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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巫堂)은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샤머니즘]]인 무속에 종사하는 샤먼(여성 무속인)을 말한다. 굿판에서 무당은 신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한다. 무당은 통상 여성 무속인을 뜻하며 무인(巫人) · 무(巫) · 무녀(巫女) · 단골 · 심방 등으로 불린다. 남성 무속인을 지칭할 때는 격(覡) ·  박수 ·무 격(巫覡) · 화랭이 · 양중 등으로 일컬어진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B%8B%B9  무당]〉,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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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巫堂, shaman)은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샤머니즘]]인 무속에 종사하는 샤먼(여성 무속인)을 말한다. 굿판에서 무당은 신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한다. 무당은 통상 여성 무속인을 뜻하며 무인(巫人) · 무(巫) · 무녀(巫女) · 단골 · 심방 등으로 불린다. 남성 무속인을 지칭할 때는 격(覡) ·  박수 ·무 격(巫覡) · 화랭이 · 양중 등으로 일컬어진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B%8B%B9  무당]〉, 《위키백과》</ref>  
  
 
== 개요 ==
 
== 개요 ==

2024년 6월 21일 (금) 11:30 기준 최신판

무당(巫堂, shaman)

무당(巫堂, shaman)은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의 샤머니즘인 무속에 종사하는 샤먼(여성 무속인)을 말한다. 굿판에서 무당은 신의 대리자로서 역할을 한다. 무당은 통상 여성 무속인을 뜻하며 무인(巫人) · 무(巫) · 무녀(巫女) · 단골 · 심방 등으로 불린다. 남성 무속인을 지칭할 때는 격(覡) · 박수 ·무 격(巫覡) · 화랭이 · 양중 등으로 일컬어진다.[1]

개요[편집]

무당(巫堂)이란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을 뜻한다.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박수 또는 무격, 화랭이 · 양중'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므로 원래 여성은 무당, 남성은 박수로 구분하여 표현해야 하지만 여전히 혼용된다. 예를 들어 남성에겐 박수가 아닌 박수무당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따르는 신앙을 무속이라고 부른다. 무당과 박수를 합쳐서 무속인이라고 부른다.

무당의 의례는 상당히 다양한데 흔히 알려진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원색 천을 흔들며 춤을 추는 의례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그저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독경을 외는 충청도 방식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샤먼들은 비속(非俗)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행하는데 이는 무당도 그러하다. 죽은 돼지를 삼지창으로 꿰거나, 닭의 목을 산체로 꺾어서 죽여 버리거나, 작두 계단을 올라타는 의례가 대표적이다.[2]

유래[편집]

한민족의 역사를 유목민족 전체 역사에 어떻게 해서든 포함시키려는 유사역사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떡밥으로 텡그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텡그리란 바로 환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연히 텡그리 신앙은 지역에 따라서 특성들이 상당히 판이했으며 천신(天神) 신앙 자체가 원래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 있던 신앙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텡그리에 환인의 기원을 귀인하는 해당 주장은 무리수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단군 왕검 할 때의 그 '단군'이 '텡그리'와 어원이 같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최남선이 무당을 지역에 따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당골네'가 '단군'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을 세우면서 같이 제기됐을 만큼 상당히 오래된 설이다.

그러나 이는 2023년 기준으로 다시 반박되었다. 고시베리아 제어 자체가 입증되지 못하고 반박되었으며 한국어는 고립어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최남선과 신채호를 인용하며 단군과 탱그리의 어원이 같다고 주장했는데 역시 주류 언어학계에서는 거부한다. 애초에 저 사람들은 전문 역사학자도, 언어학자도 아니며 언어학을 배운 적도 없다. 물론 신채호는 한국 근대 역사학의 시조이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역사학을 배운 적은 없는 사람이다. 이병도 이후 단군과 탱그리의 기원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최소 주류 역사 & 언어학계에는 없다. 이병도는 단군신화를 곰 부족, 호랑이 부족 간의 결합 운운하기는 했지만 전술한 것과 같이 탱그리 신앙과 엮는 시도는 안 했다. 최남선의 만선사관은 처음부터 불손한 의도가 아니었긴 개뿔, 현재는 처음부터 불손한 의도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아울러 고조선의 발원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의 통설이다. 요서지역은 몽골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호와 인접해 있으니 자연스레 교류가 잦았을 테고 부여, 고구려, 발해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만주 일대를 통치하며 읍루, 거란, 선비족, 말갈, 돌궐 등 몽골계, 튀르크계, 통구스계 종족들을 포섭하거나 지배하면서 그들의 고유신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자연스레 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인들의 전통 신앙이 텡그리 신앙의 한 분파였거나 최소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이러한 추정대로라면 고구려는 고조선 계승 의식과는 별개로 고조선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에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처럼 무속 신앙에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정식적인 사회 계급으로서 인정받았지만 성리학이 국학으로 올라서자 철저한 탄압을 받았고 근현대 이후에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고 하여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형편이다. 괴력난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무교는 토속 미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종교의 모습을 잃고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았다.

한국에서 무당이 사회 제도에서 배척받고 민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주술사로서 살아남았는데 '박수'와 '무당'으로 널리 부른다. 지방이나 개인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른 옷을 입는데 무복이나 화려한 굿의 의복들이다.

"한국의 무당은 일본의 무녀처럼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이 퍼져 있는데 일본에도 도호쿠 지역의 이타코(イタコ), 오키나와 류큐 신토의 유타(ユタ)는 한국의 무당과 마찬가지로 신내림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무교 행사가 치러져야 할 때는 부채춤을 추는 아르바이트 무녀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무턱대고 무녀라는 표현이나 현대 무속 행사를 배척하는 것은 무교가 얼마나 일반인들의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가깝다.[2]

역사 기록[편집]

  • 삼국사기 유리왕 기사에서는 제사에 소용될 제물을 상하게 한 죄로 죽인 탁리, 사비라는 인물의 원혼으로 유리왕이 병들었다며 사죄할 것을 명하는 무당이 등장한다.
  • 같은 책 산상왕 기사에서는 후녀의 탄생과 그 미래를 예언한 무당이 등장한다.
  • 같은 책 동천왕 기사에서는 왕후 우씨가 산상왕과 합장되어 분노한 고국천왕의 계시를 받은 무당이 산상왕릉 주변을 가리라는 점괘를 낸다.
  • 같은 책 보장왕 기사에서는 이세적의 요동성 함락 당시 주몽을 모시던 무당이 등장하며 요동성이 무사하리라는 점괘를 낸다.
  • 같은 책 의자왕 기사에는 거북이 등딱지에 쓰인 계시를 해석하는 무당이 등장한다. 그러나…[2]

분류[편집]

무당의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 계열과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 계열로 나뉜다. 어떤 계열이든 행사가 한번 이루어지려면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하고 신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 상당한 체력 소모를 요한다. 무당 자체가 엄청난 숙련과 체력을 요구하는 직업이고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2]

세습무[편집]

학자에 따라서 사제무라는 분류명을 쓰기도 하며 고고학적으로는 정주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마을 사회의 어르신 내지는 현자의 개념이 발전한 지위로 본다. 마을의 운을 점치고 마을 구성원의 통과의례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주문화가 먼저 발달했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반도 남부 무교에서 세습무 특징이 자주 보인다. 현대 이전까지는 각 마을에서 신관에 가까운 입지를 지녔으나 마을 축제의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현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생존에 유리한 강신무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지역의 역사적 신앙과 깊이 연관되고 민속학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상기 문단에서 이미 비추어진 바와 같이 충청도는 이런 식, 어느 지역은 저런 식 등의 고장 특유의 무례(巫禮) 방식은 전적으로 세습무에 해당하는 서술이다. 대부분 절기에 따라 때 되면 행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흔적은 강신무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계절의 변화에 맞춰 굿을 하거나 백중과 같은 농경사회 기반 절기에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현대에도 확인할 수 있으며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으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부모가 세습 계열의 무당이 아니라면 세습무에는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대신 계보나 서열이 분명하여서 본인을 어필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신분이 보장된다. 한편, 도시화로 인해 지역 무속이 쇠퇴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도 세습 계열의 무당들에게 좋지 않은 전망이다. 대신 신앙의 색채를 낮추고 지역 축제 개념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세습무 무당들도 있다.

현대의 세습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별신제. 신관에 해당하는 제주, 굿을 하는 무녀, 다양한 도우미들이나 주민들의 역할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틀어서 하나의 '당골판', 즉 신도들의 모임에서 각 무당들이 지니는 역할을 볼 수 있다.[2]

강신무[편집]

철저히 프리랜서 형태로 이루어지며 행사 등에 초청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홍보전략을 사용하며 행사가 없을 때는 신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신점을 계기로 연을 만들어서 행사를 유치하기도 한다. 즉,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신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부적 등 비방을 써주며 넌지시 "굿판을 벌이면 좋다"고 처방을 주는 것이다. 강신 계열 무당들의 또 다른 특징은 본인의 전문성을 고객이나 동료 무당들 사이에 상당히 어필한다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유튜브 등의 SNS 활용도 눈에 띈다.

큰 행사를 치르는 경우 여러 명의 강신무들이 협업하기 때문에 이쪽 계열 무당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고 다른 무당들의 전문분야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신점에 능하든지, 작두타기에 능하든지 자신의 일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덕분에 유명한 강신무들은 전문성이 매우 높다. 실제 굿판에서 정해진 분업을 완벽히 해내고 다른 무당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눈치도 매우 중요한데 행사 중에는 티를 내지 않지만 뒤에서 무당들 사이에서 갈등이 표현화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즉, 팀워크를 잘하는 것이 강신무 계열 무당으로서 필요하다.[2]

특징[편집]

무당은 보통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성 무속인(巫俗人)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성 무속인은 박수, 법사 혹은 무격. 양중. 화랭이라고 불린다.

남성. 여성 무속인들을 묶어서 박수무당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호칭이 다른데 이북 지역이나 6.25 전쟁 당시 이북 출신 무당들에 영향을 받은 서울 지역에서는 만신, 충청도에서는 법사/보살, 경상도에서는 화랭이/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레, 제주도에서는 심방, 소미 등으로 불린다.

영어로 번역하기 애매한데 일단 한자 "巫" 를 가져와서 Wu라고 부르거나 그냥 샤머니즘의 한 종류로 보아 샤먼(sham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영매(mediumship)와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영매(medium)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하였다.

박수와 무당은 민족적인 단어이자 일반 명사로 취급받는다. 현대의 무교인들이 지역에 상관 없이 자신을 호칭할 때는 불교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남자는 법사/도사, 여자는 보살/선녀/무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무녀'는 시대에 상관 없이 주로 사회적으로 여성 무당을 칭하는 표현 중 하나다. 현대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무교 행사가 적어서 '무녀'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다 보니 '무당'이라는 민족적인 단어에 대비되는 일본식 호칭, 즉 미코의 현지화 버전으로 생각되어 무녀라는 호칭을 꽤 엄격하게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나마 해를 품은 달도 있었고 점점 분위기는 얕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표현을 쓸 일이 잘 없긴 하다.

법률상으로는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면세자가 아니며 목사, 사제, 수도자, 승려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한국 표준 직업 분류에 의한 직업 코드는 41622이며 정식 명칭은 점술 관련 종사원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정식 직업으로 인식되어 무세(巫稅)를 걷기까지 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꽤나 위상이 높은 직업이었는데 신라시대의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다. 즉, 고대에는 대다수의 왕들이 무당을 겸했다. 원래 세계사적으로 고대 사회는 대부분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사회여서 왕은 신관을 겸직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천한 계통으로 취급했으며 사이비 무당이 엉터리로 굿을 해 괜한 삽질 벌인다는 의미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는 속담도 있다. 비슷한 속담으로 '반풍수(어설픈 풍수지리 학자)가 집안 망친다'란 말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사람은 생존을 위해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데 옛부터 이를 이용한 터라 무속인들 대다수는 거짓된 무속인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는 무속을 법률에 정한 대로 상업 서비스로 보았을 때의 판단이다. 종교로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부활이나 사후세계, 환생과 깨달음을 통한 초월 등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종교도 비난받지 않는다. 불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겸비해 늘 올바로 보는 식견이 필요하다.

무당은 본래 특정한 마을의 신체를 모시거나 몸 안에 받아들인 신을 따르는 샤먼이자 축제를 주관하는 사제였지만 전통적인 세습무들의 세력이 사회적 방치 속에서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점술, 퇴마, 부적, 굿, 각종 비방을 파는 종교 서비스가 되었다. 당연히 '신'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지만 다른 종교와는 달리 체계적인 직급이 있는 사제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특이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제로서 체계적인 직위가 없는 것이지, 도덕적인 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하여 단순한 무속인들과 명백히 무속의 종교 계율을 지닌 무당까지 주술사로 묶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에게 유명한 인물이면 누구든지 신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당들이 믿는 신령은 귀신과 영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신' 을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는 체계적인 종교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영혼' 을 인간의 영리를 위해서 이용하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동떨어진 상업적인 사제의 개념에 굉장히 가깝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실화가 있는데 선교사가 함경도의 한 무당에게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하며 야훼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무당은 개종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다음 날 선교사가 다시 와 보니 선교사에게 받은 예수 성화를 걸어 놓고 무속신을 받드는 굿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민속신앙(다신교)이 다른 신을 쉽게 받아들인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처럼 자국의 토속 종교가 체계를 잡고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는 예수가 그냥 도교나 힌두교의 신으로 흡수되어 버릴 정도다.

고대에는 크게 이름을 떨친 영웅이나 지도자들을 하늘이나 태양에 비교하며 신으로서 섬겼다. (참고: 환인, 해모수, 주몽) 사실 지금도 역사적 위인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는 많아서 예를 들어 신라의 문무왕, 장보고나 고려의 장수 최영, 조선의 단종, 세조, 남이, 이순신, 임경업, 사도세자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삼국지연의의 관우와 장비, 더글러스 맥아더 같은 사람도 신으로 모신다.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성녀로 공경하는 잔 다르크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무당도 존재한다.

물론 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모두 인간 출신인 것은 아니며 옥황상제, 삼불제석, 칠성신, 도깨비, 산신령, 감흥신령, 부처, 미륵 등 천신, 자연신, 초월자적 존재도 많다. 다만 이는 모시는 신일 뿐 몸주신이 아니다. 옥황상제, 칠성신, 일월성신 등을 '원신'이라고 칭하는데 원신이 몸주로 오는 무당은 전국에 10명도 안된다. 물론 이 원신이 몸주로 오는 무당들은 정의상으로는 무당이라고 칭하나, 실제로 무업을 하는 이들은 아니고 다른 형태의 길을 걷는다. 만약 몸주가 옥황상제, 일월성신 등 최상위 계층의 신이라고 자칭하는데 신당을 차리고 점을 보고 무당의 행위를 한다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넘어 사기꾼이니 조싐해야한다. 한국 신화 문서 참고.

이는 샤머니즘의 자체가 현세구복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와 인류애 같은 큰 문제는 전 세계의 샤먼(무당)들에게는 2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며 눈앞의 인간들의 부귀영화를 이루어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 시즌만 되면 유명 일간지 혹은 시사지와 인터뷰하며 "누가 차기 대권을 가질 것이다" 라는 뜬금 없는 설을 내미는 무당들을 볼 수 있다. "찍어도 하나는 맞겠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대선 기간에 뜬금없이 매스컴을 통해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은 제대로 된 무교의 무당이기보단 사회적 중대사에 편승해 이목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뒷돈을 받아 홍보하는 사이비 무속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선 때 이목을 끌려는 케이스라면 당연히 될 법한 당선권의 후보를 꼽아봤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니 화젯거리가 안 되므로 다른 후보를 고르게 마련이다. 홍보 목적의 경우 정상적인 거물 후보에겐 국민적으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무속계의 주술적 예언을 내세워봤자 마이너스만 될 뿐이니 역시 의뢰가 들어오는 건 당선 가능성이 없는 군소후보로 한정될 것이다. 고로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이 진짜 당선될 법한 후보자를 지목할 일은 없을 수밖에 없다.

무교에서 바리공주는 무조신(巫祖神)[19]으로, 모든 무당들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신이다.[2]

다른 종교와의 관계[편집]

요술쟁이 여인은 살려두지 못한다.
출애굽기 22:17 (공동번역 성서)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죽여야 한다. 제사는 야훼께만 드려야 한다.
출애굽기 22:19 (공동번역 성서)
너희 가운데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점쟁이가 있으면, 그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을 돌로 쳐라. 그들은 제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27 (공동번역 성서)

유일신교 계통은 무속신앙과 관계가 영 좋지 않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무당을 좋게 보지 않는다. 가톨릭이나 정교회, 온건 성향의 개신교에서는 그나마 부드럽게 대응하지만 근본주의 계열에서는 강경하기 이를 데 없다. 온건적인 교단에서도 '굳이 현실에서 무속인들이나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함부로 단죄하지 않는다' 는 입장이지 신자들이 무당을 찾아 점사를 보거나 굿을 하는 행위를 강하게 금지하고 죄악시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미 구한말 때부터 이런 충돌이 잦아서 근대 문학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는데 그 예로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있다. 가톨릭은 애초에 그 유명한 샤를마뉴가 게르만 박수무당을 완전히 개박살내 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작센족을 완전히 개박살내고 그들의 주술에 대한 기록도 활활 태워버렸다. 서유럽에서의 씨족주의 약화에 큰 기여를 한 사건이다. 아울러 처리에 실패한 것들은 이리저리 비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제거해서 그리스도교화로 흡수해 버려 관심이 뜸해 보이는 것일 뿐이다.

반면 무당들은 다른 종교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편이다. 고대의 다신교적 신앙들은 보편화한 종교와는 달리 비판적으로 다른 것들을 보면서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것조차 자기 안으로 혼합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고대 신앙의 모습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힌두교인데 경전을 가지게 됨으로써 재구축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속신앙이 통일된 교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무당마다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에게 사막잡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금을 뿌려서 쫒아내는 무당이 있고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무당도 있다.

한국에서 민속신앙의 영향력이 강했던 제주도에서는 구한말 정식 포교가 시작될 때 가톨릭과 상당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는데 신축민란 당시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당했다. 신축민란을 전후하여 상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불교가 전파되던 시기에 기존 무속신앙과 새로 들어온 불교와 갈등으로 이차돈의 순교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수 세기가 지나면서 불교와 무속신앙이 서로 융합하여 무속에서도 불교 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하고 한국 불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왔다. 몽골에서도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자 기존 텡그리 신앙의 샤먼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나중에 서로 융합하게 된다.

현세구복적인 성향은 무당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종교적인 성향이 대부분 그렇다. 이북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던 시기에 선교사들이 무당에게 전파하고 무당을 따라서 동네 아녀자들이 교회로 가면서 한국 개신교에는 샤머니즘이 유입되었다. 실제로 대형교회의 설교를 잘 들어 보면 샤머니즘의 현세적 기복신앙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몇몇 한국 불교도 달마도, 기와, 부적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에는 민간신앙과 개신교를 혼합한 사이비 종교들도 많다. 예를 들어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리 중 새하늘 새땅이 열리면 십사만 사천 명의 영을 성도들이 덧 입는다는 내용은 무속의 빙의 개념과 대단히 유사하다.[2]

무당의 종류[편집]

세습무와 강신무[편집]

한국의 무당은 주로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뉜다. 세습무는 사제무라고도 부르며 신내림 없이도 마을의 축제를 대대로 배우고 물려받는 직책이다. 강신무는 신내림이 와서 자신의 몸 안에 신을 모시는 개인적인 형태의 무당을 말한다. 세습무는 특정한 지역의 신체를 모시며 대물림되는 축제의 신관에 가까우며 강신무는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거나 세습무를 돕는 프리랜서 형태의 무당이다. 즉, 세습무는 집안-가문(혹은 마을)에 내려진 신을 대를 이어가며 모시는 것이라면 강신무는 집안-가문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체에 내려진 신을 모시는 것이다.

세습무와 강신무의 차이점
요소 세습무 강신무
신체(神體) 마을의 성물, 성소, 신목 자신의 몸
생활 축제가 없을 때는 치성과 수행을 제외하면 일반인처럼 생활함 평소에도 몸속의 신을 위해 무복을 입고 치성하는 비율이 높음

본디 이남에서의 굿은 세습무들이 중심이었다. 강신무는 세습무를 도와 굿하는 날을 잡거나 대를 세우거나 신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거나 굿의 부수적인 작업을 전문적으로 단련하여 서로 분업하였다. 기본적으로 굿은 다양한 사설과 노래와 춤과 진행과정을 배워야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끌어가는 쇼맨십이 필요한데 이는 어려서부터 혈족들의 굿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익힌 세습무라야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 받은 무당들은 대부분 세습무이며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된 경우도 있다. 강릉단오제: 빈순애 무당(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김윤수 심방(무당의 제주어)(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들은 각각 선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의 며느리, 조카로 전승받은 세습무다.

당연하지만 세습무는 수백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전통이라서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현재 보존회를 만들고 문화재청에서도 관심을 받는 만큼 꼭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본인이 전수받겠다고 나서면 받아주지만 무형문화재 전수자에게 인정받는데 말 그대로 평생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진짜배기 무당이 되려면 수행만으로도 매우 어렵고 괴롭다.

물론 강신무도 중요한 행사에 초청받으면 인적문화재로서 꽤 중요한 지위를 지닌다. 예를 들면 작두 계단을 잘 타거나 입담이 좋은 강신무는 다양한 축제마다 서로 모셔가려고 했을 정도로 전문성에서는 세습무보다 더 뛰어난 점이 많은 인력이었다. 세습무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지역신앙의 중심, 강신무는 전문성과 고급기술로 살아남는 무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습무들은 마을 축제가 없을 때는 평범한 동네 주민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감이 있으며 심지어 마을의 바깥 일에는 무속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세습무들은 본디 마을 단위의 성소를 모시는 무당이었으므로 마을 바깥에 대해서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애초에 자신의 당골판 바깥은 다른 종교 혹은 무당의 영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강신무들은 평소에도 무복을 입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특유의 비즈니스적인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도 잘 맞는 편이라서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근대 이후로는 세습무 전통이 파괴되어 버린 마을이 많아서 강신무들이 지역 축제를 대신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세습무(사제무)들은 마을이나 공동체가 안정되어야 나타날 수 있는 종류의 무당이다. 반대로 강신무들은 자신의 몸이 신체이기 때문에 몸만 있으면 신령을 모실 수 있으며 항상 신전을 보살피듯이 수행에 돈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벌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무당이 강신무였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다양한 문화가 파괴되면서 세습무는 남쪽에서만 그 명맥을 간신히 잇고 있는데 이는 6.25 전쟁 후 사회의 변천으로 기존의 민간 문화와 성소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신무들은 지식이 부족해도 신기로 점을 치거나 신통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대다수의 무당들이 강신무이며 '만신' 이라는 이북식 표현도 많이 쓰인다.[2]

법사, 점쟁이[편집]

법사(독경쟁이)는 독경이나 주문을 읊어서 굿의 효험을 높이거나 귀신을 쫓으며 무경(무교의 경전)을 배운 사람이다. 점쟁이(역술인)는 굿은 하지 못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이다. 본디 무당은 굿을 하는 사람만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새는 이들까지 무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독경을 읊는 법사도 공식적으로 무당에 속한다. 당연하지만 법사도 무경만 읽는 건 아니고 주술의례를 행할 줄 안다. 다만 큰 굿을 할 때 보통 가장 중요한 강신을 여성 무당들이 할 뿐이다.

특히 충청도는 앉은굿(혹은 양반굿)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지방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의례에서 춤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굿과 제사를 앉아서 진행하는 독특성을 띄기 때문에 독경/주문을 중심으로 하는 법사와 강신을 중심으로 하는 보살(무녀)이 함께 굿을 행하며 비슷한 중요성을 지닌다.

현대에는 법사와 무당을 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법사와 무당은 엄연히 달리 취급 받았다. 신내림을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을 경을 외워서 법사를 한다고 송경법사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행이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틔운 도사에 가까운 법사를 영법사라고 하였으며 신내림을 받은 법사를 영신법사라고 하여 각각의 법사의 역할을 달리 구분했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강신무를 겸하는 영신법사가 대부분이지만 도교적 수행법에 몰입하거나 단순히 기도를 하다 무불통신으로, 특히 도사 신령과 접한 이들이 그대로 영법사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법사가 무당보다 희소한 직업이라 둘을 겸해서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전술한 충청도 제사에서 법사는 전문적인 무경의 암송과 운율을 맞추는 법, 의례용구 만드는 법처럼 오랫동안 수준 높은 학습이 필요한데 자연히 힘들고 지원자도 적다. 21세기에는 종종 인터넷 불교용품점에서 충청도 무교에서 쓰는 설경을 팔기도 하는데 설위설경(설경)을 보면 토가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참고로 충청도의 설경은 직접 손으로 칼을 잡고 하나하나 뜨는 게 원칙이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엄청 복잡하다. 보기만 해도 억소리 나올 정도다.[2]

악사, 잽이[편집]

굿이나 무속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은 전문적으로 무교에 관련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필요하므로 무당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종종 남사당과의 연결고리도 있다.

실제 굿판에서는 잽이라는 말은 폄칭으로 통용되며 보통 굿판에서 부를 때에는 전악이라는 호칭으로 높여 부르곤 한다. 이는 성주굿 형태로 무당 개인이 제자나 지인들에게 장단과 가락을 가르쳐 본인만의 굿 팀을 꾸려서 일을 하는 예전과 달리 요즘 무당들은 피리, 대금, 해금과 같은 전통악기에 전부 능통하지 못해서 악사가 일종의 일일 초청 서비스가 되어버 렸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악사의 수에 따라서 굿의 규모가 달라지는데 이는 금전과 관련된 사항이다. 악사에게 지급하는 일당도 굿값에서 빼는데 보통 전악 한 명당 그 페이의 평균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다. 막말로 악사를 초청하지 않는 대신 굿상을 더 화려하게 차리는 무당도 있을 정도다. 악사가 없거나 1명이 들어가면 작은 굿, 2명이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굿으로 보며, 악사가 3~4명 들어가는 삼잽이, 사잽이는 한양 새남굿(진오귀굿) 혹은 작두굿 등에 해당될 정도로 기본적인 굿의 규모가 크고 길게 이어진다. 새남굿은 도령돌기로 망재상을 만신이 돌 때, 작두굿은 작두감상을 놀며 연풍을 돌 때 피리가 없으면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굿은 엥간해선 악사를 꼭 초청하곤 한다.[2]

애동제자, 신딸/신아들[편집]

애동제자는 신기를 받았지만 아직 무당일을 하지 못하는 견습생을 뜻한다. 제자를 빼고 애동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내림굿을 해 준 무당과 받은 사람은 신딸/신어머니라는 관계로도 불린다. 무격(남자)은 신아들/신아버지라고 불린다.

간혹 친부모가 무속인인데 무속인 자식이 신병에 시달리고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친부모가 신아버지 신어머니가 되기도 한다.[2]

지역별 무당[편집]

만신은 이북에서 영험하고 고명한 무당을 뜻하는 단어이며 무당이 섬기는 신을 만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북식 무당들이 많이 남하하면서 한국에서도 무당의 별칭으로 자주 쓰이는 명칭이다.

화랭이는 경상도에서 무당을 돕는 보조적인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이나 남성 무속인을 부를때도 쓴다. 잽이(악사)도 화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고대의 화랑이라는 호칭이 천 년 정도 지난 후 동성애적이고 신관적인 코드가 화랭이라는 호칭으로 열화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단골레는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다. 한 지역에서 오래 무당일을 하는 세습무와 그 신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며 현대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한 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을 뜻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심방은 제주도의 무당 구분 중 하나로서 신의 아이라는 뜻이다. 세부적으로는 남녀에 따라 소나이심방(남)/예폔심방(여), 직책과 영력에 따라 다른 심방들을 이끌며 굿을 주도하는 심방을 수심방, 어느 굿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심방을 큰심방, 큰심방만 못한 평범한 심방은 족은심방, 수준이 매우 높아 본향당(제주도에서 마을의 신당을 부르는 말)을 관리하는 심방은 당맨심방이라고 한다.

소미는 제주도의 구분 중 하나로서 영력이나 경험이 심방만도 못해서 간단한 굿이나 축원, 굿의 보조 일을 하는 주술사를 말하는데 육지의 화랭이와 비슷하다. 다만 소미도 소미 나름이라 굿과 무악을 잘 알고 능력이 출중해 심방이 종종 실수해도 뒷바라지를 잘 해줄 수 있는 소미는 접소미(신소미, 수소미)로 불리며 그렇지 못해 잡일이나 하는 소미는 폿소미 혹은 안체포나 나른다고 안체포소미라고 부른다. 제주도에는 '심방이 서툴어도 굿을 할 수 있지만, 소미가 서툴면 굿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굿에서 소미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예 여러 심방들이 합동으로 굿을 하면서 심방과 소미 일을 돌아가며 하기도 한다.[2]

구성[편집]

무당이 되는 법[편집]

일상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신기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점집에 가서 무당에게 신을 모셔야 하는 팔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 후 신내림을 받아 점집을 개업해 무당이 되는 케이스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50만명 무당 중에 신 안받아도 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2]

세습 계열[편집]

세습무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은 세습에 의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신통력 등을 따지기보다는 마을 대대로 무당 일을 하는 집안에서 부모가 무당이면 자녀들도 무당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혈연 관계라도 신병을 앓다가 내림굿을 받아서 신어머니(신아버지)-신딸(신아들) 관계를 맺어 활동하는 강신무들과 구분된다. 세습무는 집안-가문에 신이 내려져서 대를 통해 그 신을 모시는 것이라면 강신무들은 집안-가문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신이 내려져서 신을 모시는 것이라 보면 이해를 구하기 쉽다.

접신을 통하여 굿판을 진행하는 강신무와 달리 세습무의 역할은 마을의 무속 신앙을 유지하는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작두를 타는 등의 곡예나 묘기를 선보이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마을에서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빌어 주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자주 관찰되는 형태의 무당이었으나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형태의 무당이다. 그러나 강릉단오제 전수자인 빈순애 회장처럼 강신무 중에서 일부가 결혼 등의 형태로 세습무 집안으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있고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진도씻김굿 전수조교인 송순단 명인처럼 강신무 출신이 세습무의 가무를 배워서 보유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로나마 세습무의 전통들이 유지되고 있다.[2]

강신 계열[편집]

강신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자신이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다른 강신 계열 무당에게 신점 등을 보러 갔을 때 강신무가 신을 알아보고 신내림을 받으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고명한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서 이 문서를 보고 있다면 우선 그것이 알고 싶다 1259회부터 보자. 사기꾼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을 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단지 수천만 원의 굿비를 뜯어내기 위해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걸 알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님을 외치는데 가뜩이나 근심 걱정을 가지고 무당을 만나러 온 사람은 안 속을 수가 없다. 정말 신을 모셔야 할 팔자라면 한 사람의 무당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무당이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최소한 2~3명의 무당은 더 만나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프로그램을 본다면 알겠지만 사기꾼 무당을 만나서 신내림의 잘못된 길로 들어가면 다단계에 빠지는 것과 다름 없다. 수천만 원 돈이 깨진다!

먼저, 신내림과는 전혀 상관 없으면서 일부러 무당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하지는 마라. 무당이 된 사람은 자의보다는 신병이나 가족환경과 같은 타의에 의해 된 경우가 압도적이다. 즉,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며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혹 귀신을 보는 흔히들 영안이 뜨였다고 하는 체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무당이 될 팔자가 아니라면 될 수 없다고 한다. 못 봐도 무당팔자면 무당 하는 거고 봐도 무당팔자가 아니면 그냥 영안 뜬 일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일단 '무당의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리는데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정신병이자 문화고유장애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베리아 원주민과 부랴트, 몽골 샤먼들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신내림을 받고 샤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샤먼을 "북구 특유의 정신병적 현상"이라는 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 등의 연구를 참고하길 바란다. 다만, 대한민국을 포함헤 아시아 북방 국가 무속의 뿌리가 샤머니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시베리아 퉁구스족의 샤먼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귀신이 보이거나 알 수 없는 고통이나 각종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를 무병(또는 신병)이라고 한다. 대개 신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면 그런 현상이 사라지게 된다. 정확히는 신내림굿을 곧장 받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붙어있는 거짓 신령인 허주를 가려내고 올바른 몸주신을 맞이하기 위한 정화 기간을 갖기도 한다. 무속에서도 같은 개념으로는 누름굿이 있지만 개중에는 신에게 직접 점지되어 이런저런 수를 써도 운명을 피할 수 없어 무속인의 길을 밟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당이 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신병은 일종의 저주나 낙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본인의 진로의사와 상관없이 진로가 강요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잡귀들이 무당이 될 사람을 알아보고 그의 몸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신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자들은 이러한 신병을 진찰해 본 결과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자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화고유장애" 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건 결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 아니다. 실제로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김금화 만신은 70명 정도 되는 신딸 중에서 외국인 신딸이 서너 명 있다고 한다.

특히 부모, 조부모 세대가 무당이었으면 자식이나 그 다음 세대에 '무병' 등으로 신내림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당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절대 신내림을 받지 않길 바라지만 어김없이 무병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기 때문에 그 외압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자식들은 아무래도 발병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신내림을 받았더라도 정식 무당이 되려면 오랜 학습이 필요하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을 신어머니/신아버지, 내림굿을 받은 사람을 신딸/신아들이라고 한다. 신딸/신아들은 신어머니/신아버지를 스승 겸 부모로 모신다. 신내림을 받고 나서 무당으로써의 일(굿)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아직 굿 경험이 얼마 없는 견습생들은 '애동' 또는 '애동제자' 라고 한다.

굿 비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일부 비양심적인 무당은 단순한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는 질환마저 무병이라고 속이며 누름굿, 내림굿 비용을 뜯어내는 경우가 있다.

무불통신이라는 것도 있는데 세간에 상당히 잘못 알려진 정보로 돌고 있다. 팔도명산 기도하다 신이 내려온 사례라고 하나 무불통신은 외신(外神)과 소통하는 것으로 특별한게 아니라 모든 무당들이 다 가지고 있는 巫의 능력이다.

무불통신이 마치 특별한 듯한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선 어줍잖은 무의 지식으로 무당 노릇하며 사기를 치려는 이들로 인해 생겨난 것인데, 실제로는 상기 서술한 것처럼 특별한게 아니라 무불통신을 못하는게 이상한 것이다 따라서 무불통신을 내세워 홍보하는 무당 또한 사기꾼이라 보면 불필요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2]

굿[편집]

마을 행사이자 광대놀이이자 주술적인 기능을 겸하는 제사. 무당이란 말 자체가 굿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전국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굿이 있는데 각 지역마다 효험, 구성, 모시는 신령이나 입는 옷까지 다르다.[2]

무구[편집]

무당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무당이 사용하는 도구도 지역별로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 직접 휘두르거나 몸에 걸치고 사용하는 무구는 ★

※ 굿판을 장식하여 신령을 부르고 영혼을 대접하는 장식물은◾

  • 신칼★: 무당이 불러내는 신들의 힘을 나타내는 칼. 응원도구처럼 하얀 술이나 회전하는 금속장식을 붙여서 쓴다. 신칼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 무당방울 / 무당부채★: 불쌍한 영혼은 달래고 나쁜 귀신은 쫓아내는 진혼용 무구. 1m가 넘는 색깔 천을 붙여서 화려하게 휘두른다.
  • 삼지창★◾: 굿판의 위치를 알리는 상징물. 신령들에게 바치는 제물(돈, 돼지, 옷감)을 꿰어놓는 표식이기도 하다.
  • 오방기★◾: 오방색 천을 붙여놓은 깃대다. 부채와 삼지창의 중간적인 용도를 지닌다.
  • 작두★◾: 접신했을 때 칼날 위에 올라타면서 무당과 신령이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용도.
  • 악기류★: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잽이)들이 사용한다. 무당이 직접 북이나 장구를 치면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 경판◾: 주로 독경을 읊는 법사들이 사용하는 소도구. 화려한 예술품이다.
  • 지화◾: 종이꽃. 저승의 꽃을 표현하는 장식물로서 영혼을 상징한다. 화려한 장식품.
  • 허개등◾: 동해안에서 신령들을 불러들이는 목적으로 높은 곳에 매달아놓는 등불이다. 화려한 장식품.
  • 신장대★: 신을 부르는 세습무의 무구. 일본 신토의 고헤이와 유사하다.
  • 무복★: 무당이 입는 옷. 무복.
  • 설위설경

이런 것들은 만물상이나 불교용품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목록에는 없지만 卍자 모양 스티커가 있는데 불교와 상관도 없는 점집에서도 은근히 卍자를 깃발로 매달고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이 이걸 보고 기겁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만자 만의 유래를 따져보면 만자만 가지도 기겁하거나 비판을 하는 건 무식한 행위이다. 만자는 하켄크로이츠도 점집의 의미도 아닌 단순히 고대에서 길한 것을 나타내는 문양이다. 만자만 보고 하켄크로이츠니 점집을 의미하니 비판하는 첨부된 기사 속 인물들의 반응 또한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기사 무속인들이 과거처럼 무구를 예전처럼 하나하나 주문제작하기보다는 만물상이나 불교상에서 무속인용 세트를 파는 걸 쓰는 경우가 늘면서 세트로 딸려오는 만자 스티커를 붙인다. 실제로 200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저술, 민속원에서 출판된 학술연구서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라는 책에 따르면 현대에 들면서 만물상을 통해 구입하거나 무속인 단체에서 기계로 만드는 경우가 늘면서 예전처럼 개인이 주문 제작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2]

현대의 무당[편집]

현대를 사는 모습[편집]

현대 사회는 대놓고 천민 취급하는 유교 시대가 아니며 정말 어려운 수행을 받는 무당은 민족문화의 계승자로서 인정해준다. 만신으로 잘 알려진 김금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1960~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미신 타파의 이유로 무당들이 잡혀가거나 신당에 대한 파괴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기에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무속을 부활시켰다.

수입이 억대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제법 있으며 굿 한판에 천만 단위의 돈을 벌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작은 굿이라도 명절 상차림의 곱 이상으로 가격이 들어간다. 당골에 한정하면 작은 굿은 수백만원짜리도 있지만 굿 가격에는 무당의 인건비만 해도 상당하다. 한 번 굿을 하면 무당만 있는 게 아니고 독경하는 사람, 상 차리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주례하는 무당 혼자 감당이 어려울 경우 따로 초빙하는 무당, 북 같은 악기를 치는 사람 등등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들이 모여 움직이는 회사 같은 건데 어쨌든 이 사람들에게도 인건비는 나가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든다. 정재계에서도 무당을 믿는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소문만 잘 나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무속 문화는 순수한 서울 경기 지방의 문화가 아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무속인들이 대거 남하하여 서울굿은 북한식과 옛 서울-경기 지방식이 뒤섞여 있어서 서울굿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북굿, 이북방울처럼 북한 지역의 흔적이 많다. 상을 차리는 순서나 열의 위치부터 주로 사용하는 무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지역별 특색이 있다. 이것은 북한의 교회들이 남하했던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과 몇백 년 전까지 토속신앙의 전문가였던 무당과 그 무속은 그리스도교, 불교 등 기성 종교로써의 질서와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채 미신으로 소비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현세주의, 현실주의자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배격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음성적인 형태로 소비되는 형태로 왜곡되어 살아남았다.

한 때 tvN을 위시한 케이블 채널에서 인터뷰 대상으로 과도하게 선호하던 직종이었다. 오늘날 tvN의 프로그램 편성과 방송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굉장히 의외지만 본래 tvN은 2006년 개국 이래 선정적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프로그램 편성,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연 조작 등으로 비판을 많이 받던 흔하디 흔한 케이블 채널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사실 욕 먹던 케이블 방송사 중에서도 무속 사랑과 선정성 때문에 막장 케이블채널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어 가장 많이 욕먹던 방송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리얼스토리 묘, 위험한 동영상 SIGN,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프로그램들이 당시 tvN의 성향과 수준을 말해주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KBS 출신의 신원호, 나영석 PD를 영입한 2011년~2012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지금의 위상을 구축하게 되었다.

일단 전문직업에 속하는 만큼 오컬트 프로그램에서 퇴마사로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활약상은 작가들이 써놓은 각본에 따라서 다르다. 심지어 주작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는지, 현지의 무속인을 섭외했는데 촬영 전에 각본 숙지가 잘 되지 않은 건지, 현지 무속인은 사건의 원인이 된 원혼의 실체를 밝힌 후 위령한다고 술을 원혼이 깃들었다(고 주장하는)는 나무에 뿌렸는데 옆에서 주연을 맡은 김X기 법사는 그 원혼을 자신의 몸에 가두었다고 얘기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귀신이 자주 목격된다는 녹음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확인 과정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기이한 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잘 보면 같이 출연한 퇴마사를 자청하는 무속인이 제작진이 확인하기 직전에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대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이비 무당들에게 광고 혹은 뒷광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엉터리 무당들이 신내림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상황을 고발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사기꾼 무당은 모 엑소시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가로 시즌 당 6천만 원 정도를 냈다고 인터뷰했는데 재방송을 통해 많은 인지도를 얻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고명한 무당이라도 자식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주와도 같은 신내림을 자녀에게만큼은 피해갔으면 하는 연민과 세간의 시선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가 무당이면 그 자식에겐 필히 대물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만큼은 절대로 무당이 되지 않길 바랐으나 시간이 흘러 자식마저도 신내림을 받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린다. 사실 자식이 3D직업에 종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반대로 어떤 무당의 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굿하는 걸 보고 자라 어머니가 평소에 하는 무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었다. "정작 그 어머니는 생판 남을 신딸, 신아들로 삼고 물려주고 있다"고 일제강점기 무속을 연구한 일본인의 기록에 나와 있다.

결론은 케바케다. 그 일본인이 그 책에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을 구별하는 법을 썼는데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분위기를 타도 굿할 때 눈빛 바뀌는 건 가짜가 진짜를 못 따라한다고.

토요미스테리 극장의 실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고명한 무당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의 직업이 창피하기도 하고 미신을 전혀 믿제 않아서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점을 쳐주거나 아들의 책가방에 몰래 부적을 붙여놓는 바람에 어머니께 화를 많이 냈다고 한다.

이후 아들은 성장해서 선원이 되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가려던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놀라서 급히 집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어머니는 멀쩡했다. 속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화를 냈지만 자기가 타려던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동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그 날 배를 타면 안 된다는 점괘가 나와서 일부러 아들을 살리려고 꾀병을 부렸던 것이다.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점괘나 신기를 믿게 되었고 자기도 무당이 되어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기 자식만은 무당이란 직업을 갖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보라며 집에서 쫓아내더니 그 날부로 아예 수십 년을 해왔던 점집마저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연의 주인공이었던 그 어머니의 인터뷰까지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의외로 정치인, 재벌, 사업가들이 무당이나 미신을 신봉하는 경향이 강하다. 높으신 분들이 무속인이나 역술인들과 교류가 잦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변에 큰 사업이나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 성당, 사찰을 다니더라도 점집에 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단호하게 금한다. 출애굽기(가톨릭은 탈출기)에 Suffer not the witch to live(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고 레위기에도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신약시대에도 바오로 등 사도, 교부들이 앞장서서 주술과 미신, 이단을 타파한 기록들이 많다.

불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와 섞여 절에 산신당이 있다거나 하는 형태로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근본적으로 점을 치고 미래를 보는 행위를 금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선 말기 기행으로 유명한 경허선사도 제자 만공이 수행 중 잠시 타심통이 열려 점보는 스님으로 전업하자(?) 따끔하게 꾸짖고 올바른 길로 가게 지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불교가 오래 된 종교라 친숙함이 있어셔 종단협에 소속되지 않은 불교 군소종단 쪽에서 무당 행세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점집 앞에 만(卍) 자 깃발을 올리고 신당에 불상을 놓고 법당이라 부르고, 머리를 깎고 승복도 입으며 스스로 xx법사, OO선사라 칭하는데 한 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현대에서는 다른 직업을 겸하는 무당이 많다. 투잡 타로 카드를 배워서 타로카페를 열고 타로카드 단 하나만 보는 타 카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본래 직업인 점괘, 사주팔자, 굿 등등과 겸하는 케이스가 제일 본래의 적성을 잘 살린 케이스다.

하지만 아예 상관없는 직업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보험, 비즈니스 관련 직종이면서 무당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겉으론 식당 주인처럼 소탈한 직업을 지닌 무당이라도 사업 이야기에서 무속을 언급하면 의심부터 하자. 심지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름이 있는 무당이라서 안심하고 찾아갔더니 지방 조폭에 연관된 무당이어서 돈을 뜯겼다는 경우까지도 있다.

대체로 집값이 싼 단독주택가나 빌라촌에 사는 경우가 많다.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멀쩡했던 주택이 무당 암자로 하나 둘 변하면서 무당촌이 되어 버리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장지대가 근처에 있으면 중국 조선족 식당이나 상점들도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낙후된 임대아파트 단지에도 무당이 사는 경우가 있다. 신부모가 선몽을 통해 알려주거나 무속인 본인이 꿈을 꿔서 신당을 신이 정해주는 장소에서 차린다. 이를 거부하고 본인이 차리고 싶은 장소에서 신당을 차린다면 이사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도축업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VIP 고객이다. 일단 큰신을 받은 무당들은 신을 위해 제사를 매일 올리는데 특히 산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고기를 제사상에 꼭 올리다보니 산신을 위해 가장 질좋은 고기를 의무적으로 올린다. 이 때문에 가장 값 나가고 맛 좋은 고기들을 가장 많이 사가는 사람들이 무당들이라 도축업자들 입장으로썬 최고의 단골손님이며 만약 그 단골이 큰신을 모시는 무당이라면 알아서 돈방석에 올려주는 사람들이다.[2]

여러 가지 문제[편집]

한국 전통문화라는 인식이 있어 주변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그에 걸맞은 인품을 지니거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격자들도 있지만 반감을 주는 사기꾼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가족이 점에 빠져서 귀신 쫓아내느라 굿판을 벌인다고 전재산을 홀라당 날려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으나 그래도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는다. 원래 "무당이 지나치게 돈을 밝히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무당과 혈연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신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에게는 판타지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들에게는 당장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세간의 인식도 있어서 무당에게는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공론화되는 일은 거의 없고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사기꾼이 아니라 실제로 신기가 있는 무당일지라도 좋은 팔자를 가지고 있는 손님을 속여 미래를 빼앗는다거나 엄한 사람에게 귀신을 붙여 피해를 주고 협박한 뒤 떼어내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이들도 있다는 얘기가 있어 무당집을 함부러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돈다.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어머니가 무당인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귀신 같은 것이 온 세상을 뒤덮은 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으며 눈앞에서 친구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차려보니 친구에게 컴퍼스 바늘로 상해를 입히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가는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정신병에 걸린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하는 무당 자녀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길거리에서 영혼이 맑아 보인다며 접근하는 사람들도 사이비지만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종파다. 그나마 맑은 영혼으로 신을 받든다고 하지만 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 중 누가 죽는다느니, 조상신이 심하게 노했다느니 하며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사람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많다.

물론 이는 무당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다수의 무당은 자기 수행 및 생존 비용이 필요한데 굿판을 벌일 기회는 1년에 4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굿은 본래 마을 행사였기 때문에 의외로 준비 비용이 비싸다. 결국,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형태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한 작은 규모의 종교인들은 최대한 비싼 계약을 맺는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에게 받는 고해성사나 개신교 목사에게 받는 신앙상담도 넓게 보면 카운셀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개인에게서 직접적으로 막대한 금전을 지불받는 방식은 체계화를 이룬 현대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고해성사나 신앙상담을 명목으로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본래 어떤 종교든 교회 유지를 위하여 신자에게 어느 정도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하게 되지만 무당처럼 큰 액수의 금액을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대 기준으로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일부 종교에서 문제가 있는 종교인(먹사)들의 일탈이 있다고 해도 제 정신이 박힌 종교라면 직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령은 아니다.

무당이 성직자와 다를 수밖에 없데 무당은 체계화된 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랜 기간 다듬어진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고 상담을 받으러가는 느낌으로 무당을 만났다가는 무당의 개인적인 말빨에 휘둘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그 무당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된 상태로 돌아오기 쉽고 진실로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 만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따라서 무당을 만날 때는 특정 분야(무속)의 사업자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계약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만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곧 무당에게 내가 어떤 형태의 퍼포먼스를 원하는지를 정확히 말하고 그 무당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거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무속인은 성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사이비가 많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는 물론이고 개신교 목사나 불교 승려가 되는 것보다도 훨씬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범죄자들, 사회부적응자들이 무당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므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퇴마 의식을 빌미로 여성을 성추행하다가 징역을 살게 된 무당도 있으니 유의할 것. 실제로 퇴마의식으로 병을 낫게 해 주겠다고 속여 여성 20여 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무속인이 '징역 7년' 실형에 처해진 사건이 있다. 피해자가 색정귀에 빙의된 탓에 그 한을 풀어줘야 한다며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가스라이팅을 걸어 성착취를 하려 드는 무당도 존재한다. 대개 성착취를 시전하기 전에 사전에 피해자들을 가스라이팅해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배했다고 여겨질 즈음에 요구하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대단히 힘들다.[2]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편집]

실질적인 무당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다. 문화재청이나 전통협회에서 밀어주는 제대로 된 무당들도 많으며 특히 국제적인 유네스코에서까지 공인받는 무당들은 전술한 사기꾼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문화재급 무당은 육체적, 정신적, 학문적으로 엄청난 수행을 통과한 초인들인데 실제로 무교에 통달하려면 이게 과연 인간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고행 속에서 살아야한다.

진짜 무당은 엄청난 고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직이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가 아니라 제대로 자리를 잡은 무당 루트를 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춤과 노래와 역사 같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수련하고 관련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게 기본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단순한 장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외 문화단체에서 인간문화재로서 인정받은 무당들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무당들은 굿도 못 하면서 유명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사기꾼들보다도 인지도가 낮다. 높으신 분들은 문화재 보존이랍시고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며 전통적인 무당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멸시받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만신 김금화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나라 망신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

이 때 다른 공연 다 끝나고 카펫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 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에 올라갔고 죽기살기로 한두 거리 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는데 결과는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의 기립박수였다.

김금화 만신은 무속인한테서 "당신은 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더러 "그렇다, 당신 신 받고 무당되어야 할 팔자다"라고 받아주지 않고 "가서 절이나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살아라"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래, 독경, 춤까지 몇 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숫자가 적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면 돈벌이보다는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수단이 널렸는데 작두 타기, 유리밟기, 몇 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이 점유하는 지위는 사제 혹은 신관과 정확히 같다. 어떤 종교건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며 이는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2]

기타[편집]

  • 영매 다른 나라에서 무당과 비슷한 역할. 대체로 무당보다 능력이나 다루는 범위가 좁다. 일본에서는 영매사라는 표현을 쓴다.
  • 정호근: 실제로 신내림을 받은 인물로, 배우일과 겸직하고 있다.
  • 김주영(1952): 위의 정호근과 같은 배우 출신으로, 정호근과는 달리 2014년을 끝으로 배우일을 접고 무당 일만 하고 있다.
  • 강성호: 신내림을 받고 철권 프로게이머 일과 겸직하고 있는데 무당 일이 굉장히 잘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 아리스 마나: 본래 이나리를 섬기는 무녀 컨셉의 버츄얼 유튜버인데 실제로 신내림을 받아 무당 일도 겸하게 되었다.[2]

각주[편집]

  1. 무당〉, 《위키백과》
  2.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2.16 2.17 2.18 2.19 2.20 2.21 무당〉,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무당〉, 《위키백과》
  • 무당〉, 《나무위키》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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