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경기장(競技場, stadium / arena)은 각종 스포츠 행사를 치르기 위하여 건축된 시설물을 지칭한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공간과 관중이 사용하는 공간이 다르며, 이 둘은 안전 및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축구장이나 야구장 등 대형 경기장 중 실내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건축된 시설물을 돔으로 따로 지칭하기도 한다.[1]
상세[편집]
스포츠 경기를 할 수 있는 장소로써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마련된 곳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기장은 투기장으로 사용된 로마 제국의 콜로세움을 들 수 있다[2]
스타디움이라고도 한다. 이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척도(尺度)의 표준인 스타디온(stadion), 즉 606ft 9in(1ft=30.48cm이므로 약 185m에 해당함)가 단거리 경주 구간에 해당된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대의 경기는 제전(祭典)이나 장송(葬送) 때에 행해졌던 행사로, 그리스의 역사시대(歷史時代)까지는 일정한 경기장소가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경기가 제전의 부속물이 되었어도 신전(神殿)은 산간 변두리에 많았으므로 경기장소의 크기는 제한되어 신역(神域) 또는 광장으로 국한되었다. 전형적인 유적은 아폴론의 성지(聖地) 델포이로서 길이 177.5m, 너비 25m의 돌로 쌓은 스탠드가 있다. 올림피아제(祭)의 올림피아 경기장도 알려졌는데, 이것은 흙을 돋워올려 만든 스탠드로 길이 191.27m, 너비 30m로 되어 있다.
장거리 경주는 같은 코스를 여러 차례 돌면서 실시되었다. 경마(競馬)나 전차경주(戰車競走)가 실시된 제전에는 신역에 가까운 광장이나 하천의 제방 등이 이용된 듯하나 반환 코스였는지 주회(周廻) 코스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경기장 내에서 자신이 직접 경기를 하지 않고, 포로나 비시민권자(非市民權者)로 하여금 서로를 죽이게 하거나, 사람과 맹수와 싸우게 하여 구경하였다. 제정시대(帝政時代)에는 전차경주가 황제나 상류계급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 사이에도 열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켜 도박경기로서 유행하여 이때부터 대규모의 경기장이 만들어졌다.
로마 건국 당시부터 경기가 실시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대연기장(大演技場, Circus Maximus:대전차경기장이라고도 한다)은 제정시대에는 길이 약 610m, 너비 약 183m의 직사각형을 이루었고, 호화스러운 스탠드는 무려 3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네로(재위 54∼68) 시대에는 올림피아에 모인 그리스 선수들을 로마로 데려다가 경기를 시킨 일도 있었다.
유적(遺蹟)으로 남아 있는 것이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원형 연기장)이다. 타원형으로 긴 부본의 지름이 188m, 짧은 부분의 지름 156m, 높이 48.5m, 아레나(arena:지하에 짐승을 가두어 두는 방과 통로를 설치한 것) 부분은 긴지름 86m, 짧은지름 54m로, 약 5만 명의 수용능력이 있었으며, 황제 티투스 재위시에 완성되었다.
이 외에 제정시대에 2∼3개의 연기장이 만들어졌으나, 앞의 2개보다는 규모가 작다. 고대 로마가 멸망한 후 봉건시대에는 기사의 무술시합이 실시되었는데 특정 경기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근대 스포츠가 발생하기 시작한 18세기 경의 시합장소는 광장이나 도로, 혹은 교회의 마당 등이었다. 폼(테니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과 같은 왕실 전용의 게임은 일정한 코트를 가지고 있었으나, 저택 내에 만들어진 것이 많았다. 19세기에 영국에서 성행하였던 이튼칼리지(Eton College)나 럭비학교의 스포츠만 하더라도 교정이나 광장을 사용하여 실시하였으며, 상설 경기장으로서의 스탠드를 가진 것은 1896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올림픽 때였다.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리석 스탠드가 있는, 1바퀴 400m의 신더트랙(cinder track:석탄재를 깔아서 만든 경주로)으로서 100만 드라크마(drachma:franc에 해당하는 그리스의 화폐 단위)의 기부를 받아 고대 경기장 자리에 새로 만들었다. 고대의 직선 코스 경기장 자리였기 때문에 커브가 급하여 헤어핀형(머리핀형)이라 한다. 그후 4년마다 계속된 올림픽 대회도 가설경기장(假設競技場)이었으나, 1912년의 제5회 대회 때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만들어진 경기장(1바퀴 380m)은 최초의 근대적 양식으로 된 것으로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이 무렵부터 유럽에서는 공공경기장(公共競技場)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제9회 올림픽경기대회 때의 암스테르담경기장에 이어 로스앤젤레스경기장, 베를린경기장, 헬싱키경기장 등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잇달아 건설되었다.
한국의 경기장[편집]
1926년에 세워진 동대문운동장은 한국 최초의 종합경기장이다(설립 당시의 명칭은 서울운동장). 여기에는 육상경기장·야구장·테니스 코트·배구 코트가 있고, 1936년에는 경기용 수영장과 다이빙용 수영장도 갖추어 당시로서는 동양에서도 드문 종합경기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경기장을 중심으로 '조선신궁(朝鮮神宮) 봉찬(奉贊)체육대회'란 것이 해마다 열렸으며 8·15광복 후에도 상당기간 전국체육대회 및 학도체육대회 등 전국 규모의 종합경기대회는 여기에서 거행되었다.
시설의 노후에 따라서 시설을 확충하였으며, 1958년 야구장은 본부 스탠드를 개축한 것을 시초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의 개최 등을 계기로 내외야 스탠드를 대폭 확충하였고, 야간조명시설도 설치하여 오늘날엔 관중 2만 6000명이 밤낮으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근대적 경기장으로 변모하였다.
육상경기장은 1961~66년 단계작업으로 스탠드를 신축하여 2만 4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시설을 마련하였으며, 1973년에 야간조명 시설을 갖추었고, 1975년에는 트랙을 타탄으로 포장하여 현대식인 육상경기장을 만들어, 그해 이곳에서 제1회 아시아 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거행할 수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에 이어 육상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삼고 야구장 또는 테니스 코트를 부(副)경기장으로 하는 종합경기장을 전국의 주요 도시(주로 도청 소재지)에 건립하였다. 8·15광복 후 지방 행정당국은 이들 경기장을 모체로 확충작업을 펼쳤으며 이 작업은 1958년 전국체육대회(추계 대회)가 부산에서 열리고 1960년도 대회가 대전에서 열림으로써 본격화하였다.
5·16군사정변 후인 1962년, 전국체육대회가 대구에서 개최되자, 경북은 대구시립종합경기장을 관중 5만 4000명 수용규모로 신축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1963년 전북종합경기장(전주), 1964년에는 인천공설운동장, 1965년에는 전남공설운동장(광주)이 신축되어 각각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시설이 미비했던 대전공설운동장(1979)과 전북종합경기장(1980)은 전국체육대회를 다시 유치하여 영구시설로 개축, 각각 5만 명과 4만 5000명의 관중 수용시설을 갖추고 있다.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한 후 1982년 전국체육대회를 경남에 유치함으로써 마산에 5만 명 수용 규모의 종합경기장이 세워졌고, 도세(道勢)의 빈약으로 전국체전을 개최하지 못하였던 강원과 충북은 1978년과 1979년에 전국체전보다는 규모가 작은 소년체전을 개최함으로써 강원종합운동장(춘천)과 청주종합운동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서울에서는 1988년에 거행된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의 중심경기장으로서 서울종합운동장을 송파구 잠실동에 건립하였다. 이 시설물인 잠실체육관이 1979년에, 잠실수영장이 1981년에, 잠실야구장이 1982년에, 올림픽 주경기장이 1984년에 준공되었다. 그 밖에 송파구 방이동 일대의 올림픽공원 내에 자전거경기 전용 벨로드롬·역도경기장·체조경기장·펜싱경기장 등이 설치되어 종합적인 스포츠센터 구실을 하게 되었다.[3]
한국에서의 경기장 소유[편집]
많은 스포츠 팬들이 경기장 소유권과 관련해서 "왜 경기장을 소유하지 않느냐?"라는 의견들을 제시하고, 또 한국에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기장의 일정 좌석수가 넘어가면 국가에 귀속된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 가장 널리 퍼져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구단들, 혹은 모기업들이 경기장 소유를 하지 않는 건 법적으로 소유를 금지시킨 것이 아니라 세금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경기장을 법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특정 전문가들이 "막대한 과세로 인해 경기장을 소유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발언 한 것을, 앞뒤 다 잘라먹고 "경기장을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부분만 가지고 우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몇몇 구단들이 경기장을 신축 하려는 의지를 보임에도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지자체가 훼방을 놓아 신축을 못하고 있다고도 간혹 주장하는데, 사실 이를 좀 더 들여다보면 해당 구단들이 경기장을 지을 의지가 부족한 것을 애둘러서 면피성 발언으로 한 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정말로 경기장 혹은 일정 좌석수가 넘어가는 경기장을 민간이 소유하지 못한다면, 당장 국내에서 많은 스포츠 구단들이 운영중인 클럽하우스는 모두 국가에 귀속 되었어야 한다.
현재 법으로 기업(법인)이나 개인이 경기장을 직접 지어서 소유하는 것은 가능하나, 경기장을 소유한 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세법상 스포츠 경기장은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분류 되는데, 이 비업무용 부동산은 지방세법과 법인세법상 중과세 대상이 되어서 부동산 유지비가 경기장 건설비와 맞먹기 때문에 모기업과 구단들이 경기장을 따로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
그리고 구단 입장에서도 굳이 큰 돈을 들여 경기장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게, 경기장 장기 임대권을 받으면 오히려 구단 측에 경제적 이익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경기장 운영비 문제만 조율한다면 경기장 이용에 대한 세금을 매우 저렴한 운영비용으로 대체하면서 경기장 운영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구단이 가져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꼽을 수 있다. 이 경기장의 소유권은 인천광역시(인천시 체육회)가 갖고 있지만 운영권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갖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인천시 체육회 측에 내는 경기장 1년 운영비는 단돈 1만원이다. 이는 경기장 유지비 등은 지자체가 담당하는데, 입장수익과 매점 운영수익 일부 등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구단 측이 가져간다는 소리다.
비슷한 사례가 미국에도 있는데 MLB 뉴욕 양키스도 양키 스타디움을 장기 임대하는 조건으로 뉴욕시에 내는 비용은 연간 10달러다. 한화로 환산하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처럼 1년에 1만원인 셈이다. 다만 양키스는 건설비용 15억달러 중에 10억달러를 지불해서 얻어낸 권리다.[2]
여담[편집]
가수들의 콘서트 투어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게 바로 스타디움 투어다. 모든 공연 일정을 스타디움에서 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평균 4~5만명, 관중 동원력이 최고 수준인 가수의 경우 평균 7~10만명의 관객을 밀집해야하는 것이기에 세계적인 가수들이라 할지라도 공연을 스타디움으로 채우는 스타디움 투어는 함부로 도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뮤지션 중에서도 급이 높은 가수들을 제외하면 투어 일정 중에 일부분만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생각보다 많은 스타디움을 보유하고 있으나 협소한 공연 관람수요의 여파로 스타디움 투어를 매년 열 수 있는 가수는 한정되어 있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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