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개요[편집]
석가모니는 부처님, 부처, 석가모니, 석가세존, 석존, 세존, 석가, 능인적묵, 여래, 불타, 붓다, 불(佛)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석가모니(釋迦牟尼)·석가문(釋迦文) 등으로도 음사하며,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번역된다. 보통 석존(釋尊)·부처님이라고도 존칭한다. 석가는 샤카(샤키야,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석가모니라 함은 본래는 '석가족(族) 또는 샤키아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佛陀)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āgata),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1]
생애[편집]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이며 다른 호칭으로 세존, 석존, 불, 여래 등 10가지 존칭과 본명인 싯다르타 가우타마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가우타마 붓다(영어: Gautama Buddha)라고 칭한다. 샤카 공화국 룸비니(오늘날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서 공화국의 수장인 슈도다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원전 6세기경 현재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카필라바스투(가비라성, 오늘날 네팔 틸라우라코트)를 중심으로 샤캬 공화국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 정반왕)와 마야 부인(Mahamaya)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캬 공화국은 일종의 혼합정체를 행하고 있었다. 라자냐라는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코살라 왕국 일부였다. 인간 삶은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었다고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29세 때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법이나 고행을 하였으나 이는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함을 알았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석가모니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의 손에 자랐으며,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 명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궁전 안의 안락함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궁 밖으로 나와 밭갈이하는 농부를 보고 인간들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가 잡아먹는 벌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쇠약한 노인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석가의 이러한 우울한 심정을 눈치챈 부왕은 혹시 아들이 당시 많은 젊은이들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16세의 나이에 콜리야 왕국의 공주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 이후 아들을 낳았는데 수행에 방해라며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다. 부왕은 많은 미녀들을 시켜 주야로 향연도 베풀었으나, 오히려 출가를 재촉하는 동기만 되었다.
석가모니는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하였다. 이 출가에는 여러 동기가 중첩해 작용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요인은 '무상한 이 세상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다르마를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열정이었다. 싯다르타 왕자가 카필라바스투 성 동문 밖에서 노인, 남문 밖에서 병자, 서문 밖에서 죽은 자, 북문 밖에서 승려를 만났다는 불전의 사문유관(四門遊觀) 이야기는 무상고(無常苦)에 대한 강렬한 자각을 의미한다. 아들 라훌라가 있으니 후계자에 대한 근심은 하지 않게 된 싯다르타는 시종 차닉(車匿)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서 성문을 빠져나갔다.
석가모니는 35세 되는 해 12월 8일 이른 새벽(남방불교의 전설에는 바이샤카월의 만월이 된 밤)에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의 본원을 끊어 없애는 확신을 얻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 정적(靜寂), 즉 열반의 세계를 체현(體現)이며, 올바른 자각을 얻어 눈을 뜬 부처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우주 진리를 깨닫고는 보리수 밑에 대좌하여 7일 동안 12연법을 달관하여 모든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동안 깨달음 경지를 혼자 즐기다가 얼마 후 이러한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고자 하였다. 우선 지난날에 같이 고행하던 수행자 5명을 교화하려고 바라나시 교외 사르나트(鹿野苑)를 방문하였다. 그들 5명은 고행을 그만둔 석가를 경멸했으나 이내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 설법에 감화하였다. 이 최초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부처 제자가 된 5명 비구(比丘)가 생기면서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이 성립하였다.
석가모니는 45년간 라자그리하와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를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설법을 해나갔다. 붓다 가르침은 심원하면서도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이나 비유 또는 인연 설화(因緣說話)를 활용하고, 평이한 말로 친절을 다하여 설법했으므로 점차 제자가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돕는 귀의자도 나타나서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가 가란타의 동산에 건물을 짓고 헌납하니 승가람의 시초가 되었다. 이를 죽림정사라고 부른다. 사위성에도 기원정사라는 큰 절을 세워 사부중의 완성을 보았다.
석가모니는 80세 고령이 될 때까지 설법을 그치지 않았다. 파바시에서 받은 공양이 잘못되어 심한 이질(식중독)을 앓았다. 고령인 데다 금식을 자주 했었기에 장이 매우 약한 탓이었다. 병이 위독함을 깨달은 붓다는 최후 목욕을 마치고 사라(沙羅)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북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 가르침을 폈다. 이후 쉬지 말고 수행에 임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조용히 쿠시나가라에서 80세 나이로 입멸하였다. 유골과 사리는 왕후, 귀족들이 분배하여 각자 나라에 가지고 가서 탑파를 세우고 봉양하였다.
석가모니의 설법[편집]
석가모니는 성도 후 5주간을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기쁨에 잠겨 있었는데, 범천(梵天)의 간절한 권청(勸請)이 있어 설법을 결심하였다. 악마의 유혹, 설법주저(중생이 이해 못할 것을 염려), 범천권청 등은 마음속의 일을 희곡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보이나, 깊은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석가모니는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M鹹gadāva)에서, 일찍이 고행을 같이 하였던 5명의 수행자에게 고락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와 사제에 관하여 설하였다. 이것을 특히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법을 깨달아 제자가 되었다. 여기에 최초의 불교 교단(sagha:僧伽)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그의 설법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석가모니는 적극적으로 설법을 계속하여, 그 교화의 여행은 갠지스 강(江) 중류의 넓은 지역에까지 미쳤다. 제자의 수도 점차 증가하였으며, 각지에 교단이 조직되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아함경》, 《율장》 등의 원시불교 경전을 통해 전하여지고 있다.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을 후세에 편집한 것이지만, 후세에 정형화된 다음의 교설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원형 또는 그 핵심을 알 수 있다. 삼법인(三法印:一切皆苦·諸行無常·諸法無我 또는 一切皆苦를 빼고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사제·팔정도(八正道: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무기(無記:일체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음. 실천을 지향함을 말한다) ·법(法:모든 존재를 일관하는 보편적 진리)·오온(五蘊:色·受·想·行·識의 5가지 존재의 구성 요소)·육근(六根:법의 분류로서 眼·耳·鼻·舌·身·意의 주체. 이에 대응하는 色·聲·香·味·觸·法의 객체, 즉 六境을 더한 十二處와, 거기에 眼識 등의 六식을 추가하여 十八界를 말하기도 한다)·연기(緣起: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하여 성립함을 말함. 12연기가 특히 유명하다)·열반·일체중생의 평등 등이 그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편집]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본래 '석가 탄신일'로 불리었으나, 2018년 '부처님 오신 날'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다. 초파일(初八日)이라고도 한다. 경(經)과 논(論)에 부처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원래는 음력 2월 8일이 맞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부처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고, 한국에서도 음력 4월 초파일을 탄신일로 보고 기념하며 1975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본래 '석가 탄신일'로 칭하였으나, 2018년 '부처님 오신 날'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다.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부처 탄신일로 결정하였다. 또 국제연합은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회의의 안건이 받아들여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부처 탄신일로 정하여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각 사찰에서 거리에 등을 내달고 경내에 수많은 등을 밝히는 등 공양 행사를 이어 온다. 1996년(불기 2540년)부터 연등축제로 이름을 붙이고 동대문 운동장에서 조계사까지 이르는 제등행렬을 비롯하여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한마당 등 행사를 추가해 종합적인 축제로 전환하여서 오늘에 이른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석가(Śākyamuni,釋迦,BC 563?~BC 483?)〉,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 〈석가(Śākyamuni,釋迦,BC 563?~BC 483?)〉, 《두산백과》
- 〈석가모니〉, 《위키백과》
- 〈부처님 오신 날〉, 《위키백과》
- 〈석가모니〉, 《나무위키》
-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