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영부인(令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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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영부인(令夫人)은 다른 사람, 특히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3인칭으로 높여 부르는 말이다. 즉,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부인을 품위있게 높여 일컫는 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다.
대통령의 부인을 뜻하는 단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어느 국어사전에도 그런 뜻은 없다. 본래 한자 표기도 領夫人이 아니라 令夫人이다. 법령상 용어도 아니다. 그 뜻이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2]
퍼스트 레이디[편집]
퍼스트 레이디를 한국어로 흔히 영부인(令夫人)이라고 번역한다. 영부인이라는 말은 사전에서는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퍼스트레이디를 정확히 번역하자면 대통령 영부인이 될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내각총리대신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통칭(通稱)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배우자가 남성인 경우 영부인이 아닌, 부군(퍼스트 젠틀맨, First Gentlemen)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영부인,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는 사회에서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특히, 대통령이나 수상 등의 국가 최고 실권자의 아내를 가리킨다. 부통령제 국가에서는 부통령의 아내를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라고 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대통령의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가 되지만 퍼스트 레이디의 유고(有故)시 대통령의 다른 친척(딸, 조카, 누이, 며느리)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담당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체스터 A. 아서 대통령의 배우자 앨런 아서(Ellen Arthur)가 사망하자, 대통령의 여동생 메리 아서 매킬로이(Mary Arthur McElroy)가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맡았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배우자 엘리너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가 별거, 사실상 결혼생활이 끝나게 되자, 딸 애너 루스벨트가 엘리너 루스벨트를 대신하여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총상으로 사망하자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박정희 대통령이 총상으로 사망할 때까지 수행하였다.[3]
역대 대통령 배우자[편집]
프란체스카 도너 (배우자: 이승만)[편집]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 빈 출신.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권대사로서 외교적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25살 연상의 이승만을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미국 뉴욕에서 혼인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후처이며 프란체스카 도너 역시 이혼녀였다가 마찬가지로 이혼남이었던 이승만을 만나 재혼했다. 광복 이후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배우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유일한 외국계 배우자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대를 경험한 세대는 프란체스카를 두고 흔히 호주댁이라고 불렀다. 당시 프란체스카의 별명이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프란체스카 도너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오세아니아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하여 생겨난 별명이다.
6.25전쟁 당시 일명 쌕쌕이라고 부른 제트 전투기를 호주 비행기라는 뜻의 호주기라고도 불렀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이 호주기를 보고 사위를 도와주려고 날아온 전투기라고 혼동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주는 실제로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병력을 파병한 참전국이지만 프란체스카 도너의 모국인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의 분할 군정 통치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따라서 6.25 전쟁에 군대를 파병한 국가가 아니다.
슬하에는 혈연 관계가 없는 이봉수와 이강석, 이인수 세 명의 아들이 있으며, 도너 본인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
이승만이 하야하면서 허정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이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는데, 허정 대행의 아내 백귀란이 유일하게 대통령 권한대행의 배우자로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행사에 참여한 사진이 있다.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들의 배우자는 남편이 바로 이어서 대통령이 되는 헌정 중단시기의 박정희의 배우자 육영수나 최규하의 배우자 홍기를 제외하면 대통령 배우자 대행을 맡은 적이 없다.[4]
공덕귀 (배우자: 윤보선)[편집]
경상남도 통영군 출신. 윤보선 전 대통령보다 14세 연하이며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있어 재혼이다.
당시는 물론이며 현대의 관점에서 보아도 대단히 늦은 나이인 38세에 결혼을 했다. 공덕귀는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무너지면서 1년 6개월만에 대통령 배우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 배우자 직책에서 물러난 뒤로도 구속자 석방 운동, 기생관광 반대 운동, 원폭 피해자 돕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사회 운동가로 적극 활동했다.
슬하에는 혈연 관계가 없는 계녀 2명과 본인이 직접 낳은 친아들 2명이 있다.[4]
육영수 (배우자: 박정희)[편집]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이다. 6.25 전쟁 당시 일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박정희 전 육군 소령을 소개받아 결혼했다.
상당히 남성스러운 느낌의 이름인데 배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대로 굉장히 여성스러운 이름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육영수와 박정희의 결혼식 당시 주례를 맡았던 대구시장 허억(許億)이 엄숙한 목소리로 신랑 육영수, 신부 박정희라고 잘못 낭독하여 폭소가 터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박정희 전 육군 소장이 5.16 군사정변을 통해 장면 내각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 집권하며 대통령 배우자가 되었다. 김종필 회고록에서는 5.16 군사 정변 당시 박정희가 집을 나서며 육영수에게 쿠데타 실패의 경우를 산정한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지만 결과적으로 군부 쿠데타는 성공했다.
슬하에는 장녀인 박근혜, 차녀 박근령, 장남 박지만이 있다. 김호남이 낳은 의붓딸인 박재옥과는 같이 생활한 기간은 몇 년 되지 않지만, 중매를 시켜 주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 배우자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전현직 대통령 배우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 육영수가 과반수를 넘는 "65.4%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박정희 본인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다 여기 야당 총재께서 계시니 다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농담을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여기서 비롯된 별명이 청와대 안의 야당. 체계가 하나도 잡혀 있지 않던 청와대 내의 의전 체계를 처음으로 정립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외국 국빈 방문시에도 그때마다 임기 응변으로 의전하는 식이었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때 재일교포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시해됐고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기념일은 육영수의 기일이 되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가장 단명한 대통령 배우자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피살당한 대통령 배우자이다.
모친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살해당한 1974년부터 이후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10.26 사건으로 암살당하기 전까지 5년 간(1974년 8월 15일 ~ 1979년 10월 26일) 장녀 박근혜가 외국 정상 접견 등 통상 대통령 배우자가 담당하는 역할을 대행했다. 대통령 배우자 직무 수행자로서는 당시 만 22세로 최연소이다.
170cm에 육박하는 신장을 가진 육영수는 당대는 물론 현재로서도 상당한 장신으로서 역대 대통령 배우자들 중 가장 키가 크다. 배우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키가 164cm로 비교적 단신이었던 관계로 육영수의 장신이 더욱 부각됐다.[4]
홍기 (배우자: 최규하)[편집]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 만 8개월 10일간 재임하여 역대 대통령 배우자들 중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다.
1979년 10월 26일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에 취임하며 대통령 배우자가 되었다. 대통령 취임 후 얼마 가지 않아 일어난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식물 대통령이 된 최규하가 결국 사퇴를 하고 전두환이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당시 취임식에 참석한 홍기는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앞에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내비쳤다.
대외 활동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대통령 배우자였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권한대행 시절에도 위문 활동을 한 기록이 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4]
이순자 (배우자: 전두환)[편집]
만주국 출신.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사를 꿈꾸어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재학 중 전두환과 결혼을 하기 위해 중퇴했으며 1958년에 결혼했다. 친인척의 비리 등 대통령 배우자 재임 시절에도 구설수에 올랐다.[4]
김옥숙 (배우자: 노태우)[편집]
경상북도 청송군 출신으로 김익동 경북대학교 총장, 김복동 육군사관학교장의 동생이다. 여동생 김정숙은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결혼했다.
딸 노소영은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수료한 후 최태원 SK 회장과 결혼했다. 아들 노재헌은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후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정화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생존한 대통령 배우자들 중 최고령이다.[4]
손명순 (배우자: 김영삼)[편집]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재학 중이던 1951년 자신과 동갑인 김영삼과 결혼했다.[4]
이희호 (배우자: 김대중)[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이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차용애는 1959년 사망했다.
향년 96세로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가장 장수한 인물이자 역대 최고령 대통령 배우자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홍기 다음으로 나이가 많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육영수보다 연배가 3년이나 앞선다.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2살 연상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였다. 대통령 배우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도, 김정일 사망시 방북하여 조의를 표하는 등 민주당 계열 내에서는 강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슬하에는 김대중을 기준으로는 셋째인 김홍걸이 있으며 김대중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김홍일과 김홍업에 대해서도 새어머니 역할을 수행하였다.[4]
권양숙 (배우자: 노무현)[편집]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국민학교 동기동창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손명순의 국민학교 후배가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이전에 결혼하여 뒷바라지를 했다. 이후 노무현이 5공 청문회를 거쳐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에 당선되며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배우자가 되었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남편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4]
김윤옥 (배우자: 이명박)[편집]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3살 때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보건교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1970년 결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는데 이때 이명박의 뒷바라지를 했다. 슬하에는 1남 3녀를 낳았는데 이시형은 막내아들이고, 이시형은 2014년 10월 9일 결혼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의 막내 사위이다.[4]
박근혜[편집]
박근혜가 당선되어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호칭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를 칭하는 말은 부군(夫君)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First Gentleman이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사상 첫 독신 대통령이기도 했던 탓에 이 호칭이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혼을 했다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 부군이 나왔을 것이다.
때문에 외국 정상 방문시 의전으로서의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누가 할 것인가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 부인이 맡을 확률이 거론되었으며, 정홍원 총리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왔다. 또는 외교부장관 부인이나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장관이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결국은 배우자 대행을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 외국 정상이 방문하더라도 정상과 배우자의 짝을 꼭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고, 배우자의 일정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따로 조정할 수 있으니 꼭 배우자를 대행할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3일 중국의 시진핑 주석 방한 때에는, 조윤선 전 정무수석비서관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4]
김정숙 (배우자: 문재인)[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출신. 경희대학교 성악과 재학 중 당시 법학과에 재학 중인 문재인을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7년 연애 끝에 1981년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후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가 본인의 뜻에 따라 기존부터 사용되던 영부인 호칭을 거부하고 대통령 배우자로 불리기를 택함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영부인이라 호칭되었던 마지막 대통령 배우자이기도 하다.
진지하고 과묵한 성격이라서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듣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반대로 굉장히 활발한 성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한 적 있으며 성악을 좋아해서 사저에서도 성악 연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 배우자 재임 시절 의전 비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과 관련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4]
김건희 (배우자: 윤석열)[편집]
서울특별시 강동구 출신. 1970년대 이후 태어난 대통령 배우자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사용되어 왔던 영부인 호칭을 거부하고 스스로 대통령 배우자로 불러달라고 하였다.
전 코바나컨텐츠의 대표이사이며 대통령 배우자가 되기 이전 많은 스캔들이 있었던 인물로 녹취록 사건 당시 대중에게 공개된 직설적인 모습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어진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를 뒤집고 대통령 배우자가 된 이후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육영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희호 이후 가장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존재감을 가진 대통령 배우자다.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유일하게 자녀가 없으며 개와 고양이 여러 마리를 남편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기르고 있다.[4]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