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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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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3일 (토) 12: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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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및 정맥 체계도

대간(大幹)은 산경표에서, 산맥을 크기에 따라 위계를 나누었을 때 가장 큰 단위이다.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대간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문헌은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로서 "대간은 끊어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 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에 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脈嶺)을 이루었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로서, 백두산을 한반도의 조종산이며 대간의 시작 산으로 보았으며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산맥상황도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백두대간을 체계화한 것은 1770년 경(영조)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로서 백두대간에 대해서 그 용어 뿐만 아니라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연결의 상태·관계·순서를 알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표로 제시하였다. 다만 산경표의 저자나 제작시기에 대하여 다른 의견도 있다.

한반도의 산줄기[편집]

한반도의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이루어진다. 중심이 되는 산(祖宗山)을 백두산으로 하여 백두대간이 하나의 큰 대동맥을 이루고 여기에 13개의 정맥이 발달되어 있다. 지질산맥은 낭림산맥과 태백산맥, 함경산맥 3개의 동맥에 각각 6개, 5개, 2개의 정맥과 지구대가 있다. 지질산맥은 연구자에 따라 13개, 14개 혹은 15개로 이루어진다. 김상호(1956)는 마천령산맥을, 박노식 외(1970)는 언진산맥을 제외하였으며 육지수(1960)는 부전령산맥을 포함시켰다. 장백산맥은 연구자에 따라 제외되기도 하고 포함되기도 한다.

산경표에 의한 산줄기의 명명은 봉우리(산) 이름에 기원한 것이 두 개(백두대간, 장백정간), 지방 이름에 기원한 것이 두 개(호남정맥, 해서정맥) 그리고 나머지는 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명명 체계는 산줄기뿐만 아니라 최근 관리단위로 중시되고 있는 유역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산맥인식체계인 산경표에 의한 산줄기는 통일신라후기부터 관심을 보이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에 의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정립되었다. 대간(大幹)과 지맥(支脈)으로 정리된 것이다.

현대지리학에 근거한 지질발달사와 지질구조에 의한 산맥 즉, 산맥체계는 1901년 일본인에 의해 정립되었다. 그는 한반도의 산맥을 단층과 습곡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독일의 리히트호펜 분류 방법으로 산맥체계를 정립하였다. 현재 초중고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이 체계를 따르고 있다. 1956년 최홀준의 '중등지리'에서는 15개의 산맥으로 분류되었다.[1]

백두대간[편집]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 1,400km에 이른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이다.

백두산은 고대단군신화로부터 시작해서 언제나 크고 높으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으며 본격적으로 숭배화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 생각된다. 또한 조선 세종 때 두만강,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함에 따라 백두산은 영토의식 성립과 함께 민족의 산으로 명실상부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실질적 내용상의 백두대간이 최초로 나타난 문헌은 10세기 초의 고려 승려 도선이 지은 옥룡기(玉龍記)로서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며 물의 근원, 나무 줄기의 땅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한자로는 白頭大幹,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Baekdudaegan이라고 쓴다. 혹자는 한반도의 척추라 부르기도 한다. 대간은 산줄기가 이어지는 지형이라, 지리학에서 지질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산맥과 비교하면 개념이 매우 다르다. 대간의 간(幹)이란 한자가 '줄기 간'이므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큰 (산)줄기라는 뜻이다.

14세기 고려 공민왕 때 사람인 우필흥(于必興)이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문에 "아국(我國)은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끝난다."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늦어도 14세기나 그 이전에 백두대간을 가리키는 개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백두대간이라는 단어 자체는 18세기 이중환이 쓴 택리지(1751)에 처음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 이익이 쓴 성호사설(1760)에도 백두대간이란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중환이나 이익이나 모두 백두대간, 백두대맥(白頭大脈), 백두남맥(白頭南脈), 백두정간(白頭正幹) 등을 혼용하므로 아직 '백두대간'과 다른 단어를 혼용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2009년 3월 5일자로 개정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백두대간이라 함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산경표에 따르면 백두산부터 원산, 함경도 단천의 황토령, 함흥의 황초령, 설한령, 평안도 영원의 낭림산, 함경도 안변의 분수령, 강원도 회양의 철령과 금강산, 강릉의 오대산, 삼척의 태백산, 충청도 보은의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용

대간을 이루는 주요 산은 기점인 백두산(2,744m)으로부터 동남쪽으로 허항령(虛項嶺, 1,401m), 포태산(胞胎山, 2,289m), 최가령(崔哥嶺, 1,527m), 백사봉(白沙峰), 두류산(頭流山, 2,309m) 등 2,000m 정도의 높은 산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의 유역을 동·서로 분계하였으며 북동쪽으로 장백정간(長白正幹)을 갈래하였다.

서남쪽으로 후치재〔厚致峙, 1,335m〕, 부전령(赴戰嶺, 1,445m), 황초령(黃草嶺)으로 이어져 압록강의 남쪽과 동해로 흘러드는 분수기를 이루며,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遮日峰, 1,743m), 철옹산(鐵瓮山, 1,085m), 두류산(頭流山, 1,324m)으로 이어져 대동강의 남쪽 정맥인 해서정맥(海西正脈)을 서남쪽으로 두었다.

원산 서남쪽으로 이어진 대간은 마식령(馬息嶺, 788m), 백암산(白岩山, 1,110m), 추가령(楸哥嶺, 752m)으로 연결되어 임진강의 북쪽 유역의 경계를 이루었고 한강 북쪽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시점을 이루었다.

동해안을 끼고 국토의 척추인 양 이어진 대간은 금강산(金剛山, 1,638m), 진부령(陳富嶺, 529m), 설악산(雪岳山, 1,708m), 오대산(五臺山, 1,563m), 대관령(大關嶺, 832m), 두타산(頭陀山, 1,353m), 태백산(太白山, 1,567m)으로 이어 흐르다가 남쪽으로 낙동강의 동쪽 분수 산줄기인 낙동정맥(洛東正脈)을 형성시켰다.

대간의 본줄기는 내륙 깊숙이 소백산(小白山, 1, 421m), 죽령(竹嶺, 689m), 계립령(鷄立嶺), 이화령(梨花嶺, 548m), 속리산(俗離山, 1,508m)으로 뻗어내려 한강과 낙동강을 남북으로 분수하였다. 이로부터 추풍령(秋風嶺), 황학산(黃鶴山, 1,111m), 삼도봉(三道峰, 1,177m), 덕유산(德裕山, 1,614m), 육십령(六十嶺, 734m), 영취산(靈鷲山)까지 금강의 동쪽 분수산맥을 형성하며 섬진강의 동쪽 분수령인 지리산(智異山, 1, 915m)에서 백두대간은 끝난다.

백두대간은 장백정간(長白正幹)과 함께 서쪽으로 해안선까지 많은 '골'과 '들'을 이루며 뻗어 내려간 13개의 정맥, 즉 청북정맥(淸北正脈)·청남정맥(淸南正脈)·해서정맥(海西正脈)·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한북정맥(漢北正脈)·한남정맥(漢南正脈)·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금북정맥(錦北正脈)·금남정맥(錦南正脈)·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호남정맥(湖南正脈)·낙동정맥(洛東正脈)·낙남정맥(洛南正脈)과 연결되고 있다.

이들 산줄기의 이름은 강줄기의 이름에서 얻어진 것이며, 호남정맥과 해서정맥은 호남지방과 해서지방이라는 지명에서 산줄기 이름이 유래하였다. 산과 물이 하나로 자연을 이루고, 언어·습관·풍속 등과 의식주의 다양함이 산줄기와 물줄기의 가름으로 세분화되어 생활 철학을 탄생하게 하였다. 산줄기마다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되어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연스런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하고 지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 백두대간은 그 근본이 된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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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영환 기자, 〈한반도 산줄기의 이해와 보호 위한 교육 필요〉, 《CNB뉴스》, 2009-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