요르카〉, 《요다위키》
- ↑ Nerim, 〈스페인의 섬 - Mallorca (마요르카)〉, 《티스토리》, 2020-05-07
참고자료
- 〈마요르카섬〉, 《위키백과》
- 〈마요르카 섬〉, 《나무위키》
- 〈마요르카〉, 《요다위키》
- 〈마요르카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Nerim, 〈스페인의 섬 - Mallorca (마요르카)〉, 《티스토리》, 2020-05-07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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