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농부(農夫) 또는 농업인(農業人, farmer)은 농업에 종사하고 식품이나 원자재를 위해 살아있는 유기체를 키우는 사람이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농작물, 과수원, 포도원, 가금류 또는 기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농부는 농지를 소유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소유한 토지에서 노동자로 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농부"는 일반적으로 농장 소유자(토지 소유자)이고, 농장 직원은 농장 노동자(또는 농장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오래된 정의에서 농부는 노동과 관심을 통해 식물, 토지 또는 작물의 성장을 촉진 또는 개선하거나 동물(가축 또는 물고기)을 기르는 사람이었다.
5억 명 이상의 농민이 소규모 자작농으로, 이들 중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있으며 거의 2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농업 종사자의 40% 이상을 차지한다.[1]
개요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농민이라고도 부르며, 순우리말로 여름지기라고 한다.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의식주 중 식(食)은 전적으로 이들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으니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와 함께 산업의 단계 구분 중 원재료 생산에 해당하는 1차 산업을 대표한다.
- 농업인
- 천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농어촌정비법」 제98조에 따라 비농업인이 분양받거나 임대받은 농어촌 주택 등에 부속된 농지는 제외한다)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제1항에 따라 설립된 영농조합법인의 농산물 출하ㆍ유통ㆍ가공ㆍ수출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사람
-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에 따라 설립된 농업회사법인의 농산물 유통ㆍ가공ㆍ판매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고용된 사람[2]
어형
농업 노동에 종사하는 자로서 남에게 고용된 임노동자가 아닌(즉 머슴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대가를 주고 남의 땅을 빌려서 부쳐먹을 경우 소작농,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경우 자작농이라 한다. 자작농 중 적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경우는 소농,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는 부농 혹은 대농이라고 한다.
영어의 페전트(peasant)라는 말은 가족단위 소규모 농업으로 자급자족할 정도의 농사를 짓는, 즉 자기가 농사지어 자기가 그 농산물을 먹고산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파머(farmer)는 큰 땅이나 농장(farm)을 소유한 상업적 중대농을 가리키는 말. 한국은 역사적/지형적 조건상 상업적 중대농보다는 소규모 농업 위주기 때문에 현대 한국의 대부분의 농업 종사자들은 파머가 아니고 페전트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도 공식영칭에 파머가 아닌 페전트를 사용하며, 소련군의 별칭인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에서 '농민'도 파머가 아닌 페전트를 의미한다. 소련에서 쿨라크라고 불린 파머들은 오히려 숙청과 탄압의 대상이었다. 보통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쿨라크를 부농이라고 한다.[2]
역사 및 중요성
농업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산업 혁명 이전까지 농업은 한 사회의 중심 산업이었기에 농부는 세계에서 가장 흔한 직업으로 이 시기 서민들은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농민은 동서양 막론하고 관리를 제외하고 국가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농민은 생산력이자 국민 그 자체였다. 한중일에서 쓰이던 이른바 '사농공상', 즉 선비(일본은 무사) - 농부 - 수공업자 - 상인이라는 사회 계급 분류법과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은 천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이라는 말이 나온 것만 보아도 국가에서 농민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먹는 밥은 결국 농민들의 노고로 만들어지며 이는 미래에 인공 식량이 나오기 전까지 변치 않는 진리다.
단, 당시엔 인구 대부분이 농부라, 수공업자나 상인이 천대받았지 농민에겐 딱히 특권 같은 건 없었다. 또한 곡식을 세금으로 낸 산업화 이전 사회 특성상 역사적으로 지배층이나 관리들에게 수탈과 착취를 많이 당해온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돼서 다른 직업들이 늘어나고 농업도 사람보다 기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개량 종자, 비료 등도 개발되면서 적은 인력으로도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농민의 비중은 서서히 낮아져 갔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나 한국의 저곡가 정책 등 산업화를 위해 농민이 희생당하는 일도 많았다. 한국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해 농민이 인구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로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매년 급속히 줄어들었고 1990년대 이후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0% 이하로 떨어지면서 농민은 사회적으로 소수자가 되었다. 현재 세계 곳곳의 농촌은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겪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으로 와 농부들을 돕고 있다.
2008년 전 세계 원자재 값이 폭등, 콩이나 밀 등의 생필품 재룟값도 함께 뛰었고 이는 쌀 빼고는 변변한 자급작물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 폭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이 일은 국가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구조적인 체제의 농촌 지역이 선거에서 과대하게 대표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 한국 같은 선진국들의 경우 1차 산업인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우 적지만 정책이나 작물 보조금과 같은 형태로 최저 가격을 보존해 줌으로써 지지를 얻는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서 미국과 유럽의 식료품 가격이 소득 대비로 치면 매우 싸다. 한국의 경우에는 식료품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이런 보조금 정책이 없으면 신선식료품을 외국에서 비싸게 주고사야될 판이다.
그와 반대로 독재 국가의 경우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이 많아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훨씬 많다.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틀린 얘기이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도 주 지지기반이 농촌이었고,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도 도시보다 농어촌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3] 심지어 중국공산당도 농촌 민심은 꽤 신경써서 세금면세하는 식으로 지원을 많이 내준다. 그러할 여촌야도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 수출국인 가나는 농수산물 판권을 이용해서 카카오의 가격을 정부에서 결정하여 헐값으로 거둬들인 후 훨씬 비싼 가격으로 해외에 수출해 차익을 남긴다. 지하 자원이 별로 없는 독재국가는 이렇게 농수산물을 가지고 국민들을 착취하는데, 이에 대한 영향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수가 줄어서 갈수록 농부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전근대 농민이나 농노로 착취한 것과 유사하다.[2]
어려움
그 실질적인 중요함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로 무시를 받고 있다. 예로 "도시에서 실패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도시 촌놈다운 말을 들 수 있다.[2]
체력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체해 주었다곤 하나 아직도 농사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고 정말 힘든 일이다. 집 마당에서 관상용 화초 한 개 키우려고 해도 물 주고 비료 주고 해충 잡고 제초 하고 등등..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상품성 작물을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만, 수천만 개 키우는 게 바로 농사다. 이것이 전근대 시기에 비만율이 낮았던 이유였다. 그 대신에 농한기 때는 길게 쉴 수는 있지만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2]
기술
다른 직업처럼 농사는 상당한 숙련을 요구하는 엄연한 기술이다. 땅, 작물, 날씨, 시세, 농기계 등의 폭넓은 지식 + 일정 규모 이상의 땅, 돈과 같은 기초 자본 + 부지런함과 체력 + 농사 요령 + α'가 필요하며 땅과 돈이 있더라도 지식, 근면함, 체력을 채우려면 5년은 고생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예상외로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갓 귀농한 사람이 첫해부터 이익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출타 전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귀향 후 이전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농업은 공업 못지않게 노하우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며 실제 농사지어보니 '차라리 도시 생활이 낫더라' 하고 다시 역 귀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작물의 종자 종류와 각 작물의 생육환경, 수확 시기, 비료의 성분별 배합비율이나 시비 시기, 약제 살포 시기와 분량 등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며, 트랙터나 콤바인이 밭 한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처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시설농업을 경영하는 농부라면 온실의 온도조절장치 유지 보수, 수경재배 배양액의 제조 등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대농을 하고 계시거나 혹은 했던, 중장년층, 어르신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알 것이다. 그들이 겉보기엔 일 처리를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여도 뭔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 작물에 이 타이밍에는 비료를 얼마만큼, 짓는 방식과 농산물 거래 방식 및 현 상황에 대해서는 일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훤하게 꿰차고 있다.[2]
자본
농사를 지으려면 최소한 5년은 수업료를 내는 셈치고 손해를 감수하며 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그 5년이 지났을 때 빚이 천만 단위에 이를 수 있다.
현대의 농업은 비유동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기계화가 고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아닌 이상 신규로 농업을 하려면 막대한 자본금도 필요하고 농업 관련 정보나 기자재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농기계값이 천만 단위다. 일반적으로 트랙터 하면 생각나는 커다란 바퀴 4개에 유리가 달려 있고 앞에서 보면 왠지 몬스터 트럭을 연상하게 하는 그 트랙터가 중고가 1,000만 원대고, 좋고 오래가는 것이라면 최소 3,000만 원대다. 거기다 트랙터 하나만 가지고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크게는 콤바인, 대형 이앙기, 작게는 경운기, 관리기, 소형 이앙기, 건조기, 저온 창고, SS기 등 백 단위, 천 단위로 돈 들어갈 농기계가 끝이 없다.
밭에 농약을 칠 때도 1,000평 2,000평 같은 부업 정도의 소형 농가라면 등짐펌프나 동력 살포기로 온종일 개고생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농사로 제대로 돈을 벌려면 그 정도 면적으론 안 되고 1만 평은 되어야 한다. 이만한 범위를 1~2명이서 하려고 하면 기계를 안 쓰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약을 치는 것도 다 정해진 시기가 있는데 한정된 시간 내에 1만 평이 넘는 밭에 등짐펌프나 살포기 하나 들고 다 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을 줄이면 그냥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기나 할 수준이지 돈을 벌긴 어렵다. 실제로 시골에서 소농을 하는 어르신들은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 돈을 버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사람을 고용해서 농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사람 고용하는 인건비로 들어간다. 시골에서 고용할 땐 일당만 주는 게 아닌 2~3끼 식사에 새참까지 다 사주고 해야 하기에 더 비싸다. 일당 자체도 꽤 비싼 데다 요즘은 일용직이라도 월 8일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 가입이 의무다. 일이 상당히 고되기에 새참 역시 비싸며, 새참으로 빵, 튀김, 음료를 엄청나게 먹는데 양이 거의 식사와 맞먹는다.
농부들이 이런 큰 자본을 만지다 보니 사기꾼도 농부를 타겟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2]
불안정성
천재지변 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수입이 심각할 정도로 크게 좌우된다. 비가 많이 와도 병충해 피해가 심각해져서 작물의 60~80%를 버려야 하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반 이상을 버리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이 되면 돈이 안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다. 특히 고추는 습도가 높으면 탄저병에 걸려서 가지에 달린 채로 썩어들어가고, 따놓은 것들도 말리는 도중에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기 십상이며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안 보려면 옵션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계약은 그야말로 헐값에 가깝다. 배추가 산지에선 2천 원도 안 되는 값에 거래되는데 시장에선 만원 가까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아주 드물게 농산물값이 폭등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미 농사가 흉년으로 결딴난 상태라서 팔 수 있는 물량 자체가 거의 없다. 농산물값이 아무 이유 없이 폭등하지 않는다. 천운이 따라주어 특정 농산물이 다른 데서 흉작이 들어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본인만 해당 물량을 많이 수확했다면 로또 당첨금 부럽지 않은 돈을 만질 수도 있지만, 당연히 매우 낮다. 그래서 미국이나 호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의 말 중에 "진정한 도박을 하고 싶다면 카지노로 가지 말고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가진 한국의 농업유통 사정은 매우 혼란스럽다. 혹자는 이 중간유통에서 다 해먹는 관행을 깨기 위해 대기업이나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불안정성이 리스크 관리에 너무나 큰 장벽이라서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중간유통업자들도 엄청나게 해먹는 것 같지만 순이익은 얼마 안 된다고 한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의한 직업코드는 61, 정식 명칭은 '농업 숙련 종사자'. 보통 '농부'라고 지칭하는 논이나 밭에서 곡물이나 채소류 등을 재배하는 유형은 직업코드 611인 '전답작물 재배 종사자'라고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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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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