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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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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探險家)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을 찾아가서 살펴보고 조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1]

탐험가가 되려면?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은 허술한 지도와 밤하늘의 별에 기대 탐험을 했다. 새로운 땅을 찾으려고 위험이 도사리는 바닷길을 헤쳐 나간 것이다. 반면, 요즈음 탐험가들은 편리한 교통수단과 GPS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다. 또 과학적인 연구를 하거나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탐험가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누구도 밟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겠다는 도전 정신이다.

첫째, 튼튼한 몸과 마음은 모든 일의 기본!

탐험가가 되려면 우선 체력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아마존정글이나 남북극과 같은 극지대를 탐험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곳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기후까지 나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건강이 약하다면 탐험의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생명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게 될 것이다. 또 몸이 튼튼해야 동료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도와줄 수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도 필요해요. 탐험을 하다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어려움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답니다.

둘째, 두둑한 배짱과 끈기 있는 마음을 기르자!

무섭고 두렵다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탐험할 수가 없다. 성공한 탐험가들은 어떤 어려움도 용기와 인내로 이겨냈다. 포르투갈 사람이던 마젤란은 말이 서투르다고 에스파냐 선원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반란까지 겪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반란을 잠재워 지휘권을 다시 잡았다.

또 쿠스토도 새로운 수중 호흡기를 개발하다가 바닷속에서 죽을 뻔했다. 하지만 결코 겁먹고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 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어려움을 참아 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탐험으로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셋째, 지식기술은 최고의 생존 무기!

탐험가는 풍부한 지식과 유용한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역사속의 탐험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목표를 달성해 냈는지 알아보자. 그러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들의 지혜를 빌릴 수 있다.

또 탐험가는 지도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도를 잘못 읽으면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된다. 물론 각종 통신 기술도 익혀야 한다. 세계에는 무선 통신은커녕 전기도 사용할 수 없는 곳이 아직 많다. 이런 곳에서는 스마트폰노트북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모스 기호뿐 아니라 연기, 혹은 깃발을 통해 자기 위치를 알리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넷째, 그날그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역사에 이름을 남긴 탐험가 중에는 탐험을 하다가 병이나 사고로 생을 마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탐험 이야기는 후세에 자세히 전해졌다. 이건 그들이 탐험 일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탐험가가 되고 싶다면 평상시에도 항상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자. 그래야 탐험에 나섰을 때에도 빼놓는 것 없이 꼼꼼하게 일지를 적을 수 있다. 탐험 일지는 탐험가 개인의 기록이자 탐험의 역사가 된다. 이런 탐험 일지는 탐험의 순간순간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히 전해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2]

인류 최초의 탐험가들은 누구?

  • 고대 수메르
기원전 350 0~기원전 1900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여러 도시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 이들은 일찍부터 이집트무역을 했다. 기원전 3000년부터는 청동을 만들어 썼는데, 재료가 되는 주석과 구리도 모두 다른 곳에서 사왔다.
고대 수메르 상인들은 금속과 나무 등을 사고 농산물과 금속품을 팔러 인도양과 지중해까지 갔다.
  • 고대 이집트
기원전 3000 ~기원전 332년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수메르인들과 비슷한 때부터 다른 나라들과 육지길이나 바닷길로 무역을 했다. 이들은 유럽인들보다 수천 년이나 앞서 아프리카 동해안을 탐험했다.
기원전 1460년, 이집트 왕실은 대규모 원정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소말리아의 푼트로 다섯 척의 배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태워 보내 상아, 물약, 유향을 가져오게 했다.
  • 고대 페니키아
기원전 1200 ~기원전 539년
페니키아는 상업, 문자, 항해술이 발달하여 당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기원전 1100년대에 이미 지중해를 가로질러 항해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북쪽에 식민지 카르타고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해안을 모두 둘러보았다. 또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에 있는 지브롤터 해협까지 탐험했다.
  • 고대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550 ~ 기원전 330년
대제국을 이루었던 페르시아도 탐험에 뛰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515년, 다리우스 1세(기원전 550 ~ 기원전 486년)는 인도 지역을 정복한 뒤, 스킬락스라는 유명한 탐험가를 보내 인도양을 탐험하게 했다. 그다음 자신도 직접 지금의 파키스탄의 볼란 고개와 인도 서북부를 둘러보고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 고대 그리스
기원전 1100 ~ 기원전 146년
초기 탐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는 그리스이다. 높은 문명 수준을 자랑하던 그리스는 탐험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 ~ 기원전 322년)는 파도와 바다 생물에 대해 연구하고, 바닷물의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다. 과학자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바다를 연구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해서 고대 해양 생물학이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피테아스(기원전 350 ~ 기원전 285년)는 직접 탐험에 나섰다. 그는 지금의 영국유럽대서양 해안을 둘러보고 아이슬란드노르웨이까지 다녀왔다.

그는 영국 곳곳을 걸어서 탐험하고, 영국 북부에서 프랑스 마르세이유까지가 1,680킬로미터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그 거리가 1,792킬로미터니까 당시로서는 꽤 정확히 계산한 셈이다. 피테아스는 여행 중에도 아침마다 바닷물의 높이가 다른 것을 관찰하여, 그 이유가 달과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 생각은 2,000여 년 후에야 인정받았다.

또 그는 여정에서 본 일들을 여행기로 남겼는데, 그 일부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를 통해 후세에 전해졌다.[3]

왜 탐험가들은 극지방에 가려고 할까?

인류는 최근까지 남극북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얼음으로 둘러싸인데다 극한의 추위 때문에 탐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따라서 극지방을 최초로 탐험한 사람이나 나라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으로 인정되었고, 해당 국가는 주변의 바다와 육지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극 탐험에 처음 성공한 사람은 노르웨이의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이다. 아문센의 탐험대는 식량난과 극한의 기후를 견디며 힘든 항해를 이어갔다.

1911년 12월 14일, 드디어 아문센과 그의 대원들은 남극점에 노르웨이 국기를 꽂을 수 있었다. 노르웨이를 떠나온 지 1년 반, 남극 대륙에 도착한 지 11개월 만이었다. 아문센이 남극 탐험에 성공하자 노르웨이는 극지방의 개발에 우선권을 확보하게 되었고, 극지방의 지리와 해양 탐구에 앞장서게 되었다.[4]

각주

  1. 탐험가〉, 《네이버국어사전》
  2. 탐험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이버어린이백과》
  3. 인류 최초의 탐험가들은 누구였나요?〉, 《네이버어린이백과》
  4. 왜 탐험가들은 극지방에 가려고 할까?〉, 《네이버어린이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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