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대법관(大法官)은 법원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을 말한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인으로 구성된다.[1]
개요[편집]
- 대한민국헌법
- 제102조
- ②대법원에 대법관을 둔다. 다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둘 수 있다.
- 제104조
- ②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 제105조
- ②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 ④법관의 정년은 법률로 정한다.
- 법원조직법
- 제4조(대법관)
- ① 대법원에 대법관을 둔다.
- ②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
- 제15조(대법관의 의사표시) 대법원 재판서(裁判書)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
- 제41조(법관의 임명)
- ②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 제45조(임기ㆍ연임ㆍ정년)
- ② 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연임할 수 있다.
- ④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정년은 각각 70세, 판사의 정년은 65세로 한다.
大法院 大法官 / Associate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대법원 대법관은 대법원에 두는 대한민국의 법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장관급 법관으로, 정원은 헌법이 아닌 법률(법원조직법)에 따라 정해진다. 현재의 총원은 13명이다. 헌정중단기인 1961년 9월부터 제5공화국 때까지는 대법원판사라고 불렀다.
하급법원의 법관인 판사와 달리, 대법관은 자신이 관여한 재판에서 재판서에 의견을 표시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법원조직법 제15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종종 보충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이 기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상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에서 보한다(법원조직법 제68조 제1항). 한편으로 관례상 중앙선관위원장의 직은 현직 대법관 중 1명이 겸직한다.[2]
임명[편집]
법원조직법 제42조(임용자격) ①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20년 이상 다음 각 호의 직(職)에 있던 45세 이상의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
- 판사 · 검사 · 변호사
-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 그 밖의 법인에서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으로 재직한 사람
③ 제1항 각 호에 규정된 둘 이상의 직에 재직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연수를 합산한다.[2]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편집]
-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 ①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의 추천을 위하여 대법원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 ② 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0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 ③ 위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 선임대법관
- 법원행정처장
- 법무부장관
- 대한변호사협회장
-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 사단법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변호사 자격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 3명. 이 경우 1명 이상은 여성이어야 한다.
- ④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 ⑤ 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 또는 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청하거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위원장이 소집하고,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 ⑥ 추천위원회는 제청할 대법관(제청할 대법관이 2명 이상인 경우에는 각각의 대법관을 말한다)의 3배수 이상을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하여야 한다.
- ⑦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는 경우에는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한다.
- ⑧ 추천위원회가 제6항에 따라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
- ⑨ 제1항부터 제8항까지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요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제청할 대법관(제청할 대법관이 2명 이상인 경우에는 각각의 대법관을 말한다)의 3배수 이상을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하면(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6항), 그 중에서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한다(같은 조 제7항).[2]
대법관 후보자의 제청절차[편집]
개인 · 법인 또는 단체는 법원행정처장을 통하여 대법원장에게 서면(모사전송이나 전자우편은 제외)으로 대법관 제청대상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천거하거나 그 밖에 대법관 제청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6조 제1항 전문).
위원이 천거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같은 항 후문) 이러한 천거는 후보자의 학력, 경력 등 주요 인적사항 및 천거사유 등을 명시하여 비공개로 하여야 한다(같은 조 제2항).
그런데 이러한 천거 내지 제청의 절차에 관해서는, 어차피 대법원장이 다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10명 중 3명이 판사이고, 3명은 대법원장이 임의로 위촉하게 되어 있어서, 대법원장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 피천거인 중에서는 대법원장이 제시한 사람만이 심사대상자가 된다(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7조 제2항). 대법원규칙에는 "명백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제시한다"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연?
- 대법원장도 스스로 심사대상자를 제시할 수 있었다(구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2018. 5. 29. 대법원규칙 제279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조 제1항) 그런데, 피천거인과 대법원장이 제시한 사람 중 누가 더 위원회의 추천을 받기 쉬울까? 이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대법원장의 심사대상자 제시 권한 규정은 폐지되었다.
- 후보자 천거는 비공개로 하게 되어 있으므로, 공개적으로 천거된 사람은 그 이유만으로도 심사대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장이 마음대로 대법관을 꽂아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은 임명 후보자를 '제청' 만 하는 것이고 그 후보자를 임명할 것인지 여부는 엄연히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결정한다. 대법원장이 생각하는 대법관 후보와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법관 후보가 서로 다를 때 갈등은 필연적이며 갈등이 표면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 의견교환을 거쳐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의 의견 교환은 쉽지 않다. 대법원장을 임명한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는 그나마 낫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 취임한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은 상당 기간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데 서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1987년 이후 이일규 대법원장을 제외한 모든 대법원장이 자신을 임명하지 않은 대통령과 임기 후반을 보냈다. 가장 대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이용훈 대법원장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여러모로 악연이 있다. 이용훈 당시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으로 참여했고,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이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게다가 1996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시 한나라당 전 의원 이명박 사건의 상고심 주심으로서 선거비용 초과지출에 대한 무죄 부분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은 이용훈에게 판결이 잘못됐다고 편지까지 써서 보냈다. 즉 여러모로 이명박 대통령과는 갈등관계에 있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보낸 시간은 2년 5개월에 불과했고 나머지 3년 7개월은 후임인 이명박 대통령과 보냈다. 노무현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존중했으나 이명박 대통령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껄끄러웠다고 한다. 피 말리는 신경전이었다고(...). 오죽했으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만 없으면 대법원장 할 만하다." 라고 한탄했다.
위와 같은 비판이 있자 김명수 대법원장 때 이르러서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셀프 추천'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 대상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추천위에 심사 대상자로 제시한다' 고 돼 있는 대법원 규칙을 삭제해 대법관후보추천위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돼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도 직접 추천위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없애버린 것이다.[2]
현재 대법관 명단[편집]
구분 이름 취임일 임명 제청 사법시험 출신학교 대법원장 조희대 2023년 12월 8일 윤석열 23회 경북고 / 서울대 대법관 김선수 2018년 8월 2일 문재인 김명수 27회 우신고 / 서울대 노정희 문재인 김명수 29회 광주동신여고 / 이화여대 이동원 문재인 김명수 27회 경복고 / 고려대 김상환 2018년 12월 28일 문재인 김명수 30회 보문고 / 서울대 노태악 2020년 3월 4일 문재인 김명수 26회 계성고 / 한양대 이흥구 2020년 9월 9일 문재인 김명수 32회 통영고 / 서울대 천대엽 2021년 5월 8일 문재인 김명수 31회 성도고 / 서울대 오경미 2021년 9월 17일 문재인 김명수 35회 이리여고 / 서울대 오석준 2022년 11월 25일 문재인 김명수 29회 광성고 / 서울대 서경환 2023년 7월 19일 문재인 김명수 30회 건대부고 / 서울대 권영준 문재인 김명수 35회 대건고 / 서울대 엄상필 2024년 2월 29일 문재인 김명수 33회 진주동명고 / 서울대 신숙희 문재인 김명수 35회 창문여고 / 서울대
역대 대법관 명단[편집]
대법관 임명 제청 임기 사법시험 기타 김병로 이승만 1948년 9월~1957년 12월 초대 대법원장 김익진 이승만 김병로 1948년 11월~1949년 6월 노진설 이승만 김병로 1948년 11월~1949년 7월 최병주 이승만 김병로 1948년 11월~1950년 2월 양대경 이승만 김병로 1948년 11월~1950년 4월 김찬영 이승만 김병로 1948년 11월~1954년 6월 백한성 이승만 김병로 1949년 11월~1953년 9월 한상범 이승만 김병로 1950년 6월~1951년 2월 김두일 이승만 김병로 1950년 6월~1960년 4월 이우식 이승만 김병로 1951년 6월~1951년 12월 고등문관시험 한격만 이승만 김병로 1952년 2월~1952년 3월 김동현 이승만 김병로 1952년 2월~1957년 7월 김세완 이승만 김병로 1953년 6월~1959년 12월 판사특임시험 김갑수 이승만 김병로 1953년 6월~1960년 6월 고등문관시험 조용순 이승만 김병로 1953년 11월~1954년 6월 판검사특별고시 (25년) 허진 이승만 김병로 1954년 9월~1959년 9월 판검사특별고시 (21년) 고재호 이승만 김병로 1954년 9월~1961년 6월 고등문관시험 배정현 이승만 김병로 1954년 9월~1961년 6월 백한성 이승만 김병로 1955년 4월~1961년 6월 사법관 시보시험 (30년) 조용순 이승만 1958년 6월~1960년 5월 판검사특별고시 (25년) 2대 대법원장 변옥주 이승만 조용순 1958년 10월~1961년 6월 고등문관시험 오필선 이승만 조용순 1959년 10월~1961년 6월 김연수 이승만 조용순 1960년 1월~1961년 6월 조진만 윤보선 1961년 7월~1964년 1월 고등문관시험 3대 대법원장 민복기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63년 4월 고등문관시험 최윤모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68년 8월 사광욱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양회경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방순원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나향윤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홍순엽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6년 11월 조선변호사시험 (36년) 이영섭 윤보선 조진만 1961년 9월~1979년 3월 고등문관시험 조진만 박정희 1964년 2월~1968년 10월 고등문관시험 4대 대법원장 방준경 박정희 조진만 1964년 3월~1966년 12월 판사특임시험 (33년) 한성수 박정희 조진만 1959년 2월~1968년 10월 주운화 박정희 조진만 1964년 3월~1969년 8월 고등문관시험 손동욱 박정희 조진만 1964년 3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김치걸 박정희 조진만 1964년 3월~1973년 3월 판사특임시험 (46년) 주재황 박정희 조진만 1968년 2월~1981년 4월 고등문관시험 민복기 박정희 1968년 10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5대 대법원장 홍남표 박정희 민복기 1968년 12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유재방 박정희 민복기 1968년 12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한봉세 박정희 민복기 1969년 9월~1973년 3월 고등문관시험 김영세 박정희 민복기 1969년 9월~1979년 9월 조선변호사시험 (45년) 민문기 박정희 민복기 1969년 9월~1980년 8월 고등문관시험 양병호 박정희 민복기 1969년 9월~1980년 8월 조선변호사시험 (42년) 민복기 박정희 1973년 3월~1978년 12월 고등문관시험 6대 대법원장 이병호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76년 9월 고등문관시험 김윤행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80년 8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임항준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80년 8월 사법요원시험 한환진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81년 2월 고등문관시험 안병수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81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이일규 박정희 민복기 1973년 4월~1985년 12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강안희 박정희 민복기 1975년 10월~1980년 4월 사법요원시험 나길조 박정희 민복기 1975년 10월~1981년 3월 조선변호사시험 1회 김용철 박정희 민복기 1975년 10월~1986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3회 유태흥 박정희 민복기 1977년 1월~1981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정태원 박정희 민복기 1977년 1월~1981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이영섭 박정희 1979년 3월~1981년 4월 고등문관시험 7대 대법원장 서윤홍 박정희 이영섭 1979년 4월~1980년 8월 고등고시 2회 김기홍 최규하 이영섭 1980년 6월~1981년 4월 고등고시 2회 김태현 최규하 이영섭 1980년 6월~1981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3회 윤운영 전두환 이영섭 1980년 9월~1981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김중서 전두환 이영섭 1980년 9월~1984년 6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유태흥 전두환 1981년 4월~1986년 4월 조선변호사시험 2회 8대 대법원장 서일교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1년 8월 조선변호사시험 1회 이회창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8회 신정철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7회 이성렬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5년 1월 고등고시 5회 정태균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2회 강우영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1회 전상석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6회 이정우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6회 윤일영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7회 김덕주 전두환 유태흥 1981년 4월~1986년 4월 고등고시 7회 오성환 전두환 유태흥 1982년 3월~1987년 3월 고등고시 8회 김형기 전두환 유태흥 1984년 7월~1988년 7월 고등고시 7회 정기승 전두환 유태흥 1985년 3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김용철 전두환 1986년 4월~1988년 7월 조선변호사시험 3회 9대 대법원장 이병후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이명희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이준승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최재호 전두환 김용철 김1986년 4월~1993년 10월용철 고등고시 7회 김달식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박우동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93년 10월 고등고시 8회 황선당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88년 7월 고등고시 8회 윤관 전두환 김용철 1986년 4월~1993년 9월 고등고시 10회 배석 전두환 김용철 1987년 3월~1991년 8월 고등고시 8회 이일규 노태우 1988년 7월~1990년 12월 조선변호사사험 2회 10대 대법원장 김덕주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0년 12월 고등고시 7회 이회창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3년 2월 고등고시 8회 이재성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2년 4월 고등고시 7회 배만운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9회 안우만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11회 윤영철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11회 김용준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9회 김상원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8회 김주한 노태우 이일규 1988년 7월~1994년 7월 고등고시 11회 김덕주 노태우 1990년 12월~1993년 9월 고등고시 7회 11대 대법원장 김석수 노태우 김덕주 1991년 1월~1997년 1월 고등고시 10회 박만호 노태우 김덕주 1991년 9월~1997년 9월 고등고시 13회 최종영 노태우 김덕주 1992년 8월~1998년 8월 고등고시 13회 천경송 김영삼 김덕주 1993년 3월~1999년 2월 고등고시 13회 윤관 김영삼 1993년 9월~1999년 9월 고등고시 10회 12대 대법원장 정귀호 김영삼 윤관 1993년 10월~1999년 10월 고등고시 15회 안용득 김영삼 윤관 1993년 10월~1999년 10월 고등고시 13회 박준서 김영삼 윤관 1993년 10월~1999년 10월 고등고시 15회 이돈희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고등고시 13회 김형선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고등고시 14회 지창권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사법시험 1회 신성택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고등고시 16회 이용훈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고등고시 15회 이임수 김영삼 윤관 1994년 7월~2000년 7월 사법시험 1회 송진훈 김영삼 윤관 1997년 2월~2003년 2월 고등고시 16회 서성 김영삼 윤관 1997년 9월~2003년 9월 사법시험 1회 조무제 김대중 윤관 1998년 8월~2004년 8월 사법시험 4회 변재승 김대중 윤관 1999년 2월~2005년 2월 사법시험 1회 최종영 김대중 1999년 9월~2005년 9월 고등고시 13회 13대 대법원장 유지담 김대중 최종영 1999년 10월~2005년 10월 사법시험 5회 윤재식 김대중 최종영 1999년 10월~2005년 10월 사법시험 2회 이용우 김대중 최종영 1999년 10월~2005년 10월 사법시험 4회 배기원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5년 11월 사법시험 5회 강신욱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6년 7월 사법시험 9회 이규홍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6년 7월 사법시험 8회 이강국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6년 7월 사법시험 8회 손지열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6년 7월 사법시험 9회 박재윤 김대중 최종영 2000년 7월~2006년 7월 사법시험 9회 고현철 김대중 최종영 2003년 2월~2009년 2월 사법시험 5회 김용담 노무현 최종영 2003년 9월~2009년 9월 사법시험 11회 김영란 노무현 최종영 2004년 8월~2010년 8월 사법시험 20회 양승태 노무현 최종영 2005년 2월~2011년 2월 사법시험 5회 이용훈 노무현 2005년 9월~2011년 9월 고등고시 15회 14대 대법원장 김황식 노무현 이용훈 2005년 11월~2008년 7월 사법시험 14회 박시환 노무현 이용훈 2005년 11월~2011년 11월 사법시험 21회 김지형 노무현 이용훈 2005년 11월~2011년 11월 사법시험 21회 이홍훈 노무현 이용훈 2006년 7월~2011년 5월 사법시험 14회 박일환 노무현 이용훈 2006년 7월~2012년 7월 사법시험 14회 김능환 노무현 이용훈 2006년 7월~2012년 7월 사법시험 17회 전수안 노무현 이용훈 2006년 7월~2012년 7월 사법시험 18회 안대희 노무현 이용훈 2006년 7월~2012년 7월 사법시험 17회 차한성 이명박 이용훈 2008년 3월~2014년 3월 사법시험 17회 양창수 이명박 이용훈 2008년 9월~2014년 9월 사법시험 16회 신영철 이명박 이용훈 2009년 2월~2015년 2월 사법시험 18회 민일영 이명박 이용훈 2009년 9월~2015년 9월 사법시험 20회 이인복 이명박 이용훈 2010년 9월~2016년 9월 사법시험 21회 이상훈 이명박 이용훈 2011년 2월~2017년 2월 사법시험 19회 박병대 이명박 이용훈 2011년 6월~2017년 6월 사법시험 21회 양승태 이명박 2011년 9월~2017년 9월 사법시험 12회 김용덕 이명박 양승태 2012년 1월~2018년 1월 사법시험 21회 박보영 이명박 양승태 2012년 1월~2018년 1월 사법시험 26회 고영한 이명박 양승태 2012년 8월~2018년 8월 사법시험 21회 김창석 이명박 양승태 2012년 8월~2018년 8월 사법시험 23회 김신 이명박 양승태 2012년 8월~2018년 8월 사법시험 22회 김소영 이명박 양승태 2012년 11월~2018년 11월 사법시험 22회 조희대 박근혜 양승태 2014년 3월~2020년 3월 사법시험 23회 권순일 박근혜 양승태 2014년 9월~2020년 9월 사법시험 22회 박상옥 박근혜 양승태 2015년 5월~2021년 5월 사법시험 20회 이기택 박근혜 양승태 2015년 9월~2021년 9월 사법시험 23회 김재형 박근혜 양승태 2016년 9월~2022년 9월 사법시험 28회 조재연 문재인 양승태 2017년 7월~2023년 7월 사법시험 22회 박정화 문재인 양승태 2017년 7월~2023년 7월 사법시험 30회 김명수 문재인 2017년 9월~2023년 9월 사법시험 25회 안철상 문재인 김명수 2018년 1월~2024년 1월 사법시험 24회 민유숙 문재인 김명수 2018년 1월~2024년 1월 사법시험 28회 김선수 문재인 김명수 2018년 8월~ 사법시험 27회 노정희 문재인 김명수 2018년 8월~ 사법시험 29회 이동원 문재인 김명수 2018년 8월~ 사법시험 27회 김상환 문재인 김명수 김상환 사법시험 30회 노태악 문재인 김명수 2020년 3월~ 사법시험 26회 이흥구 문재인 김명수 2020년 9월~ 사법시험 32회 천대엽 문재인 김명수 2021년 5월~ 사법시험 31회 오경미 문재인 김명수 2021년 9월~ 사법시험 35회 오석준 윤석열 김명수 2022년 11월~ 사법시험 29회 서경환 윤석열 김명수 2023년 7월~ 사법시험 30회 권영준 윤석열 김명수 2023년 7월~ 사법시험 35회 조희대 윤석열 2023년 12월~ 사법시험 23회 17대 대법원장 엄상필 윤석열 조희대 2024년 2월 ~ 사법시험 33회 신숙희 윤석열 조희대 2024년 2월 ~ 사법시험 35회
구성[편집]
- 대법관의 구성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이나 확립된 관례는 없다. 다만 법조 경력 대다수를 법원에서 쌓은 정통 법관 출신, 그 중에서 서오남으로 불리는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경향성이 있다. 반면 해외의 입법례를 보면, 한국의 「법원조직법」에 해당하는 일본의 「재판소법」 제41조는 “식견이 높고 법률의 소양이 있는 연령 40세 이상의 자 중에서 임명하되, 적어도 10인은 10년 이상 고등재판소 장관, 판사, 간이재판소 판사, 검찰관, 변호사, 대학의 법률학 교수로 재직한 자” 로 최고법원인 최고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게 하여 그 자격과 구성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 출신분야별로 최고재판소 재판관을 안배하는 관례가 1961년 이래 유지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재판관 출신 중에서 6인, 검찰관 출신 중에서 2인, 변호사 출신 중에서 4인, 법학자 출신 중에서 1인, 행정관 출신 중에서 2인을 임명하며, 임기 만료 등으로 최고재판관에 결원이 발생하면 내각은 출신분야 구성모체로부터 후보자를 단수추천받아 이를 그대로 추인하는 방식으로 최고재판관을 임명하고 있다.
- 참여정부 시기에 첫 여성 대법관이 나오게 되었는데 2004년 최종영 원장에 의해 김영란(연수원 11기) 후보자가 제청된 당시, 대법관 13인 중 가장 기수가 낮은 인물은 김용담(연수원 1기) 대법관이다. 40대가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사례는 1988년 49세에 대법관으로 영전한 김용준 이후 16년 만이었다. 대법관 취임 후에도 구성원이 중장년층 세대인 50대 후반, 60대 초반 대법관들은 김 대법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히 본인도 마찬가지, 대법관 비서실 비용 처리와 소부별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정보가 하나도 없어(...) 비서관에게 옆 대법관실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대법원에 들어오면 동료 대법관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점심을 사기도 했다. 대법관들이 전국 법원을 나눠 재판 사무감사를 하던 관례가 김영란 대법관 취임 직후 폐지됐다. “나이 어린 대법관을 법원장들이 모시기 힘들기 때문” 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김 대법관 이후로 대법원에 여성 비서관과 여성 전속재판연구관이 생겼고, 성별의 벽을 깨어 남녀 가리지 않고 전속재판연구관을 배치하게 됐다.
- 14인의 대법관 구성원 중 여성 대법관은 상대적으로 없거나 있다고 해도 전체의 4분의 1(2~3명)에 불과하다는 평론이 많다. 수직적인 법원 구성의 특성인 가운데 김영란 판사를 계기로 후에 전수안, 박보영, 김소영, 박정화, 민유숙 등 여성 판사들이 재임한 가운데, 현재 여성 대법관은 (노정희, 오경미, 신숙희) 3인이다.
- 역대 최연소 대법관은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54년, 고재호 대구지방법원장이 41세의 나이로 영전했고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여성 최연소 대법관은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2년, 김소영 부장판사가 47세의 나이로 취임, 최초의 여성 법원행정처장이기도 하다.
- 대법관 중 한 명은 '검찰 몫' 으로 안배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고위직 검사들은 이런 기류와는 반대로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이런 관행이 유지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있다. 이는 정부가 대법원(+헌법재판소)을 통제하기 위해 검찰 출신 대법관을 계속 밀어넣던 역사가 관행으로 남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개개인의 기호(선호도)에 입각한 것이고 이론적 근거는 아니다. 현재는 대법관의 '출신의 다양성' 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 일례로 이용훈 원장의 당시 일화가 있는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판사 출신들로만 구성된다면 법조 전체의 의견을 대법원 재판에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검찰 출신 강신욱 대법관의 후임으로 2006년 6월, 안대희 검사장을 제청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간부들에게 “법원의 대법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법원이 되려면 검찰 출신 대법관이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연히 탐탁지 않아했지만 이용훈은 "검찰 출신 대법관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한국의 전체의 법률 문제에 관해 최종적인 해석을 하는 곳입니다. 검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절차에 따라 수사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재판한다면 대법원이 제대로 된 법률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라고 말하며 설득했다. 이후 수년이 지나 절반 이상이 퇴임한 시점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5년 1월, 박상옥 前 검사장을 제청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고 2021년 5월 임기를 마쳤다. 그런데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교체되는 대법관 후임 추천에서도 판사 출신이 대부분이였고 검찰 출신이 한명도 제청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개혁의 영향인지는 알수 없으나 이 현상은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주요 내각이 검찰 출신인데 반해 검찰 출신 대법관은 없기에 후임 대법관 제청에서 주목할 부분이기는 하다.
- 제6공화국 최초의 교수 출신 대법관은 2014년에 퇴임한 양창수 대법관이다. 이후 양창수 대법관의 교수 시절 지도제자였던 김재형 대법관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두 번째 교수 출신 대법관으로 재임하였다. 김재형 대법관의 퇴임 후인 2023년에는 권영준 대법관이 임명되어 현직에 있다. 이들은 모두 교수 출신으로 분류되지만 판사 경력이 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50대에 서울대 법대 또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민법 전공으로 교수 재직 중 임용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 현직 김선수 대법관은 법원이나 검찰 근무 경력이 전혀 없는 제6공화국의 유일한 순수 변호사 출신 대법관으로, 재조 출신 대법관에 대비되는 이른바 재야 출신 대법관으로도 불린다.
-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이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때가 2012년이므로, 아직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로스쿨 변호사 가운데서는 대법관 임명 자격을 만족한 자는 없다. 아울러 대법관 임명에 사법연수원 기수를 고려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변시 1회를 연수원 42기에 대응시키는 관행상 2040년 경에 로스쿨 출신 1호 대법관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2013년 시행된 법조일원화로 판사 임용에 법조 경력을 요구하게 되면서, 로스쿨 출신 대법관은 판사 이외 재판연구원, 군법무관 등 법조 경력을 필수적으로 갖출 수밖에 없다.[2]
기타[편집]
- 박일환 前 대법관은 은퇴 후 일반인에게 법률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중이다. 채널명은 박일환 전 대법관의 호를 딴 차산선생법률상식이며 2018년 말부터 한달에 두어편 정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례에서 발생하는 판례를 예시로 설명해준다. 누구든지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전 대법관이라서 그런지 댓글은 매우 깨끗한 상태를 유지 중이다. 현재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으며 KBS 뉴스에도 소개되었고, 인터뷰까지 했다. 초기에 올린 영상에는 동영상 중 한 장을 자동으로 넣는 자동 썸네일로 올라왔으나 최근에는 썸네일에 그날의 주제와 함께 본인의 사진 혹은 외손녀의 사진으로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 말기에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던 김병화는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후보자직을 사퇴하였다. 때문에 헌정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받고도 임명되지 못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 이 문서 서두에 있는 법원조직법 규정을 보면 알 수 있듯,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지만 그와 별개로 정년이 70세이기 때문에, 만 64세가 넘은 상태에서 대법관으로 임명될 경우 6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70세 생일에 정년퇴임하게 된다. 다만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 2024년 기준, '6년 임기 만료' 가 아닌 '정년' 을 이유로 퇴임을 한 가장 최근의 케이스는 2006년 7월에 취임해 당시 법원조직법에 의거한 만 65세 정년을 기준으로 2011년 5월 퇴임한 이홍훈 前 대법관이다. 이후 개정된 규정이 만 70세로 시행되고 있는데 현직에 한정하면 2027년 정년퇴임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뿐이다.
-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하는 직위(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중 유일하게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적이 없는 직위이다.[2]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