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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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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선수(拳鬪選手, boxer)는 복싱 기량이 뛰어난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 또는 복싱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1]

개요[편집]

권투(拳鬪) 또는 복싱(Boxing)은 격투기의 한 종류로 체중별로 체급을 나눠 동급끼리 사각의 링에서 손에 권투글러브를 끼고, 오직 주먹으로만 공격하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스포츠다. 하체를 공격하거나 발차기, 박치기, 발 밟기, 잡고 때리기(더티복싱)를 하면 반칙이다.[2]

세계 권투선수 순위[편집]

요즘은, MMA(종합격투기)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 밀려, 복싱의 인기가 많이 하락해 있다.하지만, 복싱의 메카 미국에서는 여전히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미국에서 뛰고 있는 스타급 선수들, 사울 알바레즈(멕시코)와콜로프킨(카자흐스탄)과 같은 선수들은 여전히, 상상 그 이상의 파이터머니(FighterMoney)를 받으며, 활약하고 있다.

2015년 5월 3일에 열렸던,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리워 질 정도의, 역대 최고의 복싱빅매치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선수간의 경기는 무려 대전료가 2억 5천만달러(약 28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록했다.

  • 1위. 사울 알바레즈(Saul Alvarez)/ 멕시코 / 53승2무1패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의 은퇴 후, 세계 최고의 복서이며, 또한 상품성에서 최고의 흥행복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멕시코의 복싱 영웅, 카넬로 알바레즈 선수다.슈퍼웰터, 미들, 슈퍼미들, 라이트헤비급등4체급을 석권했으며, 통산 전적 53승2무1패이며, 2013년 메이웨더의 경기가 유일한패배이다. 알바레즈 경기는 최고의 대전료와흥행을 기록중에 있으며, 골로프킨(GGG)과의 3번째 재대결이 성사될지가 관심이다.
  • ​2위. 테렌스 크로포드(Terrence CrawFord)/ 미국 / 36승무패 36전 36승(27KO승),
전적이 말해주듯이 무패복서중 한 명이며, 웰터급 복서치고는 많은 KO율을 자랑하고 있다.현재 WBO 웰터급 챔피언 이며, 2017년에는 세계 4대 타이틀(WBA, WBC, IBF, WBO)를 동시에 보유한 복싱 역사상 몇 안되는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 3위. 에럴 스펜스 주니어(Errol Spence Jr.)/미국/ 26승무패
에럴 스펜스 주니어 선수는, 26전 26승(21KO승)으로, 같은 웰터급의 크러포드와 마찬가지로 패을 모르는 선수로 80.77 %의 KO율을 자랑하며, 승승장구 중에 있다. 현재 WBC, IBF 2대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현 WBO 챔피언 테렌스 크로포드와의 대결에 많은 복싱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며, 만약 성사가 된다면, 또 하나의 빅매치가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 4위. 게나디 골포프킨(Gennady Golovkin)/ 카자흐스탄 / 40승1무1패
한국에 많은 복싱팬을 가지고 있는 복서, "GGG" 라고 불리우는 이 선수, 통산 전적 42전 40승(35KO승)1무1패이이며, IBO, IBF 미들급 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 선수DL다. 무패가도를 달리다가 현 최고 복서라 불리우는 카넬로 알바레즈와의 두 차례 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으며, 많은 복싱팬들은 두 선수의 경기결과에 대해 아직도 많은 화제 거리가 되기도 한다. 3번째 맞대결이 성사가되기를 한국 외 많은 복싱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 5위. 바실 로마첸코(Vasily Lomachenko)/ 우크라이나 / 14승1패
아마추어 전적이 무려 396승 1패로, 아마추어 경험이 많으며, "하이테크"라는 별명을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복싱영웅 바실 로마첸코 선수이다.현재 WBC, WBA, WBO 라이트급 타이틀을가지고 있으며, 프로 단 3경기만에 WBO 페더급 챔피언 자리에 오를 만큼 현란한 움직임과 테크니션은 전문가들에게 예술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현재 세계 5위 복서로 랭크되어 있다.[3]

세계 복싱선수 연봉 순위 TOP 10[편집]

  • 1위. 카넬로 알바레즈 – 연간 9400만 달러
알바레스는 여러 체급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멕시코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56승 1패 2무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파운드 투 파운드 파이터 중 한 명으로 널리 여겨진다. 그는 DAZN, 헤네시, 언더아머와 같은 회사들과 광고 계약을 맺고 있다.
  • 2위. Anthony Joshua – 연간 6천 3백만 달러
Joshua는 헤비급 부문에서 여러 차례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영국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24승 1패 0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비츠바이드레, 언더아머, 재규어랜드로버 등의 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 3위. 디온테이 와일더 – 연간 4,650만 달러
와일더는 WBC 헤비급 타이틀을 여러 번 보유한 미국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42승 1패 1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에버라스트, 봄바스, 아트 오브 스포츠 등의 기업들과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 4위. 타이슨 퓨리 – 연간 5천만 달러
퓨리는 헤비급 부문에서 여러 차례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영국의 권투선수이다. 31승 0패 1무의 전적을 갖고 있으며 WOW 하이드레이트, 탑랭크 복싱 등의 기업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 5위. Gennady Golovkin – 연간 2,500만 달러
Golovkin은 미들급 부문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카자흐스탄의 권투선수이다. 41승 1패 1무의 전적을 갖고 있으며, 허블롯, 치바스 리갈 등의 기업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 6위. Manny Pacquiao – 연간 2,600만 달러
Pacquiao는 다중 체급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필리핀의 권투선수이다. 62승 7패 2무의 전적을 갖고 있으며 나이키, GCOX 등의 기업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 7위. 에롤 스펜스 주니어 – 연간 1,600만 달러
스펜스 주니어는 웰터급 부문에서 여러 차례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미국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27승 0패 0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PBC, 조던과 같은 회사들과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 8위. 바실 로마첸코 – 연간 1,400만 달러
로마첸코는 다중 체급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우크라이나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14승 2패 0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Hublot, Beats by Dre와 같은 회사들과 광고 계약을 맺고 있다.
  • 9위. 테렌스 크로포드 – 연간 1,300만 달러
크로포드는 다중 체급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미국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37승 0패 0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에버라스트, 탑랭크 복싱과 같은 회사들과 후원 계약을 맺고 있다.
  • 10위. 아미르 칸 – 연간 1,200만 달러
칸은 다중 체급에서 여러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한 영국의 권투선수이다. 그는 34승 5패 0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며, 리복, DAZN 등의 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봉 순위는 격투 핸드백과 스폰서 계약의 조합을 기반으로 하며, 각 파이터의 경기력과 인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투는 또한 권투선수들이 일반적으로 1인당 몇 번만 경쟁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4]

한국 복싱 역대 세계 챔피언[편집]

  • 김기수
1939년 9월 17일 북청태생.
1997년 6월 10일 사망. 1966년 6월 25일 서울에서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15회 판정승하며 주니어라이트 미들급 세계챔피언 등극.
2차 방어전 성공 1968년 5월26일 이탈리아 밀라노 원정인 3차방어전에서 산드로 마징기에게 15회 판정패로 챔피언 타이틀 상실.
총전적 - 37전 33승(18ko승) 2무 2패
  • 홍수환
1950년 5월26일 서울태생.
1974년 7월 3일 남아공화국 더반에서 벌어진 아놀드 테일러와의 WBA 밴턴급 챔피언 도전에서 15회 판정승으로 챔피언 등극.
1975년 3월 14일 잉글우드에서 벌어진 2차방어전에서 멕시코 선수인 알론소 사모라에게 4회 ko패로 타이틀 상실.
1976년 10월 16일 인천에서 알론소 사모라에게 챔피언에 도전했지만 12회 TKO패 1977년 11월 26일 파나마시티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에서 파나마 선수인 헥트로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2체급 석권 4전5기의 신화를 장식.
1978년 5월 7일 콜롬비아 선수인 리카르도 카르도나에게 서울 2차 방어전에서 12회 TKO패하며 타이틀 상실.
총전적 - 50전 41승(15KO승) 4무 5패
  • 유제두
1948년 4월 25일 고흥 태생.
동양 미들급 방어전을 21차 방어전 성공.
1975년 6월 7일 일본큐슈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 라이틀급미들급 타이틀전에서 와지마 고이치에게 7회 KO승하며 챔피언 등극.
1975년 11월 11일 1차방어전은 일본의 미사코 마사회로에게 6회 KO승으로 성공.
1976년 2월 17일 도쿄에서 벌어진 2차방어전에서 와지마 고이치에게 15회 KO패하며 챔피언 탈이틀 상실.
총전적 55전 50승(59KO) 2무3패
  • 염동균
1952년 1월 17일 옥천 태생.
1976년 8월 1일 파나 선수인 리고베르토 리아스코에게 WBC슈퍼밴텀급 세계타일전에 첫 도전했지만 15회 판정패.
1976년 11월 24일 서울에서 일본의 로얄 고바야시에게 도전하여 15회 판전승하며 세계타이틀 챔피언 등극.
1977년 2월 13일 서울에서 호세 세르반테스에게 15회 판정승하여 1차 방어전 성공.
1977년 5월21일 산후앙 원정에서 푸에토리코 선수인 그 유명한 월프레드 고메스에게 12회 KO패하며 타이틀 상실.
총전적 - 66전 54승(24KO승9 7무 5패
홍수환과의 라이벌전이 유명하다.
  • 박찬희
1957년 3월 23일 대구태생.
1979년 3월 18일 부산에서 멕시코 선수인 미구엘 칸토를 15회 판정승으로 WBC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
1980년 4월 13일 멕시코 선수인 알베르토 모랄레스에게 15회 판정승으로 5차 방어전 성공.
1980년 5월 18일 서울에서 벌어진 일본의 오구마 쇼지와의 6차 방어전에서 9회 KO패로 타이틀 상실.
근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5차 방어전을 치르고 한달 만에 경기를 한 점이다. 타이틀전 준비 기간이 보통은 평균적으로 3달 가량이 소요되는 1달은 너무 짧다 이러 무리한 경기 운영이 박찬희가 타이틀을 상실한 최대의 실수 같다. 그리고 일본의 비지니스 전술에 당한 느낌이다.
1980년 10월 18일 일본 센다이에서 벌어진 오구마 쇼지와의 타이틀 도전에서 15회 판정패함.
1981년 2월 3일 도교에서 벌어진 오구마 쇼지와의 타이틀 도전에서 15회 판정패함.
총전적 - 23전 17승(6KO) 4패.
스피드와 테크닉은 뛰어났지만 맵집과 지구력과 펀치력이 다소 약했던 선수.
  • 김성준
1953년 6월 3일 부산태생. 1989년 2월 3일 사망.
1978년 9월 30일 서울에서 벌어진 태국 선수인 네트르노이 소 보라싱에게 3회 KO승하며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
1980년 1월 3일 도교에서 나카지마 시게오에게 15회 판정패하며 4차방어전 타이틀 상실.
1980년 7월 28일 도쿄에서 오구마 소지에게 15회 판정패로 WBC플라이급 타이틀 도전 실패.
총전적- 47전 29승(13KO) 5무 13패.
디펜스면에서 약점이 있는 많이 맞는 비효율적인 복싱을 구사함. 맷집은 상당히 강해KO패가 드믈은 파이터 복서로 수비후 한방을 잘 노리는 선수였다.
  • 김상현
1955년 3월 15일 부산 태생.
1978년 12월 30일 서울에서 벌어진 태국의 사엔삭 무앙수린과의 WBC슈퍼라이트급 타이틀 도전에서 13회 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79년 10월 4일 도쿄에서 벌어진 요카이 마사히로와의 2차 방어전에서 11회 KO승으로 타이틀 방어 성공.
1980년 2월 23일 서울에서 벌어진 미국의 사울 맘비에게 14회 KO패하며 타이틀 상실.
1983년 4월 3일 애틀랜택시티에서 벌어진 WBA주니어월터급 타이틀전에서 미국의 아론 프라이어에게 도전했지만 3회 TKO패하며 실패.
총전적- 50전 43승(25KO승) 3무 4패
  • 김태식
1957년 7월 4일 묵호 태생.
1980년 2월 17일 서울에서 벌어진 WBA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에게 2회 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80년 6월 29일 필리핀의 아르네 아로살과의 1차 방어전에서 15회 판정승으로 방어 성공.
1980년 12월 13일 로스엔젤리스에서 벌어진 남아공화국의 피터 마테블라에게 2차 방어전에서 15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1981년 8월 30일 서울에서 멕시코의 안토니오 아벨라에게 WBC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 도전했지만 2회 KO패
총전적은 20전 17승(13KO승) 3패.
파이팅이 강하지만 디펜스와 턱이 약해서 전적도 20전에 불과할 정도의 단명한 선수로 많이 아쉬운 선수.
양훅을 주무기로 쓰지만 스트레이트를 잘 구사하지 못했다. 최근에 알려진 얘기지만 어릴때 오른 엄지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가 되지않아 굽혀지지 않는 상태로 복싱을 했다고 한다. KBS스포츠 채널에서 확인됐다. 은퇴경기였던 전초전 경기는 이겼지만 뇌출열로 수술받고 은퇴함.
  • 김철호
1961년 3월 3일 오산 태생.
1981년 1월 24일 상크리스토발에서 베네수엘라의 파라엘 오로노와의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9회 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82년 2월 10일 대전 경기에서 멕시코의 라울 발데스와의 5차 방어전에서 15회 무승부로 성공.
1982년 11월 28일 세계챔피언에 오를때 상대 선수였던 베네수엘라의 파라엘 오로노와의 리턴매치인 6차 방어전에서 6회 KO패하며 타이틀 상실.
총전적- 24전 19승(9KO)승 2무 3패.
테크닉은 좋았지만 펀치력과 디펜스가 약했던 선수.
  • 김환진
1955년 6월 25일 마산 태생.
1981년 7월 19일 대구에서 멕시코의 페드로 플로레스와의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3회 T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81년 10월 11일 대전에서 파나마의 알론소 로페스와의 1차방어전에서 15회 판정으로 성공.
1981년 12월 16일 센다이에서 벌어진 원정에서 일본의ㅜ 도카시키 가쓰오와의 2차방어전에서 15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총전적은 26전 22승(8KO승) 2무 2패 별로 이름이 안 알려진 선수로 갑자기 챔피언에 오른 파마 머리로 유명함 세계타이틀전이 불과 4전에 불과해서 임팩트가 약했던 선수.
  • 장정구
1963년 2월 4일 부산 태생.
1982년 9월 18일 전주에서 파나마의 장신 선수인 일라리오 사파타와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5회 판정패로 도전실패.
1983년 3월 26일 대전에서 일라리오 사파타와의 리턴매치에서 3회 TKO승으로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등극.
1988년 6월 27일 도교에서 벌어진 첫 원정경기인 15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오하시 히데유키에게 8회 TKO승하며 수성. 이후 타이틀을 반납하고 명예롭게 돌연 은퇴
1988년 12월9일 대구에서 벌어진 멕시코의 움베르토 곤잘레스와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패로 도전 실패.
1990년 11월 24일 서울에서 태국의 소트 치탈라타와의 타이틀전에서 12회 TKO패로 도전 실패.
1991년 5월 18일 서울에서 태국의 무앙차이 키티카셈과의 타이틀전에서 12회 TKO패로 도전 실패. 이후 은퇴
총전적 - 42전38승(17KO승) 4패.
변칙 복싱에 능했으며 연타와 체력이 뛰어난 타고난 파이터로 세계적인 레전드 챔피언 은퇴후 다시 복귀하여 선수 말년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는 속담을 절실히 보여줌.
  • 박종팔
1958년 8월 11일 무안 태생.
1984년 7월 22일 서울에서 머레이 서덜랜드와의 신생기구인 IBF슈퍼미들급 타이틀전에서 11회 KO승으로 세계 챔피언 등극
1987년 7월 26일 광주에서 우간다의 엠마누엘 오티에게 4회 KO승하며 8차 방어전 성공.
1987년 12월 6일 부산에서 멕시코의 헤수스 가야르도와의 WBA 슈퍼미들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회 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88년 3월 1일 전주에서 인도네시아의 폴리 파시레온과의 1차방어전에서 5회 KO승하며 수성.
1988년 5월 23일 수안보에서 베네수엘라의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와의 2차방어전에서 12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총전적- 53전 46승(39KO) 1무 1NC 5패.
펀치력이 뛰어난 선수로 선수 초창기엔 나경민과의 라이벌전이 꽤나 유명함.
  • 유명우
1964년 1월 10일 서울태생. 별명은 귀여운 악마, 작은 들소.
1985년 12월 8일 대구에서 미국의 조이 올리보와의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5회 판전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91년 4월 28일 마산에서 태국의 가즈콩 단푼타이에게 12회 TKO승하며 17차 방어전 성공.
1991년 12월 17일 첫 원정경기인 오사카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12회 판정패로 18차 방어전에 실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2년 11월 18일 근 1년 만에 이오카 히로키와의 리터매치에서 세계타이틀 도전경기에서 12회 판정승으로 세계챔피언 다시 등극.
1993년 7월 25일 경주에서 일본의 호소노 유이치에게 12회 판정승하며 1차 방어전 성공한 후 타이틀 반납하고 은퇴를 선언.
총전적 39전 38승(14KO) 1패.
36연승 한국 선수기록을 세움. 15회에도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을 소유한 선수로 연타와 공격과 디펜스의 테크닉이 잘 조화된 전형적인 기교파 선수.
그래서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잘 맞지 않는 영리한 복싱을 구사 선수 시절 한 번도 다운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 디펜스가 대단했고 맷집도 뛰어난 선수였다.
  • 박찬영
1963년 6월 10일 화순 태생.
1987년 5월 24일 일본의 모리구치에서 벌어진 WBA 밴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무구루마 다쿠야에게 11회 TKO승하며 세계챔피언에 등극.
1987년 10월 4일 서울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월프레도 바스케스에게 10회 TKO승하며 1차 방어전 성공.
1989년 12월 3일 인천에서 멕시코의 다니엘 사라고사에게 12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총전적은 38전 31승(14KO승) 2무 5패.
  • 김용강
1965년 1월 3일 화순 태생.
1988년 7월 24일 포항에서 태국의 소트 치탈라다와의 WBC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승으로 세계챔피언 등극.
1989년 6월 3일 아오모리에서 일본의 레오파드 다마쿠마에게 12회 판정승하며 2차방어전 성공.
1989년 6월 3일 트랑에서 리터매치인 소트 치탈라다에게 12회 판정패로 3전방어전 실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0년 9월 29일 태국의 수판부리에서 카오사이 갤럭시에게 WBA주니어밴턴급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지만 6회 KO패하며 실패.
카이사이 갤럭시는 킥복싱 출신의 세계타이틀 21회 정도를 방어한 세계적인 레전드 챔피언으로 유명함.
총전적 31전 26승(11KO) 5패.
  • 문성길
1963년 7월 20일 영암 태생.
1988년 8월 14일 서울에서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에게 5회 부상 판정승으로 WBA 밴턴급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카오코 갤럭시와 카오사이 갤럭시는 쌍둥이다.
1989년 2월 19일 대전에서 일본의 고바야시 지아키에게 5회 TKO승하며 2차 방어전 성공.
1989년 7월 9일 방콕에서 리턴매치인 카오코 갤럭시와의 3차방어전에서 12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1990년 1월 20일 서울에서 가나의 나나 코나두와의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9회 부상 판정승으로 세계챔피언 등극. 문성길은 저돌적인 파이터라서 버팅이 자주 나온다.
1993년 2월 17일 서울에서 파나마의 이라리오 사파타에게 1회 TKO승하며 8차방어전에서 수성.
1993년 7월 3일 서울에서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살라자르에게 12회 판정패로 9차방어전에서 실패하고 타이틀 상실
1993년 11월 13일 포황에서 멕시코의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게 12회 판정패로 실패.
총전적 22전 20승(15KO승) 2패.
양대기구 챔피언에 오른 선수로 세계타이틀전이 15회인 것을 보면 프로 데뷔 8전만에 세계챔피언에 오른 희귀한 선수, 저돌적인 인파이팅을 구사하는 타고난 파이터로 펀치력이 뛰어난 선수 그러나 스피드와 디펜스가 약하고 강한 펀치 일변도인 롱펀치를 마구 난사하는 비효율적인 복싱을 구사했던 선수이다.
  • 김봉준
1964년 5월 9일 완도 태생.
1988년 1월 10일 부산에서 베네수엘라의 레오 가메스에게 WBA 미니멈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패로 도전 실패.
1989년 4월 16일 포항에서 콜롬비아의 아구스틴 가르시아에게 7회 TKO승하며 WBA 미니멈급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 챔피언 등극.
1990년 11월 3일 대구에서 파나마의 실베리오 바르세나스에게 12회 판정승으로 5차 방어전 성공.
1991년 2월 2일 부산에서 한국의 최희용에게 12회 판정패로 타이틀 상실.
1991년 10월 26일 최희용과의 리턴매치에서 12회 판정패로 타이틀 획득 실패.
1992년 6월 15일 오사카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12회 판정패 당하며 타이틀 도전 실패.
총전적 36전 24승(10KO) 3무 9패.
  • 백인철
1961년 12월 20일 고흥 태생.
1987년 11월 21일 라스베가스에서 버진군도의 줄리안 잭슨에게 3회 TKO패하며 WBA 주니어미들급 도전 실패.
1989년 5월 28일 여천에서 베네수엘라의 풀헨시오 오벨메히아스에게 11회 TKO승으로 WBA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90년 1월 13일 울산에서 일본의 다지마 요시아키에게 7회 TKO승하며 2차 방어전 성공.
1990년 3월 30일 리옹에서 프랑스의 크리스토퍼 티오조에게 6회 TKO패하며 3차 방어전 실패.
총전적 50전 47승(43KO) 3패.
한국에서 보기드믄 하드펀처 다만 스피드와 체력과 디펜스가 약했던 선수.
  • 이열우
1967년 1월 25일 옥천 태생.
1989년 7월 19일 청주에서 멕시코의 헤르만 토레스와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9회 TKO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89년 6월 25일 청주에서 멕시코의 움베르토 곤잘레스에게 12회 판정팬로 1차 방어전 실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0년 3월 10일 대전에서 베네수엘라의 헤수스 로하스와의 WBA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승하며 다시금 세계챔피언 등극.
1990년 7월 29일 일본의 미토에서 레오파드 다마쿠마에게 10회 TKO패하며 1차방어전에서 또다시 타이틀 상실.
총전적 22전 19승(KO)승 3패.
  • 최희용
1965년 9월 13일 부산 태생.
1991년 2월 2월 부산에서 김봉준에게 12회 판정승으로 WBA 미니멈급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92년 6월 13일 인천에서 필리핀의 로멜 라와스에게 3회 KO승하며 4차 방어전 성공.
1992년 10월 4일 고쿄에서 오하시 히데유키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5년 2월 4일 울산에서 베네수엘라의 레오 가메스에게 12회 판정승하며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타일틀 회득하며 2체급 석권.
1995년 9월 5일 오사카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게이지에게 12회 판정승하며 1차방어전 성공.
1996년 1월 13일 마이애미에서 파나마의 카를로스 무리요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총전적 21전 19승(8KO) 2패.
  • 박영균
1967년 8월 16일 담양 태생.
1991년 3월 30일 광주에서 베네수엘라의 안토니오 에스파라고에게 12회 판정승하며 WBA 페더급 세계타이틀 획득 세계챔피언 등극.
1993년 담양에서 한국의 전태식에게 12회 판정승하며 8차 방어전 성공.
1993년 12월 4일 광명에서 베네수엘라의 엘로이 로하스와의 9차 방어전에서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5년 5월 27일 광주에서 엘로이 로하스와의 재대결에서 12회 판정패 당하며 타이틀 도전 실패.
  • 변정일
1968년 11월 16일 서산 태생.
1993년 3월 28일 경주에서 멕시코의 빅토르 라바나레스와의 WBC 밴텀급 세계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승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93년 5월 28일 서울에서 멕시코의 호세피노 수아레에게 12회 판정승하며 1차방어전 성공.
1993년 12월 23일 나고야에서 야쿠시지 야쓰에이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1994년 7월 31일 나고야에서 야쿠시지 야스에이에게 리턴매치로 재도전 했지만 11회 TKO패하며 도전 실패.
총전적 12전 10승(4KO)2패.
  • 최용수
1972년 8월 20일 당진 태생.
1995년 10월 21일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빅토르 우고 파스에게 10회 TKO승하며 WBA 주니어라이트급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챔피언 등극.
1998년 4월 18일 서울에서 베네수엘라의 길베르토 세라노에게 9회 TKO승하며 7차 방어전 성공.
1998년 9월 5일 도쿄에서 하다케야마 다카노리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2003년 도쿄에서 태국의 기리몽콜 싱마나삭에게 12회 판정패 하며 WBC 슈퍼페더급 타이틀 도전 실패.
총전적 34전 29승(19KO) 1무 4패.
  • 조인주
1968년 4월 13일 서울 태생.
1998년 8월 29일 서울에서 필리핀의 제리 페날로사에게 12회 판정승으로 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획득 세계챔피언 등극.
2000년 5월 14일 서울에서 멕시코의 훌리오 세자르 아비라 에게 12회 판정승하며 5차방어전 성공.
2000년 8월 27일 오사카에서 도쿠야마 마사모리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상실.
2001년 5월 20일 서울에서 도쿠야마 마사모리와의 리턴매치에서 5회 KO패하며 타이틀 도전 실패.
총전적 20전 18승(7KO) 2패.
  • 최요삼
1974년 10월 16일 부안 태생 2008년 1월 3일 사망.
1999년 10월 17일 서울에서 태국의 사만 소르자트에게 12회 판정승하며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등극.
2002년 2월 23일 지바에서 야마구치 신고에게 10회 TKO승하며 3차 방어전 성공. 이때 10라운드에서 턱이 깨지는 부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2002년 7월 6일 서울에서 멕시코의 호르헤 아르세에게 6회 TKO패하며 4차방어전 실패로 타이틀 상실.
2003년 11월 15일 여수에서 콜롬비아의 베비스 멘도사에게 12회 판정패하며 타이틀 도전 실패.
2007년 9월 16일 35살의 나이에 태국의 테르키아트와의 WBO 인터 콘티넨탈 경기에서 12회 판정승하며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
2007년 12월 25일 인도네시아 헤리 아물과의 WBO 인터 콘티넨탈 1차 방어전에서 12회 판정승으로 방어전에는 성공했으나 12회 종료 10여초를 남겨두고 불의의 라이트스트레이트를 턱에 허용하며 다운당했다. 최요삼은 무의식중에 바로 일어섰지만 데미지를 입었는지 눈빛이 흔들리고 몸은 비틀거린다. 곧바로 경기는 종료되고 경기후 최요삼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마침내 의식을 잃는다. 병원으로의 긴급 후송후 진단 결과 뇌출혈 이었다. 급히 뇌수술을 감행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다음 해인 1월 3일 장기 기증으로 새생명을 주고 짧은 생을 마치고 이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총전적 30전 26승(15KO) 4패.
  • 백종권
1971년 11월 7일 전주 태생.
1999년 10월 31일 부산에서 몽골선수 라크바 두가바타르에게 12회 판정승으로 WBA 슈퍼페더급 타이틀 획득 세게챔피언 등극.
2000년 5월 22일 미국 원정 2차 방어전에서 호엘 카사마요르에게 5회 TKO패로 타이틀 상실.
총전적 25전 23승(20KO) 1무 1패.
  • 지인진
1973년 7월 18일 서울 태생.
2001년 7월 28일 로스엔젤리스에서 멕시코의 에릭 모랄레스에게 12회 판정패하며 WBC 페더급 타이틀 도전 실패.
2003년 10월 18일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WBC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영국의 마이클 브로디에게 12회 2-1 판정승했다가 판정번복으로 무승부 처리되어 타이틀 공석.
2004년 4월 10일 영국의 마이클 브로디에게 7회 KO승하며 우여곡절 끝에 세계챔피언 등극.
2005년 1월 29일 일본의 코시모토 타카시에게 12회 편파판정패로 3차방어전에 실패하며 타이틀 상실.
2006년 12월 17일 서울에서 멕시코의 로돌포 로페스와의 타이틀전에서 12회 판정승으로 세계챔피언 등극.
이후 복싱에서 K1으로 전향.[5]

권투선수의 생계[편집]

권투선수가 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프로 권투선수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경기를 하더라도 대전료 자체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대전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매경기마다 최소한 수천만 원 이상의 대전료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 권투선수가 받는 대전료는 불과 수십만 원에서 많이 받아봐여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전료를 받더라도 그게 전부 본인의 몫이 되지 않는다. 소속 체육관과 대전료를 나누고 세금과 각종 경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얼마 안 된다. 게다가 1년에 경기를 많이 해봐야 4회 이상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연수입 자체가 사실상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신인이나 전적이 적은 프로 권투선수들은 경기당 30 ~ 50만 원 남짓한 대전료를 받으며 한국 챔피언이 되더라도 200 ~ 300만 원 이상의 대전료를 받기는 어렵다. 물론 이를 일반화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선수의 인지도와 커리어에 따라 다르고 대회 흥행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챔피언이 되더라도 300만 원 이상의 대전료를 수령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이마저도 이것저것 계산한다면 실질적으로 60퍼센트 가량 수중에 남는 게 사실이다. 사실 이것도 권투선수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므로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게 대전료의 60퍼센트 남짓한 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속 체육관과 나누고 세금과 교통비, 숙박시, 식비, 치료비 등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 권투선수들은 별도의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로 권투선수들은 연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철저히 경기당 대전료를 받는 것이 기본이므로 경기를 뛰지 못한다면 아예 단 한푼도 못 벌 수도 있다. 현재 생업에 종사하면서 바쁘거나 훈련 도중 부상을 당했다면 당연히 경기를 뛰기 어려우며 대전료는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로 권투선수들은 생각보다 일찍 은퇴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가 되면 실질적으로 은퇴하거나 생업에 좀 더 집중하기 마련이니 외국에 비해 은퇴 시점이 빠르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프로 복싱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몹시 어렵고 슬슬 결혼할 시점이 되거나 돈을 모아야 하는 시기가 된다면 그만큼 복싱과 멀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한국 프로 복싱이 유럽이나 미국까지는 아니어도 시장이 충분히 크고 흥행이 된다면 그만큼 많은 대전료를 받을 수 있고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는데 집중하기 용이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기껏 고생해서 한국 챔피언이 되더라도 대전료는 200 ~ 300만 원을 넘기기 어렵고 아시아 챔피언이 되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한국 프로 복싱 시장은 완전히 사장되었고 한국 챔피언이 되더라도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 프로 복싱 시장 자체가 과거에 비해 완전히 사장되었고 인기가 거의 없으며 대회가 흥행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복싱의 인기가 많은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는 자국 챔피언이 되거나 인기가 많은 체급의 랭킹권에 진입하기만 해도 최소한 수천만 원 이상의 파이트머니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에 한정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메이저 기구의 챔피언이 되더라도 제대로 돈을 벌기 어렵다. 실제로 남성 프로 권투선수를 기준으로 마지막 세계 챔피언이었던 지인진 선수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임에도 불구하고 2 ~ 3천만 원 남짓한 대전료를 받고 경기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참고로 지인진 선수도 아는 사람만 아는 선수다. 무려 복싱 메이저 기구인 wbc 세계 페더급 챔피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싱에 관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지인진 선수가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프로 권투선수는 최현미 선수 정도이지 않을까? 최현미 선수는 메이저 복싱 기구에서 페더급과 슈퍼페더급에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슈퍼페더급 세게 챔피언을 무려 10회나 방어한 뛰어난 선수다. 하지만 과거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거의 없었으며 출연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방송에 나와 잠깐 이목을 끌기는 했지만 이게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심지어 세계 챔피언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스폰서를 받지 못해 사비를 들여 힘들게 경기를 했을 정도다.

2013년도에는 후원을 해주기로 했던 기업이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아 소송을 한 적이 있으며 비교적 최근까지 사비를 들여서 겨우 경기를 했을 정도다. 명색에 메이저 복싱 기구 2체급 세계 챔피언이며 슈퍼페더급 10차 방어에 성공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비를 들여 경기를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프로 권투선수가 아무리 돈을 벌기 어려워도 사비를 들여 경기를 할 일이 뭐가 있겠냐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현미 선수는 세계 챔피언이다. 챔피언인 일정 기간 안에 의무적으로 방어전을 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어서까지 타이틀 방어전을 하지 않는다면 타이틀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이 사비를 들여서 경기를 했다고 알려졌다. 기업에서 후원을 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스폰서가 있었다면 사비를 들여서 타이틀 방어전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게 안 되니 오히려 사비를 들여서까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 경기를 한 셈이다. 명색에 메이저 복싱 기구의 세계 챔피언인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럴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프로 권투선수로서 생활하기는 매우 어려우니 결국 별도의 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파이트머니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며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애초에 본인의 재산이 충분히 있거나 누가 경제적으로 밀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대다수의 프로 권투선수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경기에 출전한다. 그래서 대체로 권투선수들은 본인이 직접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기도 하고 복싱 코치나 트레이너로 종사하기도 하며 입식 격투기 또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에 복싱 코치로 근무하기도 한다. 물론 복싱과 철저히 무관한 직종에서 종사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거나 복싱 코치와 트레이너로 근무하면서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사정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본인이 복싱 선수인 만큼 누군가를 지도하면서 돈을 벌 수 있고 선수 생활을 병행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생활체육지도자 2급을 취득해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경우가 가장 사정이 나은 편이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훈련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현직 프로 권투선수가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은 그렇지 않은 복싱 체육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복싱 체육관에 등록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관장이 전현직 프로 복싱 선수 출신이라면 훨씬 신뢰가 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관장은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쌓은 커리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복싱 체육관이 잘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본금이 부족해서 체육관을 운영하지 못하거나 체육관을 운영할 생각이 없는 권투선수들 중에서 복싱 코치 및 트레이너를 병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본인이 복싱 선수로서 쌓은 경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복싱 체육관에 코치로 취업하거나 입식 격투기 체육관과 종합격투기 체육관에 트레이너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런대로 돈을 벌 수 있다. 비록 프로 복싱 시장 자체는 사장되기는 했지만 생활체육으로서 복싱은 여전히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프로 권투선수로서 돈을 벌기는 몹시 어렵지만 생활체육으로서 복싱은 여전히 인기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일찍 선수 생활을 접고 전업으로 복싱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경우도 상당하다. 생활체육 복싱은 스트레스 해소를 비롯해고 다이어트와 체력증진을 비롯해서 호신술로서 기능이 있으며 건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식 격투기와 종합격투기 체육관에서도 복싱 코치나 트레이너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해당 격투기 종목의 선수가 되려면 복싱을 반드시 익히고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권투선수 생활을 하다가 복싱 코치 및 트레이너를 병행하기도 하고 아예 복싱 체육관을 차려셔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어도 프로 권투선수보다는 훨씬 경제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안정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니까. 비록 프로 복싱 시장이 완전히 사장되기는 했지만 복싱 자체의 인기는 여전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길은 있다.[6]

각주[편집]

  1. 복싱선수〉, 《네이버국어사전》
  2. 권투〉, 《나무위키》
  3. 이지볼, 〈현역 세계 최고 복싱(권투)선수 순위 TOP 10은?〉, 《네이버블로그》, 2020-05-14
  4. 전 세계 복싱 선수 연봉 순위 TOP 10〉, 《몸알기》, 2023-02-22
  5. 한국 복싱 역대 세계 챔피언〉, 《네이버블로그》, 2017-04-09
  6. 김시환, 〈복싱 선수의 생계〉, 《네이버블로그》, 2023-05-14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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