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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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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삼호읍 일대의 간척지

간척지(干拓地)는 바다호수 따위를 둘러막고 을 빼내어 만든 을 말한다.[1]

내용

간척지는 본래 바다 또는 하천이었으나 육지로 변경시킨 땅을 의미한다. 방조제관리법(防潮堤管理法)에서는 농수산업의 재해방지와 생산력증가를 목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보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2]

갯벌을 막아서 형성된 간척지는 대규모로 환경이 파괴된 곳이지만, 시간 경과에 따라 토양수분과 토양염농도 상태가 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식물상이 역동적으로 변해 다양한 종류의 염생식물을 관찰하고 조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된다. 간척지에는 해안사구성 식물을 제외한 갯벌에 분포하는 모든 종이 출현한다.

간척지는 해수유입이 차단된 상태이므로 갯벌과는 달리 종의 변화가 발생한다. 간척 초기에는 갯벌에서 자생하는 해안성 염생식물이 분포하나 시간이 흐르며 종이 보다 다양해지고, 초기의 종은 소멸하는 양상을 보인다. 해수유입 차단 후 토양수분이 남아 있는 초기 간척지에는 개척자로 선구종인 칠면초, 퉁퉁마디, 해홍나물, 나문재가 분포하다가 차츰 건조해지면서 칠면초가 사라진다.

그러나 퉁퉁마디, 해홍나물, 나문재는 곳곳에 지속적으로 분포하며, 탈염에 의해 토양염농도가 낮아지면서 선구종 이후의 종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런 종은 대부분 강한 염류토양에서 생존할 수 없는 저염생식물(임의염생식물)에 해당되며, 갯개미취, 사데풀, 새섬매자기, 산조풀, 갯꾸러미풀, 수원고랭이, 갯질경, 갯댑싸리 등이 대표적이다.

인위적인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간척지 토양염농도의 변화는 자연적인 세탈과 용탈에 의하므로 간척지 토양환경은 공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분포하는 식물상도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토양염농도가 높은 곳에는 선구종 염생식물이 계속 자리 잡고, 탈염이 더 이루어진 곳에는 저염생식물이 분포해 염생식물의 전시장과 같은 곳으로 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간척지가 농경지 또는 산업용지로 개발되면서 짧은 시기에 형성되었던 염생식물 군락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3]

간척

간척(干拓)은 토지의 확보를 위해 주로 바다의 일부를 방조제로 막고, 그 안의 바다나 갯벌, 염생습지 등을 매립하거나 물을 빼내어 육지화시키는 일을 말한다. 호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식량 증산을 위한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많이 시행했으나,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농지 뿐 아니라, 공업단지를 위한 공업용지 확보, 주택, 공항, 항만의 건설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하고 있다.

간척사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의 경우 국토에 저지대가 많은 네덜란드가 9세기 이래 간척사업을 통해 국토를 넓혀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북해에 면하고 있는 독일과 덴마크 등도 유명하다. 일본은 13세기 간척사업에 대한 기록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으며, 한국도 공식적으로 13세기 고려시대 강화도 지역의 기록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간척의 역사가 깊다. 특히 20세기 이후 토목기술의 발전에 따라 나라마다 그 규모가 커졌고, 한국의 경우 최근 완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이 세계 최장의 방조제라는 기록과 함께 세계적인 규모의 간척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간척사업은 한편으로 인위적인 환경 조성으로 인한 환경문제, 특히 생태의 보고로 알려진 갯벌 등의 파괴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간척지 조성에는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다량의 물을 확보하기 위해 큰 호수를 같이 조성하는데, 방조제로 막힌 호수가 세월이 지나면서 오염되어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부 선진국들에서는 간척사업 계획을 취소하거나, 심지어는 간척사업으로 육지화한 곳을 다시 방조제를 헐고 간척사업 이전의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역(逆)간척사업의 사례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적으로는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토지에 대한 요구로 인해 간척사업이 계속 시행되고 있다.[4]

현황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간척지

대한민국의 서・남해안은 잘 발달한 간석지와 얕은 바다의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 입구의 양쪽 끝 사이는 거리는 짧으면서도 내부 간석지의 면적이 넓어 간척하기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에는 양곡 증산 및 군량미 조달을 위해,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에서의 쌀 증산과 토지 개량 사업을 목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졌다. 광복 후에는 기근 해결을 위한 식량 증산 목적으로 소규모 간척이 이루어졌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업 종합 개발 목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다목적 종합 개발로 간척사업이 추진되었다.

대규모 간척사업은 해양 생물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은 연안역의 해양 생태계 건강성을 악화시켰고 다양성을 훼손하였다. 2000년대 이후 훼손된 연안 지역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같은 규모가 큰 연안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를 통해 소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안 생태계의 생태・사회・경제적 잠재력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지속성을 확보를 아주 중요한 토대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 천도가 단행되자, 이주민들이 급증하면서 이를 부양하기 위한 막대한 식량이 필요하였다. 병란이 장기화하면서 조정은 체계적인 개간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해안 저습지 간척은 그중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고종 43년(1256년)에는 조강 연안의 제포와 와포에 둑을 쌓아 좌둔전을 만들고, 염하 연안의 이포와 초로를 막아 우둔전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후 공민왕 때부터는 새로운 공법으로 깊은 갯골까지 막을 수 있게 되어 넓은 간척지가 나타나게 되었고, 대표적인 간척사업은 교동도 북쪽의 인점포 일대의 영산언 공사이다. 이후 조선 개국 초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 동안은 대규모의 간척사업은 없었다. 숙종 대에 이루어진 간척사업은 비포언과 북적언, 가리언 등이 있고, 특히 강화도 남쪽의 선두포언은 강화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이다. 강화 지역의 간척사업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일단 완료되었고, 1910년대까지 굴곶포와 초지의 남쪽에 남아 있던 소금밭을 제외하면 개간 가능한 갯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현대적 토목 기술을 통해 강화도 남단을 비롯한 일부 해안에서 간척사업이 재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일대에서는 한국 전쟁 후 피란민을 대상으로 사업 참여자를 모집하여 간척이 이루어졌다. 1954년에 3~4세대가 이주하였으며 그 후 꾸준히 유입되어 약 100세대가 공유 수면 614,876㎡를 간척하는 둑 막이 공사를 시작하여 1961년에 완료되었다. 조성된 간척지는 완공 후 3년이 지난 뒤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이 간척지는 ‘신간지’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주민들은 주로 천막에서 생활하면서 둑 막이 조성에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공사비는 준공 후 갚는 조건으로 조합에서 사채를 빌려 조달하였으며, 부족한 채무는 인근 지역 주민에게 토지를 매각하여 충당하였다. 간척 완료 후 채무 반납지를 제외한 토지를 이주민들에게 참여 일수에 따라 차등 배분하였다. 마지막 간척은 부사 지구 간척으로 1980년대 후반 민간 기업에 의해 시작되어 1991년에 완료되었다.

대표 간척지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간척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독자적 기술을 활용하여 대규모 간척사업들을 시행하였다. 그중에서 서산 간척사업은 대한민국에서 민간 기업에 의해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1980년 착공하여 1995년 완공되었다. 1984년에 물막이 공사가 끝났는데, 천수만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 공사의 막바지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폐유조선을 바닥에 가라앉혀 물살을 막고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방조제의 길이는 A, B 지구를 합해 총 7,686m이며, 방조제 건설 때문에 매립된 면적은 15,409ha이다. 서산 A 지구에서는 9,626ha, 서산 B 지구에서는 5,783ha가 매립되었다. 매립된 지역 대부분은 농경지로 개발되었고, 이 사업 결과 당시 서산군은 논의 면적이 한국에서 가장 넓은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사업에 의해 담수호인 간월호 (A지구)와 부남호(B지구)가 형성되었으며, 간월도가 육지와 연결되었다. 굴의 산지로 유명하였던 간월도는 육지와 연결된 후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간척사업은 낙후되었던 서산의 발전에 이바지하였고, 겨울철 철새들의 서식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규모 농업 지역의 특성상 사람의 접근이 어렵고 기계 영농에 의한 낙곡이 많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 철새의 서식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철새는 가창오리, 큰기러기, 말똥가리 등이 있다. 하지만 방조제 건설 후 갯벌을 서식지로 하는 도요새류는 감소하였고, 담수호의 수질은 점차 악화하였다. 현재 담수호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

새만금 방조제는 1991년 기공하여 2006년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방조제의 총길이는 33.9km이며 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할 계획이다.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평야의 '만'자와 김제평야의 '금'자에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새'자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만경 ·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일구어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만금의 내부 공간 구조 계획은 1991년 초기 구상 이후 크게 네 번의 수정을 거쳤고, 가장 최근 계획은 2014년 9월에 확정되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산업 · 연구 용지, 국제 협력 용지, 관광 · 레저 용지, 농 · 생명 용지, 배후 도시 용지, 환경 · 생태 용지 등 총 6가지 용지가 개발될 계획이다.

새만금 사업은 국토 확장, 대규모 우량 농지조성, 수자원 확보 효과와 관광권 형성을 통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갯벌의 훼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담수 이후의 수질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영상

각주

  1. 간척지〉, 《네이버국어사전》
  2. 간척〉, 《위키백과》
  3. 간척지〉, 《네이버지식백과》
  4. 간척〉, 《네이버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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