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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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시(安州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에 있는 도시이다. 동쪽은 개천시, 서쪽은 문덕군, 남쪽은 순천시·숙천군, 북쪽은 평안북도 박천군·영변군과 접한다.[1][2]
개요[편집]
- 행정구역: 평안남도
- 면적: 359km²
- 인구: 240,117명(2008년)
고려시기인 1369년(공민왕 18년)에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를 내오면서 안주라는 지명이 생겼는데, 안주는 나라의 북방을 믿음직하게 지켜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고장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설도 있고, 오랜 역사를 가진 벌이 넓고 물이 맑아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뜻에서 안주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안주의 항라·숙고사·갑사는 이 지방의 명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부터 분단 이전까지는 자수가 유명한 곳이었다. 안주에서 생산되는 수실의 품질이 뛰어났으며, 이것으로 수를 놓은 안주수(安州繡)는 상품자수로 궁중이나 중국에 공급되었으며 도안을 보내면 안주에서 자수를 놓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독특한 점이라면, 자수제작에 남자가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남흥지구의 남흥청년화학기업소는 함흥시 흥남구역과 함께 "주체비료" 공업 지역으로 언급되는 북한의 대표적인 석유 화학공장이 있다. 그외 요소비료공장, 견직공장이 있다. 석탄, 철, 흑연 등의 자원이 풍부하다. 연풍수력발전소(5천 kw)·청천강화력(20만 kw)·안주(120만 kw, 건설중) 화력발전소가 있다.[3]
자연환경[편집]
안주시는 동부에서 서부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전체면적의 60% 지역이 해발 100m로 되어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장천리의 남쪽경계에 있는 마두산(馬頭山, 534m)이고 가장 낮은 곳은 남칠리의 청천강 바닥(2m 수준)이다. 남부지역에 묘향산줄기의 말단부가 뻗어 있으며 여기에 송암산(松巖山, 365m), 서산봉(西山峯, 451m) 등이 솟아 있다. 북부에는 남흥벌, 서부에는 열두 삼천리벌이 전개되어 있다.
산림은 안주시 전체면적의 약 50%를 차지하며 소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참나무, 아까시나무, 가래나무, 밤나무, 분지나무, 개암나무, 싸리나무, 조팝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다. 하천은 북부에서 남부로 청천강(淸川江)이 진석천, 구룡천(九龍川) 등 여러 개의 지류와 합류하여 흐른다. 연풍호(延豊湖)가 있으며 이 호수와 청천강에 수원을 둔 평안관개수로가 뻗어 있다.
안주시의 기반암은 편암, 규암, 석회암, 고회암, 사암, 역암, 현무암, 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철, 금, 흑연, 인회석, 화강석, 이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토양은 해발 100m 이하의 낮은 산들과 구릉들에는 대부분 갈색 산림 토양이 분포되어 있고, 청천강과 그 지류를 비롯한 중, 소 하천 연안에는 충적토와 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연평균일조율은 54%로서 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8.6℃, 8월 평균기온은 23.8℃, 1월 평균기온은 -9.3℃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141mm이고 약 54%가 7~8월에 집중된다. 첫눈은 11월 17일경에, 마지막눈은 다음해 3월 29일경까지 내린다. 연평균풍속은 2.5m/s이며 바람속도가 가장 큰 4월 평균풍속은 3.2m/s이고 가장 약한 9월 평균풍속은 2m/s이다. 완전결빙기는 평균 12월 23일이며 완전 해빙기는 다음해 평균 3월 15일이다.[4]
역사[편집]
안주시 지역에는 고조선시대에 이미 고을이 이루어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태조왕시기에 고구려의 세력이 안주시 지역까지 끼쳤다. 장수왕시기에 이르러 안주시 지역은 식성(息城)이라 불렀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팽원군(彭原郡)이라고 부르다가, 931년에 안북(安北)이라 개칭되었으며, 983년경에 영주(寧州)로 개편되었다. 1369년에 안주만호부(安州萬戶府)가 설치되었고, 후에 안주목(安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가 건립된 이후 안주시 지역은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군사 및 정치적 요충지로 중시 받았다. 이 점은 평안도(平安道)라는 이름이 평양과 안주에서 한 자씩 따서 지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1812년에 현(縣)으로 되었다가, 1822년에 다시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1871년에 평안도 안주군으로 개편되면서 주내방(州內坊), 청산방(靑山坊), 문곡방(文谷坊), 동주내방(東州內坊), 운곡방(雲谷坊), 대대방(大代坊), 평호방(平湖坊), 연통방(鷰筒坊), 누천방(漏泉坊), 남면방(南面坊), 서면방(西面坊), 갈화방(葛花坊), 용두방(龍頭坊) 등 13개 방을 관할하였다.
1895년에 평양부(平壤府) 안주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에 평안남도 안주군으로 되면서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여 읍부면(邑部面), 주남면(州南面), 주북면(州北面), 청산면(靑山面), 운곡면(雲谷面), 동면(東面), 문곡면(文谷面), 연동면(燕垌面), 평호면(平湖面), 이산면(尼山面), 대대면(大代面), 누천면(漏泉面), 남송면(南松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갈화면(葛花面), 용두면(龍頭面) 등 17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주남면 · 주북면 · 읍부면을 병합하여 주내면(州內面)으로, 청산면 · 문곡면을 병합하여 신안주면(新安州面)으로, 평호면과 연동면을 병합하여 연호면(燕湖面)으로, 니산면과 대대면을 병합하여 대니면(大尼面)으로, 누천면 · 남송면 · 남면 · 서면을 병합하여 입석면(立石面)으로, 갈화면과 용두면을 병합하여 용화면(龍花面)으로 각각 개편하여 8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고, 1929년에 주내면이 안주면(安州面)으로 개칭되었으며, 1939년에 안주면이 안주읍(安州邑)으로 승격되었다.
광복 전 안주군은 안주읍, 신안주면, 연호면, 대니면, 입석면, 용화면, 운곡면, 동면 등 1읍 7면 169리를 관할하고 있었다. 1949년에 안주읍이 안주면으로 다시 강등되어 1950년에는 8면 172리로 되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안주면의 차장리(差壯里)와 신성리(新成里)는 평안북도 박천군에, 연호면 · 대니면 · 입석면 · 용화면은 문덕군에, 동면 일부는 개천군에 각각 이관되고, 나머지 안주면 일부와 동면 일부 · 신안주면 · 운곡면의 전체 리를 병합하여 안주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안주면의 칠성리 · 신의리 · 청교리 · 율산리 · 남천리 · 북문리 · 건인리를 병합하여 안주읍(安州邑)으로, 안주면의 문봉리와 미상리를 병합하여 미상리(彌上里)로, 안주면의 용연리 · 화양리 · 장흥리를 병합하여 용연리(龍淵里)로, 안주면의 용흥리 · 용현리 · 용서리를 병합하여 삼룡리(三龍里)로, 안주면의 금성리와 고성리를 병합하여 금성리(金城里)로, 안주면의 서산리 · 선흥리 · 도회리를 병합하여 선흥리(船興里)로, 안주면의 장천리 · 봉서리 · 장상리를 병합하여 장천리(長川里)로, 안주면의 북송리와 원풍리를 병합하여 원풍리(元豊里)로, 신안주면의 운흥리 · 소학리 · 봉림리를 병합하여 원흥리(元興里)로, 신안주면의 운송리 · 동칠리 · 용운리를 병합하여 운송리(雲松里)로, 신안주면의 창송리와 신원리를 병합하여 창송리(蒼松里)로, 신안주면의 청송리 · 명암리 · 용계리를 병합하여 청송리(靑松里)로, 신안주면의 송학리 · 증암리 · 오리를 병합하여 송학리(松鶴里)로, 신안주면의 남칠리 · 상팔리 · 신성리 · 낙만리를 병합하여 남칠리(南七里)로, 신안주면의 운학리 · 송죽리 · 신리 · 원일리를 병합하여 운학리(雲鶴里)로, 동면의 맹주리 · 동맹리 · 용계리를 병합하여 용계리(龍溪里)로, 동면의 용흥리 · 봉학리와 연풍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흥리(龍興里)로, 동면의 봉덕리 · 명학리와 평률리 일부를 병합하여 평률리(平栗里)로, 동면의 봉명리 · 상서리 · 봉상리와 평률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서리(祥瑞里)로, 동면의 운흥리와 연풍리 일부 · 금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운흥리(雲興里)로, 운곡면의 원룡리와 용복리를 병합하여 용복리(龍伏里)로, 운곡면의 온흥리 · 입석리 · 용서리를 병합하여 입석리(立石里)로, 운곡면의 온상리 · 반룡리 · 운흥리를 병합하여 반룡리(盤龍里)로, 운곡면의 용흥리 · 어룡리 · 구룡리를 병합하여 구룡리(九龍里)로, 운곡면의 용림리 · 용담리 · 용천리를 병합하여 용담리(龍潭里)로, 운곡면의 용학리 · 재전리 · 용전리를 병합하여 용전리(龍田里)로, 운곡면의 중흥리 · 원흥리 · 용택리를 병합하여 중흥리(中興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6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개천군(价川郡)의 서남리(西南里) 일부 지역이 상서리에 편입되었고, 1954년에 상서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송암리(松巖里)를 신설하였으며, 삼룡리 일부를 안주읍에, 평률리 일부를 상서리에 각각 편입하였다. 1958년에 평안북도 박천군 용화리(龍花里)가 편입되었고, 1963년에 원흥리를 신안주노동자구(新安州勞動者區)로 개편하였으며, 1967년에 금성리를 원풍리에, 운학리 일부와 삼룡리를 미상리에 각각 편입하였다.
1974년에 운흥리가 용흥리에 편입되었고, 1977년에 용흥리가 연풍리(延豊里)로 개칭되었으며, 1980년에 평안북도 박천군의 송도리(松道里), 덕성노동자구(德星勞動者區), 용흥리(龍興里)가 군에 이관되면서 덕성노동자구가 남흥노동자구(南興勞動者區)로 개칭되었다.
1987년에 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안주읍의 일부가 등방산동(燈房山洞), 남천동(南川洞), 칠성동(七星洞)으로 각각 개편되고 나머지 일부는 용연리와 병합하여 용연동으로 되었으며, 신안주노동자구 일부는 신원동(新院洞), 원흥동(元興洞)으로 각각 개편되고 나머지 일부는 송학리 일부와 병합하여 역전동(驛前洞)으로 개편되었다.
동시에 남흥노동자구를 분리하여 남평동(南坪洞) · 구봉동(龜峯洞) · 남흥동(南興洞) · 덕성동(德星洞) · 독산동(獨山洞)으로, 원풍리 일부를 분리하여 청천강동(淸川江洞)으로, 미상리 일부를 분리하여 풍년동(豊年洞)으로, 청송리를 청송동으로, 창송리를 창송동으로 각각 개편하여 15동 20리를 관할하였다.
1993년에 신원동 · 풍년동 · 창송동 · 운학리 · 미상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문봉리(文峯里)를 신설하고, 송암리를 송암동(松巖洞)으로, 미상리를 미상동(彌上洞)으로 각각 개편하였으며, 1994년 3월에 문봉리를 문봉동(文峯洞)으로 개편하였다. 1997년에 송암동 일부를 분리하여 개천시 용원동(龍源洞)으로 개편하였고 용복리, 용담리, 용전리, 중흥리, 입석리, 반룡리, 구룡리를 분리하여 신설되는 운곡지구(雲谷地區)에 편입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9동(구봉동, 남천동, 남평동, 남흥동, 덕성동, 독산동, 등방산동, 용연동, 문봉동, 미상동, 송암동, 신원동, 역전동, 원흥동, 창송동, 청송동, 청천강동, 칠성동, 풍년동), 14리(남칠리, 용계리, 용화리, 용흥리, 상서리, 선흥리, 송도리, 송학리, 연풍리, 운송리, 운학리, 원풍리, 장천리, 평률리)로 구성되어 있다.[5]
산업[편집]
광복 전 안주시에는 직조공장과 양조공장이 있었을 뿐이었다. 광복 후 안주시는 현대적인 공업과 다각적으로 발전된 농촌 경제를 가진 신형의 공업도시로 전변되었다. 안주시의 공업은 화학, 전력, 기계, 채굴, 건재 등 중앙공업부문과 식료, 직물, 피복, 일용품, 제지, 도자기 등 지방공업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공업은 공업 총생산액의 약 94%를 차지한다. 공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화학공업이다.
안주시에는 대규모의 화학공업기지인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南興靑年化學聯合企業所)가 있다. 이밖에 청천강화력발전소(淸川江火力發電所), 안주통신기계공장(安州通信機械工場), 9월28일기계공장(九月二十八日機械工場), 안주트랙터부속품공장, 안주실리케이트벽돌공장, 안주견직공장(安州絹織工場), 안주수출품피복공장(安州輸出品被服工場), 용원광산(龍源鑛山) 등 중앙공업공장, 기업소들과 직물, 일용품, 식료, 제약, 모피공장 등 수많은 지방산업공장들이 있다.
안주시의 농업은 곡물 생산을 기본으로 하면서 도시인구가 많은 실정에 따라 채소, 과일, 고기 등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에서 여러모로 발전하고 있다. 농경지는 안주시 전체면적의 약 39% 되는데, 그중에서 곡물 파종면적이 약 69% 되며 곡물파종면적에서 벼가 64%, 옥수수가 33%를 차지한다. 벼는 주로 남칠리, 송학리, 청송리 등 지역들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옥수수는 주로 운송리, 원풍리, 용계리, 상서리 등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밖에 콩, 수수, 감자 등도 재배되고 있다.
채소파종면적은 전체 농경지 면적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배추, 무, 시금치, 양배추, 오이, 호박 등을 재배하고 있다. 과수업에서는 배를 비롯하여 사과, 복숭아, 자두, 포도 등이 산출된다. 축산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안주시에는 현대적으로 갖춰진 돼지공장, 오리공장, 닭공장 등이 있으며 각 리들에서는 돼지, 양, 염소, 소, 닭, 오리, 토끼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6]
행정 구역[편집]
현재 안주시는 19동, 14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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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집]
안주시 지역은 철도운수, 도로운수, 수상운수 등 여러 가지 운수 형태와 발전된 교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안주시 지역으로는 평의선, 개천선, 구봉선이 통과하고 있는데, 평의선에 대교역(大橋驛), 신안주청년역(新安州靑年驛)이, 개천선에 안주역(安州驛), 북송리역(北松里驛), 연풍역(延豊驛), 운흥리역(雲興里驛)이, 구봉선에 송도역(松道驛), 구봉산역(龜峯山驛), 청화력역, 남흥역(南興驛)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평양~신의주 간 1급 도로와 신안주~남포, 신안주~개천 간 도로, 평양~향산 간 고속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수상통로로는 청천강을 이용하여 해주, 신의주를 비롯한 서해안의 여러 지역과 연결되고 있다. 평양시까지는 약 73km이며 평안남도 소재지인 평성시까지는 70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안주시〉, 《위키백과》
- ↑ 〈안주시〉, 《나무위키》
- ↑ 〈안주시 (安州市)〉,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역사 〉,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안주시〉, 《위키백과》
- 〈안주시〉, 《나무위키》
- 〈안주시 (安州市)〉,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역사 〉,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안주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 〈안주시〉, 《두피디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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